‘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정세권’의 이야기를 ‘국내 최초로 다룬 창작 동화’
서울시 종로구에 가면 작은 규모의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다운 마을을 볼 수 있다. 바로 북촌 한옥 마을.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대부분인 서울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멈춘 듯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한옥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찍이 관광지로 이름을 알려 늘 사람들로 북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북촌 한옥 마을은 그 유명세와는 달리 정작 누가 언제 이 마을을 조성했는지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건축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세권의 이야기를 국내 최초로 다룬 창작 동화 《건축왕 정세권》을 펴내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인들을 위해 북촌과 익선동 일대에 한옥을 지은 건축가! 민족의 경제적, 정신적 자립을 위해 조선 물산 장려 운동에 재정적 도움을 주고 조선어 학회 회관을 짓는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농 정세권의 발자취를 이 책 《건축왕 정세권》을 통해 좇는다.
‘일제 강점기’에 ‘한옥’으로 ‘희망’을 지었던 정세권 이야기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삶은 실로 팍팍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영수네 식구처럼 말이다. 영수는 부모님, 그리고 영순이, 영이라는 두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원래는 경성에서 행랑채에 있는 방 한 칸을 세 얻어 살았는데, 그마저 비워 줘야겠다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는다. 아버지는 지게꾼으로,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영수는 신문팔이로 근근이 살아가던 중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퇴거 통보를 받자 다섯 식구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때 영수는 우연한 기회에 건축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정세권과의 만남으로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이 책은 당시 평범한 서민들을 대표하는 영수네 식구들과 실제로 존재했던 정세권의 행적을 버무려 일제 강점기에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한옥으로 희망을 선사했던 정세권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한다. 또 세월이 흘러 영수, 즉 신영수 왕할아버지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증손자 미루까지 등장하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빛나는 정세권의 업적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북촌에, 그리고 익선동에 가면 단순히 멋들어진 관광지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세권의 업적’을 한눈에 살펴보는 ‘부록’ 수록
건축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정세권의 삶은 이제 막 연구 중에 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 최근인 만큼 그에 대해 알려진 것도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이 책 《건축왕 정세권》은 최근까지 알려진 정세권의 업적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여 책 말미에 부록으로 수록했다. 또한 그가 만든 북촌 한옥 마을과 익선동 한옥 마을 등을 사진으로 수록하여 실제로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정세권의 흔적을 실감 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 작가의 말 ◆
집으로 독립운동을 한 정세권을 아시나요?
‘북촌’이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그래요, 임금님이 사시던 경복궁 오른쪽 언덕배기에 있는 동네랍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고만고만한 한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곳이지요. 언제부터인가 북촌은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어요. 그곳에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데 북촌에 있는 그 한옥들은 언제 지어진 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 시대에 지은 집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니랍니다.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은 후 남산에 ‘조선 통감부’를 설치했어요. 그러자 일본인들이 너도나도 남촌 주변으로 몰려와 일본식 집을 지었어요. 그러다가 슬슬 종로와 북촌까지 넘보기 시작했어요.
정세권이라는 건축업자가 그걸 보고 큰 결심을 했어요.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은 절대로 종로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정세권은 ‘건양사’라는 건축 회사를 차린 후 종로 여기저기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어요. 돈 없는 서민들이 살기 딱 알맞은 작은 한옥들을 지은 거예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익선동, 창신동, 가회동, 북촌의 모든 한옥들이 그때 지어진 거예요. 사람들은 정세권을 언젠가부터 ‘건축왕’이라 불렀어요.
정세권은 그렇게 한옥 수천 채를 지어 번 돈을 헛되이 쓰지 않았어요.
일제 강점기에 한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조선어 학회’ 학자들을 위해 기꺼이 2층 양옥집을 지어 드렸어요. 당시 경성 방직 여공 한 달 월급이 21원이었는데 200여 명의 월급과 맞먹는 돈을 기꺼이 내놓은 거예요. 그뿐 아니라 정세권은 ‘장산사’라는 회사를 세워 ‘조선 물산 장려 운동’에도 앞장섰어요. 독립을 위한 일에도 앞장서서 자금을 내고요.
결국 정세권은 1942년 일제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다 당했어요. 일제는 정세권에게 다시는 한옥을 짓지 말고 일본 집을 지으라고 윽박질렀어요. 정세권이 거절하자 일제는 건양사 건축 면허와 땅과 재산 등 모든 걸 다 빼앗아 갔어요.
건축왕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수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유품은 그저 쌀되와 놋 주발(놋쇠로 만든 밥그릇) 한 벌, 그리고 조선어 학회 뒤에 생긴 한글 학회가 펴낸 ‘큰사전’뿐이었어요.
정세권이 지은 북촌과 익선동, 창신동 등 한옥 마을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일제에 맞서 우리 조선집을 지켜 내려던 정세권은 기억하지 못했어요.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세권의 삶을 동화로 쓰기 시작했어요. 주인공 영수 할아버지와 미루와 함께 정세권의 숨결이 묻어나는 북촌, 익선동 등 낡은 한옥들을 몇 번이나 돌아다니면서요.
부디, 어린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건축왕 정세권을 기억해 줬으면 해요. 집(한옥)으로 나라를 지키려 애썼던 애국자, 독립운동가 정세권을 말이어요.
2021년 새해, 동화 작가 이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