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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음악 (Sleepless in Seattle OST) [레드 컬러 2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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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음악 (Sleepless in Seattle OST) [레드 컬러 2LP]

[ 한정반 / Red Valentine Colored Vinyl ]
Jimmy Durante 작곡/Clive Griffin, Celine Dion, Tammy Wynette, Harry Connick Jr. 노래 외 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Real Gone Music (USA) / Real Gone Music (USA) | 2021년 02월 0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73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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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음악 (Sleepless in Seattle OST) [레드 컬러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1년 02월 05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LP 구매시 참고 사항 안내드립니다.

디스크

Disc
  • 01 As Time Goes By - Jimmy Durante
  • 02 A Kiss To Build A Dream On - Louis Armstrong
  • 03 Stardust - Nat King Cole
  • 04 Makin' Whoopee - Dr. John / Rickie Lee Jones
  • 05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 - Carly Simon
  • 06 Back In The Saddle Again - Gene Autry
  • 07 Bye Bye Blackbird - Joe Cocker
  • 08 A Wink And A Smile - Harry Connick, Jr.
  • 09 Stand By Your Man - Tammy Wynette
  • 10 An Affair To Remember - Harold Adamson / Leo Mccarey / Harry Warren
  • 11 Make Someone Happy - Jimmy Durante
  • 12 When I Fall In Love - Celine Dion / Clive Griffin

아티스트 소개 (12명)

작곡 : Jimmy Durante (지미 듀란트,James Francis Durante)
노래 : Clive Griffin (클리브 그리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쓰는 퀘벡 지방의 작은 집에서 1968년 첫 울음보를 터트린 셀린 디온. 그녀는 합계가 무려 16명인 대식구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부모님 모두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우산 아래 셀린 디온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맘껏 틔웠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의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2살 때에는 ‘It was only a dream’이라는 최초의 자작곡을 썼다는 등의 후일담들이 잘 증명해준다. 오빠와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 하에 상기한 곡을 테이프화(化)했던 셀린 디온. 그녀는 그것을 매니저인 르네 앤젤릴(Rene Angelil)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허나 독촉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셀린 디온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르네 앤젤릴은 그 날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정식 데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셀린 디온의 노래를 직접 들은 순간, 르네 앤젤릴은 그녀가 곧 인터내셔널 슈퍼 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1983년 15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음반 < D’Amour Ou D’Amite >을 통해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야마하 작곡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이후 셀린 디온의 행보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또한 그녀는 그 즈음 조우했던 베테랑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의 인연 덕에 걸프 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기획 앨범 < Voices That Care >에 참여, 수많은 팝 필드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문’뿐인 듯 보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우선 음악 외적인 면에서 파격적 변신을 단행했다. 팝 계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 또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동시에 셀린 디온은 영국의 랭귀지 스쿨에서 언어 교육을 받으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틴에이저에서 성숙미를 내뿜는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드백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1990년에 발매했던 처녀작 < Unison >(74위)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와 4위를 기록한 ‘If there was (any other way)’와 ‘Why does my heart beat now’의 선전에 힘입어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 허나 정작 그녀를 꼭지점으로 견인했던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테마였던 ‘Beauty and the beast’였다. 차트 1위를 단박에 꿰찬 곡은 그녀에게 1992년 그래미의 팝 듀오/그룹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이후의 성공 시대를 예감케 했다. 또한 2집 앨범인 < Celine Dion >(1992)에도 수록되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곡 외에 다이안 워렌(Diane Warren) 작곡의 ‘If you asked me to’(4위), ‘Nothing broken but my heart’(29위), ‘Love can move mountains’(36위) 등이 팬들의 애정 공세를 한 몸에 받았다. 같은 해에 내놓았던 영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의 주제곡인 ‘When I fall in love’(23위) 역시 대박이었다. 2년 뒤인 1994년에는 셀린 디온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매니저였던 르네 앤젤릴과의 결혼이 바로 그것. 1988년부터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둘은 6년 뒤인 1994년에야 그 사실을 발표하고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에서 결혼, 세간을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정확이 배가 되는 나이차도 화제거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셀린 디온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간, 무려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주는 양적 포만감부터가 남달랐다. 1993년의 < Colour of My Love >(4위)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제니퍼 러시(Jennifer Rush)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power of love’(4주간 1위), 그리고 ‘Misled’(23위) 등의 히트 넘버들을 배출했다. 1994년과 1995년에 셀린 디온은 두 장의 불어 LP를 내놓으며 음악적 본령을 되새김질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팝 클래식인 ‘Calling you’를 수록한 < Live A L’olympia >와 장자크 골드만이 프로듀스해준 < D’eux >이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800만장을 세일즈, 가장 많이 팔린 샹송 작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은 단연코 1996년의 팝 마스터피스 < Falling Into You >였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집계된 판매량이 1100만장인 작품은 그 해 그래미에서 ‘팝 앨범’과 ‘올해의 앨범’, 두 개 부문을 석권하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의 테마송이자 다이안 워렌이 써 준 ‘Because you loved me’(1위)를 위시로 팝 고전을 다시 부른 ‘All by myself’(4위), ‘It’s all coming back to me mow’(2위) 등이 차트에 핵 폭탄을 마구 투하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같은 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무비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14주 연속 1위)은 더했다. 또 다시 그래미 두 개상을 차지하는 등, ‘셀린 디온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의 상황을 연출했다. 곡이 수록된 1997년의 앨범 < Let’s Talk About Love >(1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두 음반의 합산 판매고가 무려 6000만장을 상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녀는 실로 당대에 무적, 팝 계 최고의 디바 자리에 우뚝 섰다. 그간 참여했던 뮤지션들을 포함해 새로 가세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 비지스(The Bee Gees), 캐롤 킹(Carole King),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등, 후자에 참여한 초특급 아티스트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당시 그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셀린 디온은 크리스마스 스페셜 반인 < These Are Special Times >(1998, 2위)와 샹송 앨범 < S’il Suffisatt D’aimer >(1998)를 선보이고 베스트 컬렉션인 <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1999, 1위)을 내놓는 등,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남편의 후두암 투병이라는 절망적 사건이 발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비극이 종결되고 셀린 디온에게 행복이 찾아왔던 때는 2001년이었다. 체외 수정에 성공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의 증세도 나날이 호전되는 등, 셀린 디온이 가정에서 본업으로 컴백할 기운이 날로 충만해져 갔다. 그리고 2002년, 무려 5년 만에 출시했던 정규작 < A New Day Has Come >은 그녀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초로 발매 첫 주에 정상에 등극하며 변함없는 팬 베이스를 과시했다. 허나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전성기 시절에는 많이 못 미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현재 셀린 디온은 1년 만에 신작 < One Heart >를 내놓으며 팬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003/04 배순탁(greattak@izm.co.kr) 오이뮤직 머라이어 캐리가 있고 휘트니 휴스턴이 있지만 이들 못지 않게 지난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가수가 셀린 디온(Celine Dion)이다. 흔히들 이들을 오페라의 주역가수에서 나온 말로 최고 인기의 여가수를 의미하는 어휘인 디바(diva)로 일컫는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팝 음악계의 디바 시대를 이끌었다면 셀린 디온은 디바 시대의 정점에 선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셀린 디온은 같은 음반회사 소니 뮤직에 소속된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90년대 중반까지 만년 2등 가수였다. 하지만 셀린 디온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나의 마음은 영원할 거예요(My heart will go on)’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 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노래 : Tammy Wynette (태미 와이네트)
노래 : Harry Connick Jr. (해리 코닉 주니어)
재즈는 마니아를 위한 순수예술 장르로 생각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는 이런 고리타분한 공식에서 탈피해 1990년대의 재즈에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시켜 보통 음악팬들에게도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주류음악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는데 공헌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탁월한 음악성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외모까지 겸비하고 있어 영화에서도 성공한 전천후 엔터테이너다. 196... 재즈는 마니아를 위한 순수예술 장르로 생각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는 이런 고리타분한 공식에서 탈피해 1990년대의 재즈에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시켜 보통 음악팬들에게도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주류음악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는데 공헌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탁월한 음악성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외모까지 겸비하고 있어 영화에서도 성공한 전천후 엔터테이너다. 1967년,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해리 코닉 주니어는 지방 검사인 아버지와 레코드 가게를 경영할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에게서 음악적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세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 꼬마 해리는 부친의 손에 이끌려 어려서 클럽 무대에 섰다. 엘리스 마살리스 문하에 입문해 정통 재즈를 배운 그는 18세가 되던 해에 CBS 레코드를 통해 정식 데뷔앨범 를 발표해 재즈 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 미남 가수는 1989년에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의 사운드 트랙을 담당해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로 주목을 받았다. 주제가 ‘It had to be you’를 비롯해 ‘Our love is here to stay’,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등 수많은 애청곡이 수록된 이 사운드트랙은 멀티플래티넘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 열린 제 3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남성 재즈보컬 부문을 그에게 안겨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켰다. 이후 피아노 트리오 앨범 와 정규 앨범 등 마르지 않는 음악 활동을 펼친 ‘작은 코닉’은 영화 (1990)에 조연으로 출연해 노래를 부른 것을 계기로 (1995), (1996), (1998)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입지를 굳혀갔다. 일 욕심이 많은 해리는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본분에 대한 자각을 잊지 않고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1994)와 (1996)은 그 동안 진행해 온 정통 재즈 노선에서 방향을 틀어버린 탐미적인 창작물이었다. 일렉트릭과 펑크를 과감히 차용해 재즈의 영역을 넓히고자 했지만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으로는 인지도가 낮았다. 잠깐의 외도에서 재즈로의 복귀를 알린 와 는 ‘Too see you’, ‘Let me love tonight’, ‘Charade’, ‘Danny boy’ 같은 곡을 쏟아내며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1년에는 앨범 를 발표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최근에는 리메이크 음반 를 선보이며 고전을 통한 무르익은 음악적 성숙을 과시하고 있다. 정체된 1990년대 재즈 계에 입김을 불어넣은 해리 코닉 주니어의 음악에는 온기가 느껴지고 사랑을 느끼고 휴식이 있기 때문 현재까지도 스탠더드 재즈팝 보컬리스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은 불혹을 눈 앞에 둔 두 아이의 아버지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수줍게 웃던 18세 소년 그대로이다.
백인을 뜻하는 푸른 눈(블루 아이)과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소울이란 단어가 합해져 생성된 신조어 블루 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은 말 그대로 백인이 흑인의 창법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1944년 생인 조 카커(Joe Cocker)는 블루 아이드 소울 싱어 중에서도 그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는 영국 셰필드 출신의 가수이다. 그가 발효시킨 영혼의 울림은 이 분야의 원조 격인 남성 듀엣 라이처스 ... 백인을 뜻하는 푸른 눈(블루 아이)과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소울이란 단어가 합해져 생성된 신조어 블루 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은 말 그대로 백인이 흑인의 창법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1944년 생인 조 카커(Joe Cocker)는 블루 아이드 소울 싱어 중에서도 그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는 영국 셰필드 출신의 가수이다. 그가 발효시킨 영혼의 울림은 이 분야의 원조 격인 남성 듀엣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와 대등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후에 등장하는 홀 & 오츠(Hall & Oates), 폴 영(Paul Young), 로버트 파머(Robert Palmer), 폴 캐릭(Paul Carrack) 심플리 레드(Simply Red),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과 같은 푸른 눈의 백인 소울 싱어들에게 하나의 전형을 제시했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조 카커는 1969년에 열린 전설적인 콘서트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자신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었던 외화 시리즈 < 케빈은 12살 >의 주제가로 쓰였던 비틀스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68위)’를 오징어 구워지듯 온 몸을 비비꼬는 무대 매너로 열창해 수많은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이 신인 소울 싱어와 ‘Soul sacrifice’를 연주한 역시 신인 산타나(Santana)는 이 페스티발에서의 멋진 공연으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조 카커는 1969년부터 1970년까지 만 3년 동안 3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자신이 작사, 작곡한 것 외에도 다른 가수의 노래들을 많이 커버했다. 데이브 메이슨(Dave Mason)의 ‘Feelin’ alright(69위)’, 밥 딜런(Bob Dylan)의 ‘Just like a woman’과 ‘Dear Landlord’,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Bird on a wire’,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30위)’, 포크 록 그룹 러빙 스푼풀(Lovin’ Spoonful)의 ‘Darling be home soon’, 박스 탑스(Box Tops)의 ‘Letter(7위)’ 등의 트랙들을 재해석해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멋진 소울 음악으로 통일시켰고 록 감각의 ‘High time we went(22위)’로 당시 백인 소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다. 음주 문제 때문에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의 음악 활동은 순탄하지 못했다. 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도록 그의 양 날개를 받쳐 준 사람은 비틀스와 각별한 사이였던 흑인 건반 연주자 겸 싱어 송라이터 빌리 프레스톤(Billy Preston)이었으며 그 결과물이 그의 대표작이 된 1975년의 ‘You are so beautiful(5위)’이었다. 임재범도 리메이크해 국내 신세대 가요팬들에게도 알려진 이 발라드로 조 카커는 다시 한번 화려한 비상을 했고, 1982년에는 영화 < 사관과 신사 >의 주제가 ‘Up where we belong’을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와 듀엣으로 불러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은 물론,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 초반 국내의 나이트 클럽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신나는 소울 곡 ‘Unchain my heart’는 1987년에 발표한 음반의 타이틀곡으로 ‘Up where we belong’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노래이다. 하지만 이 곡은 본고장에서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숨은 보석이었다. 이 블루 아이드 싱어의 마지막 히트 곡은 1989년 말에 발표한 ‘When the night comes’로 싱글 차트 20위 권 진입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히트 차트에서 멀어져갔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일군 조 카커의 성공은 당시 제대로 조명 받기 시작한 흑인음악을 백인이 잘 소화한다는 희소성에 초점이 맞추어 졌고, 그를 비롯한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밴 모리슨(Van Morrison), 라이처스 브라더스 같은 선지자들이 뿌리내린 토양 위에서 후배들은 흑과 백의 자연스런 크로스 오버를 시도해 대대적인 성공을 일궈내고 있다. 공식적으로 데뷔한지 30년이 넘었지만 뉴 밀레니엄을 맞아 신보 < No Ordinary World >을 공개하면서 차트 경쟁과는 무관하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무엇보다 가수는 ‘독창적 음색’이 생명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음악이 꾸준히 매니아들을 창출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가수, 영화배우 가수, 영화배우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은 다분히 1970년대 감성을 소유한 성인 취향의 소프트 팝 싱어 송라이터다. 그녀의 개인적이면서 진솔한 노랫말과 매력적인 선율은 석유 가격 인상으로 야기된 경제 불황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스타일을 구긴 1970년대 초반 미국인들의 마음고생을 어루만져 주었고 진실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 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1970년대의 빗장 풀린 상황을 치유하는 순기능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입...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은 다분히 1970년대 감성을 소유한 성인 취향의 소프트 팝 싱어 송라이터다. 그녀의 개인적이면서 진솔한 노랫말과 매력적인 선율은 석유 가격 인상으로 야기된 경제 불황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스타일을 구긴 1970년대 초반 미국인들의 마음고생을 어루만져 주었고 진실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 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1970년대의 빗장 풀린 상황을 치유하는 순기능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945년 6월 25일,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칼리 사이먼은 1971년에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인 1964년에 동생 루시 사이먼(Lucy Simon)과 함께 사이먼 시스터스(Simon Sisters)란 듀엣으로 ’Winkin’ Blinkin’ and Nod’를 빌보드 싱글 차트 73위에 올리면서 신고식을 치렀지만 대중들은 그녀의 이름을 가슴과 머리에 입력시키지 못했다. 늘씬한 몸매의 그녀가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1971년에 공개된 셀프 타이틀의 처녀작 < Carly Simon >부터이다. 신인으로서 대담하게도 결혼 제도에 반대하는 ’That’s the way I’ve always heard it should be(10위)’를 데뷔 싱글로 선택해 당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던 독신주의와 여권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두 번째 작품 < Anticipation >에서 터진 앨범 타이틀 ’Anticipation(13위)’과 ’Legend in your own time(50위)’의 뒷심으로 칼리 사이먼은 그래미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1972년의 3집 < No Secrets >에는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에게 혐의(?)를 둔 가사로 유명해진 ’You’re so vain’이 3주 동안 싱글 차트 정상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고, 두 번째 싱글 ’The right thing to do’도 17위를 마크하면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혼인에 회의적인 시각을 표현한 ’That’s the way I’ve always heard it should be’를 만들었으면서도 1972년에 같은 계열의 남성 싱어 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화촉을 밝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칼리 사이먼은 1974년에 ’Mockingbird(5위)’를 함께 불러 잉꼬부부의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그들은 1983년에 이혼했다). 그러나 불안정하고 혼란스런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 그녀의 사랑 타령에 팝 팬들이 식상하면서 칼리 사이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침체의 늪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화려하게 회생(回生)시킨 노래는 1977년에 개봉된 영화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2위)’였다. 이 여세를 몰아 1978년에 발표한 < Boys In The Trees >를 통해 배출된 히트 싱글 ’You belong to me(6위)’와 남편 제임스 테일러와 다시 함께 부른 ’Devoted to you(36위)’는 ’부활의 노래’였다. 1980년 음반 < Come Upstairs >의 4번째 트랙 ’Jesse’가 비록 11위에 등록되어 인기 차트와의 친밀감을 과시하긴 했지만 1980년대 팝계의 판도는 전자 음악의 등장이라는 커다란 지각 변동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뉴요커가 아날로그 방법으로 창조하는 노래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찍어내는 당시의 혁신적인 음악 스타일에 자리를 내주면서 다시 한번 사정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녀의 1980년대 부진도 영화 음악으로 극복되었다. 칼리 사이먼은 명배우 메릴 스트립과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 하트번 >의 사랑의 테마 ’Coming around again(1986년 18위)’와 멜라니 그리피스와 해리슨 포드가 타이틀 롤을 맡은 < 워킹 걸 >의 주제가 ’Let the river run(1989년 49위)’으로 예전의 명성을 회복했다. 특히 최고의 가창력을 과시한 ’Let the river run’으로 그래미와 아카데미를 석권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탈환한 영광의 자리는 1980년대 후반에 번성한 팝메탈과 그것에 반(反)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함성에 급속히 빛이 바랬다. 칼리 사이먼은 현재까지도 샘솟는 창작열을 모아 새로운 음반에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디스코그라피는 현재 진행형이다.
팝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로 기억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한 독특한 가사에 포크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거기에 팝을 혼합한 그녀의 음악은 캐나다 출신의 위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A lover''s concerto''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알... 팝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로 기억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한 독특한 가사에 포크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거기에 팝을 혼합한 그녀의 음악은 캐나다 출신의 위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A lover''s concerto''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알려진 재즈 싱어 사라 본(Sarah Vaughn), 그리고 괴짜 뮤지션으로 악명 높은 랜디 뉴만(Randy Newman)과 톰 웨이츠(Tom Waits) 같은 대가들로부터 채무를 지고 있다. 그러한 그녀의 독특한 음악을 형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1954년 11월 8일, 미국의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와의 불화로 10대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 그리고 이성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집에서 가출해 서부 해안 도시들을 배회하면서 사회 밑바닥 인생도 겪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의 경험을 토대로 쓴 가사가 단지 아름다운 사랑 타령일 수만은 없었다. 이 금발의 싱어 송라이터가 자신의 노래 소재로 삼은 것들은 죽음, 변화, 진화처럼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러한 방황 후 이 아리따운 여성이 정착한 곳은 로스앤젤레스였고, 거기서 레스토랑 서빙과 1인 독백극 공연을 통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가 일명 ''카바레 음악의 대부'' 톰 웨이츠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입문했다. 1979년에 나온 처녀작 < Rickie Lee Jones >는 재즈와 팝, 포크, 리듬 앤 블루스, 록이 혼재되어 있는 음반으로 판매적인 면은 물론 비평적인 면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느긋하지만 변덕스럽고, 약물 기운으로 조금은 나른한 데뷔 음반에서는 싱글 ''Chuck E''s in love(4위)''가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며 그녀에게 그래미 신인상의 길로 인도했고 ''Youngblood(40위)''가 후속타를 기록했다. 이 처녀작 이후 1984년의 < Magazine >까지 4장의 LP를 공개했지만 상업적인 잣대인 히트 차트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평론가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1980년대 중반 다시 도진 음주벽과 부진한 음반 판매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딸의 출산으로 5년의 공백기를 가진 리키 리 존스는 올해 그래미 주요 부문을 휩쓴 스틸리 댄(Steely Dan)의 월터 벡커(Walter Becker)의 진두지휘 아래 1989년에 제작한 음반 < Flying Cowboys >로 인상적인 재기를 했고, 1991년에는 팝록 밴드 워스 (낫 워스)[Was (Not Was)]의 리더 돈 워스(Don Was)의 프로듀싱으로 < Pop Pop >을 발표했다. 유년 시절의 어두웠던 기억과 경험을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리키 리 존스는 ''음악의 힘''을 증명했다. 만약 그녀가 1990년대 등장했다면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숀 콜빈(Shawn Colvin)과 함께 막강한 여성 포크록 싱어 송라이터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성했을 것이다.
노래 : Dr. John (닥터 존,Mac Rebennack)
재즈 / 블루스 / 락 피아노 연주자, 가수 재즈 / 블루스 / 락 피아노 연주자, 가수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들려준 냇 킹 콜은 1940-50년대 백인 재즈 보컬의 대명사 프랭크 시내트라의 인기전선에 위협을 가한 유일한 흑인 크루너(crooner)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대중들의 끊임없는 추종을 받고있는 그는 틴 팬 앨리 출신의 작곡가 어빙 벌린이 작곡한 발라드의 고전 ‘Unforgettable’(1951), 바로 그 곡의 주인공이다. 대중들은 그의 이름을 듣고 ‘가수’로서의 ...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들려준 냇 킹 콜은 1940-50년대 백인 재즈 보컬의 대명사 프랭크 시내트라의 인기전선에 위협을 가한 유일한 흑인 크루너(crooner)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대중들의 끊임없는 추종을 받고있는 그는 틴 팬 앨리 출신의 작곡가 어빙 벌린이 작곡한 발라드의 고전 ‘Unforgettable’(1951), 바로 그 곡의 주인공이다. 대중들은 그의 이름을 듣고 ‘가수’로서의 냇 킹 콜만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가수로 성공하기 전인 1930-40년대에 그는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냇 킹 콜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던 1930년대 말-1940년 대 초까지 그는 수많은 레코드를 녹음해 발표했다. 기타, 베이스, 피아노로 구성된 독특한 재즈 트리오 양식을 정립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비밥 재즈의 봉인 버드 파웰이 드럼-베이스-피아노로 이뤄진 트리오 양식을 제시하면서 지금까지 이 편성이 굳혀지긴 했지만, 재즈 트리오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처음 얻은 사람은 바로 냇 킹 콜이었다. ‘Route 66’(1943) 와 같은 히트곡을 발표하기도 한 냇 킹 콜 트리오는 한결 부드럽고 팝 적인 색채의 재즈 연주로 주목받으며 이후 1950년대 명성을 얻은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트리오의 출현을 예견케 했다. 1945년 캐피톨(Capitol)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이후 그는 피아니스트로서보다 수많은 히트곡을 팝 차트에 올리는 가수로서 우리에게 기억된다. 1917년 생으로 어린 시절을 시카고에서 보낸 그는, 12살 때 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형제가 모두 재즈 음악인으로 성장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으로 유복했던 그는 1936년 재즈 베이스주자 에디 콜(Eddie Cole)의 밴드에서 잠시 몸을 담지만, 얼마 후 자신의 무대를 찾아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한다. 이런저런 쇼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찾기에 몰두한 끝에 기타리스트 오스카 무어(Oscar Moore), 베이시스트 웨슬리 프린스(Wesley Prince)를 만나며 ‘냇 킹 콜 트리오’를 헐리우드에서 출범시킨다. 이들의 음악은 초기엔 순수 연주곡 중심이었으나, 1940년 데카(Decca)레코드와 계약하면서 ‘Sweet Lorraine’(1940)을 그의 노래로 녹음했고, 이내 대중들의 호응에 힘입어 그는 트리오에서 피아노와 노래를 병행하게 되었다. 냇 킹 콜 트리오는 1940년대 초반 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Route 66’, ’Straighten up and flying right‘(1943)와 같은 히트곡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40-50년대 명성을 구가했던 아마드 자말 트리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아트 테이텀 트리오는 모두 냇 킹 콜 트리오(피아노/베이스/기타)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The christmas song’(1947) , ’Nature boy’(1947)와 같은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한 냇 킹 콜 트리오활동은 1940년대 말까지 지속된다. 그러다 1950년, 그의 트리오가 오케스트라 세션을 넣어 발표한 ‘Mona risa’가 차트 넘버원을 기록하며 냇 킹 콜은 더 이상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인기 정상에 가수로 탈바꿈한다. 그의 노래는 어느덧 재즈뿐만 아니라 팝 청취자들의 애청 곡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었고 대중들은 차츰 그가 재즈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후 ‘Unforgettable’, ’Ramblin’ rose’(1962)를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을 차트에 올려놓으며 발라드 가수로서만 활동하게 된다. TV가 미국 대중들의 안방에 자리하면서 그는 쇼에 출연하며 50-60년대 내내 인기가수로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1965년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음악엔 더 이상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 양상을 띄게 된다. 트리오 양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재즈의 선구자’라는 호평에 반해 발라드 가수로서 백인 청취자들의 귀를 즐겁게 하며 ‘재즈를 팔아먹은 장본인’이라는 비난 역시 감수해야 했다. 재즈의 선조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해, 마일즈 데이비스, 조지 벤슨과 같은 거물급 재즈 스타가 겪은 이 대중성과 음악성과의 숙명과도 같은 패러독스는 냇 킹 콜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2000년대인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추앙 받는 뮤지션이다. 초기의 그의 연주 스타일은 재즈 연주의 백미라 할 트리오 양식의 발전에 기여했고,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한 그의 바리톤 보컬은 샘 쿡, 마빈 게이, 루더 밴드로스로 이어지는 소울 팝 가수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보컬 연주의 교과서’로 자리 메김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룩했던 위업을 지금껏 꾸준히 이어나가는 그의 딸이자 재즈 보컬 나탈리 콜(Natalie Cole)과 함께 한 ‘Unforgettable’(1994)로 탈바꿈 해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이미 세상에 안 계신 아버지와 딸의 목소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첨단 디지털 기술은 그 만의 독창적인 보컬 스타일은 지금에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며 많은 후배 보컬리스트들에 의해 여전히 계승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클래식을 얘기할 때 바하를, 팝을 논할 때 비틀스를 빼 놓을 수 없듯 재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다. 재즈에 문외한 사람일지라도 루이 암스트롱 이름을 대면 고개를 끄덕인다. 루이 암스트롱은 20세기의 대표적인 대중 음악 ‘재즈’를 정의한 거장이다. 백인 재즈 보컬 빙 크로스비(Bing Crossby)는 루이 암스트롱을 두고 ‘미국 대중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극... 클래식을 얘기할 때 바하를, 팝을 논할 때 비틀스를 빼 놓을 수 없듯 재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다. 재즈에 문외한 사람일지라도 루이 암스트롱 이름을 대면 고개를 끄덕인다. 루이 암스트롱은 20세기의 대표적인 대중 음악 ‘재즈’를 정의한 거장이다. 백인 재즈 보컬 빙 크로스비(Bing Crossby)는 루이 암스트롱을 두고 ‘미국 대중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극찬했다. 그의 코넷/트럼펫 연주는 ‘재즈 연주에 꽃’이라 할 즉흥 솔로(Improvisation)를 창안했다. ‘트럼펫 비르투오조 1호’로 칭송되는 그의 트럼펫 연주엔 떨림(비브라토)과 미끄러짐(글리산도)와 같은 클래식 연주 주법을 독창적으로 소화해 낸 천재성이 돋보인다. 뉴 올리안스의 무명악사 시절을 거쳐 1920년대 초부터 시카고와 뉴욕을 거점으로 암약하면서 1925년 자신이 리드하는 캄보(Combo-소규모 재즈 연주 편성)밴드 핫 파이브 앤 핫 세븐(Hot Five’& Hot Seven) 통해 본격적인 재즈의 서막을 온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 여정은 ‘재즈의 선구자’로만 국한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그 폭이 넓다. 그는 재즈의 천재 일뿐 아니라 팝의 제왕이자 만인의 사랑을 받는 엔터테이너였다.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리드미컬하게 구사하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개발, 재즈 보컬(Jazz vocal)의 길을 열어줬음은 물론이고 천재적인 트럼펫 연주 실력에 더해 그의 출중한 보컬 실력은 그를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가방만큼 크고 두터운 입술을 지녔다 하여 사치모(Satchmo)라는 애칭을 지녔던 루이 암스트롱은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입으로 끓어오르는 독특한 베이스 보컬(속칭 더티 톤)을 들려준다. 이런 그의 독특한 보컬 스타일은 재즈 보컬 빙 크로스비나 토니 베넷(Tony Bennet)을 비롯하여 1930-50년대 전설전인 재즈 디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창법에까지 영향을 준다. 국내에서도 ‘쾌지나 칭칭 나네’의 가수 김상국도 그 보컬을 흉내냈다. 천진 난만(?)한 웃음을 머금으며 청중을 압도할 만한 열정을 뿜어내는 무대 매너로 루이는 대중들에게 잊을 수 없는 넉넉함을 선사했다. ‘만능 재즈 맨’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1901년 재즈의 고향 뉴 올리안스(New Orleans)에서 태어난 루이 암스트롱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가 어머니인 메리 암스트롱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가출을 했고, 유복자로 태어난 루이는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길거리의 매춘부였던 어머니는 항상 집을 비워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 루이는 5살 때부터 생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스토리 빌(뉴 올리언즈의 재즈 음악인들의 활동 무대)의 홍등가를 지나다가 접한 재즈음악에 매료되어버린 어린 루이는 차츰 재즈라는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11살에 학교를 그만둬 그만 폭력을 일삼는 불량 써클에 가담, 1912년 신년 축하 행사 때 술에 취해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폭죽 대신 총을 쐈다는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 소년원에 있는 동안 브라스 밴드에 가입, 제1 코넷 주자로 활동하게 된다.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여기서 접한 코넷(트럼펫과 비슷하나 관이 약간 짧아서 수월하게 다룰 수 있는 악기) 연주는 루이로 하여금 음악을 소명으로 삼게 한다. 1914년 소년원에서 풀려나서 시카고로 이주, 노동자 생활을 하며 차츰 음악가로의 꿈을 키워간다. 광부로, 신문 배달부로, 청소부를 일을 전전해가며 그는 코넷을 사기 위해 돈을 마련해 갔다. 시카고에 여러 바를 전전하며 무명악사로 밑바닥을 기었다. 1918년 기회가 왔다. 당시 재즈의 왕으로 군림하던 킹 올리버(King Oliver)의 도움을 받아 루이는 올리버의 보조 밴드였던 키드 오리(Kid Ory) 밴드에서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일년 후인 1919년 루이는 시카고에 진출, 미시시피강을 따라 뉴 올리언즈와 세인트루이스 사이를 운행하던 증기선에서 백인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한 페이트 매러블(Fate Marable) 밴드에서 3년 간 코넷 주자로서 내공을 다진다. 1922년 루이 암스트롱은 드디어 재즈 연주자로서 날개를 단다. 평소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재즈의 왕’ 조 킹 올리버는 그가 이끄는 크레올 재즈 밴드(Creole Jazz Band) 밴드의 코넷 주자로 그를 가입시킨다. 크레올 재즈 밴드의 정식 멤버 자격으로 루이는 1923년 시카고에서 첫 레코딩을 한다. ‘Chimes blues’(1923), ’Lonesome weary blues’(1923) 등 10여 곡의 싱글 녹음을 통해 독특한 음색의 코넷 연주가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루이는 피아노 주자 릴리언 하든(그의 두 번째 부인이며 그는 일생동안 4명의 부인을 맞는다)의 권유로 크레올 밴드를 탈퇴, 이듬해인 1924년 뉴욕으로 진출해 플레처 핸더슨(Fletcher Henderson) 밴드에 제1 트럼펫 주자로 활동한다. 1925년 솔로로 독립, 악기를 코넷에서 트럼펫으로 바꾸고 자신의 밴드 핫 파이브 앤 핫 세븐(Hot Five & Hot seven)을 출범시킨다. 재즈 인디 레이블 오케이(Okeh)레코드 사와 계약, 스캣(scat)의 매력이 넘치는 ‘Heebie jeebies’(1926)를 비롯하여, ’Cornet’(1926), ’Big butter & egg man’(1926), ’Ski-dat-de-dat’(1926), ‘Willie the weeper’(1927), ’Potato head blues’(1927), ’I’m not rough’(1927)를 통해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재즈 연주를 선보이며 일약 재즈음악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1928년 ‘핫 파이브 앤 세븐’을 해체, 자신의 빅 밴드 루이 암스트롱 앤 히스 오케스트라(Louis Armstrong And His Orchestra)’를 결성, ‘Mahogany hall stomp’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1929년 ’Sweet heart on parade’를 발표하며 스윙 밴드 리더로서의 여정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재즈 보컬리스트로서도 활약이 눈에 띄는데, 이미 1927년 ‘핫 파이브 & 세븐‘시절 여성 보컬 메이 엘릭스와 듀엣으로 부른 ’Big butter & egg man’으로 팝 차트에 진출한 루이는 1931년 미쉘 페리시가 작사한 미국의 영원한 스탠다드 명곡 ‘Stardust’를 발표,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1930년대는 루이 암스트롱의 전성기였다. ‘I gotta right to sing the blues’(1933), ’Struttin’ with some barbecue’(1938) 등 클래식스(Classics)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그의 빅 밴드 싱글들은 동시대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악단,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악단에 필적할 만한 대중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1944년 흑인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링컨 센터에서 공연했으며 이어 할리우드에 진출,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하며 < 랩소디 인 블랙 & 블루 >(1933)와 1956년의 < 상류사회 >(High Society) 등의 작품을 남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스윙의 열풍은 비밥(Bebop)의 혁명으로 인해 재즈의 중심에서 차츰 언저리로 몰리고 있었다. 스윙을 부정하며 비밥에 물결에 동참한 젊은 재즈음악인들로부터 루이는 ‘엉클 톰’(백인에게 굴종하는 흑인) 식의 비난의 화살을 감내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무렵 슬럼프를 맞게 된다. 빅 밴드 활동이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음을 느낀 루이는 결국 빅 밴드를 해체시키고 데카(Decca)레이블로 이적하며 초기의 소 편성 악단의 구성을 한 올 스타즈(All Stars)를 출범시킨다(이후 올 스타즈는 맴버를 교체해 가며 그가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 194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데뷔 공연을 가지며 예전보다 활발한 월드투어를 갖는다. ‘High society’(1948), ‘That’s a plenty’(1949), ‘Basin street’(1947), ‘Dippermouth blues’(1947) 등을 히트시키며 1951년에는 투어 실황을 녹음해 발표한 라이브 앨범 < Satchmo At Symphony Hall >을 발표해, LP차트 10위권에 오른다. 같은 해 루이의 히트 송 ‘(When we are dancing) I get ideas’와 ‘A kiss to build a dream on’이 담긴 더블 사이드 싱글을 발표, 이듬해인 1952년 처음으로 싱글 양면이 모두 톱10을 기록한다. ‘A kiss to build a dream on’은 영화 < The Strip >에서 루이가 직접 불렀던 곡인데, 멕 라이언이 주연한 1993년 영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에 다시 삽입돼 화제를 모았다. 1954년 데카와 재계약을 앞두고 루이는 독점 계약 대신 프리랜서를 선언한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은 다른 음반사를 통해서도 발표되는데, 당대 재즈 명인들과의 협연 앨범들이 눈에 띈다. 1920년대 스트라이드 피아노 대가 팻츠 월러(Fats Waller)에게 헌정하는 < Satch plays Fats >를 1955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발표해 톱10을 기록했고, 재즈 보컬 엘라 핏제럴드와 호흡을 맞춘 명반 < Ella & Louis >를 1956년 버브 레코드사에서 공개한다. 흑인 공민권 운동이 시작될 무렵인 1956년, 백인 공립학교에 흑인 학생이 군인의 호위를 받고 등교하는 리틀 록(Little Rock)사건을 두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를 ‘위선자’라 비난한 사건이 신문으로 보도되면서 루이는 잠시동안 FBI의 감시를 받으며 ‘요시찰 인물’이라는 불명예를 겪기도 한다. 가뜩이나 나빠진 건강은 1959년 이태리 공연도중 심장 발작으로 잠시 병원 신세를 지게 끔 한다. 이런 악조건을 딛고 루이 암스트롱은 1960년대에도 여전히 ‘제2전성기’라고 할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1963년 12월, 브로드웨이 뮤지컬 < 헬로 돌리 >(Hello Dolly!)의 타이틀곡으로 미국을 침공한 비틀스의 ‘Do you want to know a secret’를 따돌리며 당당히 팝 차트 정상에 등극한다. ‘Hello dolly!’는 1964년 내내 팝 차트 5위권을 고수하며 이듬해 그에게 그래미상 보컬 퍼포먼스부문 수상의 영광도 안겨주었다. 이 곡에 이어 4년 후인 1968년 ‘What a wonderful world’로 루이는 다시 한번 노익장을 과시한다. 평소에 자신이 추구한 팝(pop)음악에 대한 철학을 담아낸 이 곡은 영국에선 발표 즉시 차트1위를 차지했지만 정작 본토 미국에선 별 반응이 없다가, 1987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 < 굿모닝 베트남 >의 배경음악으로 주목받으면서 뒤늦게 톱40에 오른다. 넉넉한 그의 보컬이 멋진 선율과 어우러진 이 곡은 그 무렵 만화가 이현세가 출연한 모 맥주광고 CF에 깔려 국내에서도 광풍을 일으켰다. 그의 마지막 히트 곡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과 함께 루이는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서 은퇴한다. 그와 함께 정확히 7주 후인 1971년 3월15일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했고, 7월 6일 뉴욕 롱아일랜드의 코로나 소재 자신의 집에서 70세를 일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다. 루이 암스트롱처럼 재즈와 팝이라는 별개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사람도 드물다. 1920-30년대 초기재즈에서 스윙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연주 스타일을 제시했던 선구자 루이 암스트롱은 이에 더해 대중들과 함께 울고 웃을 줄 알았던 진정한 팝 스타였다. 사실 재즈라는 장르에 집착하는 팬들은 그가 보여준 엔터테이너 기질에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쿨(cool)의 혁명가 마일즈 데이비스도 자서전에서 “루이의 뛰어난 즉흥 연주엔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의 익살스러운 무대매너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피력할 정도였다. 하지만 루이는 50년을 넘게 연주 생활을 해온 재즈맨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가 음악 대중들을 위한 ‘팝’에 천착한 사실은 당연하다. 루이는 음악에 있어서 순수한 지향을 잃지 않았고,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고 좋아해 줄 청중을 찾아 나서길 원했다. 그의 음악이 꿈꾼 최종 지향점이란 바로 ‘What a wonderful world!’라고 까지 칭송한 팝(pop)이었던 셈이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팝의 세계에 안긴 한 재즈 거장의 허심탄회한 고백은 명언으로 남아있다. ‘그래 팝이 옳았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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