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 소개
『전쟁론』은 프로이센의 전쟁 이론가인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책으로 1832~1834년에 세 권으로 출판되었다. 『전쟁론』은 명실상부 정치사상, 국제정치, 전쟁철학, 군사학 분야의 최고의 고전이다. 이 책 『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을 쓴 김만수는 『전쟁론』 세 권뿐만 아니라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의 『저작집』 세 권의 독일어 원전 초판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국내 클라우제비츠 연구의 권위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전쟁론』은 설명문이지, 논설문이 아니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계속’이라는 명제는 정치를 계속하려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전쟁론』을 논설문으로 읽을 때 이런 오해가 발생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무엇을 설명한 것인가? 『전쟁론』이 탄생하게 된 역사정치적 배경은 무엇인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학계에서, 특히 한국의 학계에서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가? 한국에서는 클라우제비츠를 누가 언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가? 전쟁의 양상이 클라우제비츠의 시대와는 많은 부분 달라진 우리 시대에 『전쟁론』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에서 저자는 방대한 문헌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들에 답한다. 이 책은 대략 지난 60년 동안(1956~2018년) 클라우제비츠와 『전쟁론』이 한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수용, 유포, 계승) 연구하고 정리한다.
태초에 프랑스혁명이 있었다
『전쟁론』이 설명문이라면 『전쟁론』은 무엇을 설명하는 책인가? 이 책에 따르면『전쟁론』을 이해하는 데는 프랑스혁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쟁론』은 프랑스혁명, 혁명전쟁, 나폴레옹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혁명에 반대하는 유럽 앙시앵 레짐의 군주들이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고, 프랑스는 공화정을 수호하려고 전쟁을 수행했다.
프랑스혁명 이전 18세기의 프로이센은 생존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투쟁했다. 유럽의 4대 강국(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체제에서 살아남으려고 오스트리아와 7년전쟁을 벌였다. 프랑스혁명을 전후한 전쟁, 즉 주로 18세기 중반의 7년전쟁과 19세기 전후의 혁명전쟁과 나폴레옹전쟁을 연구, 관찰, 경험하고 전쟁의 현상, 성질, 변화를 분석하여 전쟁의 본질을 밝힌(설명한) 책이 『전쟁론』이다. 『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의 저자에 따르면 서구세계는 지난 160년 이상(1830년대~1990년대) 『전쟁론』을 ‘논설문’으로 오해하고 왜곡하였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전쟁론』을 올바르게 이해했다.
도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은 ‘전쟁’ 중이다. ‘코로나 사태’로 1년 가까이 수많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생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추미애와 윤석열 사이에, 정부와 검찰 사이에, 선출된 권력과 ‘시험’ 권력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다. “법적 분쟁은 평상시의 ‘전쟁’이다”라고 말한 클라우제비츠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960년의 4?19혁명, 1970~1980년대 반유신투쟁과 민주화운동,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1987년의 민주화대투쟁, 2008년의 촛불시위, 2016~2017년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민중과 시민이 싸워온 ‘전쟁’이 있다. 남북관계는 어떤가? 대외적으로는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있었지만, 현재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 사이에 끼어 있다. 국민도, 남북한도, 미국과 중국도, 한국 정치도 ‘전쟁’ 중이다.
전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와 같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망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의 ‘전쟁’ 현상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 김만수에 따르면 『전쟁론』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전쟁론』은 프랑스대혁명, 혁명전쟁, 나폴레옹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했는데, 이런 전쟁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과 성격이 다르고 더 큰 전쟁이었다. 혁명과 전쟁, 내전과 국가 간의 전쟁이 같이 일어났다. 이 책에 따르면 프랑스대혁명, 혁명전쟁, 나폴레옹전쟁을 연구한 후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집필했고, 전쟁을 움직이는 힘이 ‘정치’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연구의 끝에 탄생한 말이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계속이고,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라는 유명한 명제이다.
『전쟁론』은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또 오해되어 왔는가?
한국에서는 클라우제비츠 연구가 시작된 지 60년이 지났다. 『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은 한국 사회가 『전쟁론』과 클라우제비츠를 어떻게 독해해 왔고 어떤 점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는지, 무엇을 오해했는지에 천착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2016년 『전쟁론』 전 3권 전면개정완역판의 출판이 한국 클라우제비츠 연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대략 지난 60년 동안(1956~2018년) 『전쟁론』과 클라우제비츠가 한국에 어떻게 수용, 유포, 계승되었는지 연구한다. 클라우제비츠와 관련된 텍스트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각 텍스트의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클라우제비츠 연구의 현황과 수준을 정리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쟁론』 번역의 많은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전쟁론』의 일어 중역과 영어 중역에서 생기는 오역이 상당히 많은데, 이런 오역은 『전쟁론』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전쟁론』 자체의 번역뿐만 아니라 『전쟁론』과 관련된 많은 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영어번역인데, 그래서 이 영어번역들이 인용하는 『전쟁론』은 자동으로 영어중역이 되고, 여기에서 생기는 오역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는 오역의 문제 다음으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에 관한 오해와 왜곡의 문제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세계에서도 『전쟁론』이나 클라우제비츠를 오해하고 왜곡한 해석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해석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전쟁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국내 많은 연구자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절대전쟁을 관념상의 전쟁으로 이해한다.”(680쪽)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클라우제비츠는 절대전쟁의 개념을 ‘최근의 전쟁 현상’에서 끌어냈고, 클라우제비츠에게 ‘최근의 전쟁’은 프랑스혁명전쟁과 나폴레옹전쟁이었다. 또 하나의 예로서 저자는 국내 많은 연구자들이 클라우제비츠의 Dreifaltigkeit를 ‘삼위일체’로 새기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것은 번역상에서도 오류이고, 클라우제비츠의 이론 체계에 비추어보았을 때도 오류이기 때문에 ‘삼중성’으로 새겨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693쪽 이하)
클라우제비츠와 『전쟁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책
이 책을 통해 저자는 ‘20세기 한국문학사’ 또는 ‘20세기 한국건축사’처럼 ‘한국 클라우제비츠 60년 연구사’를 의도했다. 저자 김만수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의 거의 모든 한국어 번역서들을 비평하였고, 『전쟁론』을 중심으로 한 국내외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저작, 논문, 서평 등 다양한 연구물들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저자는 또 모든 길목에 상세한 참고문헌을 밝혀주었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은 군사학, 국제정치학 분야의 연구자는 물론이고 클라우제비츠와 『전쟁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는 『전쟁론』이라는 고전, 클라우제비츠라는 사상가가 6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어떤 좌표들을 거치며 움직여 왔는지, 현재는 어디에 와있는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돈된 연구사는 클라우제비츠의 치열한 체험과 연구의 성과를 화석화하지 않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쟁론』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지를 독자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끔 돕는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4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저작집』 번역」에서는 클라우제비츠의 『저작집』 세 권(『전쟁론』과 그 「부록」)의 우리말 번역을 살펴보고 있다.
제2부 「『전쟁론』과 관련된 번역」은 『전쟁론』 이외에 『전쟁론』과 관련된 여러 번역을 살펴보고, 이 번역이 『전쟁론』을 어떻게 이해하거나 오해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또한 클라우제비츠 연구에서 번역해야 할 만한 저서와 논문을 언급했다.
제3부 「한국 저자들의 클라우제비츠 연구」는 한국의 연구자들이 『전쟁론』과 클라우제비츠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분석했다. 연구자별로, 주제별로, 시기별로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를 살펴보았다. 전쟁을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클라우제비츠를 어떻게 이용하고 적용했는지도 살펴보았다. 제3부는 한국 저자의 저술을 살펴보고 제2부는 외국 저자의 저술을 (그래서 번역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제3부 끝에 ‘한국 클라우제비츠 연구의 현주소’를 정리했다.
제4부 「김만수의 클라우제비츠 연구」는 제3부의 분석 결과로 나온 글이다. 달리 말해, 제4부는 애초에 이 책의 구상에 없었다. 제4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클라우제비츠에 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나 불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점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해석을 실었다. 이 해석으로 저자는 『전쟁론』과 클라우제비츠를 올바르게 이해할 단초를 마련했다.
제2부~제4부 끝에 각 부와 관련되는 글을 ‘여담’으로 실었다. 3개의 여담에서는 마르크스, 헤겔, 박정희를 직접 다루지도 않고 본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 짧고 간략하게 그들과 클라우제비츠의 관련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여담’이다. ‘여담 - 클라우제비츠와 박정희’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이 ‘인물 분석’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