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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대 인기 히트곡 60 (60 hits of the 60s)

[ 3CD ]
Carole King, Del Shannon, The Four Seasons, Chris Montez, Peter, Paul & Mary 노래 외 5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Not Now / Not Now | 2020년 12월 2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4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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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대 인기 히트곡 60 (60 hits of the 60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0년 12월 21일

관련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Love Me Do - The Beatles
  • 02 Surfin’ Safari - The Beach Boys
  • 03 It Might Well Rain ‘til September - Carole King
  • 04 Runaway - Del Shannon
  • 05 Sherry - The Four Seasons
  • 06 Let’s Dance - Chris Montez
  • 07 Apache - The Shadows
  • 08 If I Had A Hammer - Peter, Paul & Mary
  • 09 Shout - The Isley Brothers
  • 10 Twistin’ The Night Away - Sam Cooke
  • 11 He’s A Rebel - The Crsytals
  • 12 Green Onions - Booker T & The M.G.s
  • 13 Hey Baby -Bruce Channel
  • 14 Shop Around - Smokey Robinson & The Miracles
  • 15 Big Bad John - Jimmy Dean
  • 16 Dedicated To The One I Love - The Shirelles
  • 17 Hurt - Timi Yuro
  • 18 The Lion Sleeps Tonight - The Tokens
  • 19 The Wanderer - Dion
  • 20 Walking Back To Happiness - Helen Shapiro
Disc2
  • 01 Only The Lonely - Roy Orbison
  • 02 The Loco-Motion - Little Eva
  • 03 Cryin’ In The Rain - The Everly Brothers
  • 04 Runaround Sue - Dion
  • 05 The Young Ones - Cliff Richard & The Shadows
  • 06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 The Shirelles
  • 07 Don’t Make Me Over - Dionne Warwick
  • 08 Hello Mary Lou - Ricky Nelson
  • 09 The Twist - Chubby Checker
  • 10 Take Five - Dave Brubeck Quartet
  • 11 Please Mr. Postman - The Marvelettes
  • 12 Spanish Harlem - Ben E. King
  • 13 James Bond Theme - John Barry Seven
  • 14 What Do You Want - Adam Faith
  • 15 Stubborn Kind Of Fellow - Marvin Gaye
  • 16 Running Bear - Johnny Preston
  • 17 Walk Don’t Run - The Ventures
  • 18 Ya Ya - Lee Dorsey
  • 19 Hallelujah I Love Her So - Stevie Wonder
  • 20 I Can’t Stop Loving You - Ray Charles
Disc3
  • 01 Hit The Road Jack - Ray Charles
  • 02 Crazy - Patsy Cline
  • 03 Surfin’ - The Beach Boys
  • 04 Telstar - The Tornadoes
  • 05 Sealed With A Kiss - Bryan Hyland
  • 06 Big Girls Don’t Cry - The Fours Seasons
  • 07 Chain Gang - Sam Cooke
  • 08 Running Scared - Roy Orbison
  • 09 Stranger On The Shore - Acker Bilk
  • 10 I Remember You - Frank Ifield
  • 11 Monster Mash - Bobby ‘Boris’ Pickett
  • 12 Shakin’ All Over - Johnny Kidd & The Pirates
  • 13 Stand By Me - Ben E. King
  • 14 Rhythm Of The Rain - The Cascades
  • 15 Stay - Maurice Williams & The Zodiacs
  • 16 Island Of Dreams - The Springfields
  • 17 Nut Rocker - B Bumble & The Stingers
  • 18 Sweet Nothin’s - Brenda Lee
  • 19 House Of The Rising Sun - Bob Dylan
  • 20 Save The Last Dance For Me - The Drifters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0명)

< Tapestry >로 1970년대 단일 뮤지션 최다 판매 앨범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캐롤 킹(Carole King)은 팝 역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캐롤 킹(본명: Carole Klein)은 1942년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4살 때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그녀는 유년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 시절 ’코사인스(Co-Sines)’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 Tapestry >로 1970년대 단일 뮤지션 최다 판매 앨범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캐롤 킹(Carole King)은 팝 역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캐롤 킹(본명: Carole Klein)은 1942년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4살 때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그녀는 유년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 시절 ’코사인스(Co-Sines)’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활동 초기에 가수보다는 작곡가로서 활동하는데 전념했다. 록앤롤과 포크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50년대 말엽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그 흐름을 주도했다. 닐 세다카(Neil Sedaka), 게리 고핀(Gerry Goffin)등의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1959년 닐 세다카는 그녀를 모델로 한 노래 ’Oh, Carol!’을 히트시켰으며 게리 고핀은 캐롤의 첫 남편이 되었다. 캐롤과 게리 고핀은 ’브릴 빌딩(Brill Building)’이라는 대중음악 작곡 클럽을 만들어 많은 노래들을 만들어 내었으며, 여기서 연유하여 당시 이들의 음악을 ’브릴 빌딩 팝(Brill Building Pop)’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1961년 미국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셔를스(The Shirelles)’에게 차트 정상을 밟은 ’Will you love me tomorrow’를 만들어 주었으며, 바비 비(Bobby Vee)에게 준 ’Take care of my baby’도 정상을 밟았다. 최고의 작곡 듀오로 자리한 이들은 이후 100여 곡에 이르는 히트곡을 만들어 내었는데 리틀 에바(Little Eva)의 ’The locomotion’, 쉬퐁스(The Chiffons)의 ’One fine day’, 몽키즈(The Monkees)의 ’Pleasant valley sunday’, 드리프터스(The Drifters)의 ’Up on the roof’, 쿠키즈(The Cookies)의 ’Chains’(비틀즈에 의해 한 번 더 불리어졌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크리스탈스(The Crystals)의 ’He hit me (And it felt like a kiss)’와 같은 주옥같은 곡들이 모두 이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이들은 이혼과 함께 음악 활동에서도 결별을 선언하였고, 캐롤은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던 찰스 라르키(Charles Larkey)를 두 번째 남편으로 맞아들인다. 이들은 대니 코치마(Danny Kortchmar)를 끌어들여 ’더 씨티(The City)’라는 트리오를 결성하고 < Now That Everything’s Been Said >를 발표하였는데 캐롤의 무대 기피로 인해 홍보에 실패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실패하고 만다. ’더 씨티’ 시절의 음악은 이후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다시 히트했는데 버즈(The Byrds)가 ’Wasn’t born to follow’를 다시 불렀고, 블러드 스웻 앤 티어스(Blood Sweat & Tears)가 ’Hi-De-Ho’를,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You’ve got a friend’를 히트시켰다. 1970년 캐롤 킹은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1970년 발표한 그녀의 데뷔 앨범 < Writer >는 실패했지만 1971년 발표한 < Tapestry >는 캐롤 킹을 1970년대 최고의 여가수, 팝 사상 여성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만들어주게 된다. 이 앨범은 당시 급작스럽게 증가한 독신자, 이혼부부들의 고독과 소외감을 달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앨범은 1975년까지 1,500만장이 팔려 나갔으며 15주간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무려 6년 동안 차트에 머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은 1970년대를 통틀어 세 번째로 많이 팔렸으며 솔로 뮤지션의 앨범으로는 197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자리했다. 앨범 수록곡 중 ’So far away’와 ’It’s too late’가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제임스 테일러가 먼저 불러 히트시킨 ’You’ve got a friend’, 셔를스가 히트시킨 ’Will you love me tomorrow’, 아레사 프랭클린이 히트시킨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이 작곡자인 그녀의 목소리로 다시 실려 큰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1971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최우수 팝 여성가수’, ’It’s too late’으로 ’올해의 레코드’, ’You’ve got a friend’로 ’올해의 노래’까지 4개 부문을 수상했다. 1970년대 싱어송라이터 붐의 선두에 자리한 그녀는 1971년작 < Music >을 다시 한 번 차트 정상에 올렸으며 ’Sweet seasons’를 히트시켰다. 1972년작 < Rhymes And Reasons >도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1974년작 < Wrap Around Joy >는 ’Jazzman’이 차트 정상에 오른데 힘입어 앨범도 정상을 밟았다. 1976년에는 전 남편이자 음악적 동반자였던 게리 고핀과 다시 손을 잡고 < Thoroughbred >를 발표하여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1977년 < Simple Thing >을 발표한 후 작곡 동료였던 릭 에반스(Rick Evans)를 세 번째 남편으로 맞아들이지만 릭 에반스는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결혼 1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80년 고핀과 작업했던 곡들을 모아서 내놓은 < Pearls >를 히트시킨 후 그녀는 산골 마을인 아이다호(Idaho)로 들어가 환경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1983년 < Speeding Time >, 1989년 < City Streets >, 1993년 < Colour Of Your Dream >을 발표하는 등 간간이 앨범을 내어놓고 있지만 현재 가수로서보다는 뮤지컬 작곡가나 후배 뮤지션들의 작곡가, 프로듀서로 더 많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셀린 디욘(Celine Dion)등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녀는 많은 여성 뮤지션들에게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1999년에는 그녀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아레사 프랭클린, 머라이어 캐리, 샤냐 트와인(Shania Twain), 셀린 디욘,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등 쟁쟁한 여가수들이 ’You’ve got a friend’를 함께 노래하며 그녀에 대한 존경의 뜻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노래 : Del Shannon (델 섀넌,Charles Weedon Westover)
락앤롤, 컨트리 가수 락앤롤, 컨트리 가수
멤버 :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si:1935∼) 1961년 뉴저지주(州) 뉴어크에서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 멤버 :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si:1935∼)

1961년 뉴저지주(州) 뉴어크에서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si:1935∼)가 모여 결성했다.

1962년 《셰리 Sherry》를 시작으로 5년 동안 무려 25곡이 히트했다. 버라이어톤스(Varietones)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으며, 포 러버스(Four Lovers)로도 알려졌다. 리드싱어 프랭키 볼리의 높은 가성으로 잘 알려졌으며,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두왑에 기반을 둔 화음 중심의 보컬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프로듀서 보브 크루(Bob Crewe)와 함께 베이스 연주자 가우디오가 주로 작곡을 맡아 리듬앤드블루스와 로큰롤의 히트곡을 냈다. 인기순위 톱 10에 기록된 히트곡으로는 《빅 걸스 돈트 크라이 Big Girls Don’t Cry》(1962), 《워크 라이크 어 맨 Walk Like a Man》(1963), 《돈 (고 어웨이) Dawn (Go Away)》(1964), 《레츠 행 온! Let’s Hang On!》(1965) 등이 있다. 3옥타브에 이르는 음역의 소유자였던 볼리는 솔로로도 활동하여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오브 유 Can’t Take My Eyes Off of You》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나 1970년대 중반 볼리가 《마이 아이스 어도어드 유 My Eyes Adored You》 《그리스 Grease》 등의 싱글을 발표하여 인기순위 1위에 올랐고, 그룹은 《후 러브스 유 Who Loves You》와 《디셈버 1963 (오 홧 어 나이트) December 1963 (Oh What a Night)》가 히트하여 한때 인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미국 기타 연주자, 가수 미국 기타 연주자, 가수
노래 : Peter, Paul & Mary (피터, 폴 앤 매리)
혼성 트리오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 Mary)는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포크로 밥 딜런(Bob Dylan)과 또 다른 형태의 포크 붐을 주도했다. 인권과 반전이라는 모던 포크의 기본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멜로디와 화음, 맑고 서정적인 보컬로 기존의 팝 음악과 맥을 같이했던 이들의 음악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le) 이전까지 대중들로부터... 혼성 트리오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 Mary)는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포크로 밥 딜런(Bob Dylan)과 또 다른 형태의 포크 붐을 주도했다. 인권과 반전이라는 모던 포크의 기본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멜로디와 화음, 맑고 서정적인 보컬로 기존의 팝 음악과 맥을 같이했던 이들의 음악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le) 이전까지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포크 그룹으로 자리했다. 1950년대 후반,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피터 야로우(Peter Yarrow)는 밥 딜런(Bob Dylan)과 더 밴드(The Band)의 매니저로 활약하게 되는 알버트 그로스맨(Albert Grossman)과 인연을 맺어 포크 리바이벌의 선구자인 더 위버스(The Weavers)를 음악적 모델로 삼은 포크 그룹을 만들게 된다. 1961년 그로스맨의 주선으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던 노엘 폴 스투키(Noel Paul Stookey)와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폴과 친구로 지내던 여성 보컬리스트 메리 트래버스(Mary Travers)가 합세하여 세 멤버의 이름을 딴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 Mary)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의 출발은 순탄했다. 유능한 매니저 덕분에 데뷔와 동시에 메이저 레코드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체결했고, 1962년에는 데뷔 앨범 < Peter, Paul And Mary >가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 성공을 거두었다. 현대 포크의 아버지 피트 시거(Pete Seeger)의 노래를 재해석한 ‘If I had a hammer(10위)’와 국내에서 이들의 대표 곡으로 자리한 ‘Lemon tree(35위-풀스 가든의 노래와 다른 곡)’ 뿐만 아니라 ‘500 miles’,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Cruel war’ 등 대부분이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성과로 이들은 그 해 그래미에서 최우수 포크 부문과 최우수 팝 그룹의 2개 부문을 수상했다. 데뷔 앨범의 성공은 이들의 디스코그라피를 빠르게 늘렸다. 1963년에는 < Move >와 < In The Wind > 두 장이 각각 앨범 차트 2위와 1위에 오르며 거침없는 인기 행진을 이었다. < Move >에서는 우리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조승우의 테마로 사용된 ‘Gone the rainbow’와 포크의 전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This land is your land’가 수록되어 있으며, ‘Puff (The magic dragon)’이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했다. < In The Wind >에서는 밥 딜런의 원곡을 커버한 ‘Blowin’ in the wind(2위)’, 그리고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이 되는 또 다른 밥 딜런의 작품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9위)’도 탑 텐에 올랐다. 두 LP도 피터 폴 앤 매리에게 그래미 최우수 포크 상과 최우수 팝 그룹 트로피를 다시 한 번 안겨 주었다. 1965년, 11위에 오른 음반 < See What Tomorrow Brings >에서는 ‘Early mornin’ rain(91위)’ 등이 인기를 얻었고, 8위에 오른 < A Song Will Rise >에서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언플러그드에서 부르기도 했던 블루스의 고전 ‘San Francisco bay blues’와 ‘For lovin’ me(30위)’ 등이 사랑 받았다. 1966년에는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Cruel war(52위)’가 반전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다시 한 번 차트에 등장했으며, 이듬해에는 ‘I dig rock and roll music(9위)’으로 포크의 명맥을 이어갔다. 1969년도 앨범 < Peter, Paul And Mommy >에서는 강한 느낌이 묻어나는 ‘Day is done(21위)’이 인기를 누렸으며, 존 덴버(John Denver)가 작곡한 ‘Leaving on a jet plane’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 곡은 1999년 영화 < 아마게돈 >의 사운드트랙에 캐나다의 여성 싱어 송라이터 섄탈 크레비아젝(Chantal Kreviazuk)의 음색으로 담겨 있어 신세대 음악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혼란스런 미국 사회를 음악으로 표현한 사이키델릭과 블루스, 그리고 하드록이 1960년대 후반부터 전면으로 부각되자 이들의 인기는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 Peter, Paul And Mommy >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0년에 해산을 선언했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메리, 야로우의 재혼, 그리고 가스펠 음악으로의 전환을 원했던 폴 등, 각 멤버들의 개인 사정이 ‘삼인조’ 활동을 부담스럽게 한 공식적인 이유였다. 해체한지 8년만인 1978년에 피터와 폴, 그리고 매리는 < Reunion >이라는 앨범을 선보이며 재결합을 선언했다. 1960년대와 같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변함 없는 공연 활동으로 음악 팬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아늑함을 채워주고 있다.
노래 : Isley Brothers (아이슬리 브라더스)
흑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힘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음악여정을 걸어왔다는 점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보컬 팀워크와 하모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로맨틱한 R&B 발라드와 가스펠, 소울, 펑크(Funk)에 이르는 흑인 장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형제그룹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 흑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힘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음악여정을 걸어왔다는 점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보컬 팀워크와 하모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로맨틱한 R&B 발라드와 가스펠, 소울, 펑크(Funk)에 이르는 흑인 장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형제그룹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원래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드 싱어인 로날드 아이슬리(Ronald Isley)를 중심으로 루돌프(Rudolph), 오켈리(O’Kelly), 베론(Vernon)의 가스펠 쿼텟(quartet)으로 구성된 보컬 밴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955년 자전거 사고로 베론이 사망하자 아이슬리 형제는 트리오 라인업으로 팝 계의 첫 출발을 내디뎠다. 데뷔 초기 고향을 등지고 뉴욕으로 이주해 두-왑(doo-wop) 레코드를 녹음하며 활동에 포문을 연 그룹은 1959년 가스펠 송 ‘Shout’가 팝 차트에서 톱 40의 놀랄만한 성과를 올리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1962년 R&B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한 ‘Twist and shout’(비틀즈가 커버한 곡), 1966년 스매시 히트 싱글 ‘This old heart of mine (Is weak for you)’(팝 차트 12위, 이듬해 영국차트 3위) 등이 성공가도의 대표적인 열쇠였다. 이후 그룹은 수많은 음반을 레코딩하면서 소울과 R&B뿐만 아니라 펑크와 록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는 바로 그룹의 혁명을 이끈 시기였다. 그 출발선상에 자리한 1969년 작품 < It’s Our Thing >(R&B앨범 차트 2위)부터 그룹은 줄 곳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 결국 1970년에 발표한 < Get Into Something >에서 R&B차트 톱 30에 랭크된 곡을 무려 여섯 곡이나 배출해내는 저력을 과시했고, 1971년 < Givin’ It Back >을 발표해 밥 딜런(Bob Dylan),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스페판 스틸스(Stephen Stills), 빌 위더스(Bill Withers), 닐영(Neil Young)의 곡들을 리메이크하며 주류 음악시장의 성공 궤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리 형제가 인기그룹으로 급부상한 1973년작 < 3 + 3 >(팝 앨범 차트 8위)은 제 2세대 아이슬리 브라더스를 형성한 시기였다.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 어니 아이슬리(Ernie Isley)와 베이스, 퍼커션 주자 마빈 아이슬리(Marvin Isley), 사촌 형제인 크리스 자스퍼(Chris Jasper)가 이 앨범부터 그룹에 새롭게 가입. 이때부터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6인 체제로 전성기가 끝날 무렵까지 10년 동안 멤버교체 없이 ‘가문의 영광’을 지속해나갔다. 결국 이들은 발표하는 앨범마다 골드와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장기간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룹의 진가가 발휘된 1975년 걸작 < The Heat Is On >는 아이슬리에게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라는 영광을 수여한 금자탑이었다. 더불어 1978년작 < Showdown >(팝 앨범 차트 4위)에 수록되어 R&B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Take me to the next phase (Part 1)’의 빅 히트로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룹은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맞이한다. 1976년 < Harvest for the World >(9위), 1977년 < Go for Your Guns >(6위), 1978년 < Showdown >(4위) 등의 발표하는 음반마다 그룹은 매번 R&B앨범 차트 정상을 점령했고, 여러 싱글 히트곡들로 R&B차트를 힘차게 꿰찼다. 흑인음악계의 많은 후배들이 아이슬리 브라더스를 존경하게된 결정적 배경이 바로 이 당시 축적되었다. 10여 년 간 지속적인 성공가도를 달린 그룹은 1983년 < Between the Sheets > 이후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며 침체기를 맞이한다. 어스 윈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같은 펑키(Funky) 사운드가 조금씩 무기력해질 시점에서 로맨틱 발라드 곡조로 일대 사운드의 변화를 꽤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전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1986년 심장마비로 오켈리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흑인 여성아티스트 안젤라 윈부시(Angela Winbush)를 작업 동료로 맞이해 그룹 재건에 나섰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팀을 떠났던 마빈, 어니와 재결합한 그룹은 그간 30년이 넘는 꾸준한 음악활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4년 뒤 1996년 < Mission to Please >(R&B앨범 차트 2위)는 R&B 크루너 키스 스웨트(Keith Sweat), 알 켈리(R. Kelly) 같은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해 젊은 감각으로 앨범의 빛을 더해주었다. 현재 그룹은 로날드와 어니의 듀오 체제를 구축해 기나긴 음악여정을 꾸준히 이어오며 2001년 < Eternal >(3위)을 발표해 다시금 팝 팬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그룹은 2003년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한 < Body Kiss >로 거의 30년 만에 차트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동시대 여러 아티스트들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달리하거나 팀의 해체를 맛보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 흑인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노장의 투혼을 아직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지나간 세월이 대가를 인정하는 법이다.
노래 : Sam Cooke (샘 쿡 ,Dale Cook)
소울음악을 거론함에 있어 샘 쿡의 위상은 매우 지대하다. 그는 흑백통합의 광맥이었으며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레코드비즈니스를 아울러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예술가이자 사업가로서 자신이 갈 인생길을 현명하게 개척해 갔던 것. 그만큼 당대 음악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위치는 물론 음반과 출판사를 소유하고 운영할 정도로 그의 관록은 실로 대단했다. 쿡은 그러한 가운데 사회문제에도 ... 소울음악을 거론함에 있어 샘 쿡의 위상은 매우 지대하다. 그는 흑백통합의 광맥이었으며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레코드비즈니스를 아울러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예술가이자 사업가로서 자신이 갈 인생길을 현명하게 개척해 갔던 것. 그만큼 당대 음악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위치는 물론 음반과 출판사를 소유하고 운영할 정도로 그의 관록은 실로 대단했다. 쿡은 그러한 가운데 사회문제에도 적극 동참했다. 인종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당시 흑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공민권운동에 열정을 불태운 그는 노래를 통해 흑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러한 그의 의욕적 활동에 흑인들 모두 지지를 보냈다. 사회활동가로서의 지지도는 장차 그에게 돌아올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다름 아니었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 갈등의 조정자로서 그리고 기성과 청춘의 세대적 통합자로서 그의 호소력은 당대의 다른 아티스트들을 모두 아우른 것이었다. 1931년 1월에 태어난 그는 목사인 아버지의 교회합창단에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시카고로 이주한 후 삼형제와 함께 그룹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대중음악의 흐름 또한 놓치지 않았다. 틴 하이웨이 큐씨스(Teen Hightway QCs)라는 성가대의 멤버였던 그는 1950년, 전국적 가스펠그룹 소울 스터러스(Soul Stirrers)에 합류했다. 6년여의 활동기간 중 ‘그의 옷자락을 만질 수만 있다면’(Touch the hem of his garment), ’당신에게 더 가까이‘(Nearer to thee), ’내겐 천국 이었어’(That’s heaven to me)와 같은 노래를 통해 흑인사회의 스타로 부상한 그는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종교와 흑인계를 넘어 더 많은 청중들에게 다가가는 게 그의 목표였기 때문. 소울 스터러스와 결별한 그는 1956년, 싱글 ‘사랑스러운’(Lovable)을 발표하며 진정한 자아 정체성 탐구를 위한 새로운 첫발을 내디뎠다. 195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중 하나가 된 이 곡과 함께 팝과 알앤비 차트 정상을 차지한 ’You send me’는 2백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가스펠과 팝 R&B 요소가 응집력 있게 혼합된 노래는 당시로선 선구적인 소울 음반이었다. 그는 또한 로맨틱한 발라드와 틴 팝 싱글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지속적인 인기를 확보했다. ‘감상적 이유 때문에’(For sentimental reasons), ’모두 차 차 차를 좋아해‘(Everybody loves to cha cha cha), ’겨우 16세‘(Only sixteen),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를 비롯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yday)에게 바치는 헌정앨범 < Tribute to the Lady >에 실린 노래들까지 당대를 대표할만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소속사인 킨 레이블에서의 한계를 느낀 그는 메이저 레이블로의 이적을 계획, 콜롬비아(Columbia), 데카(Decca)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3대 레이블 중 하나인 RCA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음반뿐 아니라 출판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해 왔던 그는 출판사 칵스 뮤직(Kags Music)과 레코드레이블 SAR을 설립해 뮤직비즈니스에 본격 착수했다. RCA에 둥지를 튼 쿡은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 싱글 ’한 사슬에 묶인 옥외 노동죄수들‘(Chain gang, 1960년 싱글2위)로 팝과 소울에 새 지평을 열었으며 블루스적인 로맨틱 ‘슬픈 분위기(Sad mood, 1960년 싱글29위), 목가적 로맨틱 소울 ’큐피드‘(Cupid, 1960년 싱글17위), 보통의 댄스넘버 ‘밤새도록 트위스트를 춰요’(Twistin’ the night away, 1962년 싱글9위), ’나의 집으로 그걸 가져오세요‘(Bring it on home to me, 1962년 싱글13위)’와 같이 다채로운 음악요소와 사회적 인식을 한데 엮어낸 곡들을 내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 곡들을 포함, 무려 13곡의 히트넘버가 2년간 차트를 장식했다. 틴에이저와 기성세대 그리고 흑인 전 세대에 걸쳐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그는 특히 백인 청취자들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가고자 했다. 흑인뮤지션에게 주로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자 했던 것. 1957년 초 뉴욕 코파(Copa)에서 연주를 통해 이를 실현코자 했던 그의 시도는 그러나 실패로 돌아왔다. 경험미숙이 문제였다. 1964년 그는 그러나 당당하게 클럽으로 컴백해 라이브실황을 녹음했고 그해 가장 정교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수확을 올렸다. 중년과 백인중산층만을 위한 무대가 됐다는 주위의 냉정한 평가가 뒤따르긴 했지만. 1963년 중반 쿡은 마이애미의 할렘 스퀘어 클럽에서의 공연과 실황을 담은 음반으로 자신의 진가를 확증했다. 흑인청취자들과 함께한 그는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열창하며 황홀한 연주무대를 통해 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멜로디와 직설적인 소울 감성이 적절히 어우러진 라이브 레퍼토리들은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라이브의 황제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963년 중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그의 어린 아들이 익사한 것. 쿡은 그해 말까지 깊은 시름에 잠겨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중단했다. 그 기간 동안 그러나 그는 비즈니스 매니저 앨런 클라인(Allen Klein)과 함께 재정적으로 그리고 음악활동을 위한 독립의 발판을 견고히 다졌다. 1963년 11월 초 마침내 그의 레코드들에 대한 최종 소유권을 확보했고 지휘감독권도 성취했다. 그가 다시 음반작업에 들어갈 즈음은 1960년대 초의 저항음악적 흥분과 열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을 때였다. 쿡은 흑인들을 포함해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치료제와 같이 작용한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Blowin’ in the wind’에 크게 감화되었다. 피터, 폴&메리도 그 한복판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커다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의식있는 아티스트들의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움직임에 그도 두팔 걷어부치고 나섰다. 샘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변화(의 시기)는 올 겁니다’(A change is gonna come)가 이때 나왔다. 공민권투쟁의 산물로 나온 가장 위대한 노래중 하나. 가스펠부터 팝까지 다양한 음악성향 안에서 탄생한 이 곡은 그의 가장 위대하고도 우아한 예술적 찬양가였다. 이 시기동안 그는 또한 싱글 ’Shake’ 를 통해 더 진보한 댄스 본위의 소울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 두 노래는 쿡의 음악여정에 새로운 가속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 다른 전성기를 알리는 장이 열리는 듯 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꿈과 희망은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1964년 11월 11일 이른 오후, 로스앤젤레스의 저급한 모텔에서 쿡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언쟁에 휘말려 모텔매니저의 총탄을 맞고 싸늘히 식어갔다. 정확한 사인은 규명되지 않고 미궁으로 남았다. 쿡의 죽음으로 흑인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애도의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65년에 발매된 싱글 ‘A change is gonna come‘과 < Sam Cooke At The Copa > 앨범이 그랬듯 싱글 ‘Shake’는 유작으로 사후 탑 텐 히트를 기록했다.
< 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 < 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와 조화를 향한 열정,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자연적 ‘감성’에 무게가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음악은 감성이 지성을 만든다. 비틀스가 그런 그룹이다. 비틀스는 바로 피와 땀으로 세계정복의 열매와 천재라는 칭송을 획득했다. 그들의 성공은 천재성 아닌 가혹한 고행의 결과물이다. 천재성도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것이다. 결코 하늘이 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존 레논과 폴이 만난 게 1957년이고 존이 ‘Hey little girl’을 쓴 게 1958년이며 가장 멋진 밴드명인 비틀스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도 1960년이다.

그들은 1964년 세계를 휘몰아치기 전 최소 4-5년 밑바닥생활을 했다. 이 점에서 비틀스는 그들이 꽃을 피운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호시절을 타고 졸속으로 결성된 다른 그룹들과는 종이 달랐다. 그들은 그동안 무수한 오디션 실패와 해외 투어로 연주력을 다졌으며 오로지 세계정복이란 목표를 위해 눈물과 배고픔을 삼켰다. 정말 그들 말대로 손이 아프도록 기타를 쳤고 목이 터져라 노래했다. 리버풀 캐번과 저 멀리 독일 함부르크 클럽을 왕래하며 연주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구촌 석권을 위한 숨가쁜 열정이자 가혹한 훈련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버풀에서 길러졌지만 함부르크에서 성장했다”는 존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영화 < 백비트 >에 잘 묘사되었듯 그들은 이곳 클럽무대에서 댄서들 뒤에서 반주를 했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집단 기식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당시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열심히도 챙겼다. 모르는 게 없었다. 1950년대 블루스와 로커빌리, 모타운 R&B, 틴 팬 앨리 팝, 라틴 음악 등 갖가지 계열의 곡들을 골라 커버 연주했다. 아이슬리 브라더스 ‘Twist and shout’, 스모키 로빈슨 ‘You really got a hold on me’, 캐롤 킹 ‘Chains’, 리틀 리처드 ‘Long tall Sally’, 척 베리 ‘Rock and roll music’ 등이 그 파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들의 독창적 스타일로 빚어낼 줄 알았다. 거기서 ‘Love me do’가 ‘From me to you’가 ‘A hard day’s night’가 ‘I feel fine’’이 나왔다.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길러낸 창조성, 이를테면 노력에 의해 축적된 내공의 폭발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남들 곡의 템포와 볼륨을 업그레이드했고 그 작업을 통해 이후 그들만의 코드 진행감각 즉 독자적 화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비평가 그렉 쇼(Greg Shaw)는 말한다. “비틀스는 단지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의 그리고 첫째가는 로큰롤 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헌신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감성에서 지성으로, 그리고 그 두 가지의 환상적 퓨전! 비틀스의 이 무명시절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이번에 나온 앨범 < The Beatles 1 >에서 초기 곡인 ‘Love me do’에서 ‘Help!’까지는 이 출발 이전의 워밍업 시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실상 비틀스 초기 작품은 이 준비기를 떼어놓고는 논할 수도 없다. 하긴 연습 없이 실전을 잘 치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비틀스는 나중 실전을 연습처럼 해야한다는 진리도 잊지 않았다. 제2부 < 지구촌 전체를 손에 넣다 > 1964년 2월7일 영국의 더벅머리 네 남자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순간, 세계의 음악역사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비틀매니아’의 시작. 그것은 이후 음악의 중심이 ‘젊은이들’과 ‘대중음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과 고전음악은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비틀스가 먼저 1963년 영국을 뒤흔들었을 때 그 광풍은 당시 내각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추문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도 잠재워버렸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정치 판에 관심을 깡그리 잊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온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비틀스가 오자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전국이 들썩들썩했다. 비틀스는 이처럼 정치 사회적 회오리마저 제압하는 엄청난 팝 폭발(pop explosion)현상이었다. 비틀스 초기 음악은 한마디로 경쾌한 로큰롤이었다. 1950년대 미국 로큰롤에 영국 특유의 셔플 리듬과 보컬 하모니를 덧입힌 스타일로, 강했으되 느낌은 밝았다. 기본 코드를 이용한 로큰롤만의 단순한 진행이었지만 1950년대의 로큰롤보다는 훨씬 템포도 빠르고 볼륨도 컸다. 본격적인 밴드중심 로큰롤의 개막이었다.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그들처럼 기타를 치고 드럼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비틀매니아 시대의 음악은 이처럼 ‘로큰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영국에서 1963년 ‘From me to you’는 7주간 1위에 오르면서 당시로 볼 때는 경이적인 65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것은 비틀스가 이후 발표한 11장의 싱글이 모두 정상에 오르는 ‘넘버원 퍼레이드’의 서막이었다. 다음 싱글 ‘She loves you’는 선(先)주문만도 31만장에 달하면서 영국에서만 16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 기록은 폴 매카트니의 1977년 ‘Mull of kintyre’에 의해 깨질 때까지 무려 14년 간 ‘영국 최고판매의 싱글’ 타이틀을 지켰다. 같은 해 12월 발표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She loves you’로부터 1위 자리를 승계하며 선주문 94만장에 총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들의 꿈이던 미국정복을 이룩해낸 곡도 바로 이 노래였다. 이 곡은 전미차트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1964년 미국에서 ‘Can’t buy me love’는 판매 신기원을 이룩했다. 선주문 170만장에 발매와 동시에 모두 200만장이 팔려나간 것이다(영국에서도 첫 주 122만6천장). 굳이 판매고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비틀스광풍을 설명하기에 그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공할 행진은 직접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 두 번째 영화에 삽입된 ‘Ticket to ride’ ‘Help!’로 이어진다. 이 때까지 넘버원 싱글 가운데 느린 곡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들은 당시 세대와 호흡하는 로큰롤의 대중성을 신뢰했다. ‘Help!’ 만해도 존 레논은 "원래 느린 곡조로 썼으나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 빠르게 불렀다"고 밝혔다. 그 속도감을 갖춘 로큰롤에 소녀들을 미치게 한 곡 중간의 함성 ‘yeah yeah yeah’(비틀스 시대의 상징어가 됐다)으로 그들은 영국의 침공을 견인하며 지구촌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성공하기 전 그들이 주로 커버했던 곡을 골라 녹음한 폴 매카트니의 1999년 앨범 < Run Devil Run >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I got stung’를 부른 경위에 대한 폴의 설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엘비스 레퍼토리는 아니었으나 인트로가 맘에 들었고 난 엘비스보다 조금은 더 난폭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터뜨리고 질러대는 로큰롤을 가지고 그들은 마침내 ‘최강의 로큰롤밴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비틀스는 더 나아가 ‘최강의 팝 밴드’가 되고자 했다. 그 비상을 알리듯 1965년 가을 때마침 현악 반주의 ‘Yesterday’가 나왔다. 제3부 < 거리의 록을 전당의 예술로 >(중기 비틀스) 엄밀히 말해서 로큰롤은 거리의 젊은이들 음악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그것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어른들이 듣는 이전의 스윙 재즈와 스탠더드 팝 발라드와 완전히 ‘분리와 독립’의 선을 그었다.

비틀스도 초기 로큰롤의 영웅들인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할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로큰롤(전에 지적한 듯 좀 더 강하긴 했지만)을 구사했다. 초기에 그들은 기타로 곡을 썼고 그래서 그 때의 곡들은 업 비트의 장조계열 곡들이었다. 그러나 ‘제5의 비틀’이라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그로부터 피아노의 미학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느린 단조계열의 발라드 팝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의 록은 완전히 근사한 전당의 예술로 ‘신분상승’했다. 그것을 상징하는 곡이 ‘Yesterday’ ‘Eleanor Rigby’ 그리고 앨범 < Rubber Soul > < Revolver >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였다. 또 하나의 변화는 가사였다. 이전의 그들의 신나는 로큰롤에 담긴 노랫말이라곤 고작 젊은 남녀의 풋사랑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마디로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내용이 주종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포크와 통기타의 영웅 밥 딜런(Bob Dylan)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가사의 중력을 절감했다. 특히 존 레논에게 이 부분의 충격은 절대적이었다. 갑자기 비틀스 노래는 사랑타령에서 ‘사색과 인생’으로 바뀌어갔다. 중기의 대표적인 노래들인 ‘Girl’ ‘In my life’ ‘Eleanor Rigby’는 이전 노래와는 확실히 깊이가 달랐다. 비틀스는 싱글 중심이 아닌 앨범 중심으로 음악작업의 축을 전환했다. 곡도 커버 버전은 완전히 걷어치우고 철저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더러 조지 해리슨)의 자작으로 앨범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자들이나 대중들 할 것 없이 일제히 비틀스의 최고 명반으로 중기작품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런 저간의 상황이 있다. 물론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도 우수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영국인들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권위 있는 ‘버진 올 타임 톱 1000 앨범’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이 리서치에서 < Revolver >가 당당 1위를 차지했으며 < Sgt. Pepper’s.. >는 3위, < Rubber Soul >은 34위에 올랐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 미국 문화계 인사들과 히피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간 싸이키델릭(psychedelic) 풍향이다. 환각과 약물로 이미지화된 이 흐름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문화적 대안(代案)을 찾고자 한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의식확장을 위해 약물 LSD를 실험했고 동양종교를 탐색했고 갖가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항의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적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평화’였다. 버진 조사에서 1등을 뺏겼지만 여전히 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 앨범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는 바로 싸이키델릭과 히피의 ‘안티’ 성향을 농축해낸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다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타임에 커버로 두 번 등장한 대중가수는 비틀스밖에 없다). < The Beatles 1 > 앨범은 넘버원 곡들만 수록해 싱글을 내지 않은 이 앨범의 레퍼토리들이 수록되어있지 않지만 대신 ‘Yellow submarine’ ‘All you need is love’로 그 메시지와 분위기를 희미하게 맛볼 수 있다. 중기의 포크와 싸이키델릭 시대를 통해 비틀스는 ‘자기 음악중심’을 확립했다.

단순한 성공공식으로 일관하면서 실험을 배제하는 여타 그룹들과는 달랐다. 초기에 그토록 흔하던 히트싱글 발표도 가급적 자제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악의, 소위 얼터너티브를 찾아 실험하고 탐구했다. 오늘날에도 비틀스가 최강의 그룹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시기의 ‘음악혁명’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비틀스의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그룹의 결속력의 약화라는 음지가 존재했다. 4인 각자의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서적으로 하나의 그룹 아닌 ‘존 폴 조지 링고’로 흩어지면서 비틀스는 말기를 맞는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들은 명반 생산을 게을리 하지는 않지만.. 제4부 < 미래의 기약-4분의 4는 역시 하나! >(말기 비틀스) 1968년 자신들의 음반사 애플(Apple)을 설립했을 때, 그리고 애플의 첫 싱글 ‘Hey Jude’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비틀스의 웅대한 새 출발은 이상하게도 그룹의 결속력 와해로 이어졌다. 비틀스라는 우산 아래 뭉쳤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독자 영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그룹을 대표하던 존은 비틀스 아닌 필생의 동반자 오노 요코와의 관계에 빠져 들어갔으며, 폴은 그룹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넷 가운데 단연 최강자로, 실세로 솟아났다.

존과 폴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이러한 ‘헤쳐’ 상황은 비틀스를 ‘존과 폴의 그룹’에서 ‘폴의 그룹’으로 재편했다. 조지 역시 자신의 음악세계에 액센트를 두기 시작했고 곡을 쓰지 못했던 링고도 마침내 ‘Don’t pass me by’나 ‘Octopus’s garden’과 같은 곡을 써내면서 자신감을 획득했다. 애플사에서 낸 첫 앨범 < 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는 불가피하게 ‘한지붕 네가족’의 앨범이 되어 나왔다. 자신이 쓴 곡을 녹음할 때 다른 멤버들은 그룹동료가 아니라 거의 세션 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비틀스의 재정문제를 관장하는 사업고문 발탁을 놓고 존 조지 링고와 폴 간의 입장차이가 불거지면서 멤버들간의 갈등도 노출되었다. 존과 폴은 모든 면에서 가령 예를 들면 결혼날짜와 장소와 같은 문제에서도 사사건건 경쟁적 심리전을 전개했다. 말기에서 비틀스가 차지한 차트 넘버원 곡들은 존의 ‘The ballad of John & Yoko’ ‘Come together’, 조지의 ‘Something’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폴이 주도적으로 쓴 곡이었다. 폴의 작곡 감각은 이후에도 접하기 어려울 만큼 이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해산 직전에 나온 ‘Let it be’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드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곡들은 비틀스 작품이기보다는 폴의 솔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폴의 천재성은 말기의 앨범 < The White Album > < Abbey Road >에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굳이 싱글이 아니었어도 전자의 ‘Obladi oblada’ ‘Martha my dear’ ‘I will’, 후자에서는 ‘You never give your money’ ‘Golden slumber’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등 그가 주조한 곡들은 어떤 싱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

기습적인 비틀스 해산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폴이었다. 전설의 4인들은 해산 후에도 각각의 길을 걸으면서 누구 할 것 없이 1970년대의 어떤 싱어 송 라이터나 팝 스타들보다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네 사람 모두 차트 넘버원 곡을 기록했다. 그룹 출신으로 솔로활동에서 멤버 모두가 1위 곡을 가진 그룹은 비틀스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윙스(Wings)라는 그룹을 만든 폴의 히트행진은 비틀스 업적을 거의 재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존 폴 조지 링고를 아무리 개별적으로 기억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비틀스라는 집합으로 기억한다. 말기 이후가 ‘4분의 4’이었을지언정 대중의 뇌리에는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임은 비틀스 재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깨고 1995년 폴 조지 링고가 투합해 존의 노래 ‘Free as a bird’ ‘Real love’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다시금 입증되었다. 여기서 링고 스타의 비틀스론(論)을 들어보자. "우린 신비로웠고 그것은 텔레파시였다. 우리가 녹음실에서 작업했을 때…그걸 묘사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린 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은 언제나 동시에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비틀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묻히지 않고 갈수록 위대성과 가치가 증대한다. 미국 브라질 쿠바 일본 그리고 한국을 가리지 않고 < The Beatles 1 >가 전 세계적으로 판매열풍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은 뉴 밀레니엄 첫 스타가 비틀스라는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1960년과 2000년 사이의 40년 세월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비틀스는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불로(不老) 불사(不死) 불패(不敗)의 그룹이다.
비치 보이스는, 파도타기 놀이인 서핑의 즐거움을 담은 노래로 유명한 팝 그룹이다. 이들이 60년대 초반에 발표한 노래 ‘서핑 USA’는 지금도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전파를 탄다. 이들이 ‘록 역사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66년에 발표한 < 펫 사운즈(Pet Sounds) >가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리더인 브라이언 윌슨의 독집이라 해도 무방한 이 앨범은 서프 음악의 종언을 알리기라도 하듯 갖가지 새로운 시... 비치 보이스는, 파도타기 놀이인 서핑의 즐거움을 담은 노래로 유명한 팝 그룹이다. 이들이 60년대 초반에 발표한 노래 ‘서핑 USA’는 지금도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전파를 탄다. 이들이 ‘록 역사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66년에 발표한 < 펫 사운즈(Pet Sounds) >가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리더인 브라이언 윌슨의 독집이라 해도 무방한 이 앨범은 서프 음악의 종언을 알리기라도 하듯 갖가지 새로운 시도를 선보여 당시 팝 음악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브라이언은 더빙 반복을 통해 이 앨범의 사운드를 놀라울 만큼 두껍게 했고 종소리, 경적소리, 외침 같은 효과음을 많이 응용했다. 사람들은 이 같은 기술적 개가를 접하고 스튜디오 음악의 실체를 알기 시작했다. 폴 매카트니가 1967년, 팝 사상 최고의 명반인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를 만든 후 “만약 < 펫 사운즈 >가 없었더라면 이 앨범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실토했을 정도다. 톰 페티, 린지 버킹햄, 그룹 소닉 유스 등도 < 펫 사운즈 >가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비치보이스를, 얼핏 < 서핑 USA >하나로 이름을 날린 그저 그런 그룹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적이 의아스러울 만한 부분이다. 이 앨범은 국내에 ‘그리운 고향’(‘앞마을 옛터에 빨래하는 순이...’로 시작되는)으로 번안된 ‘슬룹 존 B’와 같은 히트곡을 내긴 했지만, 출반 당시에는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음반을 낸 캐피톨 레코드사 측도 브라이언이 쓸데없는 음반을 만들었다고 불평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이 90년 CD로 나왔을 때도 골든 레코드(50만장 판매)를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앨범 가치는 상승해 ‘전설적인 걸작’으로 자리잡았다. 근착 빌보드는 < 펫 사운즈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CD 박스 세트를 오는 5월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뒤늦게 이 작품이 명반임을 깨달은 캐피톨사가 음반의 의미를 기리려는 의지를 내비침으로써 이 박스 세트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캐피톨사는 이 앨범을 ‘상품’으로서뿐 아니라 ‘역사적 다큐멘트’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원곡을 리마스터한 것들 외에, 당시의 신곡 및 실패본들이 총망라돼 실릴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팬이 캐피톨사 측의 이런 노력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로이 버크허트는 이런 말을 했다. “그와 같은 일은 마땅히 레코드회사가 해야 한다고 본다. 백년이 지나면 비틀스, 롤링 스톤스, 비치 보이스는 우리 시대의 베토벤, 브람스, 바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 음반이 거의 재발매되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멤버 : 행크 마빈(Hank Marvin, 보컬), 브루스 웰치(Bruce Welch, 기타), 브라이언 베네트(Brian Bennett, 드럼) 멤버 : 행크 마빈(Hank Marvin, 보컬), 브루스 웰치(Bruce Welch, 기타), 브라이언 베네트(Brian Bennett,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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