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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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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쓰는 편지

김사인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22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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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0g | 130*224*20mm
ISBN13 9788954670425
ISBN10 89546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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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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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1981년 『시와 경제』 동인 결성에 참여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82년 무크 『한국문학의 현단계』를 통해 평론도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편저서로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이 있으며,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1981년 『시와 경제』 동인 결성에 참여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82년 무크 『한국문학의 현단계』를 통해 평론도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편저서로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이 있으며,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지훈상 등을 수상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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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밤에 쓰는 편지 1」중에서

출판사 리뷰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1. 2020년 11월 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합니다. 1차분 열 권을 우선으로 선보입니다. 문학동네는 일찌감치 이 작업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1996년 11월 ‘포에지 2000’ 시리즈의 펴냄 아래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가던 바 있습니다. “예민한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시대의 혼돈과 상처를 노래했던 젊은 영혼의 생생한 울림이 담긴 추억의 명시들을 독자 앞에 다시금 제시함으로써 빛나는 시의 정수를 확인하고자” 하려 함이라는 취지의 글이 떠오르는데, 그때로부터 근 24년이 흘렀습니다. 그 정신은 온전히 두고 그 매무새를 새로이 다지는 과정 가운데 문학동네포에지의 첫 행보를 내딛기까지 시간이 오래 좀 더디 걸린 것도 사실입니다.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현시되는 장을 여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선언한 책임과 의무의 말이 실은 얼마나 큰 무게인지 모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시라는 무한과 시집이라는 열림을 끌어안으려는 데 있어 한껏 오므라들었다 힘껏 펼칠 줄 아는 시리즈라는 줄자,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아무려나 사랑에 있음을 이제는 깨닫고 온전히 그 순정에 기대어 용기를 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2. 문학동네의 신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시인선이 어느덧 150번째 시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출범하게 된 문학동네의 구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는 복간의 기저를 비단 문학동네에 적을 두었던 시집만을 필두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읽어둬도 참 좋으련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랜 시간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집들이 우리에게는 꽤 있었습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시간을 거슬러 찬찬히 행하는 시로의 이 뒤로 걷기를 통해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집을 발굴하고, 숨어 있기 좋았던 시집을 골라내며, 책장 밖으로 떨어져 있던 시집을 집어 서가에 다시 꽂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한국 시사를 관통함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시의 독본들을 여러분들에게 친절히 제공해드릴 참입니다.

출발의 본거지는 제각각 달랐으나 도착의 안식처는 모두 한데로, 문학동네포에지 안에서 유연성 다해 섞이고 개연성 있게 엮인 가운데 한 차에 열 권씩 펼쳐질 시의 병풍은 저마다 다양한 개성으로 저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저마다 특별한 사유로 시리즈라는 줄자에서 보다 큼지막한 테두리로 우리를 시라는 리듬 속에 재미 속에 미침 속에 한껏 춤추게 할 것입니다. 특히나 귀하디귀하다 싶은 것이 시인들의 첫 시집임을 알아 그 최전방에 첫 시집들을 앞서 배치한 것인데 김언희, 김사인, 이수명, 성석제, 성미정, 함민복, 진수미, 박정대, 유형진, 박상수 시인에 이어 출간될 2차분 역시 김옥영, 이문재, 염명순, 안도현, 정은숙, 조연호, 김민정, 최갑수, 이영주, 이현승 시인의 첫 시집임에, 복간에 있어 첫 시집을 앞서 염두에 둔다는 원칙 역시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3. 문학동네포에지는 문학동네시인선과 책 사이즈가 같습니다. 세상의 시계와는 완연히 다른 시의 시간 속에 이 두 시리즈가 맘껏 뒤섞이는 난장 속에 시집 시리즈의 건강함을 기대하였고, 맘껏 뒤섞이는 자연 속에 시집 시리즈의 무구함을 기약한 것도 애초의 기획 의도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표지 디자인의 중심을 컬러에 놓은 것도 둘의 공통점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이 핀 꽃이거나 필 꽃이라 할 때 문학동네포에지는 꽃이 있다 떨어진 꽃자리이거나 꽃 없이 진 꽃을 기억하는 등산로 앞 의자라 할 적에 그 컬러의 생겨먹음이 필시 달라야 할 것이라는 짐작이 내내 따라붙었습니다.

힘을 빼고 또 뺐습니다. 등을 펴고 또 폈습니다. 그렇게 비우고 그렇게 꼿꼿해지는 과정 속에 문학동네포에지는 파스텔톤의 열 가지 컬러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해설이 따로 실리지 않는 시집 시리즈, 추천사도 따로 박히지 않는 시집 시리즈, 시인의 약력과 시인의 자서와 시인의 시로만 꿰는 시집 시리즈, 시인의 시 가운데 미리 보기로 어떠한가 싶어 고른 한 편의 시를 책 뒷면에 새기는 일로 시집의 단장을 마치고 시집의 장단을 맞춘 시집 시리즈, 이에는 색보다는 물의 수위가 높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차에 열 권씩 출간하려는 작정은 예의 과정에서 비롯한 작정이기도 합니다.

4. 구석구석 모자람도 클 것입니다. 걸음마에 넘어짐은 자석 근처의 철심 같은 것, 하여 많은 분들이 넘어질 적마다 넘어졌구나 가리키시고 가르쳐주셔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나갈 수 있음을 압니다. 모쪼록 새롭게 시작하는 문학동네포에지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사랑으로 지켜봐주시면 여한이 없을 성싶습니다. “사랑이란 죽은 이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힘입어 “사랑이란 죽은 시집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우리만의 변주로 그이가 부추긴 ‘사랑의 함대’를 비유 삼아 오늘 이렇게 문학동네포에지라는 배를 물위에 띄워보는 바입니다.

편집자의 책소개

모든 존재하는 것, 우주 안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사소한 존재들의 벗, 김사인의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를 다시 펴낸다. 1970~80년대를 까맣게 덮었던 그 ‘밤’, 폭력과 부조리의 시대를 밝히며 희미한 빛으로 써내려간 시편들을 엮었다. “노동과 사랑이, 옳음과 아름다움이, 희망과 슬픔이 어떤 수준에서건 통일되는 자리쯤에”(「시인의 말」) 서 있고자 했던 시들은 30년을 훌쩍 건너 여전히 변함없이, 다만 “지렁이 같은 낮은 배밀이로만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개정판 시인의 말」)을 보태어 나아왔다. 문학동네포에지가 세월을 건너 도착한 이 느린 편지를 다시 띄운다.

그대로 하여
저에게 쓰거운 희망의 밤이 있습니다


김사인 하면 느림의 시인이다. 앞말과 뒷말 사이에도 세월이 끼어들리만큼 천천하고 또 곡진하게 말을 잇는다. 시를 쓰는 일에도 이 느린 걸음은 다르지 않아,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의 사이에 19년이 있었고, 세번째 시집까지는 9년이 걸렸다. 40년의 시력에 3권의 시집. 적다면 적겠으나, 두 팔 벌려 세상을 온몸으로 품어낸 뒤에야 입을 여는 그의 시이니, 적다기보다 귀하다는 말이 어울리겠다. 시인이 이 시집을 엮으며 지난 1970~80년대는 혹독한 ‘밤’의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릇된 시대와 정의 없는 폭력 앞에 끝내 물러서지 않았던 시인은 세 번을 철창 속에서, 그 사이사이는 길 위에서 춥고 매서운 밤을 견뎠다. 스스로는 동작이 느려서 빨리빨리 도망을 못 갔을 뿐이라 넉살 좋게 웃지만, 실은 여린 이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못한 무거운 발, 단단한 뿌리 탓이리라. 느린 자에게는 느린 자의 몫이 있다. 해야 할 말, 해야 할 일이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가장 뒤에 선 시인은 결코 도망갈 줄도 물러설 줄도 모른다. 『밤에 쓰는 편지』는 스쳐지나는 법 없이 꼬박 새우고 온몸으로 품어냈던, 남들보다 더 시리고 뼈아프게 살아온 밤의 흔적이다.

아끼고 싶은 더 많은 눈빛의 애틋함으로부터

시인의 마음은 높고 크고 단단한 것 대신 작고 여리고 순한 것들에게로 마음이 기운다. 예컨대 “빛바랜 머리칼로 찬비 견디는 풀잎들”(「밤에 쓰는 편지」) “시렁에 얹힌 메줏덩이”(「고향의 누님」) “철 놓친 수레국화 몇 송이”(「월부 장수」)로 향하는 것이 시인의 시선이고, “졸고 있는 검표원의 입가” “냉차 장수 아줌마의 땀 배인 콧등”(「동인천역 풍경」), 술 취해 걸어가는 한 사내의 “구겨진 바바리 끝” “고추장 자국”(「한 사내」)을 지나치지 못하는 눈빛이다. 또한 그렇게 작고 약한 것들을 나직이 불러, 기어이 편을 들어, 그들의 있을 자리 한 칸 마련해주자는 것이 시인의 꿈이다.

그러나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시는 서글픈 밤, 「지상의 방 한 칸」 마련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시의 제목은 박영한의 소설 『지상의 방 한 칸』에서 가져왔으나, 빌려온 것은 제목뿐 아니라 셋방살이로 서울 변두리를 떠돌던 그 시절의 현실 자체이기도 할 것이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 비는 재주”뿐이라 이를 악물어보지만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할 때, 이 “원고지 칸” 하나가 ‘지상의 방 한 칸’ 되어주면 좋으련만.

그 시절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에서 잠들지 못해 뒤척이던 현실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하다는 것은 읽는 우리의 슬픔이기도 하다. 시인은 신음으로 그 슬픔 대신 앓아주니, 이 시집은 오늘에도 “웅크리고 잠든” 우리를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주는 손길이겠다. 이 극진함을 시로, 종교로, 혁명으로 삼는 것이 김사인의 ‘섬김’이다. 섬김은 그저 제 몸을 낮추어 받드는 것만은 아니다. 뒤처진 이에게는 보폭을 맞추고, 넘어진 이에게는 어깨를 내어주며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을 두고 ‘시가 해야 할 일’이라며 오랜 믿음을 지켜온 그다.

나도 한줄기 강이어야 합니다.
나도 큰 슬픔으로 누워
머리 풀고 나란히 흘러야 합니다.
-「밤에 쓰는 편지 3」 부분

풀 한 포기 이슬 한 방울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오랜 서정의 시원이겠지만, 김사인은 ‘풀이 되어’ 눕지 않고 ‘풀 곁에’ 눕는다. 이 춥고 메마른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보며 “나도 큰 슬픔으로 누워” “머리 풀고 나란히” 흐르는 것이 시인의 몫이다. 김사인의 시는 나의 슬픔, 나의 울음으로 절절 넘치지 않는다. 제 슬픔은 나중으로 둔 채 열 끓는 다른 이의 이마에 손 짚고 추위에 곱은 손 제 온기로 녹여주느라 바쁜 그런 시. “넘어져서도 이젠 어릴 때처럼 울지 않고/다시 일어서서야 몰래” 우는 시인(「연시(戀詩)를 위한 이미지 연습」).

『밤에 쓰는 편지』 속에서 시인은 참 많은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존경하는 이, 사랑하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사랑했던’ 이들을 향한 절절한 호명이다. “원통한 죽음들/하나씩 이름 불러야 되겠네./그 이름 불러 내 목청 터지고/정한 피 다시 흘러야겠네”(「오월로 가는 길」) 말할 때,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그들의 넋을 챙기고 그 이름 잊지 않으려는 자리, 맨 뒤에 선다.

이 아름다운 약속이
기쁘기도 해서 섧기도 해서


김사인의 시는 남의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대곡(代哭)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죄를 대신 앓는 대속(代贖)이기도 하다. ‘시대에 아파하고 세속에 분노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不傷時憤俗非詩也)’, 정약용의 언명을 언제나 지척에 두고서 불의의 한가운데로, 기꺼이 “저 어둠의 복판으로” 시인은 나아간다. 밤의 시간이란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이고, 시인의 싸움이란 “묵묵히/움직이지 않는 듯/뜨겁게 땅에 몸을 붙이고 굳굳하게” 이어진다. “밤 깊어 고요할 때” “버림받은 모든 것들/모멸과 안타까움, 속쓰림을 부둥켜안고” 간다(「한강을 보며」). 이 밤은 현실과의 싸움일 뿐 아니라 그 앞에 꺾이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싸움으로도 치열하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이제 아니라고
마침내 외쳤을 때, 우리
새벽이슬보다 곱고 순하게 빛났지.
빛났지 그날
쓰디쓴 굴욕과 알 수 없는 막막함의 멱살을 움켜잡고
혼신의 힘으로, 흔들리며
일어서
폭탄이 되어 달려갔던
그날, 우리는.
-「그날」 부분

피와 총성으로 얼룩진 부조리 앞에 분개도 했다가(「나가보라 한강으로」, “칼 쥔 자들”에게 고쳐 생각하기를 부탁도 해보지만(「딸년을 안고」), 어쩌면 그 모든 싸움의 바탕엔 질기고 비린 삶을 버텨야 하는 천명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집에 엮인 80년대를 옳은 시, ‘밥값 하는’ 시를 써야 한다는 부담으로 보냈다고 고백하지만, 그가 지켜온 옳음이란 재단하여 편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그 ‘편’들이 한몸이라는 믿음, 서로에게 총구를 돌리지 않는 ‘올바름’이다. 그의 문장들이 에두름이나 비틀림 없이 정직하고 간결한 것은, 그리하여 유독 단단하고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은 오랜 시간 스스로와 싸우며 우직하게 닦아온 “쓰거운 희망”(「밤에 쓰는 편지 1」)이기 때문일 터다.

이 시집 『밤에 쓰는 편지』 이후 시인은 수배 생활을 하다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잃음을 마냥 아깝다 여기는 데 머물지 않고, 잠시 잊었던 시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일, 앞으로도 시를 써나가리라는 작은 믿음으로 삼았다며 또다시 미소 짓는 그다. 시인은 옳고 그름마저 도무지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조용히 앉아 귀기울이고, 먼저 들음으로써 우리의 귀마저 열게 하는 목소리다. 세대를 넘어 다시 받아든 김사인의 편지에서, 우리는 고인 정답이 아니라 부단히 가다듬는 바로잡음을 본다. 그러니 “저 순하여 무서운 웃음”(「김수영의 풀」)이란 시인의 것이기도 하다. 서글한 웃음으로 읽는 이의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시. 오늘의 우리가 쉽게 잃곤 하는 ‘옳음’, 시의 오랜 귀감을 되찾아줄 시집.

모두 이리 와서 이 사랑을 보아라

이 시집이 처음 세상에 나온 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한 시대의 밤도 끝이 났다. 그러나 영영 끝일 줄 알았던 밤이 이따금 또다시 이 땅에 내리고, 이 편지가 기어이 우리 앞에 돌아온다. 세기가 바뀌도록 여전히 몸 누일 곳 없는 우리, 찾아 헤매는 ‘지상의 방 한 칸’. 옛이야기였어야 했을 이 어둠이 여전한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 그날의 슬픔을 지금 일처럼 다시 곱씹게 된다는 것은 오늘의 설움이겠다. 그러나 그 작은 방 한 칸들, 원고지 칸 사이로 아주 작은 길들이 있다. 길들 사이로 함께 걷는, “서로 감싸안고 내딛는 이 걸음”이야말로 “빙판 위로 솟는 불꽃” 사랑이라는 “탄탄한 뿌리”가 된다(「먼길 나서는 두 사람을 위하여」). 길은 밟고 간 자들의 자리라는 오래된 풀이를 빌지 않더라도, 작은 사람들이 이어온 발자취, 그 흔적을 잊지 않고 써내려간 시인이 있어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가는 일의 귀함을 안다.

『밤에 쓰는 편지』는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내지만 그 슬픔 속에 거꾸러지지 않는 시다. 시인은 언제고 “아뜩한 절망의 유혹 이기고”(「개나리」) “더 멀고 큰 약속 안에서” “뜨겁게 만나”기를 약속했다(「그날 이후」). 시대와 불화하며 얻어진 열병으로 시인은 그만큼 절실히 삶을 사랑하고 뜨겁게 노래하는 것이다. 한밤중에도 사랑을 부르며 내일을 향해 써내려간 편지는 오늘의 우리에게 부치는 연서이기도 하겠다. 이제 희망이라는 답장을 쓸 때다. 그때에도 죽지 않았던 그 빛, 희미한 아침을 향해 끝끝내 나아가던 그 마음이 있으므로, 그 별의 있음으로.

부질없을지라도
먼 데서 반짝이는 별은 눈물겹고
이 새벽에
별 하나가 그대와 나를 향해 깨어 있으니,
우리 서 있는 곳 어디쯤이며
또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저 별을 보며 알 듯합니다.
딴엔 알 듯도 합니다.
-「새벽별을 보며」 부분

기획의 말

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시인의 말

초판 시인의 말


부모님의 수연에 맞추어 첫 시집을 낼 수 있다니, 생애에 또 한번 있기 어려운 복이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맙고 고맙다. 유난히도 곡절 많은 삶을 사셨다고 생각되는 분들이어선지 그이들의 갑년을 당하매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뉘 집 자식인들 다를까마는 나는 아버님의 다감하고 다정하심과 어머님의 온화한 가운데 굳으신 성품을 깊이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 성품들로 해서 그분들은 많이 고통받으셨다. 모쪼록 갑년의 기념으로 이 작은 책을 기꺼이 거두어주신다면, 그리하여 그분들의 고단하신 나날에 다소나마 위안으로 삼아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알겠다.

나는 주변의 여러 어른들 그리고 선배 · 동료들의 분을 넘는 사랑과 너그러움에 기대어 오늘 이렇게나마 있다. 나의 게으름과 비재와 어눌함을 그분들은 결벽스럽고 신중한 것이라 감싸주셨고, 심약과 우유부단함을 짐짓 세심하고 정이 많은 것이라고 여겨주셨다. 이 시집만 해도 이영진 · 강형철 · 김형수 세 동료 시인들의 애정 어린 독려와 도움, 수연일에 댈 수 있도록 도무지 가능하지 않을 일을 되게 만드신 김정순 선생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꾸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오래 그립던 벗 정명교와 한연호 두 분이 바쁜 중에도 열 일을 제치고 마음 한 자락씩을 보태어주셔서 발문과 표지를 갖춘 책 모양이 되니, 나의 주제에 참으로 당치도 않은 복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 못난 시들이 그분들의 뜻에 되도록 적게만 어긋나는 것이기를 빌 따름이다.

시들은 대개 쓰여진 시기의 역순으로 배열했으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대학 시절의 치기 어린 시들 몇을 4부에 포함시켰다.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한 시절의 분신들이다. 독자들로부터 너무 구박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나는 시에 대해 할말이 마땅치 않다. 막연하지만 노동과 사랑이, 옳음과 아름다움이, 희망과 슬픔이 어떤 수준에서건 통일되는 자리쯤에 시가 서야 한다고 더듬거려볼 뿐이다. 그것뿐이다.

1987년 9월 25일
김사인

개정판 시인의 말

그 시절의 울분과 설움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젊은 날이라니.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옛 시들을 힘겹게 다시 읽으며, 대수롭달 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밉지도 않았다. ‘노동과 사랑이, 옳음과 아름다움이 어떤 수준에서건 통일되는 자리쯤에 시가 서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회피하지 않으려 딴에는 애썼고, 지금도 그 생각에 큰 변함은 없다. 지렁이 같은 낮은 배밀이로만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더 보태졌을 뿐이다. 구두점을 살렸다. 구두점을 없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둘 수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오독의 여지를 줄이는 쪽이 떳떳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역시 지난 연대의 아픔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고, 다만 세상에 좀더 평화롭고 따뜻한 일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2020년 10월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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