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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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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허물다

공광규 | 창비 | 2013년 08월 30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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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3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98쪽 | 150g | 130*200*15mm
ISBN13 9788936423650
ISBN10 893642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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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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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저자 : 공광규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월간『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대학일기』『마른 잎 다시 살아나』『지독한 불륜』『소주병』『말똥 한 덩이』가 있으며『신경림의 시의 창작방법연구』『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등을 펴냈다. 신라문학대상, 윤동주상 문학 대상, 동국문학상, 긴만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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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경계와 구분을 지우는 무소유의 충만함

1986년 등단 이후 줄기차게 자본주의 현실의 모순을 강렬한 언어로 비판해온 공광규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담장을 허물다』가 출간되었다. 전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를 통해 치열한 현실 비판의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양생(養生)의 시학’을 모색한 시인은 5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순정하고 투명한 서정”(유성호, 해설)이 깃든 웅숭깊은 내면적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통찰과 예지로, 진부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구”하며 “광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이재무, 추천사)가 어우러진 견결하고 단아한 시편들이 삶의 그늘 속에 희망의 언어를 지피며 따뜻한 감동과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201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자 표제작 「담장을 허물다」를 비롯하여 진솔한 삶의 체험 속에서 일구어낸 45편의 시를 수록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가수 김태곤이 힐링 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속 빈 것들」 전문)

등단 초기부터 끊임없이 당대 사회현실과 호흡하며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공광규 시인은 근자에 들어서 ‘양생의 시 쓰기’라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사유의 품이 한결 깊고 넓어진 시인의 시적 세계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속 빈 것들」)듯이 비우고 나눔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비움’의 철학에 다가서 있다. 시인은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와 갈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세속적 소유 개념을 허물어뜨리고 “마음이 명당이면 되는 것 아니겠나” 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던 집 벽을 헐고 창을 내어/풍경을 빌려서 살기로”(「풍경을 빌리다」) 한다. 이로써 시인은 무소유의 경지에 다다르는 ‘우주적 자아’로 거듭나게 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생태적 삶을 꿈꾸어온 시인의 오랜 바람이기도 하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눈이 시원해졌다//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텃밭 아래 사는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느티나무가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담장을 허물다」 부분)

여느 시인과 마찬가지로 공광규 시인에게도 고향과 가족은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이자 창작의 밑바탕으로서 시인의 가슴속에 아득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는다. “벌초하러 고향에 내려갔다가/먼지와 벌레가 주인이 되어버린 빈집을 나와” 모텔에 든 시인은 “젊은 나이에 병들어 울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늙어서 불경을 외우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혼자 사는 이혼한 여동생을 생각하다가 목이 메”(「백운모텔」)기도 하고, “눈 오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장통을 돌아다니다 불현듯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동생들도 없는 것이 서러워서/한참이나 첫눈을 뜨거운 눈물에 말아 먹”(「첫눈」)는 슬픔에 젖기도 한다. 특히 “수십년 가계에 양식을 퍼 나르던” “1960년산 중고품 가죽그릇”(「가죽그릇을 닦으며」)으로 살아온 자신과 고단한 삶을 함께해온 “세상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너라는 문장」)운 아내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은 애틋하기 그지없다.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주무르고/막힌 변기를 뚫고//아이들과 어머니의 똥오줌을 받아내던/관절염 걸린 손가락 마디//이제는 굵을 대로 굵어져/신혼의 금반지도 다이아몬드 반지도 맞지가 않네//아니, 이건 손가락 마디가 아니고 염주알이네/염주 뭉치 손이네//내가 모르는 사이에/아내는 손가락에 염주알을 키우고 있었네(「손가락 염주」 전문)

소유의 경계를 허물고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시인은 주변으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따듯한 관심과 배려를 보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간다. “서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몸을 합쳐” 이루어가는 공동체의 시간을 꿈꾸는 시인은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수종사 뒤꼍에서」) 다짐해본다. 서로 나누며 베푸는 청빈한 삶이야말로 참된 삶이라 믿는 시인에게 그것은 “평생 낙원에 도착할 가망 없는 인생들”(「낙원동」)을 불러모아 “이 서정 없는 문명”(「풀잎 우표」)의 세계에서나마 “새와 벌과 구름과 밥상에 둘러앉아/이팝나무 꽃밥을 나누어 먹으며 밥정이 들고 싶은”(「이팝나무 꽃밥」) 간절한 소망의 실현이기도 하다.

평생 낙원에 도착할 가망 없는 인생들이/포장마차에서 술병을 굴린다//검은 저녁 포장도로/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붉은 비닐포장 꽃에서/잉잉거리며 일벌 인생을 수정하고 있다//꽃 한번 피지 못하고 시들어가는/열매도 보람도 없이 저물어가는 간이의자 인생을/술병을 바퀴 삼아 굴리는 사이/포장마차는 달을 바퀴 삼아 은하수 이쪽까지 굴러와 있다//소주를 주유하고/안주접시를 바퀴로 갈아 끼우고/술국에 수저를 넣어 함께 노를 젓고/젓가락을 돛대로 세워 핏대를 올려도 제자리인 인생//포장마차가 불을 끄자/죽은 꽃에서 비틀비틀 접힌 몸을 펴고 나온 일벌들이/술에 젖은 몸을 다시 접어 택시에 담는다(「낙원동」 전문)

‘시는 곧 생활의 일부’라고 여기는 공광규 시인은 삶의 안팎과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견자(見者)’의 눈으로 사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찾아낸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극락을 지나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문 시인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잠시 쉰다는 이야기”(「되돌아보는 저녁」)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지혜를 일깨워줄 “밝은 스승과 어진 벗”(「지족해협에서」)을 못내 그리워한다. “내가 세상을 잘못 읽는지도 모르겠다”(「이런 날 저녁에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줄곧 정직한 시심을 일구어온 시인이기에 비록 누추하고 “참으로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사는 만큼 쓴다”는 시인의 고백과 “삶을 바꾸”고 “시를 새롭게 써보자”(‘시인의 말’)는 다짐이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초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다고 한다/제사도 없다고 한다/장수들의 무덤도 돌을 빙 둘러 박은 평토장이다//말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데/흰 털 짐승 한마리가/흙에 녹아내려 초원과 거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이곳에서는 죽음도/자연이 박아넣는 은입사구름 문양 공예품이다(「죽음의 문양」 전문)

추천평

공광규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며 나는 연신 탄복을 금치 못한다. “눈물을 사랑”(「수종사 뒤꼍에서」)하고 “당신이라는 별을/열심히 닦”(「별 닦는 나무」)아온 그는 확실히 솜씨가 매우 출중한 시의 도굴꾼이다. 사물과 세계와 역사 속에 들어가 도굴해온 진리를 현세에 진설하는 대도 시인. 시간의 패총이 쌓여갈수록 그의 시세계는 광활하면서도 눈부시게 창대해지고 있다. ‘담장’을 허문 그의 혼에 귀신이라도 씌었는가. 상상력의 타임머신을 타고 자유자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신통력을 선보일 뿐 아니라 통찰과 예지로, 진부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구한다. 광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있는가 하면 이곳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가 있다. 무엇보다 그가 축조한 언어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견고하면서도 극미하기만 하다. 그는 타고난 시의 농사꾼이다. 그의 전답에서 소출된 시의 알곡들은 쭉정이가 하나도 없다. 그는 과연 시의 늦복을 타고난 것인가.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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