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 읽은이의 말
“동서양을 막론하고, 낭송은 아주 오래된 신체 단련법이자 공부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더, 낭송은 혼자서 소리 내는 암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서당에 모여 앉은 우리의 개구쟁이들에게 ‘떼창’ 없는 공부는 생각할 수 없었듯이, 낭송은 ‘함께’ 하는 양생술이다. 자기 혼자만의 체험으로서가 아닌 타자와 공명하며 다 함께 ‘진리’ 속으로 ‘돌격’해야 하는 낭송은 그래서 더더욱 쉽지 않은 공부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낭송은 그대로 놓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좋은 삶을 위한 ‘기술’이다. 그래서 작업하는 내내, 이 쉽지 않은 ‘양생’의 길에 초보자도 쉽게 합류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다듬었다. 같은 뜻이라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리듬에 따라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졌기에, 수없이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작업을 했다. 때로는 그렇게 만들어진 리듬이 내놓은 길을 따라 그냥 걸어가기만 해도 이야기가 술술 저절로 걸어 나오기도 했다.”
『낭송 전라남도의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낭송’과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은 각 지역별로 옛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선생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전라남도의 옛날이야기들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말’과 ‘입’의 인연이 많은 식상과다 인간형인지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신나게 말을 풀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입을 좀 다물고 조용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인연이 되어 용인에 있는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하게 된 첫 세미나가 ‘낭송’ 세미나였습니다. 고독한 사색의 공부는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입말을 살려야 하는 공부를 만난 것이지요. 그렇게 5년을 지내면서 내가 정말 낭송을 ‘습관’이 아닌 ‘차이’를 만들어내는 공부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생겨나던 즈음, 낭송 세미나를 통해 전라남도 옛이야기 시리즈 집필 의뢰를 받았습니다.
조용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낭송을 만나고, 낭송에의 철학적 고민이 시작되자 옛이야기라는 새로운 낭송의 장에 연결되고, 더구나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고 직장생활까지 한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 연고는커녕 몇 번 가본 적도 없는 전라도 지역의 옛이야기를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난감함들은 오히려 저를 오롯이 ‘옛이야기들’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힘과 동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옛이야기로 만난 전라남도는 낯선 듯했지만 유쾌했으며 따뜻했습니다. 또한 집필 작업으로 만나는 낭송 역시 힘들었지만 같이 합을 맞추어 작업했던 (강원도, 경기북부)동학들 덕분에 예정된 시간에 즐겁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수많은 인연들과 아슬아슬한 삶의 모퉁이들을 돌고 돌아 입과 말을 통해 끝없이 흐르는 것처럼 전라남도의 옛이야기 역시 저라는 뜻하지 않은 시절인연을 만나 새롭게 변주되고 재탄생할 수 있게 되었기를 소망해 봅니다.
2.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각 지역의 사투리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일 텐데요. 사투리로 옛이야기들을 낭송할 때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또 사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나요?
경기도에서 산 지 10년이 되어 가는 제게 사람들은 말투만 보면 경상도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곤 합니다. 내가 표준어를 잘 사용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비슷한 것과 동시에, 나에게는 일종의 모국어와도 같은 사투리가 잊혀져가고 있구나 하는 아쉬움과 불안함이 그것입니다.
사투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의 기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방어로 규정됩니다. 더구나 교통과 통신기술의 상상을 초월한 발달로 지역과 중심 간의 현장성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표준어의 편리성과 우월성은 점점 더 그 지위를 넓혀가고 있고, 사투리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급속히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 편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현장성의 기록으로서, 또 그 현장성을 낭송으로 강렬하게 체험해보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낯설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지역들의 다양한 사투리를 만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물어보고 유추해 보고 또한 음미해 본다면, 자기 자신과 이웃으로의 새로운 확장성을 도모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3. 『낭송 전라남도의 옛이야기』를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여타의 지역과 다른 전라남도 옛이야기만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아 주세요.
우선 전라남도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벼락바위, 원숭이 바위, 칠형제 바위, 시루떡 바위, 주전자 바위 등등 섬과 바다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경기도가 서울로 가는 길목인지라 양반들의 이야기가 특히 많고, 또 산지가 험한 강원도는 호랑이와 유배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거기에 비해 전라남도는 벼슬 이야기나 무서운 동물 이야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물들은 인간들의 흔하고 자잘한 욕망들에 빗대어져 익살스럽게 등장하고, 또 서민들은 기지와 진솔함으로 양반들을 능가하며 자신들만의 배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고자 하거나 권력 지향적인 욕망들로 그려지기 쉬운 영웅들의 서사가 전라남도의 옛이야기에서는 일상과 맞닿은 소박한 해법들 속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되 작은 목소리들도 소외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상을 바라며, 비록 열악한 사회적 환경 속에 처하게 되더라도 특유의 성찰과 상상력으로 재치 있고 용감하게 그것들을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남도 특유의 진정한 풍요로움과 지혜가 무엇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시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내가 느그 아부지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일터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둘이 되어서 나란히 문 앞에서 아들을 맞이합니다. 천년 묵은 흰쥐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둔갑을 한 것이죠.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우기다가 결국은 ‘살림살이 알아맞히기’ 내기에서 진짜 아버지가 지게 되면서 자기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를 도로 되찾아오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옹고집전’이 떠오릅니다. 심술궂고 인색한 옹고집을 응징하기 위해 도력 높은 도사가 풀(草)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진짜 옹고집을 혼내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쥐 혹은 풀이 사람으로 둔갑하고, 진짜가 가짜에게 쫓겨나는 억울한 상황, 결국은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주인공들에게서 우리는 권선징악, 인과응보 같은 전형적인 옛이야기의 심상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이야기를 비교하며 비슷한 듯 다르고, 혹은 잔혹(?) 동화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먼저, 두 이야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옹고집이 단지 회개와 반성만으로 자신의 자리를 수동적으로 되찾았다면, 아버지는 고통스런 수행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옵니다. 또, 옹고집의 불행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아버지의 불행은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없다는 점에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만으로 점철되어질 수 없는 우리네 예측불허의 인생사를 겸손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한편, 심리학자 폰 프란츠가 옛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숨은 욕구와 소망 같은 심리적인 문제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저는 이 이야기에서 아들의 숨은 욕구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혹시 아들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지는 않았을까? 농사만 열심히 짓는 성실한 아버지, 그러나 살림살이와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아버지. 그렇다면 이런 마음들이 아들로 하여금 진짜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쫓아내게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논리적 설명이 생략되어 오히려 풍부하게 읽힐 수 있고, 같은 듯 다르게 변주될 수 있는 다양한 우리 옛이야기들의 강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이야기 중의 하나였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처음에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 편을 보았을 때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뭐지? 어린이용 옛날이야기책인가? 아닌가… 어른용인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제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옛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옛이야기는 그저 어린 시절의 감수성과 도덕성 함양을 위한 통과의례거나 혹은, 교육과정 속에 한 챕터로만 기능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전라남도의 옛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제일 먼저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다음으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탄성, 마지막으로는 안타까운 한숨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습니다. 뒷걸음질 쳐서 과거로 들어가는 듯했지만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오래되어 낡지 않았을까 했지만 생기 있는 반짝거림은 눈이 부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옛이야기들은 빠르고 복잡한 현대의 삶 속에서 저만치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낭송Q시리즈를 통해 이런 것들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 혹은 사투리로 함께하는 낭송이라는 새로운 신체적이고도 지성적인 감각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모두가 새로운 질문과 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세상에서 가장 초보적이고도 어른스러운 ‘책’이 되기를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