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질겼던 반부패의 역사
부패란 무엇인가? 부패에 맞서 싸우는 ‘반부패’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패에 대한 바른 정의가 필요하다. 인권, 환경, 성평등, 빈곤, 식민지 독립 등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진 사회적 이슈들에 비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비교적 늦게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부패 문제는 그러나 정쟁과 권력투쟁에 치명적인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본질에 대한 분석과 해결보다는 뉴스의 소재로 바쁘게 소비되기 일쑤였다. 역사·문화·정치적으로 부패에 대한 의미가 달라졌던 점, 서구사회와 동양사회의 오랜 시각 차이,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 혹은 산업화 정도에 따라 부패현상이 더욱 복잡하게 진화되어왔다는 점 등이 부패에 대한 정의와 이해, 그에 대응하는 실천적 참여를 더욱 어렵게 한다.
2020년 12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ACC)에 앞서 출간된 이 책은 세계적으로 부패의 역사가 아닌 ‘반부패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 한국에 반부패 관련 기구가 처음 정착되었던 1990년대 말 그 기틀을 만든 실무자로 참여했고 꾸준히 관련 연구를 지속해온 전문가가 저술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머물며 국제정치·사회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저자는 기원전 24세기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대통령 탄핵을 겪은 최근의 한국사회까지의 장대한 서사를 ‘반부패’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깊숙이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진실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시민들이 뉴스의 주변을 살피며 부패의 너머를 꿰뚫어보는 통찰의 힘을 갖게 한다.
“부패에 관한 인류문명의 첫 기록은
부패를 저지른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닌
부패와 맞서 싸운 것에 대한 기록이었다.”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부패와 반부패에 대한 개념 정의를 다룬다. 이 고찰은 부패의 정의로 시작하기보다는 부패에 대한 정의가 왜 쉽지 않은지를 여러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흐름을 통해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금의 부패 개념은 17~18세기 유럽에서 생성되어 20세기 중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매우 특수하고 역사적인 개념이다. 이에 의거해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부패의 정의는 ‘위임된 권력의 사적 남용’이라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부패라고 지칭하는 현상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엄중한 부패 문제를 그 정의에서 누락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2부에서는 고대사회의 반부를 분석한다. 특히 자유, 민주주의, 법치라는 사회적 가치들이 어떻게 반부패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각각 고대 수메르의 왕 우루카기나, 아테네 입법가 솔론, 그리고 고대 중국의 변법을 이끌었던 상앙의 개혁을 통해 살펴본다. 물론 고대의 자유, 민주주의, 법치는 현대의 그것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수메르에서 자유가 반부패의 의미를 띠게 되었고, 왜 시민참여 민주주의가 고대 아테네에서 부패에 효과적인 처방이 되었으며, 법치는 어떻게 춘추전국시대의 후진국인 진(秦)나라를 강성하게 발전시켰는가를 고찰함으로써 부패 문제가 단지 물질적인 뇌물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 사회의 가치, 존립, 번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부에서는 본격적인 국가 및 통치체제가 갖추어진 시기의 반부패 활동과 제도에 대해 다룬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은 정부의 부패를 감시하는 공공감사제도, 대중에 대한 국가권력의 잘못된 행태를 국가 내부에서 제기하는 옴부즈맨, 경제권력을 감사하는 회계감사, 정치권력의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거제도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4부에서는 시민 차원에서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제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가를 분석한다. 1장에서는 ‘언론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의 의미와 그 탄생 과정을 영국 신문의 탄생과 보급을 통해 살펴본다. 2장에서는 알권리 혹은 정보공개제도의 탄생에 대해 다룬다. 정보공개법이 어떻게 유럽의 변방인 스웨덴에서 탄생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는가가 주된 내용이다. 3장에서는 18세기부터 최근의 에드워드 스노든에 이르기까지, 내부고발의 역사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발전을 살펴본다.
5부에서는 반부패 활동에 실제로 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했는가를 살펴본다. 1장에서는 부패와 반부패를 세계적 이슈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제투명성기구’의 활동을 중심으로 반부패가 어떻게 글로벌 이슈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남긴 성과와 한계에 대해 살펴본다. 5부의 두 번째 장이자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을 반부패의 관점에서 집중 조명한다. 이 고찰을 통해 우리는 부패에 대한 근대적 정의가 가진 문제점과 일상적 반부패 활동의 한계,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반부패를 실현해낸 시민주권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에 구축된 반부패 역량이 2020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대역병 속에서 어떻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방역’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함께 분석한다.
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
√ 부패란 무엇인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져온 반부패의 의미
√ 모든 반부패가 선의는 아니다
정쟁과 권력투쟁에 치명적인 무기로 쓰였던 부패 이슈들
√ ‘부패=후진국형 범죄’다?
부패인식지수에서 드러나는 서구사회의 오만한 시선
√ 반부패와 함께 성장해온 민주주의
공공감사부터 내부고발까지, 하나같이 쉽지 않았던 제도의 역사들
√ 왜 K방역인가?
세월호-촛불시위-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시민의 성장사에 주목하라
√ 팩트체크를 펙트체크?
뉴스의 주변을 살피고 부패의 너머를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