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p41)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제정시대의 부패한 관료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지상 목표로 하는 야심찬 법관(판사)다. 그의 야심 탓인지, 본래 천성인지 소위 ‘상류사회’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입던 옷처럼 잘맞았다. 그는 쾌락과 정욕, 허영에 몸을 맡기면서도 업무적인 능력을 증명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고, 사교계에서도 재미있고 재치 있는 인물로 통했다. 업무적인 권한과 사람들의 경외심을 함께 즐겼고, 자신이 응당 누려야할 자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치고 올라갔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동안 유능하고 쾌활하고 싹싹하고 사교적인 남자, 하지만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엄격하게 실행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높은 양반들이 그의 의무로 생각하는 일,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 시절에도, 어른이 된 뒤에도 그는 결코 남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었지만, 파리가 빛에 끌려들 듯 지체 높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의 천성이었다. (p42)
훌륭한 관리라는 평판 속에 승승장구하던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당히 좋은 가문에 약간의 유산, 못생기지 않은 편인 외모를 갖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가정도 이룬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곧 서로에 대한 원망과 간섭으로 점철되고, 가정은 그저 더 많은 연봉과 더 큰 집을 강요하는 빚쟁이에 지나지 않는 곳이 된다. 하지만 뜻밖의 기회를 잡아 그는 만족스러운 연봉을 보장하는 새로운 직책을 따낸다. 더불어 그와 아내의 허영에 걸맞는 집을 찾아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간다.
사실, 그 집의 실내장식은 그다지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 많지 않으니까 독특한 멋은 부릴 수 없고, 따라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흉내 내는 데만 성공할 뿐이다. 그들의 집에는 어김없이 다마스크 천으로 만든 시트와 식탁보, 흑단 목재, 화분, 깔개, 둔탁한 빛을 내는 청동 제품 따위가 갖추어져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두는 것들이다. 이반 일리치의 집도 다른 사람들의 집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했지만, 그의 눈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집처럼 보였다. (p60~61)
이반 일리치는 다시 만족스럽고 충실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도회를 열어 상류층 명사를 초대하고, 유력인사나 젋은이들의 방문을 받으며 과시하는 번지르르한 삶.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인생은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p66) 하지만 집 수리 중 사다리에서 삐끗하며 부딪힌 옆구리 통증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유명하다는 의사의 진료를 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이제 고통은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를 힘들게 하고 만다.
하루하루가, 아니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거나 동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누구의 이해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혼자 그렇게 살아야 했다. (p79)
주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이라는 엄숙하고 무서운 행위를 (마치 누군가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객실에 들어온 것처럼) 우발적이고 불쾌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사건 정도로 끌어내린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흉은 바로 그가 평생 동안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바로 그 예의범절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99)
그는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며 무력감과 절망 속에 천천히 죽어간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가 그렇듯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등을 들쭉날쭉 오가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발버둥친다. 그럼에도 그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배변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고, 젊은 하인의 어깨에 다리를 올려놓지 않고서는 잠도 자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요즘 들어 그는 자신이 직접 꾸민 객실?그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바로 그 객실?에 자주 들어가보곤 했다. 그때 창문 모서리에 부딪힌 것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객실을 위해 그는 목숨을 바친 셈이었다(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p91)
그가 이처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관심은 다른 데 쏠렸다.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한 계산에 분주할 뿐, 시시각각 이반 일리치의 목을 조아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끝없는 고통에 무심했다. 그의 죽음을 앞두고도 가족과 사윗감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오페라 극장에 나서고, 그 젊음과 생명감에 대비되는 자신의 고통 속으로 그는 더 큰 절망에 빠진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가 병을 앓은 지 석 달이 지나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가 법관 자리에서 곧 물러날 것인가 어떤가에만 쏠리게 되었다. 그의 아내와 딸, 아들, 친지들, 의사들, 하인들도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은 바로 이반 일리치 자신이었다. 그가 언제쯤이면 세상을 떠나 그의 존재가 야기하는 불편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마침내 해방시켜주고, 그 자신도 고통에서 해방될 것인가가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p93)
자신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력함, 끔찍한 고독, 인간의 잔인함, 신의 잔인함 그리고 신의 부재를 한탄하며 흐느껴 울었다. “주여,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왜 나를 이 세상으로 데려왔습니까?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괴롭히십니까?”(p115) 상상 속에서 그는 즐거웠던 인생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즐거웠던 인생의 좋았던 순간들 가운데 어떤 것도 이제 와서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즐겁거나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p116)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났건만,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지겨워질 뿐이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p117~118) “그게 우리 탓인가요?” 리사가 어머니한테 말했다. “꼭 우리 탓인 것 같잖아요! 아빠가 가엾긴 하지만,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하죠?” (p124) 이반 일리치는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후회와 상념, 원망과 분노에 빠진다. 그리고 체념과 화해, 용서로 승화되다 다시 분노 속으로 내동댕이 쳐지기를 반복한다. 드디어는 죽음에 대해 묻고 스스로 답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일, 즉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지위 높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과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가벼운 충동을 느껴도 당장에 억눌러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직무도, 생활도, 가족에 대한 약속도, 사교상의 관계는 물론 업무상의 관계도 모두 가짜였을지 모른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지만, 자기가 변호하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변호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반듯이 누운 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에 먼저 하인을 보았고, 다음에는 아내를 보았으며, 다음에는 딸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의사를 보았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것들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기 자신, 즉 그의 인생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가짜이며, 삶과 죽음을 덮어버린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은 육체적 고통을 열 배나 가중시켰다. 그는 신음하며 마구 뒹굴었고, 숨이 막혀서 옷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아내와 딸과 의사를 증오했다. (p125~126) 마지막 사흘간 계속된 고통, 그 끝에 그는 깨닫는다. 그의 여윈 손에 입맞추며 기도하는 막내아들을 보며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톨스토이가 58세(1886년)에 발표한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대작들 대비 짧지만 대표작 목록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혁명 전 러시아의 부패한 사회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장 강력한 비판이 담겼다는 평가가 많다. 해설에서 작가 이문열은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 캐릭터, 스토리, 진행 모두 사실상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하면서도 두 작품 모두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작가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양대 거봉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신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다. 거기다가 80세의 고령을 누리면서 남긴 문화적 유산과 일화도 많아 그를 짧게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톨스토이에 관해 알고 싶으면 역시 시간을 따로 내기를 권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p134)
메멘토 모리의 훌륭한 전통 안에 자리 잡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 카드놀이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의 저자, 인생학교 설립자)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완벽하며 또한 가장 정교하다. - 블라지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저자)
[리뷰] 그저 무심하기만 한 죽음 - 잭 런던 「불 지피기 To Build a Fire」
한 사내가 영하 80도의 맹추위에 유콘강을 따라 길을 나선다. 봄이 오면 상류에서 통나무를 베어 강으로 옮기는 경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거리는 한나절 걸으면 되는 정도, 그는 비스킷 빵을 점심 삼아, 늑대개를 동행 삼아 길을 나섰다.
몸을 돌려 길을 계속 가다가 그는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침을 뱉었다. 침이 날카롭게 파열음을 내며 얼어붙어 그를 놀라게 했다. 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자 채 눈에 떨어지기도 전에 침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마이너스 50도에서는 침이 눈 위에서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중에서 얼어붙는 것이었다. 마이너스 50도 이하는 분명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추운지는 몰랐다. (p197)
그는 소위 ‘체카쿼’라고 불리는 신참일 뿐 바보가 아니었다. 빈틈없고 재빠른 ‘빠릿빠릿한’ 사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하고 ‘영하 80도’라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다면 설명이 될까. 이미 추위에 감각 없는 광대뼈와 코를 문지르면서도, 뱉은 침이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붙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대단한 추위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입김이 얼어 수염에 고드름처럼 늘어져도.
확실히 추운 날씨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이 이 지방엔 때때로 무시무시한 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는 노인을 비웃지 않았던가! 이는 아무도 세상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알려주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p205)
영리하게도 사내는 이런 추위에도 제대로 얼지 않은 강의 위험을 잘 피해 점심 무렵까지도 무사히 일정을 소화했다. 쉴 틈 없이 강 주변의 지형과 위험, 특이점을 살피며 꼼꼼히 기억해두면서. 하지만 대개의 사고가 그렇듯 미숙함과 부주의가 불운의 시작이었다.
불은 잘 탔다. 이제 안전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충고를 기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이 노인은 아무도 마이너스 50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클론다이크 지방을 혼자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매우 진지하게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래, 그가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기 살아 있다. 혼자이지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저 노인네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여자 같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라면 겁을 내지 말아아 한다. 그리고 그는 멀쩡했다. 정말 사내대장부라면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p209)
그러나 그가 신발 끈을 자르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잘못 아니면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전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나무가 없는 빈터에 불을 피웠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 잔가지를 끌어다가 불에 직접 던지기가 훨씬 쉬웠다. 그가 나무 아래에서 불을 피웠는데, 그 나무는 그 큰 가지 위에 눈을 이고 있었다. 몇 주일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잔가지를 끌어모을 때마다 진동이 생겨 약간씩 나무가 흔들렸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진동이었다. 저 높이 있는 나뭇가지에서 눈이 쏟아져내렸다. 이 눈이 그 아래쪽의 나뭇가지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거기에 있던 눈도 또 쏟아져내렸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나무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결국 눈사태처럼 커지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사나이와 불을 덮쳐버렸다. 불은 꺼지고 말았다. (p210)
어떻게든 저녁식사 전에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려는 사내는 점심 때 잘 피운 불을 서둘러 버리고 길을 재촉하다 젖은 군화를 깨닫는다. 다시금 얼어가는 손으로 어렵게 불을 지피지만 눈 쌓인 나무 밑인 탓에 결국 반쯤 녹은 눈을 뒤집어쓴다. 불은 꺼지고 이제 몸에는 감각이 사라졌다. 성냥을 켤 수 없을 정도로 얼어 감각이 사라진 손으로 간신히 켠 성냥은 기침에 꺼지고, 다시 붙인 군불은 부주의로 또 꺼졌다.
사나이는 조심스럽지만 둔한 동작으로 불을 간수했다. 불은 생명을 뜻하기 때문에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몸 표면에 피가 없어 그는 오한이 났고, 그래서 동작이 더욱 둔해졌다. 꽤 큰 새파란 이끼 덩어리가 작은 불 바로 위로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이끼를 꺼내려고 했으나, 몸이 떨렸기 때문에 이끼에서 빗나갔고, 그 결과 그나마 작은 불 한가운데를 헤집어놓고 말았다. 타던 풀과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시 이것들을 집어 모으려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뭇가지들은 다시 모을 가망이 없을 정도로 산산이 흩어졌다. 하나씩 연기를 피식 내고는 나뭇가지의 불이 꺼졌다. 불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p215)
개를 보자 야만적인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를 만났을 때 소를 죽여서는 그 사체 안에 기어들어가서 목숨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개를 죽여서 따뜻한 몸 안에 손을 묻으면 손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새로 불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p216) 그러나 개의 몸통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있는 것 이외에 사나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개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무력한 두 손으로는 칼집에서 칼을 빼서 손에 쥘 수도 없었고 개의 목을 조를 수도 없었다. 그가 개를 놓아주자 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계속 짖어대면서 미친 듯이 튀어 달아났다. 마흔 걸음쯤 물러나서는 멈춘 다음 두 귀를 쫑긋 앞으로 세우고 호기심을 갖고 사나이를 관찰했다. (p217)
이제 사내는 자신이 불을 다시 켤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개를 죽여 몸을 덥히려는 참혹한 생각까지 했지만 역시 그 몸으로는 어림없는 일. 추위에 노출된 얼굴과 손을 시작으로 감각이 사라지고 몸속의 피가 점점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그를 엄습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희미하긴 했지만 죽음에 대한 중압적인 공포가 사나이에게 다가왔다. 이번 일이 단순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언다든지 혹은 손발을 잃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사의 문제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자 그는 힘이 빠졌다. 방향을 틀어 수로 바닥을 넘어 오래된 희미한 길을 따라 뛰었다. 개가 합세하여 그를 따랐다. 평생 몰랐던 공포를 느끼며,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었다. (p218) 그는 달리고 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이미 관속에 들어가 앉은 상태였던 그다. 달리기로 몸의 피가 빨리 돌기보다 오한이 덮쳐오는 게 더 빨랐다.
이번에는 그에게 오한이 좀 더 빨리 닥쳤다. 동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중이었다. 동상은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다시 달렸지만, 100피트 정도 달리고는 멈추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최후의 고통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자제력을 회복했을 때, 그는 앉아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른 식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니라 목이 날아간 채 뛰어다니는 닭처럼,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글쎄, 어쨌든 얼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그 사실을 점잖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리라. 이렇듯 새로 찾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처음으로 희미한 졸음이 다가왔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다가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취당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얼어 죽는 것이 사람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더 험하게 죽는 방법도 많지 않은가. (p220~221) 공포와 환각,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 그렇게 끝이다. “노인장 말씀이 옳았소. 당신 말씀이 옳았던 것이오.” 사나이는 노인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사나이는 평생 맛본 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를 쳐다보면서 앉아 기다렸다. 짧은 낮이 거의 끝나면서, 긴 황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