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많은 '쭈구리'가 있다>

  ‘어쩌다 쭈구리’. 제목이 재미있었다. 표지 안쪽에 있는 작가와 책 주인공 퍼그가 함께 찍은 사진도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약 1년 반 전부터 베토벤이라는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초보 견주인 나는 또 다른 초보 견주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아 ‘어쩌다 쭈구리’를 펼쳤고, 작가와 반려견 쭈구리의 일상이 생생하고 재미있어 단숨에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을 보며 나는 끊임없이 웃었다. 사고뭉치 쭈구리의 행동이 베토벤과 너무 비슷해서였다. 베토벤은 우리 집에 와서 쭈구리처럼 한동안 여기저기 똥과 쉬를 싸놓고, 방석을 물어뜯었다. 빗질이 싫다고 도망 다니다 털이 엉켰고 결국 다 밀어버려 볼품없이 되었었다. 엄마와 아빠는 쉬가 묻은 무거운 카펫을 여러 번 세탁하셔야했다. 새 방석과 앙상한 몸을 가리기 위한 옷을 사야해서 경제적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베토벤이 사고를 칠 때마다 부모님과 내가 한 행동도 작가와 비슷했다. 큰 소리로 주의를 주기도 하고 신문지를 길게 말아 테이블을 팡팡 치며 위협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문제 행동을 고친 것은 큰 소리도 신문지 방망이도 아니었다. 배변패드에 쉬를 하면 간식을 주었다. 빗질을 할 때는 중간 중간 부드럽게 쓰다듬고 뽀뽀를 해 주었다. 방석보다 푹신한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그랬더니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 않을 것 같던 베토벤의 문제 행동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쭈구리가 작가에게 동생과 누나라는 가족애를 느낀 후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 가족이 베토벤에게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베토벤도 우리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없는 관계에서 훈육이 성공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처음에 쭈구리와 베토벤은 가족이 될 사람들에게 못된 행동만 했을까? 개들은 후각이 발달해서 사람의 질병과 기분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아채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한동안 내 마음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순간 깨닫게 되었다. 내 무릎 위에서 자고 있는 베토벤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편한 자세로 자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무엇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답을 얻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했는데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다.

  바로 상처였다. 쭈그리는 세 번이나 버림을 받았다. 이민을 간다고, 코를 곤다고, 번잡하다고. 똘똘이였다가, 이름이 없었다가, 번잡이였다가 그렇게 쭈구리가 되었다. 가족이 네 번이다 바뀌었으니 가족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베토벤은 아주 아기일 때 우리 집에 왔다. 아직 아무런 준비되어 있지 않은 아기가 엄마와 헤어질 땐 어떤 기분이었을까. 분명 매우 슬프고 두려웠을 것이다. 베토벤은 잘 때 방석 끝을 물고 앞발로 무엇인가를 꾹꾹 누르는 행동을 하는데, 젖을 충분히 빨지 못해서 남아 있는 행동인 것 같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렸다. 이런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낯선 환경을 어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유를 찾고 보니 그동안 호통치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던 것이 많이 미안했다.

  쭈구리와 베토벤뿐만 아니다. 아직도 많은 강아지들이 버려지고 매 맞고 상처 받는다. 여러 동물보호단체에서 유기견들을 보호하고 유기견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좋지 않은 소식은 종종 들려온다. 번식견의 존재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해결 방법은 있다고 한다. 법을 강화하고 제도를 개선하며 교육을 통해 시민의식을 높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성숙한 반려견 문화가 정착해서 상처 받는 강아지들이 사라지고, 혹 상처 받은 아이들이 있더라도 그 아이들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베토벤을 펫샵에서 돈을 주고 사 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베토벤을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하지만 내가 생명을 사 온 행위는 덮어버리고 싶은 내 인생 최악의 행동이다.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떠맡기듯 버리는 황 선생으로부터 쭈구리를 데려온 작가를 보며 ‘어떻게 그렇게 충동적으로 생명을 데려올 수 있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작가의 그러한 행동이 나보다 더 순수하고 덜 불량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유기견을 입양할 수 있는 어플과 보호센터를 소개해 주며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으로 내 잘못을 만회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내 무거운 마음은 1g도 줄지 않는다.

  책을 덮으며 과거의 상처로 힘들었을 쭈구리가 결국엔 좋은 주인을 만나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쭈구리를 차가운 화장실에 며칠씩 두거나 아이들이 함부로 만지게 해서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사람이 먹는 짜고 단 음식들을 줘서 쭈구리를 아프게도 하고, 멋있지 않은 쭈구리라는 이름도 지어버렸지만 그래도 괜찮다. 쭈구리의 말썽에도 하하 웃어버리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넓은 마음을 가진 주인과 사는 쭈구리는 참 행복한 강아지다.

  그런데 책을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오히려 작가가 쭈구리라는 좋은 강아지를 만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쭈구리의 뒷모습 사진으로 끝난다. 사진 아래에는 ‘인간을 길들인다는 건 너무 어려워. 내가 그냥 이쁜이한테 길들여져 살아야할까 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정말 그렇다. 베토벤이 집에 온 첫날 나는 견주로서 베토벤을 정성껏 보살펴 주고 사랑해 주겠다고 다짐을 단단히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베토벤이 나에게 주는 것이 더 많다고 느낀다. 공부할 때는 기다려 주고, 학교에 다녀오면 늘 같은 모습으로 반겨 준다. 아픈 날에는 가만히 옆에 누워 공을 던져 달라고 보채지도 않았다. 강아지는 어쩌면 숙제가 가득한 세상을 씩씩하게 풀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가 보내준 천사가 아닐까? 쭈구리와 베토벤같은 천사 강아지들이 오랫동안 사람의 곁에서 함께 해 주길, 그리고 그런 천사 강아지를 알아보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