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들 -------------------------------------------------------------------
이번호 특집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과연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지 따져본다. 코로나19 사태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전환에 있어 그동안 해법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각오와 접근을 요구하는바, ‘K-방역’의 성과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맹아를 도출하는 동시에 그 성과에 가려진 돌봄노동, 학교 및 농촌 현실에 귀 기울이는 필자들의 논의가 긴요하다.
먼저 문학평론가 황정아는 팬데믹하의 한국 상황을 민주주의 심화와 연결해 논의한다. K-방역에 대한 국내외 평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문제의 핵심은 통제와 자유의 대립, 혹은 동아시아적 체제 순응성과 서구적 개인의 권리의식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촛불혁명을 경유한 집단적 주체의 형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팬데믹 사태 속에서 국가의 개입을 수용함과 동시에 그 개입에 대한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통제” 능력을 발휘한 촛불시민의 역할을 평가하는 가운데 ‘커먼즈’(commons)와 ‘우애’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사회학자 백영경은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을 통해 돌봄노동에 대한 재평가 없이는 코로나19 이후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생태적 체제전환을 위해서는 돌봄민주주의의 실현이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돌봄이 주로 여성들이 떠맡겨지고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현 상황도 문제지만 돌봄의 의미가 특정 노동 영역으로 축소된 것 또한 위기로 진단하면서, 돌봄을 성장주의에 저항하는 가치로서 확장해 다양한 세력들과 연대할 필요성을 전한다.
교육 활동가 이하나는 학교가 입시를 위한 무한경쟁의 장인 것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 사회를 결정적으로 지탱하는 영역 중 한곳임에도 그만한 중요성이 부여되지 못했던 학교 생태계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확장, 특히 학생들의 목소리를 잘 새기는 것이 관건임을 일깨운다.
농민과 농업 문제를 천착하는 정은정의 글은 학교급식과 친환경농업의 관계, 농촌의 심각한 인력부족과 이주노동자 수용 문제, ‘한국판 뉴딜’로 제시된 농·수·축산업의 디지털 기술화와 현실적 괴리 등 여러 이슈를 코로나 상황과 연관해 논의한다. 특히 “코로나19 이전에도 없었던 농민과 환경을 위한 농업정책이 코로나19 이후에 갑자기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완벽한 착각”이라는 지적은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 일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과 기본소득---------------------------------------------------------
대화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논란 끝에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계기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기본소득을 주제로 삼았다. 경제학자 이일영의 사회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김현우,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홍식이 참여했다. 재난지원금의 의의, 기본소득의 효과 및 기존 복지체제와의 관계, 자본주의 변화 속에서의 의미, 청년기본소득 등 여러 면모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다. 기본소득의 주요 쟁점이 무엇이며 어떤 입장들이 충돌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해볼 좋은 계기이다.
논단 -------------------------------------------------------------------------------------------------
이번호 논단은 다양한 주제로 풍성하다. 먼저 정치외교학자 이정철은 하노이회담 노딜부터 최근까지의 한반도 정세를 찬찬히 복기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볼턴 회고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들을 활용해 지난 과정에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정상회담 바로 아래 수준의 회담’ 가능성을 내비친 7·10 김여정 담화를 계기로, 강대국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행기적 자율성을 추구하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 필요성을 역설한다.
영문학자 한기욱은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드러난 ‘체제적 인종주의’의 의미를 미국문학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플로이드가 되풀이한 “숨을 쉴 수 없어”라는 말이 노예제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들 대다수에게 절절히 닿는 언어라는 것에 주목하여, ‘더글러스 자서전’과 『미국의 아들』에 대한 실감나는 논의를 통해 인종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와 맞물려 있는 지점들을 예리하게 짚는다. 현재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항의운동을 새로운 양식의 인종주의에 대한 뜻깊은 대응으로 평가하되,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큰 시야의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남기정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일관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해왔는지를 살핀다. 그 속에서 양자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한일관계에서 ‘1965년 체제’를 극복하는 것, 구체적으로 한일 간에 이미 진행된 바 있는 역사인식 진전과 평화 확대의 역사를 계승·재개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영문학자 박여선은 최근 출간된 백낙청의 저서들을 통해 저자가 평생 펼쳐온 사유의 모험을 평한다. 로런스를 ‘개벽사상가’로 규정하는 것이 백낙청의 이론과 실천에서 어떤 의미인지,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여러 각도로 짚는다. 한편 통찰력 있는 발언으로 꾸준히 사회참여를 이어온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의 기고문은 우리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을 ‘우애’ 개념으로 풀어가는바, 간결함 안에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현장 -------------------------------------------------------------------------------------------------
현장란은 익숙한 주제 속에서도 늘 새롭고 날카로운 문제를 끌어올리는 리베카 솔닛의 글을 소개한다. ‘팬데믹과 마스크 쓰지 않는 남자들’이라는 제목하에 팬데믹 상황에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이를 더 악화시키고 또 차별적 희생을 강요했는지를 지적한다. 극대화된 남성성과 백인 중심주의의 화학작용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면서,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보편적 인권과 절대적 평등으로 응답해야 함이 특유의 예리한 문체로 이야기된다.
창작: 시ㆍ소설 -------------------------------------------------------------------------------------
창작란에는 먼저 여러 세대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12인 시인의 신작을 담았다. 각자의 개성이 오롯한 시편들이 새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듯하다. 소설은 공선옥 임현 최민경 김유나의 단편을 소개한다. 나날이 각박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현실 앞에 무력한 듯 보이면서도 끝내 만만치 않은 생명력을 암시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담겼다. 코로나19 시대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들도 실려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작가조명ㆍ문학평론ㆍ문학초점 -------------------------------------------------------------------
장구한 작업 끝에 역작 『철도원 삼대』를 내놓은 황석영 작가를 김형수가 작가조명을 통해 만났다. 황석영 소설세계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지닌 필자의 종횡무진한 해석이 경륜과 새로움의 감각을 겸비한 황석영의 발언과 어우러져 우리 문학사는 물론이고 현대사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갖는 커다란 의의를 실감케 한다.
김영희의 문학평론은 백무산의 시를 중심에 두고 “‘자본의 시간에 포획된’ 현실”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살피고, 또한 다른 미래를 말하려 애쓴 흔적이 작품에 어떤 ‘관측’과 ‘생명의 감수성’을 남겨놓았는지 추적한다. 더불어 몇몇 젊은 시인의 시들에서 새로운 노동시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문학초점에서는 평론가 오연경 전기화, 시인 안현미가 박선우 조우리 김성중의 소설과 고형렬 양안다 박혜빈의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계절에 주목할 신작이 각자의 시각에서 흥미롭게 논의된다.
산문ㆍ촌평 -----------------------------------------------------------------------------------------
독문학자 정지창의 산문은 얼마 전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고(故)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다. 고인과 교분이 두터웠던 필자가 고인의 삶을 차분하면서도 생생하게 소개하는데, 『녹색평론』 발행을 비롯한 여러 헌신적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 고인의 일생과 글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알 수 있는 귀한 이야기다.
촌평은 창비가 세계와 만나는 또다른 창이다. 근현대사와 남북관계, 인권, 과학 등 다양한 주제의 서평 열편을 실었다.
문학상 발표 ----------------------------------------------------------------------------------------
제38회 신동엽문학상의 심사경위와 심사평을 발표한다. 수상작은 주민현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 김유담 소설집 『탬버린』이다. 2020 창비신인문학상의 심사평과 수상자 유혜빈(시), 김유나(소설)의 수상소감도 실렸다. 아울러 제35회 만해문학상의 최종심 대상작 목록과 심사평도 이어진다. 만해문학상 수상작은 본지 겨울호에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