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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의 상상력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 동녘 | 2020년 08월 10일 리뷰 총점9.7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9점
편집/디자인
4.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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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444g | 140*210*30mm
ISBN13 9788972979616
ISBN10 8972979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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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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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2014년 7월 만성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건강했던 과거와 아픈 현재 사이에서 방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질병과 장애에 관한 수업을 듣고 학내 장애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장애와 질병의 경계, 그 경계를 구성하고 공고히 하는 권력을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은 경제학과로 입학했지만, 관련 공부를 이어나가고자 문화인류학을 이중 전공하고, 문화인류학과 학부-대학원...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2014년 7월 만성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건강했던 과거와 아픈 현재 사이에서 방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질병과 장애에 관한 수업을 듣고 학내 장애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장애와 질병의 경계, 그 경계를 구성하고 공고히 하는 권력을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은 경제학과로 입학했지만, 관련 공부를 이어나가고자 문화인류학을 이중 전공하고, 문화인류학과 학부-대학원 연계과정 중에 있다. 학내외에서 여러 활동에 조금씩 참여했지만,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의 24대 회장과 장애인권위원회 5, 6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장애인권 활동에 가장 열심히 참여했다. 2019년 2월부터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다. 오로민경 작가의 전시 ‘영인과 나비’에 글과 물품들로 함께했고, 전시 연계 프로그램 ‘공감각 운동회’의 패널로 참여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로 아픈 몸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의 〈아픈 몸, 무대에 서다〉 연재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여러 매체에 조금씩 글을 실었다. 아픈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건강이 아닌 난치가 세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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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67~268

출판사 리뷰

질병과 장애, 청춘과 나이듦, 정상과 비정상
이분법의 폭력을 깨부수는 새로운 경계인의 탄생!


가장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의 여름, 저자는 발음조차 낯선 크론병을 진단받는다. 면역계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과잉 면역 반응을 일으켜 소화기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늘었고 수시로 몰려오는 통증에 조퇴와 결석을 반복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수술, 지리멸렬한 요양, 그리고 외로움이 스무 살의 전부였다. 그러나 아픔은 자주 묵살되었다. 사람들은 휠체어 같은 보장구를 하지도,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저자의 몸을 비장애인의 몸과 동일시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저자에게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시기를 강요하거나 군 면제를 받은 저자를 건강한데 군대까지 안 가는 ‘신의 아들’이라며 비아냥댔다.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저자가 오래 일했던 장애인권동아리의 회장으로 출마한 날, 저자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사람들은 저자를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장애인’으로 변덕스럽게 취급했다. 한 노인으로부터 ‘젊으니 금방 나을 것’이라는 무례한 훈수를 듣거나 상대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사실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걸 설득해야 했다. 청춘이지만 청춘이 아니고,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몸, 멀쩡한 면역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하는 비정상의 몸.

이 책은 사회가 정의한 어느 곳에도 들어맞지 않는 그 몸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명확한 소속이 없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말한다. 질병과 장애, 청춘을 응시하는 저자만의 독특한 사유는 사회가 휘두르는 이분법의 횡포 사이, 그 좁은 틈을 비집고 태어났다. 1장은 질병이 저자에게 불행이었던 이유를 추적한다. 이를 위해 건강했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은 아프면 불행할 것이라고 쉽게 치부하지만 질병이 불행인 데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저자는 편견의 바닥에 있는 그 무엇을 집요하게 쫓아간다.

2장은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정말 정의로운지 묻는다. “아파도 청춘이다”라는 윗세대의 게으른 충고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그런 청년은 없다”고 말하며 경계 자체를 부숴버린다. ‘청년’이란 단어로 간편하게 뭉개지는 문제들을 낱낱이 들춰내고 나아가 ‘청춘’이라는 단어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3장과 4장은 타인의 몸을 함부로 의심하는 사회와 약자에게 질병과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를 아픈 사람의 위치에서 해석하고 비판한다. ‘질병’과 ‘장애’가 세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시도는 우리에게 인식의 도구로서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5장은 저자가 질병을 고백하게 된 계기와 그치지 않고 아픔을 외치는 이유를 썼다. 저자는 염증과 고통의 기록을 남기고 신음을 내뱉길 주저하지 않는다. 글과 말로 아픔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행동이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이를 표현하는 시작이 되길 바랐다. 저자의 말처럼 “몸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가 모인다면, 세상은 흔들릴 것이다.”

스물여섯, 첫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이 바짝 선 성찰과 예민한 감각이 책 곳곳에 녹아있다. 2019년의 겨울부터 올 여름의 초입까지, 짧은 시간 내 이 정도로 밀도 있는 글을 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이미 자신만의 사유와 이야기로 중무장한 완성형 작가임을 증명한다. 경계와 차별, 배제가 난무하는 사회, 그 모든 구분과 분할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저자가 우리 곁에 도착했다. 저자만의 사유의 파동, 성찰의 맥박을 함께 뛰는 일은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것보다 더 격동적인 읽기가 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도둑맞은 청춘’을 이야기하다!


밀레니얼 세대, 힙스터, 포노사피엔스... 이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건 단 하나, ‘청춘’이다. 청춘은 시대에 따라 얼굴만 바꾼 채 청년들을 테두리 안에 가둔다. ‘건강’, ‘젊음’, ‘열정’ 등 청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그 좁은 원에서마저 추방된다. 스무 살의 여름, 크론병이라는 희귀 질환을 진단받은 저자는 청춘의 첫 번째 기준인 ‘건강’에서 탈락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청춘에 합격하고 싶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열정’ 넘치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아픈 몸으로는 계속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장애학을 만났다. 영영 낙오되었다고 생각한 저자에게 장애학은 몸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가 되었다. 그제서야 보였다. 청춘의 폭력이 말이다.

최근 청년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열쇳말은 ‘헬조선’이었다.(...)‘3포’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는 연애, 결혼, 출산에서 이득을 얻는 이를 청년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과 경력 단절의 위험에 놓인 한국 여성들은 그런 의미에서 청년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p. 24-25

우리가 무책임하게 ‘청춘’을 말할 때 그림자처럼 가려지고 아예 자리조차 없던 존재들이 있다. ‘여성’과 ‘아픈 몸’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압박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간 저자가 맞닥뜨린 청춘의 얼굴은 ‘건강한 남성의 것’이었다.

청춘은 또한 기만이었다. 인턴 자리조차 구하지 못한 친구들은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초조한 표정으로 부러워했다. 휴학을 앞둔 친구는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했다. 건강했다면 저자 역시 취업 준비에 매진하거나 유예된 시간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아픈 몸은 청춘이란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진짜 청년들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청춘의 낭만 뒤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청년들을 사용하려는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저자는 소속 없는 삶, 돈을 벌지 못하는 기간을 두려워하는 청년들의 불안에서 그들을 착취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정확히 간파해낸다. 한 번도 오롯이 청년들의 것인 적 없던 ‘청춘.’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몸, 소속 없는 이들이 말끔히 청소된 자리에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무장하는 청년들만이 남았다. 그래서 그 구조에 들어가길 당당히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의 속도로 살겠다는 저자의 외침은 착취 사회의 힘줄을 끊는 날선 칼처럼 번뜩인다.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에는 ‘삶의 속도’라는 개념이 나온다. 사회는 정상적인 삶의 속도를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그 속도에 맞지 않는 사람은 경주에서처럼 뒤처지게 된다.(...)‘비정상’과 ‘정상’이 공존하고 둘이 잘 구분되지 않는 애매한 인간인 나는 ‘청춘’이 아닌 ‘아픈 청춘’으로 살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생존하기 위해 좀 느리고 아파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아프지만 살아있고, 아프게 살 것이다. p. 26

묘한 희열과 가슴 벅찬 해방감. 저자의 글이 파도처럼 몰고 오는 감정들은 이 글을 읽는 청년들로 하여금 청춘이라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스스로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건강한 사람만 아픈 사람 돌볼 수 있나요?
“우리는 모자母子가 아니라 환우患友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로운 가족의 탄생!


그동안 대부분의 돌봄은 여성의 몫이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딸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익숙한 지옥이 반복됐다. 그런데 책엔 아픈 아들인 저자를 간호하는 어머니가 나온다. 자녀의 건강을 엄마의 책임으로 규정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아픈 자식을 낳았다는 추궁까지 받아야 했다.

어머니에게는 죄책감이 먼저 엄습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아프면 어머니는 그것을 본인의 잘못으로 느꼈다.(...)어머니는 본인이 아프고 바빠도, 내가 아프지는 않을지, 죽지는 않을지 끝도 없이 걱정했다.(...)어머니는 성차별로부터 죄책감만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트라우마도 함께 받았다. p. 19

그러나 어머니도 아픈 사람이었다. 크론병을 가진 아들과 메니에르병을 가진 어머니라는 기묘한 관계는 가족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게 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종기를 달고 살았다. 크론병 진단 후 종기로 고생하던 저자에게 어머니는 그간 쌓아온 자신만의 지식을 나눠주었다. 반대로 어머니가 농양 수술로 힘들어하자 먼저 치료를 받은 저자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가족으로서의 걱정을 넘어 아픈 사람들끼리의 공감과 이해가 반짝이던 순간, 저자는 서로의 눈을 맞추며 질병을 이야기하던 어머니와 자신을 ‘모자母子’가 아닌 ‘환우患友’였다고 회상한다.

저자가 상상하는 ‘환우 가족’은 새로운 종류의 돌봄이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만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몸을 돌볼 수 있다는 편견을 전면으로 반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던 아픈 이야기가 유용한 지식으로 거듭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메니에르병을 가진 저자의 친구들은 어머니에게 먹어선 안 될 것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건강한 친구들은 배가 아프면 저자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한다. 저자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가 가족의 유의어가 될 수 있다면 아픔을 나누고 서로 돌보는 ‘환우’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저자가 모자가 아닌 환우끼리의 즐거운 질병 수다를 나누고 있을 때, 뻘쭘한 얼굴로 둘의 대화를 엿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건강 중심 사회에 ‘환우 가족’이 몰고 올 유쾌한 반격처럼 보인다.

“너 정말 아픈 거 맞아?”
건강이 권력인 세상의 기울어진 운동장!
‘헬스 플레인’은 단호하게 사양합니다


저자는 스물여섯의 청년이고 그의 희귀병은 겉으로 봐선 티가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어딜 가나 아픔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자주 의심받았고 고통은 사소한 것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질병을 노화와 연결 짓는 빈곤한 상상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꾀병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낳은 비극이었다. 젊으니 금방 이겨낼 수 있다는 말, “안 아파보이는 데 왜 그래?” 같은 친구의 물음 등은 공감이나 응원이 아닌 비하에 가깝다. 저자는 이렇게 타인의 아픔을 존중하지 않거나 쉽게 넘겨짚는 행위를 이른바 ‘헬스플레인’이라고 말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맨스플레인’처럼 ‘헬스플레인’은 건강이 권력인 세상에서 아픈 이들이 수시로 당해야 하는 횡포다.

“안 아파 보여서 미안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애써 건강한 척 해야 했던 저자의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한 만성 희귀 질환자가 쓴 일기에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프단 걸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워 더 강한 척을 했고 자신 때문에 눈치를 볼 이들에게 미안해 일부러 아픔을 농담거리 삼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꾸며내야만 하는 이런 행위를 주류에 부합하도록 억지로 연기하는 ‘커버링’과 연결 짓는다. “충분히 아파 보이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저자의 질문은 ‘건강 권력’을 가진 자와 아픈 몸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아픔이 과하게 대접받기도 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구속 수사 중 지병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여론은 그를 동정하며 검찰을 비난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연민 역시 질병과 장애는 불행하고 약한 것이라는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픈 사람을 주체가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만 축소하기 때문이다. 엑스트라와 다름없는 ‘깍두기’와 마찬가지다. 아픈 사람에게 쏟아지는 지나친 배려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성원권조차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저자는 비질환자, 비장애인이 아픔에 대한 편견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들이 언제든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는 점도 날카롭게 일갈한다. 사람들은 신체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 극적인 증상의 환자 앞에서 ‘취급 주의’라고 써진 택배를 다루는 것처럼 자주 조심스러워 한다. 발 벗고 도와주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픈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의심과 보호 사이, 그 미묘한 간극에 있는 감정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위선을 벗겨낸다. “타인의 몸을 의심할 권리는 없다.” 글의 마지막 문장이 얼굴을 부끄럽게 한다.

내 ‘징징거림’이 누군가의 첫 마디가 될 수 있게
우리에겐 더 많은 ‘질병 언어’가 필요하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개설한 모든 SNS에 아픈 이야기를 쓴다. 대화 주제로 질병을 꺼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크론병은 소화기 질환인 탓에 소재는 주로 피와 땀, 배설 같은, 사람들이 더욱 꺼리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고통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건강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던 시절, 저자 역시 페이스북 친구가 끈질기게 올려대는 투병기가 괴로워 관계를 끊어버린 적 있다. 그러나 곧바로 후회했다. 아픈 이야기를 차단하는 그 행위가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건강 중심 주의의 재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왜, 어떻게,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종종 포스팅할 생각이다. 단순히 고통의 전시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내 징징거림이 주변의 아픈 누군가가 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 p. 276

화장실에 몇 번 갔는지, 증상이 어땠는지부터 짜증과 슬픔 같은 감정들까지 질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최대한 진솔하게 고백했다. 성실한 기록의 뒤에는 ‘건강’만이 넘쳐나는 세상에 고통의 언어로 균열을 내고자 한 치열함이 있었다. 저자는 또한 자신의 ‘징징거림’이 아픔을 감춰야했던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길 바랐다. 건강의 언어만 남기고 질병의 언어는 삭제해 버리는 건강 중심 사회에, 비질환자와 비장애인의 세상에, 염증과 상처의 기록을 남기는 이런 행위를 저자는 ‘질병 세계의 언어를 풍부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질병과 장애에 대한 침묵과 회피, 터부가 오래 이어진 탓에 질병 세계의 규모는 좁고 작았다. 아픈 이야기를 차단하는 분위기 속에서 질병과 장애의 경험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할수록 약하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가려졌던 존재들이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아가 비질환자, 비장애인이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의존할수록 연결은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아프면 끝장이다”, “믿을 건 내 몸 하나”라는 구호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다른 이와 연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픈 이야기가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질병 세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싶다고,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더욱 안전하게 함께일 수 있다.”

이 책은 아픈 청춘이 써내려간 몸에 대한 기록이자 질병과 장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관찰하고 비판한 보고서다. 저자는 전 세계가 코로나를 물리친 K-방역을 찬양할 때 소리 없이 죽어가던 장애인과 기저질환자들, 청각장애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주겠다며 함부로 장애를 교정하려 든 KT,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를 둘러싼 논란, 박원순 서울시장의 휠체어 ‘체험’ 등 ‘비정상’의 몸을 없애거나 치료해야 할 것으로만 다루는 한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저자에게 정상과 비정상이 교차하는 전쟁터인 ‘몸’은 건강 만능 사회에 맞서 싸우는 탁월한 무기였다. 이 책은 아픈 이에게는 자신의 몸이 언어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감각을, 건강한 이에게는 아픔과 함께 사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건강한 몸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건강만능사회에 저자가 힘주어 내리친 ‘난치의 균열’이 우리 사회에 낼 새로운 파열음이 기다려진다.

추천평

만성질환자 혹은 장애인임을 인정하는 일은 신체 기능에 제약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낮은) ‘신분’에 소속되는 일이다. 허나 저자는 기꺼이 그 신분 공동체로 뛰어들어 언어를 찾고, 나아가 이 ‘신분 공동체’를 확장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 책은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이라는 사회적 담론으로부터 구체적인 질병의 경험을 지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반갑고, 아름답다.
- 김원영 (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세상은 수많은 구분선을 긋고 우리 대부분은 그 어딘가에 속하기를 욕망한다. 그러나 어떤 존재들은 그 구분 자체를 무너뜨린다. 자신을 만성질환을 가진 ‘아픈 청춘’으로 소개한 안희제가 바로 그 경계인이다. 그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 평범한 청춘에서 비켜선 몸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의 글은 복잡한 것을 오직 복잡하게 사유할 때만 이 명료함의 폭력이 끝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의 첫 책을 늘 기다려왔다. 이 사려 깊은 이야기들이 필요한 곳까지 더 멀리 가닿기를 바란다.
- 김초엽 (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몸과 장애인의 몸은 상극의 이미지다. 청년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주체의 몸이며 장애인은 설령 돈이 많더라도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주체가 될 수 없는 몸이다. 청년이며 만성 희귀 질환을 가진 저자의 몸에서 이 모순들이 충돌한다. 그는 우리에게 타인과의 협력을 도모하며 자신의 몸을 배려하는 존재가 될 것을 요청한다. 코로나로 모두가 부자유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우리에게 자유와 주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엄기호 (사회학자,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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