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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ray (로버트 크레이) - Collected [2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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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Robert Cray (로버트 크레이) - Collected [2LP]

[ 180g /게이트폴드 ]
Robert Cray, Albert Collins, Johnny Copeland, Chuck Berry, Tina Turner 노래 외 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usic on Vinyl / Music on Vinyl | 2020년 08월 28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6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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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ray (로버트 크레이) - Collected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0년 08월 28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A1 Too Many Cooks
  • A2 Phone Booth
  • A3 Change Of Heart, Change Of Mind
  • A4 Smoking Gun
  • A5 Right Next Door (Because Of Me)
  • A6 Don't Be Afraid Of The Dark
  • B1 Acting This Way
  • B2 Consequences
  • B3 Just A Loser
  • B4 1040 Blues
  • B5 I Can't Quit
Disc2
  • C1 Love Sickness
  • C2 Time Makes Two
  • C3 Trouble And Pain
  • C4 Great Big Old House
  • C5 You Move Me
  • C6 The Same Love That Made Me Laugh
  • D1 She's Into Something - Albert Collins, Robert Cray & Johnny Copeland
  • D2 Brown Eyed Handsome Man (Hail! Hail! Rock ‘N' Roll / Soundtrack Vers) - Chuck Berry & Robert Cray
  • D3 634-5789 (Live In Europe / 1988) - Tina Turner & Robert Cray
  • D4 Mr. Lucky - John Lee Hooker Band & Robert Cray Band
  • D5 Playin' With My Friends - BB King & Robert Cray
  • D6 Crossroads (Live In San Diego / 1987) - Eric Clapton & Robert Cray

아티스트 소개 (8명)

노래 : Robert Cray (로버트 크레이,Robert William Cray)
블루스, 블루스 락 기타 연주자, 보컬 블루스, 블루스 락 기타 연주자, 보컬
노래 : Albert Collins (앨버트 콜린스)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 연주자, 보컬.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 연주자, 보컬.
노래 : Johnny Copeland (조니 코플랜드,John Clyde Copeland)
텍사스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 연주자, 보컬 텍사스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 연주자, 보컬
192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태어난 척 베리(Chuck Berry)는 록앤롤(Rock & Roll)의 태동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컨추리풍의 곡들을 멋지게 써내며 흑인음악이었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음악이었던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을 ’록앤롤’이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켰다. 당시 이름... 192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태어난 척 베리(Chuck Berry)는 록앤롤(Rock & Roll)의 태동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컨추리풍의 곡들을 멋지게 써내며 흑인음악이었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음악이었던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을 ’록앤롤’이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켰다. 당시 이름만 존재할 뿐 실제적인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록앤롤이라는 장르가 척베리에 의해 정립되면서 이후 1950-1960년대 수많은 록앤롤 밴드들이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살 때부터 기타를 치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그였지만 그의 20대는 미국의 1940-1950년대를 살았던 다른 흑인들처럼 흑인 노동자의 삶에 머물러 있었다.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룹을 결성한 척 베리는 클럽에서 보컬 및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951년부터 1955년까지 클럽에서 알앤비와 록앤롤이 혼합된 사운드에 스탠다드풍의 보컬을 섞어 들려주며 인기를 높여가던 그는 1955년 정식으로 데뷔한다. 체스터 레코드사의 레너드 체스 사장은 그의 노래 ’Ida May’를 듣고 그 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곡명을 ’Maybellene’으로 바꾼 후 레코드로 정식 발매했다. 이 곡은 미국 알앤비 차트 정상에 오르고 전미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1960년까지 척 베리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Roll over Beethoven’(후에 비틀즈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졌다.), ’School days’, ’Johnny b. goode’(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파티 장면에 주인공이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삽입되어지기도 했던 이 곡은 4박의 개념을 깨는 폴리 리듬을 도입하여 록 기타주법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Little Queenie’, ’Sweet little sixteen’, ’Surfin’ U.S.A.’(비치보이스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1961년 최고의 인기와 음악적 명성을 누리던 그는 ’미성년자 추행’ 혐의로 20개월 간 복역하는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된다. 개인적인 실수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인기는 떨어지게 되고 복역 이후 좋은 곡들을 많이 작곡하며 차트에도 여러 곡들을 올려놓지만 1960년대 쏟아져 나온 수많은 록앤롤 밴드들에게 록의 주도권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이후 1972년 < The London Chuck Berry Sessions >에서 ’My ding-a-ling’을 히트시키는 데 그쳤지만 록 음악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과 업적은 인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 ’척 베리가 있었기에 비틀즈가 존재했다’는 후대의 평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록음악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위상과 업적은 수 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을 것이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에서 마음이 따뜻한 팝의 여왕으로! 티나 터너(Tina Turner)에게 있어 1958년부터 18년 동안 지속된 아이크 터너(Ike Turner)와의 결혼 생활은 영욕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로큰롤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부부 듀엣 아이크 & 티나 터너(Ike & Tina Turner)는 영광스런 부분으로 자리하지만 그동안 남편에게 당한 폭력은 쉽게 도려낼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이다. 그녀의 그러... 가정 폭력의 피해자에서 마음이 따뜻한 팝의 여왕으로! 티나 터너(Tina Turner)에게 있어 1958년부터 18년 동안 지속된 아이크 터너(Ike Turner)와의 결혼 생활은 영욕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로큰롤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부부 듀엣 아이크 & 티나 터너(Ike & Tina Turner)는 영광스런 부분으로 자리하지만 그동안 남편에게 당한 폭력은 쉽게 도려낼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이다. 그녀의 그러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악이라는 것을 옛 동료인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의 ’입술’ 믹 재거(Mick Jagger)와 ’팝계의 카멜레온’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티나 터너는 팝 역사상 가장 멋진 ’컴백’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45살이던 1984년, 티나 터너는 자신의 영원한 걸작으로 남게 된 < Private Dancer >를 세상에 공개했다. 알 그린(Al Green)의 원곡을 소울적인 록으로 해석한 ’Let’s stay together(26위)’로 첫 포문으로 연 이 LP는 그 유명한 ’What’s love got to do with it’가 3주 동안 싱글 차트 1위를 지켰고, 전남편 아이크 터너에게 전하는 록트랙 ’Better be good to me(5위)’와 ’Show some respect(37위)’, 그리고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리더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가 작곡한 ’Private dancer(7위)’까지 무려 5곡이 40위안에 랭크되면서 극적인 재기를 선호하는 그래미와 평론가들의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다. 특히 그래미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여가수, 올해의 여성 록가수 부문을 사자 머리(?) 여가수에게 몰아주면서 쌍수를 들며 환영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티나 터너의 성공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프린스(Prince)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록과 리듬 앤 블루스가 적극적으로 결합한 음악의 열매였다. 록 필(feel)이 충만한 그녀의 노래는 백인들에게도 비교적 쉽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의 히트작 < Reckless >에 수록된 ’It’s only love(1985년 15위)’를 함께 불러 인기를 얻은 티나 터너는 1975년 영화 < 토미 >에 출연한 경력을 살려 1985년에 멜 깁슨(Mel Gibson) 주연의 액션 영화 < 매드 맥스 Ⅱ >에 조연으로 등장했으며 동시에 삽입곡 ’We don’t need another hero(2위)’와 ’One of the living(15위)’을 불러 히트시켰다. ’One of the living’으로 2년 연속 그래미 최우수 여성 록보컬을 수상한 이 흑인 록커는 그 여세를 몰아 1986년에 < Break Every Rule >을 공개했다. 필 콜린스(Phil Collins)가 드럼을 연주한 ’Typical male(2위)’을 비롯해 ’Two people(30위)’, ’What you get is what you see(13위)’, ’Break Every Rule(74위)’ 등으로 계속되는 인기를 누렸으며 다음 작품 < Foreign Affair >에서도 ’The Best(15위)’, ’Steamy windows(39위)’같은 싱글을 배출했다. 이렇듯 왕성한 활동으로 1986년과 1988년에도 그래미 최우수 여성 록 보컬리스트 상을 수상하면서 팻 베나타(Pat Benatar)와 같은 이 부문 4회 수상을 기록했다(그러나 연속 수상은 아님). 1993년에는 자서전 < I, Tina >를 바탕으로 한 영화 < 왓쓰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 >이 개봉되었다. 티나와 아이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안젤라 바셋(Angela Bassett)과 로렌스 피시번(Lawrence Fishburne)을 오스카 남년 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은 이 영화로 흑인 사회에서는 다시 한번 ’티나 터너 열풍’이 일었다. 1996년도 음반 < Wildest Dreams >에는 영화 < 007 골든아이 >의 주제가 ’Goldeneye(71위)’, 1984년에 자신의 ’What’s love got to do with it’을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한 존 웨이트(John Waite)의 ’Missing you(84위)’와 트립합의 선두주자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Unfinished sympathy’를 커버했다. 선배의 노래를 밀어냈다는 죄책감에 떨고 있을 후배 존 웨이트에겐 면죄부(?)를 주고 메시브 어택으로부터는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신(新) 감각을 이식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가죽옷과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팝계의 야생마’ 티나 터너의 앨범에는 항상 유명 뮤지션들의 눈부신 세션 참여가 우리의 눈을 잡아끈다. 그녀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음악 재능뿐만이 아니라 주위 동료들로부터 받는 인정도 넘친다. 바로 이것들이 티나 터너가 장수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가 아닐까?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누구도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비탄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왜냐면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쳤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의 전설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가 지난 2001년 6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3세. 그는 거칠고 투박한 보컬과...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누구도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비탄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왜냐면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쳤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의 전설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가 지난 2001년 6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3세. 그는 거칠고 투박한 보컬과 대쪽같이 올곧은 기타로 대변되는 블루스의 원형을 1948년 첫 싱글 ‘Boogie chillen’부터 시작하여 한차례의 변화도 없이 반세기 넘게 줄곧 지켜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비트를 자유자재로 세분화하여 만들어 내는 독창적인 부기 그루브는 그를 ‘부기의 왕(King Of The Boogie)’의 지위에 올려놓았고, 슬프고 애절한 델타 목화밭의 노동요는 그를 ‘진정한 블루스맨’으로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생전에 그가 남긴 100장이 넘는 방대한 디스코그라피와 ‘Boogie chillen’, ‘Boom boom’, ‘I’m in the mood’, ‘Crawling king snake’ 등의 불멸의 고전 등에서 쉽게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게 블루스는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고달팠던 삶의 궤적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항상 어루만지면 위안을 주던 유일한 친구였다. 존 리 후커는 1917년 8월 22일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클라크스데일(Clarksdale)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십대 시절 양아버지인 윌 무어(Will Moore)에게 기타를 배우며 흑인들의 고통과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노예나 다름없었던 비참한 소작농 삶을 벗어나고자 열 네 살 되던 해에 군대에 입영한 것을 시작으로,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의 극장 안내원,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에서의 공장 노동자, 그리고 모타운 디트로이트에서의 자동차 공장 경비원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을 횡단하며 갖은 고생을 겪었다. 물론 그 시기에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델타 블루스의 명맥을 이어갔는데, 점차 대도시로 이동해가면서 기타를 낡고 허름한 어쿠스틱에서 세련되고 큰 소리를 내는 일렉트릭 블루스로 바꿨다. 기타를 교체한 이유는 바쁘게 돌아가는 큰 도시의 생활을 음악으로 반영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고출력의 앰프로 무장한 전기 기타가 필수였다. 이런 후커의 이동 경로와 음악적 변화는 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미시시피 지역의 블루스 뮤지션들과 흑인들에게 이미 이뤄졌던 사항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델타 지역의 목화밭에 목화를 해치는 병충해가 강타하면서 많은 흑인들이 일자리를 잃어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였던 것이다. 시카고가 일렉트릭 블루스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43년 디트로이트에 정착하여 가스펠 싱어와 블루스 연주자로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1948년 주술적인 측면이 강하게 느껴지는 ‘Boogie chillen’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Boogie chillen’은 존 리 후커의 원시적인 보컬과 강한 기타 연주에 힘입어 레이스(Race) 시장(후일 R&B로 바뀜)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미 전역에서 5년 동안 10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부기의 왕은 이 당시에 비비 킹(B.B King),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등이 속해있던 LA의 < 모던 레코드(Modern Records) >와 계약을 체결했다. < 모던 레코드 >는 비하리(Bihari) 형제들이 세운 음반사로 하울링 울프(Howlin’ Wolf), 리틀 월터(Little Walter), 머디 워터스(Muddy Waters)등이 몸담고 있던 시카고의 < 체스 레코드(Chess Records) >와 함께 리듬 앤 블루스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949년부터 1954까지 존 리 후커는 < 모던 레코드 > 산하의 < Acorn Regal >, < Gotham >, < Staff >, < Chart > 등을 포함한 21개의 군소 레이블에서 델타 존(Delta John), 자니 리(Johnny Lee), 자니 윌리엄스(Johnny Williams), 부기 맨(The boogie Man), 존 리 부커(John Lee Booker) 등의 예명으로 70 여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 모던 레코드 >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도어스(Doors)가 리메이크한 1949년 작품 ‘Crawling king snake’, 1951년 리듬 앤 블루스 차트를 주름잡은 ‘I’m in the mood 등이 주요 히트곡들이다. 1950대 중반 로큰롤의 탄생과 함께 존 리 후커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1959년 < Folk Blues >를 시발점으로, 1960년 < That’s My Story >, < I’m John Lee Hooker >, < Travelin’ >, 1962년 < Burnin’ > 등을 연속해서 발표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 Burnin’ >에 수록된 ‘Boom boom’은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음악 시장이 낙관적인 서핑 뮤직과 스탠더드 팝으로 기울면서 점차 잊혀져 갔다. 그를 포함해서 로큰롤의 광풍에 한 축을 담당했던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이 암흑의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고국 미국에서 후커를 기억 속에서 지우고 있을 때, 한편 대서양 건너편의 영국에서는 그의 음악을 연구하고 들으며 새롭게 재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64년 애니멀스(Animals)가 후커의 ‘Boom boom’과 ‘Dimples’를 재해석한 것이 좋은 증거이다. 이는 1960년대 후반 영국에 불어닥친 블루스 리바이벌 붐으로 이어져 존 리 후커를 부활시켰다. 1967년 영국으로 건너간 후커는 < ABC > 레코드사와 앨범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 It Serves You Right To Suffer >, 1년 뒤인 1968년에는 < Urban Blues >, 그리고 1969년에는 < Simply The Truth > 등을 내놓으며 블루스 거장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미국으로 금의환향하여 1971년 부기록 밴드 캔디드 히트(Canned Heat)와 공동으로 더블 앨범 < Hooker ’N’ Heat >(73위)발표했고, 그해 말에는 밴 모리슨(Van Morrison)이 피처링한 음반 < Never Get Out Of These Blues Alive >(130위)를 공개하는 등 예전처럼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70년대 싱어 송 라이터 시대의 개막은 또 다시 존 리 후커를 지하세계로 몰아 넣었다. 블루스맨은 부정기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시름을 달랬고, 1980년 영화 < 블루스 브라더스(The Blues Brothers) >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잠깐 대중들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를 환기시켰을 뿐 20년 가까이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불어닥친 2차 블루스 리바이벌 열풍은 존 리 후커를 과거에서 현재로 화려하게 컴백시켰다. 후커는 자신의 음악인생 40주년이 되는 1989년에 발표한 앨범 < The Healer >(미국 62위, 영국 63위)에 수록된 보니 레이트(Bonnie Raitt)와의 듀엣곡 ‘I’m in the mood’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트래디셔널 블루스 레코딩’ 부분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재기작 < The Healer >는 보니 레이트를 비롯하여 로버트 크레이(Robert Cray),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 로스 로보스(Los Lobos) 등 쟁쟁한 후배뮤지션들이 참여하여 부기의 왕에게 힘을 실어줬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때부터 존 리 후커에 대한 음악계의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조 카커(Joe cocker), 알버트 콜린스(Albert Collins), 라이 쿠더(Ry Cooder), 보 디들리(Bo Diddley), 자니 윈터(Johnny Winter) 등이 출연한 1990년 10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존 리 후커 트리뷰트’ 콘서트, 1991년 1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헌액 등이 그것이다. 후커 역시 고희가 넘은 고령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 Mr. Lucky >(1990년), < Boom Boom >(1992년), < Chill Out >(1995년), < Don’t Look Back >(1997년) 등을 내놓으며 꺼지지 않는 불꽃임을 만방에 과시했다. 존 리 후커는 2001년 6월 21일 세월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영면했다. 그와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비비 킹은 “나는 매우 좋은 친구를 잃었고, 세상은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며 슬퍼했고, 유투(U2)의 보노는 “그의 죽음은 비극이라며”말을 잊지 못했다. 흑인의 고통을 대변했던 블루스, 그 고통의 음악을 껴안았던 존 리 후커. 그는 이제 고통이 없는 낙원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편히 잠드소서.
노래 : B.B. King (비비 킹 ,Riley B. King)
명실상부한 블루스 기타의 왕자이자, 블루스와 로큰롤 역사의 산증인. U2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등 후배 유명 로커들과 공연을 자주 탓에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하울링 울프(Howlin’ Wolf),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등 동시대 블루스맨 중에서도 대중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다. 기타 줄을 들어올리는 그의 벤딩 주법과 탁월한 가창은 흑인 블루스의... 명실상부한 블루스 기타의 왕자이자, 블루스와 로큰롤 역사의 산증인. U2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등 후배 유명 로커들과 공연을 자주 탓에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하울링 울프(Howlin’ Wolf),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등 동시대 블루스맨 중에서도 대중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다. 기타 줄을 들어올리는 그의 벤딩 주법과 탁월한 가창은 흑인 블루스의 한과 고통을 그대로 전달한다. 미시시피 아이티 베나에서 1925년에 라일리 비 킹(Riley B. King)을 본명으로 태어났고 1946년에 멤피스로 올라왔다. 선배 흑인 기타리스트 티 본 워커(T. Bone Walker)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신의 기타를 ‘루실’로 명명한 1949년에 첫 레코드를 취입했다. 이듬해 비하리 형제가 설립한 음반사 RPM과 계약을 체결한 뒤 1952년 ‘Three o’clock blues’, 1954년 ‘You upset me, baby’를 히트시켰다. 1951년부터 1992년까지 리듬 앤 블루스 히트 차트에 올린 곡만도 무려 75곡. 1960년대 말 블루스 리바이벌 시기에 백인 뮤지션들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유명해졌고 1969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hrill is gone’은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198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역시 같은 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적되었다.
# 살아있는 음악 전설 에릭 클랩튼은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음악 전설’이다. 40여 년의 음악 여정 동안 그가 쌓아올린 메리트는 가히 대단하다. 야드버즈(Yardbirds)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레이커(John Mayall`s Bluesbreakers) 시절 블루스의 부흥을 주도했으며, 크림(Cream)의 활동기간 동안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공했고, 재즈와 블루스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솔로로 독립하고... # 살아있는 음악 전설 에릭 클랩튼은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음악 전설’이다. 40여 년의 음악 여정 동안 그가 쌓아올린 메리트는 가히 대단하다. 야드버즈(Yardbirds)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레이커(John Mayall`s Bluesbreakers) 시절 블루스의 부흥을 주도했으며, 크림(Cream)의 활동기간 동안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공했고, 재즈와 블루스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솔로로 독립하고부터는 ‘진짜 블루스’에 접속불가를 외치는 대중들에게 팝 지향적인 ‘달콤 쌉싸름한 블루스’를 패스워드로 내놓아 블루스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그래미 트로피를 13번이나 받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2년 야드버즈, 1993년 크림, 그리고 지난해 개인 자격으로 헌액된 것에서도 클랩튼의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지난해 ‘블루스의 제왕’ B.B 킹(B.B King)과 협연한 작품〔Riding With The King〕으로 이번 그래미 시상식 ‘최고의 트래디셔널 블루스 앨범(Best Traditional Blues album)’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클랩튼은 ‘기타의 신’, ‘슬로우 핸드(Slowhand)’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기타 테크닉에 있어서도 대가(大家)의 경지에 올랐다. 감정을 질펀하게 쏟아내면서도 정확하고 절제된 테크닉을 구사하는 벤딩 주법(일명 쵸킹)과 비브라토는 다른 연주자들이 흉내조차 힘들 정도다. 그의 기타 연주와 관련하여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칭찬 코멘트를 들어보자. “에릭은 정말 재주가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감정과 함께 블루스를 연주한다. 그가 연주할 때 당신은 그것이 블루스라는 것을 알 것이다.” -B.B 킹-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블루스 연주가 뛰어나다. 왜냐하면 그는 블루스를 공부했고, 그것에 대해 당당하기 때문이다.” -제프 벡(Jeff Beck)-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연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하늘에서 치는 천둥번개 같았다.” -존 이써리지(John Etheridge) 하지만 이런 융숭한 대접에 대해 클랩튼은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는 악평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소화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평도 마찬가지다.”며 자신을 향한 관심을 무척 꺼려했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 뮤지션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나같이 연주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자기 스타일로 연주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외보다는 그들만의 길을 개척할 것을 충고한다. 그의 음악과 인생 여로(旅路)가 굴곡이 심했기에 그 말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 전설의 시작 에릭 클랩튼은 1945년 3월 30일 영국 서레이(Surrey)주의 리플리(Ripley)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생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흑인들의 비참함과 슬픔을 노래한 블루스가 그에게 찾아간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랩튼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빅 빌 블룬지(Big Bill Broonzy),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 등 초기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성장했다. 특히 ‘델타 블루스의 왕’이라 불리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로버트 존슨의 앨범들은 내가 음악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야드버즈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의 뛰어난 블루스 기타 테크닉은 단숨에 그룹의 사운드를 특징지었고, 매니저 지오지오 고멜스키(Giorgio Gomelsky)는 그에게 ‘슬로우 핸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클랩튼은 그룹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며 1965년 3월 팀을 떠나 존 메이올이 이끌었던 블루스브레이커스로 자리를 옮겼다. 야드버즈를 탈퇴한 직후 그가 연주했던 ‘For Your Love’는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가세하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바로 록음악계의 ‘3대 기타리스트’가 야즈버즈를 통해 모두 비상했다. # 나, 블루스로 돌아갈래! 이 당시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와 관계된 에피소드 한가지. 그는 블루스브레이커스의 휴지기 동안에 다른 뮤지션들과 전세계를 돌며 블루스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클랩튼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몇몇 멤버들이 영국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클럽에서 계속 머물며 공연을 계속했다. 그는 그러나 강도로 돌변한 클럽 주인의 협박으로 옷과 새로 산 마샬 앰프를 놔둔 채 영국으로 도망쳐야했다. 음악 외에는 모든 일에 문외한이었던 ‘순수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클랩튼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존 메이올의 독단적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신만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1966년 존 메이올 몰래 드러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와 함께 크림을 조직하고 합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음악 전문지 <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 >의 폭로로 인해 클랩튼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해고를 당해야만 했다. 이때 런던의 한 빌딩 벽에는 ‘클랜튼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문구가 새겨져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에릭 클랩튼은 크림을 통해 ‘악기 예술의 미학’을 획득했다. 블루스와 재즈가 절묘하게 어울러진 그들의 사운드는 즉흥적이고 빠르며 굉음을 발산했다. 멤버들의 정교하고 뛰어난 연주 실력은 타 밴드와의 간격 차를 크게 벌려놓았고, 음악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들의 앨범들인 1966년의 < Fresh Cream >, 1967년의 < Disraeli Gears >, 그리고 이듬해의 < Wheels Of Fire > 모두 명반으로 손꼽히며 파죽지세의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를 한자리에 모은 더블 앨범 < Wheels Of Fire >는 미국에서 4주간 정상을 차지하며 멤버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바로 이 작품에 명곡 ‘White room’이 수록되어 있다. 그룹은 그러나 서로간의 음악적 견해차를 이유로 1968년 11월 해산했다. 클랩튼의 음악 이력 중 최고의 절정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트리오는 1993년 1월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으로 재결합 공연을 가져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크림의 해체 이듬해 클랩튼은 진저 베이커와 함께 트래픽(Traffic)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페밀리(Family)의 베이스 주자였던 릭 그레치(Rick Grech)를 영입하여 ‘슈퍼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탄생시켰다. 언론에서는 ‘인스턴트 슈퍼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들은 공연 때 ‘최후의 슈퍼 그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대로 그들은 1969년 데뷔 앨범 < Blind Faith >를 내놓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 ‘레일라’의 비극 에릭 클랩튼의 1970년대는 한 여인과의 슬픈 사랑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다름 아닌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였다. 클랩튼은 1968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조지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같은 해 공개된 솔로 음반 < Wonderwall Music >에서 기타를 맡을 정도로 조지 해리슨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조지와 음악적 교류를 하면서 패티를 본 후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당시 종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패티 보이드는 클랩튼에게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었다. 음악 밖에 모르던 에릭은 그만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지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실의에 빠진 에릭 클랩튼은 술과 마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좌절감과 패배감은 1970년 11월에 발표된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의 마스터피스 < Layla & Other Assorted Lovesongs >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남편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을 때/ 나는 당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어요/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당신께 애원합니다/ 제발...’. 수록곡 ‘Layla’의 구구 절절한 가사처럼 에릭 클랩튼의 상처받은 마음은 노래 전체에 용광로처럼 녹아들었다. 고통스런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바닥까지 긁어내어, 그 고통을 음악으로 걸러냈다.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다. 클랩튼의 이러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얼마 후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했고, 둘은 197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 음반은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블루스와 삶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걸작의 반열로 들어섰다. # 극적인 재기 드라마 1부 실연의 파장은 매우 컸다. 에릭 클랩튼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인하여 병원과 요양원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기타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때부터 드라마틱한 재기 스토리가 전개된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그에게 구세주가 찾아왔다. 그룹 후(The Who)의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였다. 피트는 이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찬밥취급을 받던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으로 데려와 음악계에 데뷔시키는 등 ‘선행’을 벌여왔다. 피트는 클랩튼에게 마약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했고, 1973년 에렉 클랩튼의 레인보우 콘서트를 주최해 재기의 무대를 마련해줬다. 클랩튼은 데릭 앤 도미노스 이후 3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피트는 에릭 클랩튼이 정신을 못 차리자 하와이안 기타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력을 회복한 에릭 클랩튼은 1년 뒤 재기 작품 < 461 Ocean Boulevard >를 내놓았다. 앨범이 출시되기까지는 피트 타운센드와 함께 RSO 레이블의 사장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의 도움이 컸다. 그는 폐인이 된 클랩튼을 위해 요양장소로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선뜻 내주며 재기의 기틀을 마련케 했다. 클랩튼도 스틱우드의 호의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다시 기타를 집어들었다. 스틱우드의 별장주소가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이다. 스틱우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밥 말리(Bob Marley)의 곡을 리메이크한 ‘I shot the sheriff’는 정상을 차지했고, ‘Let it grow’, ‘Give me strength’ 등이 인기가도를 달리며 ‘기타의 신’으로 부활했다. 이후 연이어 내놓은 앨범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Wonderful tonight’이 실려있는 1977년 작품 < Slowhand >는 300만장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에릭 클랩튼은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던 이 시기를 잊지 못하고, 1999년 마약 중독자 치료기금을 위해 자신의 기타 100대를 경매에 내놓은바 있다. # 극적인 재기 드라마 2부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하지만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1989년 작품 < Journeyman >같은 수작을 낚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룹시절과 달리 음악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에너지가 없어지고 느슨해진 팝 블루스’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현실무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운명의 여인’ 패티 보이드와 헤어지고 이탈리아 투어 도중 만난 젊은 사진작가이자 배우였던 로리 델 산토(Lori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코너(Corner)가 뉴욕 맨하탄의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것이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은 “내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경찰관과 의료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며 망연자실했던 당시의 심정을 묘사했다. 클랩튼은 그러나 ‘예전처럼’ 기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와 노래에 더욱 몰두했다. 음악만이 유일한 치료제라는 것을 이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는 1992년 영화 < 러쉬(Rush) >의 사운드 트랙에 삽입된 ‘Tears in heaven’에 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실었다. MTV의 제안으로 그 해 녹음된 앨범 < Unplugged >에서의 백미도 단연 이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애절한 멜로디와 노랫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에게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등 알짜배기를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위로 선물’로 전달했다. ‘추억’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재진입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1994년 발매한 < From The Cradle >은 흥행과 평단 양편에서 세계적인 지위를 얻었다. 미국과 영국 앨범차트를 동시 석권하였고, 블루스의 성찬을 담아낸 작품으로 격찬 받았다. 4년 뒤에 내놓은 앨범 < Pilgrim > 또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전설은 영원하다 에릭 클랩튼은 작품마다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켰다. 혼을 불어넣었다. 올해 발표한 앨범 < Reptile >에도 그의 숨결을 살아 숨쉰다. 신작의 기저에 흐르는 물줄기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삼촌의 죽음’이다. 삼촌에 대한 존경심을 작품 전체에 고스란히 옮겼다. “‘Reptile(사전적 의미로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뜻)’은 삼촌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Reptile’이란 단어는 사랑스러운 말이다.” 이 음반은 프로듀서 사이먼 클리미에(Simon Climie)를 포함하여 전작 < Riding With The King >의 세션팀이 그대로 참여했다. 또한 시카고 소울의 거장 커티스 메이필드(Cutis Mayfield)의 빈자리를 남겨둔 채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가 부드러운 화음을 더하고 있다. 블루스뿐만 아니라 레게, 컨트리,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음악 지류를 넓히고 있는 클랩튼은 새 앨범에서도 그 폭을 확대했다. 퓨전 재즈풍의 기타 연주가 도입됐으며, 라틴 음악의 요소도 엿보인다. 보사 노바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첫 곡 ‘Reptile’을 비롯해, ‘Modern girl’, ‘Son & sylvia’ 등에서 알 수 있다. ‘리듬’에 대한 클랩튼의 지속적인 실험이다. 선배들을 향한 오마쥬도 계속된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스승 중 한 명인 기타리스트 J.J. 케일(J.J. Cale)의 ‘Travelin` light’, 1985년에 세상을 떠난 ‘점프 블루스의 대가’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고전 ‘Got you on my mind’ 등이 그것이다. 또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1980년대 히트넘버 ‘I ain`t gonna stand for it’, 레이 찰스(Ray Charles)의 ‘Come back baby’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두 명의 맹인 거장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향수’를 풍기지 않는다. 애절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안는 음색과 선율로 그만의 분위기를 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조에 맞게 ‘톤’을 찾아내는, 바로 ‘기타의 신’만이 할 수 있는 특허품이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이가 인간이지만 ‘비인간적’인 음악이 판치는 요즘이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의 음악과 인생은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지 않는다. 합일점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다. 특히 역경 속에서 소중한 음악의 싹을 틔우고 키워냈다. 내면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블루스로 쏟아냈다. ‘인간의 음악’이다. 당연하다. 허나 바로 이 점 때문에 클랩튼은 전설로 추앙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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