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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5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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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84g | 145*210*15mm |
ISBN13 | 9788946473317 |
ISBN10 | 8946473312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1. 대상 도서 구매 시, 푸 볼펜/마우스패드 증정(택1/포인트차감) 2. 대상 도서 포함 국내도서 2만원 이상 구매 시, 프레임 양장노트 증정(택1/포인트 차감)
2024년 03월 12일 ~ 2024년 05월 31일
[세계 시의 날/예스24 X 난다] 가장 오래된 고백의 이름, 시
1. 이벤트 대상 도서 포함 국내도서 2만원 구매 시, 셰익스피어 소네트 양장노트 증정(택1/포인트 차감) 2. 시의적절 ‘시리즈 알림 신청’하면 포인트 증정(추첨 100분)
2024년 03월 20일 ~ 2024년 08월 16일
4월의 굿즈 :책가도 독서대/스마트폰 거치대/우양산/북 스토퍼/우드 센서 무드등
국내도서/외국도서/직배송 GIFT 5/7만원 이상, eBook/크레마 5만원 이상 구매 시 선착순 택1 증정 (포인트 차감)
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3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의 소중했던 일상들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벌써 연말의 끝에 와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렇게 무심히 시간은 흘러만 간다. 연말이지만 집콕을 하며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골라 읽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책들이 많은데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조금은 우울했던 기분도 떨칠 겸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골랐다. 그 책이 바로 성석제 작가의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라는 소설집이다. 아주 짧은 단편 소설들이 들어 있는 책이라 틈틈이 시간 내서 읽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필력과 유쾌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 너무 매력적인 책이다.
<출처 - 예스24>
[오, 하필 그곳에]
여차하면 전화로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면서 C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O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앞차의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머리가 짧고 체격이 건장한 두 사내가 내렸다. 운전대를 쥔 C의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 똘지 마, 똘지 말라고!" (p. 12)
"왜요, 아더씨들! 뭐 할 말 있드세요? 있냐고?"
O는 오함마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번쩍거리는 상대방의 승용차를 겨냥했다. 여차하면 때려 부술 수도 있다는 듯이. 그러자 두 남자 중 하나가 급히 "아녜요, 우리 그냥 지나가다가 하도 운전을 안전하게 잘하시는 것 같길래 좀 배우려고 그랬던 겁니다"하고는 동료를 향해 눈을 껌벅거렸다. 그의 동료는 그만한 말주변조차 없는지 그저 커다란 주먹을 서로 포갠 채 서 있을 뿐이었다. (p. 13)
시속 30km로 안전하게 운전을 하던 O와 C 앞에 나타난 난폭 운전 차량. 그 안에서 내리는 머리 짧고 건장한 사내 두 명. 이 암울한 상황을 그들은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까.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오.함.마! 겁보임에도 불구하고 난폭 운전을 하던 건장한 체격의 두 사내를 단 한 번에 제압할 수 있었던 힘. 오함마가 주는 무언의 강력한 메시지. 그 강력한 힘이 오로지 오함마에게서만 나온 것일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때로는 그의 겉모습을 보고 쉽사리 판단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그런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왜곡된 인식이 의도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때로는 오함마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겁보가 승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너무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또 O가 잔뜩 겁에 질려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는 마치 옆에서 바로 재생되듯 생생하게 다가오며 웃음을 자아낸다. 겁보가 의도치 않게 위너가 되는 이 상황, 아, 너무 통쾌하고 재미있다.
[펠레의 전설]
“넌, 넌, 넌, 아니잖아, 주번”이라고 말했다.
“주번이 아니라니? 그럼 넌 뭐야?”
펠레가 물었다. 맞을 뻔했던 아이는 울상을 하고 대답했다.
“저 구 번인데요. 구 번 나오라는 줄 알고.”
그러자 교실이 거대한 고물 우주선이 된 듯 사방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웃음을 참느라 온몸을 비틀었던 까닭에 의자가 하중을 받아 내는 소리였다. (p. 19)
“니가 반장이야? 네가, 바로, 2학년 1반 반장이냐, 말이다! 네가, 이, 반의, 뭐야, 도대체? 넌, 이, 반, 에, 뭐, 야?”
이어서 주먹과 발, 몽둥이가 조합된 춤판이 벌어질 것임은 불문가지였다. 펠레가 소매를 다 걷고 나서 본격적으로 “니, 이, 반, 에, 뭐, 냐, 고, 오!”하고 방울뱀의 방울소리 같은 최후의 질문을 던졌을 때 반장은 잽싸게 대답했다.
“껌인데요.” (p. 20)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공부 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때 정말 재밌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혹독하리만큼 무서웠던 선생님들도 너무 많이 계셨다.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은 여자 분이셨는데 눈빛 하나, 말투 하나가 정말 무시무시한 선생님이셨다. 칠판 가득 그날 배울 단원의 한문을 모두 써 놓고 아이들이 단체로 독음과 해석을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중에서 버벅거리는 아이들을 매의 눈으로 "너!", "너!" 하며 한 명 한 명 다 집어 내셨다. 그러면 그 아이는 혼자 칠판 가득 쓰인 한문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버벅대거나 제대로 읽지 못하면 그 아이만 매를 맞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속한 분단의 모든 아이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허벅지에 매를 맞아야 했다. 일종의 연좌제 같은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문 공부만큼은 정말 죽어라 열심히 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잘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입을 맞춰가며 모두 하나가 되어 그렇게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우리 학교 아이들의 한문 실력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 수준이었다. 그 또래 사람들보다 조금 나은 나의 한문 실력도 그때 그 선생님의 호된 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는 의무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남아 야자를 해야 했다. 잠에 겨운 아이들이 책상을 베게 삼아 하나둘씩 잠에 빠져들면 학생 주임 선생님은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교실 뒷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와서는 자고 있던 한 아이를 타겟으로 하여 그 아이의 등짝을 인정사정볼 것 없이 내리치셨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아이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졸던 다른 아이들도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미어캣들마냥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는 우리도 한 단계 진화하여 '등칠리우스' 선생님의 등장을 감시하는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영어 단어를 10개씩 시험 봐서 1개 틀린 아이들은 면제되고 2개 이상 틀리면 매를 맞아야 했던 '황히틀러' 선생님의 영어 수업 시간, 성적이 나오면 1등부터 꼴등까지의 성적을 인쇄하여 교실 뒤에 떡 하니 붙여 우리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깔아뭉갰던 기억들까지 매 시간 시간이 공포이자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때만큼 치열하게 공부하며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이 삶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그 또래만이 가지는 에너지와 분위기. 팔딱거리는 활어를 보는 듯한 그 생동감, 그 에너지가 좋다. 난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거역하지 못하는 학생이어서 그 흔한 사건, 사고 하나 없이 졸업을 했는데 지금은 좀 후회가 된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역동적으로 살았더라면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선생님께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치기 가득한 아이들과 어디로 튈지 모를 녀석들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계시는 선생님들과의 한판 승부.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우리 말이 가지고 있는 묘미를 잘 살린 에피소드이다. 아, 정말 명랑 만화가 따로 없다.
[시인은 말했다]
"걸려들었네. 소설가들은 경제를 안다느니 하면서 세상 물정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를 치더니만."
"뭐에 걸렸다는 거예요?"
"그거 중국산이라고. 중국산 참기름에 중국산 들기름이나 중국산 식용유 같은 게 적당히 섞인. 진짜보다는 좀 싸고 가짜보다는 많이 비싸지. 이익이 그만큼 크고 그런 걸 '할매 장사'라고 하지. 영악한 장사치들이 아침마다 승합차를 가지고 시골 마을마다 가서 할머니들을 모셔다 주요 거점에 떨어뜨려 놓고 어리숙한 뜨내기손님 걸리면 바가지를 씌우는 거야. 그게 요새 장사가 되는 유일한 아이템이래. 저 할머니가 다 이야기해 줬어." (p. 43)
이 추운 겨울날 길바닥에 변변한 것 하나 제대로 깔지 않고 하루종일 앉아서 물건이나 채소를 파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전통 시장에 가면 엄마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후미진 골목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도 좌판을 벌여 놓고 물건을 파시는 할머니들이 계셨다. 그러면 엄마는 일부러 그곳에서 까지 않는 피도라지며 둥굴레며 열무며 쪽파 등을 사셨다. 엄마가 왜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까지 찾아다니며 그분들의 물건을 사셨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몇 년 동안 부모님께서는 주말이면 시골에 내려가서 복숭아나무, 매실나무, 감나무를 심으시고 들깨며, 참깨며, 콩이며 옥수수 등을 심으며 생활하셨다. 그렇지 않던 아버지께서 도시 생활에 싫증이 나셨는지 시골에 너무 가고 싶어하셔서 엄마도 그러자고 하신 거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몇 년 생활하시면서 부모님은 모든 것들을 돈으로 환산하는 몇몇 사람들의 시골 인심에 완전 질리신 것 같다. 일 년 내내 땀 흘려 가며 고생해서 농사를 지은 분들에게 그 대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서 지은 농산물 중 우리나라의 것들은 비싼 값으로 어딘가로 다 팔려 나가고 농촌에서도 중국산 농산물들이 너무 많이 유통된다는 것이다. 많은 수확을 내기 위해 뿌려지는 농약과 온갖 화학 비료들도 그렇고. 부모님은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시고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셨다. 비싸고 좋은 우리 농산물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저가의 중국 농산물은 언제부터 우리 식탁을 온통 점령하게 되었을까.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가치 척도가 돈이 되어 버린 세상. 찬 맨 땅바닥에 하루 종일 앉아 푸성귀를 팔고 계신 할머니의 물건을 보며 알량한 천 원 짜리 지폐 몇 장 꺼내는 것도 주저하는 나를 보게 된다. 찬 바닥에서 푸성귀를 팔고 집으로 돌아갈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먹게 될 것이 중국산은 아닌지 의심부터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비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 난 몰랐었네]
산소와 나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게 서로를 좋아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p. 79)
같이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닮아간다.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무언의 대화 상대가 되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준다. 삶에서 얼마 되지 않을 '개좋은' 만남을 놓치지 말고 누리라는 것을, 길드는 게 길들이는 것임을. 산소를 만나기 전까지, 진정 난 그걸 몰랐었다. (p. 80)
어렸을 때 키웠던 하얀 새끼 고양이가 죽어 묻어준 적이 있다. 집 뒤 나지막한 산에 가서 고양이를 묻어주고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성당에 가서 그 고양이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 뒤, 동생 친구의 개가 강아지를 낳았는데 내가 마침 그때 집에 있어 그 새끼 강아지들을 받았다. 그래서 동생 친구가 고맙다며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해 주었다. 그 강아지(코코)는 15년 정도를 우리와 함께 살았다. 코코는 학교 갈 때면 하루도 빼지 않고 그 높은 고개를 함께 달려 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배웅해 주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느 해 추운 겨울날 코코는 집을 나가 일주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온몸에 도깨비풀을 잔뜩 붙이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꼬리가 떨어져라 나를 보며 연신 그 꼬리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몇 해 지나 코코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 뒤로 나는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비염도 있고 면역이 약하기도 하지만 나는 정을 떼는 일이 너무 어렵다. 무뚝뚝한 편이라 애정 표현을 거의 안 하지만 내심 정에 약하다. 그래서 때로는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지만 앞으로 절대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상이 누가 됐든지 무엇이든지 애착이 가고 유독 마음이 쓰이는 대상이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살면서 그런 대상을 만난다면 아낌없이 마음을 주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감정과 마음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어느새 휘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그때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내 곁에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낌없이 주지 못한 마음에 대한 후회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나는 엄마가 보내온 '사랑해!'라는 돌발 문자 메시지에 '아핰핰핰학하하!!!!!!'라는 웃음 소리만 문자 메시지로 덜렁 보내고 말았다.
[전문가의 충고]
"사진의 기본은 초점이에요. 이 사진들 중에 초점이 제대로 맞은 게 하나도 없어요. 카메라가 스마트폰이든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뭐든 간에, 사진을 찍을 때는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손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자신부터 먼저 흔들리고 있어요. 기본이 전혀 안 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좋은 작품이라고, 아니 사진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p. 221)
나는 사진을 찍으면 초점이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손가락이 가늘어서 그런다는 둥 수전증 때문이라는 둥 핑계를 대곤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혹은 그것을 애써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초점이 맞지 않으면 좋은 사진이 될 수 없다는 말처럼 뿌리째 흔들리는 나무 역시 좋은 수목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때로는 내 삶이 내 뿌리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혹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병 따기'의 예술]
막걸리병을 내용물이 완전히 섞이도록 흔든다. → 병을 가로로 완전히 눕혀서 잔에 병 입구를 가져다 댄다. → 병을 수평으로 유지한 채 천천히 병뚜껑을 돌려서 딴다.
이 방식에 숙달되면 막걸리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잔에 따를 수 있게 된다. 내게 이 예술적인 병 따기 기법을 전수한 '마이스터'는 나이가 내 주력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젊은이였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어느 막걸리 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그 방법을 익혔다고 했다. 어떤 분야든 절대고수들이 다 그렇듯이, 그는 이름도 성도 알려주지 않고 구름처럼 표표히 사라져 갔다. (p. 230)
하하하, 아니 이건 뭐 영화 <일대종사>의 엽문도 아니고. 막걸리병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라니! 소설에서 막걸리병 따는 방법을 이렇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다니, 역시 성석제 작가답다. 이 방법을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주력(酒歷)으로 보나 흑기사가 필요 없을 만큼 흐트러짐 없는 센 주량으로 보나 절대고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그나저나 술잔을 기울이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냥 좋았던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 있을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문득 서글퍼진다.
[수꾸떡의 비밀]
"야, 내려, 빨리! 너 같은 인간은 운전할 자격이 없어. 알아? 이 천하에 개ㅎㄹㅁㅋ말ㅁㅈ오ㄹㅇ탕 같은 인간아! 당장 내리라고, 내리라니까!" (p. 265)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경우가 있는 거야. 내 살다 살다 이런 ㄱㅆㅇㅂㄹㅇㄲㄱ 같은 경우는 처음이네. 앞으로 조심하쇼! 내 말 알아들었어?" (p. 265)
"동아, 니가 시방 그 따우 행실할라꼬 열닷 살부터 서울 와가 공부한다미 그래 여리(여럿, 여러 사람)를 고생시킷나! 내가 인제와 마흔도 훌쩍 넘은 니 입에서 그런 무지하고 험한 소리 들을라고 수꾸떡 해믹이고 오뉴월 논에 짐(김) 매고 팥죽 겉은 땀 흘리가미 고치(고추) 따가 공부시킨 줄 아나!" (p. 265 - 266)
"어무이, 정말 죄송합니데이.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이 정신이 하나도 없어가꼬요…. 그런데 도대체 수꾸떡이 뭡니까?"
"이 봐라, 봐. 돼지 팔고 염소 판 돈으로 대학까지 나왔다는기 무식해도 이런 무식이 없다. 수꾸떡이 수꾸떡이지 뭐꼬!"
"수꾸가, 수꾸가 뭐냐고요?" (p. 267)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나는 이렇게 쿨하고 객관화 잘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자식이라고 해서 무작정 두둔하고 감싸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면 왠지 정말 어른같다는 느낌이 든다. 거기에 범접할 수 없는 개그 본능과 우격다짐까지 장착하신 어르신이라니. 그 우격다짐이 억지로 우겨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그저 달리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한 표현력의 부재로 인한 논리적 혼돈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꾸떡은 그냥 수꾸떡인 것이다. 어쨌든 생일 때마다 어머니께서 빠짐없이 만들어주셨던 그 수꾸떡이야말로 아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는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연의 역할을 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조연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그가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맡은 연기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삶을 살아가진 않지만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책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속에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누구나 쉽게 공감하게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열정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너무 유쾌한 에피소드로 풀어내는 작가의 매력적인 필력에도 감탄하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했던 2020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책에 몰입해 혼자 키득거리며 모처럼 맘껏 웃을 수 있었다.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유쾌하다. 정말 소설이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 건가!!!!!
- 아, 그런데 책을 덮고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다. 저 자음으로 쓰여진 것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 욕설인 거 같긴 한데 어휘력이 부족한 것인지 나는 도통 답을 모르겠다. 끝까지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마력(魔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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