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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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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힘을 믿는다

정찬 산문집

정찬 | 교양인 | 2020년 05월 25일 리뷰 총점9.3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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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16g | 136*200*20mm
ISBN13 9791187064527
ISBN10 118706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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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저 : 정찬 (JONG,CHON,鄭贊, 본명 : 정찬동)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두 생애》, 《정결한 집》, 《새의 시선》,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광야》, 《빌라도의 예수》, 《유랑자》, 《길, 저쪽》, 《골짜기에 잠든 자》 등이 있다. 동...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두 생애》, 《정결한 집》, 《새의 시선》,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광야》, 《빌라도의 예수》, 《유랑자》, 《길, 저쪽》, 《골짜기에 잠든 자》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요산 김정한 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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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위로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질문을 던지며
그 안에서 발견하는 공감, 연대, 슬픔의 윤리


“허구와 사실 세계를 넘나들면서 권력과 사랑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천착해 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정찬이 등단 37년 만에 처음으로 산문집 『슬픔의 힘을 믿는다』를 펴냈다. “애도의 깊이가 곧 공동체의 깊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나’와 ‘너’라는 분리된 두 존재를 연결하는 슬픔의 윤리, 진실을 직면하게 하고 희망을 일깨우는 슬픔의 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슬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슬픔은 피동적 감정이 아닙니다. 고통과 절망을 껴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능동적 감정입니다.” 그에게 슬픔은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깊이 공감하고, 고통의 의미를 깊이 헤아리는 것이며, 아파하는 이, 절망한 이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힘이다.

『슬픔의 힘을 믿는다』에는 저자가 슬픔과 마주 서서 쓴 글들이 담겨 있다. 섬세하고 예민한 눈으로 이 세상의 위로받지 못한 슬픔들을 발견하고, 정직하고 단정한 언어로 그 슬픔들에 위로를 건넨다. 또한 문학과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기에 고통을 깊이 응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세계의 고통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해 온 작가들의 특별한 삶을 들여다본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문학과 예술의 운명’은 고통 속에서 뛰어난 작품을 창조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절대와 완전’이라는 이십 대의 꿈을 평생 놓지 못한 작가 이덕희, 머나먼 타국에서 모국어에 대한 향수와 허기로 쓴 허수경의 시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후 죽은 아들을 안은 채 울고 있는 ‘피에타’를 만들어낸 케테 콜비츠……. 그 외에도 채영주, 기형도, 윤이상, 아르튀르 랭보, 알베르 카뮈 등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2부 ‘슬픔의 힘을 믿는다’에는 저자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큰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슬픔의 노래」를 만든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와 아우슈비츠에서 예술가의 임무에 관해 나눈 대담, 작가 카프카에게 집요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개인적 삶과 카프카 작품의 관계를 밝히는 가상 인터뷰가 흥미롭다.

3부 ‘폭력의 기억, 슬픔의 공동체’는 억압과 폭력이 지배했던 과거 역사와 바로잡지 못한 과거의 유산으로 인해 반복되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으로 제주 4?3을 복기하고,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진 유신 시대에 대한 분노와 5월 광주 항쟁의 의미를 되짚고, 용산참사와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위로한다.

4부 ‘고통과 희망 사이’는 촛불 혁명 이후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희망을 기록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66시간 열차 대장정’을 보며 갇힌 한반도에서 벗어나는 꿈을 이야기하고, 한중일 공동체라는 새로운 국제 관계를 그려보기도 한다. 경주 지진을 직접 겪으며 원전 없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타자의 시선에서 ‘나’와 ‘우리’의 시선으로 바꿀 기회를 발견한다.

“슬픔의 강변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살아남은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히 느끼는 사람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자 형벌인데, 예술가는 축복보다 형벌에 민감한 사람이다. 저자는 그 형벌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녀의 이십 대는 ‘절대와 완전에 대한 과대망상적 집착’으로 점철된 시절이었다.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무엇이나 다 되어보고 싶었고, 온갖 것을 다 사랑하고 싶었다. …… 그런 그녀에게 삼십 대는 힘의 한계를 깨닫는 시간, 온갖 가능성 대신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 날아오르는 자세에서 발을 땅에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 이덕희가 숨을 거둔 것은 지난 8월 11일 새벽이었다. 향년 79. 사인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렴이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육신이 그녀의 뼛속 영양소까지 앗아가 뼈가 녹아내렸다고 했다. _‘이덕희, 삶과 죽음 사이 심연으로’, 14, 15~16쪽

콜비츠의 피에타는 ‘노이에 바헤’ 천장의 둥근 구멍 아래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내리면 눈에 묻힌다. …… 지금 우리는 씨앗 같은 생명들이 구조적으로 짓이겨지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죽음의 일상화는 애도의 결핍을 낳고, 애도의 결핍은 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박제한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슬픔들을 끊임없이 육신화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 광화문 광장에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내리면 눈에 묻히는 우리의 피에타를 보고 싶다. _‘위로할 수 없는 슬픔’, 74, 76, 77쪽

망루는 철거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한 거점이었다. 사랑이 꿈과 기적 사이의 어떤 것이라면, 모욕은 절망과 죽음 사이의 어떤 것이다. 그들은 비정한 물신 사회에서 오랫동안 모욕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 「공동정범」의 놀라운 점은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그들에게 영화 작업이 치유 행위로 작용한 사실이다. 카메라는 지옥 같았던 기억의 고통에 갇혀 굳어버린 그들의 마음속으로 섬세하게 스며들어 부드럽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_‘「공동정범」과 예술의 힘’, 70~71쪽

“과거의 슬픔은 곧 현재와 미래의 슬픔이다.”

제대로 반성하고 애도하지 않은 과거는 끊임없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5월 광주의 슬픔은 세월호의 슬픔이고, 용산참사의 슬픔은 산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쉽게 절망하지 않고 끝내 절망 아래 짓눌려 있던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박종철 아버지와 김용균 어머니를 통해 “내 아들은 죽었지만 다른 사람 자식들은 살리고 싶”었던 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세월호 사고를 기록해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으로 만들어낸 ‘416기록단’의 이야기를 통해 불행을 나누어 희망으로 바꿔내는 공감의 힘을 말한다.

김미숙은 아들이 죽기 전 그곳에서 8년 동안 열두 명이 산재로 죽었고, 28번이나 시정 요구를 했음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묵살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들의 죽음이 혼자의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김미숙이 세상의 지붕 위로 올라가 아들의 참혹한 죽음이 품고 있는 진실을 외친 것은 “내 아들은 죽었어도 다른 사람 자식들은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 그녀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실에 마련된 박종철의 영정에 흰 꽃 한 송이를 바치는 순간 박종철과 김용균의 삶이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시공을 초월한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_‘박종철 아버지와 김용균 어머니’, 175~176쪽

팽목항 입구 갯벌 매립지에 잿빛 컨테이너가 있었다. 사고 해역 주변에서 거둔 물건들 가운데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모아둔 유류품 보관소였다. 거기에도 운동화가 있었다. 진흙 묻은 옷가지와 바닷물에 젖어 풀 죽은 인형, 변색된 가방과 모자가 있었고, 줄 끊어진 기타도 있었다. 그 물건들 속에는 물속으로 사라진 아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 하지만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스며들어 수런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예술가는, 그가 진정성 있는 예술가라면 그들의 수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부재의 기억」은 귀를 기울이는 예술가가 만든 작품으로 내게 다가온다. _‘부재의 기억’, 180쪽

“서로를 발견하는 일은 인간의 성스러운 의무다.”

어둠에 빛을 밝혀 진실을 구한 촛불 혁명은 분열로 얼룩졌던 우리 사회에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공감의 가치를 되살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촛불을 들었고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런 ‘능동적 슬픔’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 희망이 씨앗처럼 깃들어 있음을. 그 씨앗을 키우기 위해서는 절망에 짓눌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절망을 응시하고, 절망을 껴안으면서, 절망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예술 작품에서 문제적 인간의 내면은 세계의 내면이다. 고르차코프의 촛불이 문제적 인간인 도메니크의 희생을 밝히는 것은 세계의 내면을 밝히는 일이다. 고르차코프는 촛불을 들고 희뿌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노천 온천 속을 조심조심 걷지만 몇 걸음 만에 촛불이 꺼진다. 카메라는 바람에 꺼진 촛불을 다시 켜고 고통스럽게 걸어가는 고르차코프의 모습을 묵묵히 보여준다. 몇 차례 실패 끝에 마침내 ‘저쪽’에 도달한 그의 얼굴은 희망으로 빛난다. 한국 사회의 ‘저쪽’은 어디일까? 우리가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저쪽’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오랜만에 서로에게서 희망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_‘촛불의 미학’, 198쪽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되기 전까지 인류는 타자의 시선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인간 속에 내재한 ‘이기적 자아’ 때문이었다. 인간의 이기적 자아는 끔찍한 전쟁 앞에서도 쾌락을 느낄 정도로 기괴하다. ……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폭탄과 달리 대상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파고들어가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런 미증유의 위기 속에 역설적으로 희망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신비롭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타자의 시선이라는 이기적 쾌락에 갇힌 인류에게 감옥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문이 열렸다고 해서 그 안에 갇힌 사람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을 모르는 사람은 문이 열린 사실조차 모를 것이며, 그 안을 편안히 느끼는 사람은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_‘팬데믹의 역설’, 253쪽

추천평

나에게 정찬은 소설가와 지식인의 개념을 바꾼 사람이다. 작가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사상가여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정찬의 글은 독자에게 ‘줄거리의 소비’가 아니라 ‘생각하는 노동’을 요구한다. 문체가 정치학이자 미학임을 정찬만큼 잘 보여주는 작가도 드물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무간도(無間道)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독자는 작가의 깊은 숨결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나는 소멸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루한 사람이다. 그래서 긴 행렬에서 눈길 둘 곳이 필요하다. 잠깐만이라도 행복하기 위한. 이 책 『슬픔의 힘을 믿는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런 친구가 되리라 믿는다.
-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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