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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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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 양장 ]
김영민 | 글항아리 | 2020년 05월 01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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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688쪽 | 732g | 140*200*38mm
ISBN13 9788967357689
ISBN10 8967357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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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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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철학자. 『서양철학사의 구조와 과학』(1991), 『동무론』(2010~) 3부작, 『집중과 영혼』(2017) 등을 썼다. 천안과 서울 등지에서 인문학 학교 ‘장숙藏孰’(http://jehhs.co.kr/)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철학자. 『서양철학사의 구조와 과학』(1991), 『동무론』(2010~) 3부작, 『집중과 영혼』(2017) 등을 썼다. 천안과 서울 등지에서 인문학 학교 ‘장숙藏孰’(http://jehhs.co.kr/)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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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519

출판사 리뷰

삶과 통풍이 되는 글쓰기, 잡된 글쓰기, 삶의 복잡성에 유의하는 글쓰기
무기록의 삶도 인간살이의 한 방법이지만
삶의 결핍과 어긋냄을 드러내려는 자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자기 삶을 가루로 만들지 않기 위해 글을 쓸 것


철학자 김영민은 인문학 하는 것의 핵심으로 오랫동안 글쓰기에 천착해왔다. 인문학은 읽고 쓰는 것이되, 쓰기가 없다면 그 앎은 한 번도 수면 위에 떠오르지 못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책 읽고 공부하는 이들은 쓰기를 지속하면서, 하나의 색깔로 수렴되지 않는 복잡한 삶을 어떻게 담아낼까를 고심해야 한다. 이는 학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 분야 논문이 아니라면, 삶을 말끔히 도려낸 글은 있을 수 없다.

이 책은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글쓰기로 자기 삶을 어떻게 가루로 만들지 않고 결핍을 채워나가며 욕망을 증폭시킬 수 있는가를 논한다. 글쓰기는 삶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다. 그 활동은 자신을 확인하며 자신이 갇힌 타율의 굴레를 벗겨내고 삶을 구성하면서 새롭게 변화시키는 노력이다. 그러려면 글은 조그만 분량, 한 가지 논의로 정돈되기보다 복잡하고 무한한 글쓰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잡된 글쓰기인데, 이로써 글쓰기를 억압했던 현실에 대한 가장 지속적인 저항을 펼칠 수 있다.

사실 글을 쓰는 자라면 누구나 삶의 ‘깊이’와 ‘성숙’을 생각해볼 것이다. 특히 성숙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재난을 요모조모 피하면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상수常數로 주어지며, 성숙은 재난 앞에서 무너져가는 격格, 쓰러져가는 멋에 의해 그 비범한 속내를 드러낸다. 특히 슬픔을 어떻게 다스리는가가 성숙과 미성숙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텐데, 글로써 이를 담아 성숙을 이뤄내는 이들을 우리는 동시대의 학술 논문에서는 보기 힘들고 대개 문학에서 발견하게 된다. 정말로 논문은 삶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논문 쓰기의 역사를 제대로 고찰하고 뜯어고쳐야 한다. 근대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의 글쓰기를 절대 무기처럼 여겨온 논문 작성을 한국사회는 아무런 비판 없이 지난 수십 년간 답습해오고 있다. 사실 10명 내외로 읽는 논문의 무용성에 대해서는 지칠 정도로 여러 차례 지적이 있었다. 변명으로 전문가들끼리의 논의, 학문성의 틀을 갖춘 글쓰기를 내놓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 전문성이 1년에 한두 편의 논문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들은 언제 ‘글짓기’ 수준을 벗어나 진정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읽히지 않는 인문학의 논문이란 사실 존재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논문 쓰기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원전중심주의다. 원전만을 깍듯이 모시는 문화는 자기 집을 제대로 못 짓고 있는 형국에 빗댈 수 있다. 구걸만 하는 학문을 학문이라 할 수 없으며, 원전 바깥의 세상도 믿을 만하고 살 만하다는 것을 학자들은 용기와 성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 용기와 성숙은 바로 삶과 분리되지 않는 글쓰기에서 비롯될 것이고, 삶은 이런 글쓰기로 인해 상승작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와 관련된 저자의 오래전 논의들을 함께 묶어 복간하면서 지금의 현실에서 이 논의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펼쳐 보인다. 우리가 쉽게 목격하듯이, 인간과 세상과 학계가 개선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며, 당대에 그런 일을 보게 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학자는 읽히는 글을 쓰기를 거의 포기한 듯하고 그런 역량을 기르지 못한 채 학문의 생을 마감하고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삶도 학문도 다 제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자는 과연 소용 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래도 어쨌든 글쓰기는 비관의 작업이 아니고, 이 책 역시 삶의 진리가 아닌 여러 일리一理들을 드러내려는 것이 목적이므로, 독자 각자가 자신의 일리를 찾아나가는 여정에서 이 두터운 책은 방향타가 되어줄 것이다.

삶을 위한 앎과 삶을 깔아뭉개고 있는 앎: 복잡성의 글쓰기를 지향하며

우리의 앎과 글쓰기의 바탕엔 교육이 있다. 하지만 경험해서 알듯이, 학교 교육은 시험을 치르는 데 집중되고, 시험을 잘 치르려면 잡색의 현실을 외면한 채 단색의 교과서에만 코를 박고 있어야 한다. 삶을 위한 앎이어야 할 텐데, 묘한 구조를 타고 있는 앎이 힘을 얻어 오히려 삶을 깔아뭉개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공부하는 이들이 무엇에 집중하는가 그 양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제 나라 말로 변변한 논쟁을 이끌 훈련도 안 돼 있으면서 논문을 쓰고, 한글로 편지 한 장 쓰길 변비 난 놈 인상 쓰듯 하면서 ‘팝스 잉글리시’니 뭐니 꼭두새벽부터 법석을 떠는 것이나, 귀가하면 한 치 빗나감이 없는 봉건적 가부장이 집을 나서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입에 거품 물고 이야기하며, 달동네 철거한답시고 깡패 동원해서 대책 없이 폭력만 휘두르게 한 인간들이 채 반도 분양 안 될 게 뻔한 아파트 짓느라 날이면 날마다 ‘혼을 담은 시공’으로 난개발을 일삼고 있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다.

저자는 말한다. “단언하건대 줏대를 세우기 전에는 세계화란 어불성설일 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세계화란 집을 나선다는 뜻인데, 집을 나서는 놈이 제 자신부터 명확히 해두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남을 만나서 제 집의 역사와 전통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세계에 위협을 가하는 차이들이나 예상치 못한 복잡성 앞에서 쉽사리 당황하고 잘게 곱씹은 흔적 없는 반응을 내비쳐 미성숙을 부지불식간에 노출한다. 이 미성숙한 반응이 역사의 참학한 살상들을 낳았다는 것은 우리가 목격해온 바 그대로다.

삶은 원천적으로 복잡하고 애매하다. 이 두 가지를 참아나가는 성숙의 여명은 바로 인문학의 보상이다. 우리가 겪는 사태들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면 삶을 몇 문장으로 쌈박하게 정리하려는 욕심은 접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복잡성의 성격과 그 구조를 간파한 글은 대체로 길고, 잡된 글쓰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저자는 인문학의 한 방법으로 잡된 글쓰기를 내세우지만, 이것이 목적도 정처도 없이 무한정 미끄러지기만 하는 배회의 글쓰기는 아니다. 어쨌거나 역사와 터와 이름과 책임이 있는 일리를 설계도로 삼아 집을 짓는 글쓰기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중심을 포기한 셈이므로 ‘원칙상’ 무한정한 분량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이런 작업은 쉽지 않다. 그리하여 글쓰기를 시도하는 자들은 비관으로 흐르며, 허무에 빠져든다. 하지만 글쓰기를 비관하는 자는 제 스스로 나태한 줄 모르는 나태한 자다. 글쓰기에 무능한 혹자들은 자신의 나태를 권태라고 부르면서 허무를 입에 올리곤 한다. 저자는 이에 맞서며 글쓰기란 낙관의 영역에 속함을 암시한다. “글쓰기의 낙관이란 글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하염없는 비관을 바로 그 비관의 무게로써 이겨낸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을 도외시한 앎, 논문중심주의

학자들이 자기 존재를 입증하고자 1년에 한두 편씩 쓰는 논문을 열 명 안팎의 사람만 읽는다는 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연중행사처럼 학계라는 제사상에 논문을 진상하는 이들은 이 땅에서 ‘학자’라는 매우 애매하고 위협적인 마스크를 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명하고 있다. 이들은 주말이나 휴일엔 절대 연구실을 찾지 않으면서도 오후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연구실을 빠져나오는 존재로, 일 년에 한두 편 짜깁기조차 엉성한 논문을 학계에 바치고는 그 뒤에 꼭꼭 숨어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는 글쓰기는 점잖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학문성마저 실추시킬 위험이 있다’고 속삭인다. 그들은 나긋나긋하고 정중하게 속삭이고, 숨어서 베끼고 베끼다가 자신의 일생을 학자로 마감할 것이다.”

국내의 학자들은 삶을 도외시한 앎, 그것도 백인들로부터 수입한 앎만을 위한 논문중심주의의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집들이 허물어지고 곧바로 새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반복적으로 지켜보면서 형식성과 과학성에 수세강박적으로 매몰된 학자들의 글쓰기가 이 모습과 비할 데 없이 유사하다고 여긴다. “집이 되지 못하는 건물, 글이 되지 못하는 논문 그리고 마음이 되지 못하는 이성은 한통속이다. 건물과 논문과 이성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계몽과 진보의 가능성으로 섣불리 들뜬 근대성의 표현이며, 설명 가능성의 이념 아래 척척 풀려나가는 과학적 세계상의 대표 이사들이다.”

집이 되지 못한 건물은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고, 글이 되지 못한 논문은 우리 삶의 복잡성과 관계없는 강박의 덩어리일 뿐이며,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이성은 다윈이나 프로이트 같은 큰 이름들이 펼친 경지는커녕, 봄 감방의 창틀에 찾아든 쑥 한 포기에 시심을 띄우는 이들조차 이해 못 할 테크닉에 지나지 않는다. 기실 논문은 공시적 구조나 틀이 아니며, 따라서 기호론적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논문은 오히려 슬픔이며 아픔이거나, 허위이며 휩쓸려 들어감이다. 글은, 그리고 학문은 많은 경우 창의이기 이전에 관습이며, 천재이기 이전에 모방이고, 상상이기 이전에 전통에 지나지 않는다.”

글쓰기에도 마음이라는 게 있을 텐데, 우리 학자들의 글쓰기에서 굳이 심리를 발견하자면, 그것은 아예 ‘글쓰기 심리’라는 게 없다는 사실을 특징으로 삼는 심리일 뿐이다. 그들은 ‘내용이 중요할 뿐이지 글쓰기의 스타일이란 저절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심리의 부재’와도 같은 심리 속에 휘말려 있다. 서구 학계에서 관용어로 쓰이는 ‘쓰든지 죽든지Publish or perish!’는 국내 학자들에게서 ‘쓰면 죽는다Publish and perish!’ 혹은 ‘읽히면 죽는다’로 바뀌어 있다. 그들은 도무지 읽히는 글을 쓰려 하지 않는다.

원전 바깥도 믿을 만하고 살 만하다면

소위 몇몇 원전을 논의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으로 삼는 논문류의 글쓰기와 그 심리를 저자는 ‘원전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이때의 원전이란 2차 참고문헌에 대비되는 1차 문헌만 가리키진 않는다. 여기서 원전이라 함은 형식적인 의미의 교과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학인들의 글쓰기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귀소의식의 출처’를 뜻한다. 그러므로 고전이니 걸작이니 하는 책들이 낱낱의 작품을 지시하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언중의 언어적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이라는 점은 여기서 다루는 원전의 의미를 밝혀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

어쨌든 원전과 비원전을 구별하는 명료한 잣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논문을 쓰면서 자기 입지를 다지는 적잖은 수의 학자는 글쓰기의 권위적 전거가 될 만한 원전을 손쉽게 알아낸다. ‘알아서 긴다’는 말처럼, 논문을 써서 먹고사는 이들은 모셔야 할 원전이 무엇인지 진작 눈치 챘다. 이런 일이 순수한 학문적 동기에서 이뤄진다면 그저 줄서기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원전을 들먹이는 짓은 이제 글의 내실을 견고히 하여 학문성을 높이려는 본래의 목적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더러는 이를 사견에 치우친 비판이라고 역공하겠지만, 역공이 셀수록 기득권층이 두터움을 보여줄 뿐이고, 그 층이 두터울수록 원전을 오용하고 남용한 역사가 깊음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지적한다.

원전중심주의의 글쓰기 풍토와 직접 연관되는 학인들의 정신적 악덕은 일종의 포장과 광고 심리에 비견할 수 있다. 즉 실제보다 부풀려 보이게 하는 것은 특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화된 심리다. 글쓰기마저 이런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이 시대의 배움이 봉착한 근원적 화근이다. 자신의 속내에 자부심을 느끼며 이를 담백하고 교치巧緻 없는 자기 말로 표현할 자신이 있다면 포장이나 광고에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다.

매우 부정적인 심리 방어 기제 중 하나로 ‘고착’이란 게 있다. 이는 그 유용성이 소실되어 부적절하게 돼버린 행동 양식을 계속 고집하는 행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행동 양식이 오랫동안 고착되거나, 비록 표현형은 바뀌어도 유아기의 행동 패턴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참된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발성과 창의성을 무익한 것으로 만드는 원전에 기대어서 정답의 출처인 교과서에 코를 박고 살아왔던 숱한 세월이 경직된 학습의 패턴을 낳았고, 마침내 이 패턴은 대학원생 이상의 논문 쓰기를 업으로 삼는 학자들의 행동 양식을 철저히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땅에서 쓰이는 논문의 대다수는 자신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들에 대한 소극적이며 미약한 반응 양식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물론 그 반응 양식의 주된 모습은 ‘눈치 보기’다. 그리고 논문이란 눈치 보는 글쓰기의 전형이며, 글쓰기에서 눈치 보기의 전형이 바로 원전중심주의이다. 그러므로 원전중심주의라는 고착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원전 바깥도 믿을 만하고 살 만하다는 사실을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용기와 성숙의 문제임을 저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읽히지 않는 인문학이 존재 가치가 있을까

인문학은 전처럼 텍스트 속의 자율적인 논리에 안주하지도 못하고, 콘텍스트 속으로 방산放散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머뭇거림의 몸짓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혹자들은 이 주저함을 성숙의 징표라고 자위하며 잠시 쉬어가려고 앉았던 자리에서 비석까지 다듬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 머뭇거림 속에서 학문적인 정당성을 찾아보려 시도하는데, 곧 일리와 패턴의 철학이다. 무리의 비산飛散도 우리 일상인의 삶의 자리가 아니고, 진리의 좌정도 더 이상 우리를 위로하거나 보호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인문학과 철학이 열어야 할 제3의 지평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열 명 미만일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설혹 채 열 명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현실적 적용력은 실제로 세상을 바꾸었다. 이와 달리, 인문학의 성과들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면 이해받지 못하는 바로 그만큼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내 책은 읽히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깡탈을 부리는 이들이 있지만, ‘그러나 인문학은 읽혀야만 산다.’ 읽히는 것은 인문학의 이념인 성숙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존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해받기 위해 쉽게 쓰여야만 할까. 얼핏 들으면 평범하고 지당한 요청 같다. 쉽게 쓰여야 읽히고, 읽혀야 이해되고, 이해되어야 변화될 것 아닌가. 그러나 막상 ‘쉬운 글’이 무엇인지 따지자면 거기엔 수많은 쟁점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논의는 황당할 정도로 복잡해질 것이다.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서 가독성을 높이고, 이로써 인문학의 터를 확보하는 방식, 특히 그 기술적인 방식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읽히는 글이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목조목 명시하려는 전략에 앞서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글쓰기의 임상성, 구체성의 글쓰기, 개성적 글쓰기, 그리고 삶의 복잡성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잡된 글쓰기’의 정신을 익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정신과 공조해서 논문중심주의, 원전중심주의, 글쓰기의 허위의식을 하나씩 실제적으로 공략해가는 일이다. 독자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전문성의 깊이와 멋을 잃지 않는 글쓰기, 아울러 글쓰기 스타일이 곧장 자신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는 이런 노력의 끝에 조금씩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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