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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 레이블 90주년 기념 - 베스트 팝 & 크로스오버 모음집 (Decca - The Supreme Record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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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 레이블 90주년 기념 - 베스트 팝 & 크로스오버 모음집 (Decca - The Supreme Record Company)

[ 4CD 박스 세트 ]
Frederick Delius, Anton Karas 작곡/Roy Henderson, Judy Garland, Bing Crosby 노래 외 4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Decca Record | 2020년 06월 17일 | 원제 : 61 Classics tracks from one of the world's most loved Labels contains 11 UK No.1s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8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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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 레이블 90주년 기념 - 베스트 팝 & 크로스오버 모음집 (Decca - The Supreme Record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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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20년 0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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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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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51명)

작곡 : Frederick Delius (프레드릭 딜리어스,Frederick Theodore Albert Delius)
치터 연주자, 작곡가 치터 연주자, 작곡가
성악가 (바리톤) 성악가 (바리톤)
영화배우, 가수 영화배우, 가수
노래 : Morris Albert (모리스 앨버트)
노래 : Cat Stevens (캣 스티븐스 (유수프 이슬람),Yusuf Islam )
북한에 애인을 남겨두고 남으로 내려온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최근 영화 을 보면 주인공인 두 북한 남녀가 놀이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라는 팝송이 들린다. 첫 사랑이 남긴 깊은 인상을 노래하는 이 곡은 1977년에 로드 스튜어트에 의해 히트되었고, 2003년에는 여가수 셰릴 크로우가 리메이크해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실은 캣 스티븐스가 작곡하고 불렀던 곡... 북한에 애인을 남겨두고 남으로 내려온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최근 영화 을 보면 주인공인 두 북한 남녀가 놀이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라는 팝송이 들린다. 첫 사랑이 남긴 깊은 인상을 노래하는 이 곡은 1977년에 로드 스튜어트에 의해 히트되었고, 2003년에는 여가수 셰릴 크로우가 리메이크해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실은 캣 스티븐스가 작곡하고 불렀던 곡이다. 캣 스티븐스는 1970년대 초중반에 ‘Wild world’, ‘Peace train’, ‘Morning has broken’, ‘Moonshadow’ ‘Oh very young’ ‘Another Saturday night’등 일련의 히트송으로 당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했던 인기 팝가수였다. 그 시절의 히트 퍼레이드는 최고 가수 엘튼 존에 못지않을 만큼 거셌다. 특히 ‘Wild world’는 나중 1993년, 록 그룹 미스터 빅(Mr. Big)이 소개해 줄기차게 전파를 탔고, ‘Morning has broken’은 얼마 전 어린 가수 조셉 맥매너스(Joseph McManners)를 포함해 무수한 가수가 즐겨 부르는 팝의 명곡으로 꼽힌다. 통기타의 찰진 울림을 강조한 그의 음악은 파워가 실린 보컬 덕분에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함을 내뿜은 것이 특징이었다. 1966년 그룹 ‘스프링필즈’ 출신의 마이크 허스트가 발굴, 그해 데카의 프로그레시브 록 레이블인 데람(Deram)에서 데뷔 싱글인 ‘I love my dog’을 냈고 세 번째 싱글이자 강한 메시지가 담긴 ‘I’m gonna get me gun’은 영국에서 톱10을 기록했다. 나쁜 건강으로 2년을 쉰 그는 1970년에 완연한 싱어송라이터로 복귀, 앨범 과 이국풍의 싱글 ‘Lady d’Arbanville’을 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때는 이듬해인 1971년 앨범 < Tea For The Tillerman >에서 ‘Wild world’가 미국 차트 11위에 오르는 히트를 치면서였다. (캣 스티븐스가 곡을 썼지만 영국에서 한 해 전 레게 가수 지미 클리프의 노래로 먼저 알려졌다) 같은 해 첫 빌보드 톱10을 기록한 ‘Peace train’과 19세기의 찬송가인 ‘Morning has broken’이 수록된 < Teaser And Firecat >을 비롯해 < Catch Bull At Four >(1972년) < Foreigner >(1972년) < Buddah And The Chocolate Box >(1973년) 등의 성공적인 앨범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1979년 이후로 팝 음악계에서 캣 스티븐스라는 이름은 영원히 종적을 감추었다. 그가 이름을 유수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바꾸고 이슬람교도로 개종하면서 서구 팝 무대와 작별해버렸기 때문이다. 인기를 버리고 신념을 택한 것. 그 뒤로 걸프전쟁 등 간혹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 멋진 팝 음악은 더 이상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슬람교도로 평화에 대한 신념을 전파하기 위한 종교와 음악 활동을 지속해왔다. 일례로 딸 하산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앨범 < A Is For Allah >(2000년 재발매)은 서방세계에 불법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1999년에는 기존에 발표한 앨범들을 CD로 리마스터링하는 과정에서 영국 스튜디오에 나타나 화제를 모았으며 이 무렵 영국 BBC는 그의 음악을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2005년, 캣 스티븐스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쓰나미’ 희생자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했다. 동시에 자선기금 모금용 앨범 < Indian Ocean >도 만들었다. 그러나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 근래 미국과 이슬람국가 간의 갈등으로 인해 그의 대외적 입장은 반미(反美)노선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실제로 그는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을 수행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런던 발 워싱턴행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뒤늦게 테러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국 입국은커녕 강제 추방을 당했다. 그간 몰래 이슬람 저항단체인 ‘하마스’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비밀이 없고 평화적인 구호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안다.”며 혐의를 반박했다. 얼마 뒤에 그는 고르바초프재단이 주는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한편에서는 테러 요주의 인물이요,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주의자라는 상반된 대우를 받은 것이다. 입장을 떠나 그의 신념이 지구촌의 평화 정착에 대한 바람에 있음은 분명하다. 한창 팝 가수로 명성을 날릴 시절의 노래 ‘Peace train’이 생생하게 말해준다. 다만 이슬람교도라는 신분 때문에 미국에 대한 반대의 이미지가 유독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 Indian Ocean > 앨범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 캣 스티븐스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이슬람 신도이자 예술가로서 나의 관심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명분이 옳을 때 더욱 그렇다는 것을 믿는다.” 이 말은 결국 음악을 하되, 인기에 영합하는 식이 아니라 자신의 명분 즉 평화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는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뜻이다. 1947년, 그리스 혈통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팝 가수 출신임을 감안하면 그의 의식과 행적은 남다르다. 그래서 때로 그는 ‘기인’으로도 통한다. 이런 사실에 관심이 끌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캣 스티븐스를 기억하는 것은 훌쩍 30년이 지났어도 그 노래가 선사하는 빼어난 미학이다. 1976년 세계 순회공연실황을 담은 것으로 2004년에 발매된 앨범 < Majikat >가 말해준다. (국내에서도 2006년 라이선스로 발매되었다) 다시 들어보는, 단호하면서도 서정적인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노래 : Engelbert Humperdinck (잉글버트 험퍼딩크)
노래 : 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아폴로 11호가 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에 맞춰 공상 과학(SF)의 환상을 실은 ‘우주의 괴짜(Space oddity)’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는 불세출의 걸작 앨범 <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 >을 통해 남녀 일체의 파격을 선보이며 진보적인 록 뮤지션으로 떠올랐다. 그는 스스로 동성이자 초월자인 ‘지기’로 분해 무대의 시각적 충격을 강조했으며 현상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상화했다. 흔히 ‘자극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와 맞물린 이러한 퍼스낼리티 설정은 즉각 록의 새로운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그것이 ‘글램 록’ 또는 ‘글리터 록’이란 것이었다. 그는 가수가 노래하는 사람, 무대가 노래하는 장소라는 등식과 관념을 넘어섰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화장에 반짝거리는 의상을 하고 나와 무대에서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연기’를 했다. 그것은 자극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는 1972년 “지금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팬들이 지기의 이미지를 오용하여 반사회적인 폭력을 일삼게 되자 곧바로 지기의 탈을 벗어버렸다. 이 시점부터 그는 어느 것 하나에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다이아몬드의 개(Diamond dogs)’로 예언자가 되는 듯 하더니 ‘로우(Low)’에서는 은둔자로 변신했으며 나중에는 ‘야윈 백인공작(Thin white duke)’으로 탈바꿈했다. 음악도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하드한 기타록을 하다가 소울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전자 음악도 했고 심지어 디스코 댄스 음악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볼 때 그는 새로운 것에 과감히 가슴을 열어 끊임없는 혁신을 이룩한 음악인이었다. 데카당적인 틀은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예술적 보헤미안’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한 우물 파기’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그를 ‘뿌리 없는 실험 병자’로 ‘음악적 곡예사’로 배격했다. 그가 펼쳐 놓은 무수한 장르의 파편들과 끝없는 변신의 행적을 보면 카멜레온이요, 기회주의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과연 이같은 무차별 변신을 두둔해야 하는가. 그러나 록계에서는 그의 음악이 언제나 예측 불허였으며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30년간 록계에 몸담으면서 오로지 실험 정신으로 일관해 온 순례자로 떠받드는 것이다. 그는 1993년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한 것을 동료들과 비교할 때 나를 모험적인 작가로 생각한다. 난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체질적으로 싫다. 그래서 악평이 나오기도 한다... 난 스튜디오에 들어가 머릿속에 담은 구체화된 아이디어가 내 자신을 놀라게 하는지를 본다. 밖에서 누군가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지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곡을 쓴다.” 그의 곡예는 대중의 기호를 쫓은 상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성을 자극하는 것, 바로 그 점에 봉사했다. 즉 ‘예술적 동기’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형상화해 온 셈이다. 이처럼 록예술에 집착한, 그리고 진보적인 뮤지션의 음악은 대중의 폭넓은 사랑과는 대부분 무관하다. 음악적으로 볼 때도 곡조나 편곡에 있어서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두 곡이나 보유하고 있다. 예술의 개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가 때로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1위곡들인 ‘명성(Fame)’이나 ‘춤을 춥시다(Let’s dance)’는 그다지 호평을 받는 편이 아니다. 특히 디스코 리듬에 전자 댄스 음악적 요소가 전면화된 ‘춤을 춥시다’는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겨냥, 보위의 골수 팬들을 실망시켰다. 1977년 < 로우 >앨범 발표 당시 “되도록 이 앨범이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그를 전제할 때 그것은 명백한 일탈이었다. 그는 ‘춤을 춥시다’의 성공이 너무 거대했던지 이후 그 그림자에 가려 주류에서 급격히 멀어졌다. 줄기차게 앨범을 내놓았지만 상업적 성과도 내리막길을 달렸고 평자들의 호의도 식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그 자신도 그때의 성공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1995년 < 뉴욕 타임스 >지에 “‘춤을 춥시다’로 빅히트를 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난 대중적인 인기를 누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풍선껌 포장지와 같은 처지에 서게 된 느낌이었다.” 라고 술회했다(가끔 목격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구 록스타들은 반성도 참 잘한다!). 그는 이때 2년만에 이색적인 앨범 < 아웃사이드(Outside) >와 함께 컴백했다. 이색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편의 심리적인 추리소설을 사운드트랙화 했기 때문이다. ‘나단 애들러의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앨범은 기괴한 10대 소년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사립 탐정과 그 주변 용의자들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이 ‘예술적 추리 사건’의 진상은 1999년 발매될 마지막 앨범에서 규명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 < 아웃사이드 >앨범은 시리즈의 첫편인 셈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한 때 명콤비였던 걸출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시 손을 잡았다. 그것은 1980년대의 부끄러운 상업적 성공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비상업적’인 과거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즉흥성이 중시된 연주나 몽환적 부유(浮遊)의 분위기가 그것을 설명해 준다. 마치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당당함이 배어 있는 음반이다. 그는 인기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자세를 되찾음으로써 ‘영원한 로커’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록이란 게 원래 그런 음악이다.
노래 : Sister Rosetta Tharpe (시스터 로제타 사프)
로큰롤 음악의 대모라 불리는 가스펠/소울 가수, 기타리스트. 그녀의 음악은 가스펠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소울풀한 가창력과 리드미컬한 전자기타 연주는 훗날 엘비스 프레슬리나 척 베리같은 초기 로큰롤 스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로큰롤 음악의 대모라 불리는 가스펠/소울 가수, 기타리스트.
그녀의 음악은 가스펠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소울풀한 가창력과 리드미컬한 전자기타 연주는 훗날 엘비스 프레슬리나 척 베리같은 초기 로큰롤 스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노래 : David Whitfield (데이빗 위트필드)
노래 : Max Bygraves (맥스 바이그레이브스)
영국 배우 영국 배우
노래 : Chris Farlowe (크리스 팔로우)
영국의 록, 블루스, 소울 가수 영국의 록, 블루스, 소울 가수
노래 : Bobby Pickett (바비 피켓,Bobby Boris Pickett And The Crypt Kickers)
노래 : Robin Sarstedt (로빈 사스테트)
영국 싱어송라이터 영국 싱어송라이터
노래 : Davy Jones (David Robert Hayward Stenton Jones)
노래 : The Three Tenors (더 쓰리 테너스)
이탈리아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스페인의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로 이루어진 성악가 그룹 이탈리아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스페인의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로 이루어진 성악가 그룹
연주 : Edmundo Ros (에드문도 로스,Edmundo Ros and His Orchestra)
포트오브스페인에서 태어나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군악대에서 북을 치며 타악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세 때 베네수엘라로 이주했고, 카라카스에서 비센테 에밀리오 소호(Vicente Emilio Sojo)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후 베네수엘라 심포니 교향악단(Venezuela Symphony Orchestra)의 팀파니 연주자를 거쳐 영국의 왕립음악원(RAM)으로 유학하였으며, 졸업 ... 포트오브스페인에서 태어나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군악대에서 북을 치며 타악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세 때 베네수엘라로 이주했고, 카라카스에서 비센테 에밀리오 소호(Vicente Emilio Sojo)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후 베네수엘라 심포니 교향악단(Venezuela Symphony Orchestra)의 팀파니 연주자를 거쳐 영국의 왕립음악원(RAM)으로 유학하였으며, 졸업 후에는 재즈 드럼 연주자가 되었다.

1944년 자신이 직접 라틴 음악 밴드를 조직하여 정교한 연주로 인기를 끌었다. 영국의 시민권을 취득해 영국에서 활약하였으며, 라틴 리듬을 알기 쉽게 다루어 친근감을 주는 연주로 널리 알려졌다.
록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록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Canterbury Scene을 주도했던 전설의 록그룹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Canterbury Scene을 주도했던 전설의 록그룹
30년에 가까운 경력을 자랑하는 카멜은 유난히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트 록 그룹이다. ‘Long goodbyes'', ''Stationary Traveller''는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곡으로 방송을 통해 지금까지도 널리 리퀘스트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Lady fantasy'', ‘Rainbow''s end'', ‘Hymn to her'', ‘Lies'', ‘Song within a song''... 30년에 가까운 경력을 자랑하는 카멜은 유난히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트 록 그룹이다. ‘Long goodbyes'', ''Stationary Traveller''는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곡으로 방송을 통해 지금까지도 널리 리퀘스트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Lady fantasy'', ‘Rainbow''s end'', ‘Hymn to her'', ‘Lies'', ‘Song within a song'', ‘Rose of Sharon''등 아트 록 밴드로서는 드물게 인기 레퍼토리의 수도 상당하다. 적어도 국내에서 그들은 프로그레시브, 아트 록 계의 거물급 인사인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에 뒤지지 않는(혹은 그 이상의) 지명도를 쌓아 올렸다. 하지만 카멜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역사에서 널리 기록될 만한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일반인들에게 받는 편애에 가까운 사랑과는 다르게 킹 크림슨의 데뷔작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과 같이 항시 꼽히는 ‘명반’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 사운드의 특징인 ‘서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영롱한 키보드 파트를 주축으로, 앤드류 라티머(Andrew Latimer)의 더 이상 부드러울 수 없는 질감의 기타가 어우러진 카멜의 음악은 동료 그룹들의 ‘난해하고 사변적인’ 혼돈의 미학과는 대척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밴드에 비해 다분히 팝적인 성향으로 인식됐다. 이런 대중 지향적인 접근법 때문에 그들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율과 곡은 카멜을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의 밴드로 각인시켰다. ‘요정의 세계’, ‘백조의 사랑’과 같은 깜찍한 앨범의 컨셉트도 팬들에겐 충분한 플러스가 됐다. 카멜은 1972년 영국에서 결성되었다. 앤드류 라티머, 덕 페르구손(Doug Ferguson), 앤디 워드(Andy Ward), 피터 바든스(Peter Bardens)의 4인조는 그 해에 데뷔작 < Camel >을 발표하면서 긴 여행의 출발을 알렸다. 처음으로 이들이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은 1974년 공개한 < Mirage >였다. ‘Lady fantasy'', ‘Freefall''이라는 멋진 넘버를 수록했던 이 음반은 미국 차트에 진입하며 앞으로 나올 수준급의 앨범들을 예고했다. < The Snow Goose >와 < Moonmadness >는 이들의 초창기 대표작으로 인정받으며 차트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렸다. 이 앨범을 끝으로 창단 멤버 덕 페르구손이 탈퇴 의사를 밝혀 캐러반(Caravan)출신의 베이스 연주자 리차드 싱클레어(Richard Sinclair)가 대체 주자로 수혈됐다. 이후 < Breathless >, <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 >, < Nude >등에서 변치 않은 음악성을 자랑하며 전성기를 맞은 카멜은 1982년 앨범 < The Single Factor >를 앞두고 앤드류 라티머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팀을 떠나면서 잠시 위기를 맞는다. 그 어려움은 1984년 그룹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 Stationary Traveller >로 완전히 극복됐다. ‘Ballad for a lost friend'', ‘Nothingness''로 유명한 네덜란드 아트 록 밴드 카약의 키보디스트 톤 세르펜질(Ton Scherpenzeel)이 가세해 이전의 어느 작품보다 귀를 휘감는 멜로디로 무장한 이 음반은 동, 서독 간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여 화제를 모았다. 1980년대 중, 후반에 헤게모니를 장악한 메탈 그룹들에게 관심을 빼앗기고 망각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던 카멜은 1991년 존 스타인벡의 소설 < 분노의 포도 >를 테마로 만든 앨범 < Dust And Dreams >를 발표하며 건재함을 증명했다. 계속해서 상당히 긴 터울을 두고 < Harbour Of Tears >와 < Rajaz >를 각각 공개하며 시들지 않은 감각을 자랑했다. 카멜은 쉽고도 예쁜 작품들로 프로그레시브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데 기여한 그룹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팝’에 경도된 인물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클래식에 기반한 탄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록, 팝, 재즈를 자유롭게 왕복하며 꽉 잡힌 연주력을 뽐냈다. 또한 일관성 있는 테마를 가지고 곡 하나하나 보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신장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 해도 카멜에 대한 지금까지의 평가가 그다지 후한 편은 아니다. 허나 외부의 잣대와는 관계없이 ‘서정성’이라는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해 온 이들을 굳이 외면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그들은 ‘외골수 탐미주의’와 ‘마지막 낭만파’사이에 위치한 그룹이다. 무게 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든지 30년 동안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멤버 : 로드 아전트(Rod Argent, 보컬, 오르간), 콜린 블런스톤(Colin Blunstone, 보컬), 크리스 화이트(Chris White, 베이스기타), 휴 그런디(Hugh Grundy, 드럼), 폴 앳킨슨(Paul Atkinson, 기타) 멤버 : 로드 아전트(Rod Argent, 보컬, 오르간), 콜린 블런스톤(Colin Blunstone, 보컬), 크리스 화이트(Chris White, 베이스기타), 휴 그런디(Hugh Grundy, 드럼), 폴 앳킨슨(Paul Atkinson, 기타)
밴드 : Small Faces (스몰 페이시스)
멤버 : 스티브 매리엇(Steve Marriott), 로니 레인(Ronnie Lane), 지미 윈스턴(Jimmy Winston), 케니 존스(Kenney Jones) 멤버 : 스티브 매리엇(Steve Marriott), 로니 레인(Ronnie Lane), 지미 윈스턴(Jimmy Winston), 케니 존스(Kenney Jones)
영국 록 밴드 영국 록 밴드
1960~1970년대 활동한 브리티쉬 락 밴드. 1960~1970년대 활동한 브리티쉬 락 밴드.
밴드 : Whistling Jack Smith (휘슬링 잭 스미스)
로저 그린웨이, 로저 쿡, 마이크 샘스 싱어스로 구성된 스튜디오 세션 프로덕션 로저 그린웨이, 로저 쿡, 마이크 샘스 싱어스로 구성된 스튜디오 세션 프로덕션
멤버 : 딘 포드(Dean Ford, 보컬), 주니어 캠벨(Junior Campbell, 보컬), 그레이엄 나이트(Graham Knight, 베이스), 팻 페어리(Pat Fairley, 기타, 베이스), 앨런 화이트헤드(Alan Whitehead, 드럼) 멤버 : 딘 포드(Dean Ford, 보컬), 주니어 캠벨(Junior Campbell, 보컬), 그레이엄 나이트(Graham Knight, 베이스), 팻 페어리(Pat Fairley, 기타, 베이스), 앨런 화이트헤드(Alan Whitehead, 드럼)
알앤비 밴드 알앤비 밴드
영국 팝 밴드 영국 팝 밴드
밴드 : East Of Eden (이스트 오브 에덴)
신 리지는 밴 모리슨(Van Morrison), 밥 겔도프(Bob Geldof), 엔야(Enya), 유투(U2),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와 더불어 ‘켈틱 파워’를 세계만방에 떨쳤던 위대한 하드록 그룹이다. 리더 필 리뇻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과 베이스 연주, 그리고 빼어난 팀워크 플레이를 앞세웠던 이들은 로큰롤 연대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던 팀으로 기록된다. 데프 레퍼드(Def Leppa... 신 리지는 밴 모리슨(Van Morrison), 밥 겔도프(Bob Geldof), 엔야(Enya), 유투(U2),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와 더불어 ‘켈틱 파워’를 세계만방에 떨쳤던 위대한 하드록 그룹이다. 리더 필 리뇻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과 베이스 연주, 그리고 빼어난 팀워크 플레이를 앞세웠던 이들은 로큰롤 연대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던 팀으로 기록된다. 데프 레퍼드(Def Leppard),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 본 조비 (Bon Jovi)등의 인기 록 밴드들이 모두 신 리지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의 뮤직파일은 강렬하고도 서정적인 이중의 구조를 갖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박해가 극심했던 모국 아일랜드의 구슬픈 한(恨)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의 히트곡 ‘Whiskey in the jar’는 아일랜드의 구전민요를 로큰롤로 편곡한 작품으로 신 리지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나타내준 곡이다. 특히 초반기와 중반기 작품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후반기 걸작 < Thunder And Lightning >에서는 테크니션 기타리스트 존 사이크스를 영입, 어느 록밴드에게도 뒤지지 않는 화력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 리지는 1970년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아이리시(Irish)와 라틴계의 혼혈, 필 리뇻에 의해 얼개가 짜여졌다. 그는 원래 게리 무어와 함께 스키드 로(Skid Row, ‘I remember you’를 부른 메탈그룹과는 동명의 다른 밴드)라는 블루스 록밴드에서 활동했으나 자신의 그룹을 만들기 위해 에릭 벨, 브라이언 다우니를 불러들였다. 이듬해 데뷔작 < Thin Lizzy >를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신 리지는 이 라인업으로 연달아 2집과 3집을 발표하며 시나브로 명성을 획득해 갔다. 이후 에릭 벨과 결별한 신 리지는 나중에 슈퍼그룹 아시아(Asia)에서도 기타를 매만지는 스코트 고험과 불과 18세의 천재 기타맨 브라이언 로버트슨을 새 식구로 맞아들이면서 ‘쥐라기 시대’를 맞는다. < Night Life >, < Fighting >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행보에 급물살을 탄 그룹은 1976년 그룹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 Jailbreak >를 쏘아 올리며 미국시장에 발을 디딘다. 범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이 음반에서 싱글 커트된 ‘The boys are back in town’은 빌보드 12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1977년과 그 이듬해 또 다른 수작인 < Bad Reputation >과 라이브 레코딩의 진수 < Live And Dangerous >로 전성시대를 더욱 꽃피웠던 신 리지는 그러나 브라이언 로버트슨이 손가락 부상으로 물러나면서 긴급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필의 오랜 음악친구 게리 무어의 존재가 ‘한줄기 빛’으로 요청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힘을 빌려 완성된 < Black Rose; A Rock Legend >는 신 리지 후반기 최고의 LP라는 호평을 얻으며 위기상황을 말끔히 진화했다. 외도를 끝내고 본업으로 복귀한 게리의 빈 슬롯에는 실력파 기타리스트 스노위 화이트가 보강되어 팬들의 아쉬움을 해소해 주었다. 허나 캡틴 필의 약물중독은 안전선을 이미 넘어선 상태였고 구심점이 흔들린 신 리지 호는 침몰의 징후를 내비치고 있었다. 새롭게 가입한 존 사이크스와 스노위 화이트의 한바탕 격전이 펼쳐졌던 < Thunder And Lightning >은 마침내 ‘스완 송’이 되고야 말았다. 내치(內治)의 실패도 몰락을 부채질했지만 MTV로 상징되는 새 시대 음악질서도 이들을 구세대로 몰아가고 있었다. 딜레마에 빠진 이들은 마지막 앨범을 공개한 바로 그 해인 1983년 캐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 3년후, 술과 마약에 찌들어 폐인처럼 살던 필 리뇻은 36세의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와 그의 그룹 신 리지는 이후 한동안 마니아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름이 됐다. 그러던 1999년, 신 리지는 존 사이크스와 스콧 고험, 키보드주자 대런 훠튼을 축으로 재결성되어 향수의 불씨를 되살렸다.
밴드 : Adam and the Ants (아담 앤 디 앤츠 (팝락 밴드))
오케스트라 : New English Orchestra (뉴 잉글리시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 Mantovani Orchestra (만토바니 오케스트라)
보컬 트리오 보컬 트리오
합창 : New English Symphony Choir (뉴 잉글리시 심포니 합창단)
합창단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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