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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Night Time Stories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 벨 앤 세바스찬 Vol. 1 (Late Night Tales: Belle & Sebastian, Vol. I)

벨 앤 세바스찬이 큐레이션한 음악 모음집

Johann Sebastian Bach 작곡/RJD2, Demis Roussos, Johnny Cash, The Ethiopians 노래 외 8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Night Time Stories / Late Night Tales | 2020년 04월 1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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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Time Stories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 벨 앤 세바스찬 Vol. 1 (Late Night Tales: Belle & Sebastian, Vol. I)

이 상품의 시리즈 (17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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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0년 04월 10일
제조국 영국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Rehash - Gratuitous Theft In The Rain
  • 02 Jimmy* & Mama Yancey - How Long Blues
  • 03 RJD2 - Here's What's Left
  • 04 Lootpack - Questions
  • 05 Demis Roussos - O My Friends You've Been Untrue To Me
  • 06 Stereolab - French Disko
  • 07 The Peddlers -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
  • 08 The Butch Cassidy Sound System - Cissy Strutt
  • 09 Johnny Cash - Ring Of Fire
  • 10 The Ethiopians - Free Man
  • 11 Elsie Mae - Do You Really Want To Rescue Me, Part 1
  • 12 Walter Jackson - It's An Uphill Climb (To The Bottom)
  • 13 Mary Love - I'm In Your Hands
  • 14 Novi Singers - Cos Specjalnego
  • 15 Gal Costa - Lost In The Paradise
  • 16 Innerzone Orchestra - People Make The World Go Round (Kenny Dixon Jnr Remix)
  • 17 Ramsey Lewis - Uhuru
  • 18 Steve Miller Band - Fly Like An Eagle
  • 19 Donovan - Get Thy Bearings
  • 20 mum - Green Grass Of Tunnel
  • 21 Belle & Sebastian - Cassaco Marron
  • 22 Zimbabwe Shona Mbira Music - Taireva (Version 1)
  • 23 Space Jam - Let Your Conscience Be Your Guidance
  • 24 Big Star - Watch The Sunrise
  • 25 Johann Sebastian Bach: Suite No. 2 In B Minor, Badinerie
  • 26 David Shrigley - When I Was A Little Girl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3명)

작곡 : Johann Sebastian Bach (요한 세바스찬 바흐)
노래 : RJD2 (알제이디 투)
노래 : Demis Roussos (데미스 루소스)
자니 캐쉬(Johnny Cash)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펼친 뮤지션 중 한명이다. 깊고 낭랑한 중음역대의 보컬과 간결한 기타와 함께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진보적이고 독특한 사운드를 추구했다. 컨트리뮤직의 고향인 내쉬빌사운드(Nashville), 홍키통크(Honky Tonk), 로큰롤(Rock’n’Roll),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자신만의 ... 자니 캐쉬(Johnny Cash)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펼친 뮤지션 중 한명이다. 깊고 낭랑한 중음역대의 보컬과 간결한 기타와 함께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진보적이고 독특한 사운드를 추구했다. 컨트리뮤직의 고향인 내쉬빌사운드(Nashville), 홍키통크(Honky Tonk), 로큰롤(Rock’n’Roll),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자신만의 서브장르를 만들고 구축했다. 감성적으로 무디고 정직한 포크(Folk)와 반항적인 로큰롤(Rock’N’Roll) 그리고 염세적인 컨트리(Country)뮤직 사이의 중간지점에서 캐쉬는 로큰롤의 탄생과 반항적 태도 그리고 다분히 록적인 간소함과 솔직한 음악적 발성법을 적절히 융화시켜냈다. 거기에는 깊은 역사적 공감대가 존재했다. 그는 음악적 사명을 다하는 그 날까지 100곡이 넘는 히트싱글을 내며 흑과 백 모두에게 인정받았고, 특히 록의 황제(King of Rock)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의 거목들(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 척 베리)과 함께, 1950년~60년대를 빛낸 로커빌리(Rockabilly)음악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아칸사스 출신인 자니 캐쉬는 세 살 때에 다이에스(Dyess)로 이주했다. 열둘 어린나이에 그는 이미 자신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들은 컨트리 송에 음악적 영감을 얻은 그는 고등학교시절 아칸사스 라디오 방송국(KLCN)에서 노래했다. 대학을 졸업한 1950년에는 자동차회사에 취직해 디트로이트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그는 공군에 입대했다. 공군에 있는 동안 캐쉬는 기타를 구입해 스스로 연주를 익혔다. 그는 ‘Folsom prion blues’를 포함해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캐쉬는 1954년 공군에서 예편해 텍스사 여성 비비안 리베르토(Vivian Leberto)와 결혼했다. 멤피스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는 라디오 아나운서과정을 밟았다. 밤에는 기타리스트 루더 퍼킨스와 베이시스트 마샬 그랜트로 구성된 트리오의 일원으로 컨트리음악을 연주했다. 지방라디오방송국(KWEM)에서 무료로 공연을 간간히 겸하면서 안정된 연주의 기틀을 마련하던 트리오는 선 레코드사에 오디션을 볼 기회를 잡게 된다. 마침내 1955년 샘 필립스가 설립한 선 레코드사(Sun Records)에 오디션을 치르게 된 캐쉬는 처음에 자신을 가스펠싱어로 소개했다. 필립스는 자니에게 좀 더 상업적인 것을 요구했고, 그는 ‘Hey Porter’로 곧 필립스를 매료시켰다. 이를 계기로 캐쉬는 자신의 데뷔싱글 ’Cry Cry Cry’/Hey Poter’를 발매하게 된다. 필립스는 싱글레코드에 캐쉬를 “자니”라고 기입했다. 레코드 프로듀서는 또한 퍼킨스와 그랜트를 테네시 투(Tennessee Two)라고 불렀다. 1955년에는 ‘Cry Cry Cry’가 인기를 얻으며 컨트리차트 14위에 올랐다. 그리고 루이지애나 헤이라이드(Louisiana Hayride) 지역에서 거의 1년간 머물렀다. 두 번째 싱글 ’Folsom prison blues’가 1956년 초 컨트리차트 4위의 쾌거를 올렸고, 연이어 ‘I walk the line’이 6주간 1위를 차지함과 더불어 팝 차트에도 탑2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57년에도 컨트리싱글차트 13위에 랭크된 ‘Give my love to rose’를 포함해 몇 곡의 히트곡을 내며 히트행진을 이어갔다. 캐쉬는 또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타 뮤지션들과 달리 완전히 검정복장으로 그해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debut)에 데뷔했다. 이로 인해 그는 ’맨 인 블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1957년 11월에 그는 드디어 자신의 처녀작 < Johnny Cash with his hot and blue guitar >를 발매해 음반매장을 강타했다. 1958년에는 10주간 차트 정상을 지킨 ‘Ballad of a teenage queen’을 비롯해 또 다른 넘버원 싱글 ’Guess thing happen that way을 포함해 무려 8곡을 컨트리와 팝 차트 공히 상위권에 올리며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1958년에 그는 가스펠앨범을 녹음하고자 했으나 선(sun)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 레코드는 또한 캐쉬의 음반로열티 인상에도 반대했다. 두 가지 결정적 연유로 캐쉬는 결국 1958년 콜롬비아레코드사(Columbia Records)로 레이블을 옮겨 그해 말 싱글 ‘All over again’을 내놓았다. 이 곡은 컨트리차트 4위와 팝 차트 38위에 올랐다. 1959년 초에는 콜럼비아에서 발표한 두 번째 싱글 ‘Don’t take your guns to town’ 또한 컨트리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팝 차트에도 32위까지 올라 그의 최대히트곡 중 하나가 된 이 곡과 함께 그해 내내 발매된 싱글들이 앞 다퉈 차트 정상에 등극했다. 캐쉬는 가스펠앨범을 낼 기회도 맞았다. 자니 캐쉬의 찬송가는 1970년대까지 주제앨범연작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히트행진을 지속하던 그의 쾌속질주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1959년에, 그는 1년에 거의 300회가 넘는 공연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암페타민(각성제)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1961년까지 그의 약물복용은 날로 증가했다. 그로인한 악영향은 히트 싱글과 앨범 수의 감소세로 나타났다. 1963년에 그는 가족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캐쉬는 술친구 칼 스미스(Carl Smith)의 아내 준 카터(June Carter)에게서 받은 ‘Ring of fire’로 컨트리차트 정상을 마크한다. 이 곡은 7주간 차트정상에 머무르며 팝 차트에도 20위에 올랐다. 1964년에는 ‘Understand your man’가 넘버원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약물중독의 어두운 그림자에 둘러싸여있던 캐쉬는 1965년 자신의 기타케이스로 엠페타민을 다량 밀수하다 엘 파소(El Paso)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해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서의 공연이 거절당했고, 그동안 각광받아온 커리어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1966년에는 아내 비비안이 이혼을 제소했다. 이혼 후 캐쉬는 내쉬빌로 이주했다. 거기에서 그는 칼 스미스와 이혼한 준 카터와 친밀해졌다. 카터의 조력으로 그는 약물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캐쉬를 기독교신자로 바꿨다. 1968년 초 ’Jackson’과 ‘Rosanna’s going wild’가 탑 텐 히트 기록하면서 재비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자니는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운명의 여인 준 카터에게 드라마틱한 청혼을 했고, 1968년 봄 결혼식을 올렸다. 1968년에, 자니 캐쉬는 가장 큰 인기를 끈 앨범 < Johnny Cash at Folsom Prison >을 녹음 발표했다. 교도소 공연실황을 녹음한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Folsom prison blues’가 팝 차트에 걸쳐 큰 인기를 얻으며 컨트리차트 정상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연말에 레코드는 골드를 기록했다. 이듬해, 그는 후속앨범 < Johnny Cash at San Quentin >을 발표했다. ’A boy named sue’는 컨트리차트 1위와 팝 차트 2위에 오르며 히트싱글이 되었다. 캐쉬는 1969년 밥 딜런(Bob Dylan)의 컨트리앨범 < Nashville Skyline >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딜런은 ABC 가수 텔레비전프로그램 ‘자니 캐쉬 쇼’에 출연해 그에 화답했다. 자니 캐쉬쇼는 1969년과 71년, 2년에 걸쳐 방영되었다. 캐쉬는 1970년대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자신의 텔레비전쇼와 더불어, 그는 백악관에서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을 위해 공연한 것을 비롯해, (Gunfight)에서는 명배우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와 함께 공연했으며,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와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다큐멘터리영화의 테마로도 주목받은 그는 ’Sunday morning coming down’과 ‘Flesh and blood’이 넘버 원 히트를 기록하며 변함없는 인기를 이어갔다. 1971년을 통해, 자니 캐쉬는 차트 3위를 기록한 ’Man in black’을 포함해 히트행진을 지속했다. 캐쉬와 카터 모두 1970년대 초 토착미국인과 죄수들의 시민권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며 사회적 활동을 넓혀갔다. 가끔은 빌리 그래험(Billy Graham)과 함께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캐쉬의 차트 등장횟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마이너히트를 이어갔다. 그리고 1976년 ‘One piece at a time’(컨트리차트1위)를 비롯해 웨일론 제닝스(Waylon Jennings)와 듀엣으로 노래한 ’There ain’t no good chain gang’(컨트리차트 2위)와 ‘(Ghost)riders in the sky’와 같은 빅 히트싱글을 간간이 냈다. 1975년 캐쉬는 자서전 < Man in black >을 출간했다. 1980년에 그는 가장 젊은 나이에 컨트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눈에 띄는 히트싱글을 내지 못하면서 고전했다. 콜럼비아 레코드사와도 마찰을 빚었다. 자니 캐쉬(Johnny Cash)는 1982년 선(Sun)출신의 로커빌리 명인 칼 퍼킨스(Carl Perkins),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와 함께 팀을 이뤄 레코드 < The Survivors >를 발표했고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캐쉬, 웨일론 제닝스, 윌리 넬슨(Willie Nelson) 그리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이 동참한 밴드 The highwaymen은 1985년 그들의 첫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 또한 적당한 성공을 거뒀다. 다음 해, 캐쉬와 콜럼비아사의 계약이 만료됐다. 그리고 그는 머큐리 내쉬빌(Mercury Nashville)과 계약했다. 새로운 레이블은 그러나 그의 성공을 입증해주지 못했고, 스타일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을 해야 했다. 게다가 컨트리 라디오방송 프로는 더욱 현대적인 아티스트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캐쉬는 곧 자신이 차트에서 밀려날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콘서트를 통해 대중들과의 소통을 계속해 나갔다. 하이웨이멘(Highwaymen)은 1992년 두 번째 앨범을 녹음했다. 그리고 머큐리에서 낸 캐쉬의 어떤 레코드보다 상업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즈음 머큐리와의 계약기간이 끝난 그는 1993년에 아메리칸 레코드사(American Records)에 새 둥지를 틀었다. 새 레이블에서 낸 첫 앨범 < American Recordings >는 설립자 릭 루빈(Rick Rubin)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 앨범의 전 수록곡은 어쿠스틱한 노래들이었다. 이 앨범은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으나, 그의 커리어를 되살리는 기폭제가 됨과 동시에 그를 록 중심의 젊은 음악팬들과 호흡할 수 있게 했다. 1995년에 하이웨이멘은 그들의 세 번째 앨범 < The Road Goes on Forever >를 발표했다. 이듬해 캐쉬는 탐 페티& 하트브레이커스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그의 두 번째 앨범 < Unchained >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0년 봄 캐쉬는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 본 회고조의 앨범을 사랑, 신, 살인 세장으로 묶어 선보였다. 그 다음해에는 새로운 스튜디오앨범 < American Ⅲ: Solitary Man >이 뒤이어 발매되었다. 1990년대와 2000년에 들어 자니 캐쉬는 건강문제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루빈과의 레코드작업을 지속해나갔다. 그들은 네 번째 합작품 < American Ⅳ: The man comes around >을 2002년 후반에 발매했다. 이듬해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Hurt’를 커버한 뮤직비디오가 기대이상의 갈채를 받으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MTV뮤직비디오시상식에서 ’올해의 비디오‘에 후보로 지명돼 그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한창 분위기에 젖어있을 때, 운명적 음악인생의 동반자(아내) 준 카터 캐쉬가 심장수술 경과 악화로 2003년 5월 15일 그의 곁을 떠나갔다. 4개월 후 자니도 당뇨 합병증으로 테네시 내쉬빌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노래 : Donovan (도노반 ,Donovan Philips Leitch)
포크 락 보컬, 기타 포크 락 보컬, 기타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노 연주자
팀 게인(Tim Gane, 기타, 키보드)과 그의 피앙세 레티샤 사디에(Laetitia Sadier, 보컬, 키보드)가 이끌고 있는 포스트 록 밴드 스테레오랩은 정형화된 록을 넘어선 ‘뉴 록’의 개념을 제시한 1990년대 그룹이다. 그들은 고정된 악기와 범위에서 행해지는 기존의 록 사운드를 거부하고 새로운 양식과 장르를 받아들여 록의 저편에 있는 무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했다. 그들이 스피커를 통해 토해내는 록... 팀 게인(Tim Gane, 기타, 키보드)과 그의 피앙세 레티샤 사디에(Laetitia Sadier, 보컬, 키보드)가 이끌고 있는 포스트 록 밴드 스테레오랩은 정형화된 록을 넘어선 ‘뉴 록’의 개념을 제시한 1990년대 그룹이다. 그들은 고정된 악기와 범위에서 행해지는 기존의 록 사운드를 거부하고 새로운 양식과 장르를 받아들여 록의 저편에 있는 무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했다. 그들이 스피커를 통해 토해내는 록은 불편하면서도 친숙하고, 멀면서도 가깝다. 두 세 개의 코드로 진행되는 기타 리프는 단순하고 불분명하며, 무그와 복스 신시사이저의 드론 사운드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린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전통을 물려받은 실험주의 때문에 나타난 생경한 사운드다. 그러나 무드 있는 라운지 음악과 달콤한(또는 키치적인) 프렌치 팝은 그들의 낯선 사운드에 부드러운 향기를 더해준다. 기타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때론 몽환적이고 때론 익숙지 않은 흐름에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을 집어넣어 중화시킨 음악.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록, 그 속에 용해된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이미 닳아빠진 멜로우 팝의 모호한 연결이 그들이 제시한 록의 미래이다. 그들의 대표곡 ‘John cage bubblegum’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스테레오랩의 사운드는 신선하지 않다. 파격과 일탈의 미(美)에 의해 도출된 음악이 아니다. 비록 록음악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무너뜨리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취한 텍스트는 기존에 제시된 지극히 ‘정형화된’ 요소들의 배열과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들어서 일부 비평가들은 그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기도 한다. 그들 스스로도 "우리 음악은 진정한 오리지널이 아니다. 우리는 비치 보이스, 일렉트로니카, 1960년대의 팝 등 우리가 흥미를 가지고 발견한 여러 스타일의 음악들을 독창적인 음악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그들은 "스테레오랩의 방향은 콜라주다"며 그룹의 음악 노선을 확실히 했다. 허나 얼터너티브 록, 테크노, 브릿 팝, 모던 록 등의 장르들이 서로 상호 교차하며 약간은 어수선한 모습을 나타냈던 1990년대의 조류 속에서 < Transient Random Noise-Bursts With Announcements >(1993년), < Emperor Tomato Ketchup >(1996년 > 등의 ‘보편적이고도 실험적인’ 걸작들을 건져 올린 스테레오랩의 존재는 분명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스테레오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음악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그들의 ‘주의(Ism)’이다. 그들은 웅얼거리며 달래는 듯한 멜로디 위에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노랫말을 얹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시선은 늘 아래로 향해져있다. 상류층보다는 빈민층을 옹호하며,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선다. 때문에 그들은 음악 매체와 평자들로부터 ‘막시스트(Marxist)’라 칭해진다. "IBM은 세계로 태어났고, 미국 국기는 영원히 펄럭일 것이다/ 냉담한 적들은 사라졌고, 자본은 계속 뒤따를 것이다." -1994년 작품 < Mars Audiac Quintet >의 수록곡 ‘Wow and flutter’ 중에서- 팀 게인은 그러나 자신들이 막시스트로 불리어지는 것에 대해 ‘느려터진 저널리즘의 결과물’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그는 그저 힘없는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주길 원한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난한 지역에 산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싼 시장에서 쇼핑을 한다." 스테레오랩은 1991년 영국 런던에서 팀 게인과 프랑스 출신의 레티샤 사디에에 의해 결성된 로맨틱 밴드. 1980년대 후반 팀이 리더로 있던 인디 록 그룹 매카시(McCarthy)의 공연을 레티샤가 관람하러오면서 듀오의 음악과 애정 전선이 뜨겁게 형성됐다. 1992년 데뷔작 < Peng! >으로 익스멘탈리즘의 첫 장을 연 그들은 1993년 < Groop Played "Space Age Batchelor Pad Music" >, < Transient Random Noise-Bursts With Announcements > 등 두 장의 앨범으로 영국 언더그라운드 신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계속해서 스페이스 팝 1994년 < Mars Audiac Quintet >, 펑키함이 강조된 1996년 < Emperor Tomato Ketchup >, 보사노바와 스윙 스타일이 더해진 1997년 < Dots And Loops >, 재즈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1999년 < Cobra & Phases Group Play Voltage in the Milky Night >, 그리고 올해 8월 말 신보 < Sound-Dust >를 내놓으며 록의 미래주의자를 자임하고 있다. 과연 스테레오랩을 비롯해 토오터스(The Tortoise), 트랜스 앰(Trance Am) 등이 일궈내고 키워온 포스트 록은 록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포스트 록은 현재 그 무언가를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아직까지 록의 외곽지역에 머물고 있다. 어떤 이는 지금도 갈래를 치고 몸통을 얻으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재진행형 상태라고 하고, 다른 어떤 이는 진정한 록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포스트 록 스스로도 그들만의 틀에 갇혀버렸다고 말한다. 딱 꼬집어 어느 쪽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스테레오랩의 음악 궤적에 비춰볼 때 포스트 록은 현 시점에서 그다지 커다란 임팩트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의 사운드는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재테크에 몰두하여 반복되는 부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 형식에 익숙해져간다는 뜻이다. 일부 컬트 세력과 평단을 제외하고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것 또한 그들을 ‘불편하게’하는 요인이다. 스테레오랩이 1990년대 록의 대안이 될 수는 있어도 2000년대를 책임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멤버 : 로이 필립(Roy Phillips, 보컬, 키보드), 탭 마틴(Tab Martin, 베이스), 트레버 모라이스(Trevor Morais, 드럼) 멤버 : 로이 필립(Roy Phillips, 보컬, 키보드), 탭 마틴(Tab Martin, 베이스), 트레버 모라이스(Trevor Morais, 드럼)
1996년 데뷔한 스코틀랜드 출신 6인조 록밴드. 스토우 대학 뮤직 프로덕션 코스의 과제로 만든 ‘Tigermilk’가 컬트적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꾸준히 활동하며 트위팝, 챔버팝 등의 장르를 구체화시키고 대선배인 틴에이지팬클럽(Teenage Fanclub)에 이어 트래비스(Travis), 모과이(Mogwai)같은 동년배, 이후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에 이르는 글래스고 록씬... 1996년 데뷔한 스코틀랜드 출신 6인조 록밴드. 스토우 대학 뮤직 프로덕션 코스의 과제로 만든 ‘Tigermilk’가 컬트적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꾸준히 활동하며 트위팝, 챔버팝 등의 장르를 구체화시키고 대선배인 틴에이지팬클럽(Teenage Fanclub)에 이어 트래비스(Travis), 모과이(Mogwai)같은 동년배, 이후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에 이르는 글래스고 록씬을 꾸려나간 대표 밴드이다. 로맨틱 영화가 떠오르는 멜로디, 빈티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지금까지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지난 앨범 ‘Write About Love’에서는 재즈 싱어 노라 존스(Norah Jones)와 협연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밴드의 리더인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은 지난해 2009년 발매한 프로젝트 앨범 ‘God Help the Girl’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음악 영화를 제작해 감독 데뷔까지 마쳤다. 1999년 브릿 어워드의 신인상을 수상하고 작년인 2014년에 NME 어워드의 공로상까지 수상했다. 현재 밴드 역사 20년을 앞두고 있으며 약 5년만의 신보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를 발매하고 열혈 투어 중이다. 2010년 지산 록 페스티벌 이후 두 번째로 오는 2월 12일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펼친다.

멤버: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 스티비 잭슨(Stevie Jackson), 크리스 게디스(Chris Geddes), 리차드 콜번(Richard Colburn), 사라 마틴(Sarah Martin), 바비 킬디어(Bobby Kildea)
빅스타(Big Star)는 70년대의 많은 ‘비운의 그룹’ 중에 가장 먼저 손꼽힌다. 만약 실력과 비운은 정비례한다는 괴상한 논리에 일회적으로 의지한다면, 빅 스타는 가장 정상적으로 비운의 그룹이다. 빅스타는 최초의 ‘파워 팝’(Power pop) 전문밴드로서 대단히 훌륭한 음악을 토해내었지만 불행하게도 레드 제플린처럼, 마빈 게이처럼, 그 한 시대를 리얼타임으로 풍미하지는 못했다. 빅 스타는 전직 평민 크리스 ... 빅스타(Big Star)는 70년대의 많은 ‘비운의 그룹’ 중에 가장 먼저 손꼽힌다. 만약 실력과 비운은 정비례한다는 괴상한 논리에 일회적으로 의지한다면, 빅 스타는 가장 정상적으로 비운의 그룹이다. 빅스타는 최초의 ‘파워 팝’(Power pop) 전문밴드로서 대단히 훌륭한 음악을 토해내었지만 불행하게도 레드 제플린처럼, 마빈 게이처럼, 그 한 시대를 리얼타임으로 풍미하지는 못했다. 빅 스타는 전직 평민 크리스 벨(Chris Bell)과 영원한 명곡 팝인 ‘The letter’(1967년)를 히트시켰던 더 박스 탑스(The Box Tops)의 리드보컬 알렉스 칠튼(Alex Chilton)을 두 축으로 1971년 미국 멤피스에서 결성되었다. 파워 팝의 시조는 빅스타, 배드 핑거스(Bad Fingers), 라스프베리즈(Raspberries)정도로 보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두 그룹보다도 빅 스타가 먼저이다. 파워 팝은 국내의 음악 감상 풍토에서는 생소한 장르인 듯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팝과 록 음악들엔 알게 모르게 파워 팝의 형질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면 파워 팝은 무엇인가? 그것은 팝의 탈(脫)심미주의와 록의 기능주의를 동시에 떨쳐낸 음악으로, 수려한 멜로디가 특징인 ‘팝-록’ 음악이다. 선율은 팝의 성격 그대로 매우 아름답지만 순수한 팝의 뉘앙스에 비해 구조는 매우 심미적이고 조직적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그 꼼꼼하고 안정된 조직력에 비해 연주력에 있어서는 전혀 수려하거나 기능을 탐하지 않은 수더분한, 아이로니컬한 음악이다. 간단히 파워 팝 최고의 히트싱글이라 할 더 내크(The Knack)의 ‘My Sharona’를 떠올려보든지 파워 팝 최고의 라이브 앨범으로 평가되는 칩 트릭(Cheap Trick)의 1979년 앨범 부도칸 라이브(Cheap Trick At Budokan)를 통째로 들어보면 파워 팝에 대한 윤곽이 쉽게 잡힐 것이다.(그러나 그 두 가지가 파워 팝의 절대적 일반형태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쉽게도 국내의 경우 파워 팝은 70년대 포크록과 80년대 뉴웨이브나 펑크와의 분해작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위 미지 이른바 ‘언노운(Unknown) 장르’의 하나로 소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파워 팝은 언제나 건강하게 존재하였다. 특별한 전성기도 없고 침체기도 없다. 프로토(Proto)니 포스트(Post)니 번거로운 재단이 필요없는 가장 안정적이고 꾸준한 장르이다.(파워 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근 30년 넘게 그냥 ‘Power Pop’이라고 불리어 오고있다). 현존하는 파워 팝의 대표밴드들인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매튜 스윗(Matthew Sweet), 더 포지스(The Posie), 파운틴즈 오브 웨인(Fountains of Wayne) 등의 변함 없는 그 지구력이 증명한다. 또한 그러한 밴드들에 꾸준히 매료되어 있는 팬이라면 파워 팝의 원류인 빅 스타가 무난히 흡수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위에 언급한 밴드들은 90년대 이후 2000년대 파워 팝을 지탱하고 있는 전문 파워 팝 밴드들로서 80년대 파워 팝 스타일을 제껴 버리고 70년대 순수한(슬러거한) 기타 파워 팝을 잘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에 있어 빅 스타는 음악관과도 같은 것이다. 빅 스타는 파워 팝 그 자체이지만 70,80,90년대 파워 팝의 평균을 구한다면 파워 팝이란 빅스타의 ‘The ballad of El Goodo’ ‘Thirteen’ ‘I`m in love with a girl’ ‘Big black car’, ‘Take care’ ‘Blue moon’ 등의 평범을 넘어선 아름다운 멜로디에 역시 빅 스타의 곡인 ‘Feel’, ‘In the Street’ 정도의 ‘세기(엔진, 동력)’가 걸린 슬러거한 팝이다. 사운드가 단체적, 자급적(It`s a 그룹사운드!)이라 사실 말이 팝이지 록에 더 가깝지만 말이다. 빅스타 자신은 그 완벽한 합체도 잘 제시해내었으며 그것은 바로 빅 스타의, 파워 팝의 최고의 싱글로 손꼽히는 ‘Back of a car’와 ‘September gurls’에 잘 나타나 있다. 빅 스타는 3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기념비적인 라이브 앨범 2장과 컴필레이션 앨범 1장을 추가로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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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 Night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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