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에서 삼각, 백악을 거쳐 한강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모두 8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한눈에 살피는 서울의 곳곳!
이로써 거듭난 수도 서울의 총합된 이미지
오늘날의 서울은 확장된 개념으로, 19세기까지 한양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이른바 도성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는 ‘서울’ 역시 오늘의 서울 이전, 한양으로 불리던 바로 그 시절 그곳이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은 모두 8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도봉산에서 비롯하여 삼각산, 백악산을 거쳐 서소문을 경유하고 한강의 광나루에서 행주산성까지를 통째로 살핌으로써 옛 서울 한양을 향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통찰을 유도한다.
‘서장’에서 18세기 한양을 그린 「도성도」를 비롯한 그림 지도와 19세기 신감각파의 중심 작가 김수철의 「한양 전경도」 등 서울 전체를 일별하는 압도적인 그림들을 책 앞머리에 내세움으로써 이 책과의 첫 만남을 주선한 저자는 이로써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서울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조감하게 한다. 이후 총 8장으로 구성한 체제를 통해 저 멀리 도봉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각산을 거쳐 백악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통해 서울 전체를 관통하는 큰 축을 제시함과 동시에 예술의 정수가 모일 수밖에 없는 궁궐 주변을 중심으로 오늘날 달라진 모습을 상대적으로 쉽게 살필 수 있는 풍경을 펼쳐 보인다. 나아가 사대문 너머 서대문, 용산, 동대문 너머 인근의 정취를 아우른 뒤 광나루에서 행주산성까지 한강을 주유함으로 이 책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로써 서울은 단편적인 장소의 집합체가 아닌, 육백여 년 동안 한 국가의 수도로서의 총합된 이미지로 독자에게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그림 지도, 기록화, 산수화 등 조선 시대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을 전방위로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그림 속 풍경들은 그 자체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근원, 풍경과 일상, 역사의 기록과 개인의 추억의 경계를 넘나들며 넘나들며 자유로운 줌인, 줌아웃을 경험하게 한다. 조선 시대 화가가 남긴 그림, 그 그림을 바라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시도는 마치 2인 3각의 경기처럼 독자와 더불어 하나의 도시와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때로는 크게, 때로는 세밀하게 살피는 즐거움을만들어 내는데, 이것이야말로 집성과 집적만이 줄 수 있는 유의미한 재미다.
18세기 조선문예의 부흥기에 집중된 실경 산수화,
그림을 통해 만나는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
미술사학자 최열의 20여 년 노정의 집성
이 책의 등장 이전까지 서울을 그린 그림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궁궐 인근, 유명한 명승지, 이름난 화가의 작품을 통해 파편화된 이미지를 통해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 시대 수도였던 한양의 전부를 충실하게 모아둠으로써 서울의 전체 모습을 가늠하고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16세기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그림을 모아두고 보니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한양을 그린 그림은 매우 희귀했으며, 18세기에 이르러 실경을 화폭에 담은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는 곧 조선의 역사에서 18세기가 곧 문예 부흥의 시기이자, 실경에 관한 화가들의 관심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또한 화가들의 이야기와 시대의 이야기를 종횡으로 교직함으로써 역사란 곧 사람의 이야기임을 말해준다. 풍경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일 수만은 없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살았던 시간이 곧 역사가 되어 오늘에 전한다. 즉 최열의 안목을 통해, 그의 안내를 따라 그림을 보고, 그림을 통해 사람을 만나며 나아가 역사를 만나노라면 독자들은 어느덧 그림 한 점을 통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정권 쟁탈의 현장을 만나며, 약하고 힘없는 나라의 현실을 눈앞에 둔 군주의 회한을 엿보게 된다. 이미 사라진 우리의 풍속을 만나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로 들어와 있는 일상의 풍경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유추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저자 최열은 그림 한 점을 볼 때마다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한경지략』, 『택리지』 등을 비롯한 방대한 문헌들을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살아야 했다.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풍성한 이야기의 현장이 수많은 문헌이라면, 그림의 실경을 확인할 곳은 다름아닌 바로 오늘의 서울이었다. 그는 그림에 깃든 사람의 이야기와 그림이 그려낸 현장감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의 과거로 들어가는 답사 여행을 끝도 없이 떠났다. 답사 여행의 초반, 세상은 아직 아날로그의 세계였다. 조선 시대 그림 한 점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사실은 널리 공개되지 않았고, 그 그림이 누가, 언제, 어디를 그렸는가 하는 것 역시 분명하지 않았다. 최열은 손에 쥔 한 점의 그림을 들고 수많은 고문헌을 살펴 연구를 거듭했으며 실제로 그 대상이 되는 곳으로 여겨지는 곳을 기꺼이 찾아가 그림과 현재를 비교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발품을 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이 달라지면서 등장하고 점점 정교해지는 디지털 지도를 활용하여 하나씩 대조하는 작업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십수 년 동안 모든 데이터는 때로 수정되고, 새로운 내용이 보태지면서 업데이트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은 바로 그 오랜 노정의 빛나는 성취다.
조선의 그림을 담은 책이라는 기본 전제에도 충실한 책,
이미 알려진 모든 것을 뛰어넘어 더 많은 화가, 작품, 이야기를 담아내다
이 책의 출발은 다름아닌 조선 시대 그려진 그림이다. 이 책은 그 본분에도 탁월하게 충실하다. 조선 시대 화가를 떠올리면 어떤 이름들이 생각날까. 일반 독자들에게 익숙한 화가들이란 정선이나 강세황, 김홍도나 신윤복 등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당대 문예인으로 추앙 받던 이들이나 도화서 화원으로 유명세를 획득한 이들이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하게도 조선에는 더 많은 화가가 있었고, 더 많은 그림이 전해져 온다. 이 책은 조선 시대 화가들이 그들만이 아니었음을 새롭게 전한다. 인왕산을 떠올리면 정선의 「인왕제색도」만 떠오를 독자들에게 그에 못지 않은 강희언의 「인왕산도」를 보여주고, 백악산 하나를 두고 김득신이라는 화원 화가의 작품과 장동김문의 서자였던 김윤겸의 작품, 그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엄치욱의 작품을 나란히 두어 같은 대상이 화가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그려졌는가를 한눈에 보게 한다. 이름도 낯선 권신응이라는 화가가 조선 시대를 어떻게 풍미했는지, 조선에는 김홍도만이 아니라 그와 쌍벽을 이룬 이인문이라는 위대한 화가가 있었으며 그가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역시 이 책을 통해 발견하는 ‘사실’이다. 양반가 출신인 정선만큼이나 하급 관료인 임득명 역시 빼어난 솜씨를 베풀고 있다는 것, 중인 가문 출신 화가들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역시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앎의 즐거움이다.
그뿐이겠는가. 화원 화가 김득신의 「삼각산 노적봉도」를 통해 정조의 죽음을 바라보는 화가의 쓸쓸함을 엿보고, 김석신의 한강 주유 연작(「가고중류」, 「압구청상」, 「금호완춘」, 「담담장락」)을 통해 그 시절 화가의 눈으로 즐겁게 한강 유람을 떠날 수도 있다. 김홍도의 「송석원 야연도」와 화원 화가 임득명의 「등고상화」 등을 통해 그 시절 글과 시, 그림을 즐겼던 이들이 누린 한때의 풍류에 동참할 수 있으며, 정선(「은암동록」)과 심전 안중식(「백악춘효」)의 그림을 통해 경복궁의 여러 모습을 가늠할 수도 있다. 조선의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안동김씨 세력의 일가인 장동김문의 세거지 그림을 통해 당시 권력을 쥔 사대부가의 일상을 세밀하게 살피고, 청계천 준천을 영조 임금이 얼마나 각별하게 여겼는지를 두 점의 그림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오늘의 청계천의 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청계천을 바라보며 떠올릴 풍경이 복개 이후의 것만이 아님을 저절로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더해 청계천 위에서 백성들이 즐긴 정월대보름 달놀이를 통해 우리가 오늘 걷는 청계천의 오래된 풍취를 알 수 있게 하고, 문헌을 통해 드러난 백성들의 즐거움을 위해 통금 시간을 늦춘 임금의 배려를 설명해둬, 풍경이 풍경만이 아닌 그 시절 풍속을 읽을 수 있게도 한다.
도판과 텍스트의 아름다운 조화를 꿈꾼, 한 권의 책
책 곳곳에 포진한 오늘의 독자를 위한 저자의 다양하고 세심한 배려
이미 책 한 권 분량으로 원고가 쌓인 것은 수 년 전이나, 본격적인 편집 작업이 시작된 건 약 20여 개월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약 1년 반 동안 이어진 편집 작업의 초점은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맞춰졌다. 이 책의 모든 요소들은 그것을 우선순위로 두어 배치되었다. 읽는 책인 동시에 보는 책을 만들기 위해 다른 책에 비해 약 1.5배가량 큰 판형을 선택하고, 본문의 배치에서 그림의 비중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형의 한계 안에서 세부를 보여줄 수 없고, 책이라는 물성의 특성상 접히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을 재치 있게 확대, 배치하여 아쉬움을 그대로 두지 않고, 그림을 즐기는 또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한 것은 보는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다.
또한 이 책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곳곳에 가득한 독자를 위한 배려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그림에는 그림의 대상이 오늘의 어디를 그린 것인지를 설명하는 문장이 한 줄씩 붙어 있다. 독자를 위한 저자의 각별한 배려에서 출발한 이 한 줄의 설명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어디가 어디인가를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오늘의 시점으로 그 의미를 판단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십수 년의 시간을 바쳐 그림 속 풍경이 오늘의 어디인지를 밝혀내려 애쓴 저자의 발품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책의 배려는 이걸로 다가 아니다. 책 뒤에 부록으로 ‘옛 그림 속 서울을 그린 조선의 화가들’을 두어 책에 실린 모든 화가들의 상세한 이력과 그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 이러한 일별을 통해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던 작가와 작품부터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의 특징과 작품의 경향까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옛 그림을 담은 책을 만나는 오늘의 독자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여 이 책을 살피는 유용한 네비게이션을 제공하려 한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색인을 따로 두어 이 책이 그림과 역사, 나아가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 역시 그 네비게이션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오늘 우리는 왜 서울의 옛 그림을 봐야 하는가.
옛 그림을 통해 어제를 살피고,
서울의 내일을 꿈꿀 유용한 근거를 갖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것은 1394년, 지금으로부터 꼭 626년 전이다. 그후로부터 오늘날까지 한양은 경성으로, 서울로 이름만 바뀌어 왔을 뿐 이 땅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용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울의 옛 풍경을 그림으로 만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흘러간 옛 모습을 들여다보는 추억이나 감상의 동기 부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는 끝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나간다. 새로움을 향한 추구는 어쩔 수 없이 지난 역사의 바탕 위에 덧대어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후 우리가 만들고 지향할 서울의 모습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 우리는 옛 모습을 기억하고 떠올릴 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이후의 시간이야 이미 무수한 기록으로 이미지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근대 이전, 서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 옛 풍경은 감상의 대상이자 지엽적인 지역의 복원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 그림을 통해 서울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여행이 지금 당장 무슨 쓸모가 있으랴. 그러나 서울을 그린 옛 그림을 보며 아름답던 한양과 마주하는 순간의 감동이야말로 미래의 서울을 가꿀 유의미한 동력이다. 기억이 없다면, 추억조차 잊고 산다면 어떻게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기획의도이자 책을 통해 독자와 나누고 싶은 저자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