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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y Faces Of David Bowie [레드 & 블루 컬러 2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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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The Many Faces Of David Bowie [레드 & 블루 컬러 2LP]

[ 180g ]
David Bowie, Ian Hunter, Dana Gillespie, Iggy Pop, Ava Cherry 노래 외 8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usic Brokers / Music Brokers | 2020년 06월 3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78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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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y Faces Of David Bowie [레드 & 블루 컬러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0년 06월 30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컬러 디스크 LP를 구매하실 때 아래 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디스크

Disc1
  • A1 You've Been Around - Reeves Gabrels Feat. David Bowie
  • A2 All the Young Dudes - Ian Hunter & Mick Ronson
  • A3 Andy Warhol - Dana Gillespie Prod. By Mick Ronson & David Bowie
  • A4 Growing Up and I'm Fine - Mick Ronson
  • A5 Funtime - Iggy Pop & David Bowie
  • B1 Ziggy Stardust - the Spiders From Mars
  • B2 Pleasure Man/Hey Ma Get Papa - Mick Ronson
  • B3 I Am Divine - Ava Cherry & the Astronettes - Prod. By David
  • B4 I Just Want To Have Something To Do - Angie Bowie
  • B5 All the Way From Memphis - Ian Hunter & Mick Ronson
Disc2
  • C1 The King of Stamford Hill - Reeves Gabrels Feat. David Bowie
  • C2 Moonage Daydream - the Spiders From Mars
  • C3 Lonely House - Carmen
  • C4 Sister Midnight - Iggy Pop & David Bowie
  • C5 I Am a Laser - Ava Cherry & the Astronettes - Prod. By David
  • D1 I'm a Man - the Yardbirds
  • D2 Waiting For the Man - the Velvet Underground
  • D3 Sorrow - the McCoys
  • D4 Around and Around - Chuck Berry
  • D5 La Mort (My Death) - Jacques Brel

아티스트 소개 (13명)

노래 : 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록의 순례자 1947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차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69년 미국에서 아폴로 11호가 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에 맞춰 공상 과학(SF)의 환상을 실은 ‘우주의 괴짜(Space oddity)’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는 불세출의 걸작 앨범 <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 >을 통해 남녀 일체의 파격을 선보이며 진보적인 록 뮤지션으로 떠올랐다. 그는 스스로 동성이자 초월자인 ‘지기’로 분해 무대의 시각적 충격을 강조했으며 현상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상화했다. 흔히 ‘자극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와 맞물린 이러한 퍼스낼리티 설정은 즉각 록의 새로운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그것이 ‘글램 록’ 또는 ‘글리터 록’이란 것이었다. 그는 가수가 노래하는 사람, 무대가 노래하는 장소라는 등식과 관념을 넘어섰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화장에 반짝거리는 의상을 하고 나와 무대에서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연기’를 했다. 그것은 자극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는 1972년 “지금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팬들이 지기의 이미지를 오용하여 반사회적인 폭력을 일삼게 되자 곧바로 지기의 탈을 벗어버렸다. 이 시점부터 그는 어느 것 하나에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다이아몬드의 개(Diamond dogs)’로 예언자가 되는 듯 하더니 ‘로우(Low)’에서는 은둔자로 변신했으며 나중에는 ‘야윈 백인공작(Thin white duke)’으로 탈바꿈했다. 음악도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하드한 기타록을 하다가 소울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전자 음악도 했고 심지어 디스코 댄스 음악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볼 때 그는 새로운 것에 과감히 가슴을 열어 끊임없는 혁신을 이룩한 음악인이었다. 데카당적인 틀은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예술적 보헤미안’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한 우물 파기’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그를 ‘뿌리 없는 실험 병자’로 ‘음악적 곡예사’로 배격했다. 그가 펼쳐 놓은 무수한 장르의 파편들과 끝없는 변신의 행적을 보면 카멜레온이요, 기회주의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과연 이같은 무차별 변신을 두둔해야 하는가. 그러나 록계에서는 그의 음악이 언제나 예측 불허였으며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30년간 록계에 몸담으면서 오로지 실험 정신으로 일관해 온 순례자로 떠받드는 것이다. 그는 1993년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한 것을 동료들과 비교할 때 나를 모험적인 작가로 생각한다. 난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체질적으로 싫다. 그래서 악평이 나오기도 한다... 난 스튜디오에 들어가 머릿속에 담은 구체화된 아이디어가 내 자신을 놀라게 하는지를 본다. 밖에서 누군가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지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곡을 쓴다.” 그의 곡예는 대중의 기호를 쫓은 상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성을 자극하는 것, 바로 그 점에 봉사했다. 즉 ‘예술적 동기’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형상화해 온 셈이다. 이처럼 록예술에 집착한, 그리고 진보적인 뮤지션의 음악은 대중의 폭넓은 사랑과는 대부분 무관하다. 음악적으로 볼 때도 곡조나 편곡에 있어서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두 곡이나 보유하고 있다. 예술의 개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가 때로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1위곡들인 ‘명성(Fame)’이나 ‘춤을 춥시다(Let’s dance)’는 그다지 호평을 받는 편이 아니다. 특히 디스코 리듬에 전자 댄스 음악적 요소가 전면화된 ‘춤을 춥시다’는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겨냥, 보위의 골수 팬들을 실망시켰다. 1977년 < 로우 >앨범 발표 당시 “되도록 이 앨범이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그를 전제할 때 그것은 명백한 일탈이었다. 그는 ‘춤을 춥시다’의 성공이 너무 거대했던지 이후 그 그림자에 가려 주류에서 급격히 멀어졌다. 줄기차게 앨범을 내놓았지만 상업적 성과도 내리막길을 달렸고 평자들의 호의도 식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그 자신도 그때의 성공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1995년 < 뉴욕 타임스 >지에 “‘춤을 춥시다’로 빅히트를 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난 대중적인 인기를 누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풍선껌 포장지와 같은 처지에 서게 된 느낌이었다.” 라고 술회했다(가끔 목격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구 록스타들은 반성도 참 잘한다!). 그는 이때 2년만에 이색적인 앨범 < 아웃사이드(Outside) >와 함께 컴백했다. 이색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편의 심리적인 추리소설을 사운드트랙화 했기 때문이다. ‘나단 애들러의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앨범은 기괴한 10대 소년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사립 탐정과 그 주변 용의자들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이 ‘예술적 추리 사건’의 진상은 1999년 발매될 마지막 앨범에서 규명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 < 아웃사이드 >앨범은 시리즈의 첫편인 셈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한 때 명콤비였던 걸출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시 손을 잡았다. 그것은 1980년대의 부끄러운 상업적 성공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비상업적’인 과거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즉흥성이 중시된 연주나 몽환적 부유(浮遊)의 분위기가 그것을 설명해 준다. 마치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당당함이 배어 있는 음반이다. 그는 인기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자세를 되찾음으로써 ‘영원한 로커’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록이란 게 원래 그런 음악이다.
노래 : Dana Gillespie (다나 길레스피)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불기 시작한 20세기 대중음악 총 정리 붐. 그 동안 음악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소외 뮤지션’들을 부활시킨 계기가 되었다. 말로만 ‘펑크의 대부’이지 제대로 된 평가한번 받지 못했던 이기 팝에게도 그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를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첫 타자는 바로 펑크의 세례를 받고 자란 헤비메탈 키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와 슬레이어(Slayer)...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불기 시작한 20세기 대중음악 총 정리 붐. 그 동안 음악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소외 뮤지션’들을 부활시킨 계기가 되었다. 말로만 ‘펑크의 대부’이지 제대로 된 평가한번 받지 못했던 이기 팝에게도 그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를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첫 타자는 바로 펑크의 세례를 받고 자란 헤비메탈 키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와 슬레이어(Slayer). 이들은 각각 펑크가 자신들의 음악적 토대임을 증명하는 1993년 펑크 커버 앨범 < The Spaghetti Incident? >와1996년의 < Undisputed Attitude >에서 이기 팝의 스투지스 시절의 곡인 ‘Raw power’와 ‘I`m gonna be your god’를 각각 실었다. 생기가 없이 방치되던 그의 음악에 살아 펄떡대는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기 팝 바로 세우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에까지 손을 뻗쳤다. 1996년 개봉되어 컬트 무비의 걸작으로 평가받은 영화 <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에 그의 곡 ‘Lust for life’가 삽입된 것이다. 이는 그의 음악 지지층이 소수에서 다수로 저변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개봉되었던 영화 <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을 통해 그와 데이비드 보위와의 묘한(?) 관계가 낱낱이 공개됨으로써 그는 또 한차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본인이 아닌 그의 열혈 추종자들에 의해 음악과 인생 이력서가 쓰여진 것이다. 이기 팝은 자신을 향한 이러한 스포트라이트에 새 앨범 < Avenue B >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이 짧은 팬이라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가겠지만 그가 행해왔던 기괴한 퍼포먼스와 니힐리즘이 가득한 펑크 애티튜드를 생각한다면 이번 신보는 예삿일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주무기를 버리고 명상음악처럼 아주 듣기 편안한 음악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 팝의 이런 ‘탈(脫)펑크’는 그의 오랜 지기이자 조력자인 데이비드 보위를 만나면서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다. 물론 ‘펑크의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1973년 음반 < Raw Power >의 프로듀서를 데이비드 보위가 담당했지만 그것 또한 펑크의 미래를 예시한 작품이었다. 한발 앞서 나가는 뮤지션을 대동한 그의 음악이 진보하는 것은 당연지사. 데이비드 보위의 그늘에서 벗어나 만든 이번 앨범에서 이기 팝은 재즈밴드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Medeski Martin & Wood)와 함께 고급화를 지향하고 있다. 단지 ‘SHakin` all over’, ‘Corruption’에서만 펑크의 흔적을 추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50세였을 때 겨울이었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정말로 혼자였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하는 담담한 독백 ‘No shit’처럼 이기 팝은 이 음반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특히 그를 거쳐간 여인에 대해서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다. ‘Nazi girlfriend’, ‘Miss argentina’, ‘She called me daddy’, ‘I felt the luxury’ 등에서 투영되고 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는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성(强性) 펑크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했던 이가 팝이었기에 안타까움도 던져주고 있다. 갑자기 노쇠해져버린 그의 음악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주저앉아버린 그의 나약함을,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은 그의 상반신을 감추고 싶기라도 하듯 옷을 걸치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는 펑크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다. 재평가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이기 팝. 이제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192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태어난 척 베리(Chuck Berry)는 록앤롤(Rock & Roll)의 태동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컨추리풍의 곡들을 멋지게 써내며 흑인음악이었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음악이었던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을 ’록앤롤’이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켰다. 당시 이름... 192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태어난 척 베리(Chuck Berry)는 록앤롤(Rock & Roll)의 태동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컨추리풍의 곡들을 멋지게 써내며 흑인음악이었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음악이었던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을 ’록앤롤’이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켰다. 당시 이름만 존재할 뿐 실제적인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록앤롤이라는 장르가 척베리에 의해 정립되면서 이후 1950-1960년대 수많은 록앤롤 밴드들이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살 때부터 기타를 치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그였지만 그의 20대는 미국의 1940-1950년대를 살았던 다른 흑인들처럼 흑인 노동자의 삶에 머물러 있었다.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룹을 결성한 척 베리는 클럽에서 보컬 및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951년부터 1955년까지 클럽에서 알앤비와 록앤롤이 혼합된 사운드에 스탠다드풍의 보컬을 섞어 들려주며 인기를 높여가던 그는 1955년 정식으로 데뷔한다. 체스터 레코드사의 레너드 체스 사장은 그의 노래 ’Ida May’를 듣고 그 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곡명을 ’Maybellene’으로 바꾼 후 레코드로 정식 발매했다. 이 곡은 미국 알앤비 차트 정상에 오르고 전미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1960년까지 척 베리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Roll over Beethoven’(후에 비틀즈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졌다.), ’School days’, ’Johnny b. goode’(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파티 장면에 주인공이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삽입되어지기도 했던 이 곡은 4박의 개념을 깨는 폴리 리듬을 도입하여 록 기타주법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Little Queenie’, ’Sweet little sixteen’, ’Surfin’ U.S.A.’(비치보이스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1961년 최고의 인기와 음악적 명성을 누리던 그는 ’미성년자 추행’ 혐의로 20개월 간 복역하는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된다. 개인적인 실수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인기는 떨어지게 되고 복역 이후 좋은 곡들을 많이 작곡하며 차트에도 여러 곡들을 올려놓지만 1960년대 쏟아져 나온 수많은 록앤롤 밴드들에게 록의 주도권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이후 1972년 < The London Chuck Berry Sessions >에서 ’My ding-a-ling’을 히트시키는 데 그쳤지만 록 음악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과 업적은 인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 ’척 베리가 있었기에 비틀즈가 존재했다’는 후대의 평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록음악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위상과 업적은 수 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을 것이다.
샹송 가수 샹송 가수
연주 : Reeves Gabrels (리브스 가브렐스)
기타리스트 기타리스트
록 기타리스트 록 기타리스트
밴드 : Velvet Underground (벨벳 언더그라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 ‘접속’에 삽입됐던 ‘Pale blue eyes’로 한번 대중들에게 소개되며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기는 했었지만 그야말로 잠시 잠깐이었고, 밴드에로의 조명은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경제적 공황에 처했던 영국의 런던에서 펑크 록의 세계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섹스 피스톨스 이전에 펑크의 공격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 꿈틀대며 기지개를 켠 곳은 런던에서 바...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 ‘접속’에 삽입됐던 ‘Pale blue eyes’로 한번 대중들에게 소개되며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기는 했었지만 그야말로 잠시 잠깐이었고, 밴드에로의 조명은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경제적 공황에 처했던 영국의 런던에서 펑크 록의 세계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섹스 피스톨스 이전에 펑크의 공격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 꿈틀대며 기지개를 켠 곳은 런던에서 바다 건너 있는 미국의 도시 뉴욕 - 미국에서 가장 언더그라운드 적이면서도 가장 전위적인 모든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변태적인 공격성과 시적인 낭만이 공존했던 온갖 변종들의 도시 - 이었다.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있었고, 그와 함께 시작한 밴드, 그 안에 펑크와 뉴 웨이브의 응어리를 내포하고 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있었다. 그 오리지널 멤버 중에 단 한 명의 허튼 멤버도 없었던 (이제는 거의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미미한 음반 판매량과 전혀 무관한 그 컬트적인 명성과 록 음악사에서의 확고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밴드다. (이후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벨벳으로 약칭) 1960년대 중반은 록에 있어서 급진적인 성장과 실험의 기간이었다. 미국의 서부에서는 평화의 사랑의 물결이 넘실대며 파도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록이 급진적인 성장과 실험을 하고 있던 때가 바로 1960년대 중반이다. 그리고 루 리드와 존 케일의 천재적인 영감으로 점철되어 있던 벨벳의 음악은 이러한 캘리포니아의 록 르네상스에 대한 뉴욕의 언더그라운드의 화답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대중적인 스타의 길을 달리던 (사랑과 평화, 애시드를 주창하던) 캘리포니아의 많은 밴드들과 달리 벨벳은 사후에 그 음악적 영향은 인정받았지만 결코 스타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벨벳은 록의 에너지와 전위적인 사운드를 뒤섞은 혁신적인 음악과, 그들의 음악 속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사회 리얼리즘의 새로운 단계를 소개했다. 그들의 시대에 벨벳은 컬트적인 청중들과 몇몇 평론가들에게 거대한 찬사를 받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은 거의 없었으며 많은 대중들은 그들의 음악에 무관심하거나 경멸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리기에 벨벳의 음악은 많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벨벳이 서거한 후에 점점 늘어나는 그들의 숭배자들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명성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벨벳은 1960년대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전 시대를 통해 가장 중요한 밴드로 알려졌다. 벨벳의 음악이 가지는 거대한 의미는 부진했던 그들의 음반 판매량으로는 측정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평론가들은 그들을 펑크와 이어지는 뉴 웨이브에 끼진 그들의 거대한 영향력으로 그들을 극찬하고 있으며 사실 벨벳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러한 움직임에 대한 열쇠의 역할을 했다.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는 음악이라... 그것만큼 음악의 역사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의미론적인 시각으로만 벨벳을 바라보는 것은 벨벳 이야기의 작은 한 부분이고 자칫하면 벨벳의 음악적인 매력을 놓칠 수도 있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벨벳은 그들의 음악과 가사에 있어서 결코 그 어느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지켰다. 그리고 다음 세대 음악 작업의 영감을 된 거칠고 황량한 침울함과 단순하고 미니멀한 원시주의를 지지하고 신봉했다. 벨벳의 음악에는 컬러풀하고 귀를 사로잡는 음악적 파노라마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잘 짜여진 노래들은 보다 인간적인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 벨벳의 멤버들 중에서 이러한 음악적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기타리스트이자 송 라이터였던 루 리드였다. 시니컬한 듯 따뜻하며 락킹하면서 읊조리는 보컬로 청중을 압도하는 그 가사들을 쏟아내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벨벳의 요소들을 그의 솔로 작업 속에서 이어가고 있는. # 노란색 바나나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벨벳의 서거 이후 꾸준한 솔로 작업으로 어둠의 왕자(Prince Of Darkness)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던 루 리드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많은 음악적 변화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과 창조적 영혼을 간직하고 있는 닐 영과 그리고 팝 계의 카멜레온 데이빗 보위와 함께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도 개성 있는 뮤지션이다. 데이빗 보위와 비슷한 노선을 걸어왔지만 결코 메이저에 몸을 맡기지 않는 은둔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루 리드는 1942년 3월 12일 중산층 가정에서 회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유태인 소년은 어렸을 때부터 록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롱아일랜드의 10대 소년이었던 1950년대 말에는 쉐이즈(The Shades)라는 밴드에서 두 왑 스타일의 싱글을 녹음하기도 했다. 뉴욕의 시라큐즈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픽 윅(Pick Wick) 레코드 회사에 취직하여 음악을 만드는 일을 한다. 비트닉 문화와 델모어 슈와츠(Delmore Schwartz)의 시, 재즈 음악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픽 윅 레코드에서의 일에 싫증을 느낀 루 리드는 1964년 그가 썼던 ‘The ostrich’라는 곡을 계기로 만나게 된 존 케일과 함께 벨벳으로 발전할 전위 부대를 만든다. 이 두 명의 남자가 만든 전위 부대의 멤버들은 루 리드(보컬, 기타), 존 케일(기타, 비올라, 키보드), 스털링 모리슨(베이스), 앤거스 맥라이스(Angus Maclise, 드럼)였다. 이 중 주로 봉고를 연주하던 퍼커션 주자였던 드러머 앤거스는 공연의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는 등의 태도로 밴드의 신뢰를 잃어 스털링 모리슨의 친구 여동생이던 모린 터커(Maureen Tucker)로 교체된다. 이렇게 짧았던 생애를 함께 할 멤버들이 모이게 됐고, 존 케일과 루 리드는 토니 콘라드(Tony Conrad)가 쓴 < Velvet Underground >의 카피본을 발견하고 그 느낌과 어감이 좋다는 이유로 이것을 팀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음악적 통찰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루 리드와 음악적인 역량이 뛰어났던 존 케일의 탄탄한 음악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혁신적인 음악을 가지고 벨벳은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다양한 클럽들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이 당시에 한 클럽에서는 ‘Black angels death song’을 연주한 후에 쫓겨나는 일을 당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벨벳은 당시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클럽이던 맥스 캔사스 시티 (Max`s Cansas City) -후에 이 곳에서의 그들의 라이브를 담은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에 데뷔를 한다. 맥스 캔사스 시티는 많은 뉴욕 아방가르드와 언더그라운드의 명사들이 붐비는 사교의 장이었는데, 맥스에서의 데뷔 후 벨벳은 바로 이 곳의 단골이던 앤디 워홀(Andy Warhol)과 세기의 만남을 하게 된다. 앤디 워홀은 곧 벨벳의 음악에 주목을 하며, 이들의 후원자이자 매니저가 되기를 자청하며 자신이 알고 있던 아름다운 독일의 모델이자 배우였던 니코를 벨벳에 참여시켰고, 1966년 자신의 멀티 미디어 사이키델릭 쇼 ‘Exploding Plastic Inevitable Media’에 벨벳을 출연시키기도 하는데, 이 전위적인 쇼에서 벨벳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소음이 뒤섞인 무대를 만들었다. 또한 벨벳의 재정적 후원을 맡은 앤디 워홀은 곧 자신의 프로듀스로 당시엔 그저 찬밥 신세였고, 후대에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될 벨벳의 1집 < Velvet Underground & Nico >를 제작한다. 존 케일과 루 리드는 벨벳 이후 자신의 솔로 작업을 꾸준히 하며 각각 조금은 다른 영역에서 그 음악적 입지를 굳혀갔다. 벨벳 당시 맛보지 못했던 어느 정도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그 자신의 아티스트적인 색깔을 가지고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펼쳐나간 존 케일과는 달리 루 리드는 벨벳에서 보여주었던 음악적 요소들을 자신의 솔로 작업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초창기의 벨벳 디바 니코는 루 리드, 존 케일, 브라이언 이노 등의 도움으로 < Chelsea Girl > -니코는 벨벳에 합류하기 이전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등의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지만 1988년 사고로 사망했다.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벨벳을 재조명하며 뒤늦게 그 업적을 치하하며, 1980년대 이후의 수많은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의 빚을 벨벳에게 돌리는 분위기 속에서 1993년, ‘덕 율을 제외한’ 오리지널 멤버들이 모두의 상상을 뒤엎는 재결성을 하면서 투어를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벨벳이 마지막 공연을 했을 당시 태어났을까 말까한 어린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존 케일과 루 리드 사이의 오래된 상처가 다시 돋기 시작했고, 이후 1996년 벨벳이 록 앤 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해 모인 것 외에 더 이상의 벨벳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스털링 모리슨은 이 감격스러운 일은 몇 달 앞두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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