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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 트리뷰트 앨범 (Nativity in Black - A Tribute to Black Sabbath) [투명 블랙 스월 컬러 2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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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블랙 사바스 트리뷰트 앨범 (Nativity in Black - A Tribute to Black Sabbath) [투명 블랙 스월 컬러 2LP]

2020년 RSD 한정반

[ 게이트폴드 / 한정반 ]
Black Sabbath 작곡/Ozzy Osbourne, Rob Halford, Bruce Dickinson 노래/Biohazard 밴드 외 10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Real Gone Music (USA) / Real Gone Music (USA) | 2020년 09월 3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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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 트리뷰트 앨범 (Nativity in Black - A Tribute to Black Sabbath) [투명 블랙 스월 컬러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 예정일 2020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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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컬러 디스크 LP를 구매하실 때 아래 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디스크

Disc1
  • A1 Biohazard - After Forever
  • A2 White Zombie - Children Of The Grave
  • A3 Megadeth - Paranoid
  • A4 Cathedral - Solitude (bonustrack)
  • B1 1,000 Homo DJ's - Supernaut
  • B2 Ozzy Osbourne?with?Therapy? - Iron Man
  • B3 Corrosion Of Conformity - Lord Of This World
Disc2
  • C1 Sepultura - Symptom Of The Universe
  • C2 Bullring Brummies - The Wizard
  • C3 Bruce Dickinson?with?Godspeed (3) - Sabbath Bloody Sabbath
  • D1 Ugly Kid Joe - N.I.B.
  • D2 Faith No More - War Pigs (Live)
  • D3 Type O Negative - Black Sabbath

아티스트 소개 (15명)

누구에게나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존재는 있게 마련이다. 1990년대 대거 등장한 블랙 메탈, 고딕 메탈을 하는 밴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의를 표하는 블랙 사바스는 흑마술과, 오컬티즘(Occultism)을 음악에 본격적으로 끌어 온 최초의 그룹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그들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밤의 제왕’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기존의 록 밴드들이 낭만적이고,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음침했고... 누구에게나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존재는 있게 마련이다. 1990년대 대거 등장한 블랙 메탈, 고딕 메탈을 하는 밴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의를 표하는 블랙 사바스는 흑마술과, 오컬티즘(Occultism)을 음악에 본격적으로 끌어 온 최초의 그룹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그들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밤의 제왕’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기존의 록 밴드들이 낭만적이고,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음침했고, 전율스러웠으며, 철저히 반(反)미학적이었다. 그들이 데뷔한 1970년을 전후, 헤비메탈은 융성기를 맞고 있었다. ‘불멸의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이미 빅 스타로 부상했으며, 새로운 보컬리스트 이안 길런(Ian Gillan)이 가세한 딥 퍼플(Deep Purple)또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전선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평화와 사랑이 가득했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등장한 그 격한 음악은 개성을 중시하게 된 당대 젊은이들의 기호에 꼭 맞는 것이었다. 때를 잘 만난 블랙 사바스는 록음악의 영역 내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현해냈다.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의 마법 같은 기타 솔로도,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의 탁월한 가창력도 없었지만, 이들에겐 여타 거목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망자(亡者)를 불러내는 듯한 주술적인 보컬의 소유자인 그룹의 상징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은 어두운 카리스마를 마음껏 발산하며 ‘산뜻한’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Toni Iommi)는 촌철살인의 기교파는 아니었지만, 우울하고 비장한 염세적 분위기를 전하기에 이보다 뛰어난 연주자는 없었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빌 워드(Bill Ward)와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가 풍기는 이미지도 ‘암흑의 정령’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추종 세력이라 할만한 많은 이들을 몰고 다닌 블랙 사바스였음에도, 이들의 표면적 인기는 라이벌들에 미치지 못했다. 우선 레퍼토리에서 차이가 난다. ‘Stairway to heaven''를 포함해 숱한 명작을 남긴 레드 제플린은 제껴 놓고라도, 그들의 인기는 ‘Smoke on the water'', ‘Child in time'', ‘Speed king'', ‘Highway star''등의 수많은 애청곡을 보유한 딥 퍼플에도 뒤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남긴 미국 차트의 히트곡이라곤 2집의 ‘Iron man'', ‘Paranoid''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블랙 사바스는 가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그룹이 아니었다. 또 그들의 팬들은 차트를 주의 깊게 바라보지도 않는 이들이었다. 블랙 사바스에게는 블랙 사바스만의 음악이 존재했다. 그들을 흠모하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공연장에 찾아와 신도이기를 자청했고, 그룹이 내뿜는 유독한 주문에 감염되었다. 블랙 사바스는 1967년 어스(Earth)라는 팀명으로 처음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영국의 공업도시 버밍엄의 외곽에서 자란 이들은 가난한 하층 계급으로 태어났고, 본능적으로 록음악에 빠져들었다. 곧 자신들과 같은 이름의 팀이 있음을 알게 된 이들은 1969년 ‘검은 안식일’이라는 뜻의 블랙 사바스로 간판을 바꿨다. 그리고 이듬해 충격적인 첫 번째 앨범을 공개하며 ‘지하의 세계’를 평정했다. 흔히들 얘기하는 이들의 최고작으로는 4집 < Black Sabbath Vol.4 >를 꼽는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발라드 ‘Changes''가 수록되어 유명해지기도 한 이 음반은 싸이키델릭의 요소와 기존의 헤비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큰 반향을 얻는다. 정점에 달한 밴드의 창작력은 계속해서 걸작 < Sabbath Bloody Sabbath >와 < Sabotage >를 낳았고, 이들의 명성은 최고 수위에 달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블랙 사바스는 그러나 팀의 요축 오지 오스본이 알콜중독으로 갈팡질팡하면서 누수가 발생했다. 결국 그는 < Never Say Die! >를 마지막으로 팀과 작별을 고하고 더 큰 명성을 획득하게 되는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록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사바스도 이후 멤버 교체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게 되는데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 이안 길런(Ian Gillan), 토니 마틴(Toni Martin)등 싱어의 자리에만 3번의 자리이동이 있었다. 팀의 얼굴들이 앨범 발표마다 달라지면서 혼선을 느낀 것은 멤버들 자신보다 팬들이었다. 이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지지도도 하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칭 명반이라 일컬어지는 앨범도 드물어지게 된다. 디오 시절의 < Heaven & Hell >이 수작으로 꼽히지만 역시 블랙 사바스의 전성기는 오지 오스본이 프론트맨으로 적을 둘 때였다. 그를 이어 가입한 보컬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누구도 오지의 묵시록적인 목소리를 이겨낼 수 없었다. 이후 잠잠하기만 했던 블랙 사바스는 1998년 말, 오리지널 멤버로 다시 규합해 투어를 시작하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팀원들의 모습에선 예전같은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이미 이들은 다시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될 정도의 위력을 가진 대 그룹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블랙 사바스는 기존에 정통이라 믿었던 ‘밝음의 예술’을 뒤집어 그 뒤편에 ‘음산한 미학’의 세계가 있음을 보였다. 그들은 당시 주류 헤비메탈 내의 이단아들이었고, 언더그라운드였다.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헤비메탈의 역사가 더욱 풍요로운 유산을 쌓았고,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지 오스본만큼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내린 록 뮤지션도 드물 것이다. 그는 여러 기행으로 숱한 가십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따라다닌 지독한 알콜 중독은 차치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얘깃거리는 무수하다. 착란 상태에서 부인이자 매니저인 샤론 아든(Sharon Arden)을 살해하려한 것, 알라모 기념비에 방뇨, 공연 중 박쥐의 머리를 물어뜯음. 이런 상상하기 힘든 에피소드들로 그는 메탈이 ‘악마의 음악’이... 오지 오스본만큼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내린 록 뮤지션도 드물 것이다. 그는 여러 기행으로 숱한 가십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따라다닌 지독한 알콜 중독은 차치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얘깃거리는 무수하다. 착란 상태에서 부인이자 매니저인 샤론 아든(Sharon Arden)을 살해하려한 것, 알라모 기념비에 방뇨, 공연 중 박쥐의 머리를 물어뜯음. 이런 상상하기 힘든 에피소드들로 그는 메탈이 ‘악마의 음악’이라는 오명을 쓰게 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는 부모들이 혐오하는 록 스타의 전형이었다. 특히 한 소년의 죽음에 그의 노래 ‘Suicide solution’이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토대로 그의 부모에게 오지가 기소당한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이 모든 괴벽과 사건에도 불구하고 오지 오스본은 헤비메탈 씬에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하며 정상의 록 보컬리스로 군림해 왔다. 사실 그의 가창력은 경탄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고, 이미지도 깔끔함, 말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대중을 휘어잡는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그러한 것들을 덮어 버리고도 남았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그의 열정적인 스테이지 매너는 그 자체로 헤비메탈의 규범을 제시했다. 30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20여장에 이르는 음반을 공개하며 탄탄한 경력을 쌓아 온 오지 오스본의 유년기는 그러나 순탄하지 못했다. 1948년 영국 버밍햄에서 빈곤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도살장과 같은 허름한 일터에서 생계를 벌어야 했다. 집은 언제나 가난에 쪼들렸고, 오지는 상점을 터는 등 비행을 저지르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겁던 현실을 록 음악을 통해 날려 버렸다. 로컬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오지는 토니 아이오미(Toni Iommi)등과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결성해 공상에서나 가능할 듯했던 범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 Paranoid >, < Black Sabbath Vol.4 >등의 마스터피스를 터뜨렸다. 그렇지만 술과 마약에 빠진 오지와 멤버 사이에는 곧 반목이 발생했고, 그는 < Never Say Die >를 마지막으로 그룹 활동을 접었다. 곧 그는 솔로로서의 데뷔를 추진하는데, 오지는 오히려 그 시절 더 큰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의 솔로 활동 기간은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의 변화와 함께 몇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랜디 로즈(Randy Rhoads)와 팀웍을 맞췄던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클래식 기타강사 출신인 랜디의 영향이 작품을 깊게 지배해 장엄하면서 스케일이 큰 음악을 추구했던 시기였다. 뛰어난 기타 플레이어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랜디의 도움으로 오지는 이 시기 상업적으로 괄목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었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허나 이 콤비네이션은 랜디 로즈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오래 가지 못하게 되고, 그에게 많은 부분을 의탁하고 있었던 오지는 실의에 빠졌다. 그에게 랜디 로즈란 단순한 동료이자 연주 파트너가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교감하고 공유하는 소울 메이트였기 때문이다. 간신히 몸을 추스린 오지는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를 영입해 라이브 음반 < Speak Of The Devil >을 발표한다. 브래드는 곧 자신의 밴드 나이트 레인저(Night Ranger)로 건너가게 되고 오스본 그룹에는 일본인 피가 흐르는 기타 연주자 제이크 E 리(Jake E Lee)가 가세한다. 제이크는 랜디와는 달리 공격적인 프레이즈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쯤해서 밴드의 음악도 랜디 시절의 어두움과 음울함을 어느 정도 벗어나 메탈 특유의 드라이브(Drive)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맞춰지게 됐다. 제이크가 연주한 ‘Bark at the moon’이나 ‘Shot in the dark’를 들어보면 초창기 음악과 스타일 면에서 얼만큼의 차이가 생겼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랜디 로즈에 대한 그의 집착은 밴드에 치명상을 입혔는데, 그는 랜디의 추모음반 < Tribute >를 제이크의 동의 없이 공개함으로서 강한 반발을 샀다. 결국 오지의 돌출 행동으로 그룹은 커다란 전력 손실을 겪게 된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제이크가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오지 오스본은 다시 기타리스트를 영입하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했고, 채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잭 와일드(Zakk Wylde)가 새 멤버로 낙점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 잭 와일드는 그 이름만큼이나 힘있고 거친(Wild) 플레이를 자랑하는 천재였고, 그의 가세로 밴드의 사운드는 ‘Miracle man’, ‘Mr. Tinkertrain’ 등에서 잘 나타나듯 결성이래 가장 헤비하게 변한다. 새 피의 수혈은 활기가 부족했던 밴드에 힘을 불어넣었고, 알코올의 해악을 깨달은 오스본의 성숙한 자세와 어우러져 비평가들과 대중들로부터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획득했다. < No More Tears >의 성공을 뒤로 한 채 팬들에게 은퇴를 표명했던 오스본은 1995년 귀환을 알렸다. 헤비메탈과는 관련없는 자신의 밴드 프라이드 앤드 글로리(Pride & Glory)를 운영중인 잭 와일드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한 오지는 대신 조 홈즈(Joe Holmes)를 새 기타리스트로 대동하고 신작 < Ozzmosis >를 내놓았다. 그러나 아트 록계의 일급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만(Rick Wakeman), 오랜 친우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가 도움을 준 컴백 작품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긴 시간 동안 그의 복귀를 기다려 온 사람들은 순간 실망했지만 얼마 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오지가 신세대 록, 메탈 그룹들이 대거 출연하는 페스티벌 < 오즈페스트(Ozz-Fest) >를 창시한 것. 그의 기획력 덕택에 팬들은 더 많은 록의 축제를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지 오스본은 아직까지도 함성과 환호가 넘쳐나는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끓어오르는 동력으로 가득한 앨범들을 발표해 왔던 오지에게 육체적인 나이란 사실 부차적인 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록의 원천과도 같은 인물이다.
영국 출신의 헤비 메탈 보컬리스트 영국 출신의 헤비 메탈 보컬리스트
밴드 : Biohazard (바이오해저드)
뉴욕 브룩클린 출신의 바이오해저드는 하드코어 1세대 밴드이다. 그들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경유하며 랩과 헤비메탈을 접목시킨 사운드로 랩 메탈 또는 하드코어라는 장르가 세기말과 뉴밀레니엄에 각광받을 수 있도록 탄탄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또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가사에 담아 부패한 세상과의 한판승부를 끊임없이 펼쳐냈다. 하지만 그들은 하드코어가 득세를 하는 요즘에도 언더그라운드에 머물... 뉴욕 브룩클린 출신의 바이오해저드는 하드코어 1세대 밴드이다. 그들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경유하며 랩과 헤비메탈을 접목시킨 사운드로 랩 메탈 또는 하드코어라는 장르가 세기말과 뉴밀레니엄에 각광받을 수 있도록 탄탄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또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가사에 담아 부패한 세상과의 한판승부를 끊임없이 펼쳐냈다. 하지만 그들은 하드코어가 득세를 하는 요즘에도 언더그라운드에 머물고 있다. 오직 컬트 팬들에게만 즐겨찾기의 대상이 될 뿐, 대중들과는 여전히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반 신필드(Evan Seinfeil)와 빌리 그라지아데이(Billy Graziadei)의 교차하는 보컬 더블포스트는 래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건조하고 극단적이며, 사운드도 리듬 섹션의 그루브 중심이 아닌 강력한 스래시 메탈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현재 상종가를 치고 있는 신진 하드코어 세력들과는 일정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이스트 코스트만의 전통적인 암울함도 한몫을 거들었다. 바이오해저드는 1988년 이반 신필드(보컬/베이스), 빌리 그라지아데이(보컬/기타), 바비 헴벨(Bobby Hambel, 기타), 대니 슐러(Danny Schuler, 드럼)의 4인조 라인업으로 결성됐다.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등의 헤비메탈 밴드부터, 런 디엠시(Run DMC),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등의 힙 합 그룹, 그리고 라몬즈(The Ramones), 크로-매그스(Cro-Mags) 등의 펑크 유니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텍스트를 물려받은 그들은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등을 돌며 기초 체력을 다져나갔고, 1990년 인디 레이블 < 메이즈(Maze) >에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2년 뒤인 1992년 밴드는 소포모어 앨범 < Urban Discipline >을 내놓고, 유럽에서는 독일의 노장 그룹 크리에이터(Kreator), 미국에서는 동향의 식 오브 잇 올(Sick Of It All) 등과 함께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전세계에 있는 코어 팬들을 흡수했다. 특히 그들은 투어 무대에서 격렬한 액션과 인상깊은 제스처로 관객들에게 유쾌! 상쾌! 통쾌!를 안겨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한 바이오해저드는 흑인 갱스터 랩 그룹 오닉스(Onyx)와 ‘Slam’을 레코딩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닉스와 함께 영화 < 저지먼트 나이트(Judgement Night) > 사운드트랙의 타이틀곡을 작업하기도 하는 등 행동반경을 넓혀나갔다. < 저지먼트 나이트 > 사운드트랙은 랩과 메탈의 크로스오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반으로, 오닉스와 바이오해저드의 조우 외에도, 아이스 티(Ice-T)와 슬레이어(Slayer),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과 헬멧(Helmet), 런 디엠시와 리빙 컬러(Living Colour) 등 쟁쟁한 팀들의 멋진 만남이 실려있다. 이후 1994년에는 3집 < State Of The World Address >를 공개했는데, 메이저 레이블 < 워너 >와의 제휴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공언하던 멤버들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음악 비즈니스의 파워 앞에 굴복했다는 쓴소리가 빗발쳤다. 하지만 더욱더 세게 휘몰아치는 사운드와 노랫말은 그러한 팬들의 불신감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밴드의 확고한 신념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홍보 발판으로 삼기 위해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했을 뿐, 그 외에는 예전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1995년 바비 헴벨의 탈퇴로 인해 삼인조로 진용을 재편한 바이오해저드는 1년 뒤인 1996년 4집 < Mata Leao >를 들고 나왔고, 1999년에는 헬멧 출신의 기타리스트 롭 에체배리아(Rob Echevarria)를 영입하여 5집 < New World Disorder >를 선보였다. 그리고 2001년 올해 롭 대신 레오 컬리(Leo Curley)를 새 멤버로 맞아들여 6집 < Uncivilization >을 발표했다.
화이트 좀비(White Zombie)는 헤비 메탈 밴드임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즉, 그들은 이전의 ''진지한'' 헤비 메탈과는 달리 가볍고 희화화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섰다. 또한 음악적으로 밴드는 메탈 외에도 전자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메탈은 그들의 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것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그들 또한 얼터너티브라고 불려야 한다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화이트... 화이트 좀비(White Zombie)는 헤비 메탈 밴드임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즉, 그들은 이전의 ''진지한'' 헤비 메탈과는 달리 가볍고 희화화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섰다. 또한 음악적으로 밴드는 메탈 외에도 전자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메탈은 그들의 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것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그들 또한 얼터너티브라고 불려야 한다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화이트 좀비는 1985년 현재까지의 고정 멤버인 리더 롭 좀비와 베이스의 션 이설트에 의해 결성되었다. 제이는 다섯 번째 기타리스트, 존 템페스타는 세 번째 드러머이다. 이들은 뉴욕 클럽 씬을 돌며 서서히 지명을 쌓아간 후, 데뷔 해에 EP인 < Gods on the Voodoo Moon >으로 음악계에 등장했다. 이 후 몇 장의 EP를 발매한 후 캐롤라인(Caroline)레이블과 계약하였고 정식 1집 앨범인 < Soul Crusher >를 1987년에 내놓았다. 이들은 1989년에 2집 < Make Them Die Slowly >를 발표한 후에 메이저 레이블인 게펜(Geffen)과 손잡았다. 메이저 데뷔 앨범인 < La Sexorcisto: Devil Music, Vol. 1 >(1992)는 발매 당시에는 그런지 밴드들에게 밀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수많은 공연을 통해 결국 플래티넘을 획득하게 되었다. 특히 인기 만화인 < 비비스 앤 벗헤드 >의 사운드 트랙 참여는 이들의 인기에 가속도를 부여했다. 하지만 1집은 가사의 잔인성과 폭력성이 문제가 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몇 개국에서 ''클린 버전''으로 소개되었던 (뼈아픈?) 과거도 가지고 있다.(국내 발매반의 타이틀은 < White Zombie >이다.) 1995년에 등장한 2집 < Astro Creep: 2000 - Songs of Love, Destruction... >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가사가 수정된 채 등장한 2집은 사운드는 변질되지 않았다는 점이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였다. 2집은 화이트 좀비의 사운드의 특성이었던 인더스트리얼적인 요소 못지 않게 제이의 기타가 부각된 앨범이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리프를 만들어내는 그의 재주는 탁월한 것이었다. 또한 만들어진 리프 위에 덧입혀지는 갖가지 연주 주법(옥타브 주법, 벤딩, 슬라이드 주법, 와와 페달)들은 제이의 기타를 최면적으로 들리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빌보드 차트에서 상위권에 진입한 ''More human than human''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션 이설트의 베이스 라인과 존 템페스타의 드럼은 그루브감이 넘치는 화이트 좀비 사운드의 중핵이다. 이 후 이들은 1996년에 2집의 곡들을 리믹스한 < Supersexy Swingin'' Sounds >를 발표했다. 댄서블한 그루브감을 강조한 이 앨범은 더스트 브라더스(Dust Brothers), 피엠 돈(PM Dawn), 데미지 트윈스(The Damage Twins), 찰리 클로우저(Charlie Clouser)등의 유명 테크노-인더스트리얼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서 기존의 그런지/메탈 팬들 뿐 아니라 전자 음악 팬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이 앨범을 끝으로 화이트 좀비는 (해산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리더인 롭 좀비만이 솔로 활동을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밴드 : Megadeth (메가데스 (메탈 밴드))
# We Are The Hero 50년이 넘는 록음악의 역사 속에서 전 세계인을 휘어잡았던 대(大) 스타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기타의 천재’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위대한 록 밴드’ 비틀스(The Beatles), ‘X세대의 우상’ 너바나(Nirvana) 등이 아직까지도 우리 곁에서 음악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들은 음... # We Are The Hero 50년이 넘는 록음악의 역사 속에서 전 세계인을 휘어잡았던 대(大) 스타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기타의 천재’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위대한 록 밴드’ 비틀스(The Beatles), ‘X세대의 우상’ 너바나(Nirvana) 등이 아직까지도 우리 곁에서 음악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들은 음악 마당이 몰개성화로 흐른다 싶으면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음악 판을 단숨에 바꿨다. 하지만 요즘 대중 음악계는 록 스타의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록’ 영웅부재시대. 인기를 누리는 가수들은 많은데 과거처럼 지구촌을 뒤흔들만한 임팩트를 가진 히어로는 없다. 이러한 작금의 안타까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상은 영웅이 필요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스래시 메탈의 거두 메가데스가 나섰다. 그들은 이번에 발표할 신보 < The World Needs A Hero >를 통해 자신들이 록의 영웅(또는 킹 메이커) 역할을 맡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헤비메탈이 핏기 없이 방치되고 있는 현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중견 밴드의 외로운 투쟁선언인 것이다. # Risk 1990년대 중반부터 메가데스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초지일관(初志一貫) 한 길만을 걸어가느냐, 시류에 편승해 변화를 모색하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1990년대 초반 너바나에 의해 불어닥친 얼터너티브 광풍 때문이었다.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정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음악계이기에 메가데스의 고민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심각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대 타협을 시도했다. 스래시 메탈의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대중 취향의 팝 감각을 집어넣었다. 1994년 작품 < Youthanasia >가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룹 특유의 날카로움과 공격성은 반감됐으며, 대신 그 자리에 멜로디가 들어앉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룹의 정체성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메가데스, 특히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는 ‘스래시 메탈의 제왕’ 메탈리카(Metallica)가 1996년과 1997년 < Load >와 < Reload >를 내놓으며 얼터너티브로의 충격적 변신을 함으로써 다시금 음악적 방향을 설정해야만 했다. 메가데스는 대세를 따랐다. 1997년의 < Cryptic Writings >에서는 얼터너티브 요소를 부각시켰고, 1999년의 < Risk >에서는 테크노 기법까지 도입했다.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변절에 놀란 신실한 충절자(忠節者)들은 등을 돌렸다. 평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룹 스스로도 이런 상황에 힘들어했다. "메가데스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라는 데이브 머스테인의 힘겨운 토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까지 상황이 악화된 데는 음악 비즈니스의 상술도 한몫을 했다. 지난해 발표한 베스트 앨범 < Capitol Punishment: The Megadeth Years... >에 잘 나타나있다. 메가데스는 이 음반을 끝으로 14년간이나 지속됐던 < 캐피톨(Capitol) > 레코드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의미심장한 앨범 제목에서 드러나듯 밴드와 레코드사간에 심각한 의견대립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문제가 상업성과 음악성 사이에서의 균형문제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만약 지금이 헤비메탈의 전성시대라면 어찌 됐을까? # < The World Needs A Hero > 초심으로 돌아가자! 메가데스는 < 캐피톨 >을 떠나 친(親) 메탈 성향의 레이블 < 생크추어리(Sanctuary) >와 계약을 체결하고 다시 출발점에 섰다. 머스테인은 "몇몇 레이블들은 많은 돈을 제공했고, 다른 곳에서는 시장성을, 또 다른 곳에서는 신용을 제공했다. 하지만 < 생크추어리 >는 이 세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었다."며 바뀐 소속사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레코드사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에이전트 등 모든 것이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일이었다."라며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 각오를 다졌다. 이에 발맞춰 메가데스는 자신들의 음악 본령도 되찾았다. 이번 새 앨범 < The World Needs A Hero >가 대변한다. 스래시 메탈의 빠른 스피드와 공격성, 부패한 사회에 대한 조소를 부활시켰다. 머스테인은 "우리를 얼터너티브 팝 머신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이 작품을 만들었다"며 더 이상 시류에 휩쓸리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다이내믹하고 탄력적이다. 파격을 시도했던 전작 < Risk >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메가데스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1990년 작품 < Rust In Peace >의 연장선상에 서있다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Return to hanger’가 대표적이다. 바로 < Rust In Peace >에 수록된 밴드의 명곡 ‘Hanger 18’의 클론(Clon)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탈퇴한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만(Marty Friedman)의 후임으로 들어온 사바티지(Savatage) 출신의 알 피트렐리(Al Pitrelli)의 공로가 컸다. 기교파 기타리스트답게 그는 모든 곡들에서 데이브 머스테인과 호흡을 맞추며 다채롭고 뛰어난 기타 실력을 선사하고 있다. ‘Return to hanger’를 비롯하여, 프로그레시브적인 면이 돋보이는 ‘When’, 첫 싱글로 발표된 ‘Motor psycho’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이미 2000년 3월 1일 내한 공연 때 국내 팬들에게 발군의 기타 테크닉을 직접 보여준바 있다. 또한 1999년의 < Risk >부터 참여한 드러머 지미 드그라소(Jimmy DeGrasso)의 드러밍도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원년 멤버인 베이시스트 데이브 엘레프슨(Dave Ellefson)과의 유기적 플레이를 안정감 있게 이끌어 가고 있다. ‘The world needs a hero’에서 표출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메가데스는 신보의 타이틀에 대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록 스타가 존재하지 않는다. 액슬(Axl Rose, 건스 앤 로지스의 보컬리스트)도 이미 제 명을 다했다. 그렇기에 세상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며 영웅 불가피론을 펼쳤다. 과연 메가데스가 영웅으로 환골탈태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현재 록음악계의 판도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에 빠진 록음악을 구하자는 밴드 스스로의 다짐인 동시에 반성이다. 또한 동료 뮤지션들에게 고하는 탄원서이기도 하다. # Time: The Beginning/Time: The End 메가데스를 얘기하면서 ‘영원한 맞수’ 메탈리카와의 물밑경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그룹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언론과 팬들은 그들을 항상 라이벌로 본다. 메가데스가 메탈리카에서 갈라져 나왔고, 특히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탈리카에 가지고 있는 ‘적대감(?)’이 그 이유였다. 1998년 메가데스의 첫 내한 공연당시 기자들의 관심사도 단연 메탈리카와의 관계였다. 이에 대해 머스테인은 "메탈리카는 좋은 밴드이다. 하지만 우리도 스래시 메탈만 15년째 연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며 은근히 경쟁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메가데스와 메탈리카의 음악 노선은 다르다. 메가데스가 스트레이트하고 날카로운 사운드로 메탈 매니아를 지향한다면, 메탈리카는 멜로디컬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로 대중 지향적이다. 또한 메가데스의 음악 구심점이 기타(데이브 머스테인)에 있다면, 메탈리카는 드럼(라스 울리히)에 있다. 각자 그들만의 독창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로 스래시 메탈의 정상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핵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규모 인명 살상을 뜻하는 ‘Mega Death’에서 그룹명을 따온 메가데스는 1983년 메탈리카에서 해고당한 데이브 머스테인이 데이브 엘레프슨과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그룹. 이어 기타리스트 크리스 폴란드(Chris Poland)와 드러머 갈 사무엘슨(Gal Samuelson)을 맞아들여 1985년 데뷔작 < Killing Is My Business... >를 발표했다. 이후 메가데스는 많은 멤버 교체를 겪었지만 머스테인과 엘레프슨의 끈끈한 파트너십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1986년 < Peace Sells...But Who`s Buying? >, 1988년 < So Far, So Good...So What! >, 1990년 < Rust In Peace >, 1992년 < Countdown To Extinction > 등이 백 만장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고, ‘Wake up dead’, ‘Mary jane’, ‘Hanger 18’, ‘Symphony of destruction’ 같은 히트곡들을 터트렸다. 이로 인해 그룹은 메탈리카, 슬레이어(Slayer), 앤스랙스(Anthrax)와 함께 ‘스래시 메탈의 4인방’으로 등극됐다. 밴드 최고의 시절이었다. 메가데스가 이번 새 앨범을 밑거름으로 과거의 상승세를 재현해낼지가 관심사다. 허나 분위기가 좋다. 올해 들어 록음악계도 따스한 ‘햇볕’이 비치고 있다. 지난 2월에 개최된 제4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노장 그룹 유투(U2)와 스틸리 댄(Steely Dan)이 알짜배기 상을 사이좋게 양분했다. 탄탄한 음악 캐리어로 ‘악동’ 에미넴(Eminem)을 가볍게 제쳤다. 그래미상이 한때의 유행보다는 변함없이 외길을 걷는 아티스트에게 우대 정책을 편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진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하드록 거장’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기타 마에스트로’ 제프 벡(Jeff Beck)도 각각 신보 < Just Push Play >와 < You Had It Coming >을 공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메가데스에게도 이런 ‘힘’이 있다. 대중들에게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든지 움찔거리게 할 정도의 물결은 갈무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 있게 ‘영웅’을 외친다. ‘스래시 메탈의 히어로’ 메가데스! (국내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신보 < The World Needs A Hero >의 투어 일환으로 오는 7월 28일 메가데스의 서울 공연이 확정됐다. 벌써 세 번째다. 그룹의 공식 홈페이지(www.megadeth.com)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밴드 : 1000 Homo DJs (1000 호모 디제이스)
록 밴드 록 밴드
밴드 : Faith No More (페이스 노 모어)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페이스 노 모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와 함께 헤비 메탈에 펑크(Funk)를 결합시킨 독창적 사운드를 최초로 시도한 그룹이다. 또한 랩, 헤비 록, 펑크, 프로그레시브 요소를 절묘하게 믹싱해 낸 팀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록’의 개념을 정의해낸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오늘날의 주류 음악 문법...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페이스 노 모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와 함께 헤비 메탈에 펑크(Funk)를 결합시킨 독창적 사운드를 최초로 시도한 그룹이다. 또한 랩, 헤비 록, 펑크, 프로그레시브 요소를 절묘하게 믹싱해 낸 팀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록’의 개념을 정의해낸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오늘날의 주류 음악 문법으로 급부상한 하드코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페이스 노 모어는 친한 친구사이였던 빌리 구드(Billy Gould, 베이스)와 로디 보텀(Roddy Bottum, 키보드)이 1980년에 그룹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하면서 이뤄졌다. 곧 드러머 마이크 보딘(Mike Bordin)과 기타리스트 짐 마틴(Jim Martin), 보컬리스트 척 모슬리(Chuck Mosley)가 가세하면서 완벽한 라인업을 완료했다. 그룹은 1985년 펑크(Funk)와 메탈, 랩이 퓨전된 데뷔작 < We Care A Lot >를 발표하며 미국 대학 방송국을 중심으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밴드 사운드의 전형을 제시하는 타이틀 곡 ‘We care a lot''이 대표적이다. 2년 뒤에 내놓은 < Introduce Yourself >도 전작의 노선을 충실히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곧바로 수면 아래로 침잠하였다. 그룹의 활로를 모색하던 페이스 노 모어는 언론에 ‘그는 자기 중심적이고 신뢰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배포하고 척 모슬리를 전격 해고시켰다. 대신 그 자리에 미스터 벙글(Mr. Bungle) 출신의 마이크 패튼(Mike Patton)을 앉혔다. 특단의 조치는 성공했다. 1989년 3집 앨범 < The Real Thing >은 평단과 대중 양편에서 좋은 평가를 이끌어 냈다. 그룹은 이 작품으로 이듬해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헤비메탈/하드 록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앨범 차트 11위에 오르며 밴드 최초의 플래티넘을 따냈다. 이는 차트 9위까지 도달한 수록곡 ‘Epic''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순식간에 전개된 상황이었다. 1992년에 발표된 후속 음반 < Angel Dust >도 영국 차트 2위, 미국 차트 10에 랭크되며 ‘Epic''의 파고를 더욱 더 세게 몰아쳤다. 하지만 페이스 노 모어는 이때를 기점으로 내리막길로 향했다. 1995년의 < King For A Day, Fool For A Lifetime >, 1997년의 < Album Of The Year > 등 의미심장한 타이틀의 앨범들을 발표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들이 크로스오버 록의 선구자로서 후배들에게 지대한 파급력을 발휘했지만, 그 이상의 음악적 발전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도태되고 만 것이다. 결국 페이스 노 모어는 1998년 4월 멤버 전원의 동의하에 해체를 결정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밴드 : Type O Negative (타입 오 네거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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