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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 힐 영화음악 (Notting Hill OST by Trevor Jones) [발렌타인 에디션] [투명 핑크 컬러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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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 힐 영화음악 (Notting Hill OST by Trevor Jones) [발렌타인 에디션] [투명 핑크 컬러 LP]

[ 180g / 1000장 넘버링 한정반 / 게이트폴드 / PVC 슬리브 ]
Trevor Jones 작곡/Bill Withers, Shania Twain, Lighthouse Family, 98 Degrees 노래 외 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usic on Vinyl / Music on Vinyl | 2020년 02월 07일 리뷰 총점4.6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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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 힐 영화음악 (Notting Hill OST by Trevor Jones) [발렌타인 에디션] [투명 핑크 컬러 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0년 02월 07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컬러 디스크 LP를 구매하실 때 아래 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디스크

Disc
  • A1 Another Level - From The Heart
  • A2 Ronan Keating - When You Say Nothing At All
  • A3 Elvis Costello - She
  • A4 Al Green -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 A5 Texas - In Our Lifetime
  • A6 98° - I Do (Cherish You)
  • B1 Pulp - Born To Cry
  • B2 Lighthouse Family - Ain’t No Sunshine
  • B3 Shania Twain - You’ve Got A Way (Notting Hill Remix)
  • B4 The Spencer Davis Group - Gimme Some Lovin’
  • B5 Trevor Jones - Will and Anna (Score)
  • B6 Trevor Jones - Notting Hill (Score)
  • B7 Bill Withers - Ain’t No Sunshine

아티스트 소개 (12명)

영화음악 작곡가 영화음악 작곡가
소울 펑크 가수 소울 펑크 가수
노래 : Shania Twain (샤니아 트웨인)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은 미국 성인 음악으로 축소된 컨츄리 음악에 세련된 팝적 감각을 수혈하여 초유의 대성공을 이끌어 낸 컨츄리 최고의 디바이다. 샤니아 트웨인(본명: Eilleen Regina Edwards)은 1965년 8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윈저(Windsor)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광산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회고에...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은 미국 성인 음악으로 축소된 컨츄리 음악에 세련된 팝적 감각을 수혈하여 초유의 대성공을 이끌어 낸 컨츄리 최고의 디바이다. 샤니아 트웨인(본명: Eilleen Regina Edwards)은 1965년 8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윈저(Windsor)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광산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회고에 따르면 세 살 때 처음으로 노래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여섯 살 때 유명한 합창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캐나다의 각종 TV 프로와 라디오에서 초대받았을 정도로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주목받았다.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부모님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노래는 물론, 작사/작곡과 기타 연주에 이르기까지 뮤지션으로서의 다양한 자질을 키워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20살을 갓 넘긴 1987년 교통사고로 두 부모를 동시에 잃어야 했고, 이후 그녀의 재능은 클럽 뮤지션에 머물러야 했다. 언더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에 안주하던 그녀는 이 시기 컨츄리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클럽 뮤지션으로 자신의 음악에 안주하던 그녀가 컨츄리 음악에 대한 욕심으로 솔로 활동에 힘을 쏟게 된 평범할 수도 있었던 그녀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1991년 내쉬빌(Nashville)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뛰어난 음악성은 물론, 뛰어난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하고 있었던 만큼 그녀의 인기는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 갔고, 1993년 드디어 메이저 레이블인 머큐리(Mercury)를 통해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 Shania Twain >을 발표하게 된다. 그녀의 음악은 분명 컨츄리였지만 이전의 것과는 차별되었다. 컨츄리 음악은 강한 미국적 색채로 인해 점차 미국 성인 음악으로 그 입지가 좁아져 가고 있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컨츄리는 미국의 젊은이들과 전 세계의 팝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젊은 감각의 컨츄리였다. 그녀의 음악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컨츄리에 록의 요소는 물론 팝의 요소까지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특징은 컨츄리의 매력과 팝의 매력, 록의 매력을 동시에 아울렀고, 여성 뮤지션으로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대 성공을 일구어 내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인기 행진은 데뷔 앨범 첫 싱글인 ’God ain’t gonna get you for that’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외모가 한 몫 거들면서 이 곡은 MTV에서 굉장한 힘을 발휘했으며, 이를 통해 데뷔 앨범의 성공은 물론 다음 싱글인 ’Dance with the one that brought you’로 MTV 컨츄리 부분을 수상하였고, 유럽 MTV에서 올해의 비디오스타로 선정된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후 자신의 남편이자 프로듀서인 로버트 무트 랑게(Robert Mutt Lange)와 함께 두 번째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데프 레파드(Def Leppard), 포리너(Foreigner)와 같은 대형 록 그룹들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랑게와의 작업은 그녀의 음악에 록적인 색채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고, 1995년 발표한 < The Woman In Me >는 전작의 성공을 무색케 하는 대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 내에서는 ’Whose bed have your boots been under’, ’Any man of mine’, ’The woman in me’ 등이 고루 사랑 받았으며, 앨범은 미국에서만 1,200여 만장에 이르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록은 미국 팝 역사에서 총 4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며 컨츄리 여가수의 앨범이 1000만장을 돌파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1996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컨츄리 앨범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컨츄리 신인 인기상(Favorite New Country Artist)을 수상했다. 다음 앨범은 전작의 성공을 초라하게 하며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대 성공을 일구어 낸다. 여전히 컨츄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팝적인 색채를 더욱 강화한 세 번째 앨범, 1997년작 < Come On Over >에서 그녀는 ’You’re still the one’, ’From this moment on’ 등의 곡을 히트시키며 세계무대로 진출, 1999년 발표한 < Come On Over >의 인터내셔널 판 앨범을 통해 1999년 2개의 그래미와, 3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수상했다. < Come On Over >의 성공은 한 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1997년에 발표한 앨범을 2년 후 인터내셔널 판으로 다시 발매했고,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팔려 나가고 있다. 2001년 1월까지 < Come On Over >는 미국에서만 1,800만장에 이르는 놀라운 음반 판매 성적을 기록했으며, 이는 어느 컨츄리 가수도 이루어 내지 못한 기록이며, 또한 어느 여가수도 이루어 내지 못한 놀라운 기록이다. 그녀가 기록하고 있는 이 음반 판매 실적은 팝 역사를 통틀어 일곱번째에 해당하는 놀라운 기록이며, 그녀는 단 세 장의 앨범만으로 팝 역사상 총 40위, 여성 아티스트로서는 7위에 해당하는 음반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의 속도를 감안한다면 머지 않아 여성 뮤지션 최고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가수로 자리할 날이 멀지 않은 듯 싶다. 하지만 현재 샤니아는 남편의 전도로 섹스마저 금지하는 금욕적 이교집단에 빠져들어 가수로서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빠른 시간 안에 노래가 간절했던 자신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래본다.
노래 : Lighthouse Family (라이트하우스 패밀리)
라이트하우스 패밀리는 흑인 소울 음악의 인간미로 1990년대 브릿팝의 화염을 뚫고 예외적 성공을 창출한 흑백 혼성 듀엣이다. 현재도 이들은 ‘영국의 국민그룹’으로 불릴 만큼 최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막강한 거대한 도시의 건조함 속에 흑인들마저 어번(Urban)이라는 흐름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1990년대 중반 이들은 독보적인 따뜻함과 진지함으로 삶의 온기를 전하며 도약했다. 진지함을 배격하는 네오펑크의 득세,... 라이트하우스 패밀리는 흑인 소울 음악의 인간미로 1990년대 브릿팝의 화염을 뚫고 예외적 성공을 창출한 흑백 혼성 듀엣이다. 현재도 이들은 ‘영국의 국민그룹’으로 불릴 만큼 최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막강한 거대한 도시의 건조함 속에 흑인들마저 어번(Urban)이라는 흐름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1990년대 중반 이들은 독보적인 따뜻함과 진지함으로 삶의 온기를 전하며 도약했다. 진지함을 배격하는 네오펑크의 득세, 성공에 짓눌린 팝 밴드들의 천편일률 속에 솟아난 이들의 음악은 분명 각별한 것이었다. 1993년 폴 터커(Paul Tucker)는 대학을 졸업한 뒤 미리 작곡해 두었던 ‘Ocean drive’에 어울리는 보컬을 찾은 끝에 주위의 소개로 동갑내기 흑인 보컬 툰데 바이예우(Tunde Baiyewu)를 만난다. 툰데는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10여 년의 시간을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보낸 독특한 배경의 소유자였다. 둘은 흑과 백이 함께 돌아가며 세상을 밝히는 등대(Lighthouse)와 같은 음악을 한다는 뜻에서 라이트하우스 패밀리로 그룹명으로 하고 영국 요크셔(Yorkshire)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1995년 이들은 2년여에 걸친 준비 과정을 거쳐 데뷔 싱글 ‘Ocean drive’를 발표한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곡은 소박한 통기타 반주와 격조 있는 현악, 재즈 필의 브라스가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음에도 불구 차트에 간신히 얼굴만 내밀고 내려오는 부진을 기록한다. 같은 해 발표한 동명 타이틀의 데뷔 앨범 < Ocean Drive > 역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를 인정하기 시작한 1996년 이들의 데뷔 앨범은 뒤늦게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싱글로 발표한 ‘Lifted’가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영국 차트 정상을 밟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이에 힘입어 이전 발표 싱글인 ‘Ocean drive’ 또한 늦깎이 호응을 얻게 된다. 두 싱글의 선전은 이들의 앨범을 영국은 물론 전 유럽에 소개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들은 빠른 시간에 유럽의 정상급 뮤지션으로 성장한다. 1997년 1월 브릿 어워드(Brit Award)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인기를 실감케 한 이들은 같은 해 2집 앨범 < Postcards From Heaven >을 발표하며 세계 시장의 문을 본격적으로 두드린다. 레니 크래비츠 식의 소울 필을 강화하고 리듬감과 사운드에서 전작보다 파워를 가미한 이 앨범은 전작의 성공을 재현하며 차트 2위에 올랐고, 수록곡 ‘High’, ’Raincloud’, ‘Postcards from heaven’, ‘Lost in space’가 연이은 히트 퍼레이드를 펼친다. 이 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아카펠라 그룹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Ladysmith Black Mambazo)와 절묘한 보컬 하모니를 이룬 ‘Once in a blue moon’도 호응을 얻었다. 영국차트 5위에 오른 앨범의 대표적인 곡 ‘High’는 국내 모CF에 삽입되어 생소한 이 듀엣을 우리 팬들에게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2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Day >는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메시지와 사운드에 있어 진일보했으며, ‘High’에서 선보인 코러스를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따뜻한 호소력을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앨범의 타이틀곡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Free/One’은 재즈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의 곡 ‘Free’와 거물급 록 밴드 유투(U2)의 ‘One’을 리메이크해 접속, 눈길을 끌었다. ’Where everything is understandable, you don’t have to say anything too loud’라는 ‘Lifted’의 가사처럼 이들은 소리쳐 노래하지 않는다. 이해와 화합이 존재하는 세상을 꿈꾸며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가는 이들의 음악은 분명 극단을 쫓는 현 트렌드 속에서 ‘음악 휴머니즘’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어두운 항해의 등대처럼 소중한 불빛 역할을 수행하고있다.
레이 찰스, 샘 쿡, 아레사 프랭클린,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이들의 공통점은(흑인인 것 빼고) 무엇일까? 바로 목소리 하나만으로 50- 60년대 대중 음악의 혁명을 일궈낸 흑인 보컬의 대가들이란 점이다. 소울로 대변되는 흑인 대중 음악은 ‘흑인의 정신’과 연결되며 한껏 우렁차고 독특한 울림을 창조하며 60년대 흑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이는데 기여했다. 록의 역사에서 이들의 음반을 두고두고 명반으로 추대... 레이 찰스, 샘 쿡, 아레사 프랭클린,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이들의 공통점은(흑인인 것 빼고) 무엇일까? 바로 목소리 하나만으로 50- 60년대 대중 음악의 혁명을 일궈낸 흑인 보컬의 대가들이란 점이다. 소울로 대변되는 흑인 대중 음악은 ‘흑인의 정신’과 연결되며 한껏 우렁차고 독특한 울림을 창조하며 60년대 흑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이는데 기여했다. 록의 역사에서 이들의 음반을 두고두고 명반으로 추대하는 것 또한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대중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만큼 대중 음악의 고향 미국에서 흑인이 대중 앞에 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아 노래를 해 지지를 받는 것이 어려웠다는 애기다. 70년대 들어서도 흑인 대중 음악은 보컬이 단연 강세였다. 지금 소개하는 알 그린 역시 70년대를 대표하는 흑인 보컬리스트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선 그가 70년대 스티비 원더나 80년대 라이오넬 리치만큼의 지명도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활동한 미국에선 소위 보컬의 대가로 그를 알아 모신다. 그가 인기를 누리던 시기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 배리 화이트가 ‘셀프 프로듀싱’을 감행하며 아티스트의 명예를 획득하는 동안 알 그린은 과거 선배들처럼 오로지 목소리로만 승부하며 흑인 대중음악계의 기린아로 떠오른다. 스모키 로빈슨, 마빈 게이와 같은 디트로이트의 모타운(motown) 보컬이 고급 와인처럼 잘 정제된 세련된 보컬이라면 그의 보컬은 잘 익은 곡주처럼 구수한 멤피스 지역의 어틀랜틱 레코드 산하 스택스(stax) 소울에 보컬 정체성을 두고 있다. 멤피스를 중심으로 미국 중남부를 주 활동무대로 한 그는 바로 멤피스 소울의 대가 오티스 레딩의 혼을 계승한 보컬리스트이다. 텁텁한 느낌에, 숨이 막히듯 조여 드는 듯한(오티스 레딩의 ‘Sitting on the dock of bay’를 들어보라!) 멤피스 소울 처럼 그의 보컬색은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긴 힘든 성질이지만 익숙해지면 그만의 보컬 마력에 헤어나오지 못한다. 귀를 콕콕 찌르는 듯한 강한 훅을 날리는 그의 보컬은 그래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감흥이 있다. 하지만 알 그린은 선배 오티스 레딩의 업적을 단순히 계승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1972년에 발표한 그의 명반 < I’m Still in Love with You >에선 로이 오비슨의 히트곡 ‘Oh pretty woman’ 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컨트리 곡 ’For the good times’과 이듬해 1973년 명반 < Call Me >에선 컨트리의 아버지 행크 윌리엄스의 ‘I’ m so lonesome I could cry’와 역시 컨트리 싱어 윌리 넬슨의 ‘Funny how times slips away’를 무리 없이 리메이크해 그의 보컬dl 단순히 정통 흑인 성향의 것을 넘어 백인들에게도 어필하며 보편성을 획득했다. 여기에 비지스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팔세토(가성) 실력은 특유의 섹시(sexy)함을 과시하며 오빠부대를 양성하기도 했다. TV 출연도 많이 해 공연 시 관객석에 꽃을 건내며 대중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그의 무대 매너 또한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한 몫 했다. 그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해준 세련된 연주 편곡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활동하면서 그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준 윌리 미첼(Willie Mitchell)은 알 그린의 명성을 가능케 해준 일등 공신이다. 음계의 8개 노트를 코드로 사용하는 재즈적인 화성전개와 스트링이 애잔하게 깔아주는 그의 편곡방식은 다소 거북하게 느껴지는 알의 목소리에 도회지적인 세련된 감수성을 더해줬다. 여기에 1960년대 대표적인 R&B 연주 밴드 부커 티 앤 엠지(Booker T. & Mg’s)의 드러머 알 잭슨(Al Jackson)을 모셔오면서 알 그린-윌리 미첼-알 잭슨의 3인 공조 체제를 유지하며 히트곡 양산에 나선다. 1946년 미국의 아칸소주 태생인 알 그린은 교회를 통해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고, 재키 윌슨(Jackie Wilson)의 음악에 매료되면 차츰 소울 가수로의 꿈을 키우게 된다. 종교적인 분위기의 집안 환경 탓에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1967년 자신의 밴드 ‘소울 매이트’를 조직해 ‘Back up train’이라는 싱글을 발표해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진 못한다. 1969년 텍사스의 한 클럽에서 무명가수로 활동하던 알 그린은 그의 보컬에 매료 되 그의 프로듀서를 자청해 나선 윌리 미첼과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재즈 빅밴드의 리더였던 윌리는 원래 트럼펫 연주가였는데, 알 그린의 보컬을 접한 그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를 멤피스로 데리고 가 하이(Hi) 레코드사를 설립, 이후 그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명콤비로 자리 메김 한다. 윌리와 알은 이후 6개의 골든 앨범과 8개의 골든 싱글을 양산하며 70년대를 그들의 시대 로 만들었다. ‘Tired of being alone’(1971), ‘Let’s stay together’(1971) , ‘Look what you have done for me’(1972), ‘You ought to be with me’(1972) , ‘Call me’(1973) , ‘Here I’m’(1973), ‘Livin’ for you’(1973) , ‘Sha-La-La(1974)를 모두 빌보드 차트 top 10에 올려놓는다. 골드를 기록한 앨범 < Let’s Stay Together >(1972), < I’m Still in Love with You >(1972), < Call Me >(1973)는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소울 명반으로 빠짐없이 추대된다. 부와 명예를 획득한 알의 인생행로는 그러나 이후 순탄치 않았다. 위장과 척추에 이상이 오며 건강이 악화되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의 부인이 권총으로 자살을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정신이 극도로 황폐해진 그는 이후 ‘신의 경고’라는 생각에 1977년 윌리 미첼과 결별하며 대중 음악계를 떠난다. 그리고 교회를 사 들여 목사가 되기로 한 그는 이후 설교와 가스펠 가수 활동을 병행한다. 80년대 내내 그는 대표적인 가스펠 싱어로 등극하며 수많은 그래미 상을 획득하기도 한다. 영원히 결별인줄 알았던 윌리 미첼과 1985년에는 재결합하며 앨범 < He is the right >를 발표했지만 이미 알 그린만의 매혹적인 보컬마력은 거세 당한 후였다. 대중들은 차츰 70년대 섹시미를 날리던 왕년의 알 그린을 잊고 있었다. 70년대의 그의 보컬업적은 이후 섹시 록커 프린스 등 수많은 소울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며 대중음악계에 끼친 그의 공로를 인정 받아 1995년엔 락 앤 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얻는다. 그리고 올해 2003년, 그가 정확히 대중음악계를 은퇴한지 26년 만에 왕년의 알 그린식 소울을 들고 컴백했다. 그것도 그의 명 콤비 윌리 미첼이 프로듀싱과 편곡을 담당하며 그를 기억하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2003년 11월 26년만의 회심작 < I’ Can’t Stop >을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에서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그는 20대 전성기의 느낌을 50대 중반의 노장 가수의 느낌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혼의 우렁찬 울림과 펑키한 느낌이 배가된 더욱 다채로워진 윌리 미첼의 편곡과 그의 농익은 보컬은 여전히 ‘노장은 살아있다’를 증명하고도 남는 반가운 컴백이다.
노래 : Elvis Costello (엘비스 코스텔로)
변화무쌍한 음악은 절대로 권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 파일이 그렇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가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이미지와 소리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을 달리했고, 해마다 허물을 벗었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각양각색의 색깔을 띠며, 차려진 밥상을 거부했다. 항상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꾸부정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저 외양일 뿐이다. 아웃사이더의 리더로 브리티시 펑크... 변화무쌍한 음악은 절대로 권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 파일이 그렇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가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이미지와 소리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을 달리했고, 해마다 허물을 벗었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각양각색의 색깔을 띠며, 차려진 밥상을 거부했다. 항상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꾸부정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저 외양일 뿐이다. 아웃사이더의 리더로 브리티시 펑크 록을 이끌었고((1997년)), 신나는 레게 리듬과 애조 띤 켈틱 선율에 올라타며 제3세계 음악에 흠뻑 젖었다(스페셜스(Specials)의 (1978년)과 포구스(The Pogues)의 (1985년). 그리고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을 하얗게 바꾸었고((1980년)), 내시빌로 들어가 컨트리를 끄집어내기도 했다((1981년). 또한 그는 챔버 밴드 브로드스키 쿼텟(Brodsky Quartet) 등과 클래식에도 발을 담갔고, 위대한 팝의 전설 버트 바카라크(Burt Bacharach)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크루너(Crooner)로 나서기도 했다. 코스텔로의 이런 종횡무진 행보는 단순히 변신을 위한 인위적인 선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풍부한 음악 공력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이끌림이다. 아마 지금도 그의 곳간에는 평생 일용하고도 남을 음악 양식이 가득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1954년 8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열 다섯 살 무렵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작곡하며 뮤지션에 대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그는 낮에는 런던의 한 공장에서 컴퓨터 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갔고, 밤에는 클럽에서 연주하며 음악 내공을 쌓아갔다. 아티스트로써 첫 이름을 등록한 결과물은 1977년 싱글 ’Less than zero’. 이 노래는 파시스트 단체의 리더 오스왈드 모슬리(Oswald Mosley)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코스텔로의 의식 세계가 일반적인 곧은 길과는 거리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첫 싱글을 발표한 후 그는 5년 동안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키보디스트 스티브 니브(Steve Nieve), 베이시스트 브루스 토마스(Bruce Thomas), 그리고 드러머 피트 토마스(Pete Thomas) 등을 규합하여 자신의 백밴드 어트랙션스(The Attractions)를 결성하고 프로 세계로 뛰어들었다. 이후 어트랙션스는 엘비스 코스텔로와 우정 - 불화 - 재결합 과정 등을 거치며 오랜 기간 함께 한다. 코스텔로는 영국의 퍼브 록(Pun Rock)과 펑크 록을 완벽하게 구현한 전형적인 ’브리티시 로큰롤’ 음반인 1977년 데뷔작 (영국 14위, 미국 32위)와 1978년 2집 (영국 4위, 미국 30위) 등을 연이어 발표하여 일약 대영제국 최고의 로커로 떠올랐다. 이어 내놓은 1979년의 (영국 2위, 미국 10위), 1980년의 (영국 2위, 미국 11위), 1981년의 (영국 9위, 미국 28위), 1982년의 (영국 6위, 미국 30위) 등도 영국 록 히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 음반으로 대접받을 정도로 엘비스 코스텔로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궈놓은 음악 스케이프는 소리 하나 하나가 반짝 반짝 빛을 발했다. ’Watching the detectives’(영국 15위), ’Pump it up’(영국 24위), ’Radio radio’(영국 29위), ’Oliver’s army’(영국 2위), ’Accidents will happen’(영국 28위), ’I Can’t Stand Up For Falling Down’(영국 4위) 등의 히트곡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앨범들의 수록곡이 스무 트랙을 넘으면서도 곡 당 타임이 채 3분을 넘지 않는 전형적인 로큰롤과 펑크의 형식미를 취하고 있지만 깊이가 있고 다양한 움직임과 명암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코스텔로만이 할 수 있는 비법일 것이다. 코스텔로의 이런 월드와이드 동선이 가능하게끔 된 데는 뒤에서 막후 조정 역할을 한 닉 로우(Nick Lowe)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상기한 작품들 중에서 를 제외하고는 모든 음반들의 프로듀싱을 도맡음으로써 코스텔로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이후에도 닉 로우는 코스텔로 대부분의 앨범들을 프로듀스하며 환상적인 사운드를 연출해냈다. 코스텔로의 전성시대가 펑크와 뉴 웨이브의 정점기였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외의 시기들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해오며 별다른 기복 없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포크와 블루스뿐만 아니라 컨트리, 아이리시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뿌리 등을 탐구한 1986년의 (영국 11위, 미국 39위), 하드록의 강렬함을 드러낸 같은 해의 (영국 16위, 미국 84위) 등이 1980년대 후반기를 빛낸 대표적인 앨범들이다. 1990년대 초반에도 의욕적으로 음악 작업을 했지만, 눈에 띄는 평가를 받지 못한 코스텔로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 전성기 때 못지 않은 인기를 회복했다. 그는 1998년 전설적인 작곡가 버트 바카라크와 함께 한 음반 (영국 32위, 미국 78위)로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1년 뒤인 1999년에는 영화 [노팅 힐]의 주제가 ’She’를 부르며 대중적인 인기를 이끌어내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그리고 올해에는 17번째 스튜디오 앨범 을 발표하며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밴드 : Spencer Davis Group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
‘60년대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주도하였던 4인조 록 그룹. ‘60년대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주도하였던 4인조 록 그룹.
1978년 영국의 셰필드에서 결성된 펄프는 1990년대에 브릿 팝 폭발과 함께 ‘보통 그룹’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프런트맨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와 동료들은 헤쳐 모여를 반복하며 ‘싸구려(Pulp)’생활을 해나갔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지하로 숨기에 급급했고, 차트에 명함 한 장 내밀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 오아시스(Oasis)와 블러(Blu... 1978년 영국의 셰필드에서 결성된 펄프는 1990년대에 브릿 팝 폭발과 함께 ‘보통 그룹’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프런트맨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와 동료들은 헤쳐 모여를 반복하며 ‘싸구려(Pulp)’생활을 해나갔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지하로 숨기에 급급했고, 차트에 명함 한 장 내밀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 오아시스(Oasis)와 블러(Blur)에 의해 점화된 브릿 팝 열기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펄프에게 집중 조명을 비출 수 있게 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스타일의 글램 댄스뮤직부터 깔끔하고 단아한 인디 팝, 몽롱한 애시드 하우스와 신나는 디스코에 이르기까지 1970, 80년대를 아우르고 있는 그들의 사운드는 브릿 팝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고 있었다. 또한 자비스 코커의 시니컬한 가사와 못 말리는 돌출 행동 역시 밴드에게 영국 대중들이 친근감을 갖게 된 중요 요소였다. 자비스 코커가 아라바커스 펄프(Arabacus Pulp)란 이름으로 학교 친구들과 그룹을 조직했을 때, 그의 나이 불과 열 다섯 살이었다. 세상은 그러나 도전 정신만을 가지고 음악계에 뛰어든 겁없는 소년에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상 물정도 깨우치기도 전에 먹고 먹히는 서바이벌 전장에 발을 담긴 자비스는 잦은 멤버 교체, 계속되는 사운드의 변화 등으로 좌충우돌 행진을 하였고, 발매하는 앨범들도 속속 실패를 거듭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 있었을 뿐, 음악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마인드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스미스(The Smiths) 스타일의 기타 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1983년 데뷔작 < It >, 고딕 성향의 드라마틱한 악곡 진행을 보이고 있는 1986년 2집 < Freaks >에서 잘 나타난다. 펄프의 음악적 기틀은 1988년에 녹음됐다가 레코드사의 사정으로 연기되어 1992년 발표된 3집 < Separations >부터 서서히 잡혀나갔다. 1980년대 후반 영국을 휩쓴 애시드 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음반은 심플한 기타, 냉소적인 보컬, 촌스런 키보드 등이 어울리면서 묘한 울림을 자아냈다. ‘My Legendary girlfriend’, ‘Love is blind’등이 말해준다. 이와 함께 라인업도 안정을 찾았는데, 보컬과 기타, 키보드 그리고 송라이팅 등 다재다능한 자비스 코커를 주축으로 러셀 시니어(Russel Senior, 기타), 캔디다 도일(Candida Doyle, 키보드), 닉 뱅크스(Nick Banks, 드럼), 스티브 매키(Steve Mackey, 베이스) 등이 고정멤버로 활동했다. 3집의 탄탄한 음악적 성과에 힘입어 메이저 레이블 < 아일랜드 >와 계약을 맺은 그들은 1994년 4집 < His ’N’ Hers >(영국 차트 9위), 1년 뒤인 1995년 5집 < Different Class >(영국 차트 1위)를 차례로 내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계급 문제를 테마로 정한 < Different Class >에 수록된‘Common people’(영국 차트 2위)은 영국 노동자 클래스의 찬가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Do you remember the first time’, ‘Babies’, ‘Sorted for E’s and wizz’, ‘Disco 2000’ 등도 펄프를 국민밴드로 만드는데 일조 했다. 브릿 팝 열풍 속에서 슈퍼스타로 떠오른 펄프는 리더 자비스 코커의 장외 행동으로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자비스 코커는 1995년 11월 노르웨이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밴드의 장비가 망가졌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또한 그는 이듬해 2월 브릿 어워즈 시상식에서는 어린이들과 함께 한 마이클 잭슨의 ‘거룩한’ 공연 도중 무대로 뛰어올라가 민망스런 난동을 부리는 깜짝 쇼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에 체포된 직후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마이클 잭슨이 자기 자신을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예수처럼 여기고 있는 것에 대해 항의하려고 했다"며 마이클 잭슨의 ‘신성화’에 결사 반대했다. ‘보통 사람(Common people)’의 생각들 대변한 것이다. 이후 펄프는 1997년 기타리스트 러셀 시니어의 탈퇴 이듬해 정규 6집 < This Is Hardcore >를 공개하며 ‘Common people’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전작들에 비해 어둡고 무거운 사운드로 일관한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고, ‘This is hardcore’(영국 12위), ‘A little soul’(영국 22위), ‘Party hard’(영국 29위) 등의 히트곡들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해 가을 펄프는 ‘펄프는 인생을 사랑한다’라는 매우 낙관적인 제목의 신보 < We Love Life >를 들고 나왔다.
그룹명이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텍사스가 처음 음악 마당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트래디셔널 음악을 하는 그룹으로 오인했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토박이로 이뤄진 브릿 팝 밴드라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느꼈던 그 당혹함이란….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면 어느 정도 오해할 만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슬라이드 기타를 앞세운 컨트리부터 블루스와 포크, 그리고 리듬 앤 블루스까지 다... 그룹명이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텍사스가 처음 음악 마당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트래디셔널 음악을 하는 그룹으로 오인했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토박이로 이뤄진 브릿 팝 밴드라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느꼈던 그 당혹함이란….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면 어느 정도 오해할 만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슬라이드 기타를 앞세운 컨트리부터 블루스와 포크, 그리고 리듬 앤 블루스까지 다채롭게 펼쳐져 있는 그들의 사운드 스케이프는 미국과 영국을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복고의 리바이벌에 그치지 않고 스코티시 특유의 단아함과 모던함으로 새롭게 메이크업하여 텍사스만의 향기를 발산시켰다. 비록 대세에 이끌려 브릿 팝의 카테고리에 묶여져 있지만, 그들이 갖는 독창성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쉽사리 넘보지 못하고 있다. 텍사스는 힙스웨이(Hipsway)와 알터드 이미지스(Altered Images)에서 활약했던 베이스 주자 자니 매켈혼(Johnny McElhone)이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는 샬린 스피테리(Sharleen Spiteri)를 만나 1986년 결성한 그룹. 곧 이어 기타리스트 앨리 매컬레인(Ally McErlain)과 드러머 스튜어트 커(Stuart Kerr)가 합세해 완벽한 진용을 갖춘 밴드는 1989년 데뷔작 < Southside >를 발표했다. 슬라이드 기타가 주도하는 첫 싱글 ''I don''t want a lover''가 영국 차트 8위에 진입하고, 음반은 3위로 랭크되며 텍사스는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매드체스터들이 장악하는 영국 음악 신에서 조금은 낡은 색채의 사운드로 어필한 것이다. 드러머가 리처드 하인드(Richard Hynd)로 교체되고 키보디스트 에디 캠벨(Eddie Campbell)이 보강되어 만들어진 1991년 2집 < Mothers Heaven >은 약간은 느릿해지고 흐릿한 음색을 선보인 프론트 우먼 샬린 스피테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2년 뒤인 1993년에 내놓은 3집 < Ricks Road >는 알 그린(Al Green)의 고전 ''Tired of being alone''을 멋지게 재해석하여 실어놓아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컨트리 풍의 ''You owe it all to me''도 좋은 반응을 얻은 곡이었다. 이후 몇 년간의 휴지기를 가진 그들은 1997년 컴백 음반 < White On Blonde >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이 작품은 리듬 앤 블루스의 끈끈함 위에 전자 사운드를 덧입혀 현대적인 감각을 드러내며, ''Say what you want''(3위), ''Halo''(10위), ''Black eyed boy''(5위), ''Put your arms around me''(10위) 등의 히트곡들을 연달아 토해냈다.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난 리처드 하인드 대신 마이키 윌슨(Mikey Wilson)이 스틱을 잡은 1999년 5집 < The Hush > 역시 차트 넘버원으로 직행하며 텍사스의 위력을 뽐냈다. 그리고 지난해 말 10년간의 음악 이력을 총 정리하는 베스트 앨범 < Greatest Hits >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브릿 팝 밴드들이 현재 고전을 겪고 있는 가운데, 텍사스는 소울, 팝, 댄스, 블루스, 컨트리 등 여러 장르를 하나의 테두리에서 자연스레 소화해내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이는 크로스오버가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앞으로도 그들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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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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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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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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