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질문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아이의 삶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기는커녕 복잡하고 헷갈리고 아슬아슬하고 무섭다. 마치 대인국에 방금 떨어진 걸리버처럼 아이가 마주하는 상황은 모두 다 새롭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물건조차도 낯설고 두렵고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아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본능과 체험과 생각을 동원해 온몸으로 헤쳐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어른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이의 질문은, 의문과 두려움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자,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이기도 하다.
부모가 아이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이유
그럼, 아이의 물음 앞에서 부모와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해야 한다.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해,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들에 대해 능력껏 답해야 한다. 그것도 마음을 담아 진실하게. 만약 아이의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찮아서 피하거나 미루면 안 된다. 아이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아이들은 자기 물음이 외면당한 것에 상처를 받고 아예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외면해 버리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포기한다. 그러다 결국은 어른이 답해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제멋대로 생각하고, 과장하고, 왜곡하고, 판단해 무작정 행동으로 옮긴다. 아이들의 질문이 아이의 인생을,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을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 책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심리 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클로드 알모가 아이들을 자주 힘들게 하는 질문, 부모를 난처하게 하는 질문들을 가려 뽑아냈다. 40년 동안의 연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그 질문들이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이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그에 대한 답을 왜,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지 어른의 관점에서 제시한다.
왜 부모님이랑 결혼하면 안 되죠?
왜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면 안 되죠?
왜 누나는 나보다 먼저 태어났을까요?
왜 어른들은 안 놀아요?
엄마방에서 자면 왜 안 돼요?
왜 어른들은 뽀뽀를 하죠? 토할 거 같아요.
어떻게 동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죠?
이 책에 실려 있는 질문들은 이렇게 언뜻 보면 시시하고 엉뚱하고 어리석은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이의 질문들을 찬찬히 읽어 가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이 얼마나 복잡하고 깊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왜 화가 날까요?
질투하는 게 정상인가요?
뭐든지 제대로 끝낸 적이 없는데 왜 그럴까요?
나는 왜 내가 싫고 남이 부러울까요?
이처럼 5~6세, 8~10세 아이들도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혼란과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질문을 한다. 흥미롭게도 아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매일 대하는 가족에게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왜 부모님 말씀이 듣기 싫죠?
왜 어떨 땐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을까요?
왜 동생이 나보다 더 커요?
왜 아빠는 집안일을 돕지 않나요?
왜 아빠는 바람을 피울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언제 헤어질까요?
아이들에게는 사랑 문제 또한 어른들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이며, 놀랍게도 아이들은 늘 죽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순간순간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첫사랑에게 버림받았어요. 너무 아파요.
여자 친구 중 누굴 택하죠?
남자애를 좋아하는데 고백해야 할까요?
사람이 죽으면 왜 울어요?
할머니가 언제 죽을지 늘 걱정이 돼요.
죽고 나면 뭐가 있어요?
학교 가다 유괴당하면 어떻게 해요?
왜 나는 지진이 무섭죠?
이런 질문들을 되짚어 보면 아이들 각자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가족, 어른, 친구, 세상, 인생, 두려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또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모호하고 심오한 철학적 질문들도 툭툭 던져댄다.
옳다는 건 누가 정해요?
자유롭다는 게 뭐예요?
선택하는 건 왜 힘들죠?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결국 아이들의 질문에는 아이들이 몰라서 알고 싶은 것, 궁금해서 답답한 것, 혼란스러워서 정리하고 싶은 것, 막막해서 방향을 잡고 싶은 것, 두려워서 방어하고 싶은 것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는 셈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들
저자는 [심리학]이란 잡지의 상담코너 [아이들의 편지]를 통해 프랑스 부모와 아이들이 보내온 물음에 답장해주면서 정리한 것들, 이를 테면 어른들이 유의해야 할 대화 원칙, 아이에게 답변할 때 적용할 만한 논리와 공감하기 쉬운 일상의 사례를 이 책에서 소개해 놓았다.
저자는 아이를 완전한 인격과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은 하되, 아이들이 억지를 부리거나 제맘대로 하지 못하도록 세상의 규칙들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을 가르쳐 주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인간으로 자라도록 하려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이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가까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이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했을 때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금기를 익혀 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아이들의 세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정신분석가들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만큼 난해하다. 언어와 생각과 행동이 어른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른들은 먼저 마음을 열고 아이의 얘기를 들으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그 다음은 아이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언어로,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 주되 어디까지 대답해줘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말해야 하는지 분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을 잘 들을까
개구쟁이 아들 둘을 키우는 옮긴이 이희정씨는 “프랑스 아이들이 왜 말을 잘 듣는지 이 책을 읽고서 알게 됐다”며 “ 어른의 생각과 선입견을 강요하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법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아이의 성적과 진로에만 매달리는 현실에서, 아이를 어떤 어른으로 키워야 할지 고민도, 조언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 책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길을 열어준다. 독자가 남긴 평은 이 책의 가치를 정확하게 요약해 준다.
“아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수 있다면 이렇게 이끌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