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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와 콜라보레이션한 오디오파일 테스트 음반 2집 (Burmester: Art For The Ear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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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와 콜라보레이션한 오디오파일 테스트 음반 2집 (Burmester: Art For The Ear Vol.2)

[ 24Bit/192KHz Mastering ]
Quincy Jones, Georg Fridrich Handel, Dmitri Shostakovich 작곡/Radka Toneff, Hans Theessink 노래 외 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Champion The World / Champion The World | 2019년 11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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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와 콜라보레이션한 오디오파일 테스트 음반 2집 (Burmester: Art For The Ear Vol.2)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11월 26일
제조국 홍콩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Radka Toneff -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 02 Paco De Lucia - Live In America
  • 03 Hans Theessink - Call Me
  • 04 Dabringhaus Und Grimm - Konzertante Barockmusik
  • 05 Quincy Jones - Back On The Block
  • 06 Ben Webster - Gentle Ben
  • 07 Unknown Artist - Lindenkirche Berlin
  • 08 Unknown Artist - Dallas Wind Symphony
  • 09 Ricky Lee Jones - Dat Dere
  • 10 Schostakovich: Symphony Nr. 9
  • 11 Stevie Ray Vaughan - Tin Pan Alley
  • 12 Handel: Marienges
  • 13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1
  • 14 Pink Floyd -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 15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2

아티스트 소개 (12명)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20세기를 빛낸 ’팝 흥행사’라 칭송될 앨범 프로듀서이자 빅 밴드 마스터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의 황금 콤비로 활약한 그는 마이클 잭슨의 성인 데뷔작 < Off the wall >(1979), 흑, 백 음악의 완벽한 크로스 오버로 전 세계 4천 2백 만장 판매라는 신기록을 달성한 < Thriller >(1982), 한층 그 볼륨을 높이...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20세기를 빛낸 ’팝 흥행사’라 칭송될 앨범 프로듀서이자 빅 밴드 마스터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의 황금 콤비로 활약한 그는 마이클 잭슨의 성인 데뷔작 < Off the wall >(1979), 흑, 백 음악의 완벽한 크로스 오버로 전 세계 4천 2백 만장 판매라는 신기록을 달성한 < Thriller >(1982), 한층 그 볼륨을 높이며 그가 ’팝의 지존’임을 다시 한번 천하에 증명한 < Bad >(1987)의 프로듀서로서 참여하며 1980년대 ’팝 천하’를 일궈낸 대가이다. 마이클 잭슨을 위시해 그는 패티 오스틴, 조지 벤슨, 엘라 핏 제랄드, 레이 찰스, 아레사 프랭클린, 사라 본 등 수많은 R&B, 재즈 가수들을 비롯, 90년대 갱스터 랩퍼 갱스타(Gang starr)의 < Hard to run >(1994)에 이르기까지 프로듀서로 참여, ’흑인 대중 음악의 산파자’로서의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다. 하지만 그는 명 프로듀서이기 전에 1950년대부터 카운트 베이시, 디지 길레스피와 같은 재즈의 대가들과 연주 활동을 함께 한 트럼펫 주자이자 빅 밴드마스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나이로 빅 밴드 마스터로 무대에 섰던 그는 다수의 리더작을 발표하며 편곡과 프로듀싱에서 발군의 재능을 발휘했고, 이러한 음악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70년대부턴 팝 가수들의 앨범 프로듀싱과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퀘스트 레코드(Qwest Record)의 기획자로서 역할에 전념하게 된다. 1933년 시카고 태생인 그는 청소년기에 트럼펫과 피아노로 재즈의 기본을 쌓아갔고, 1951년 비브라폰 주자 라이오넬 햄프튼(Lionel Hampton)의 오케스트라에서 2년 간 트럼펫 주자와 편곡자로 활동하며 재즈 계에 투신한다. 햄프튼의 밴드에서 활동하던 무렵, 비운의 하드밥(Hard-Bop) 대가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과 쿨(Cool) 트럼펫터 아트 파머(Art Farmer)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로 그는 출중한 트럼펫 연주 실력을 보유하게 된다. 얼마 후 프리랜서 음악인으로 활동하며 카운트 베이시, 캐논볼 애덜리, 토미 도시, 디나 워싱턴등 쟁쟁한 재즈 음악인들의 편곡과 세션을 담당했고 1956년엔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함께 투어활동을 하며 그는 차츰 뉴욕 52번가에서 명성을 쌓아간다. 약관의 나이를 조금 넘긴 1956년, 블루스 보이 비비 킹(B. B. King)이 소속되어 있던 ABC 레코드사와 계약, 앨범 < This is how I feel Jazz >에서 그는 밴드마스터로 데뷔한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투어 활동을 전개하며 스탠더드 팝 작곡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이 배경 음악을 맡은 쇼(Show) ’Free & Easy’(1959)의 편곡 작업에도 참여한다. 솔로 활동과 병행해 그는 1957년, 성이 ’Jones’인 음악인들과 함께 한 이색적인 프로젝트 재즈 섹스텟(Sextet) ’The Jones Brothers’결성 , 타드 존스(Thad Jones), 지미 존스(Jimmy Jones), 조 존스(Joe Jones)와 같은 재즈 뮤지션들과 잠깐 활동한다. 60년대 초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머큐리(Mercury)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발표하며 회사 내 부사장과 A&R맨(Artist & Repertoire)으로도 활동한다. 솔로 활동과 더불어 그는 이후 TV와 영화 음악에도 관여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 2차 대전 나찌의 만행을 고발한 영화 < The Pawnbroker >(1964)를 시작으로 오스카 상 4개 부문을 휩쓴 미스테리 극 < In the heart of night >(1967), 워렌 비티(Warren Beaty)와 골디 혼(Goldie Hawn)이 등장한 코미디< The Dollars >(1971),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 주연한 액션물 < The Getaway >(1972), TV 미니시리즈의 새 지평을 열며 전 세계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작 < The Root >(1977), 남부출신 흑인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담은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 The Color Purple >(1985)등에서 영화 음악 작곡과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다방면에서 그의 재능을 펼쳐 보인다. 1969년, 그는 CTI 레코드 설립자인 명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가 소속되어있던 A&M 레코드와 의기투합, 같은 해 프레디 허바드(트럼펫), 휴버트 로우즈(플룻)를 비롯한 크리드 테일러 사단에 이름을 걸고 있는 명 연주자들이 함께 한 그의 중기 걸작 < Walking in space >(1969)를 시작으로 1981년까지 A&M 레코드에서 활동하게 된다. 1974년을 기점으로 그는 평소 해오던 밴드 마스터로서의 활동을 접고 A&M 소속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 활동에 집중한다. 1980년, 자신의 레이블 퀘스트(Qwest) 레코드를 설립, 자신의 프로듀서 하에 수많은 팝의 명작들을 양산해낸다. R&B 보컬 패티 오스틴(Patti Austin), 신스 팝의 신기원을 제시한 뉴 오더(New Order), 하드 밥 색스폰 주자 어니 왓츠(Ernie Watts), 여성 싱어송 라이터 칼리 사이몬(Carly Simon), 브라질 출신의 싱어 송 라이터 도리 캐이미(Dori Caymmi)의 앨범을 기획했고, 기타리스트 겸 팝 보컬리스트 조지 벤슨의 < Give me the night >(1980), 마이클 잭슨의 히트 작들을 비롯, 80년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디오피아 난민 돕기 자선 앨범 < We are the world >(1984)에서도 프로듀서로 맹위를 떨친다. 20세기가 차츰 저물어가던 시점인 1989년, 그는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의 본령인 흑인 대중 음악을 자신의 기획으로 집대성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사라 본, 엘라 핏 제랄드와 같은 노장 재즈 맨 들을 비롯, 블루스에서 힙합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인 흑인 음악인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미증유의 대작을 발표하는데 그것이 바로 < Back on the block >(1989)이다. 자신의 레이블 퀘스트에서 내놓는 그의 야심작이기도 했던 앨범은 이듬해인 1990년 그래미 상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상이라는 대어를 낚게 된다. 90년대 들어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생전 공식적인 마지막 녹음인 < Montreux Jazz festival >(1991)의 프로듀싱과 편곡을 맡았고, 쿨리오(Coolio), 알 켈리(R. Kelly), 미스터 엑스(Mr. X) 등이 참여하며 당시 유행하던 재즈-힙합(Jazz-Hip hop)의 면모를 한껏 보여준 < Q’s jook joint >(1994)를 기획 및 프로듀싱한다. 재즈 밴드 마스터로 음악계에 발을 들어 놓았지만 이후 창작보다는 프로듀싱으로 명성을 쌓으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으로 대변되는 아티스트의 숙명대신 뮤직 비즈니스계의 실력자를 택한 그는 분명 순전한 의미의 재즈 음악인이라고 칭송되긴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대중 음악의 절반 이상을 규정한 흑인 대중 음악의 우수성을 흑인 스스로의 힘으로 만방에 알리는데 공헌한 인물로 그는 60년대 모타운의 전설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와 70년대 필리 소울(Philly Soul) 콤비 케니 갬블 & 레온 허프 (Kenny Gamble & Leon Huff)와 함께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흑인 대중음악계의 산 증인이다.
작곡 : Georg Fridrich Handel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헨델은 J.S. 바흐와 같은 해 독일 할레(Halle)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음악가이면서도 중요한 활동의 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전개했다. 그의 음악은 바흐에 비해 보다 근대적인 경향이 강하고, 대위법적이기보다는 화성적인 울림에 넘쳤다. 기법적인 엄밀함은 바흐에게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현실 긍정적인 명랑성,활달함은 독자적인데, 그것은 영국이라는 근대 사회를 활동 기반으로 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고 하겠다. 독일 ... 헨델은 J.S. 바흐와 같은 해 독일 할레(Halle)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음악가이면서도 중요한 활동의 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전개했다. 그의 음악은 바흐에 비해 보다 근대적인 경향이 강하고, 대위법적이기보다는 화성적인 울림에 넘쳤다. 기법적인 엄밀함은 바흐에게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현실 긍정적인 명랑성,활달함은 독자적인데, 그것은 영국이라는 근대 사회를 활동 기반으로 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고 하겠다. 독일 음악사상 특이한 위상에 선 대음악가 헨델과 바흐 두 사람은 끝내 서로 만나보지 못하고 저마다의 생애를 마쳤다.

'왕립 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하였으며 오라토리오 '에스테르 Esther', '메시아 Messiah', '알렉산더의 향연 Alexander's Feast' 등을 작곡하였다.
작곡 : Dmitri Shostakovich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러시아의 작곡가,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러시아의 작곡가,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노래 : Radka Toneff (라드카 토네프 ,Ellen Radka Toneff)
재즈 보컬 재즈 보컬
기타/만돌린 연주자, 싱어송라이터 기타/만돌린 연주자, 싱어송라이터
팝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로 기억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한 독특한 가사에 포크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거기에 팝을 혼합한 그녀의 음악은 캐나다 출신의 위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A lover''s concerto''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알... 팝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로 기억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한 독특한 가사에 포크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거기에 팝을 혼합한 그녀의 음악은 캐나다 출신의 위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A lover''s concerto''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알려진 재즈 싱어 사라 본(Sarah Vaughn), 그리고 괴짜 뮤지션으로 악명 높은 랜디 뉴만(Randy Newman)과 톰 웨이츠(Tom Waits) 같은 대가들로부터 채무를 지고 있다. 그러한 그녀의 독특한 음악을 형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1954년 11월 8일, 미국의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와의 불화로 10대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 그리고 이성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집에서 가출해 서부 해안 도시들을 배회하면서 사회 밑바닥 인생도 겪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의 경험을 토대로 쓴 가사가 단지 아름다운 사랑 타령일 수만은 없었다. 이 금발의 싱어 송라이터가 자신의 노래 소재로 삼은 것들은 죽음, 변화, 진화처럼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러한 방황 후 이 아리따운 여성이 정착한 곳은 로스앤젤레스였고, 거기서 레스토랑 서빙과 1인 독백극 공연을 통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가 일명 ''카바레 음악의 대부'' 톰 웨이츠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입문했다. 1979년에 나온 처녀작 < Rickie Lee Jones >는 재즈와 팝, 포크, 리듬 앤 블루스, 록이 혼재되어 있는 음반으로 판매적인 면은 물론 비평적인 면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느긋하지만 변덕스럽고, 약물 기운으로 조금은 나른한 데뷔 음반에서는 싱글 ''Chuck E''s in love(4위)''가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며 그녀에게 그래미 신인상의 길로 인도했고 ''Youngblood(40위)''가 후속타를 기록했다. 이 처녀작 이후 1984년의 < Magazine >까지 4장의 LP를 공개했지만 상업적인 잣대인 히트 차트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평론가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1980년대 중반 다시 도진 음주벽과 부진한 음반 판매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딸의 출산으로 5년의 공백기를 가진 리키 리 존스는 올해 그래미 주요 부문을 휩쓴 스틸리 댄(Steely Dan)의 월터 벡커(Walter Becker)의 진두지휘 아래 1989년에 제작한 음반 < Flying Cowboys >로 인상적인 재기를 했고, 1991년에는 팝록 밴드 워스 (낫 워스)[Was (Not Was)]의 리더 돈 워스(Don Was)의 프로듀싱으로 < Pop Pop >을 발표했다. 유년 시절의 어두웠던 기억과 경험을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리키 리 존스는 ''음악의 힘''을 증명했다. 만약 그녀가 1990년대 등장했다면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숀 콜빈(Shawn Colvin)과 함께 막강한 여성 포크록 싱어 송라이터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성했을 것이다.
블루스 락 기타 연주자, 가수 블루스 락 기타 연주자, 가수
연주 : Paco De Lucia (파코 데 루치아,Paco De Algeciras)
기타 연주자, 작곡가 기타 연주자, 작곡가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밴드 :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
먼저 수용자 집단을 지성인들, 그 가운데도 젊은 지성인이라 얘기되는 대학생들로 한정하자. 시대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그리고 나서 이때에 이들에게 유독 주목을 받았던 록 그룹 혹은 가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 그 주인공은 틀림없이 핑크 플로이드가 될 것이다. 대중스타들은 대부분 독점적 팬층을 소유하게 마련이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특기할 만하게도 지성인들에게 인기를 누렸다. 한국의 상황... 먼저 수용자 집단을 지성인들, 그 가운데도 젊은 지성인이라 얘기되는 대학생들로 한정하자. 시대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그리고 나서 이때에 이들에게 유독 주목을 받았던 록 그룹 혹은 가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 그 주인공은 틀림없이 핑크 플로이드가 될 것이다. 대중스타들은 대부분 독점적 팬층을 소유하게 마련이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특기할 만하게도 지성인들에게 인기를 누렸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당시 팝 뮤직을 애청한 대학생들에게 그들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이른바 배운 사람들로부터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엘튼 존이나 비지스처럼 명성이 범(汎)대중적이질 않아서 ‘덜 알려진’ 쪽에 끌리는 지성인의 기호에 부합했던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앞서간 사운드’가 크게 어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룹이 초창기에 선보였던 사이키델릭 사운드나 이후에 구사했던 공상 과학적 음악은 진보를 특성으로 하는 대학생의 성향과 딱 맞아떨어졌다. 사실 그들의 음악은 록 역사에서 진보적 음악, 즉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된다.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4채널 방식으로 녹음해 효과를 낸 웅장하고 오묘한 일렉트로닉(전자) 사운드는 마치 ‘록큰롤의 스타 트렉’과 같았으며, 새벽에 우는 새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을 음반에 담을 만큼 효과음처리 또한 아방가르드적이었다. 게다가 선율 중심의 전통을 벗어나(그래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멜로디는 부족했다) 바그너식 사운드를 취했던 것도 매력 포인트였다. 그러나 플로이드가 우대받았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밴드가 ‘귀 아닌 뇌에 전달해준’ 무거운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히피와 록 혁명의 전환기 였던 1967년 여름 - 록계에서는 이때를 ‘사랑의 여름’이라 이름붙여 기념한다 -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처음부터 독특한 메시지를 팬들에게 제공했다. 주요 테마는 현대사회의 소외와 신경증, 소외라면 몰라도 스트레스나 조울증 등 파라노이아를 노래 소재로 취급한 록 뮤지션은 일찍이 없었다. ‘겁없이 우둔한 자는 웃으며 군중을 향해 마주했다. 시장(市長)이 얼굴을 돌려 찌푸렸을 때 소요가 인다. 왕관을 쓴 바보는 누구인가. 너의 길을 따라 가라. 모든 날이 바로 그날이다. 그리고 그의 눈섭에 그려진 공포선을 넘어 위로 올라가면서 내려다본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 소리를 듣는다.’ ‘겁없는(Fearless)’ 노랫말이 이런 식이다. 스트레이트한 의미 전달이 아니라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심리의 흐름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핑크 플로이드 눈에 현대인의 심리는 병적이고 신경질적이다. ‘태양광선 아래 누워 있는 것이 지겨워 집에 눌러앉아 비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당신은 젊고 인생은 길다. 오늘 죽을 시간이 있고 그러다 어느날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걸 알게 되지. 아무도 당신에게 언제 뛰라는 걸 얘기하지 않았지. 당신은 출발 신호탄을 놓친 거야. ... 세월은 점점 짧아지고 쉴 시간을 찾기도 어려운 것 같아. 계획은 무(無)가 돼버리거나 반 페이지에 휘갈겨 쓴 정도지. 조용한 절망에 몸을 붙잡히고 있는 게 영국적인 길이야. 시간은 가버리고 노래는 끝나지. 난 할말이 더 있다고 생각했지.’ ‘시간(Time)’ 이 곡은 그룹의 73년도 음반 < 달의 어두운 저편(Dark Side of the Moon) >에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은 80년대 말까지 15년 이상을 빌보드 앨범 차트에 붙박이 하는 금자탑을 세웠고 흔히들 플로이드 음악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한다. 나중에 ‘프로젝트’라는 그룹을 이끌고 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슈퍼엔지니어 알란 파슨즈의 도움을 받은 웅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 트랙을 휘감아 청취자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또한 ‘어두운 저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들의 시각은 사뭇 ‘비판적 조롱조’다. 플로이드가 내린 돈의 해석을 들어보자. ‘돈! 그것은 죄악이야. 그것을 공평하게 나눠가지라구. 그러나 내 몫은 빼앗지 말구. 돈! 오늘날 모든 악의 뿌리라고들 하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그들이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지.’ ‘돈(Money)’ 이렇게 핑크 플로이드는 소리와 노랫말 모두를 팬들에게 만족시켜 나갔다. < 달의 어두운 저편 >이 플로이드 사운드의 결정체라면 의식의 완결편은 1980년도의 걸작 < 벽(The Wall) >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의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저편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그들은 여기서 비로소 어두움의 근원을 발견해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벽이었다. 플로이드는 이 음반에서 벽이라는 상징을 통해 획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 폭력의 가장 극악한 형태인 전쟁,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유 의사를 차단하는 현대사회의 삭막함 등 현대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모든 ‘억압적 요소에 대한 거부’를 한 편의 사회 드라마로 엮어낸다. 이 음반에 실려 80년 말 팝계를 강타한 명곡 ‘벽 속의 또 다른 벽돌(Another Brick in the Wall)’의 감흥을 잊어버린 자 누구인가. 후반부에 마치 절규하듯 뿜어내는 어린이들의 코러스는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게 울려퍼질 것이다. ‘우린 교육이 필요치 않아요! 우린 사고 통제가 필요치 않아요! 교실에서의 어두운 풍자는 필요없어요! 선생님, 우릴 제발 내버려둬요! 그대는 따지면 벽 속의 또 다른 벽돌이라구요.’ 대중 가요사상, 교육을 소재로 다룬 노래는 아마 이 곡이 처음이리라. 키딩 교사가 깨우침용으로 알려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찾는 듯한 이 곡의 외침은 교육의 민주화를 부르짖는 전교조의 소리와 너무나 닮았다. 이 노래 바로 전에 있는 ‘우리 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괴롭힘을 받기 전인 것이다. 이 음반에서 핑크 플로이드가 그려낸 현대의 상황은 ‘안녕 푸른 하늘(Goodbye Blue Sky)’이란 곡에 스케치되어 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는가. 폭탄이 투하되는 소릴 들었는가. 화염은 사라져도 고통은 남아 스멀거리지. 푸른 하늘이여 안녕!’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그림이 푸른 하늘과 안녕이라면 핑크 플로이드가 보여주는 그림은 ‘잔인한 세상과의 안녕(Goodbye Cruel World)’이다. ‘안녕 잔인한 세상이여! 난 오늘 너로부터 떠날 테야. 모든 이들이여 안녕! 내 마음을 바꾸도록 그대들이 건넬 말은 아무것도 없어.’ 이 음반은 핑크 플로이드의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그룹의 리더이자 베이스 주자인 로저 워터스의 독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저는 독재적 퍼스낼리티(이것이 문제가 된다)의 소유자로 이 음반 제작시에 다른 멤버의 의견은 거의 고려치 않고 독단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으며 곡은 대부분, 특히 가사는 전부 그가 썼다. 결론하면 < 벽 >음반은 로저의 자서전이다. 따라서 핑크 플로이드가 표방하는 이념은 그의 사고에서 출발한다. 로저의 사고는 폭력과 전쟁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큰 줄기를 이룬다. 또 이것을 표출하는 그의 노랫말 감각은 다분히 어린 시절의 쓰라린 상처가 가져다준 소산이다. 로저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영국군으로 참전하여 44년 안지오 전투에서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채 ‘결손 가정’의 유년기를 보냈다. 가정의 결손은 한편으로 퍼스낼리티의 결손을 가져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에게 ‘개혁주의’의 사고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이러한 잠재된 상처가 < 벽 >에 각인되고 있는 것이며 83년에 발표된 앨범 < 마지막 커트(The Final Cut) > - 제목처럼 그들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 에 다시 한번 선명하게 반영된다. 이 음반으 ‘전후의 꿈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그 배경은 82년에 벌어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이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로저의 전쟁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전편에 아로새겨져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들의 소년들이 자살하고, 우리가 무엇을 했습니까. 대처 수상! 도대체 우리가 영국에 무엇을 했습니까. 전후(戰後)의 꿈이 어떻게 된 거냐고 우리가 외쳐야 합니까, 우리가 부르짖어야 합니까.’ ‘전후(戰後)의 꿈(The Postwar Dream)’ 로저는 이 세상의 악을 제조하는, 치유 못할 독재자와 왕을 박재해 가둘 수 있는 플레쳐 기념관을 그들에게 지어주자고 제창한다. 물론 거기에 들어가야 할 인물의 리스트도 준비되어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레이건과 헤이그 국무장관을, 이스라엘 베긴 수상과 그의 친구인 대처 여사와 페이슬리르르,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그의 당을, 메카시의 악령을, 닉슨의 기억들을.’ ‘플레처 기념관(The Fletcher Memorial Home)’ 로저 워터스의 상처는 결과적으로 로저 워터스의 영광을 만들어주었다. 음반 < 벽 >은 82년 명감독 알란 파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 < 앤젤 하트 >, < 버디 > 등이 그의 작품)의 탁월한 영상 감각과 결합,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은막의 충격을 불렀다. 로저의 이상과 철학이 알란 파커에게 멋진 영감을 제공한 것이다. 로저는 90년 7월 21일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던 시점 - 다시 말해 베를린 벽이 허물어졌을 때 - 음반 < 벽 >과 영화 < 벽 >의 기술과 정신을 재생하여 이번에는 공연으로 현장화하는 데 성공한다. 음반이 출반되고 난 직후인 81년 현란한 조명과 영상을 도입한 < 벽 >공연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로저는 주변으로부터 그 공연을 다시 한번 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한 번 더 한다. 그런데 장소는 베를린 벽이라야 한다”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89년 11월 9일 진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자 그는 즉각 중천금인 남아일언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공연은 85년 라이브 에이드 이후 최대 규모의 뮤지컬 이벤트로 연출돼 필 콜린즈, 시네드 오코너, 신디 로퍼 등 슈퍼스타들이 참여하고 실제의 소련 군악대가 가세한 가운데 20만 명의 청중이 운집했으며 전세계의 약 10억 인구가 텔레비전으로 그 광경을 시청했다.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이 공연에서 보여준 로저의 무대장치 및 진행은 가히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단박에 뉴스의 초점 인물로 떠올랐다. < 로스엔젤레스 타임즈 >지는 “이 공연의 기획자가 반(反)제도권의 이미지를 보여온 로저 워터스라는 사실은 곧 이 무대가 록 뮤직의 점증되고 있는 사회적 양심의 발현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공연의 귀재’ 로저 워터스는 처음부터 핑크 플로이드의 실세는 아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아니라 市)에서 66년 결성될 당시에 그룹의 지휘자는 시드 바렛이라는 이름의 좀 엉뚱한 기질의 친구였다. 시드는 미국의 컨츄리 블루스 듀오인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실의 이름을 따 밴드명을 지었고 그룹의 초창기 음악 색깔을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결정지은 창업공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마약성이 강한 사이키델릭 음악의 본질을 맛보기 위해 실제로 LSD(마약의 일종)를 실험했고, 거기에 노예가 돼버리는 바람에 치유 불능 상태에 빠져 앨범 두 장을 내고 난 뒤 68년 그룹을 떠나고 만다(이와 관련된 얘기는 아직도 록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후 그의 자리에 데이비드 길모어가 가입하고 로저 워터스, 릭 라이트, 닉 메이슨과 함께 4인조의 라인 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그룹의 뿌리인 시드의 천재성을 못잊어 75년 < 네가 여기 있다면(Wish you were here) >이란 작품을 내어 시드에게 바치기도 한다. 여기 수록된 9부작의 대곡 ‘그대 광기의 다이아몬드를 빛나게 하라(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시드는 거의 숭배자로까지 승화되고 있다(‘오 그대는 이방인, 그대는 전설, 그대는 순교자, 영원히 빛나리’). 그러나 이후 로저의 그룹내 파워가 갈수록 증대되고 균형을 잃으면서 핑크 플로이드는 멤버간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버린다. 절대 명령권과 최후 결정권을 장악한 로저는 한때 개혁주의의 사상을 같이 한 동지 닉 메이슨과 릭 라이트를 세션맨의 위치로 전략시켜 팬들을 의아하게 했고 70년대 말 데이비드 길모어는 당적(?)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솔로 앨범을 발표, 그룹은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말았다. < 벽 >이 나왔을 무렵 이미 그룹은 해산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때부터 로저와 데이비드 간의 음악을 보는 시각 차이가 표면화되었다. 로저는 철저한 혁신주의자였고 데이비드는 ‘안정 속의 개혁’을 강조하는, 다소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데이비드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 로저에 의해 참여성으로 조율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 마지막 커트 >를 마지막으로 그룹이 깨진 것은 이처럼 둘간의 이념 갈등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로저가 먼저 그룹에서 뛰쳐나왔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룹을 사수, 87년에는 < 이성의 순간적 실수(A Momentary Lapse of Reason) > - 꼭 로저를 얘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를 발표하여 건재를 과시했지만, 역시 로저 없는 핑크 플로이드는 맥빠진 것이었다. 이때 쌍방은 그룹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할 만큼 험악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가 이끄는 새 핑크 플로이드는 로저가 빠진 가운데에서도 음반 및 장외 활동의 성과가 좋아 포브스지 집계 ‘89년 가장 돈많이 번 연예인 40인’에 끼어 이름의 위력을 맛보았다. 그 해 그들은 역사적인 소련 공연을 갖기도 했다. 1년의 시각 차는 있지만 데이비드의 핑크 플로이드는 소련에서 공연하고, 로저는 베를린 월 공연을 하고... 그 안좋은 모양새란! 그러나 어떠한 실망적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핑크 프로이드는 음반 < 벽 > 하나만으로도 록 역사에 그 존재 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사운드와 노랫말 모두를 충족시켜 줄 한편의 ‘음반 드라마’를 접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 Wiener Symphoniker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Vienna Symphony Orchestra)
오케스트라 : Musica Antiqua Koln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 (고음악 연주단체),MAK)
1973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라인하르트 괴벨(Reinhard Goebel)이 독일 쾰른의 음악원 학생들과 함께 창단한 고음악 연주단체. 바로크 시대 작품을 연주하며, 당시 시대악기를 사용하였다. 1979년 홀랜드 페스티벌 동안 런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공연하여 처음으로 많은 관객과 만났다. 1년 전인 1978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고음악 레이블인 Archiv사에서 많... 1973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라인하르트 괴벨(Reinhard Goebel)이 독일 쾰른의 음악원 학생들과 함께 창단한 고음악 연주단체. 바로크 시대 작품을 연주하며, 당시 시대악기를 사용하였다.
1979년 홀랜드 페스티벌 동안 런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공연하여 처음으로 많은 관객과 만났다. 1년 전인 1978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고음악 레이블인 Archiv사에서 많은 음반을 발매하였다.
2006년, 라인하르트 괴벨이 건강 문제로 지휘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MAK는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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