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혼례식을 중심으로
고려와 중국 왕실 혼례식까지 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조선시대 혼례의식의 연원이 되는 중국 고대 혼례의식의 기록 및 중국 왕실의 혼례식, 그리고 고려 왕실 및 사가 혼례식에 관한 자료들을 종합하여 조선시대 혼례의식의 기원을 살펴보고자 했다. 제2부에서는 조선 왕실 혼례식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와 절차를 살펴본다. 혼례의식의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왕의 배필 왕비를 뽑는 삼간택의 과정, 혼례식 절차를 일컫는 육례 과정, 혼례의식이 치러지는 궐 안팎의 장소, 혼례식에 관여한 인물들, 사진의 역할을 했던 혼례의식의 기록 가례도감의궤 반차도, 혼례식의 음악 등을 개괄하였다. 제3부에서는 조선 왕대별 혼례의식과 그 추이를, 남아 있는 20건의 가례도감의궤 분석을 통해 정리해 보았다. 제4부에서는 왕실 혼례의 규모와 형식면에서 체계를 갖춘 왕 영조, 최초의 가례도감의궤의 예로 남아 있는 소현세자, 유일한 왕세손 결혼식이었던 정조의 예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왕왕세자왕세손의 결혼식을 비교해 보았다. 제5부에서는 남아 있는 기록화와, 근대기 황후와 왕비가 사용했던 실제 유물, 그리고 의궤 반차도 등을 통해 왕실 혼례식의 각 절차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인물들의 의복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꽃 같은 처녀, 왕비로 간택되다
왕실 혼례가 예정되면 가장 먼저 민간에 ‘금혼령’이 내려지고, 일정 범위 안에 속하는 집안의 처자들은 ‘처녀 신고’를 해야 했다. 왕실에서는 금혼령을 내린 후 후보자 자격이 되는 처자들을 대상으로 처녀단자를 올리게 하였는데 여기에는 처녀의 사는 곳, 성명과 생년월일시, 4조의 이름, 부친의 이름 등을 적었다. 대개 25~30명 정도가 제출하였으며, 자격 밖의 처자들도 금혼령이 풀릴 때까지 혼인이 금지되었다. 처녀단자를 올린 처자들을 놓고 대개 세 단계의 ‘간택’ 절차를 거쳤는데 초간택에서 6명, 재간택에서 3명, 삼간택에서 최종 1명이 선발되었다. 왕비나 왕세자빈의 간택에서는 가문, 부덕, 용모 등이 특히 중시되었다. 본문에서는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 영조의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의 저작 『한중록』에 기록된 혜경궁의 간택 과정과 당시 실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세자비 간택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간택에 관여했던 사람들, 간택이 이뤄진 공간, 당시에 입었던 복식 등을 비롯한 간택의 세세한 전과정, 무엇보다 9세라는 어린 나이에 세자빈이 된 혜경궁 본인의 복잡한 심사와 가족들의 안타까운 심경까지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왕실 결혼의 식순, 육례
왕비 혹은 왕세자빈의 간택이 이루어진 후, 본격적인 혼례의 의식 절차가 진행된다. 조선 왕실 혼례식의 여섯 가지 예법 즉 육례는 국왕이 혼인을 청하는 의식인 ‘납채’, 성혼의 징표로 예물을 보내는 ‘납징’납폐), 책비와 친영 날짜를 잡는 ‘고기’ 왕비로 책봉하는 의식인 ‘책비’, 국왕이 별궁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오는 ‘친영’ 국왕과 왕비가 함께 궁궐에서 잔치를 베푸는 의식인 ‘동뢰’ 등으로 구성된다. ‘가례도감의궤’에는 육례의 각 의식에 해당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는 왕실 혼례의 절차를 복원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 여섯 단계 가운데, 왕이 왕비의 임시 거처인 별궁으로 나아가 궁으로 모시고 돌아오는 ‘친영’의 행렬 장면은 ‘가례도감의궤’ 말미에 친영 반차도로 기록되어 있다.
왕실 혼례식의 하이라이트 ‘친영’,
가례도감의궤 ‘반차도’로 만나다
왕실 혼례식의 규모는 가례도감의궤 말미에 그려진 ‘반차도’의 면수를 통해 가장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 17세기에는 8면~12면의 간단한 묘사로 왕비 또는 왕세자빈의 행렬만을 표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왕과 왕비 혹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행렬을 모두 묘사하면서 반차도 면수도 증가하였다. 1759년 영조 혼례식의 가례 반차도가 50면으로 제작된 것을 비롯하여, 19세기 헌종과 효현왕후 가례 때는 68면으로 늘어났으며, 철종의 가례 반차도는 92면으로 가장 길고 화려하다. ‘반차’란 ‘지위와 임무에 따라 나누어짐’이란 뜻이며, 행사 전에 미리 그려놓은 반차도를 보고 위치와 임무를 숙지한 후 친영 행렬에 참여하도록 하여 오류를 최대한 줄이고자 하였다. 친영 행렬의 구성은 크게 선도 행렬, 어가 행렬, 왕비 행렬, 수행 행렬의 순으로 나눌 수 있다. 친영의 앞부분을 구성하는 선도행렬에는 왕을 상징하는 장엄하고 화려한 의장물들이 앞장서고, 그 뒤로 호위무사들이 수행하는 어가 행렬이 이어진다. 뒤이어 왕비 책봉에 관련된 교명문, 금보, 옥책, 명복 등을 실은 가마가 따르고, 이어 왕비의 가마와 이를 따르는 수행인물들이 이어진다. 후반부는 행차를 마무리하는 부분으로, 후미에서 행렬을 경호하는 인물들이 따른다. ‘친영’을 왕실 가례의 핵심 장면으로 중히 여겼기에 가례도감의궤 반차도는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맡아 그렸고, 귀한 천연 물감을 사용하여 오늘날까지 특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혼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복식과 가마의장기각종 기물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반차도를 통해 당시 혼례식의 생생한 현장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다.
세계기록유산 ‘의궤’의 기록으로 보는
조선 왕실의 혼례식 풍경들
조선 전기와 중기까지의 것으로 남아 있는 가례도감의궤는 없으며, 이 시기 왕실 결혼식의 모습은 단편적으로나마 초기 의례서인 『국조오례의』나 실록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현재 전하는 최초의 가례도감의궤는 1627년 소현세자와 강빈의 혼례식을 정리한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이며, 1906년에 있었던 순종과 순종 계비 순정황후의 혼례식을 정리한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가 가장 나중에 제작된 것이다. 280년간에 이뤄졌던 왕실 가례가 총 20건의 의궤로 정리된 셈이다. 본문에서는 남아 있는 20건의 가례도감의궤를 바탕으로 하여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대에 거행된 20건의 왕실 혼례식을 꼼꼼히 살펴본다. 연상연하 커플에서 51세의 나이차까지 가례 당시 왕과 왕비의 나이에서부터, 왕비의 간택 과정과 이를 둘러싼 당시의 정치상황, 육례가 치러진 왕실의 공간과 혼례식 규모의 변화, 의궤에 수록된 다양하고 구체적인 기록 내용, 반차도에 그려진 의장과 등장인물의 표현법, 수록 내용의 변화 및 특징 등 왕대별 결혼식의 전모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왕, 왕세자, 왕세손의 혼례식
왕실의 혼례식을 지위별로 살펴보려면 왕의 가례, 왕세자의 가례, 왕세손의 가례로 구분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왕실의 혼례가 대개 10대 초반에 이뤄지므로, 왕세자의 가례가 가장 보편적이었고, 정비의 사망 후 계비를 맞이하며 거행된 현직 왕의 결혼식이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영조의 이례적인 장수로 정조의 결혼식이 유일한 왕세손 결혼식이 되었다. 왕, 왕세자, 왕세손의 혼례식은 그 지위에 따라 규모와 격에 차이가 있었다. 책에서는 왕실 혼례가 정비되고 그 규모도 커지는 영조 대의 예와, 세자의 혼례식이 거행된 초기의 예를 살피는 데 유용한 소현세자의 예, 유일한 왕세손 결혼식이었던 정조의 예를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 『정조효의왕후가례청의궤』를 중심으로 보다 심도있게 살펴보았다. 시대 흐름에 따른 의궤의 내용과 반차도 표현 양식 등의 변화, 왕왕세자왕세손의 결혼식 규모의 차이가 주목된다. 왕과 왕세자의 결혼식을 담당한 관청이 ‘가례도감’이었던 데 비해, 왕세손 정조의 결혼식을 주관한 관청은 그보다 격이 낮은 ‘가례청’이었던 것도 흥미롭다. 특히 정조의 왕세손 시절 결혼식은, 사치 방지를 강조했던 영조가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여하여 특별히 간소하게 치러졌다.
혼례식에 사용된 복식과 의장물,
꼼꼼히 살펴보기
가례도감의궤를 좀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혼례식을 준비하고 행하는 날짜별 주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행사를 맡은 관청별직책별 소임과 역할도 상세히 적었다. 또한 품목질부분에는(본문 175쪽) 혼인에 사용된 요강, 대야, 우산, 사발 등 사소한 물품의 목록과 개수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혼례에 소요되는 물품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혼례의식의 화려함과 장엄함을 극대화시켜 주는 친영행렬의 의장과 행사 참여 인물들의 의상이 아닐 수 없다. 본문에서는 왕과 왕비의 행차를 상징하고 보위하는 각종의 화려한 의장물들과, 왕비 책봉과 관련된 물품을 실은 가마 등 의장물을 의궤 도설과 반차도의 디테일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혼례식의 각 절차에서 혼례식 주인공인 왕왕비, 또는 왕세자왕세자빈이 입었던 의상과 행사 참여자들의 복식은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기록화, 근대 황실의 유물들, 문헌 속에 남아 있는 구체적인 복식 관련 기록들을 총합하여, 다채롭고 생생하게 재현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