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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모타운 뮤지컬음악 (Motown The Musical OST)

Martha Reeves, Mary Wells, Marvin Gaye, Stevie Wonder, Jacksons 노래 외 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Motown | 2019년 12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9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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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타운 뮤지컬음악 (Motown The Musical OST)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12월 26일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디스크

Disc
  • 01 The Temptations - Get ready (Album Version)
  • 02 Martha Reeves - Dancing In The Street (Single Version/Stereo)
  • 03 The Miracles - Shop Around (Stereo Version)
  • 04 The Marvelettes - Please Mr. Postman (Single Version)
  • 05 Mary Wells - My guy (Single Version)
  • 06 The Supremes - Where Did Our Love Go? (Stereo)
  • 07 Marvin Gaye -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Album Version/Stereo)
  • 08 Marvin Gaye - What's going on (Album Version)
  • 09 Stevie Wonder - For Once In My Life (Album Version)
  • 10 The Jacksons (aka Jackson 5) - I Want You Back (Single Version)
  • 11 The Temptations - My Girl
  • 12 Marvin Gaye & Tammi Terrell - You're All I Need To Get By
  • 13 Lionel Richie - All Night Long (All Night) (Album Version)
  • 14 Diana Ross -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Single Version/Long)

아티스트 소개 (11명)

알앤비 가수 알앤비 가수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두 그의 보컬에 영향받았음을 인정하며 그의 음악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지 탁월한 창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록음악 역사에 있어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아티스트의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한 음악인이라는 점에서 그를 더욱 기억하게 한다. 70년대가 되기 전 만해도 밤낮으로 사랑과 낭만만을 얘기하며 소일하던 모타운식 소울 음악은 당시 대다수 흑인들이 공감해오던 ‘어두운 현실’엔 둔감했다. ‘팔리는 음악’을 원했던 회사측과의 마찰은 불가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을 위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산고 끝에 록 역사를 대표하는 명반 < What’s going on >(1971)은 탄생했다 소울 음악은 60년대 그가 소속되어있던 모타운 레코드사를 통해 보다 대중적인 음악 문법으로 자리 잡은데 이어, 그는 같은 회사 소속의 스티비 원더와 함께 미국 대도시 후미진 곳에서 벌어지는 ‘게토 리얼리티를’ 자신의 노래에 담아냄으로써 소울이 ‘사회성’이란 화두를 본격적으로 끌어내는데 기여를 했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그는 소위 후배 흑인 뮤지션들의 ‘대부’이다. 8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분수령을 일군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론트 맨 척 디(Chuck D)는 1988년도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을 발표하며 롤링스톤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는 이번 앨범에서 힙합의 < What’s going on > 버전을 내놓고 싶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마빈 게이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인정했다. 마빈 펜츠 게이 주니어라는 본명으로 1939년 4월 2일 워싱턴 디씨에서 태어난 그는 목사를 아버지로 둔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다소 억압적인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하게 해 아버지 때문에 억눌린 영혼을 달래줄 위안이 된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에 입대,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는 락 앤 롤 스타 보 디들리(Bo Didely)를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된다. 1958년 두왑 그룹인 레인보우에 가입, 이듬해엔 시카고로 진출해 ‘문 그로우’ 라는 두왑밴드에서 활동하며 체스(Chess) 레코드에서 그의 ct첫 싱글 ‘Mama roocie’를 녹음한다. 미국 전역 투어에 나선 문 그로우는 디트로이트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당시 그의 연주를 지켜보던 모타운의 설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는 3옥타브가 넘는 그의 탁월한 테너 창법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61년 모타운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베리 고디와 운명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처음엔 세션 드러머로서 모타운의 일원이 된 그는 모타운 간판스타이자 작곡가인 스모키 로빈슨과 함께 활동한다. 1961년 그는 사장인 베리 고디의 누이인 안나와 결혼한다(무려 18살의 연상). 사장과 사돈관계가 된 덕에 회사측에 전폭적인 지원을 얻게 된 그는 이듬해 첫 싱글 ‘Stubborn kind of fellow’(1962)를 발표하고 흥겨운 댄스 팝 ’Hitch hike’(1962)로 빌보드 Top 40에 진입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크루닝 창법에 영향 받았던 그는 당시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원했지만, 회사 측은 그에게 흥겹게 흔들기 좋은 빠른 댄스 음악만을 요구했다. 큰 키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덕에 유난히 여성 팬들이 많이 따랐던 그였지만, 무대에 올라 몸을 흔들며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것은 늘 못 마땅했다. 후에 그가 회고하길 ‘나는 무대에 나가 청중들 앞에서 내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했을 정도이니, 얼마 후 있을 회사 측과 창작권을 두고 생긴 갈등은 이미 데뷔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1960년대 내내 그는 모타운 사를 통해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했다. ‘Pride & joy’(1963)로 처음 Top 10에 진출한 그는 잇달아 발표한 싱글 ’How sweet it is’(1964), ‘Aint that peculiar’(1965)을 Top 10에 진입시킨다. 솔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갈 무렵 그는 모타운 소속의 실력 있는 디바들과 듀엣 곡을 많이 취입했는데, 메리 웰즈(Mary Wells)과 함께 한 ’What’s the matter with you baby’(1964)을 시작으로, 킴 웨스튼(Kim Weston)과 함께 한 ’It takes two’(1966), 70년대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와 함께 한 ‘My mistake is to love you’(1974)등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와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디바는 바로 타미 테렐(Tammi Terell)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66), ’Your precious love’(1967),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1968), ’You’re all I need to get by’(1968) 모두 Top 10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콤비’는 안타깝게도 타미 테렐의 요절로 인해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에게 첫 팝 차트 넘버원의 영광을 안겨준 ‘I heard it through grapevine’(1968)로 그의 인기전선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듬해 ’Too busy thinking about my baby’(1969), ’That’s the way love is’(1969)를 Top 10에 진입시키며 인기는 더해갔지만, 이내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데뷔 때부터 창작권을 두고 벌어진 회사 측과의 끈질긴 줄다리기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그에게 투쟁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달콤한 사랑타령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표출해보길 갈망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얻기 위한 힘겨운 투쟁 끝에 결국 모타운 사의 백기를 받아내며 ‘음반 제작에 관한 모든 전권을 그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전리품을 얻어낸다. 흑인의 입장에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의 비참한 현실을 늘 생각해왔던 그는 주저 없이 이런 자신의 고민을 음악 속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다. 흑인 빈곤문제, 실업, 월남전등, 70년대 초 그의 눈에 보인 흑인의 현실은 ‘참담함’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노래했던 발랄한 60년대의 흑인 음악은 슬라이&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등 기라성같은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한층 진지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1971)이었다. 흑인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놓은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은 회사 측에 우려에도 불구, 앨범 수록 곡 중 무려 4곡(What’s going on, God is love,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이 Top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앨범은 지금까지 8백만장이라는, 당시로선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스트링을 동원한 세련된 연주 편곡, 참회록을 쓰듯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진행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은 당시 소울음악에선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앨범 < What’s going on >은 그의 음악 경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성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Inner city blues’(1971)에서 목격했던 퍼커션의 가열 찬 울림은 70년대 흑인 음악의 대표 트렌드인 ‘펑키 사운드’로의 변화를 예고했고, 앨범으로는 발표 안 된 저주받은 싱글 ‘You ’re the man pt. 1, 2’(1972)에선 가성, 두성, 진성 등 한층 다채로워진 그의 보컬 연기가 압권이다. 재즈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영화 음악 작곡으로도 이어져 노래보다 연주 쪽에 관심이 반영된 영화음악 앨범 < Trouble man >(1972)으로 이어진다. < What’s going on >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이전의 고뇌하는 흑인 지성임을 포기하고 이번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사랑의 전령사로 변신한다. 그의 두 번째 넘버원을 안겨다 준 앨범< Let’s get it on >(1973)은 ‘성 행위’를 찬미하는 노래들로 가득 찬 앨범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게 했다. 빌보드 No.1 곡인 ‘Let’s get it on’은 그를 단번에 섹시 스타로 변모시켰고, 그가 앨범에서 얘기했던 ’자연스러운 성의 표현 ‘은 80년대 들어 프린스나 조지 마이클같은 팝 스타들의 음악 세계로 계승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첫 아내였던 안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재니스라는 여인과 이미 두 집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았던 그의 성적 편력은 결국 아내와의 별거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충격에 슬럼프에 빠져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재기의 몸부림을 친 그는 베리 고디의 주선으로 만난 레온 웨어(Leon Ware)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 < I want you >(1976)을 발표하지만, 수록곡 ‘I want you’, ’After the dance’가 약간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히트곡에 목말라하던 그는 1977년 런던 팔라디움 구장에서의 콘서트 더블 실황 앨범< Live at the Palladium >을 발표하며, 13분이 넘는 디스코 곡 ‘Got to give up’을 수록하고, 4분대의 싱글로도 커팅, 그의 세 번째 넘버 원 싱글로 등극된다.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던 ’Got to give up’은 팝 차트, 앨 앤 비 차트 1위를 석권하며 그에게 가수로서 회생의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Got to give up’의 기쁨도 잠시, 결국 그는 안나와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에 대한 위자료를 다음에 발표하는 앨범 인세로 한다는 합의를 보게 된다. 앨범 < Here, my dear >(1978)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고 수록 곡 ’When did you stop loving me, When did I stop loving you’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남과 해어짐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그의 뼈저린 고해성사는 아름다운 가사말과 편곡의 세련됨에도 불구, 이렇다할 히트 싱글 없이 앨범은 파묻히며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안 알려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안나는 앨범 내용이 사생활 침해라며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에 이어 다시 몇 년간은 그에게 혼란의 시기였다. 두 번째 아내였던 제니스와 급기야 파경에 이르렀고, < Love Man >(1979-발매 취소)과 < In our life time >(1981)의 흥행실패는 그를 더욱 마약으로 치닫게 했다. 급기야 그는 1981년 20년간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게 했던 모타운 사를 떠나, 하와이로 이주,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 정확히 1년 후인 1982년, CBS 레코드와 전속 계약하며 그에겐 마지막 걸작으로 남게 된 < Midnight Love >(1982)를 발표한다. ‘Let’s get it on’에 버금갈만한 농염한 보컬이 인상적인 싱글 ‘Sexual healing’이 팝 차트 3위까지 오르며 그는 화려하게 재기한다. 공백기 동안대중들과의 소원함을 해소하기 위해 TV 출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그는 베리 고디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둘의 악연(?)을 만회해보려고도 했고, NBA 농구 경기때 미국 국가를 소울 창법으로 불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에서 연주했을 때 이후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재기 의지는 이내 사그러들고 있었다. 이미 코케인에 찌들 때로 찌든 그의 몸은 말을 듣질 않았고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던 목사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극은 그의 아버지와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고, 1984년 4월, 그의 45회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심한 다툼 끝에 화를 가누지 못한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듬해인 1985년 모타운사와 CBS가 공동으로 그의 미 발표곡을 모은 < Dream of a life time >과 < Romantically Yours >를 내놓는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히 이뤄져 < 롤링스톤 >을 비롯한 록 전문지들은 앞 다투어 그의 앨범 < What’s going on >을 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추대하기 시작했고,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등재된다.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롯, 앨범 녹음시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서 다 연주해 낼 정도의 다재(多才)를 유감 없이 발휘한 그는 도무지 시각 장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독창성을 자신에 음악에 담아낸다. 또한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함께 1970년대 미국 사회 내 흑인들의 비참한 삶과 애환을 표현한 ’게토 리얼리티’를 얘기한 음악인으로 기억되면서 흑인 인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이끌었던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노래를 통해 스티비 원더는 지금껏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선 절대불변의 숭고한 가치인 ’사랑의 전도사’임을 전 세계에 알려왔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이런 그의 행적은 전 세계 음악인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으로 그를 기억하게 했다. 1950년 5월 13일 스티브 랜드 모리슨(Steveland Morrison)이라는 본명으로 미국 미조리주 출신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의 과잉 산소 공급 사고로 맹인이 되었다. 디트로이트로 이주해 소년기를 보낸 그는 일찍부터 음악적으로 재능을 드러내 10살이 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악기를 스스로 터득하는 천재성을 보인다. 1962년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베리 고디(Berry Gordy Jr.)가 이끄는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한다. 리틀 스티비 원더(Little Stevie Wonder)라는 아름으로 발표한 그의 첫 싱글인 라이브 버전 ’Fingerprints-part 2’(1963)가 발표 즉시 차트 1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한다. 1965년부터 이후 6년 간 ’Uptight’(1966), ’I was made to love her’(1967), ’For once in my life’(1969), ’My cherie amour’(1969), ’Yester-me, yester-you, yesterday’(1969), ’Signed, sealed, delivered’(1970)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그는 명실상부한 모타운 대표 인기스타로 떠오른다. 21살이 되던 1971년 모타운 측과 재계약을 앞두고는 ’앨범 제작에 관한 모든 통솔권을 자신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당시까지 철저한 ’스타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모타운 사의 입장에선 매우 부담스러웠던 요구를 그는 끝내 관철시키며 셀프 프로듀싱으로 제작한 첫 앨범 < When I’m Coming From >(1971)을 발표한다. 이듬해인 1972년 < Music of my Mind: 앨범 차트 21위 >를 시작으로 같은 해 가을 발표된 명반 < Talking Book:앨범 차트 3위 >(1972)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앨범 모든 수록 곡의 작곡은 물론 연주와 프로듀싱을 혼자서 해낸다. 또한 이 앨범은 A면의 첫 곡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B면의 첫 곡 ’Superstition’을 모두 싱글차트 1위에 등극하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한다. 1972년 같은 해 발표된 두 장의 앨범을 통해 그는 기존 3분대의 모타운 식 히트 곡의 틀을 벗어나 ’Super woman’, ’Maybe your baby’와 같은 6-7분대의 대곡을 과감히 수록했고, 재 계약을 통해 받은 계약금으로 클라비넷, OBX, ARP, 폴리포닉, 무그와 같은 다양한 신시사이저 장비들을 도입, 사운드의 혁신을 일궈낸다. 이듬해 발표한 < Innervisions >(1973)는 그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여준 명반으로 흑인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Living in the city’와 재즈적인 접근을 강하게 드러낸 ’Too High’, ’Superstition’에 버금가는 펑키한 넘버 ’Higher Ground’, 절대자인 신에게 헌정하는 가스펠 곡 ’He’s Misstra know it all’을 담은 수작이었다. 전작에 이어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 Innervisions >는 이듬해인 1974년 그래미 상 ’올해의 앨범’ 부문을 비롯, 4개 부문을 휩쓰는 쾌거를 올린다. 1974년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당하며 잠시 활동의 위기를 맞은 그는 이에 아랑곳없이 < Fulfillingness’ First Finale >(1974)를 발표하며 ’You Haven’t done nothing’, ’Boogie on Reggae woman’을 각각 팝 차트와 R&B 차트 1위에 올리며 앨범은 1975년 다시 한번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 5개 부문을 석권한다.(올해의 앨범상을 연속으로 수상한 건 스티비 원더가 처음이었다.) 1975년 모타운 사와 1천 3백만 불의 재계약을 한(당시 팝 음악계에선 최고의 액수) 그는 2년여의 준비 끝에 더블 앨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을 발표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히트곡이 쏟아진 앨범에서 ’Sir Duke’, ’I Wish’가 팝 차트 1위에 오르고, 팝 가수 조지 마이클이 1998년에 리메이크 하기도 한 7분이 넘는 대곡 ’As’(36위)와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코러스와 재즈 플롯주자 바비 험프리(Bobby Humphrey)가 참여한 라틴 팝 ’Another star’(32위) 역시 좋은 반응을 얻는다. < Songs on the key of life >는 이듬해 1977년 다시 그에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다 준다. 70년대 말, 스티비 원더는 흑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음악 외에도 흑인의 권익신장 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그는 4년여의 공백 끝에 발표한 < Hotter than July >(1980)의 수록곡 ’Happy Birthday’를 통해 이런 그의 노력을 전 세계에 알린다.(결국 198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정된다) 앨범에선 이 외에 레게의 시인 밥 말리(Bob marley)에게 헌정하는 레게 넘버 ’Master Blaster(jammin’)’와 지금껏 애청되는 그의 러브 발라드 ’Lately’를 차트에 진입시키는(각각 5위, 64위) 성과를 거둔다. 영화 음악 작곡에도 열심이었던 스티비 원더는 <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 >(1979)를 시작으로, 그에게 오스카 주제가 상을 안겨준 영화 < Woman in Red >(1984)의 테마 곡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팝 차트 1위에 올리며 전 세계를 스티비 원더 열풍 속으로 다시 한번 몰아넣는다. 그의 영화 음악 작업은 < Jungle Fever >(1991), < The adventure of Pinocchio >로 계속된다. 1983년엔 폴 메카트니와 함께 한 듀엣 곡 ’Ebony & Ivory’로, 1985년 ’Part time Lover’로 다시 팝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 Character >(1987)이후 8년이라는 긴 공백기에 들어간 그는 < Conversation Peace >(1995)로 다시 팝 무대에 복귀한다. 90년대 활동은 비록 예전만큼의 날카로운 창조력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팝 음악인들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다시는 그 누구도 재현 못할 ’팝 음악의 대가’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린다.
노래 : Diana Ross (다이애나 로스)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는 록 역사에서 그룹 멤버와 솔로 아티스트로서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성 가수다. 그녀가 리더로 있던 3인조 슈프림스(Supremes)는 1961년부터 1969년 해산할 때까지 12곡의 1위 곡과 10곡의 탑 텐 싱글을 배출하면서 여성 보컬 그룹의 스타일을 규정지었고, 1969년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으로 다시 6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포함한 26곡을 탑...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는 록 역사에서 그룹 멤버와 솔로 아티스트로서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성 가수다. 그녀가 리더로 있던 3인조 슈프림스(Supremes)는 1961년부터 1969년 해산할 때까지 12곡의 1위 곡과 10곡의 탑 텐 싱글을 배출하면서 여성 보컬 그룹의 스타일을 규정지었고, 1969년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으로 다시 6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포함한 26곡을 탑 40에 진입시키면서 그녀는 화려한 날개를 달고 높이 비상(飛上)했다. 이모션스(Emotions), 제이드(Jade), 티엘시(TLC),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등 거의 모든 여성 보컬 그룹은 다이아나 로스가 ’짱’으로 있던 슈프림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그 벽을 넘어야 비로소 여성 보컬 그룹의 1인자로 공인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겐 훌륭한 스승이자 좋은 선배의 본보기였다.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 우상이 바로 다이아나 로스였으며 그녀를 닮길 원해 성형 수술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1987도 앨범 < Bad >에 수록된 ’Dirty Diana’가 싱글로 커트 되었을 때 많은 호사가들은 잭슨의 로스에 대한 애정(愛情)이 애증(愛憎)으로 바뀌었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1960년대 흑인 음악의 공장 모타운 레코드의 주력 상품이었던 슈프림스의 리드 보컬로 있으면서 모타운의 사장 베리 고디와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했던 다이아나 로스는 뛰어난 외모와 치밀하게 아름다운 가창력, 그리고 세련된 매너로 그룹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그녀의 이 스타 기질과 베리 고디의 아낌없는 서포트에 힘입어 다이아나 로스가 1969년 독립 활동을 발표하자 걸 그룹의 최고봉 슈프림스는 해산한다. ’Reach out and touch(20위)’, ’Remember me(16위)’, ’Surrender(38위)’, 그리고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태미 테럴(Tammi Terrell)이 함께 불러 1967년에 19위를 기록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를 리메이크해 싱글 차트를 3주간 정복한 다이아나 로스는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했다. 이 노래들은 1984년 ’Solid(12위)’란 히트곡을 낸 부부듀엣 애쉬포드 & 심슨(Ashford & Simpson)이 수혈한 작품들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엔터테이너적 재능은 단지 무대 위에서만 한정되지 않았고 스크린에서도 그 끼를 발산했다. 전설적인 재즈 싱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 >에서 빌리 홀리데이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이루었고, 이후 < 마호가니 >와 < 더 위즈 > 등의 영화를 비롯해 TV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어 가볍지 않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흑인 디바 다이아나 로스는 1970년대를 통해 ’Touch me in the morning(1973년 1주간 1위)’, 마빈 게이와 호흡을 맞춘 ’You’re a special part of me(12위)’, ’Last time I saw him(14위)’, 국내에서도 애청된 ’Do you know where you’re going to(1976년 1주간 1위)’, 디스코 스타일의 ’Love hangover(1976년 2주간 1위)’ 같은 대형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팝 역사에 ’다이아나 로스’라는 이름의 철도를 가설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디스코 성향의 곡들을 취입했는데 바로 그 상업적 음반의 결정판이 디스코가 사향 길에 접어들고 새로운 물결인 뉴웨이브가 도래하던 1980년에 공개한 < Diana >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스코 밴드로 꼽히는 쉭(Chic)의 사령관이던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버나드 에드워즈(Bernard Edwards) 콤비가 전 곡의 작곡과 제작을 전담한 이 작품에서는 신해철이 한때 열광했다는 ’Upside down’이 그녀에게 다섯 번째 넘버원의 영광을 선사했고, 두 번째 싱글 ’I’m coming out’은 5위를 기록했다. 이 ’I’m coming out’은 1997년 노토리어스 B.I.G.(Notorious B.I.G.)의 두 번째 1위 곡인 ’Mo money mo problems’에 샘플링 되어 재조명되었다. 1980년에는 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Douglas) 주연의 영화 주제가 ’It’s my turn(9위)’과 1981년에는 코모도스(Commodores) 출신의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함께 영화 < 끝없는 사랑 >의 사랑의 테마 ’Endless love’로 빌보드 싱글 차트를 9주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영화 음악으로도 쉼 없는 인기 행진을 이어갔다. 1994년에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가 다시 불렀지만 원곡의 부드러움과 원숙함에는 미치지 못했다(1994년 2위). 이렇듯 1980년대 초반 이 흑진주의 인기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56년 6위를 기록했던 프랭키 라이몬 & 더 틴에이저(Frankie Lymon & The Teenager)의 ’Who do fools fall in love’를 커버해 7위에 랭크시켰고 ’Mirror Mirror’는 8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Muscles(10위)’ 등으로 인기 차트를 융단폭격 하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과 함께 1980년대 초반 흑과 백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섰다. 1984년에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의 영어 앨범 < 1100 Bel Air Place >에 수록된 발라드 ’All of you(19위)’를 위해 입을 맞추었으며 같은 해 가을에 공개된 자신의 독집 음반 < Swept Away >에서는 록적인 타이틀 트랙(19위)과 ’Missing you(10위)’가 사랑 받았다. ’Missing you’는 1984년 4월 1일 아버지의 손에 의해 비극적으로 사망한 친구이자 음악 동료인 마빈 게이를 추모하는 곡으로 라이오넬 리치로부터 받은 명곡이었다. 이 곡은 현재까지 그녀의 마지막 탑 텐 히트 싱글로 남아있다. 1990년대에도 꾸준한 레코딩 활동과 검증된 연기력을 바탕으로 여러 TV 영화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다이아나 로스는 2001년 여행 차 방문한 유럽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리는 망신을 당해 타블로이드 신문을 크게 장식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베리 고디에 의해 움직이는 바비 인형처럼 체제에 순응하는 가수로 인식되었고 그 당시 슈프림스는 새로운 음악 트렌드를 창조하면서 그 유행을 좇았다. 한편에선 소울이 등장해 흑인 형제자매들의 자긍심을 표현했지만 슈프림스는 그 현실을 외면한 채 침묵의 악보에 그려진 음표에 의한 사랑타령으로 엄청난 부와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백인들로부터도 거부감 없는 ’엉클 톰’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당대 최고의 여가수인 다이아나 로스에게 쉽게 아물지 않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흑진주가 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 인생이 현대 흑인 음악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자신에게 밀려오는 음악적인 고독과 인간적인 자괴감을 잊을 수 있었다.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만큼 울려 퍼지듯 대중 음악의 내력에서 다이아나 로스의 이름도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굵고 선명하게 남아있다.
노래 : Tammi Terrell (타미 테렐 (보컬))
리듬앤블루스, 소울 보컬 그룹 리듬앤블루스, 소울 보컬 그룹
굴지의 흑인음악 전문음반사 ‘모타운의 상표’가 된 여성 트리오 보컬그룹. 1964년 ‘Where did out love go’를 필두로 발표한 다섯 곡이 내리 전미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1969년까지 넘버원 곡만 12곡을 쏟아내는 가공할 슈퍼스타덤을 과시했다. 1944년 디트로이트 태생인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를 축으로 매리 윌슨(Mary Wilson), 플로렌스 발라드(Florence Ballar... 굴지의 흑인음악 전문음반사 ‘모타운의 상표’가 된 여성 트리오 보컬그룹. 1964년 ‘Where did out love go’를 필두로 발표한 다섯 곡이 내리 전미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1969년까지 넘버원 곡만 12곡을 쏟아내는 가공할 슈퍼스타덤을 과시했다. 1944년 디트로이트 태생인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를 축으로 매리 윌슨(Mary Wilson), 플로렌스 발라드(Florence Ballard)와 함께 그룹이 결성되어 1959년부터 노래했다. 이듬해 1960년 모타운의 탐라 레이블과 계약해 처음에는 전문 백업보컬 팀으로 움직였다. 곧 섹시한 다이아나 로스의 투명한 음색을 전매특허로 시대를 석권했다. 그녀는 1970년부터 개시한 솔로활동을 통해서도 슈프림스 시절에 버금가는 히트퍼레이드를 전개했다. 우리에겐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호흡을 고른 1981년 듀엣 곡 ‘Endless love’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고장 팝 팬들은 여전히 1960년대 슈프림스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Come see about me’, ‘Stop! In the name of love’, ‘Love child’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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