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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7080 DJ가 추천하는 명동의 음악다방 U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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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관련

[USB] 7080 DJ가 추천하는 명동의 음악다방 USB

본 상품은 CD가 아니며,USB 입니다.

오준영 작곡/김원중, 해오라기, 한마음, 버들피리 노래 외 1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서울미디어 (음반) / 서울미디어 (음반) | 2019년 10월 1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0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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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7080 DJ가 추천하는 명동의 음악다방 USB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10월 10일
시간, 무게, 크기 22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제품소개

디스크

USB
  • 01 바위섬 - 김원중
  • 02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 해오라기
  • 03 가슴앓이 - 하남음
  • 04 눈이 큰 아이 - 버들피리
  • 04 휘파람을 부세요 - 이장희
  • 05 진달래 - 하덕규
  • 06 겨울아이 - 버들피리
  • 07 불씨 - 신형원
  • 08 빗물 - 채은옥
  • 09 님 그림자 - 노사연
  • 10 그저 바라 볼 수만 있어도 - 유익종
  • 11 비와 찻잔 사이 - 배따라기
  • 12 나 어떡해 - 샌드페블즈
  • 13 고래사냥 - 송창식
  • 14 찔레꽃 - 이연실
  • 15 그건 너 - 이장희
  • 16 그대로 그렇게 - 열기들
  • 17 잃어버린 우산 - 우순실
  • 18 꿈을 꾼 후에 - 여진
  • 19 백지로 보낸 편지 - 김태정
  • 20 그날 - 김연숙
  • 21 찻잔 - 노고지리
  • 22 연인들의 이야기 - 임수정
  • 23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 이명훈
  • 24 시인의 마을 - 정태춘
  • 25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최백호
  • 26 오늘같은 밤 - 이광조
  • 27 옛 시인의 노래 - 한경애
  • 28 사랑이여 - 유심초
  • 29 내 마음의 보석 상자 - 해바라기
  • 30 진정 난 몰랐네 - 임희숙
  • 31 내가 찾는 아이 - 최성원
  • 32 사랑의 눈동자 - 유익종
  • 33 그리움만 쌓이네 - 여진
  • 34 우리들의 이야기 - 윤형주
  • 35 피리 부는 사나이 - 송창식
  • 36 당신을 처음 본 순간 - 이장희
  • 37 제비꽃 - 조동진
  • 38 촛불 - 정태춘
  • 39 한동안 뜸 했었지 - 사랑과 평화
  • 40 행복을 주는 사람 - 해바라기
  • 41 사랑하고 싶소 - 정태춘
  • 42 바람아 멈추어 다오 - 이지연
  • 43 편지 - 이장희
  • 44 한잔의 추억 - 이장희
  • 45 사랑의 노래 - 오준영
  • 46 골목길 - 엄인호
  • 47 내가 말했잖아 - 로커스트
  • 48 왜 불러 - 송창식
  • 49 삼포로 가는 길 - 강은철
  • 50 어서 말을 해 - 해바라기
  • 51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 하수영
  • 52 노래하며 춤추며 - 계은숙
  • 53 내일이면 간다네 - 지다연
  • 55 제 연인의 이름은 - 이재민
  • 56 여고 졸업반 - 김인숙
  • 57 너 너 너 - 장계현
  • 58 난 사랑을 아직 몰라 - 이지연
  • 59 잊혀진 사람 - 이장희
  • 60 행복의 나라로 - 한대수

아티스트 소개 (19명)

멤버 : 양하영, 강영철 멤버 : 양하영, 강영철
멤버 : 박장순, 이연원 멤버 : 박장순, 이연원
TV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줄곧 포크 계열의 음악으로 사회성 짙은 노래만을 불러 온 신형원은 1970년대 중반 통기타 음악의 전성시대를 연 < 쉘부르 >라는 라이브 전문 업소에서 이문세, 전영, 남궁옥분 등과 통기타 2세대로 음악을 시작했다.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 < 웃기는 노래 웃기지 않는 노래 >에 한돌의 곡인 ‘불씨’, ‘유리벽’ 등을 부르면서 ‘얼굴 없는 가수’라는 타이틀을 항상 달고 다니며 ... TV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줄곧 포크 계열의 음악으로 사회성 짙은 노래만을 불러 온 신형원은 1970년대 중반 통기타 음악의 전성시대를 연 < 쉘부르 >라는 라이브 전문 업소에서 이문세, 전영, 남궁옥분 등과 통기타 2세대로 음악을 시작했다.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 < 웃기는 노래 웃기지 않는 노래 >에 한돌의 곡인 ‘불씨’, ‘유리벽’ 등을 부르면서 ‘얼굴 없는 가수’라는 타이틀을 항상 달고 다니며 인기를 얻은 그녀는 이후 한돌의 곡만을 부르며 그의 페르소나로 인기의 틀을 넓혀간다. TV 브라운관에 얼굴을 노출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대학가의 1순위였으며 민중 가요가 대학 진영의 것으로 완전히 넘어가던 시절까지 사랑 중심의 주류적 언술보다는 삶의 단초적 자락을 어루만지는 노래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외 사랑’, ‘사람들’, ‘예기치 않은 바람’이 들어 있는 1집보다는 ‘개똥벌레’, ‘터’가 수록된 2집으로 가파른 인기의 상승 곡선을 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의 우화를 그려낸 ‘개똥벌레’는 차트의 높은 순위를 차지했으며 민주화의 열망에 달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터’는 서민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컬러TV의 완전 보급과 화려한 이미지를 동반한 가수들의 대거 출연은 포크 진영의 음악을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의 인기는 지금 댄스 가수들의 인기 못지 않았으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사로잡으면서 주류를 장악했다. 신형원의 이 후 앨범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으며 1980년대 음악들을 다시 한번 뒤집은 1990년대의 변혁이 오고 나서는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1990년에 강인원을 중심으로 만든 앨범 < 비오는 날 수채화 >로 잠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메인 타이틀을 같이 부르지는 않았지만 앨범에 수록된 ‘커피 향 가득한 거리’라는 곡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앨범의 판매고에 높은 기여를 했다. 그녀는 통기타 무대가 디스코 세대에 의해, 포크 진영의 음악이 TV 브라운관에 의해, 그리고 모든 음악의 교체를 이루어낸 1990년대 신경향까지 모두 지켜본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녀는 커다란 스캔들 없이 조용히 20년이 넘도록 가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히 단독으로, 혹은 연합으로 공연을 벌이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사람이나 의식적으로 참여를 요구하는 노래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녀의 6집 타이틀곡인 ‘서울에서 평양까지’는1980년대 학생 운동의 걸작을 리메이크 한 곡으로 택시기사의 입을 통해 통일의 당위성을 노래한 곡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우리 모두를 힘나게 한다. 신형원은 1997년 ‘견딜 만큼 아픔을 주시는 이’란 곡으로 CCM 음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 신형원의 가요산책 >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애청자들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포크 음악인들이 모인 자리 어디에서든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력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노사연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곡은 그녀의 이모인 가수 현미의 소개로 만난 작곡자가 만들어 준 곡으로, 한의 정서가 우리 고유의 언어로 표현된 멋있는 곡이었다. 이 대회에선 송골매의 전신인 활주로의 ‘탈춤’, 임백천과 고영선의 ‘한마음’ 등이 입상을 했으며 입상은 못했지만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으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노사연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곡은 그녀의 이모인 가수 현미의 소개로 만난 작곡자가 만들어 준 곡으로, 한의 정서가 우리 고유의 언어로 표현된 멋있는 곡이었다. 이 대회에선 송골매의 전신인 활주로의 ‘탈춤’, 임백천과 고영선의 ‘한마음’ 등이 입상을 했으며 입상은 못했지만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으로 후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이광조, 이문세, 해바라기 등과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1983년 ‘돌고 돌아가는 길’의 작곡가 김욱에게 ‘님 그림자’란 곡을 받는다. 뛰어난 서정성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 곡은 대학가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눈에 띄지 않게 꾸준한 사랑을 쌓아간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 영11 >에 나와 개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수로서보다는 개그맨으로서의 위상으로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리던 노사연은 1987년 ‘우리에겐’이라는 곡이 들어 있는 앨범을 내 놓는다. 개그맨의 이미지를 벗고 가수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히기 위해 내 놓은 이 앨범은 그러나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시키는데 그쳤을 뿐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2년 후에 내놓은 2집도 처음에는 아무런 시장성도 발휘하지 못한다. 계속 오락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오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그녀는 TV 오락 프로그램인 <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에 고정 게스트로 나가면서 시청자들의 눈에 띄게 된다.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진행자인 주병진, 이경규 등을 최고의 스타로 부각시킨 이 프로그램에서 노사연은 2집의 수록곡 ‘만남’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러 결국 1991년 최고의 인기곡으로 만들고 만다. 2년이나 늦게 히트된 ‘만남’이란 곡으로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노사연은 연말 각종 시상식을 휩쓸면서 가수왕의 자리에 오르고 계속해서 3집의 수록곡 ‘이 마음 다시 여기에’로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로서 그녀는 ''90년대에 비 트로트계열의 성인 가요로 가요계의 정상을 밟은 유일무이한 가수가 되었으며 조선일보 선정 건국이후 가수베스트50에서 일약 40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남편 이무송과 결혼하기 전에 ‘사는게 뭔지’를 TV에서 불러 노래의 인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노사연은 현재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새 앨범을 발표하기 위해 체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6년만에 가수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사업거리를 구상한다. 1981년 해바라기 출신의 이주호와 지금은 녹음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성일 등과 유리박이란 그룹을 결성한 유익종은 이 팀의 와해와 동시에 이주호와 듀엣 해바라기를 출범시킨다. 해바라기의 1집에선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 이예요’ 등이 히트했지만 이주호와의 음악 차이를 느낀 그는 팀을 떠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사랑의 눈동자’를 히트시킨다. 하지만 그룹 활동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로 했던 해바라기 3집으로 다시 해바라기의 멤버로 오랜 활동을 한다. 이 앨범에서는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등이 크게 히트하고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도시의 밤 풍경’ 등이 라디오를 타면서 2년여간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된다. 아직도 이 시절의 인기는 그를 해바라기 시절의 멤버로 각인 시킨다. 해바라기 3집 발표 시에는 그의 솔로 2집 앨범이 일주일먼저 나오고 이주호의 앨범 등과 겹쳐 솔로 활동은 해보지도 못하고 접는다. 2집에서는 아직까지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87년 옴니버스 앨범에 유영건이 만든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를 수록해 주목을 받은 그는 1989년 미국의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으로 교민들의 인기를 모은 하광훈의 ‘이연’이 수록된 3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여진의 ‘그해 가을’, ‘가을에 떠난 사람’, ‘하나가 되어’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1년 ‘차창에 흐르는 이별’이 수록된 4집은 그가 처음으로 제작하고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앨범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외면을 받은 앨범으로 기억된다. 후에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모아 발표한 < Worst > 앨범에서 이두헌이 만든 ‘저길 저편 저 차에 오르면’, 박강성의 ‘그대의 허상’ 왈츠 풍의 ‘그리움’ 등을 수록해 4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반추’가 수록된 5집을 발표한 유익종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는다. 앞으로 나올 3장의 기획 앨범 중 첫 번째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 3분의 1 > 앨범에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조용필의 ‘들꽃’, 최성수의 ‘해후’ 등을 불러 오랜 소원을 풀었다. 1998년에 발표한 6집에는 ‘그리운 얼굴’이 주목받으며 매스컴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따로또같이의 ‘나는 이 노래하리오’의 두 가지 버전을 수록해 자신의 스타일과 유행하는 현재의 음악 스타일을 비교하였다. 1999년 묻어만 두기엔 아까운 노래들로만 모은 < Worst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최근 미사리에서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며 7집을 구상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 가는 길》을 작사·작곡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이동기의 《춘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등을 작곡했다. 19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다.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등을 히트시켰다. 가족뮤지컬 《아빠... 고등학교 때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 가는 길》을 작사·작곡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이동기의 《춘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등을 작곡했다. 19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다.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등을 히트시켰다. 가족뮤지컬 《아빠와 크레파스》를 제작하면서 《꼬마 요리사》, 《내 친구 똥》, 《이를 닦는 슈퍼맨》, 《꼬마와 해바라기》, 《내 이름은 풀잎이에요》, 《밥 송(감사합니다 송)》, 《맛있는 우유 송》 등의 동요를 발표했다.
멤버 : 한철수, 한철호, 홍성삼 멤버 : 한철수, 한철호, 홍성삼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8년 발표한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사와 멜로디로 충격을 몰고 온 ‘한동안 뜸했었지’가 들어 있는 이 앨범은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전체를 휘감고 있는 가운데 레게풍의 ‘노래여 퍼져라’, 펑키한 재즈 감각의 농익은 연주를 선보인 ‘뭉게 구름’, 김명곤의 키보드가 춤을 추는 베토벤(Beethoven)의 ‘운명’ 등이 탄탄한 연주력과 호흡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내공이 되어 있는가를 오늘날 들어도 여실히 느끼게 해 주고 있다. 1978년을 온통 ‘한동안 뜸했었지’의 해로 만든 이들은 다음 해 또 한 장의 명반을 내놓으며 국내 그룹 중 최고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2집에 수록된 ‘장미’는 전작에 못지 않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딱 꼬집어 얘기 할 수 없어요’를 비롯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다시 한번 드림팀의 면모를 과시한다. 2집에서는 송홍섭이 이남이 대신에 들어 왔으며 1집의 ‘뭉게 구름’같이 ‘축제’, ‘솔바람’ 등의 창작곡과 ‘엘리제를 위하여’, ‘아베마리아’ 등과 같은 클래식 소품들을 연주곡으로 삽입해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이러한 시도는 펑키함 외에도 프로그레시브한 면과 재즈적인 측면을 강조한 그룹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그러나 음악적 견해차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드러머 김태홍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는 팀을 와해의 상태로 만들어 공백기를 조성한다. 이 기나긴 휴식기에는 몇몇의 새로운 멤버들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간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원영, 드러머 문영배 등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후에 국내 대중 음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자리잡는다. 한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몇몇 재즈 팀에서 활동하던 최이철은 사랑과 평화에서 했던 재즈록의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이남이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촉망받던 연주인들을 불러모아 10여 년만에 새 앨범을 내 놓는다. 이 앨범에서는 ‘울고싶어라’가 크게 히트하고 ‘겨울바다’, ‘노래는 숲에 흐르고’ 등과 같은 훌륭한 곡들로 이들이 실력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수 김세화가 리메이크 작품을 다시 내놓는 등 그 해를 강타했던 ‘울고싶어라’는 이남이의 개인적인 인기를 부풀려 놓음으로써 이남이의 솔로 독립만을 지원한 꼴이 되었다. 오뚜기 최이철은 다시 퓨전 재즈의 가능성을 이 땅에 심어준 봄여름가을겨울 출신의 빛과 소금 두 멤버를 영입해 두 팀의 공통점인 재즈적인 팀컬러를 확실히 구축한다. 이 작은 거장들이 합세한 4집 음반은 음반사의 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샴푸의 요정’이라는 히트곡을 내었으며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여 < 환태평양 록 오사카 음악제 >에 출전해 사물놀이와 양약을 섞은 ‘덩더쿵’이라는 곡으로 일본 관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는다. 이 환대로 < 경주 엑스포 >에서 펼쳐진 특별 무대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박성식과 장기호가 종교적인 이유로 팀을 떠나 빛과 소금이라는 팀을 결성하자, 최이철은 또 다른 라인업을 구상해야 했다. 과거에 팀에서 같이 잠깐 활동했던 이병일 , 이승수, 안정현 등의 뮤지션과 함께한 최이철은 ‘못 생겨도 좋아’가 실린 5집, ‘착각하지마’가 들어 있는 6집을 발표하며 댄스 음악의 한복판을 정면 돌파해 나갔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현재 이들은 그간 꾸준히 팀을 이끌어 오던 최이철이 팀을 떠나 개인 활동에 들어가고 나머지 멤버가 송기영과 이권희를 받아들여 사랑과 평화를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헌정 음반 >, 서구의 문화침탈에 대항한 <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까지 자신의 참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개혁의 기치를 빼어들었다. 그는 비록 김민기와 같이 시대적 요청의 화합물이 되거나 서태지와 같은 권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 파워맨은 아니었지만, 고군분투하여 따낸 사전검열제도폐지와 끔찍한 진실의 현장을 포착한 < 아! 대한민국 >, < 92년 장마, 종로에서 > 등으로 그 동안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소위 운동권의 저항가요들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대학이란 포장지로 감싼 운동권 가요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는 민중의 노래였으며 오랜 시간 다져진 글래디에이터의 자신에 찬 고백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들어서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이 농부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는 현악반에 다니면서 음악대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방황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도 선생님과의 이별은 그를 어두운 사춘기적 자화상 속에서 살게 했고, 재수와 함께 시작된 여러 번의 가출은 이 우울한 시인을 젊은 날의 불안한 군상들 속으로 인도했다.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결국 군대를 가야했다. 이미 학창시절에 곡을 쓸 줄 알았던 그는 이 시절에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와 같은 곡들을 만들었으며, 차근차근 모아두었던 곡들로 제대 후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에 의해 서라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78년 말에 발표한 첫 번째 음반은 엄청난 대중적인 파고를 일으키며 정태춘을 스타덤으로 인도했다. 비록 많은 가사들이 검열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그는 ‘시인의 마을’로 1979년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촛불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신인가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8년 만난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과 1980년 결혼식을 올린다. 불교적 색채를 드러낸 2집, 국악과 양악 편곡의 멋진 대비를 보여주는 3집의 실패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은 그는 부인 박은옥과 같이 하기 시작한 1984년의 앨범에서 ‘떠나가는 배’로 또 다시 스매시 히트를 터트린다.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스테디 리퀘스트곡을 남긴 이 음반은 포크적 색채를 버리고 스트링 세션 위주의 편곡으로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간 앨범이었다. 음악을 포기할 마음까지 먹었던 그는 이 음반의 성공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며 1985년 1월부터 시작된 < 정태춘.박은옥의 얘기 노래마당 >라는 공연을 벌였다. 자신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던 그는 TV를 배제한 활동을 계속했으며 ‘북한강에서’, ‘붕숭아’와 같은 곡으로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민주화 투쟁과 6.29 선언 등으로 변화한 국내의 분위기를 실감한 그는 검열을 의식해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을 모아 < 무진 새노래 >라는 타이틀로 내놓으며, 이 때부터 달라진 사회적인 시각과 국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엉켜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1988년부터는 <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라는 공연을 펼쳐 외세의 시각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 세대를 교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청계피복노조 지지공연을 시작으로 전교조 지지공연, 전노협 지지공연 등에 참석하거나 주도적으로 행사를 만들어 대중집회의 단골주자로 부상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만들어진 < 아, 대한민국 >이 1990년 발효된 새 음비법을 따른 공륜에 의해 거부당하자, 음반을 불법 복제 테이프로 만들어 발표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했으며1991년 1월 29일 <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 위원장을 맡아 반대 성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전검열제도 폐지와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해서 < 92 장마, 종로에서 >를 테이프로 제작해 배포했으며 이 앨범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는 사전 심의 조항 폐지 운동은 1995년 11월 7일 국회를 통과하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힘없던 시인의 승리는 이렇게 기나긴 길을 돌아서 찾아왔다. 그의 고생을 우리는 피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1998년 정태춘은 늘 함께 해온 부인 박은옥과 함께 20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함춘호, 조동익 등의 일급 세션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초창기 서정미의 단아해진 멜로디들을 들을 수 있으며 한 층 더 깊이가 새겨진 선동성을 읽을 수 있다. 포크 음악인들 위주의 중견 가수들과 함께 위성방송에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콘텐츠 회사 S.O.K를 설립한 그는 평생 넘어야 할 산처럼 버티고 있는 국악에 대중적인 접근을 꿈꾸며 지금도 대중 집회를 빠짐없이 순회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의 거울이다.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를 국악적 특색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음률에 실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이번 내레이션 진행은 그의 첫 영화작업으로, ‘블랙딜’ 기획안을 보고 한번에 흔쾌히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울림있는 내레이션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 진정성을 더했다.

Album
1978 《시인의 마을》
1980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1983 《떠나가는 배(이어도)》
1985 《북한강에서》
1988 《정태춘 박은옥 무진 새노래》
1993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5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
2002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2012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그 애와 나랑은’을 히트시킨 그는 ''73년 앨범에서 ‘그건 너’를 히트시키며 아이돌스타로 떠올랐다. 그룹 동방의 빛을 결성해 당시 리사이틀이란 이름으로 유행하던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절정의 인기를 과시했고, 1974년에는 영화 < 별들의 고향 > 음악을 작곡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전국적으로 히트시켰다. 하지만 김민기, 양병집,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등이 활동하며 트로트 문화에 일침을 가한, 음악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누렸던 1970년대 초반의 이 르네상스는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대중가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이루어지면서 급격히 퇴락 한다. 정부에서 허락 받은 노래만 불러야 했던 탄압은 이장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의 모든 곡들은 퇴폐적이고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독재 정권의 주도자는 “잠 못 드는 이유는 바로 너”라는 가사가 자신을 빗대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장희는 같은 해 11월, 대마초사건으로 이종용, 윤형주, 김세환, 신중현, 김추자 등과 함께 구속되고, 활동을 정지 당한다.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그의 곡들은 뛰어난 강근식의 필링이 주조된 ‘띵~’하는 사운드로 대표되는 것으로 포크적 이였지만 분명 두터운 음색과 비음에서 사이키델릭의 요소를 느낄 수 있고 ‘한 소녀가 울고 있네’와 같은 곡은 전적으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뛰어난 곡이다. 또한 그의 가사는 추상적이고 시적인 가사 위주의 풍토를 이후 구어체적이고 현대적인 가사로 탈바꿈하는데 많은 공을 세워, 당시 청년 문화의 표준적인 감성체계를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방송에서 DJ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조영남, 김세환, 정미조, 송창식 등에게 곡을 주었던 그는, 활동이 정지되자 그룹 사랑과 평화를 출범시킨다. 작곡가란에 이름을 내 걸 수 없어서 가명을 사용했지만 ‘장미’, ‘한 동안 뜸했었지’, ‘어머니의 자장가’는 모두 그의 노래였고 이런 숨은 노력은 이 그룹을 최고의 연주팀으로 만들었다. 해금 후 1982년 ‘진정 사랑해’가 든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녹음실과 의상실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김현식의 앨범을 제작하던 중 부도를 맞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변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재미교포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가끔씩 임병수 등에게 곡을 주며 국내에도 소식을 알렸다. 한 동안 국내 상황을 관망하던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후 자신의 마지막 솔로 앨범을 내놓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곡이 들어 있는 이 앨범에서는 ‘솜사탕’이 라디오를 탄다. 같은 뮤지션의 길을 걸었던 동생 이승희의 죽음으로 고국을 찾기도 했지만, 이장희는 현재 한인 사회에서 가장 큰 라디오 방송국 < 라디오 코리아 >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지내고 있다. 카리스마를 뽐내던 콧수염도 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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