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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모타운 레이블 60주년 기념 앨범 (Motown Greatest Hits)

Marvin Gaye / The Temptations / Stevie Wonder / Commodores 외 참여

[ 3CD ]
Barrett Strong, Mary Wells, Marvin Gaye, The Velvelettes, Frank Wilson 노래 외 2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Motown | 2019년 09월 2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9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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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타운 레이블 60주년 기념 앨범 (Motown Greatest Hit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9월 24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Money (That's What I Want) - Barrett Strong
  • 02 Shop Around - The Miracles
  • 03 Please Mr. Postman - The Marvelettes
  • 04 Do You Love Me - The Contours
  • 05 You've Really Got A Hold On Me - The Miracles
  • 06 My Guy - Mary Wells
  • 07 Dancing In The Street - Martha Reeves & The Vandellas
  • 08 Baby Love - The Supremes
  • 09 How Sweet It Is (To Be Loved By You) - Marvin Gaye
  • 10 Needle In A Haystack - The Velvelettes
  • 11 My Girl - The Temptations
  • 12 I Can't Help Myself (Sugar Me, Honey Bunch) - Four Tops
  • 13 Do I Love You (Indeed I Do) - Frank Wilson
  • 14 The Tracks Of My Tears - Smokey Robinson & The Miracles
  • 15 Uptight (Everything's Alright) - Stevie Wonder
  • 16 This Old Heart Of Mine (Is Weak For You) - The Isley Brothers
  • 17 What Becomes Of The Brokenhearted - Jimmy Ruffin
  • 18 Reach Out, I'll Be There - Four Tops
  • 19 For Once In My Life - Stevie Wonder
  • 20 Reflections - Diana Ross & The Supremes
  • 21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 Marvin Gaye
  • 22 I Want You Back - The Jackson 5
  • 23 Ball Of Confusion (That's What The World Is Today) - The Temptations
Disc2
  • 01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 Stevie Wonder
  • 02 War - Edwin Starr
  • 03 It's A Shame - The Spinners*
  • 04 The Tears Of A Clown - Smokey Robinson & The Miracles
  • 05 Stoned Love - The Supremes
  • 06 I'm Still Waiting - Diana Ross
  • 07 Just My Imagination (Running Away With Me) - The Temptations
  • 08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 Diana Ross
  • 09 What's Going On - Marvin Gaye
  • 10 Got To Be There - Michael Jackson
  • 11 The Night - Frankie Valli & The Four Seasons
  • 12 Papa Was A Rollin' Stone - The Temptations
  • 13 Superstition - Stevie Wonder
  • 14 Let's Get It On - Marvin Gaye
  • 15 Keep On Truckin' - Eddie Kendricks
  • 16 Love Machine - The Miracles
  • 17 Love Hangover - Diana Ross
  • 18 Easy - Commodores
Disc3
  • 01 Got To Give It Up - Marvin Gaye
  • 02 Don't Leave Me This Way - Thelma Houston
  • 03 Three Times A Lady - Commodores
  • 04 Sir Duke - Stevie Wonder
  • 05 Upside Down - Diana Ross
  • 06 Let's Get Serious - Jermaine Jackson
  • 07 Being With You - Smokey Robinson
  • 08 One Day In Your Life - Michael Jackson
  • 09 I'm Coming Out - Diana Ross
  • 10 Super Freak - Rick James
  • 11 Endless Love - Diana Ross & Lionel Richie
  • 12 All Night Long (All Night) - Lionel Richie
  • 13 Treat Her Like A Lady - The Temptations
  • 14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 Stevie Wonder
  • 15 All Night Long - Lionel Richie
  • 16 Somebody's Watching Me - Rockwell
  • 17 Nightshift - Commodores
  • 18 Rhythm Of The Night - DeBarge
  • 19 I Love Your Smile - Shanice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상세 이미지 2

아티스트 소개 (32명)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두 그의 보컬에 영향받았음을 인정하며 그의 음악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지 탁월한 창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록음악 역사에 있어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아티스트의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한 음악인이라는 점에서 그를 더욱 기억하게 한다. 70년대가 되기 전 만해도 밤낮으로 사랑과 낭만만을 얘기하며 소일하던 모타운식 소울 음악은 당시 대다수 흑인들이 공감해오던 ‘어두운 현실’엔 둔감했다. ‘팔리는 음악’을 원했던 회사측과의 마찰은 불가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을 위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산고 끝에 록 역사를 대표하는 명반 < What’s going on >(1971)은 탄생했다 소울 음악은 60년대 그가 소속되어있던 모타운 레코드사를 통해 보다 대중적인 음악 문법으로 자리 잡은데 이어, 그는 같은 회사 소속의 스티비 원더와 함께 미국 대도시 후미진 곳에서 벌어지는 ‘게토 리얼리티를’ 자신의 노래에 담아냄으로써 소울이 ‘사회성’이란 화두를 본격적으로 끌어내는데 기여를 했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그는 소위 후배 흑인 뮤지션들의 ‘대부’이다. 8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분수령을 일군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론트 맨 척 디(Chuck D)는 1988년도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을 발표하며 롤링스톤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는 이번 앨범에서 힙합의 < What’s going on > 버전을 내놓고 싶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마빈 게이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인정했다. 마빈 펜츠 게이 주니어라는 본명으로 1939년 4월 2일 워싱턴 디씨에서 태어난 그는 목사를 아버지로 둔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다소 억압적인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하게 해 아버지 때문에 억눌린 영혼을 달래줄 위안이 된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에 입대,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는 락 앤 롤 스타 보 디들리(Bo Didely)를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된다. 1958년 두왑 그룹인 레인보우에 가입, 이듬해엔 시카고로 진출해 ‘문 그로우’ 라는 두왑밴드에서 활동하며 체스(Chess) 레코드에서 그의 ct첫 싱글 ‘Mama roocie’를 녹음한다. 미국 전역 투어에 나선 문 그로우는 디트로이트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당시 그의 연주를 지켜보던 모타운의 설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는 3옥타브가 넘는 그의 탁월한 테너 창법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61년 모타운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베리 고디와 운명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처음엔 세션 드러머로서 모타운의 일원이 된 그는 모타운 간판스타이자 작곡가인 스모키 로빈슨과 함께 활동한다. 1961년 그는 사장인 베리 고디의 누이인 안나와 결혼한다(무려 18살의 연상). 사장과 사돈관계가 된 덕에 회사측에 전폭적인 지원을 얻게 된 그는 이듬해 첫 싱글 ‘Stubborn kind of fellow’(1962)를 발표하고 흥겨운 댄스 팝 ’Hitch hike’(1962)로 빌보드 Top 40에 진입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크루닝 창법에 영향 받았던 그는 당시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원했지만, 회사 측은 그에게 흥겹게 흔들기 좋은 빠른 댄스 음악만을 요구했다. 큰 키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덕에 유난히 여성 팬들이 많이 따랐던 그였지만, 무대에 올라 몸을 흔들며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것은 늘 못 마땅했다. 후에 그가 회고하길 ‘나는 무대에 나가 청중들 앞에서 내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했을 정도이니, 얼마 후 있을 회사 측과 창작권을 두고 생긴 갈등은 이미 데뷔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1960년대 내내 그는 모타운 사를 통해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했다. ‘Pride & joy’(1963)로 처음 Top 10에 진출한 그는 잇달아 발표한 싱글 ’How sweet it is’(1964), ‘Aint that peculiar’(1965)을 Top 10에 진입시킨다. 솔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갈 무렵 그는 모타운 소속의 실력 있는 디바들과 듀엣 곡을 많이 취입했는데, 메리 웰즈(Mary Wells)과 함께 한 ’What’s the matter with you baby’(1964)을 시작으로, 킴 웨스튼(Kim Weston)과 함께 한 ’It takes two’(1966), 70년대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와 함께 한 ‘My mistake is to love you’(1974)등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와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디바는 바로 타미 테렐(Tammi Terell)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66), ’Your precious love’(1967),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1968), ’You’re all I need to get by’(1968) 모두 Top 10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콤비’는 안타깝게도 타미 테렐의 요절로 인해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에게 첫 팝 차트 넘버원의 영광을 안겨준 ‘I heard it through grapevine’(1968)로 그의 인기전선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듬해 ’Too busy thinking about my baby’(1969), ’That’s the way love is’(1969)를 Top 10에 진입시키며 인기는 더해갔지만, 이내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데뷔 때부터 창작권을 두고 벌어진 회사 측과의 끈질긴 줄다리기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그에게 투쟁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달콤한 사랑타령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표출해보길 갈망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얻기 위한 힘겨운 투쟁 끝에 결국 모타운 사의 백기를 받아내며 ‘음반 제작에 관한 모든 전권을 그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전리품을 얻어낸다. 흑인의 입장에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의 비참한 현실을 늘 생각해왔던 그는 주저 없이 이런 자신의 고민을 음악 속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다. 흑인 빈곤문제, 실업, 월남전등, 70년대 초 그의 눈에 보인 흑인의 현실은 ‘참담함’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노래했던 발랄한 60년대의 흑인 음악은 슬라이&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등 기라성같은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한층 진지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1971)이었다. 흑인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놓은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은 회사 측에 우려에도 불구, 앨범 수록 곡 중 무려 4곡(What’s going on, God is love,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이 Top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앨범은 지금까지 8백만장이라는, 당시로선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스트링을 동원한 세련된 연주 편곡, 참회록을 쓰듯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진행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은 당시 소울음악에선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앨범 < What’s going on >은 그의 음악 경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성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Inner city blues’(1971)에서 목격했던 퍼커션의 가열 찬 울림은 70년대 흑인 음악의 대표 트렌드인 ‘펑키 사운드’로의 변화를 예고했고, 앨범으로는 발표 안 된 저주받은 싱글 ‘You ’re the man pt. 1, 2’(1972)에선 가성, 두성, 진성 등 한층 다채로워진 그의 보컬 연기가 압권이다. 재즈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영화 음악 작곡으로도 이어져 노래보다 연주 쪽에 관심이 반영된 영화음악 앨범 < Trouble man >(1972)으로 이어진다. < What’s going on >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이전의 고뇌하는 흑인 지성임을 포기하고 이번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사랑의 전령사로 변신한다. 그의 두 번째 넘버원을 안겨다 준 앨범< Let’s get it on >(1973)은 ‘성 행위’를 찬미하는 노래들로 가득 찬 앨범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게 했다. 빌보드 No.1 곡인 ‘Let’s get it on’은 그를 단번에 섹시 스타로 변모시켰고, 그가 앨범에서 얘기했던 ’자연스러운 성의 표현 ‘은 80년대 들어 프린스나 조지 마이클같은 팝 스타들의 음악 세계로 계승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첫 아내였던 안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재니스라는 여인과 이미 두 집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았던 그의 성적 편력은 결국 아내와의 별거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충격에 슬럼프에 빠져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재기의 몸부림을 친 그는 베리 고디의 주선으로 만난 레온 웨어(Leon Ware)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 < I want you >(1976)을 발표하지만, 수록곡 ‘I want you’, ’After the dance’가 약간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히트곡에 목말라하던 그는 1977년 런던 팔라디움 구장에서의 콘서트 더블 실황 앨범< Live at the Palladium >을 발표하며, 13분이 넘는 디스코 곡 ‘Got to give up’을 수록하고, 4분대의 싱글로도 커팅, 그의 세 번째 넘버 원 싱글로 등극된다.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던 ’Got to give up’은 팝 차트, 앨 앤 비 차트 1위를 석권하며 그에게 가수로서 회생의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Got to give up’의 기쁨도 잠시, 결국 그는 안나와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에 대한 위자료를 다음에 발표하는 앨범 인세로 한다는 합의를 보게 된다. 앨범 < Here, my dear >(1978)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고 수록 곡 ’When did you stop loving me, When did I stop loving you’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남과 해어짐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그의 뼈저린 고해성사는 아름다운 가사말과 편곡의 세련됨에도 불구, 이렇다할 히트 싱글 없이 앨범은 파묻히며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안 알려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안나는 앨범 내용이 사생활 침해라며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에 이어 다시 몇 년간은 그에게 혼란의 시기였다. 두 번째 아내였던 제니스와 급기야 파경에 이르렀고, < Love Man >(1979-발매 취소)과 < In our life time >(1981)의 흥행실패는 그를 더욱 마약으로 치닫게 했다. 급기야 그는 1981년 20년간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게 했던 모타운 사를 떠나, 하와이로 이주,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 정확히 1년 후인 1982년, CBS 레코드와 전속 계약하며 그에겐 마지막 걸작으로 남게 된 < Midnight Love >(1982)를 발표한다. ‘Let’s get it on’에 버금갈만한 농염한 보컬이 인상적인 싱글 ‘Sexual healing’이 팝 차트 3위까지 오르며 그는 화려하게 재기한다. 공백기 동안대중들과의 소원함을 해소하기 위해 TV 출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그는 베리 고디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둘의 악연(?)을 만회해보려고도 했고, NBA 농구 경기때 미국 국가를 소울 창법으로 불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에서 연주했을 때 이후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재기 의지는 이내 사그러들고 있었다. 이미 코케인에 찌들 때로 찌든 그의 몸은 말을 듣질 않았고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던 목사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극은 그의 아버지와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고, 1984년 4월, 그의 45회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심한 다툼 끝에 화를 가누지 못한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듬해인 1985년 모타운사와 CBS가 공동으로 그의 미 발표곡을 모은 < Dream of a life time >과 < Romantically Yours >를 내놓는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히 이뤄져 < 롤링스톤 >을 비롯한 록 전문지들은 앞 다투어 그의 앨범 < What’s going on >을 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추대하기 시작했고,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등재된다.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롯, 앨범 녹음시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서 다 연주해 낼 정도의 다재(多才)를 유감 없이 발휘한 그는 도무지 시각 장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독창성을 자신에 음악에 담아낸다. 또한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함께 1970년대 미국 사회 내 흑인들의 비참한 삶과 애환을 표현한 ’게토 리얼리티’를 얘기한 음악인으로 기억되면서 흑인 인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이끌었던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노래를 통해 스티비 원더는 지금껏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선 절대불변의 숭고한 가치인 ’사랑의 전도사’임을 전 세계에 알려왔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이런 그의 행적은 전 세계 음악인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으로 그를 기억하게 했다. 1950년 5월 13일 스티브 랜드 모리슨(Steveland Morrison)이라는 본명으로 미국 미조리주 출신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의 과잉 산소 공급 사고로 맹인이 되었다. 디트로이트로 이주해 소년기를 보낸 그는 일찍부터 음악적으로 재능을 드러내 10살이 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악기를 스스로 터득하는 천재성을 보인다. 1962년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베리 고디(Berry Gordy Jr.)가 이끄는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한다. 리틀 스티비 원더(Little Stevie Wonder)라는 아름으로 발표한 그의 첫 싱글인 라이브 버전 ’Fingerprints-part 2’(1963)가 발표 즉시 차트 1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한다. 1965년부터 이후 6년 간 ’Uptight’(1966), ’I was made to love her’(1967), ’For once in my life’(1969), ’My cherie amour’(1969), ’Yester-me, yester-you, yesterday’(1969), ’Signed, sealed, delivered’(1970)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그는 명실상부한 모타운 대표 인기스타로 떠오른다. 21살이 되던 1971년 모타운 측과 재계약을 앞두고는 ’앨범 제작에 관한 모든 통솔권을 자신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당시까지 철저한 ’스타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모타운 사의 입장에선 매우 부담스러웠던 요구를 그는 끝내 관철시키며 셀프 프로듀싱으로 제작한 첫 앨범 < When I’m Coming From >(1971)을 발표한다. 이듬해인 1972년 < Music of my Mind: 앨범 차트 21위 >를 시작으로 같은 해 가을 발표된 명반 < Talking Book:앨범 차트 3위 >(1972)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앨범 모든 수록 곡의 작곡은 물론 연주와 프로듀싱을 혼자서 해낸다. 또한 이 앨범은 A면의 첫 곡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B면의 첫 곡 ’Superstition’을 모두 싱글차트 1위에 등극하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한다. 1972년 같은 해 발표된 두 장의 앨범을 통해 그는 기존 3분대의 모타운 식 히트 곡의 틀을 벗어나 ’Super woman’, ’Maybe your baby’와 같은 6-7분대의 대곡을 과감히 수록했고, 재 계약을 통해 받은 계약금으로 클라비넷, OBX, ARP, 폴리포닉, 무그와 같은 다양한 신시사이저 장비들을 도입, 사운드의 혁신을 일궈낸다. 이듬해 발표한 < Innervisions >(1973)는 그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여준 명반으로 흑인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Living in the city’와 재즈적인 접근을 강하게 드러낸 ’Too High’, ’Superstition’에 버금가는 펑키한 넘버 ’Higher Ground’, 절대자인 신에게 헌정하는 가스펠 곡 ’He’s Misstra know it all’을 담은 수작이었다. 전작에 이어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 Innervisions >는 이듬해인 1974년 그래미 상 ’올해의 앨범’ 부문을 비롯, 4개 부문을 휩쓰는 쾌거를 올린다. 1974년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당하며 잠시 활동의 위기를 맞은 그는 이에 아랑곳없이 < Fulfillingness’ First Finale >(1974)를 발표하며 ’You Haven’t done nothing’, ’Boogie on Reggae woman’을 각각 팝 차트와 R&B 차트 1위에 올리며 앨범은 1975년 다시 한번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 5개 부문을 석권한다.(올해의 앨범상을 연속으로 수상한 건 스티비 원더가 처음이었다.) 1975년 모타운 사와 1천 3백만 불의 재계약을 한(당시 팝 음악계에선 최고의 액수) 그는 2년여의 준비 끝에 더블 앨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을 발표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히트곡이 쏟아진 앨범에서 ’Sir Duke’, ’I Wish’가 팝 차트 1위에 오르고, 팝 가수 조지 마이클이 1998년에 리메이크 하기도 한 7분이 넘는 대곡 ’As’(36위)와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코러스와 재즈 플롯주자 바비 험프리(Bobby Humphrey)가 참여한 라틴 팝 ’Another star’(32위) 역시 좋은 반응을 얻는다. < Songs on the key of life >는 이듬해 1977년 다시 그에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다 준다. 70년대 말, 스티비 원더는 흑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음악 외에도 흑인의 권익신장 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그는 4년여의 공백 끝에 발표한 < Hotter than July >(1980)의 수록곡 ’Happy Birthday’를 통해 이런 그의 노력을 전 세계에 알린다.(결국 198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정된다) 앨범에선 이 외에 레게의 시인 밥 말리(Bob marley)에게 헌정하는 레게 넘버 ’Master Blaster(jammin’)’와 지금껏 애청되는 그의 러브 발라드 ’Lately’를 차트에 진입시키는(각각 5위, 64위) 성과를 거둔다. 영화 음악 작곡에도 열심이었던 스티비 원더는 <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 >(1979)를 시작으로, 그에게 오스카 주제가 상을 안겨준 영화 < Woman in Red >(1984)의 테마 곡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팝 차트 1위에 올리며 전 세계를 스티비 원더 열풍 속으로 다시 한번 몰아넣는다. 그의 영화 음악 작업은 < Jungle Fever >(1991), < The adventure of Pinocchio >로 계속된다. 1983년엔 폴 메카트니와 함께 한 듀엣 곡 ’Ebony & Ivory’로, 1985년 ’Part time Lover’로 다시 팝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 Character >(1987)이후 8년이라는 긴 공백기에 들어간 그는 < Conversation Peace >(1995)로 다시 팝 무대에 복귀한다. 90년대 활동은 비록 예전만큼의 날카로운 창조력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팝 음악인들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다시는 그 누구도 재현 못할 ’팝 음악의 대가’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린다.
노래 : Isley Brothers (아이슬리 브라더스)
흑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힘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음악여정을 걸어왔다는 점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보컬 팀워크와 하모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로맨틱한 R&B 발라드와 가스펠, 소울, 펑크(Funk)에 이르는 흑인 장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형제그룹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 흑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힘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음악여정을 걸어왔다는 점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보컬 팀워크와 하모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로맨틱한 R&B 발라드와 가스펠, 소울, 펑크(Funk)에 이르는 흑인 장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형제그룹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원래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드 싱어인 로날드 아이슬리(Ronald Isley)를 중심으로 루돌프(Rudolph), 오켈리(O’Kelly), 베론(Vernon)의 가스펠 쿼텟(quartet)으로 구성된 보컬 밴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955년 자전거 사고로 베론이 사망하자 아이슬리 형제는 트리오 라인업으로 팝 계의 첫 출발을 내디뎠다. 데뷔 초기 고향을 등지고 뉴욕으로 이주해 두-왑(doo-wop) 레코드를 녹음하며 활동에 포문을 연 그룹은 1959년 가스펠 송 ‘Shout’가 팝 차트에서 톱 40의 놀랄만한 성과를 올리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1962년 R&B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한 ‘Twist and shout’(비틀즈가 커버한 곡), 1966년 스매시 히트 싱글 ‘This old heart of mine (Is weak for you)’(팝 차트 12위, 이듬해 영국차트 3위) 등이 성공가도의 대표적인 열쇠였다. 이후 그룹은 수많은 음반을 레코딩하면서 소울과 R&B뿐만 아니라 펑크와 록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는 바로 그룹의 혁명을 이끈 시기였다. 그 출발선상에 자리한 1969년 작품 < It’s Our Thing >(R&B앨범 차트 2위)부터 그룹은 줄 곳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 결국 1970년에 발표한 < Get Into Something >에서 R&B차트 톱 30에 랭크된 곡을 무려 여섯 곡이나 배출해내는 저력을 과시했고, 1971년 < Givin’ It Back >을 발표해 밥 딜런(Bob Dylan),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스페판 스틸스(Stephen Stills), 빌 위더스(Bill Withers), 닐영(Neil Young)의 곡들을 리메이크하며 주류 음악시장의 성공 궤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리 형제가 인기그룹으로 급부상한 1973년작 < 3 + 3 >(팝 앨범 차트 8위)은 제 2세대 아이슬리 브라더스를 형성한 시기였다.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 어니 아이슬리(Ernie Isley)와 베이스, 퍼커션 주자 마빈 아이슬리(Marvin Isley), 사촌 형제인 크리스 자스퍼(Chris Jasper)가 이 앨범부터 그룹에 새롭게 가입. 이때부터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6인 체제로 전성기가 끝날 무렵까지 10년 동안 멤버교체 없이 ‘가문의 영광’을 지속해나갔다. 결국 이들은 발표하는 앨범마다 골드와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장기간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룹의 진가가 발휘된 1975년 걸작 < The Heat Is On >는 아이슬리에게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라는 영광을 수여한 금자탑이었다. 더불어 1978년작 < Showdown >(팝 앨범 차트 4위)에 수록되어 R&B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Take me to the next phase (Part 1)’의 빅 히트로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룹은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맞이한다. 1976년 < Harvest for the World >(9위), 1977년 < Go for Your Guns >(6위), 1978년 < Showdown >(4위) 등의 발표하는 음반마다 그룹은 매번 R&B앨범 차트 정상을 점령했고, 여러 싱글 히트곡들로 R&B차트를 힘차게 꿰찼다. 흑인음악계의 많은 후배들이 아이슬리 브라더스를 존경하게된 결정적 배경이 바로 이 당시 축적되었다. 10여 년 간 지속적인 성공가도를 달린 그룹은 1983년 < Between the Sheets > 이후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며 침체기를 맞이한다. 어스 윈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같은 펑키(Funky) 사운드가 조금씩 무기력해질 시점에서 로맨틱 발라드 곡조로 일대 사운드의 변화를 꽤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전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1986년 심장마비로 오켈리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흑인 여성아티스트 안젤라 윈부시(Angela Winbush)를 작업 동료로 맞이해 그룹 재건에 나섰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팀을 떠났던 마빈, 어니와 재결합한 그룹은 그간 30년이 넘는 꾸준한 음악활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4년 뒤 1996년 < Mission to Please >(R&B앨범 차트 2위)는 R&B 크루너 키스 스웨트(Keith Sweat), 알 켈리(R. Kelly) 같은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해 젊은 감각으로 앨범의 빛을 더해주었다. 현재 그룹은 로날드와 어니의 듀오 체제를 구축해 기나긴 음악여정을 꾸준히 이어오며 2001년 < Eternal >(3위)을 발표해 다시금 팝 팬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그룹은 2003년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한 < Body Kiss >로 거의 30년 만에 차트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동시대 여러 아티스트들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달리하거나 팀의 해체를 맛보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 흑인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노장의 투혼을 아직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지나간 세월이 대가를 인정하는 법이다.
노래 : Diana Ross (다이애나 로스)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는 록 역사에서 그룹 멤버와 솔로 아티스트로서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성 가수다. 그녀가 리더로 있던 3인조 슈프림스(Supremes)는 1961년부터 1969년 해산할 때까지 12곡의 1위 곡과 10곡의 탑 텐 싱글을 배출하면서 여성 보컬 그룹의 스타일을 규정지었고, 1969년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으로 다시 6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포함한 26곡을 탑...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는 록 역사에서 그룹 멤버와 솔로 아티스트로서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성 가수다. 그녀가 리더로 있던 3인조 슈프림스(Supremes)는 1961년부터 1969년 해산할 때까지 12곡의 1위 곡과 10곡의 탑 텐 싱글을 배출하면서 여성 보컬 그룹의 스타일을 규정지었고, 1969년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으로 다시 6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포함한 26곡을 탑 40에 진입시키면서 그녀는 화려한 날개를 달고 높이 비상(飛上)했다. 이모션스(Emotions), 제이드(Jade), 티엘시(TLC),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등 거의 모든 여성 보컬 그룹은 다이아나 로스가 ’짱’으로 있던 슈프림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그 벽을 넘어야 비로소 여성 보컬 그룹의 1인자로 공인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겐 훌륭한 스승이자 좋은 선배의 본보기였다.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 우상이 바로 다이아나 로스였으며 그녀를 닮길 원해 성형 수술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1987도 앨범 < Bad >에 수록된 ’Dirty Diana’가 싱글로 커트 되었을 때 많은 호사가들은 잭슨의 로스에 대한 애정(愛情)이 애증(愛憎)으로 바뀌었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1960년대 흑인 음악의 공장 모타운 레코드의 주력 상품이었던 슈프림스의 리드 보컬로 있으면서 모타운의 사장 베리 고디와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했던 다이아나 로스는 뛰어난 외모와 치밀하게 아름다운 가창력, 그리고 세련된 매너로 그룹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그녀의 이 스타 기질과 베리 고디의 아낌없는 서포트에 힘입어 다이아나 로스가 1969년 독립 활동을 발표하자 걸 그룹의 최고봉 슈프림스는 해산한다. ’Reach out and touch(20위)’, ’Remember me(16위)’, ’Surrender(38위)’, 그리고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태미 테럴(Tammi Terrell)이 함께 불러 1967년에 19위를 기록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를 리메이크해 싱글 차트를 3주간 정복한 다이아나 로스는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했다. 이 노래들은 1984년 ’Solid(12위)’란 히트곡을 낸 부부듀엣 애쉬포드 & 심슨(Ashford & Simpson)이 수혈한 작품들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엔터테이너적 재능은 단지 무대 위에서만 한정되지 않았고 스크린에서도 그 끼를 발산했다. 전설적인 재즈 싱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 >에서 빌리 홀리데이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이루었고, 이후 < 마호가니 >와 < 더 위즈 > 등의 영화를 비롯해 TV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어 가볍지 않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흑인 디바 다이아나 로스는 1970년대를 통해 ’Touch me in the morning(1973년 1주간 1위)’, 마빈 게이와 호흡을 맞춘 ’You’re a special part of me(12위)’, ’Last time I saw him(14위)’, 국내에서도 애청된 ’Do you know where you’re going to(1976년 1주간 1위)’, 디스코 스타일의 ’Love hangover(1976년 2주간 1위)’ 같은 대형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팝 역사에 ’다이아나 로스’라는 이름의 철도를 가설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디스코 성향의 곡들을 취입했는데 바로 그 상업적 음반의 결정판이 디스코가 사향 길에 접어들고 새로운 물결인 뉴웨이브가 도래하던 1980년에 공개한 < Diana >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스코 밴드로 꼽히는 쉭(Chic)의 사령관이던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버나드 에드워즈(Bernard Edwards) 콤비가 전 곡의 작곡과 제작을 전담한 이 작품에서는 신해철이 한때 열광했다는 ’Upside down’이 그녀에게 다섯 번째 넘버원의 영광을 선사했고, 두 번째 싱글 ’I’m coming out’은 5위를 기록했다. 이 ’I’m coming out’은 1997년 노토리어스 B.I.G.(Notorious B.I.G.)의 두 번째 1위 곡인 ’Mo money mo problems’에 샘플링 되어 재조명되었다. 1980년에는 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Douglas) 주연의 영화 주제가 ’It’s my turn(9위)’과 1981년에는 코모도스(Commodores) 출신의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함께 영화 < 끝없는 사랑 >의 사랑의 테마 ’Endless love’로 빌보드 싱글 차트를 9주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영화 음악으로도 쉼 없는 인기 행진을 이어갔다. 1994년에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가 다시 불렀지만 원곡의 부드러움과 원숙함에는 미치지 못했다(1994년 2위). 이렇듯 1980년대 초반 이 흑진주의 인기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56년 6위를 기록했던 프랭키 라이몬 & 더 틴에이저(Frankie Lymon & The Teenager)의 ’Who do fools fall in love’를 커버해 7위에 랭크시켰고 ’Mirror Mirror’는 8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Muscles(10위)’ 등으로 인기 차트를 융단폭격 하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과 함께 1980년대 초반 흑과 백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섰다. 1984년에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의 영어 앨범 < 1100 Bel Air Place >에 수록된 발라드 ’All of you(19위)’를 위해 입을 맞추었으며 같은 해 가을에 공개된 자신의 독집 음반 < Swept Away >에서는 록적인 타이틀 트랙(19위)과 ’Missing you(10위)’가 사랑 받았다. ’Missing you’는 1984년 4월 1일 아버지의 손에 의해 비극적으로 사망한 친구이자 음악 동료인 마빈 게이를 추모하는 곡으로 라이오넬 리치로부터 받은 명곡이었다. 이 곡은 현재까지 그녀의 마지막 탑 텐 히트 싱글로 남아있다. 1990년대에도 꾸준한 레코딩 활동과 검증된 연기력을 바탕으로 여러 TV 영화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다이아나 로스는 2001년 여행 차 방문한 유럽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리는 망신을 당해 타블로이드 신문을 크게 장식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베리 고디에 의해 움직이는 바비 인형처럼 체제에 순응하는 가수로 인식되었고 그 당시 슈프림스는 새로운 음악 트렌드를 창조하면서 그 유행을 좇았다. 한편에선 소울이 등장해 흑인 형제자매들의 자긍심을 표현했지만 슈프림스는 그 현실을 외면한 채 침묵의 악보에 그려진 음표에 의한 사랑타령으로 엄청난 부와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백인들로부터도 거부감 없는 ’엉클 톰’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당대 최고의 여가수인 다이아나 로스에게 쉽게 아물지 않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흑진주가 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 인생이 현대 흑인 음악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자신에게 밀려오는 음악적인 고독과 인간적인 자괴감을 잊을 수 있었다.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만큼 울려 퍼지듯 대중 음악의 내력에서 다이아나 로스의 이름도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굵고 선명하게 남아있다.
1998년에 개봉된 < 러시 아워 >는 아시아의 별 성룡(Jackie Chan)을 세계적인 코믹 액션 스타로 등극시켰다.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진지한 홍콩 형사 성룡과 구렁이처럼 능글맞은 흑인 형사 크리스 카터(Chris Carter)의 좌충우돌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재미를 선사했다. 영화 중반부 길가에 차를 세운 홍콩 경찰은 “War is absolutely nothing”이라며 노래를 부르자... 1998년에 개봉된 < 러시 아워 >는 아시아의 별 성룡(Jackie Chan)을 세계적인 코믹 액션 스타로 등극시켰다.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진지한 홍콩 형사 성룡과 구렁이처럼 능글맞은 흑인 형사 크리스 카터(Chris Carter)의 좌충우돌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재미를 선사했다. 영화 중반부 길가에 차를 세운 홍콩 경찰은 “War is absolutely nothing”이라며 노래를 부르자 듣다 못한 흑인 형사가 한 수 가르친다며 노래와 함께 댄싱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크리스 카터의 ‘가무’도 잭키 찬의 그것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이들이 신나게 불러재낀 노래는 1970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던 소울 싱어 에드윈 스타(Edwin Starr)의 ‘War’다. 그는 1960년대 후반 모타운 레코드에서 가장 전도 유망한 소울 싱어였고 그의 샤우팅 창법은 ‘소울 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에 비견될 정도로 폭발적이고 거칠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어수선했던 1960년대말의 시대상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가사를 사포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에 담아 냈다. 1942년 1월 21일, 컨트리의 고향인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태어난 에드윈 스타는 10대 시절인 1950년대 후반부터 보컬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으며 1965년부터 홀로 서기를 감행한다. 흑인 음악의 히트 공장이었던 모타운 레코드가 그가 소속돼 있던 릭 틱 레코드를 1960년대 후반에 인수하자 이 소울 싱어는 자연스레 모타운의 식솔이 됐지만 이곳에서의 활동은 ‘War’가 수록된 음반 < War & Peace >를 제외하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실 ‘War’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 노만 휫필드(Norman Whitfield)는 ‘My girl’의 주인공 템테이션(Temptation)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잘 알려진 대로 모타운의 대표 베리 고디의 가수에 대한 장악력은 거의 간섭이나 집착이었다. 그것에 반발해 분연히 일어선 마빈 게이는 < What''s Going On? >을 통해 모타운 제국으로부터 아티스트의 자유를 획득했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도 베리 고디로부터 음악적인 독립과 함께 정당한 금전적인 이익도 보장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부터 자극을 받은 그는 1975년 모타운의 고향 디트로이트를 등지고 소규모 레이블들을 전전하면서 1979년에는 ‘Contact’와 ‘H.A.P.P.Y. Radio >같은 디스코 트랙도 소화한다. 1980년대 이후로는 주로 영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영국 록의 자긍심 폴 웰러(Paul Weller)가 펑크 밴드 더 잼(The Jam)을 해산하고 만든 뉴웨이브 밴드 스타일 카운실(Style Council)과 함께 파업 중인 영국 광부들을 지지하는 곡을 취입하는 등 계속해서 시사적인 관점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1960년대말에서 1970년대 초반 사이 에드윈 스타는 베트남 전을 반대하는 ‘War’를 비롯해, ‘Stop the war now’같은 일련의 곡들로 반전 주의와 사회 참여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자신이 직접 노래들을 작곡했다. 이것을 통해 마빈 게이나 스티비 원더처럼 진정한 아티스트로 인정받길 원했지만 우리는 ‘War’로 정의되는 에드윈 스타의 정형화된 형상만 기억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첫 넘버 원 싱글 ‘I want you back’에 이어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년 간 그룹활동에 전념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2월 탐라-모타운 레코드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1년 데뷔곡 ‘Got to be there’를 발표해 싱글차트 4위에 랭크시킨 후 ‘Rockin’ Robin’, ‘Ain’t no sunshine’, ‘Ben’,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솔로와 그룹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마이클 잭슨이 변성기가 지나고 성인으로 접어들자 잭슨 파이브도 점점 퇴색해갔고, 1979년 마이클은 드디어 성인으로서 첫 음반 을 발표했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났던 퀸시 존스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동참해 마이클 잭슨의 ‘성인신고작’을 한결 윤택하게 빛냈다.

활기 넘치는 리듬의 펑크(funk)와 디스코, 소울, 그리고 록과 팝, 발라드가 퓨전된 그 음반에는 마이클 잭슨이 작곡한 2곡의 업 템포 댄스넘버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최근 영화 <러시아워2>에 삽입되었음)와 ‘Working day and night’와 로드 템퍼튼 작곡의 깔끔한 팝 넘버 ‘Rock with you’, 절제된 보컬의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 같은 히트곡이 실려있었다. 수록곡 중 ‘Girlfriend’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작곡해 준 곡으로 향후 둘 간의 파트너십을 예고했다.

이 마이클 잭슨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앨범이라면 1982년 12월에 발표된 는 ‘팝의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회심작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공동 프로듀스작인 그 앨범은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천6백만장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전례가 없는 무려 7곡이 싱글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2000년 산타나와 타이 기록).

‘문워크(Moonwalk)’라는 독창적인 댄스를 유행시킨 ‘Billie Jean’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속주가 흐르는 ‘Beat it’이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첫 싱글로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 곡이었던 ‘The girl is mine’(2위), ‘Wanna be startin’ somethin’(5위), ‘Human nature’(7위), ‘P.Y.T.’(10위), 마지막 싱글 ‘Thriller’(4위) 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백인 최고스타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의 거장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크로스오버는 물론, 더 많은 수요층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백인 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만을 방영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틀었던 역사적인 첫 흑인 뮤직비디오였다. 한편 1984년 4월에는 폴카 음악과 ‘패러디의 대가’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을 발표해 싱글차트 12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난민구호 자선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막강한 스타들을 규합, 유에스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를 조직해 1985년 1월 그 미국 버전인 ‘We are the world’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해 8월에는 그간 음악동지였던 폴 매카트니와의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마이클 잭슨이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으로 된 250곡이 넘는 비틀스 곡들의 판권을 4천7백5십만 달러에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협력관계가 깨졌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 둘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갱스터 영화의 대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17분짜리 뮤직비디오 ‘Bad’가 1987년 2월에 선보였고, 8월에는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졌으며 록적인 느낌이 강화된 새 앨범 가 발매되었다. 퀸시 존스가 세 번째로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8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무려 5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해 2곡이 1위에 오른 전작을 능가했다.

여성 보컬 시다 가렛과 호흡을 맞춘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Bad’, 흥겨운 핑거 스냅이 시종일관 등장하는 ‘The way you make me feel’, 시다 가렛과 글렌 발라드가 공동 작곡한 발라드 넘버 ‘Man in the mirror’, 음산한 분위기가 압권인 ‘Dirty Diana’ 등 모두 5곡이 차례로 정상에 등극했다. 그 외에도 ‘Smooth criminal’, ‘Leave me alone’ 등 수록곡 전반이 주목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마이클 잭슨과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 등이 출연한 영화 <문워커(Moonwalker)>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홀로서기를 시도한 첫 작품 를 발표한다.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받아들여 만든 이 음반은 마이클 특유의 사운드에 최신식 힙 합과 랩, 메탈 음악 등이 합쳐졌다. 작곡과 제작에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음반이었지만 너바나 같은 그룹의 얼터너티브 록 태풍에 휘말려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member the time’, ‘Jam’, ‘In the closet’ 등 테디 라일리가 솜씨를 발휘한 곡들과 영화 <프리 윌리>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Will you be there’ 같은 곡들은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Black or whit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핑’ 기법 같은 놀라운 기법들은 향후 영상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으며 에서부터 구현된 환상적인 스튜디오 기술로 다시 한번 녹음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 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 해 8월 바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그간 깨끗한 이미지를 이어가던 그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얼마 후 갑작스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에 매스컴은 ‘여론 무마용’이라며 그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매체의 공격이 심해짐에 따라 마이클 잭슨의 분노도 정비례했다. 그에 대한 분노는 1995년에 발표한 더블앨범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장은 히트곡들로, 다른 한 장은 신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은 ‘역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얘기들을 많이 담고있었다. 특히 그를 괴롭혀온 매스컴과 어린이 성추행 소송인에 대한 원한과 경멸, 냉소 등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그 때문에 음악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거친 사운드가 지배적이었다.

알 켈리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댈러스 오스틴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에서는 여동생 재닛 잭슨과 듀엣을 이룬 ‘Scream’과 ‘They don’t care about us’, ‘D.S.’, ‘Money’, ‘2 Bad’ 같은 곡을 통해 쇼비즈니스와 세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물론 ‘You are not alone’, ‘Smile’ 등 따뜻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다른 차가운 곡들 탓에 듣기가 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였는지 ’주라기음반’에 걸맞지 않게 흥행도 부진했다. 1997년에는 리믹스 앨범 을 발매하기도 했다.

4년이 흘러 2001년 그는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3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얻었으며, 9월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엔 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어셔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출연한 가운데 그의 솔로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30일, 마이클 잭슨은 6년만의 정규 앨범 을 발표하며 다시 팬들 앞에 섰다. R&B 최고의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가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은 전작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유의 활기 넘치는 리듬도 회복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등 여러 좋은 일이 겹쳐서인지 밝은 분위기의 내용물들이 담겼다.

3마디의 독특한 리듬이 중독성을 발휘하는 첫 트랙 ‘Unbreakable’, 춤추기에 좋은 부드러운 댄스리듬 그리고 약간은 복고적 사운드가 듣기 편한 첫 싱글 ‘You rock my world’, 변화가 심한 비트가 인상적인 ‘Heartbreaker’ 등이 비트감 느껴지는 곡들. 라틴 풍의 기타 연주가 잔잔한 ‘Whatever happens’에서는 산타나의 무게감 있는 연주도 들을 수 있으며,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Break of dawn’ 같은 곡들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발라드 곡들이다.
노래 : Frankie Valli (프랭키 발리,Francis Stephen Castelluccio)
멤버 :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si:1935∼) 1961년 뉴저지주(州) 뉴어크에서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 멤버 :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si:1935∼)

1961년 뉴저지주(州) 뉴어크에서 프랭키 볼리(Frankie Valli:1937∼), 토미 드비토(Tommy DeVito:1936∼), 보브 가우디오(Bob Gaudio:1942∼), 닉 매시(Nick Massi:1935∼)가 모여 결성했다.

1962년 《셰리 Sherry》를 시작으로 5년 동안 무려 25곡이 히트했다. 버라이어톤스(Varietones)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으며, 포 러버스(Four Lovers)로도 알려졌다. 리드싱어 프랭키 볼리의 높은 가성으로 잘 알려졌으며,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두왑에 기반을 둔 화음 중심의 보컬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프로듀서 보브 크루(Bob Crewe)와 함께 베이스 연주자 가우디오가 주로 작곡을 맡아 리듬앤드블루스와 로큰롤의 히트곡을 냈다. 인기순위 톱 10에 기록된 히트곡으로는 《빅 걸스 돈트 크라이 Big Girls Don’t Cry》(1962), 《워크 라이크 어 맨 Walk Like a Man》(1963), 《돈 (고 어웨이) Dawn (Go Away)》(1964), 《레츠 행 온! Let’s Hang On!》(1965) 등이 있다. 3옥타브에 이르는 음역의 소유자였던 볼리는 솔로로도 활동하여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오브 유 Can’t Take My Eyes Off of You》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나 1970년대 중반 볼리가 《마이 아이스 어도어드 유 My Eyes Adored You》 《그리스 Grease》 등의 싱글을 발표하여 인기순위 1위에 올랐고, 그룹은 《후 러브스 유 Who Loves You》와 《디셈버 1963 (오 홧 어 나이트) December 1963 (Oh What a Night)》가 히트하여 한때 인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랩퍼로서는 유일하게 내한 공연을 가졌던 MC 해머(MC Hammer)의 < Please Hammer Don''t Hurt Em >이었고, 싱글 커트된 ''U can''t touch this(8위)''가 그 뇌관 역할을 했다. 어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건, 어느 나이트 클럽을 가던 MC 해머가 외치는 "Hammer time!"은 하나의 슬로건 이였다. 원래 이 곡의 펑키(...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랩퍼로서는 유일하게 내한 공연을 가졌던 MC 해머(MC Hammer)의 < Please Hammer Don''t Hurt Em >이었고, 싱글 커트된 ''U can''t touch this(8위)''가 그 뇌관 역할을 했다. 어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건, 어느 나이트 클럽을 가던 MC 해머가 외치는 "Hammer time!"은 하나의 슬로건 이였다. 원래 이 곡의 펑키(funky)한 기본 리듬은 선정적인 뮤직 비디오와 무대 매너로 악명 높은 릭 제임스(Rick James)의 1981년 싱글 ''Super freak(16위)''의 주요 리듬을 샘플링한 것이다. 1948년 미국의 버팔로에서 태어난 디스코, 펑크(funk) 뮤지션 릭 제임스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재즈 클럽을 들락날락하면서 음악에 대한 후천적 유전 성질을 획득했다. 청소년 시절엔 재즈와 초기 록큰롤에 심취한 동시에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 베트남전 징집을 피해 캐나다 토론토로 피했다. 거기서 릭은 닐 영(Neil Young), 조니 미첼(Joni Mitchell), 고든 라잇풋(Gordon Lightfoot) 등과 조우하면서 자신의 음악적인 가치관을 확립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이미지는 비록 디스코, 펑크로 고착화 됐지만 그 내면에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불만이 내재되어 있으며 음악적인 스승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을 위시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같은 펑키한 선배들이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전성기를 맞은 그 사이 ''Lover girl''로 기억되는 백인 여성 리듬 앤 블루스 싱어 티나 마리(Teena Marie)와 4인조 댄스팝 보컬 밴드 매리 제인 걸스(Mary Jane Girls)의 후원자 역할을 자청했다. 1984년 ''17(36위)''을 마지막으로 히트 차트에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고 1980년대 후반에 발표한 앨범들마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1980년대의 팝음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1980년대 중반, 막가는 대중 음악을 견제한다는 명목 하에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알 고어(Al Gore)의 부인 티피 고어(Tippi Gore)를 구심점으로 한 대중 음악 검열 단체인 PMRC(Parents Musical Resource Council)가 조직됐다. 프린스를 비롯해 마돈나, 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Motley Crue), 랩그룹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릭 제임스 등이 이 단체의 집중 포화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론 앨범의 판매고를 높인 훈장에 불과했다. 1997년 가족들과 후배 랩퍼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g),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인 티나 마리의 도움으로 회심의 재기작 < Urban Rapsody >를 공개했지만 변해 버린 음악 상황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노래 : Lionel Richie (라이오넬 리치)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흑인 남자가수로 이미 197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 소울 펑키 그룹 코모도스(Commodores)의 리드보컬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룹만으로서 음악생활을 국한할 수 없는 뛰어난 재능으로 1980년대 팝 음악계를 석권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Hello’ ‘Stuck on you’ ‘Sa you say me’ 등 그가 만든 탁월한 선율의 노...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흑인 남자가수로 이미 197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 소울 펑키 그룹 코모도스(Commodores)의 리드보컬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룹만으로서 음악생활을 국한할 수 없는 뛰어난 재능으로 1980년대 팝 음악계를 석권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Hello’ ‘Stuck on you’ ‘Sa you say me’ 등 그가 만든 탁월한 선율의 노래들이 꾸준히 애청되고있다. 미국 앨러바마의 터스카기 출신인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는 같은 대학 동창생들이 모여서 결성된 그룹 코모도스의 음악지휘자로 그룹의 대다수의 히트곡을 직접 쓰고 불렀다. 그룹과 직결되는 곡들인 `Easy , `Three Times A Lady , `Still’ 등 이지 리스닝 계열의 발라드들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또 1980년에는 컨트리 팝의 거성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의 최대 히트곡 ‘Lady’를 작곡해 주었고 이듬해엔 앨범 프로듀서를 담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영화 ‘Endless Love’의 주제가를 직접 제작하여 당대 최고의 여가수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듀엣으로 불러서 싱글차트 정상에 9주간 점령, 최고도에 오른 인기를 과시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82년에 솔로 데뷔앨범 < Lionel Richie >를 내놓고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앨범의 첫 싱글 `Truly’ 가 손쉽게 차트 정상에 올랐고, (이 곡은 Commodores식의 발라드를 답습한 결과로 그에게 첫번째 Grammy 트로피를 안겨준 곡이 되었다.) 계속해서 `You are`, `My love’ 등이 차트 상위권을 공략했다. 1983년에는 그를 월드 슈퍼스타로 부상시킨 앨범 < Can’t Slow Down >이 발매되어 미국에서만 판매고가 1000만장을 넘어섰고 세계적으론 20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LP는 3년 동안 앨범차트에 머무르면서 앨범차트 정상 등극은 물론, 이듬해 그래미상에서는 ‘올해의 앨범’ ‘올해의 프로듀서’부문 상을 수상했다. 수록곡 중 5곡이 싱글로 발매되어 모두 차트 톱10에 오르는 연쇄 히트를 기록했다. 업 템포의 댄스 넘버 `All night long(All night) 이 4주간 정상에 오르며 솔로로서 3번째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고,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차트 정상에 오른 감성적인 발라드 `Hello‘ 는 국내에서도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밝고 통통 튀는 리듬이 인상적인 곡 ‘Running with the night’, 감미로운 리듬의 극치 ‘Penny lover’, 복고풍의 편안함이 압권인 ‘Stuck on you’가 바로 그 곡들이었다. 그 무렵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폐막식의 피날레공연을 맡기도 했다. 1985년에는 마이클 잭슨과 함께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를 위한 기금모금 행사의 일환으로 앨범 < We Are The World >의 타이틀곡을 제작하여 400만장 이상의 싱글 판매고를 올렸고, 이어서 또 한차례 영화음악으로 대박을 터트렸으니 바로 영화 < 백야 >(White Nights)의 주제곡인 ‘Say you say me’였다. 역시 골드가 이 곡은 차트 정상을 4주간 점령했고 이듬해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겼다. 이 곡이 수록된 솔로 3집 앨범 < Dancing On The Ceiling >은 1986년에 발매되어 전작의 성공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른 ‘Dancing on the ceiling’을 비롯하여 서정적인 발라드들인 `Ballerina girl(7위)’과 ‘Love will conquer all(9위)’, 레게리듬의 경쾌한 멜로디가 흥겨움을 더하는 `Se la(20위)’, 그리고 당시 최고의 컨트리 그룹 앨러바마(Alabama)가 함께 불러준 곡 `Deep river woman(71위)’ 등 싱글이 무더기로 발표되었다. 이후로 새 앨범이 발매될 때까지 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애초 20년 가까이 계속해온 음악생활을 잠시 접어두고자 한 휴지기였지만 그런 선택은 대중의 기억 속에 차츰 잊혀져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2년 모타운 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 Back To Front >는 신곡 셋 외에 모두 기존의 히트곡들로 채워져 창작력에 제동이 걸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부인의 이혼소송에 따른 위자료 문제로 앨범 발매를 늦추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다시 4년의 세월이 흐른 뒤 4번째 정규앨범 < Louder Than Words >로 모처럼 복귀, 10년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이 대가(大家)다운 도시화되고 세련된 R&B 음악을 선보였으나 실적은 기대 이하였다. 1998년 < Time >과 2001년 < Renaissance > 등 계속해서 선보인 신작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마이클 잭슨, 프린스와 더불어 1980년대를 주름잡던 흑인음악의 삼성(三星) 중의 하나는 쇠퇴해 가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1978년부터 1986년까지 매년 자신이 만든 곡을 싱글차트 정상에 올린 진기록, 4개의 그래미상, 9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상,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이라는 풍부한 수상경력이 주는 가치 그리고 백인들도 거부할 수 없는 그만의 ‘크로스오버 러브 R&B 발라드’의 흡수력은 아직도 천연히 빛을 발한다.
그 유명한 모타운 레코드사의 창립주이자 사장인 베리 고디(Berry Gordy)를 아버지로 둔 덕에 타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버린 록웰(Rockwell)은 자신의 가수생활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해 화려해지는걸 원하지 않았기에 본명인 케네디 고디(Kennedy Gordy)대신 자신의 고등학교 밴드의 이름을 따서 록웰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디트로이트 태생의 록웰은 아버지를 따라 L.A로 이주, 그곳에서... 그 유명한 모타운 레코드사의 창립주이자 사장인 베리 고디(Berry Gordy)를 아버지로 둔 덕에 타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버린 록웰(Rockwell)은 자신의 가수생활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해 화려해지는걸 원하지 않았기에 본명인 케네디 고디(Kennedy Gordy)대신 자신의 고등학교 밴드의 이름을 따서 록웰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디트로이트 태생의 록웰은 아버지를 따라 L.A로 이주,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자연스레 유명 아티스트들과 친분을 나누었고 완벽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자란 탓에 가수가 되는 것은 그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20세가 되던 해인 84년 데뷔앨범 < Somebody’s Watching Me >가 발표된다. 앨범 전체의 색깔이 마이클 잭슨의 마이다스 앨범 < Thriller >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데, 타이틀곡은 마이클 잭슨과 저메인 잭슨이 백보컬로 참여하여 차트 2위까지 오르는 선전을 펼쳤고 국내에선 감미로운 슬픈 발라드 ’Knife’가 아직까지도 애청되는 레파토리로 남아있다. 특히 앨범 수록곡 대부분을 직접 쓰면서 프로듀싱까지 해내는 그의 비상한 능력을 맘껏 발휘하면서 자신의 주가를 급상승시켰다. 이듬해 발매한 2집 앨범 < Captured >는 스티비 원더가 세션맨으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고, 록웰 자신도 거의 원 맨 밴드에 가까운 악기연주를 선보였다. 호소력 짙은 첫 싱글 ’He’s a cobra’를 비롯하여 아버지가 제작한 영화 < 마지막 드래곤 >(The Last Dragons)에 삽입된 ’Peeping tom’, 데뷔앨범의 ’Knife’를 연상시키는 ’Dont if make you cry’등이 주목을 끌었으나 전작에 미치지는 못했고 1986년 앨범 < The Genie >를 끝으로 현재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혜성같이 등장하여 단 3년만에 메이저 활동의 종지부를 찍었으나 그 시점만은 ’준비된 가수’로서 나름의 실력을 과시했다. 쉽게 식상해버린 점이 무척 아쉬운 대목이지만 여전히 그의 감상적인 발라드 ’Knife’는 듣는 이를 무드에 젖게 한다.
리듬앤블루스, 소울 보컬 그룹 리듬앤블루스, 소울 보컬 그룹
초기 모타운의 대표주자였던 소울 그룹 초기 모타운의 대표주자였던 소울 그룹
굴지의 흑인음악 전문음반사 ‘모타운의 상표’가 된 여성 트리오 보컬그룹. 1964년 ‘Where did out love go’를 필두로 발표한 다섯 곡이 내리 전미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1969년까지 넘버원 곡만 12곡을 쏟아내는 가공할 슈퍼스타덤을 과시했다. 1944년 디트로이트 태생인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를 축으로 매리 윌슨(Mary Wilson), 플로렌스 발라드(Florence Ballar... 굴지의 흑인음악 전문음반사 ‘모타운의 상표’가 된 여성 트리오 보컬그룹. 1964년 ‘Where did out love go’를 필두로 발표한 다섯 곡이 내리 전미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1969년까지 넘버원 곡만 12곡을 쏟아내는 가공할 슈퍼스타덤을 과시했다. 1944년 디트로이트 태생인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를 축으로 매리 윌슨(Mary Wilson), 플로렌스 발라드(Florence Ballard)와 함께 그룹이 결성되어 1959년부터 노래했다. 이듬해 1960년 모타운의 탐라 레이블과 계약해 처음에는 전문 백업보컬 팀으로 움직였다. 곧 섹시한 다이아나 로스의 투명한 음색을 전매특허로 시대를 석권했다. 그녀는 1970년부터 개시한 솔로활동을 통해서도 슈프림스 시절에 버금가는 히트퍼레이드를 전개했다. 우리에겐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호흡을 고른 1981년 듀엣 곡 ‘Endless love’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고장 팝 팬들은 여전히 1960년대 슈프림스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Come see about me’, ‘Stop! In the name of love’, ‘Love child’를 좋아한다.
모타운 초기의 남성 하모니 보컬그룹 포탑스(The Four Tops)는 한 명의 스타에 의해서 주도되지 않는 유기적 결속력으로 오랜 기간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 출신의 4명의 고등학생 레비 스텁스(Levi Stubbs, 1938년생), 르날도 오비 벤슨(Renaldo Obie Benson, 1937년생), 로렌스 페이튼(Lawrence Payton, 1938년생), 압둘 듀크 파커... 모타운 초기의 남성 하모니 보컬그룹 포탑스(The Four Tops)는 한 명의 스타에 의해서 주도되지 않는 유기적 결속력으로 오랜 기간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 출신의 4명의 고등학생 레비 스텁스(Levi Stubbs, 1938년생), 르날도 오비 벤슨(Renaldo Obie Benson, 1937년생), 로렌스 페이튼(Lawrence Payton, 1938년생), 압둘 듀크 파커(Abdul Duke Fakir, 1938년생)는 동네 파티에서 함께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54년 포 에임스(The Four Aims)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클럽을 무대로 재즈 스탠다드 곡을 부르며 활동해 나가던 이들은 1956년 포 탑스로 개명하고 레코딩 작업에 나선다.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이들은 실패를 거듭해야 했다. 체스(Chess), 레드 탑(Red Top), 콜럼비아(Columbia), 리버사이드(Riverside) 등 여러 레이블을 옮겨 다녔지만 실패만을 거듭했다. 하지만 1963년 모타운(Motown) 레이블로 자리를 옮긴 후 이후 20여 년을 흑인 최고의 보컬 그룹으로 자리하게 된다. 모타운 사장인 베리 고디(Berry Gordy)의 권유로 명제작팀인 홀랜드/도지어/홀랜드(Holland/Dozier/Holland:Brian Holland, Lamont Dozier, Eddie Holland로 구성된 팀으로 이후 1967년까지 이들과 함께 하며 수많은 히트 곡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에 의해 만들어진 곡들을 부르게 된다. 베리 고디가 이들을 뽑은 이유도 이들 자체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함이기보다는 홀랜드/도지어/홀랜드팀과 함께 할 보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64년 사실상의 데뷔 앨범 < Breaking Through >를 내놓은 이들은 같은 해 셀프 타이틀의 < Four Tops >를 발표하며 정식 데뷔한다. 이미 첫 싱글인 ’Baby, I need your lovin’을 차트 20위에 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이들은 ’벤슨-페이튼-파커’의 화음과 리드 보컬인 스텁스의 감성 넘치는 R&B 보컬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발표하는 곡들마다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듬해 발표한 ’I can’t help myself’는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Ask the lonely’(65년), ’It’s the same old song’(65년), ’Something about you’(65년), ’Shake me, wake me(When it’s over’(65년), ’Loving you is sweeter than ever’(66년)가 차트 40위 권 안팎의 꾸준한 성공을 거두었다. 1966년 ’Reach out, I’ll be there’를 다시 한 번 차트 정상에 올린 이들은 여세를 몰아 ’Standing in the shadows of love’(66년), ’Bernadette’(67년), ’7 rooms of gloom’(67년), ’You keep running away’(67년)을 연이어 히트시킨다. 모타운에서 초창기 이들만큼의 인기를 누린 보컬 그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슈프림스(The Supremes)나 미라클(The Miracles), 또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나 잭슨 파이브(Jackson Five)와 같은 그룹들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정상급 보컬 그룹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1997년 페이튼이 사망하기 전까지 단 한 차례의 멤버 교체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스텁스가 리드 보컬을 맡고 있기는 했지만 한 개인의 두드러진 능력이 아닌 멤버 전원의 조화로운 목소리를 중요시 여겨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처럼 두드러진 멤버로 인해 그룹 전체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멤버의 솔로 활동으로 인해 그룹의 조직력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일견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점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러한 이들의 모습은 모타운에서 컸지만 모타운의 흐름을 따르지 않은 채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어 이들이 소울의 발전 과정 속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가치 있는 그룹임을 나타내어 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거부감 없는 보컬 하모니를 통해 흑인 팬들 뿐 아닌 팝 시장의 대중 전체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들의 음악 그 자체에 있어서의 가치 또한 빼놓아서는 안될 의미 있는 것이다. 승승 장구하던 이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온다. 1967년 성공 뒤에 늘 함께 했었던 홀랜드/도지어/홀랜드 팀이 모타운을 나가게 된 것이었다. 오른 팔을 잃은 격인 이들의 활동은 주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인기의 공백이 그리 길지 만은 않았다. 자신들에게 맞는 곡을 찾지 못해 팝 히트 곡들을 리메이크 하기도 했던 이들은 레프트 뱅크(Left Banke)의 ’Walk away renee’나 팀 하딘(Tim Hardin)의 ’If I were a carpenter’와 같은 곡들을 소울 풍으로 소화해 내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하였으며, 1970년대의 시작과 함께 프랭키 윌슨(Frank Wilson)이나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 같은 모타운 최고의 제작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다. 재기에 성공한 이후 토미 에드워즈(Tommy Edwards)의 1950년대 히트 곡을 리메이크 한 ’It’s all in the game’을 히트시켰고, 발라드 곡인 S’till water(Love)’, 슈프림스와 함께 부른 ’River deep mountain high’, ’Just seven numbers (Can straighten out my life)’, ’(It’s the way) Nature planned it’ 등의 곡을 연이어 히트시키게 된다. 한 편 르날도 벤슨은 마빈 게이(Marvin Gaye)의 대 히트 작인 ’What’s going on’을 공동 작곡하는 가수 외적인 면에서의 음악적인 기량을 뽐내기도 하였다. 이들은 1972년 ’Keeper of the castle’을 끝으로 모타운을 떠나 던힐(Dunhill) 레코드에서 활동을 이어간다. 던힐에서도 이들의 인기 행진은 계속되었다. ’Ain’t no woman (Like the one I got)(73년), ’Are you man enough’(73년), ’Sweet understanding love’(73년), ’One chain don’t make no prison’(74년), ’Midnight flower’(74년)가 꾸준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76년 ’Catfish’로 차트 10위 권에 4년 만에 다시 복귀했다. 잠시 인기가 주춤하던 이들은 카사블랑카(Casablanca)로 소속을 옮기고 1981년 ’When she was my girl’을 R&B 차트 정상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선 즈음 이들의 인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보컬에만 의존하는 그룹으로서 이미 나이가 40대를 넘어서 있었으며 M-TV의 등장이라는 격변하는 음악계의 흐름 속에서 시대의 그룹으로 차츰 물러서야만 했다. 1983년 모타운으로 돌아온 이들은 < Back Where I Belong >을 발표하며 자신들 음악의 뿌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이 앨범에서 이들은 1960년대 자신들과 히트 행진을 벌였던 홀랜드/도지어/홀랜드 팀과 재 만남을 갖기도 하였으며, 동시대의 인기 보컬 그룹이었던 템테이션스와 함께 ’Hang’이라는 곡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1988년 다시 모타운을 떠나 아리스타(Arista)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Indestructible’과 ’Loco in Acapulco’를 히트시키며 나름대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 가지만 이후 별다른 히트 곡은 나오지 않았다. 4인 라인업의 굳건한 체제를 유지해 왔던 이들이었지만 1997년 페이튼의 사망으로 포탑스의 변함없는 모습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현재 베스트 앨범의 출시 이외에 별다른 음반 활동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멤버 : 재키 잭슨(Jackie Jackson, 보컬, 탬버린), 티토 잭슨(Tito Jackson, 보컬, 기타), 저메인 잭슨(Jermaine Jackson, 보컬, 베이스기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보컬, 퍼커션, 피아노, 기타), 랜디 잭슨(Randy Jackson, 보컬, 봉고, 키보드, 신디사이저, 베이스기타) 멤버 : 재키 잭슨(Jackie Jackson, 보컬, 탬버린), 티토 잭슨(Tito Jackson, 보컬, 기타), 저메인 잭슨(Jermaine Jackson, 보컬, 베이스기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보컬, 퍼커션, 피아노, 기타), 랜디 잭슨(Randy Jackson, 보컬, 봉고, 키보드, 신디사이저, 베이스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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