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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복면가왕 708090 통기타명곡 100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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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SB] 복면가왕 708090 통기타명곡 100곡

본 상품은 CD가 아니며,USB 입니다.

김민우, 전인권, 김창완, 김종환, 이상은 노래 외 4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미디어타운 | 2019년 09월 0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9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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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복면가왕 708090 통기타명곡 100곡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9월 06일
시간, 무게, 크기 7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디스크

USB [1~100곡]
  • 00 떠나지마 - 양호섭
  • 01 숨어우는 바람소리 - 김민우
  • 02 눈먼 사랑 - 김지환
  • 03 걱정말아요 그대 - 전인권
  • 04 도시의 천사 - 이건우
  • 05 너의 의미 - 김창완
  • 06 바램 - 김종환
  • 07 언젠가는 - 이상은
  • 08 무정부르스 - 김영광
  • 09 연인들의 이야기 - 계동균
  • 10 하얀나비 - 김정호
  • 11 그집앞 - 이재성
  • 12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 13 너에게난 나에게넌 - 송봉주
  • 14 터질거예요
  • 15 그리움만 쌓이네 - 여진
  • 16 오늘처럼 - 이진관
  • 17 가을비 우산속 - 백태기
  • 18 풀잎사랑 - 최성수
  • 19 사랑하는 그대에게 - 남화용
  • 20 내마음의 보석상자 - 이주호
  • 21 좋은사람 만나요 - 김신우
  • 22 꿈이어도 사랑할래요 - 임지훈
  • 23 눈이 큰아이 - 김홍경
  • 24 칵테일 사랑 - 김선민
  • 25 새벽기차 - 이두헌
  • 26 큐 - 김희갑
  • 27 젊은그대 - 김수철
  • 28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 이호준
  • 29 그리운 얼굴 - 정홍택
  • 30 오늘같은 밤 - 이정선
  • 31 미운사랑 - 송광호
  • 32 청춘 - 김창완
  • 33 등불 - 안치행
  • 34 뒤늦은 후회 - 장덕
  • 35 부르지마 - 김목경
  • 36 소녀 - 이영훈
  • 37 길가에 앚아서 - 윤형주
  • 38 찻잔 - 김창완
  • 39 초연 - 이준영
  • 40 선녀와 나뭇꾼 - 김창남
  • 41 철없던 사랑 - 김석희
  • 42 가인 - 김진룡
  • 43 빗속에 연가 - 김현식
  • 44 비처럼 음악처럼 - 박성식
  • 45 내사랑 내곁에 - 오태호
  • 46 민들레 홀씨되어 - 김정신
  • 47 소녀 - 이영훈
  • 48 TV를 보면서 - 최성수
  • 49 나는 행복한사람 - 오동식
  • 50 사랑하는 그대에게 - 김범룡
  • 51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 최성수
  • 52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 - 전영록
  • 53 말리꽃 - 이근상
  • 54 너무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 김광석
  • 55 시를 위한 시 - 이영훈
  • 56 빗속에 둘이서 - 조진원
  • 57 어느 60대 노부부이야기 - 김목경
  • 58 암연 - 고한우
  • 59 여인 - 한정선
  • 60 난바람 넌눈물 - 신현대
  • 61 날개 - 조운파
  • 62 상아의 노래 - 김희갑
  • 63 시인의 마을 - 정태춘
  • 64 슬픈계절에 만나요 - 백영규
  • 65 송학사 - 김태곤
  • 66 촛불 - 정태춘
  • 67 나는 홀로 있어도 - 백영규
  • 68 밤배 - 오세복
  • 69 별이여 사랑이여 - 이경오
  • 70 비의 나그네 - 이장희
  • 71 이름모를 소녀 - 김정호
  • 72 나그데에게 모두드리리 - 이장희
  • 73 바위섬 - 배창회
  • 74 내가 - 김학래
  • 75 사랑하는 마음 - 송창식
  • 76 그대 그리고 나 - 정현우
  • 77 아직도 못다한 사랑 - 한정선
  • 78 옛사랑 - 김태풍
  • 79 편지 - 임창제
  • 80 동행 - 최성수
  • 81 홀로가는 길 - 남화용
  • 82 내가만일 - 김번수
  • 83 묻어버린 아픔 - 김진룡
  • 84 사랑으로 - 이주호
  • 85 사랑을 잃어버린 나 - 권인하
  • 86 내아픔아시는 당신께 - 조하문
  • 87 내마음 갈곳을 잃어 - 최종혁
  • 88 꼬마인형 - 장욱조
  • 89 이등병의 편지 - 김현성
  • 90 야화 - 이경화
  • 91 존재의 이유 - 김종환
  • 92 라구요 - 강산에
  • 93 알고싶어요 - 김희갑
  • 94 그저바라볼수만 있어도 - 유익종
  • 95 파초 - 유영선
  • 96 남남 - 최성수
  • 97 사랑의 기도 - 김희갑
  • 98 내일을 기다려 - 김준기
  • 99 그대사랑안에 머물러 - 김은희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46명)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대단한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의 이름은 ‘들국화를 오래 기억해달라’라는 뜻을 가진 것이었으며 허성욱의 미성을 느낄 수 있는 ‘머리에 꽃을’, 최구희의 필에 젖은 기타가 일품인 ‘어떤...(가을)’ 그리고 연극 < 칠수와 만수 >에 삽입되었던 작자 미상의 ‘사노라면’ 등이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종 전인권과 최성원의 주도권 다툼으로 해석되고 있는 들국화의 해체는 전인권의 대마초 사건으로 가속화되었고 그렇게 그룹 들국화는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전인권은 삼청동의 자기 집에서 1여 년을 쉬며 파랑새 기획을 만들고 히식스 출신의 김광석, 변성군, 민재현, 배수현 등과 그룹 가야를 구상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이 그룹은 끝내 탄생하지 못했고 전인권은 1988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제작한다. 역시 들국화를 산출한 동아기획과 자신의 기획사인 파랑새에서 나온 이 앨범에는 ‘돌고 돌고 돌고’가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가운데 ‘돛배를 찾아서’, 따로또같이 시절에 부른 ‘헛사랑’ 등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좀더 완성도 높은 <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를 발매한다. 이 앨범에는 큰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지만 ‘Last song’’,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등과 같은 수작이 진열되어 있으며 최성원의 코러스를 들을 수 있는 ‘제발’이 다른 버전으로 녹음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최성원에 못지 않은 작곡 실력을 뽐내면서 존 레논(John Lennon)의 ‘Oh my love’’와 ‘Love’’를 인구에 회자시켰다. 이러한 형태의 자기 표현은 전인권을 존 레논으로 최성원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전인권은 민재현, 이건태, 정태국, 유태구 등과 함께 들국화의 재건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멤버들의 전설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들국화의 이름으로 내놓은 3집은 아쉬움 속에서 외면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들국화의 이름보다는 전인권의 새 그룹을 원했다. 그리고 그는 한상원과 조인트 앨범을 내놓으며 그의 소울풀한 가창력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음악 활동 속에서 줄곧 대마초에 손을 대며 동면 속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공연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정확한 음정보다는 필링이 주가 되는 양상을 띤다. 한번 떨어진 집중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최근 그는 대마초 흡연은 죄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역시 그의 벽은 들국화였을까? 그는 다시 최성원, 주찬권과 들국화로 돌아온다. 그리고 장기 공연을 펼치며 왕년의 지지자들을 다시 끌어 모은다.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도 나왔으며 팬 사이트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모두들 전인권은 혼자 일 때보다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때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잠사학과 졸업. 그룹 '산울림'의 리드보컬. 1977년 록 밴드 ‘산울림’ 1집 〈아니 벌써〉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가수와 배우,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주요 음반으로 산울림 1집~13집을 비롯해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운동회」 등 동요집들이 있다. 2008년, 젊은 뮤지션들과 ‘김창완 밴드’를 결성하여 EP 앨범 「The Happiest」와 1집 「BUS」(2009)를 발표했다. 현재 S... 서울대학교 잠사학과 졸업. 그룹 '산울림'의 리드보컬. 1977년 록 밴드 ‘산울림’ 1집 〈아니 벌써〉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가수와 배우,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주요 음반으로 산울림 1집~13집을 비롯해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운동회」 등 동요집들이 있다. 2008년, 젊은 뮤지션들과 ‘김창완 밴드’를 결성하여 EP 앨범 「The Happiest」와 1집 「BUS」(2009)를 발표했다. 현재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와 MBC TV 「음악여행 라라라」의 진행을 맡고 있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밝힌 그는, ‘인간 김창완’이 드러나지 않는 글, 상상력을 극대화한 이야기를 한 편씩 써나갔다. 영감이 떠오를 때면 바닥에 엎드려 종이에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 전지적 입장에서 쓰는, 가르치려는 글은 싫다”고 말하는 작가 김창완. 그가 이제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통해 “문학으로 자신의 존재를 없애는” 작업을 열어 보인다.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싱어 송 라이터.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면서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 1889년에 1월에 1집을, 12월에 2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했으나, '공인'이라는, '스타'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훌훌 털어버리듯 1990년 홀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91년에 미술 공부를 이해 미국 뉴욕으로 또 한번 유학을 떠난 그녀는,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싱어 송 라이터.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면서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 1889년에 1월에 1집을, 12월에 2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했으나, '공인'이라는, '스타'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훌훌 털어버리듯 1990년 홀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91년에 미술 공부를 이해 미국 뉴욕으로 또 한번 유학을 떠난 그녀는,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통속성에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는 뮤지션이 되었다. 지난 18년동안 특유의 짙은 감수성과 시(詩)처럼 섬세한 가사, 독특한 멜로디로 그만의 음악화법을 만들어왔으며, 이제 ‘이상은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다.

2008년 그녀의 첫 저서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비로소 참다운 평화의 땅을 대면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세비야와 발렌시아, 톨레도를 거쳐 다시 마드리드까지 이어진다. 물빛처럼 투명한 그의 영혼이 만난 평화의 땅,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가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로 풀려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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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구도자의 노래 혹은 정체성을 상실한 보헤미안의 시와 같은 것이 되었다. ‘담다디’와 ‘사랑할꺼야’에서처럼 핏대를 올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맥빠진 듯한 음성에서 나오는 울림은 끊임없이 세상을 공명하고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개인의 철학만으로 똘똘 뭉친 불가해 속의 가사들은 전혀 낯설지만은 않은 우리의 표상을 스치며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유도하고 있다. 그녀가 스타덤에서 들려주던 초기의 노래는 목소리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현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수퍼스타로 떠오른 이상은(Lee Tzsche, 1970년)은 표절시비의 2집을 뒤로하고 훌쩍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연극영화를 전공하던 자신의 위치에서 한껏 멀어진 미술 공부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녀가 예상보다 일찍 들고 온 3집은 수퍼스타에서 아티스트로 접어드는 변화의 과정을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작사, 작곡은 물론 앨범의 재킷에서부터 연주,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배급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쫓아다니며 관여를 한 이 앨범은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한 연주곡과 타이틀곡 ‘더딘 하루’, ‘영원히’, ‘너무 오래’, ‘어느 날 아침’ 등 몇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어느 피아노 곡을 들으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글귀의 모호한 감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배되는 그녀의 시적 형상을 대표하고 있다. 이 앨범이 나온 후 몇 달 뒤 우리 음악계는 한 번의 천지개벽을 맞는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모든 스타들이 모두 메인 무대에서 물러나는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TV 브라운관의 립싱크가 없는 세상을 택한 이상은은 이 후로 점점 더 주목을 받으며 한번의 걸림돌도 없이 지금까지 줄곧 자기 스타일의 앨범을 내 놓았다. 이상은은 댄스씬으로 주목받지 못한 저주받은 4집 이후 내놓은 5집에서 ‘언젠가는’의 빅히트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공무도하가>로 다시 한번 아티스트의 이름에 도전장을 내민다. 일본 음악인들과 함께 하며 만든 이 앨범은 우리의 음악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고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공무도하가’, ‘새’, ‘삼도천’은 미래가 없어 보이던 우리 음악계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했다. 1997년 음악 동료 다케다 하지무와 같이 한 7집에서는 명곡 ‘어기여 디여라’로 일본 쪽에서 호평을 받고 이소무라 가즈미치 감독의 <간밧테이끼마쇼이>란 영화 음악을 맡았으며 1998년에는 영국의 버진 레코드와 계약하고 영어 음반 를 내놓았다. <간밧테이끼마쇼이>이의 영화 음악인 은 일본에서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5집 이후 일본에서의 인기는 컬트팬을 끌어 모으는 것 이상의 수준이 되었다. 영어 음반에 쓰인 리채란 이름은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을 각각 따서 지은 것으로 그녀는 외국 쪽에서는 계속 이 이름을 쓰고 있다. 세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이후 그녀는 국내에서 박철수 감독의 영화 <봉자>의 음악을 맡았고 2001년에는 라는 제목의 음악을 발표하며 끊임없는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 가운데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녀의 음악을 모두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점점 더 여려지고 조용해지는 이 음유시인의 음악은 전자음을 배제하고 리얼 뮤직으로 자기 세계를 투영시켜 그렇게 선과 도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의 문법으로 그녀를 재단하지 말고 그냥 놓아두자. 그녀는 지금껏 알아서 잘 해왔으며 인기나 평단의 힘없이 혼자의 힘으로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또 무언가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자유를 얻어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제공 : IZM (www.izm.co.kr)
어니언스(Onions)의 노래 ‘작은새’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김정호는 국악의 명인들이 많은 외가 쪽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삼촌으로부터 선물 받은 기타로 음악가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 때에 밴드부에 가입해 악기를 다루었다. 졸업 후 미8군에서 기타를 치다가 후배 임창제가 결성한 그룹 어니언스의 앨범에 작곡자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룹의 인기와 더불어 그의 이름도 알려지게 ... 어니언스(Onions)의 노래 ‘작은새’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김정호는 국악의 명인들이 많은 외가 쪽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삼촌으로부터 선물 받은 기타로 음악가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 때에 밴드부에 가입해 악기를 다루었다. 졸업 후 미8군에서 기타를 치다가 후배 임창제가 결성한 그룹 어니언스의 앨범에 작곡자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룹의 인기와 더불어 그의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다. < 쉘부르 > 등의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그룹 4월과 5월에서 잠깐 머물다가 1973년 자신의 자작곡인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했다. 이후 ‘하얀 나비’로 정상에 오른 그는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꽃잎’ 등의 히트곡을 쏟아 부으며 최고의 포크가수로 자리 매김 한다. 그는 < 꽃잎 >이란 카페를 운영하며 강은철, 김학래, 임하룡, 남궁옥분 등과 함께 무대에 섰으며 자주 국악 공연을 관람하며 소울풀한 음색에 토속적인 맛을 입혔다. 폐결핵 환자라는 소문이 돌던 시기에, 그는 1975년 마약 사범으로 잡혀 들어간다. 그는 이 대마초파동으로 구금되어 정신병원까지 가야 했으며 이후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깊어지는 병마와 싸웠다. 심해지는 병은 그를 파산으로 몰고 갔으며 변변치 않던 작곡비로 연명하던 그는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끊어 녹음한 끝에 1983년 마지막 앨범을 낸 김정호는 병원의 환자에게서 영감을 얻은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로 재기에 성공하지만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1985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임종 3개월 전, 딸에게 자신이 인기가수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TV에 출연했고 이것이 마지막 그의 모습이 되었다. 그의 유작에선 또한 ‘하얀 나비’와 함께 그의 죽음을 예견한 곡으로 비유되곤 하는 ‘님’이 사후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은 포크로 분류되지만 독특한 음색에서 품어져 나오는 혼의 목소리는 소울과 블루스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고 있으며 마지막까지 꽹과리를 들고 우리의 소리에 심취한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또 다른 원천은 국악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사망하자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이종환의 < 밤의 디스크쇼 >에서는 추모 방송을 연일 내보냈고 1986년에는 홍민, 김수희, 김학래, 하남석, 윤시내, 김범룡, 이정선, 신형원, 윤승태, 한마음, 전영록, 김현식, 서수남, 하청일, 송창식, 이태원, 강은철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힘을 합친 트리뷰트 음반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생을 영화화한 < 님 >이 개봉되었다. 팬들의 사랑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는 1998년 조선일보가 선정한 < 건국 이후 가수 베스트 50 > 중에서 30위를 차지하는 위용을 과시했다.
김창완의 프로젝트팀인 꾸러기들에 참여해 포크 음악으로 내공을 쌓은 최성수는 1980년대 중반 ‘그대는 모르시더이다’로 데뷔해 솔로 앨범에서 ‘남남’과 ‘애수’로 각각 가요 Top 10의 정상에 오르며 발라드 주자의 한 명으로 튀어 올랐다. 이문세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변진섭보다는 좀 더 성인 취향의 골계미를 가지고 있던 그는 2집에서도 ‘동행’으로 다시 정상에 서고 ‘풀잎 사랑’과 ‘기쁜 우리 사랑은’으로 연속 히... 김창완의 프로젝트팀인 꾸러기들에 참여해 포크 음악으로 내공을 쌓은 최성수는 1980년대 중반 ‘그대는 모르시더이다’로 데뷔해 솔로 앨범에서 ‘남남’과 ‘애수’로 각각 가요 Top 10의 정상에 오르며 발라드 주자의 한 명으로 튀어 올랐다. 이문세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변진섭보다는 좀 더 성인 취향의 골계미를 가지고 있던 그는 2집에서도 ‘동행’으로 다시 정상에 서고 ‘풀잎 사랑’과 ‘기쁜 우리 사랑은’으로 연속 히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의 앨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음반으로 기록되는 3집에서는 ‘나의 슬픔에 그대는 타인’과 ‘후인’으로 여전한 인기를 누렸으며 수록된 ‘축제와 나그네’의 포크적 세미 트로트 버전과 유영선이 만든 햇살 부서지는 아침의 사랑노래 ‘내 너를 부르면’, 후속타로 장기간 인기를 누린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할까’ 등으로 한 발짝 더 뮤지션의 세계로 나아가며 구매욕을 자극한다. 최성수의 화려한 마지막은 그룹 다섯손가락의 이두헌이 만든 ‘잊지 말아요’가 장식했다. 이 곡은 당시 MBC 가요 차트의 정상에 등극했으며 뒤이어 ‘승부’나 ‘사랑한 만큼 아픔 이예요’ 등이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는 ‘아침이 오면’으로 어느 정도의 인기를 끌어가지만, 댄스씬이 시작되자 앨범은 연이어 외면 당했으며 후반기 작품들인 ‘TV를 보면서’나 1997년에 나온 ‘당신은 사랑입니다’ 등은 전혀 리듬을 타지 않는 그의 발라드가 더 이상의 효력을 상실했음을 입증했다. 미국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그는 현재 우리 나라에 돌아와 수원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드라마 < 아줌마 >의 메인 테마 ‘상처’로 다시 재기에 나섰다. 새 음반을 준비중인 그는 소속사와 손잡고 다시 한번 지난 시절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과 만난 뒤에 음악과 인연을 맺은 임지훈(1959년)은 신세대와 트로트 세대 사이의 낀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1990년대 댄스씬이 활화산같이 일어나자 1980년대의 뮤지션들은 설 땅을 잃었고 1990년대 말이 되서야 미사리라는 자신들의 영토를 가지고 지원군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창작의 땅이라기보다는 추억의 땅이었다. 끊임없이 새 앨범을 발표하며 같이 늙어 ...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과 만난 뒤에 음악과 인연을 맺은 임지훈(1959년)은 신세대와 트로트 세대 사이의 낀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1990년대 댄스씬이 활화산같이 일어나자 1980년대의 뮤지션들은 설 땅을 잃었고 1990년대 말이 되서야 미사리라는 자신들의 영토를 가지고 지원군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창작의 땅이라기보다는 추억의 땅이었다. 끊임없이 새 앨범을 발표하며 같이 늙어 가는 외국의 뮤지션들과 달리, 과거의 음악만을 들으며 그 당시를 회상하고픈 우리의 팬들은 새로움에 대한 낯설음보다는 익숙함에 대한 친근감을 더 선호하고 있다. 이것은 창작의 산출물로 평가받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하는 아티스트에게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임지훈은 김창완의 프로젝트 그룹 꾸러기들에 참여해 ‘그댈 잊었나’, ‘회상’,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바람 같은 인생’ 등을 불렀으며 팀이 해체된 뒤에는 업소와 대학가를 돌며 목소리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김창기의 ‘사랑의 썰물’이 들어 있는 1집에서 탁성의 절규를 선보이며 단숨에 주류의 승리자로 부상했다. 여기서 그는 ‘사랑의 썰물’로 차트를 정복한 데 이어 ‘내 그리운 나라’, ‘그댈 잊었나’, ‘회상’ 등으로 상승세를 계속 이어갔다. 이러한 인기는 199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이어간다. 그는 ‘누나야’, ‘친구에게’, ‘그대도 나처럼 외로운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라이브무대의 주요 고객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이러한 지지자들과의 교감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꺼벙한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자작 시집 < 나는 바보가 좋다 >를 발표해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댄스의 융단폭격을 맞은 가요계에서 그는 살아남지 못했다. 이후의 4집이나 기획앨범 < 서정 >, 5집 < Falk & Rock > 등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것은 그에게 충격이었고 음악만을 사랑하며 노래를 불러온 한 가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미사리에서 과거의 히트곡을 부르며 동세대와 연대의식을 함양한 그는 문득, 과거의 히트곡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외국으로 날아가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새 앨범 < Beautiful Things >이다. 그는 자신이 안주했던 포크에 대한 정서를 과감히 탈피하고자 했으며 조금이라도 새로운 물결에 몸을 맡기고자 했다. 느낌은 자신의 세대를 그대로 가져갔지만 록발라드, 팝, 록,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아 세련된 음악의 기법을 담았다. 그는 새로운 조류를 외면하거나 피하는 동지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주에서 오랫동안 녹음한 이 앨범은 아직 죽지 않은 386세대의 패기와 열정이 녹아 있으며 얼마든지 성인의 음악으로도 세대의 벽을 허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성인층을 위한 음악 무대가 좁아진 건 가수들의 게으름 탓”이라고 진단하며 숨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 그의 진정성을 앨범의 ‘가지마’와 ‘우리 모두 함께’가 증명해 주고 있다.
생년월일 : 1957년 4월 7일 록그룹의 뛰어난 기타리스트에서 작곡가, 가수, 영화배우, 영화음악가 등으로 다양한 탈바꿈을 시도한 이 시대의 거인 김수철은 우리의 음악을 세계의 수준과 겨루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도록 견인해 온 살아있는 전설이며 음악을 한 흐름에만 그치는 유행가로 남기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숨결을 불어넣은 거장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악에 대한 사랑은 현대를 살... 생년월일 : 1957년 4월 7일 록그룹의 뛰어난 기타리스트에서 작곡가, 가수, 영화배우, 영화음악가 등으로 다양한 탈바꿈을 시도한 이 시대의 거인 김수철은 우리의 음악을 세계의 수준과 겨루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도록 견인해 온 살아있는 전설이며 음악을 한 흐름에만 그치는 유행가로 남기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숨결을 불어넣은 거장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악에 대한 사랑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뮤지션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이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가 이미 이뤄놓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니 후대의 모든 음악이 그에게서 자양분을 얻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기타를 잡은 김수철은 그로부터 6개월 뒤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넣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C.C.R, 그랜드 펑크(Grand Funk), 제임스 갱(James Gang), 딥 퍼플(Deep Purple) 등의 연주에 한 없이 빠져들었고 하루 10시간씩 기타와 씨름하며 이들의 음악을 모두 카피해냈다. 이를 발판으로 중3때는 작곡에 입문했으며 후에 발표하게 되는 여러 곡들을 이미 어린 나이에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파이어 팍스(Fire Fox)라는 그룹을 만들어 미8군 무대에 진출했다. 대학진학 후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비롯한 프로그레시브 록에 빠져들어 퀘스쳔(Question)이란 그룹을 결성했으며 < TBC 연포가요제 >에 출전하였고 YMCA강당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1978년 4인조 록 그룹 작은거인을 결성한 뒤 78년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 출전한 그는 ’일곱 색깔 무지개’란 곡으로 그룹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아직도 매니아들의 경외를 받고 있는 두 장의 앨범을 ’79년과 ’81년에 발표했다. ’일곱 색깔 무지개’란 곡으로 자주 전파를 탔던 이들의 음악은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생소했던 하드록은 물론이고 소울과 재즈 등에 록을 섞은 음악이었으며 김수철의 토속적 스타일이 엿보이는 ’별리’와 같은 곡도 있었다. 대학가요제에 입상하며 여러 밴드들과 우애를 다진 그는 ’79년에는 이광조에게 ’행복’이란 곡을 주어 MBC 서울국제가요제에 입선하도록 도왔으며 ’80년에는 김태화에게 ’변덕스런 그대’를, ’81년에는 그룹 송골매에게 ’모두 다 사랑하리’를 작곡해 주어 모두 입선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멤버들이 하나 둘 그룹을 떠나자, 솔로로 독립한 그는 1983년 발표한 솔로 1집으로 스타덤에 안착한다. TV에서 주최한 가요제에서 한 아마추어에게 불리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못다 핀 꽃 한 송이’는 그 해의 노래가 되어 그를 조용필에 필적할만한 몇 안 되는 가수의 반열에 올려 세웠고, 뒤 이어 ’별리’, ’정녕 그대를’, ’내일’ 등이 연달아 히트 선상에 올랐다. 또한 2집에선 아직까지 응원가로 불리는 ’젊은 그대’와 가사 표절시비에 올랐던 ’나두야 간다’, ’정녕 그대를’, ’왜 모르시나’ 등이 1집의 승전보를 고스란히 이어갔다. 그는 이로 인해 전작들에 비해 반응이 낮았던 ’전화’와 ’돌이와 순이’가 수록된 3집, ’오늘도’가 수록된 4집으로 3년간 모든 방송사의 수상 리스트에 올랐으며 1집과 2집으로는 당시에 존재했던 모든 음악상을 독식했다. 이 인기로 그는 배창호 감독의 < 고래사냥 >에 출연했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선 신인상까지 받았다. ’못 잊을 사람’이 수록된 5집이 예전에 비해 별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86년 TV 연인극장 < 그대, 봄을 그리는 나무 >에 수록된 ’당신 때문에’로 다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는 ’86 아시안게임 전야제에서 기타산조를 초연하고 사물놀이 협연을 하면서 KBS 10대 가수상과 음악 잡지 < 음악세계 >에서 인기 기타리스트로 선정되었다. ’별리’에서 시도되었던 국악 세계를 포용하려는 시도를 4집의 ’잊어버려요’와 ’세월은 가네’에서 다시 부활시킨 그는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우리 음악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는 솔로 음반보다는 영화, 드라마, 연극 음악들에서 완벽하게 볼 수 있는데, 아시안게임 음악을 비롯해 ’87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작 ’영의 세계’, 88 서울올림픽 전야제, 89년 대한민국 무용제 대상 작품 ’불림소리’와 같은 행사음악, < 고래사냥 >, < 허튼소리 >, TV 드라마 음악 < 노다지 > 등에서 그 진가를 확인 할 수 있다. 여섯 번째 음반에서 국악풍의 가요를 클래식화한 ’변심’으로 대중음악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보여주기도 했던 그는,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랩을 선보였던 < 칠수와 만수 >, < 개그맨 >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었고 이어 작사, 작곡은 물론 드럼부터 시작해 베이스, 기타, 건반 등을 전혀 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완성한 < One Man Band > 앨범을 만들어내 세인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이 앨범에서는 김흥국의 ’호랑나비’와 쌍벽을 이루는 코믹댄스를 선보인 ’정신차려’란 곡이 관심을 끌었다. 1987년 처음 국악 앨범을 내 논 이후 그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최정점으로 끌어올린 앨범은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임권택 감독의 < 서편제 >에서였다. 이미 걸작 < 황천길 >로 국악팬들을 흥분시킨바 있던 그는 이 앨범에서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인정받았고 70만장에 이르는 판매고로 이제까지의 노고를 인정받았다. 계속해서 임권택 감독과 손을 잡고 역대 국악 앨범 중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 태백산맥 > 음반을 만들어냈으며 < 창 >, < 축제 >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80년 송승환, 진유영 등과 소형영화클럽 뉴 버드(New Bird)를 조직하여 < 탈 >이란 소형영화로 프랑스 청소년영화제에 본선까지 진출했던 그는 ’96년 춘사예술제 음악상을 수상했던, 영화 < 금홍아, 금홍아 >에서 다시 한번 연기를 펼쳐 보였다. ’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식 음악을 작곡한 그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해인사 내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 스님)의 의뢰로 < 팔만대장경 >이란 음반을 만들어내 우리 소리의 현대화 작업에 중간 결산을 이루어냈고 2002년 월드컵의 음악을 다시 총지휘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행사음악가로 인정받았다. 최근, 그룹 형식의 앨범으로 작은거인 3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8집, ’지친 어깨’와 ’남자는 외로워’가 전파를 탔던 < Men In Blue > 앨범 이후 오랜만에 대중음악으로 돌아온 그는 새 앨범 < Pops & Rock >에서 신해철, 김윤아, 박미경 등의 쟁쟁한 후배들과 함께 록과 블루스, 소울, 힙합 등을 두려 섭렵해 음악의 장인임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있다. 안성기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는 타이틀곡은 예전의 히트곡을 리메이크 한 ’나두야 간다’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악이다. 거기엔 삶의 체취가 묻어 있다. 고달픈 민초들의 영혼이 숨쉰다. 때문에 블루스는 결코 요란하지 않다. 악기 편성도 기타 위주로 아주 단촐하다. 사람 냄새를 중시하는 음악에 다양한 치장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김목경은 그 ‘인간살’의 미학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블루스 아티스트다. 그것은 < Blues(No Artificial Add...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악이다. 거기엔 삶의 체취가 묻어 있다. 고달픈 민초들의 영혼이 숨쉰다. 때문에 블루스는 결코 요란하지 않다. 악기 편성도 기타 위주로 아주 단촐하다. 사람 냄새를 중시하는 음악에 다양한 치장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김목경은 그 ‘인간살’의 미학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블루스 아티스트다. 그것은 < Blues(No Artificial Added) >, < Living With The Blues >, < Play The Blues >등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음반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음악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삼투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노랫말의 지향점이 되어 버린 말초적 쾌락과 단선적 흥겨움 대신, 생의 진솔함이 가득하다. 진지함이 있다. 김목경은 1984년 영국으로 건너가 블루스를 본격적으로 익혔다. 넉넉하지 못한 금전 사정으로 그는 디자인 학교를 다니며 음악 수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수 년 간의 어려웠던 타지 생활은 그에게 음악에 대한 시각을 열어준 소중한 경험이 됐다. 힘든 유학 시절은 그에게 블루스를 자신의 영역으로 ‘체화’하도록 해주었다. 1989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 Old Fashioned Man >을 발표하며 ‘삶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황혼에 접어든 부부를 절절하게 노래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자신의 음악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블루스 기타의 거장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에게 바치는 ‘Mr. Clapton''등이 초창기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곡들이다. 세 번째 앨범 < Living With The Blues >부터 그는 밴드 체제로 개편해 좀더 짜임새 있는 사운드를 들려줬다. 한편으로 세련미가 더해졌다. ‘Guitar man'', ‘Play the blues''등에서 그 풍성해진 음향과 원숙함을 접할 수 있다. 김목경의 블루스는 삶을 노래한다. 삶은 때론 고단하고, 때로는 등돌린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앗긴’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블루스가 존재하고, 음악이 그 아픔을 위안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한 그의 끈끈한 기타 연주는 영원할 것이다. 삶은 계속 문제 거리를 던지며 고통을 동반할 것이다. 그래도 음악은 계속된다.
느린 말투, 행동, 노래까지 모두 세상의 속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템포를 유지한다. 억지로 다니던 교회에서 우연히 기타를 접하면서 동아리에서 기타를 배웠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우연한 기회에 처음으로 홍대 클럽 공연을 보고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홍대에서 클럽 공연 활동을 해 오던 이영훈은 몇 번인가의 좌절 끝에 요조, 옥상달빛이 소속된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의 가족이 되며 오랜 시간 염원하던 그... 느린 말투, 행동, 노래까지 모두 세상의 속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템포를 유지한다. 억지로 다니던 교회에서 우연히 기타를 접하면서 동아리에서 기타를 배웠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우연한 기회에 처음으로 홍대 클럽 공연을 보고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홍대에서 클럽 공연 활동을 해 오던 이영훈은 몇 번인가의 좌절 끝에 요조, 옥상달빛이 소속된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의 가족이 되며 오랜 시간 염원하던 그의 첫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첫 앨범을 내기 전 겪은 여러 시련들 탓에 오죽하면 발매 기념 공연에서 "다들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앨범을 낼 뻔하다 안된 적이 하도 많아서 그런지 별로 실감도 안 나고 이젠 오히려 그냥 그래요"라고 대답했을 정도이다. 원래 말수도 적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아예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음악 외에 자신있게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축구'. 한 번은 다리 부상으로 축구를 쉬어야 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축구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과거 그 다리 부상의 원인은 축구였다.
작사, 작곡, 편곡 및 제작을 겸하는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1947년 11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1974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년까지 재학했다. 1967년 가을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송창식을 만났으며 1968년 남성 듀엣 ‘트윈 폴리오’를 결성해 가요계에 데뷔,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웨딩 케이크’, ‘슬픈 운... 작사, 작곡, 편곡 및 제작을 겸하는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1947년 11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1974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년까지 재학했다. 1967년 가을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송창식을 만났으며 1968년 남성 듀엣 ‘트윈 폴리오’를 결성해 가요계에 데뷔,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웨딩 케이크’, ‘슬픈 운명’ 등을 발표했다. 1969년 12월 트윈 폴리오를 해체하고 1971년부터는 솔로로 ‘비와 나’, ‘라라라(조개껍질 묶어)’, ‘비의 나그네’, ‘두 개의 작은 별’, ‘우리들의 이야기’, ‘바보’, ‘고백’, ‘사랑스런 그대’, ‘어제 내린 비’ ‘미운 사람’ 등 80여 곡을 발표했다. 1971년에는 동아방송 심야프로인 ‘0시의 다이얼’과 ‘탑튠쇼’에서 디제이를 맡았다. 그 후 동아방송 ‘팝스 투나잇’, MBC-FM '윤형주의 한밤의 데이트', CBS '찬양의 꽃다발', 극동방송 '윤형주와 함께' 등에서 라디오 진행, KBS '연예가중계‘, ‘열린 음악회’, SBS '음악세상’, MBC '청소년 음악회’ 등 TV 프로그램 MC를 맡아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 광고회사 서울오디오를 설립해 ‘오란씨’, ‘새우깡’, ‘롯데껌’ 등 1400여 곡의 시엠송과 로고송을 제작했고 지금은 (주)한빛기획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89년 케니 로저스 내한 공연 제작을 시작으로 셀린 디옹, 마라나타 싱어즈, 가스펠 가수 샌디 패티, 스티브 그린 등 해외 유명 가수의 내한 공연을 기획, 제작했다. 2003년 7월에는 카네기홀 역사상 첫 가족 공연을 했고, 그다음 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앙코르 공연을 가진 바 있다. 2010년 세시봉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으로 미주, 호주, 유럽, 일본 공연에 이어 지금도 계속 세시봉 친구들과 공연을 한다.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Habitat) 후원회장 겸 홍보위원장, 한국 십대선교회(Y.F.C) 본부 이사,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홍보이사, 법무부 홍보대사, 몰디브 명예영사, 독도 의용수비대 홍보대사 등으로 봉사해 오고 있으며 온누리교회 장로로 교도소, 장애우, 해외선교 사역을 꾸준히 펼쳐 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또 하나의 아름다움』(나침판사, 1991), 『QT로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두란노서원, 1998)이 있다.
노래만을 위해 혼을 불사른 가수로 사후에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 김현식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학교에서 자퇴한 후에는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1978년 이장희의 주선으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으나 대마초 사건과 회사 사정으로 2년이나 늦게 자신의 앨범을 갖게 된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요 레파토리가 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3집에 다... 노래만을 위해 혼을 불사른 가수로 사후에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 김현식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학교에서 자퇴한 후에는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1978년 이장희의 주선으로 솔로 앨범을 준비했으나 대마초 사건과 회사 사정으로 2년이나 늦게 자신의 앨범을 갖게 된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요 레파토리가 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3집에 다시 실리는 ‘떠나가 버렸네’ 등이 실려 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밤무대를 떠도는 무명의 가수로 생계를 이어간다. 결혼과 함께 피자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1984년 그의 소울 창법이 블루스 속에서 빛을 발하는 2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사랑했어요’와 ‘어둠 그 별빛’, ‘당신의 모습’ 등이 크게 사랑 받았으며 그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서서히 얻기 시작한다. 그는 한때 조원익이 리드하고 최구희가 기타를 치던 그룹 동방의 빛 리드싱어로 있기도 했으며 이 그룹의 해체 후에는 정성조가 팀을 이끌어 가던 메신저스의 싱어도 맡으면서 진가를 발산하기도 했다. 김종진, 전태관, 고 유재하와 후에 빛과 소금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는 박성식 장기호 등과 함께 만든 그룹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이 한 3집은 그를 인기 가수로 만든 앨범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비처럼 음악처럼’은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라디오의 전파를 탔으며 ‘그대와 단둘이서’, ‘쓸쓸한 오후’ 등이 연이어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에는 후에 그들의 앨범에 실리게 되는 ‘쓸쓸한 오후’를 비롯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작품과 유재하의 작품 ‘가리워진 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마초로 약 2달간 전인권, 허성욱 등과 구속되었던 그는 삭발 콘서트를 벌여 대성공을 거두고 1988년 4집을 발표한다. ‘언제나 그대 내 곁에’가 사랑을 받은 4집에는 윤상의 데뷔 곡 ‘여름밤의 꿈’ 고 유재하의 ‘가리워 진 길’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3집의 ‘우리 이제’에 이어 ‘한국 사람’이라는 하모니카 곡이 그의 연주로 한 트랙을 차지하고 있다. 이정선과 엄인호의 신촌블루스에서 절절한 필링의 블루스를 열창하던 그는 강인원, 권인하, 신형원 등과 영화 < 비오는 날의 수채화 >의 메인 타이틀을 불러 엄청난 인기를 모은다. 그러나 고독을 항상 술로 달래던 그는 이 때부터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 속에 노래를 부르는 병자의 모습으로 살게 되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가운데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1990년에는 그의 공식적인 앨범으로서는 마지막인 5집이 발매되고 하반기에는 그가 ‘이별의 종착역’을 부른 신촌블루스 3집이 발매된다. 그의 5집은 특별한 히트곡은 없었지만 ‘넋두리’, ‘향기 없는 꽃’이 사후에 사랑을 받았으며 < 비오는 날 수채화 >에 실린 ‘그 거리 그 벤치’도 영화 사운드 트랙의 판매에 힘입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 나왔다.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6집을 녹음하다 지병인 간경화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불과 서른 두 살의 나이로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과 동료들의 염원도 소용없이 너무나도 빨리 지상에서 사라졌다. 사후 앨범인 6집은 팬들의 명복 속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히트곡 ‘내 사랑 내 곁에’는 오태호에게 작곡가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의 사망 1주기에는 추모콘서트가 열려 김수철, 이정선, 전영록, 강인원, 조하문, 한영애, 김태화, 봄여름가을겨울 최호섭, 권인하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해 그의 노래를 부르며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고 2000년에는 그의 트리뷰트 앨범에 신인 가수와 중견 가수들이 골고루 참여해 그를 기리는 것은 물론 가요계 화합의 장으로 이어졌다. 김현식, 그는 모든 악기와 곡의 멜로디, 리듬을 떠나서 목소리만으로도 영혼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음성 자체가 외로움이 되고 사랑이 되며 무궁무진한 절대적 표현이 됨을 보여준 절창의 뮤지션이다.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전영록(1955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KBS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노래를 불렀지만 뒤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그는 데뷔 곡 ‘나그네 길’을 히트시켰고 이어 ‘애심’이란 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 제7교실 >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한 팬이 접어준 천 마리의 종이학...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전영록(1955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KBS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노래를 불렀지만 뒤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그는 데뷔 곡 ‘나그네 길’을 히트시켰고 이어 ‘애심’이란 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 제7교실 >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한 팬이 접어준 천 마리의 종이학을 계기로 다시 음악계로 돌아왔다. 이 당시의 사연을 노래로 만든 ‘종이학’으로 인기 가수의 문을 다시 두들긴 것이다. 이 곡에 이어 그는 해 마다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그대가 미워요’, ‘불티’, ‘그대 우나봐’ 등을 히트시키며 조용필 외에 한 앨범에서 두 곡 이상을 가요 Top 10에 올리는 유일한 가수가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밤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하얀 밤에’, ‘내 사랑 울보’, ‘이제 자야하나 봐’ 등을 히트시킨 1986년과 1987년에는 조용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2년 연속 KBS 가수왕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무그 연주가 2분 이상 울려 퍼지는 전주를 가진 ‘불티’의 뮤직비디오로 당시 가장 비주얼한 측면을 신경 썼던 전영록은 직접 감독을 맡은 < 돌아이 >란 영화의 시리즈로 또한 명성을 날린다. 가장 인기 있었던 시리즈는 < 돌아이2 >로 상당히 많은 관객이 그의 액션을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라디오 프로그램 < 젊음의 음악캠프 >, < 밤을 잊은 그대에게 > 등에서 DJ를 맡은 그는 1988년 발표한 앨범에서 ‘저녁놀’, ‘추억’,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 등 3곡을 연속해서 히트시켰으며 그 이듬해에는 ‘바람에 실려간 사랑’, ‘아직도 새벽은 오질 않아’를 히트시키며 오랜 동안 인기를 끌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부른 ‘황혼’이란 곡이 들어 있는 1990년도 음반에서 ‘창가에 흐르는 세월’이 별 반응을 얻지 못하며 이후로는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양수경, 임백천, 이은하 등에게 곡을 주며 히트 작곡가로도 인기를 얻었던 그는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 Oldies But Goodies >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에서 매일 밤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헌정 음반 >, 서구의 문화침탈에 대항한 <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까지 자신의 참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개혁의 기치를 빼어들었다. 그는 비록 김민기와 같이 시대적 요청의 화합물이 되거나 서태지와 같은 권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 파워맨은 아니었지만, 고군분투하여 따낸 사전검열제도폐지와 끔찍한 진실의 현장을 포착한 < 아! 대한민국 >, < 92년 장마, 종로에서 > 등으로 그 동안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소위 운동권의 저항가요들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대학이란 포장지로 감싼 운동권 가요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는 민중의 노래였으며 오랜 시간 다져진 글래디에이터의 자신에 찬 고백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들어서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이 농부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는 현악반에 다니면서 음악대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방황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도 선생님과의 이별은 그를 어두운 사춘기적 자화상 속에서 살게 했고, 재수와 함께 시작된 여러 번의 가출은 이 우울한 시인을 젊은 날의 불안한 군상들 속으로 인도했다.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결국 군대를 가야했다. 이미 학창시절에 곡을 쓸 줄 알았던 그는 이 시절에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와 같은 곡들을 만들었으며, 차근차근 모아두었던 곡들로 제대 후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에 의해 서라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78년 말에 발표한 첫 번째 음반은 엄청난 대중적인 파고를 일으키며 정태춘을 스타덤으로 인도했다. 비록 많은 가사들이 검열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그는 ‘시인의 마을’로 1979년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촛불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신인가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8년 만난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과 1980년 결혼식을 올린다. 불교적 색채를 드러낸 2집, 국악과 양악 편곡의 멋진 대비를 보여주는 3집의 실패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은 그는 부인 박은옥과 같이 하기 시작한 1984년의 앨범에서 ‘떠나가는 배’로 또 다시 스매시 히트를 터트린다.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스테디 리퀘스트곡을 남긴 이 음반은 포크적 색채를 버리고 스트링 세션 위주의 편곡으로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간 앨범이었다. 음악을 포기할 마음까지 먹었던 그는 이 음반의 성공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며 1985년 1월부터 시작된 < 정태춘.박은옥의 얘기 노래마당 >라는 공연을 벌였다. 자신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던 그는 TV를 배제한 활동을 계속했으며 ‘북한강에서’, ‘붕숭아’와 같은 곡으로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민주화 투쟁과 6.29 선언 등으로 변화한 국내의 분위기를 실감한 그는 검열을 의식해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을 모아 < 무진 새노래 >라는 타이틀로 내놓으며, 이 때부터 달라진 사회적인 시각과 국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엉켜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1988년부터는 <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라는 공연을 펼쳐 외세의 시각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 세대를 교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청계피복노조 지지공연을 시작으로 전교조 지지공연, 전노협 지지공연 등에 참석하거나 주도적으로 행사를 만들어 대중집회의 단골주자로 부상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만들어진 < 아, 대한민국 >이 1990년 발효된 새 음비법을 따른 공륜에 의해 거부당하자, 음반을 불법 복제 테이프로 만들어 발표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했으며1991년 1월 29일 <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 위원장을 맡아 반대 성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전검열제도 폐지와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해서 < 92 장마, 종로에서 >를 테이프로 제작해 배포했으며 이 앨범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는 사전 심의 조항 폐지 운동은 1995년 11월 7일 국회를 통과하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힘없던 시인의 승리는 이렇게 기나긴 길을 돌아서 찾아왔다. 그의 고생을 우리는 피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1998년 정태춘은 늘 함께 해온 부인 박은옥과 함께 20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함춘호, 조동익 등의 일급 세션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초창기 서정미의 단아해진 멜로디들을 들을 수 있으며 한 층 더 깊이가 새겨진 선동성을 읽을 수 있다. 포크 음악인들 위주의 중견 가수들과 함께 위성방송에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콘텐츠 회사 S.O.K를 설립한 그는 평생 넘어야 할 산처럼 버티고 있는 국악에 대중적인 접근을 꿈꾸며 지금도 대중 집회를 빠짐없이 순회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의 거울이다.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를 국악적 특색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음률에 실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이번 내레이션 진행은 그의 첫 영화작업으로, ‘블랙딜’ 기획안을 보고 한번에 흔쾌히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울림있는 내레이션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 진정성을 더했다.

Album
1978 《시인의 마을》
1980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1983 《떠나가는 배(이어도)》
1985 《북한강에서》
1988 《정태춘 박은옥 무진 새노래》
1993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5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
2002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2012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그 애와 나랑은’을 히트시킨 그는 ''73년 앨범에서 ‘그건 너’를 히트시키며 아이돌스타로 떠올랐다. 그룹 동방의 빛을 결성해 당시 리사이틀이란 이름으로 유행하던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절정의 인기를 과시했고, 1974년에는 영화 < 별들의 고향 > 음악을 작곡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전국적으로 히트시켰다. 하지만 김민기, 양병집,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등이 활동하며 트로트 문화에 일침을 가한, 음악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누렸던 1970년대 초반의 이 르네상스는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대중가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이루어지면서 급격히 퇴락 한다. 정부에서 허락 받은 노래만 불러야 했던 탄압은 이장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의 모든 곡들은 퇴폐적이고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독재 정권의 주도자는 “잠 못 드는 이유는 바로 너”라는 가사가 자신을 빗대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장희는 같은 해 11월, 대마초사건으로 이종용, 윤형주, 김세환, 신중현, 김추자 등과 함께 구속되고, 활동을 정지 당한다.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그의 곡들은 뛰어난 강근식의 필링이 주조된 ‘띵~’하는 사운드로 대표되는 것으로 포크적 이였지만 분명 두터운 음색과 비음에서 사이키델릭의 요소를 느낄 수 있고 ‘한 소녀가 울고 있네’와 같은 곡은 전적으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뛰어난 곡이다. 또한 그의 가사는 추상적이고 시적인 가사 위주의 풍토를 이후 구어체적이고 현대적인 가사로 탈바꿈하는데 많은 공을 세워, 당시 청년 문화의 표준적인 감성체계를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방송에서 DJ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조영남, 김세환, 정미조, 송창식 등에게 곡을 주었던 그는, 활동이 정지되자 그룹 사랑과 평화를 출범시킨다. 작곡가란에 이름을 내 걸 수 없어서 가명을 사용했지만 ‘장미’, ‘한 동안 뜸했었지’, ‘어머니의 자장가’는 모두 그의 노래였고 이런 숨은 노력은 이 그룹을 최고의 연주팀으로 만들었다. 해금 후 1982년 ‘진정 사랑해’가 든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녹음실과 의상실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김현식의 앨범을 제작하던 중 부도를 맞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변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재미교포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가끔씩 임병수 등에게 곡을 주며 국내에도 소식을 알렸다. 한 동안 국내 상황을 관망하던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후 자신의 마지막 솔로 앨범을 내놓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곡이 들어 있는 이 앨범에서는 ‘솜사탕’이 라디오를 탄다. 같은 뮤지션의 길을 걸었던 동생 이승희의 죽음으로 고국을 찾기도 했지만, 이장희는 현재 한인 사회에서 가장 큰 라디오 방송국 < 라디오 코리아 >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지내고 있다. 카리스마를 뽐내던 콧수염도 밀고.
6살 때 맹인이 된 소울 뮤직의 거장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창법에 영향을 받은 권인하는 자작곡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이광조에게 주면서 음악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그룹 위(We)를 결성해 ‘세상이 모두’, ‘찬비’ 등으로 라디오용 히트송을 발표한 그는 올림픽의 열풍이 식을 즈음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솔로 앨범으로 이름을 얻기보다는 김선민의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의 객... 6살 때 맹인이 된 소울 뮤직의 거장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창법에 영향을 받은 권인하는 자작곡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이광조에게 주면서 음악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그룹 위(We)를 결성해 ‘세상이 모두’, ‘찬비’ 등으로 라디오용 히트송을 발표한 그는 올림픽의 열풍이 식을 즈음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솔로 앨범으로 이름을 얻기보다는 김선민의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의 객원 싱어로 ‘동숭로에서’를 히트시키며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여기서 그는 인상적인 샤우트 창법으로 모든 작곡가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강인원과 만나면서 ‘비오는 날 수채화’로 그 해를 휘어잡고 이어 이 앨범의 솔로 곡 ‘오래 전에’로 사랑을 받는다. 1990년 그는 강인원이 프로듀싱한 그의 두 번째 앨범을 내놓는다.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 때’와 신윤미의 앨범에서 같이 부른 ‘다이얼을 돌려요’로 전에 없는 사랑을 받은 그는 FM의 라디오 진행을 맡으며 높은 인지도를 획득한다. 하지만 권인하는 그 후 여러 차례 DJ와 MC를 맡으며 가수보다는 방송계의 인물로 인기를 얻는다. TV 미니시리즈 < 창밖엔 태양이 빛났다 >, 뮤지컬 < 우리 집 식구는 아무도 못 말려 > 등의 출연은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부여한다. 한동안 민해경과 함께 강인원의 페르소나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1993년 강인원, 전인권, 김명상 등과 프로젝트 그룹 느티나무언덕을 결성하여 재미있는 가사로 인기를 모은 ‘자아성찰’이라는 곡을 발표했고 작곡가 이영훈의 솔로 작품집에서 이문세를 제치고 ‘그대의 사진’을 부르기도 했다. 1997년부터 1년 여간 신촌뮤직의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있으면서 장고웅과 함께 여러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한 그는 드라마 < 온달왕자들 >에 삽입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사랑이 사랑을’이 실린 다섯 번째 솔로 음반을 2000년에 발표하고 < 김현식 트리뷰트 > 앨범에 ‘하나로’란 곡으로 참여한다. 현재 < 신촌 인터내셔널 >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 위먹스(Wemux) >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만들어 DJ로도 활동하고 있는 권인하는 여주 대학, 숭실대 사회교육원 등에서 실용음악을 지도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가수 겸 작곡가로 세 권의 시집과 노랫말 창작론 『오선지 위를 걷는 시인들』, 노랫말 필사책 『펜으로 노래하다』를 냈다. 대표곡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2009 KBS 아름다운 노랫말상을 받았다. 음악극 [그 사내 이중섭] [오세암] [그 여자네 집] [윤동주-별을 스치는 바람]을 쓰고 연출했다. 음반으로 이철수 판화를 주제로 한 국악퓨전명상음반 [산책] [고요한 기쁨], 법정 스님 산문집을 ... 가수 겸 작곡가로 세 권의 시집과 노랫말 창작론 『오선지 위를 걷는 시인들』, 노랫말 필사책 『펜으로 노래하다』를 냈다. 대표곡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2009 KBS 아름다운 노랫말상을 받았다. 음악극 [그 사내 이중섭] [오세암] [그 여자네 집] [윤동주-별을 스치는 바람]을 쓰고 연출했다. 음반으로 이철수 판화를 주제로 한 국악퓨전명상음반 [산책] [고요한 기쁨], 법정 스님 산문집을 노래로 담은 [무소유의 노래], 백석 시가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윤동주 시가집 [윤동주의 노래](2015), 우리나라 시인들의 대표작을 노래로 담은 [몸에 좋은 시, 몸에 좋은 노래] I, II, III집 등을 발표했다. 방송과 무대를 통해 다양한 ‘북&송 콘서트’도 열고 있다. 현재 (사)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부회장, 공연과 음반을 기획하는 ‘노래의 인문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노래 : 강산에 (본명 : 강영걸)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강산에(강영걸)는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으로 순식간에 존재를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얌전히 모범생으로 자라 한의대에 입학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서울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학비조달에 무거운 짐을 느끼던 중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 업소의 노래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았던 가수라는 직업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강산에(강영걸)는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으로 순식간에 존재를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얌전히 모범생으로 자라 한의대에 입학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서울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학비조달에 무거운 짐을 느끼던 중 이종환이 운영하는 라이브 업소의 노래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았던 가수라는 직업은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놀러갔던 그는 그 곳에서 두 번째로 문화적인 충격을 받으며 음악은 가수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일본을 좋아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틈틈이 곡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수를 포기해 버린 뒤라서 기획사의 끈질긴 회유에도 한동안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데뷔 앨범은 일본에서 만든 곡들치고는 대단히 국내의 토착 생활을 일깨우는 음악들로 가득 차있다. 이로 인해 비평적으로 환대를 받았으며 국내 록 음악의 새로운 물결로 제시 되었다. 그만이 낼 수 있는 시원한 목소리는 수록곡들을 활기차게 만들었고 빠르게 인기를 안겨주었다. 이 첫 앨범에는 ‘에럴랄라’, ‘할아버지와 수박’, 그리고 이산의 아픔을 서민의 정서에 담아 관통한 ‘...라구요’와 같은 일상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곡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내지르는 칼칼한 목소리는 이른바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게 했다. 이런 독특한 색깔은 그를 록은 록이지만 서구의 록과 다른 맛을 내는 가수로 인식되게 했으며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록음악의 대안으로 꼽히게 했다. 시작은 0부터라는 생각에서 붙인 앨범 제목처럼 그의 반골적인 기질과 직선적 사고도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첫 앨범으로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둬 단연 록계의 유망주가 되었다. 두 번째 앨범은 1집에 비해 꽉 짜여진 느낌이 덜 하지만 반전 문제를 다룬 ‘더 이상 더는’이나, 돈의 문제를 직설적 화법에 실은 ‘문제’(원래 제목은 ‘돈’이지만 심의 과정에서 불가 판정을 받아 바꿨다),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아웃사이더’와 같은 곡들로 계속해서 자신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무엇보다도 최대의 히트곡 ‘넌 할 수 있어’가 들어 있는 이 앨범으로 라이브 공연을 시작한 그는 공연중 반말을 하는 등의 사건으로 매체에서 가장 꺼리는 가수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굽히지 않는 소신은 더욱 더 록커의 모습으로 서게 했다. 세상이 강요한 대로만 살았던 그가 이제서야 사춘기를 느낀다는 제목의 2집 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른 그는 1996년 서우영의 드라이하고 단선적인 멜로디의 ‘삐딱하게’가 실린 를 발표한다. 좀 더 의식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앨범에는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태극기에 감정 이입한 ‘태극기’, 통일을 염원한 ‘One’ 등이 있으며 너무 형식화되고 보편화되어 개성이 없는 모습에 짜증을 낸 ‘삐딱하게’, 남들과 다르고 싶은 그의 생각을 “삐딱하며 자유롭게”라고 외치는 ‘차라리’에서처럼 자신의 고유한 멋을 잃어버린 세태에 대한 불만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일본인 친구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에는 영화 에서 쓰였던 ‘어쩌면’이 수록되어 있고 표지를 비롯한 속지 디자인은 어어부밴드의 마부가 했으며 ’별뜻없어’에서는 이상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1998년에 나온 그의 4집은 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제목의 트랙인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은 사회적인 맥락의 이슈들을 개인의 문제로 득화시켰다. 사고의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의 모습처럼 의도적인 메시지보다는 자신의 성찰을 담아내려 한 이 앨범에는 ‘미스 탬버린’이나 ‘춤추는 나’와 같이 예의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흥겨운 록큰롤도 있었지만 왠지 시장에서 많은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그는 쉬어 가는 의미에서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곡들을 담아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했다. 이정선의 ‘우연히, 한 대수의 ‘물좀 주소’, ‘하루 아침’,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조동진의 ‘제비꽃’ 등이 수록된 이 앨범에서 그는 블루스에 기초한 발성과 시원한 목소리로 새로운 맛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 동안 금기시 했던 미디 음악에 대한 모색을 하며 다양화를 위한 전초전을 마련했다. 그는 한 때 대마초 사건으로 사회 봉사 활동을 명령받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사막을 여행하며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가롯 유다 역이 이끌어낸 호평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돌아갈 곳은 음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라는 타이틀을 걸고 무대로 돌아온 그는 “열창은 가수의 사회 봉사”라며 가수로서의 직무 유기를 하는 요즘 세태를 비판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그는 200여 명의 가수들과 함께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의 콘텐츠 사업에 참여했으며 단 1%의 재편집이나 더빙이 없는 순수 라이브로 제작된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2002년 10월에 발표한 총 일곱번째 앨범은 본명인 강영걸을 타이틀로 내세우고 스트레이트한 록을 구사했던 전작들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있다. 그간 그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왔던 하치 히로부미를 뒤로 하고 직접 프로듀서의 명함을 새긴 그는 근력보다는 연륜의 깊이에 기대고 있는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도 사투리를 강조한 ’명태’, ’와그라노’ 등을 국내적인 랩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아내가 작사했다는 부드러운 선율의 ’지금’이란 곡이 타이틀곡으로 내정됐다.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사업거리를 구상한다. 1981년 해바라기 출신의 이주호와 지금은 녹음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성일 등과 유리박이란 그룹을 결성한 유익종은 이 팀의 와해와 동시에 이주호와 듀엣 해바라기를 출범시킨다. 해바라기의 1집에선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 이예요’ 등이 히트했지만 이주호와의 음악 차이를 느낀 그는 팀을 떠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사랑의 눈동자’를 히트시킨다. 하지만 그룹 활동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로 했던 해바라기 3집으로 다시 해바라기의 멤버로 오랜 활동을 한다. 이 앨범에서는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등이 크게 히트하고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도시의 밤 풍경’ 등이 라디오를 타면서 2년여간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된다. 아직도 이 시절의 인기는 그를 해바라기 시절의 멤버로 각인 시킨다. 해바라기 3집 발표 시에는 그의 솔로 2집 앨범이 일주일먼저 나오고 이주호의 앨범 등과 겹쳐 솔로 활동은 해보지도 못하고 접는다. 2집에서는 아직까지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87년 옴니버스 앨범에 유영건이 만든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를 수록해 주목을 받은 그는 1989년 미국의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으로 교민들의 인기를 모은 하광훈의 ‘이연’이 수록된 3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여진의 ‘그해 가을’, ‘가을에 떠난 사람’, ‘하나가 되어’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1년 ‘차창에 흐르는 이별’이 수록된 4집은 그가 처음으로 제작하고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앨범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외면을 받은 앨범으로 기억된다. 후에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모아 발표한 < Worst > 앨범에서 이두헌이 만든 ‘저길 저편 저 차에 오르면’, 박강성의 ‘그대의 허상’ 왈츠 풍의 ‘그리움’ 등을 수록해 4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반추’가 수록된 5집을 발표한 유익종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는다. 앞으로 나올 3장의 기획 앨범 중 첫 번째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 3분의 1 > 앨범에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조용필의 ‘들꽃’, 최성수의 ‘해후’ 등을 불러 오랜 소원을 풀었다. 1998년에 발표한 6집에는 ‘그리운 얼굴’이 주목받으며 매스컴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따로또같이의 ‘나는 이 노래하리오’의 두 가지 버전을 수록해 자신의 스타일과 유행하는 현재의 음악 스타일을 비교하였다. 1999년 묻어만 두기엔 아까운 노래들로만 모은 < Worst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최근 미사리에서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며 7집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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