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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히트곡 모음집 (Top Hits of the '40s)

[ 2CD 디지팩 ]
Al Jolson, Vaughn Monroe, Andrews Sisters, Bing Crosby, Frank Sinatra 노래 외 1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Not Now / Not Now | 2019년 09월 03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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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히트곡 모음집 (Top Hits of the '40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9월 03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Swanee - Al Jolson
  • 02 Pennsylvania 6-500 - Glenn Miller
  • 03 Ain’t Misbehavin’ - Fats Waller
  • 04 Riders In The Sky - Vaughn Monroe & His Orchestra
  • 05 Rum And Coca Cola - The Andrews Sisters
  • 06 Route 66 - Nat King Cole Trio
  • 07 Pistol Packin’ Mama - Bing Crosby
  • 08 All Of Me - Frank Sinatra
  • 09 Confess - Doris Day & Buddy Clark
  • 10 Dancing In The Dark - Artie Shaw
  • 11 Now Or Never - Billie Holiday
  • 12 After you’re Gone - Benny Goodman
  • 13 It’s Only A Paper Moon - Ella Fitzgerald
  • 14 Dry Bones - Fred Waring & His Pennsylvanians
  • 15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 - Peggy Lee
  • 16 Bless You (For Being An Angel) - The Ink Spots
  • 17 Alexander’s Ragtime Band - Bing Crosby & Al Jolson
  • 18 If I Loved You - Perry Como
  • 19 The Trolley Song - Judy Garland
  • 20 Caldonia - Louis Jordan & His Tympany Five
  • 21 Slipping Around - Margaret Whiting & Jimmy Wakely
  • 22 Chattanooga Choo Choo - Glenn Miller
  • 23 Paper Doll - The Mills Brothers
  • 24 Opus One - Tommy Dorsey
  • 25 Sentimental Journey - Doris Day & Les Brown
Disc2
  • 01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 Peggy Lee & Benny Goodman
  • 02 Swinging On A Star - Bing Crosby
  • 03 Stardust - Artie Shaw
  • 04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 Ella Fitzgerald & The Ink Spots
  • 05 Buttons And Bows - Dinah Shore
  • 06 Is You Is Or Is You Ain’t My Baby - Louis Jordan & His Tympany Five
  • 07 American Patrol - Glenn Miller
  • 08 Come To Baby, Do! - Doris Day & Les Brown
  • 09 How High The Moon - Ella Fitzgerald
  • 10 Tweedle-O-Twill - Gene Autry
  • 11 Stormy Weather - Frank Sinatra
  • 12 You Can’t Lose A Broken Heart - Billie Holiday & Louis Armstrong
  • 13 You Always Hurt The One You Love - The Mills Brothers
  • 14 Moppin’ And Boppin’ - Fats Waller
  • 15 There, I’ve Said It Again - Vaughn Monroe & The Norton Sisters
  • 16 California Here I Come - Al Jolson
  • 17 Hold Me - Peggy Lee
  • 18 Love Somebody - Buddy Clark & Doris Day
  • 19 Prisoner Of Love - Perry Como
  • 20 The Wedding Samba - Edmundo Ros & His Orchestra
  • 21 Ac-Cent-Tchu-Ate The Positive - Bing Crosby & The Andrews Sisters
  • 22 Nature Boy - Sarah Vaughan
  • 23 Tuxedo Junction - Glenn Miller
  • 24 Blueberry Hill - Louis Armstrong
  • 25 ‘A’ You’re Adorable - Perry Como & The Fontaine Sisters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21명)

노래 : Al Jolson (앨 졸슨,Asa Yoelson)
노래 : Andrews Sisters (앤드류스 시스터스)
노래 : Frank Sinatra (프랭크 시나트라,Francis Albert Sinatra)
스타 앞에서 소녀 팬들이 괴성을 지르다 졸도하는 장면은 팝 음악 또는 록 음악의 무대에서만 발견되는 히스테리적 광경이다. 비틀스, 베이 시티 롤러즈, 마이클 잭슨,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이 그런 장면 하면 떠오르는 스타들일 테지만, 그 부문의 원조는 역시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50년대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엘비스 이전에 십대 소녀의 아우성과 기절 소동을 일으킨 스타가 분명히 있었다. ... 스타 앞에서 소녀 팬들이 괴성을 지르다 졸도하는 장면은 팝 음악 또는 록 음악의 무대에서만 발견되는 히스테리적 광경이다. 비틀스, 베이 시티 롤러즈, 마이클 잭슨,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이 그런 장면 하면 떠오르는 스타들일 테지만, 그 부문의 원조는 역시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50년대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엘비스 이전에 십대 소녀의 아우성과 기절 소동을 일으킨 스타가 분명히 있었다. 그 주인공은 40년대의 빅 스타 프랭크 시나트라가 되는 셈이다. 40년대를 통해 그는 여성팬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42년 그가 ‘타미 도시와 그의 오케스트라’의 싱어로 활약하면서 뉴욕의 파라마운트 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 수많은 여고생들이 입장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당시는 ‘빅 밴드’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었지만 소녀들은 빅 밴드의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밴드의 젊고 깡마른 가수를 보려고 벌떼처럼 몰려든 것이었다. 그가 무대에 입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객서의 십대 소녀들은 목청이 터져나가도록 소리를 내질렀고 급기야 복도에서 졸도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때 졸도한 소녀들 가운데는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도 끼어 있었다는 보도가 이어져 ‘흠집’을 남겼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현대의 ‘팝 히스테리’가 탄생된 순간이었다. 44년 10월에 있었던 파라마운트 공연에서는 무려 2만 5천명의 틴에이저들이 거리를 막고 아우성치는 대소동이 일어나 십대 우상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재확인되었다. 그래서 한때 시나트라는 ‘졸도 유발의 황제’ ‘수백만을 전율시키는 목소리’(나중에는 단축되어 ‘목소리’)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젊음의 음악인 록 뮤직이 아닌 당시의 팝, 그것도 ‘어른적인’ 스탠다드 팝을 가지고 소녀 관객의 흥분을 자극했다는 점은 실로 기념비적이었다. 그만큼 그는 충분한 매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때는 전시(戰時)였고 젊은 남자들이 징병으로 끌려가 없고 여성들 가슴에 고독이 엄습해 왔을 때 ‘이웃집 청년’같은 그는 알맞은 해소 상대가 되었던 것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1915년 뉴 저지주 호보큰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부르는 재질이 뛰어나 고교 때는 교내 합창단을 조직하기도 했으면 졸업 후에는 신문을 나르는 트럭 운전사, 스포츠 기고가로 활약했다. 36년 빙 크로스비의 공연을 보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이듬해 팝계에 데뷔했다. 그 후 그는 십대 소녀의 우상이 되었고 팝계뿐 아니라 영화계도 섭렵, 전천후 스타로 명성을 휘날렸다. 80세를 목전에 둔 지금도 활약을 계속하여 ‘팝 뮤직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려지고 있다. 그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음악팬들에게 ‘품위있는 노신사’, ‘노래하는 예술가’ 등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대중음악계 ‘보수 진영의 원로’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 비판적 시각의 젊은이들로부터는 적지 않은 비난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청년 세대의 우상으로 무대생활이 펼쳐졌지만 그의 시대 이후 등장한 젊은 감각의 노래에는 등을 돌렸다. 그는 4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와 ‘중산층의’ 대중음악인 스탠다드 팝만을 고수했다. 그가 선 무대는 늘 그런 음악에 걸맞는 고급 사교홀이나 서민층은 접근하기 어려운 대극장이었다. 편안하게 연예계를 주름잡고 있던 그는 50년대 중반 일대 위기를 맞았다. 대중음악계에 록 뮤직이 침투한 것이었다. 그는 뉴 뮤직인 록큰롤이 팝계를 강타하고 젊은층을 장악하게 되면서 스탠다드 팝의 인기가 폭락하자, 즉각 위기관리자의 역할을 자처하여 록에 대한 비판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이때 그의 나이 이미 사십대에 들어서 리듬이 강한 록 음악을 그가 수용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에 대한 시각은 너무도 강경했다. 그는 58년 의회의 연단에 등장, 록 음악의 폐해를 증언했다. 여기서 그는 록큰롤을 “가장 야수적이고 절망적이고 추하며 사악한 표현양식”이라고 성토했다. 또 록큰롤 하는 가수들은 저능한 되풀이와 교활하고 저속한, 단순하게 말하면 더러운 노랫말로 십대를 유혹하는 ‘백치의 깡패들’이라는 것이었다. 나쁘다는 어휘는 총동원시킨 듯한 이런 규탄도 부족했던지 시나트라는 “그런 빗나간 방식으로 록 음악은 지구상의 모든 구렛나룻 십대 범죄자들의 군대 음악이 되려 하고 있다”거 쏘아붙였다(구렛나룻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상징이었다). 스탠다드 팝의 위기라는 판단에서 록을 공박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는 록 뮤직의 이념적 특질이라고 할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도전적 가치를 혐오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기 세대의 음악 스탠다드 팝에 평생 수절(?)한 만큼, 50년대 이후 록 음악과포크 음악이 내세운 ‘저항’의 기조에는 쌍심지를 켜고 반발했던 것이다. 저항을 이념으로 했던 70년대 말의 펑크를 비난한 것이나 90년대 미국 국가의 연주를 거부해 물의를 빚은 시네드 오코너의 행각에 크게 분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록 음악 불가론’을 제창했던 그는 록의 위용이 의외로 거세다고 판단, 곧 입장을 수정했고 60년 TV 프로그램에서는 군복무를 마치고 귀향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무대의 황제’라는 칭송과 함께 그를 따뜻하게 환영하기도 했다. 그는 데뷔이래 부와 명성에 엄청난 집착을 보여온 인물로 유명하다. 한 예가 그의 대표작이 된 53년도 영화 <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와 관련된 에피소드. 40년대에 천하를 호령하던 그는 50년대 초반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갑작스런 슬럼프에 직면했다. 가수에게 중요한 목 상태가 악화되었고 두 번째 아내 에바 가드너와의 파경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 주원인이었다. 레코드 판매는 뚝 떨어졌고 영화 출연 제의가 끊겼으며 목에서는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재기를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 지상에서 영원으로 >의 돋보이는 마지오 배역을 따내야 했다.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으며 배당금을 취소로 정하는 수모도 감내했다. 이를 악물고 덤벼든 결과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위기관리의 천재다운 면모였다. 그는 소속 레코드사인 캐피톨을 떠나 61년 리프라이즈 레코드사를 차려 사장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2년 뒤인 63년 회사를 대기업인 워너브라더스에 팔아넘겼다. 리프라이즈의 매매는 그에게 엄청난 돈을 안겨주었고, 그는 이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엔터테이너 중 한 사람으로 부상했다. 그에게 최고가치는 언제나 달러였고 그는 열심히 그것을 찾아다녔다. 그는 사업운영에 있어서 간혹 정계와 손을 대기도 해 논란을 빚었으며 72년에는 경마장의 부정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의회의 범죄색출위원회에 출두, 신문의 톱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같은 스캔들은 80년대에도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마피아와 밀월관계에 있었으며, 마피아를 등에 업고 연예활동을 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86년에는 시나트라와 마피아의 관계를 폭로한 그의 전기 『그의 길』(His Way)이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가장 비난이 집중되었던 사건은 보츠와나 공화국의 ‘선 시티’ 공연 부분이었다. 81년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만든 초호화판 휴양지인 이 공연장의 개막식에 리자 미넬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특별무대를 가졌다. 그는 9일간 여기에 출연하는 대가로 1백 6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그의 선 시티 출연은 폭압적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는 남아공의 체제유지에 기여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로 의식 있는 팝 가수 진영으로부터 지탄을 받기에 충분했다. 85년 리틀 스티븐(스티븐 밴 잰트)의 발의로 결성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하는 아티스트연합’은 ‘반(反)선 시티’를 주장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일부 팝 가수들의 비양심을 맹공했다. 선 시티 출연으로 평소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인식되어온 그의 이미지는 크게 추락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본래의 보수성을 그럭저럭 잘 감추어온 그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준 ‘오점’이 되었다. 그는 정당과 관련하여 애초 40년대에는 보수적인 공화당보다는 개혁지향적인 민주당 쪽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는 진보파인 민주당후보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지지했으며 루즈벨트를 존경하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따 자기 아들의 이름을 프랭클린 웨인 시나트라로 짓기도 했다. 47년에는 쿠바를 방문해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할 정도로 진보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의 고수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반비례했다. 그는 74년 미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안드레오티 수상을 환영하기 위해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베푼 백악관의 만찬석상에 출연,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속뜻이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입지를 변화시킨 ‘철새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히트송 레퍼터리는 나열이 벅찰 정도로 무수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나의 길(My Way)’일 것이다. 원래는 프랑스 샹송으로, 라스베가스에 함께 출연하고 있던 폴 앵카가 은퇴를 앞둔 시나트라를 위해 영어 가사를 붙여 개작해준 곡이다. 시나트라의 인생이 그려진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그다지 크게 히트하지 못했으나, 영국에서는 40위권내에 무려 122주간 랭크되는 전무후무한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인생의 종반부가 다가와 난 종막을 맞이하고 있네. 여러 벗들에게 나만이 확실히 알고 있는 인생 기록을 말하겠노라. 난 인생의 항로를 고루 밟아가며 꽉찬 삶을 살아왔지. 그게 나의 길이었소. 후회도 얼마간 있었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었네.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철저히 해내었지. 항상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전세 낸 인생 코스를 계획했지. 그게 나의 길이었소. 물론 감당하지 못할 고난의 시절이 있었지. 의혹의 순간도 있었다오, 그러나 난 그것을 나 혼자 씹어 삼키고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 당당히 일어섰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살아온 그것이 나의 길이었소.’ 이 노래로 인생을 정리한 그는 70년 은퇴를 공식 선언했으며, 71년에는 화려한 고별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불과 2년 후인 73년 그 결심을 번복하고 다시 팝계에 복귀해 노래와 연기를 계속했다. 그러한 것이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길이었다.
노래 : Doris Day (도리스 데이)
노래 : Billie Holiday (빌리 할리데이)
재즈 보컬 재즈 보컬
노래 : Ella Fitzgerald (엘라 피츠제랄드)
엘라 핏제랄드는 재즈 보컬의 역사를 다시 쓴 디바이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이 재잘거리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가장 능숙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악기 못지 않은 즉흥성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스윙과 비밥 시대에 걸쳐 더욱 빛난 달콤한 목소리와 넘실대는 스윙감을 통해 엘라 핏 랄드는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재즈역사에 각인되었다.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와 함... 엘라 핏제랄드는 재즈 보컬의 역사를 다시 쓴 디바이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이 재잘거리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가장 능숙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악기 못지 않은 즉흥성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스윙과 비밥 시대에 걸쳐 더욱 빛난 달콤한 목소리와 넘실대는 스윙감을 통해 엘라 핏 랄드는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재즈역사에 각인되었다.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와 함께 재즈 음악사에 길이 남는 ‘여인천하’를 이뤄낸 엘라 핏제랄드는 1917년 4월 25일 버지니아주 뉴포트에서 태어났다. 비운의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처럼 엘라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성장기의 대부분을 홈리스(homeless)로 보낼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엘라는 1934년 뉴욕 할렘가에 소재한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청중의 자격으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던 밴드 리더이자 드러머인 칙 웹(Chick Web)은 이 체구 작은(?) 소녀에게서 가능성을 발견, 자신의 빅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게 한다. 칙 웹의 도움으로 엘라는 그의 밴드의 리드 싱어 자격으로 대중 앞에 섰고 얼마 후 그녀가 데카(Decca) 레이블에서 처음 녹음한 ‘A-tiskete, A- Taskete’(1938), ’Undecided’(1939)가 공전의 히트를 거두며 가수로서의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그러나 1939년, 칙 웹의 갑작스런 요절로 인해 엘라는 그 후 2년 간 그가 떠난 밴드의 빈 공간을 메워 나가야 했다. 1942년 솔로로 독립한 그녀는 예전 소녀의 상큼함과 순수함이 느껴지던 데뷔시절과 달리 좀 더 완숙한 목소리로의 변신을 필요로 했다. 잉크 스팟(Ink Spot), 루이스 조던(Louis Jordan)과 같은 R&B 싱어들과 잠시 활동을 같이 하던 엘라였지만 자신이 가야할 길은 역시 ‘재즈’임을 깨 닳고, 1946년 노먼 그란즈(Norman Granz-훗날 버브 레코드의 사장이 됨)를 새 매니저로 맞이하며 비밥의 거성인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밴드의 리드 싱어로 일하게된다. 디지와의 연주 경험은 엘라가 비밥의 문법을 자기의 목소리로 소화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변화무쌍한 리듬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파트별 연주에 맞춰 터져 나오는 유창한 스캣 창법은 비밥의 연주와 그녀의 보컬이 어울림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 트리오의 백업 연주로 녹음된 ‘How high the moon’(1947)같은 곡에서 그녀의 스캣 창법은 악기에 버금가는 애드립이 목격된다. 1955년 버브(Verve)와 전속 계약을 맺은 엘라는 이 때부터 음악 인생의 최고의 황금기를 맞는다. < Songs from Pete Kelly’s blues >(1955)가 앨범 차트 7위를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기가도를 질주한다. 이듬해, 구수한 목소리의 트럼펫 주자 루이 암스트롱과의 듀엣 < Ella & Louis >(1956)가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쿼텟의 백업 연주로 발표 되 대중적, 비평적 찬사를 얻었으며 두 사람간의 음악적 교분은 < Ella & Louis again >(1957)과 < Porgy & Bess >(1958)로 이어진다. 이 앨범들은 재즈 팬들의 필수 컬렉션 대상들이기도 하다. 같은 해 <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이 재즈 판을 휩쓸며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성공을 거둔다. 이를 시작으로 엘라는 조지 거쉰(George Gerswin), 제롬 컨(Jerome Kern), 해롤드 알렌(Harold Arlen), 어빙 벌린(Irving Berlin)등 1세대 틴 팬 앨리 작곡가들의 명곡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방대한 작업을 수행한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틴 팬 엘리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하트 로렌즈(Hart Lorenz)의 곡으로 꾸며진 실황 앨범 < Ella Fitzgerald Sings The Rodgers And Hart Song >(1957)의 성공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군림하게 된다. 틴 팬 앨리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1958-59년 사이에 녹음해 발표한 조지 & 이라 거쉰(George & Ira Gershwin)의 곡을 집대성한 < The George & Ira Gershwin Song Book >(1959)을 통해 정점에 다다른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엘라는 < Mack The Knife-Ella In Berlin >(1960)을 폴 스미스(Paul Smith) 쿼텟의 연주로 녹음된 라이브 앨범을 공개, ‘How high the moon’, ’Mack the knife’를 히트시킨다. 이후 1963년엔 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퀸시 존슨(Quincy Jones)이 편곡으로 연주된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의 협연작 < Ella & Basie! >과 1965년엔 오랫동안 음악적 교분을 쌓아온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다시 의기투합해 < Ella At Duke Place >를 각각 발표하는 등 스윙의 거장과의 잇단 명작을 공개한다. 캐피톨(Capitol)로 이적해 다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간 엘라는 1969년 그만 백내장으로 인해 잠시 활동을 중단한다. 1973년 연로한 나이에 불구하고 < Ella Fitzgerald At The Carnegie Hall >을 발표했고, 1977년 몬트럭스 재즈 페스티벌에도 참가해 실황 앨범 < Ella Fitzgerlad With The Tommy Flanagan Trio-Montreux’77 >을 공개하며 예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손색없는 보컬 기량을 선보였다. 1980년대 이르러 지병인 심장병으로 인해 예전만큼의 노련함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엘라는 근근히 연주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그러나 나빠진 건강과 시력을 인해 그녀는 1994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2년 후인 1996년 6월 15일 비버리 힐즈에 있는 자신에 집에서 세상을 떠난다.
영화배우, 가수 영화배우, 가수
멤버 : 존 밀스 주니어(John Mills Jr., 바소, 기타), 허버트 밀스(Herbert Mills, 테너), 해리 밀스(Harry Mills, 바리톤), 도날드 밀스(Donald Mills, 리드테너) 멤버 : 존 밀스 주니어(John Mills Jr., 바소, 기타), 허버트 밀스(Herbert Mills, 테너), 해리 밀스(Harry Mills, 바리톤), 도날드 밀스(Donald Mills, 리드테너)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노 연주자
연주 : Artie Shaw (아티 쇼,Arthur Arshawsky)
재즈 밴드 리더, 클라리넷 연주자 재즈 밴드 리더, 클라리넷 연주자
’스윙의 왕(King of Swing)’ 베니 굿맨(Benny Goodman)은 1935년 대공황의 터널을 지나온 미국 사회를 들뜨게 한 ’스윙 열풍’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까지 흑인의 전유물로만 인식되던 재즈를 미국 주류 백인계층에까지 파급시키며 재즈의 대중화에 일익한다. 그의 음악은 비슷한 시기 인기를 얻었던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 밴드들보다 악보에 근거한 정확한 연주를 했지만 즉흥성에 있어서는... ’스윙의 왕(King of Swing)’ 베니 굿맨(Benny Goodman)은 1935년 대공황의 터널을 지나온 미국 사회를 들뜨게 한 ’스윙 열풍’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까지 흑인의 전유물로만 인식되던 재즈를 미국 주류 백인계층에까지 파급시키며 재즈의 대중화에 일익한다. 그의 음악은 비슷한 시기 인기를 얻었던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 밴드들보다 악보에 근거한 정확한 연주를 했지만 즉흥성에 있어서는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청감(聽感)이 빼어났고, 열정과 즐거움이 가득한 재즈 연주곡들을 많이 남기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윙 연주자로 남아있다. 1909년 5월 30일 미국 뉴욕에서 데이비드 벤자민(David Benjamin)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10살 때부터 클라리넷 연주 레슨을 받기 시작,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25년, 학교를 자퇴하고 벤 폴락(Ben Pollack)밴드의 일원으로 일하게 된다. 스무 살이 되던 1929년, 폴락 밴드를 떠나 뉴욕에 정착, 라디오 방송과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프리랜서 연주인으로 생활을 해 나간다. 1931년엔 그의 이름으로 첫 음반을 발표, ’It’s not worth your tears’를 차트에 올려놓는다. 1932년 여름, 루스 콜롬보(Russ Colombo)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다,1934년 자신의 빅 밴드를 조직한다. 1934년 가을, 빌리 홀리데이를 비롯한 수많은 재즈 뮤지션을 발굴해 낸 명 프로듀서 존 하몬드(John Hammond)의 도움으로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며 ’Ain’t cha glad?’ (잭 티가든 노래), ’Riffin’ the scotch’ (빌리 홀리데이 노래), 그리고 ’Ol’ pappy’ (밀드레드 바일리 노래)를 모두 톱 10 에 올려놓으며 그의 순조로운 출발을 예견했다. 1934년 6월 그의 첫 넘버원 곡 ’Moon glow’가 발표되었고, 이어서 나온 ’Take my word’와 ’Bugle call rag’ 역시 톱 10에 오른다. 여기에1934년 11월부터 NBC 라디오 쇼 < 레츠 댄스(Let’s Dance)의 토요일 고정 출연자로 발탁되며 대중적인 관심을 얻는데 기여한다. 이듬해인 1935년 7월, 그의 밴드는 미국 투어를 시작했고, 8월 21일, L.A.소재 팔로마 무도장(Palroma Ballroom)장에서 열린 그의 공연은 대성공을 거둔다.(이 날을 기점으로 ’스윙의 시대’가 열렸다고 재즈 학자들은 얘기한다.) 스윙의 인기를 증명하듯 앨범 판매 역시 늘어나 그가 콜럼비아에서 발표한 6곡의 연주를 모두 톱 텐에 올렸고, RCA에서 이적하여 내놓은 5곡의 싱글(’Sing, sing, sing’과 ’Stompin’ at the Savoy’ 포함) 역시 그 해 말까지 모두 톱 10을 기록하는 저력을 드려낸다. 바야흐로 ’스윙의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 인기는 그칠 줄 몰라 1936년엔 무려 15곡의 톱10 히트곡을 발표했고, 스윙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 < 카라반 >(Caravan)의 진행자로도 맹활약한다. 여기에 영화 < The Big Broadcast >(1937)에도 출연, 영화배우로도 화려한 성공 행진을 이어나간다. 같은 해 6곡의 톱10과 함께 ’This year’s kiss’로 두 번째 넘버원의 영광을 얻는다. 1938년 1월 16일, 스윙 밴드로선 물론이며 대중 음악인으로선 처음으로 뉴욕 카네기 홀 무대에 서며 그의 인기는 정점에 다다랐다. 이전까지 바(Bar)나 무도장에서만 연주되던 재즈는 이와 함께 콘서트 장에서 듣는 ’지적이고 고상한’ 음악으로 발전해가기 시작한다. 공연 실황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 Live at The Carnegie Hall >(1938)로도 출시, ’Stompin’ at the Savoy’, ’Sing, sing, sing’과 같은 스윙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들을 들려준다. 특히 ’Sing, sing, sing’에서 폭발적인 드러밍을 선보인 진 크루파는 이 앨범을 통해 일약 재즈 스타로 부상한다. 같은 해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알게 된 프로듀서 존 하몬드(John Hammond)가 기획한 미국 대중 음악을 집대성한 고전 < From Spiritual to Swing >(1938)에서도 스윙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참여한다.(역시 카네기 홀에서 진행된 본 녹음 실황은 이후 3장의 CD로 엮은 박스 세트로도 출시된다.) 베니 굿맨 밴드엔 재즈 역사에 길이 남을 걸출한 재즈 뮤지션들이 거쳐갔다. 트럼페터 해리 제임스(Harry James), 지기 엘만(Ziggy Elman), 비브라폰주자 라이오넬 햄프턴(Rionel hampton), 드러머 진 쿠르파(Gene Krupa)가 그의 밴드 고정 멤버들이였고, 밴드에서 피아노와 전체 편곡을 담당했던 비운의 재즈 대가 플래처 핸더슨(Fletcher Henderson), 쿠티 윌리엄스(Cootie Williams), 찰리 크리스챤, 테디 윌슨도 그의 밴드를 거쳐갔다. 베니 굿맨의 인기는 상쾌한 멜로디와 신명나는 리듬이 감지되는 그의 탁월한 곡 해석력에서도 비롯됐지만, 그의 음악의 맛을 한층 우려낸 사이드 맨들의 공력이 있었기에 그의 음악은 한층 미국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당시까지 재즈에선 드문 백인 연주자였던 점은 그가 ’스타’로 떠오르는 동인이 되었다. 베니 굿맨은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는데, < Hollywood Hotel >(1937), < The Powers Girl >(1942), < The Gang’s All Here >(1943), < Stage Door Canteen >(1944), 그리고 사운드 트랙까지 담당한 < Make Mine Music >(1946)등이다. 1955년엔 그의 음악 인생을 담은 영화< The Benny Goodman Story-스티브 알렌이 베니 굿맨 역 >이 나온다. 이후 모던 재즈시대의 도래한 1944년까지 그의 밴드는 꾸준히 히트 곡을 양산하며 전성을 구가한다. 1944년 그는 자신의 빅 밴드를 해체시키고 이후로는 소규모 연주 편성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지속한다. 다른 빅 밴드 리더와는 달리 이렇다 할 창작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가 1930-40년대 남긴 스윙 히트곡은 지금껏 미국 대중들의 애청곡 리스트로 남아있다. 베니 굿맨은 1986년 6월 13일 맨하탄에서 7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연주 : Louis Jordan (루이스 조던 (재즈 보컬, 색소폰))
재즈 트롬본 연주자, 밴드 지휘자 재즈 트롬본 연주자, 밴드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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