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벌써 20여 년 전이다. 윤태옥과 나는 직장의 상사와 동료로 만났다. 늘 정장 차림의 만남이어서 그랬을까. 그는 늘 반듯해 보였지만 눈빛은 늘 살아서 번뜩였다. 그의 졸라맨 넥타이로 가린 가슴 너머로 결코 어디에도 가둘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팔딱이고 있는 걸 나는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그의 발상은 늘 어느 정도의 파격과 반란을 품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의 의견을 경청했고 또 거기에 따르기를 좋아했다.
장발을 산발한 채로, 아마도 본래의 그의 모습이었을 모습으로 나타난 그를 몇 년 만에 만났다. 지난 몇 년, 그는 배낭과 사진기를 걸쳐 메고 중국의 구석구석을 누볐다고 했다. 아직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말이 어울리는 땅, 우리 5천 년 역사를 통틀어 싫건 좋건 외면할 수 없었던 땅 중국! 그의 말대로 중국은 우리 조상들의 운명이었고, 이제는 우리의 무대이고 이웃이고 시장이고 놀이터이고 학교인 나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삼국지의 무대였던 땅을 누비고 다니며 많은 걸 이야기하고 많은 걸 보여준다. 『소설 삼국지』와 『역사 삼국지』를 견주어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흐릿한 흔적들 앞에서 그 나름의 독특한 시선으로 해석한 인물론을 펼쳐 보인다. 독자들은 이제까지 모르고 지냈던 조조와 제갈량과 유비를 새롭게 만날 것이다.
중국 역사의 한 장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와 오늘을 헤아리고자 하는 분들, 『삼국지』의 실상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들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라면, 이 책은 매우 반가운 친구일 것이다.
김한길(소설가, 전 문화관광부 장관)
『삼국지』, 정확히 말해 『삼국지연의』를 엮은 나관중은 전국의 저자거리를 누비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관련 자료란 다름 아닌 천 년 넘게 전해오는 삼국시대 인물들의 영웅담을 저자거리 청중들에게 신나게 이야기해주는 설서인設書人책 읽어주는 사람)의 입담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삼국지연의』는 천 년의 입담에 나관중의 발과 귀가 합세함으로써 화려하게 재탄생하고 재창조된 문화 콘텐츠다.
수많은 설서인의 입담을 거친『삼국지연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다. 이것이 시공을 초월하여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저자가 조조와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도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 작용한 결과이고,『삼국지연의』의 캐릭터들은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는 힘과 지혜를 준다.
이 책의 저자 윤태옥은 자신을 배낭객이라 자칭한다. 자기만큼 큰 배낭을 지고 이야기가 있는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찾아다닌다. 이런 점에서 나관중의『삼국지연의』가 배낭객 윤태옥을 이끈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대판 설서인 윤태옥이 들려주는 조조와 제갈량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자.
김영수(중국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