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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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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문재인 대통령 2020년 독서의 달 추천도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

봉오동·청산리 대첩 100주년(2020)

[ 개정증보판 ]
김삼웅 | 레드우드 | 2019년 06월 30일 리뷰 총점9.6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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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4쪽 | 464g | 153*226*20mm
ISBN13 9791187705161
ISBN10 118770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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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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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 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 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필화사』,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나는 박열이다』,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3·1 혁명과 임시정부』, 『장일순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수운 최제우 평전』,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5·18 광주혈사』, 『운암 김성숙』, 『나철 평전』, 『정의의 길, 역사의 길』, 『광이불요의 지도자: 성재 이시영 선생 평전』, 『개남, 새 세상을 열다』, 『이승만 평전』, 『김재규 장군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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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하늘을 나는 홍범도’, 독립전쟁의 전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7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젖동냥으로 어렵사리 자라다 9세에 아버지까지 여읜 소년 홍범도. 그는 머슴으로 살다 15세에 나팔수로 병영 생활을 시작한다. 1895년 본격 의병투쟁에 투신한 홍범도는 간도와 연해주에서 크고 작은 항일 전투를 무수히 치르는 동안 아내와 아들을 잃는다. 그러나 역경에 굴하지 않고 그는 대한독립군 창설과 국내진공작전 및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독립 영웅으로 우뚝 선다.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은 아니지만 남다른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 장군은 광복 74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봉오동·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앞두고 홍 장군의 유해를 언제까지 이역만리에 방치할 것인가? 평전의 대가 김삼웅 저자는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라고 전한다.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홍범도의 뜨거운 삶을 돌아보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게릴라전 즉 ‘빨치산’ 투쟁으로 일제와 싸웠다. 홍범도 역시 항일 빨치산 전투의 주역이었다. 홍범도는 자신의 권위나 이익을 내세우지 않는 남다른 인격, 열세를 극복하는 탁월한 지휘 능력과 기발한 전술 작전으로 항일투쟁의 전설이 되었다. 상해 임정 건립 시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던 문창범(1870~1938년)의 증언에 의하면 홍범도는 수수한 조선인 노인의 옷차림을 한 산포수다운 비범한 장수였고, 투박한 말투 반면에 인자한 태도가 마치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고 한다.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서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하여 국치 이래 첫 국내진입작전으로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청산리대첩 이후 일본군의 보복인 ‘삼광전략’으로 연해주로 쫓겨가고, 이후 재개를 도모했지만 더욱 극심한 고난이 잇따른다. 고려공산당 내의 주도권 파쟁으로 발생한 ‘자유시참변’을 겪어야만 했고, 스탈린 정권하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했던 홍 장군의 삶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는 ‘좌파 독립운동가’?

남북에서 ‘통일 조국의 사표’로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홍범도는 그의 치열한 항일투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소홀히 취급받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독립운동 연구가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그를 기릴 만한 후손이 없으며, 불행하게도 홍 장군이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크질오르다에서 서거했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붕괴되는 1980년대 말까지 카자흐스탄은 ‘철의 장막’에 가려지고, 홍범도의 소식도 차단되었다. 또한 그의 활동 영역이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 지역 위주였고, 이르쿠츠크 등에서 러시아 측과 협력하여 항일전을 벌인 것, 한때 레닌을 만나 권총을 선물받고 볼셰비키에 입당한 일 등을 이유로 일부 역사학자들에게 ‘좌파 독립운동가’로 몰리기도 했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평가와 역사적 자료를 더해 홍범도 장군의 활동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고자 애썼다. 그리고 머슴 출신의 산포수 의병장, ‘저명한 조선 빨치산 대장’이라는 칭호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된 건 아닌지 반문한다. 청산리대첩은 홍범도, 김좌진, 이청천 등 군지휘관의 연합작전 및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으로 이룬 것이다. 어떠한 연유와 배경이든 공적의 상당 부분이 묻히거나 다른 독립운동가에게 전공을 빼앗기는 것은 바로잡아야 할 바다.

추천평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무장독립투쟁에 큰 획을 그은 영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진 부분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 까닭은 장군의 투쟁 무대가 북만과 한·러 국경지대였고, 서거하신 곳이 카자흐스탄인 데다 동서 냉전시대에 그곳과 단절되어 있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으며 항일투쟁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장군의 가족이 몰살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국 열사들의 위대한 삶과 사상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령 알고 있다 해도 그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다. 그러한 형편에서 김삼웅 선생이 역사 자료를 정리해 집필한 평전들은 우리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독립전쟁 전승 100주년(2020년)을 앞두고 항일 무장투쟁사의 신화를 남긴 여천 홍범도 장군의 평전을 재발간하게 되어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
- 이종찬 ((사)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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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Think 2.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영웅, 홍범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異**********나 | 2020-10-12

  두 번째로 읽는 '김상웅의 평전'이었다. 지난 번에 읽은 책은 <의열단>에 대한 책이었고, 이번엔 <홍범도>다. '김상웅의 평전'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는 '애국지사에 대한 찬사'다. 허나 결코 가볍지 않다.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꾸밈'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실'에 대해 가감이 없다. 공사의 구분이 명확하게 평가를 내리고, 공과의 내용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우리가 <평전>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풀이고 걸러내는 일을 벌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김상웅의 평전'은 일단 그런 점에 대한 걱정을 내려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 그의 글 하나하나에서 '최대한 객관적 서술'을 하려고 애쓰는 대목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잊혀진 영웅, 홍범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영웅이며 '대한독립군'을 조직하고 일제의 정규군대와 맞서 싸워 승리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첫째는 그가 머슴을 살던 '평민 출신'이라서, 둘째는 그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공산주의자라서, 셋째는 그의 일가족 모두가 '무장독립투쟁' 중에 사망해서 후손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곤 한다. 홍범도의 첫 번째 부인은 일제의 가혹한 고문을 받고도 남편의 행적을 발설하지 않았으나 끝내 고문후유증으로 순국하셨으며, 첫째 아들은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비다가 일제 정규군과 교전중에 중대원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둘째 아들은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비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병사하고 말았단다. 그렇게 홍범도 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을 모두 잃고 홀홀단신으로 살다가 끝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이국타향에서 광복 2년 전에 75세의 나이로 순국하셨다.

 

  물론, 광복 뒤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다 감출 수는 없었다. 허나 광복 직후에 혼란스런 정국과 분단, 끝내 '한국전쟁'이 벌어져 이념으로 인한 분단에 이르자 '소련 공산당'에 투항해서 민족을 배반한 영웅으로 깎아내려지고 만다. 이렇게 잘못된 평가를 내리게 된 '결정적 원인'은 <청산리 대첩>에서 함께 싸웠던 '이범석'이라는 위인 때문이었단다. 이범석은 '김좌진 장군'의 휘하에 있던 장교였는데, 훗날 이승만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도 있을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고, <우등불>이란 '자서전'도 남겼는데, 이 책에서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크게 깎아내리고 김좌진 장군의 업적만 드높이면서 상대적으로 김좌진 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자신을 내세운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홍범도 장군은 싸웠다 하면 '연전연패'를 하였고, 훗날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였다면서 '반공주의'를 외치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홍범도 장군'은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잊혀진 영웅'이 되고 말았던 셈이다. 더구나 후손도 남기질 못했으니 '조상의 업적'을 기려줄 이도 없었던 탓이 가장 큰 셈이다. 친일과 매국을 했던 경력이 있는데도 자신의 조상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선전을 하던 뻔뻔한 후손들 덕분에 광복이 된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찬밥 취급을 받던 것을 생각하면 열불이 터질 지경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군'이었으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홍범도 장군'의 업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왜냐면 일제는 대규모 정규군대를 풀면서 오직 '홍범도 장군'만을 쫓았으며, 홍범도를 소탕하려다 도리어 '독립군들의 매복'에 걸려서 전멸하거나 '홍범도 장군'의 귀신 같은 용병 전술에 걸려들어서 자기들끼리 교전을 하다 몰살을 당하는 등 몇 날 며칠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대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고도 홍범도 장군은 자신의 전공이 아닌 '독립군' 모두의 전공이라며 공을 모두에게 돌려세우는 겸허한 영웅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그의 말을 따르고 의지하며 힘든 전쟁을 치루고 또 치뤘던 것이다.

 

  허나 <청산리 대첩> 이후에 일제의 보복으로 이루어진 '간도참변'으로 독립군을 안팎으로 도와주던 '한인들' 수천 명이 몰살 당하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홍범도에게 패배한 일제는 자신들의 치욕을 되갚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인'을 보이는 족족 다 죽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북간도 일대'에서 활약을 하던 독립군들이 러시아땅으로 움직였고, 홍범도가 이끌던 독립군도 '연해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허나 그곳에서도 반겨주는 이들은 없었다. 당시 러시아는 일본과 함께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지위를 누리던 때였기 때문에 '한인들'에 대해서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만주'를 탐내고 있던 터라 러시아도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서 '한인들'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당장 시급한 문제는 '볼세비키'가 저지른 '공산 혁명'이었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극동지방'에 관심을 둘 수 없었고, 그 틈을 노린 일제는 연해주 일대에 군대와 밀정을 파견하는 등 '한인과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혈안이 되던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공산 혁명'은 성공을 거두고 러시아는 무너졌다. 뒤이어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들어서면서 여러 갈래의 공산주의 파벌 싸움이 한창 벌어지자, 그 여러 세력들에 의해 '한인'과 '독립군'의 운명도 갈래갈래 찢어지고 말았다. 그 혼란속에서도 초지일관 '독립운동'에만 몰두하던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었단다. 그는 평민 출신이고 무장(장수) 체질이었기 때문에 '먹물'들이 벌이전 이념 투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한 가지'로 힘을 모으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고만 있었단다.

 

  그때 '자유시 참변'이 벌어진다. 소련 공산당은 '독립군'에게 일체의 무기와 식량을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무장해제'를 요구했는데, 이 '무장해제'를 두고 독립군들 간에 의견충돌이 벌어졌고, 무장해제를 하네 못하네, 지원을 얼마큼 받았네 못 받았네, 그리고 이념과 이를 둘러싼 파벌 간의 이해가 서로 충돌하면서 '독립군'들끼리 내전이 벌어지는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소련의 부적절한 조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우리 동족들'끼리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서로 총질을 하여 우리 스스로 '독립군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애초부터 홍범도와 휘하 부대원들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이렇다할 '이념'도 갖고 있질 않았기 때문에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한 발 물러 서있었지만, 훗날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홍범도가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홍범도는 여러 차례 중재를 하며 사태를 일단락 시키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소련 공산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장해체'를 하고 만다. 국내진공작전이 실패하고 북간도와 연해주에서 연이은 '한인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소련의 힘을 빌어서라도 '일제'와 싸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에서 정착해서 토지를 지급 받고 농사라도 지을 땅을 배급 받기 위해서는 '공산당원증'이라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 사연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은 아니었다. 상황이 급변해서 소련과 일본은 서로를 '불가침한다'는 조약을 맺게 되고, 연해주에서 일본군이 철수를 해버리자 더는 '한인과 독립군의 도움'이 필요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약속했던 무기지원과 토지배급도 받지 못한 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망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시작'이었다.

 

  그나마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화려한 전적이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호의로 작용했기 때문에 한줄기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소련의 1인자와 2인자가 홍범도에게 '영웅 칭호'를 하며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받은 '호의'였다. 이로써 한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 보장되겠다 싶었지만, 1년 뒤에 레닌이 사망하고, 트로츠키 또한 추방을 당하며 '스탈린'이 집권을 하자, 상황은 급반전하고 말았다. '고려인의 강제이주'가 시작된 것이다. 연해주를 출발해서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지금의 '카자흐스탄'까지 몇 달을 달려간 '강제이주'는 황폐한 땅에 버려지는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소수민족'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강제이주를 당한 터라 일종의 '본보기'가 되었고, 강제이주의 '실험쥐'가 된 셈이라 도착해서 사망한 사람보다 '이동중'에 사망한 이가 더 많을 정도로 참혹한 처사였다. 더구나 버려진 곳에서 '지급'받기로 했던 땅과 식량, 그리고 집도 못받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버려진 민족'이었다.

 

  허나 우리의 조상들은 그 차가운 황무지를 개간하고 물을 끌어들여 벼농사에 성공하며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처음엔 냉소적이었던 '현지주민들'조차 우리 조상들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불굴의 의지에 감탄하며 서서히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더욱 악랄했다. 약속했던 땅(?)에서 그나마 먹고 살만해지자 이번엔 '한국어 금지' 명령을 내렸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받는 수모는 설움에 더해 '민족의식'마저 끊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홍범도를 비롯해서 우리 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스탈린의 강압적인 정책으로 '한국인'은 군인이 될 수도 없었고, 교사가 되는 일도 절대 불가였다. 평생은 '무장'으로 살아온 홍범도에게 일제와 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겨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홍범도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백발백중의 '사격솜씨'를 보이며 일제와 싸울 수 있는 전장에 내보내달라며 소리쳤지만, 소련 당국은 일제와 싸울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홍범도의 솜씨에 박수를 치면서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쓸쓸히 지내던 차에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늙은 몸으로 홀로 살아가며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이라며 '재혼'을 권유했단다. 두 번째 부인에게는 '손녀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재롱을 보며 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것이 인생 말년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그의 일대기를 '연극'에 올리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되고, 결국 <홍범도 일지>가 완성되며 '연극'이 공연되었단다. 이 연극은 망국의 설움을 딛고 만리타향에서 살고 있던 '한인들'의 가슴을 적셨으며,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와중에는 '현지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패망 2년을 앞두고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사인은 '노환'이었다.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던 장군이 끝내 '독립'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75세의 나이로 서거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최근에서야 소상히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로 낙인을 찍어버려 역사에서 지워버렸고, 우리는 그렇게 잊어버렸던 셈이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맞이했으니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고 스러진 영웅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유일한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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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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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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