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12월 전사이벤트
12월 혜택 모음
북클러버
청춘 응원 이벤트
주말엔 보너스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김초롱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인생 도서

관련상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작가에게 세 명의 후배가 찾아온다. 그들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저 | 위즈덤하우스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CD

세비지스: 파괴자들 영화음악 (Savages OST)

Adam Peters, Gustavo Santaolalla, John Tavener 작곡/M. Ward, Cut Copy 노래 외 7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Varese Sarabande | 2012년 08월 14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54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23,000원
할인가 6,900 (70%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BC카드 BC카드 4000원 할인쿠폰 (페이북 경유, 금요일 9시 1500장 한정)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한정판매

수량
배송비 : 2,000원 해당 상품과 도서 포함하여 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세비지스: 파괴자들 영화음악 (Savages OST)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2년 08월 14일
제조국 미국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디스크

CD 1
  • 01 Neptune’s Net - M
  • 02 Cartel Theme - Adam Peters (:43)
  • 03 Where I’m Going - Cut Copy (3:35)
  • 04 Romantic Theme - Adam Peters (2:04)
  • 05 Legalize It - Peter Tosh (4:38)
  • 06 Mandala - Thievery Corporation featuring Anoushka Shankar (4:02)
  • 07 Hijack In The Desert - Adam Peters (3:17)
  • 08 Quien Es El Patron - Systema Solar (3:26)
  • 09 Romance In Durango - Bob Dylan (5:45)
  • 10 Whipping - Adam Peters (1:53)
  • 11 Paradise Circus (Gui Boratto Remix) - Massive Attack (8:06)
  • 12 Psycho Killer - Bruce Lash (4:28)
  • 13 Miles De Pasajeros (Mightysphnix Transpo Remix) - Gustavo Santaolalla, Bajofondo and Supervielle (4:25)
  • 14 Eternity’s Sunrise - John Tavener (10:47)
  • 15 Dust Bowl - Adam Peters (1:55)
  • 16 Do Ya - Jeff Lynne (3:56)
  • 17 Here Comes The Sun - Yuna (3:06)
  • 18 Savages... Force Of Nature - Adam Peters (3:13)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2명)

작곡 : Adam Peters (아담 피터스 (영화음악))
작곡 : Gustavo Santaolalla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라틴아메리카의 전방위 뮤지션" “< Cuatro Caminos >는 록 엔 에스파뇰(Rock En Espanol) < Kid A >라 할 수 있다. 확실히 팬들에게 지적인 해방감을 주며, 어떤 언어권에서도 놓치지 않을 음악의 향후 행보인 것이다.” - Alternative Press “멕시코의 비틀즈, 비스티 보이스, 라디오헤드? 게으른 미국 음악 저널이 카페 타쿠바(Cafe Tacuba)에 같다 붙인 ... "라틴아메리카의 전방위 뮤지션" “< Cuatro Caminos >는 록 엔 에스파뇰(Rock En Espanol) < Kid A >라 할 수 있다. 확실히 팬들에게 지적인 해방감을 주며, 어떤 언어권에서도 놓치지 않을 음악의 향후 행보인 것이다.” - Alternative Press “멕시코의 비틀즈, 비스티 보이스, 라디오헤드? 게으른 미국 음악 저널이 카페 타쿠바(Cafe Tacuba)에 같다 붙인 그 누구도 아니다. 이들은 멕시코의 카페 타쿠바다. 또한 음악 잡지에서 인용한 비위 상하는 문구를 음반 겉에 붙여 놓았지만, < Cuatro Caminos >는 록 엔 에스파뇰 < Kid A >가 아니다. < Kid A >가 이처럼 좋았던 건 아니다.” - All Music Guide 멕시코 밴드 카페 타쿠바의 2003년 앨범 < Cuatro Caminos >(제 4의 문)에 대한 호평이 이어진다. 평마다 라디오헤드가 거론되는데, 그들의 팬으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들어보는 수밖에…. 마침 1992년부터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오기 시작한 타쿠바의 앨범 중 가장 최근 것인 < Cuatro Caminos >가 국내 음반 쇼핑몰에 있었다. 구입. 실제 들어본 결과 먼저 감상을 남긴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라디오헤드 얘기가 나온 김에 마무리하자면,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들처럼 대중적인 지지 기반이 폭 넓은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느낌은 분명히 온다. 그렇다. 데뷔 앨범부터 멕시코에서 ‘더블 골드(4만장)’을 기록해 기분 좋게 출발한 이들은 제 1회 라틴 그래미에서 ‘올해의 록 앨범’상을 수상했다. 멕시코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들에 대해 지는 “라틴아메리카의 리더 50인” 리스트에 이들의 자리를 마련해 평가하기도. 과거의 라틴 아메리카 리더를 따라가다가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결과는 몹시 희망적이다. 과거의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 체 게바라, 아니 쿠바에서는 그가 태어나고 사망한 날이 국가적으로 기념되고, 어쩌면 현직 대통령은 카스트로지만 가슴 속의 대통령은 그라고 한다. 영화 의 개봉과 함께 15권 짜리 체 게바라 전집이 출간되며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다. 체 게바라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런 열풍이 뒷북이라거나 겉치장일 뿐이라며 밥맛 없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나 진지한 책을 통해 만난 체 게바라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일과 분명 다르지 않을지. 영화 를 보고 학생은 무전 여행을 떠나고,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겠지만, 그러지 못할 게 뻔하지만, 적어도 먼지 쌓인 일기장을 펼칠 수 있는 용기는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4년 최고의 사운드트랙을 만나고, 구스타보 산타올라야(Gustavo Santaolalla)라는 노장 뮤지션이 이 멋진 음악들을 만들었으며, 그가 그냥 늙은이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된다. 2000년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에게 최고의 해였다. 앞서 소개한 카페 타쿠바의 프로듀서로 그가 작업한 < Reves/Yosoy >가 프로듀서 상을 안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후보에 오른 경쟁작 역시 그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해 라틴 그래미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인 후아네스(Juanes)의 앨범과 사운드트랙 < Amores Perros >까지 모두 세 작품이니, 과연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프로듀서라 할만하다. 아르헨티나 뮤지션인 산타올라야는 아르헨티나 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세루 히란(Seru Giran), 아르헨티나의 존 레논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세루 히란의 리더), 라틴 아메리카의 밥 딜런 레온 히에코(Leon Gieco), 팻 매스니 그룹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페드로 아즈나르(Pedro Aznar) 등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그의 동년배들과 함께 록 엔 에스파뇰의 중심 인물로 활동해 왔다. 그는 1960년대부터 여러 밴드를 이끌었다. 60년대 말에 결성한 아르코 이리스(Arco Iris)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70년대에는 솔루나(Soluna)를 이끌었다. 60년대의 록 청년 누구나 그랬듯이 비틀즈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한 그는 곧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음악을 서구의 록과 재즈 어법에 도입했고 때로는 좀더 깊은 뿌리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요소도 적극 도입했다. 그의 ‘융합’의 방법론은 밴드를 이끌며 프로듀서로 수많은 앨범을 작업하고 자신의 솔로 앨범도 발표하는 잡식성 활동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1978년 미국 진출 후 그는 웻 피크닉(Wet Picnic)이라는 펑크 록 그룹을 이끌면서 말디타 벤신다드(Maldita Vencindad), 카이파네스(Caifanes), 카페 타쿠바 등 록 엔 에스파뇰 밴드의 프로듀스를 맡았다. 대안적이라고 평가받는 라틴 아메리카 뮤지션 중 산타올라야가 설립한 레이블인 ‘Surco’(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국제 배급 계약을 맺고 있다)가 배출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몰로토브(Molotov)의 1997년 작 < Donde Jugaran Las Ninas? >는 세계적으로 1백만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라틴 그래미 7개 부문 후보작 후아네스 역시 ‘Surco’ 소속이다. 아방가르드 챔버 밴드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과 벌인 두번째 공동 작품과 우루과이 밴드 라 벨라 푸에르카(La Vela Puerca)의 두번째 앨범 등 ‘Surco’는 장르와 국가를 떠나 ‘범 라틴아메리카’적인 활동의 장이 되고 있다. 왕성한 활동에 비해 솔로 앨범은 적은 편으로 1995년에 두번째 앨범 < Gas >를 발표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많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는 동안) 발음도 생소한, 낯선 뮤지션들 이름에 지루했을 것 같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들부터 직접 만나보자. 조용범 / 월드뮤직
작곡 : John Tavener (존 태브너,John Kenneth Tavener)
노래 : Bob Dylan (밥 딜런 ,Robert Allen Zimmerman)
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聖人)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 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聖人)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eatles) 그리고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이들 ‘전설의 빅 4’ 가운데에서도 딜런이 남긴 궤적은 차별화 아닌 특화(特化)되어 역사를 장식한다.

얼핏 그의 위상은 ‘실적주의’로 따질 때 매우 허약해 보인다. 엘비스, 비틀스, 롤링 스톤즈는 그 화려한 전설에 걸맞게 무수한 히트곡을 쏟아냈다. 넘버 원 히트곡만 치더라도 엘비스는 18곡(통산 2위), 비틀스는 20곡(1위), 스톤즈는 8곡(11위)이나 된다. 하지만 딜런은 그 흔한 차트 1위곡 하나가 없다. ‘Like a rolling stone’과 ‘Rainy day woman #12 & 35’ 등 두 곡이 2위에 오른 것이 고작이다. 차트 톱 10을 기록한 곡을 다 합쳐봐야 4곡에 불과할 뿐이다. 그에게 대중성이란 어휘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업적이란 말과는 아예 인연이 없다. 이렇듯 실적이 미미한 데도 록의 역사는 마치 신주 모시듯 그를 전설적 존재로 떠받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틀스, 스톤즈, 엘비스는 차트 정복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비록 그 가지는 다를지언정 ‘록의 스타일 확립’ 이라는 몸체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비틀스는 록의 예술적 지반을 확대했고, 스톤즈는 록에 헌신하며 형식미를 완성했고, 엘비스는 록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고들 한다. 분명히 딜런도 몸체에 자리한다. 깃털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타(他) 3인의 몸체가 외양이라면 그는 ‘내면’ 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노랫말이요, 메시지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음악은 사운드와 형식만으로 이미 메시지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로큰롤이 폭발하여 확산되던 시점인 1950년대, 즉 엘비스가 활약하던 당시에 로큰롤은 메시지가 없었다. 1960년대 들어서 비틀스가 미국을 급습해 록의 르네상스를 일궈내고 있던 때까지도 록은 의미있는 가사와 격리된 상태였다. 그래서 의식계층으로부터 멸시를 당했다. 그 때 밥 딜런이 있었다. 비틀스는 누구보다 먼저 딜런의 위력을 절감했다. 그의 포크 사운드와 메시지를 귀담아 듣고 그것을 자신들의 음악에 적극 수용한다. 1965년말 < Rubber Soul > 앨범의 수록곡인 ‘In my life’, ‘Girl’, ‘Norwegian wood’ 등에서 ‘톤 다운’ 을 드러내며 메시지를 잠복시킨 것은 전적으로 딜런의 영향 때문이었다.

밥 딜런은 실로 대중 음악의 지성사(知性史)를 이룬다. 타임(Time)지의 제이 칵스는 1989년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존 업다이크의 소설과 밥 딜런의 앨범 가운데 어느 것이 미국인들의 삶에 보다 자극을 주었는가? 존 업다이크 쪽에 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이 기사를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가사는 그러나 때론 메시지의 파악이 어려운 ‘난해한 현대시’ 와 같다. 밑줄 긋고 열심히 분석해도 도대체 명쾌하지가 않다. 1960년대 중반 < Another side of Bob Dylan >, < Bring it all black home >, < Highway 61 revisited >가 연속 발표되었을 때, 미국 각 대학의 영문과에 ‘밥 딜런 시분석’ 강좌 개설이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팝팬들에게 딜런이 상대적으로 소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도 이 정도인데 영어의 벽에 막혀 있는 우리가 어찌 그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겠는가. 때문인지 음반마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초기곡으로 알려진 것은 그나마 메시지가 확연한 ‘Blowin’ in the wind’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1970년대 중반의 금지곡 태풍으로 반전(反戰) 노래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방송과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 외 우리 팝 인구에 회자된 노래로 ‘One more cup of coffee’나 ‘Knockin’ on heaven’s door’가 있다. 그러나 그의 대표곡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는 ‘One more cup of coffee’가 통한 것은 단지 낭만적 제목과 함께 친숙한 선율 때문이었을 뿐, 딜런의 음악 세계에 대한 천착의 결과물은 전혀 아니었다. ‘Knockin’ on heaven’s door’ 인기의 영예도 실은 건스 앤 로지스가 더 누렸다.

극소수의 곡을 제외하고 밥 딜런은 우리에게 인기가 없었다. 비틀스, 스톤즈, 엘비스에 비한다면 엄청난 ‘부당 대우’였다. 언어 장벽과 무관한 음악 스타일 측면에서도 우리의 ‘홀대’ 는 마찬가지였다. 멜로디가 그럴싸한 곡이 있더라도 풍기는 내음이 지극히 ‘미국적’ 이었기에 우리의 청취 감성은 딜런을 꺼리곤 했다. 그의 음악 세계라 할 포크, 컨트리, 블루스는 미국 전통과 긴밀한 함수 관계를 지닌다. 선율과 사운드의 영국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의 음악에 잠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이에 우린 어느덧 딜런과 크게 멀어져버렸다. 록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꼭 딜런에서 막힌다. 신세대 가운데 더러는 우리의 팝 수용 문화에서 딜런 공백이 가져온 취약성을 맹렬히 질타하기도 한다. 우리 기준에서의 ‘팝 음악 여과’는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의역은 정확한 직역이 기초돼야 올바르다. 미국의 해석을 전제한 뒤라야 우리식 필터링의 의의가 배가된다.

그 직역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밥 딜런이다. 밥 딜런이 미국의 현대 음악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몸체가 곧 시대와 세대의 흐름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딜런의 음악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것을 있게 한 배경, 또한 그것을 주도해간 그의 자세는 ‘음악외적 환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먼저 포크 록(Folk-Rock)이다. 그가 1960년대 초반 저항적인 모던 포크로 베이비 붐 세대를 견인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통기타만으로 연주되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것의 포획력은 비틀스가 사정권에 들어올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비틀스가 베이비 붐 세대를 발현시켰다면 그는 그들의 의식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딜런은 케네디의 피살에 자극받으면서 스스로 ‘위기감’ 을 불어넣는다. 이미 비틀스가 세대의 청취 볼륨을 증폭시킨 마당에 포크의 음량 가지고 과연 세대를 관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1년 그는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그들(비틀스)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코드는 정말 도에 지나친 것이었지만 하모니가 그것을 타당하게끔 했다. 그러나 맹세하건데 난 정말 그들에게 빠졌다. 모두들 그들이 어린 10대를 위한 광대이며 곧 사라질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내겐 명확했다. 그들이 지속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난 그들이 음악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머리 속에는 비틀스가 전부였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를 잡아야 했다. 그것이 포크 록이었다. 포크의 순정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질타는 불 보듯 뻔했다. 그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알 쿠퍼(Al Kooper), 마이크 블룸필드(Mike Boomfield)가 참여한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Butterfield Blues Band)와 함께 전기 기타 연주를 했을 때 관중들은 “이건 포크 공연이야 나가!”라고 야유하며 돌과 계란 세례를 퍼부었다. 무대에서 내쫓긴 그는 통기타를 들고 되돌아왔지만 의미심장한 ‘It’s all over now’, ‘Baby blue’를 부르며 포크 관객들에게 아듀를 고했다. 껄끄러운 통과의례를 거친 뒤 밥 딜런의 포크 록은 ’Like a rolling stone’의 빅히트와 함께 만개했다. 이젠 막을 자도 없어졌다. 포크 록은 당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존 레논과 밥 딜런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그룹 버즈(Byrds)는 ‘Mr. Tambourine man’으로 인기 가도를 질주했다. 그러나 그 곡은 딜런의 작품이었다.

버즈 뿐만 아니라 당시 포크 록계열 뮤지션치고 딜런의 곡을 손대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단숨에 포크 록은 1960년대 록의 주류로 부상했다. 1960년대 중.후반을 강타한 싸이키델릭 록(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도 실상 포크 록에 영향받은 흐름이었다. 그럼 어째서 포크 록은 1960년대 청춘들을 사로잡아 그들의 의식을 대변할 수 있었을까? 비틀스가 딜런에게 배우고, 딜런이 비틀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포크와 록의 결합’ 은 시대성 견인을 가능케 한 절묘한 무브먼트였다. 록은 생태적으로 거리의 청춘에 의해 확립된 ‘하위문화적 표현’이다. 따라서 하이 클래스나 인텔리겐차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또한 포크는 저항성을 견지하는 민중 음악이지만 음악의 주체나 주소비자층은 학생과 지식인 세력이다. 성질상 엇비슷하면서도 걸어온 길이나 ‘계급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밥 딜런이 포크 오리지널로부터 급격히 퇴각하여 록으로 전향한 것은 단지 추세의 편승이 아닌 완전함을 향한 ‘하층문화의 긴급 수혈’로 보인다. 이를테면 ‘위’의 고매한 문제의식과 ‘아래’의 근원적 반항을 한고리로 엮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항 영역의 지반 확대와 수요자의 확충을 기할 가능성은 올라가게 된다.

지식인만이 아닌 1960년대 젊은이들의 ‘계층포괄적 무브먼트’ 는 포크 록과 이 점에 있어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1960년대 중후반을 물들인 ‘히피보헤미안’ 물결도 딜런과 떼어낼 수 없는 흐름. 1960년대 록 역사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이다. ‘Like a rolling stone’은 포크 지식인의 소리라기보다 보헤미안적 정서의 노출로 파악해야 한다. 당시 딜런은 가치의 상대성을 신뢰하고 제도에 흡수되기룰 거부하는 이른바 비트(Beat) 사상에 빠져 있었다. 그가 진보적 시인인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와 교류하며 ‘개인 혁명’에 골똘해 있을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비트는 이후 히피의 융기에 주요 인자가 되는데, 1960년대 중반 딜런의 음악을 가로지르는 것이 바로 이 ‘히피 보헤미안 정서’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록 세계로 옮아가고 방랑적 지향을 설파한 것은 기존과 기성의 틀 깨기에 목말라 있던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영도자가 제공한 ‘산교육’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밥 딜런은 그에게 등을 돌린 포크 근본주의자들의 수보다 휠씬 더 많은 록팬을 거뜬히 확보하게 된다. 음악적으로 딜런의 창작성이 이 때만큼 가공의 위력을 떨친 적도 없다. < Highway 61 Revisited >와 < Blonde On Blonde > 앨범은 포크의 엄숙주의에서 해방되어 록과의 결합으로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포획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음악은 ‘남을 위해’ 이데올로기에 봉사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이 가져온 산물이기도 했다. 그가 포크의 프로테스트로부터 이탈한 것은 바로 ‘자유’와 등식화되는 ‘예술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저항성 대신 예술성을 얻었다. 개인적 경사도 겹쳤다. 사적으로 사라 로운즈와의 결혼은 그의 창작력 한층 북돋아주었으며 그 충만한 행복감은 그대로 < Blonde On Blonde > 앨범에 나타났다. 이 앨범의 탁월한 질감은 상당부분 사라와의 결혼이 낳은 것이라는 게 평자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나중 사라와의 파경 또한 그에게 또 하나의 명반 < Blood On The Tracks >를 안겨준다. 히피의 낭만적인 집단주의와 곧바로 이어진 이피(Yippie)의 전투성이 극에 달할 무렵 그가 뉴욕의 외곽 빅 핑크(Big Pink) 지하실에서 한가로이 더 밴드(The Band)의 멤버들과 자유 세션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가 가져온 행보이기도 했지만 그가 의도적으로 은둔을 택한 것은 분명했다. 세상이 소란함으로 가득할 때 그는 정반대로 정적을 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물꼬를 터준 미국 사회의 격랑이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것으로 예측했는지도 모른다. 세대의 공동체 지향은 지극히 ‘비이성적’으로 비춰졌을 테고 오히려 그는 그럴수록 자신에게 돌아와 근본을 탐구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한 심저(心底)가 < John wesley Harding >과 < Nashiville Skyline >의 골간에 자리한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뜻밖에’ 재래식 컨트리 음악을 선보였다. 두 앨범은 모두 내쉬빌에서 녹음되었고 < Nashiville Skyline >의 경우 딜런은 컨트리 음악의 거성 자니 캐시(Johnny Cash)와 듀오로 ‘Girl from the north country’에서 다정히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톱 10 히트곡 ‘Lay lady lay’가 나왔다. 이 곡을 비롯해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딜런의 보컬은 예의 날카로움이 거세된 채 한결 부드러워졌고 가사도 접근이 비교적 용이해지는 등 멜로딕한 무드가 전체를 지배했다. 다시 세상은 소용돌이에서 호수의 조용함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1970년대 초반의 분위기였다. 딜런이 씨앗을 뿌린 ‘컨트리 록’ 은 1970년대 내내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맹위를 떨쳤다.

딜런은 언제나 흐름의 주역이었다. 나중 음반화된 더 밴드와의 세션 앨범 < Basement Tapes >가 록 역사에서 ‘특혜’를 받는 것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 그는 ‘대중적’ 관점에서 뿌리에 대한 천착에 박차를 가했다. 예전에 그는 ‘좋은 사람만 따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이 많이 따를수록 좋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가 1970년 < Self Portrait > 앨범에서 ‘Moon river’를 포함한 팝 스탠다드 넘버들을 노래한 것은 이러한 사고와 맥락이 닿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눈을 흘겼다. 레코드 월드(Record World)지는 이 앨범을 두고 “혁명은 끝났다. 밥 딜런이 ‘미스터 존스’에게 ‘Blue moon’을 불러주고 있다”며 혹평했다.(미스터 존스는 딜런이 < Highway 61 Revisited >의 ‘Ballad of thin man’에서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존스 씨?”라고 했던 가공의 인물로 ‘제도권 인사’를 상징한다.) 빌보드 차트3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처럼 평단의 이해를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 Self Portrait >앨범을 상업적 표현으로 볼 수는 없다. 비판의 칼을 휘두르는 비평가들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근본을 탐구하는 방법론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딜런이 1970년대 후반부에 기독교에 귀의한 것도 비슷한 문맥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사실 신(神)에의 의지가 엿보인 < Show Train Coming >, < Saved >, < Shot Of Love > 등 3장의 종교풍 음반은 ‘사고의 깊이’가 두드러졌지만 ‘변신’이라는 부정적 의미에 가치가 함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 딜런을 ‘혼미의 거듭’으로 규정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보면 그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충실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티스트의 본령이다. 밥 딜런은 언제나 음악을 통해 세상과 삶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자 했다.

1980년대의 밥 딜런은 1970년대의 습기를 벗고 ‘열기’를 회복한다. 정치적 시각도 이입한 < Infidels >, < Empire Burlesque > 그리고 1989년에 나온 < Oh Mercy >는 이전의 앨범들과 명백한 분리선을 긋는다. 날카로운 보컬은 오히려 1960년대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는 1980년대 중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아티스트의 모임(Sun City) 등 일련의 자선행사에 얼굴을 내밀어 저항 전선에 복귀했다. 한 무대에서 그는 U2의 보노(Bono)와 함께 ‘Blowin’ in the wind’를 부르기도 했다. 딜런의 1980년대 앨범들에는 당시의 보수적이고 위압적 풍토를 거부하는 저항성이 숨쉰다. 그는 시대의 주류 한복판에는 없었지만 ‘시대의 공기’와 늘 함께 호흡했다. 그 공기를 어떤 때는 앞장 서 조성하고 어떤 때는 그것을 피해갔다. 밥 딜런의 한 면만을 바라보게 되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그가 서 있던 ‘양쪽’ 자리를 다 관찰해야만 그 ‘드라마틱한 록 역사의 굴곡’ 을 읽을 수 있다. 록의 역사는 실로 위와 아래, 진보와 보수, 주류와 비주류, 기존과 대안이 끊임없이 부침을 되풀이 해왔다. 밥 딜런이 밟아온 길은 그것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라도 - 가령 프로테스트의 깃발을 울렸을 때나, 대중성에 기웃거렸을 때나 - 딜런이 주변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임한 적은 없다. 남이 시켜서 일렉트릭의 세계로 떠밀려 간 것이 아니었고, 의도적으로 신비를 축적하기 위해 은둔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터전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비평가들이 밥 딜런을 전설로 숭앙하는 것은 그가 대중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음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음악인의 최고 영예인 ‘아티스트’란 소리를 들어 마땅했다. 그는 록에 언어를 불어넣었다. 포크와 컨트리를 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시대와 맞서기도 했고 자신의 예술성에 천착하기도 했다. 그러한 업적과 성과의 편린들이 모여 그의 ‘광활한 아티스트의 세계를 축조하고 있다. 밥 딜런은 역사의 수혜와 위협 속에서 ‘인간’을 살려냈다. 음악인으로서 인간의 몸체는 다름 아닌 자유일 것이다. 밥 딜런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매시브 어택은 느린 힙합 비트와 테크노 기법을 결합하여 언론의 집중 조명 속에 트립합(Trip-hop)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장르의 선구자이다. 여기서의 ‘트립’이란 약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신의 여행’을 의미한다. 밴드 멤버인 3-D, 머쉬 룸, 대디 지는 사운드 시스템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매시브 어택을 결성하여 이러한 ‘몽환적’ 사운드를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트립합을 대중화시킨 이들은 포티쉐드(Port... 매시브 어택은 느린 힙합 비트와 테크노 기법을 결합하여 언론의 집중 조명 속에 트립합(Trip-hop)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장르의 선구자이다. 여기서의 ‘트립’이란 약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신의 여행’을 의미한다. 밴드 멤버인 3-D, 머쉬 룸, 대디 지는 사운드 시스템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매시브 어택을 결성하여 이러한 ‘몽환적’ 사운드를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트립합을 대중화시킨 이들은 포티쉐드(Portishead)와 트리키(Tricky)이지만, 그 태동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단연코 매시브 어택이었다. 지역적으로도 이들은 출신지인 브리스톨 지역을 단번에 영국 음악계의 중심지 중 하나로 만들었다. 매시브 어택은 1986년 샤라 넬슨(Sharah Nelson)을 보컬로 기용하여 ‘The look of love’를 발표하였고, 5년 뒤 데뷔작인 < Blue Lines >를 내놓았다. 저음의 베이스라인에 의해 주도되는 힙합 비트를 테크노의 관점으로 풀어낸 후(테크노화된 힙합?), 여기에 덥, 재즈등의 요소를 결합한 장르적 ‘다양성’이 돋보인 앨범이었다. 또한 이러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트리키와 샤라 넬슨등의 게스트 보컬은 각각의 곡들에 서로 다른 색채를 부여해주었다. 결국 이 앨범은 상업적, 비평적 성공 모두를 거두었고, 트립합은 단번에 주목받게 되었다. 이후, 매시브 어택은 언더그라운드 공연만을 고집하면서 휴지기에 들어갔다. 이 기간에 등장한 이들이 바로 트리키와 포티쉐드이다. 이들의 상업적 성공은 트립합을 주류로 부상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매시브 어택의 차기 작에 (대중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1994년에 나온 2집 < Protection >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넘어서려는 동시에 좀 더 간결해진 사운드로 대중들에게 다가서려는 이들의 노력이 돋보인 앨범이었다. 타이틀곡인 ‘Protection’에서의 멜로디컬한 보컬 라인이 이를 단적으로 잘 드러냈다. 트리키의 보컬이 담긴 ‘Karmacoma’는 ‘Eurochild’와 더불어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서는 전작에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4년 뒤의 3집 < Mezzanine >은 이전 두 앨범의 성과를 종합해 낸 ‘트립합 마스터피스’였다. ‘Risingson’에서 보여지는 어둡고 강렬한 무드와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의 보컬인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가 참여한 ‘Teardrop’ 등의 싱글들에서 이들의 재능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또한 음산한 느낌의 첫 곡 ‘Angel’에서부터 강력한 그런지풍의 기타사운드를 흡수한 ‘Dissolved girl’까지, 앨범은 트립합의 특성인 멀티한 면모를 잘 표현해냈다. 물론 트립합이라는 용어가 영국 잡지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카테고리일 수도 있다. 사실 트립합이라 불리는 뮤지션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또한 당사자들도 자신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매시브 어택은 그것을 떠나 ‘음악만으로도’ 중요한 밴드이다. 1990년대 이후, 이들만큼 영국 흑인 음악의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계승, 조합해 낸 밴드는 없었다. 가히 브리티시 블랙 뮤직의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밴드의 음악 자체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락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락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작곡가, 시타연주자 작곡가, 시타연주자
믹싱 : Thievery Corporation (씨버리 코퍼레이션)
칠아웃, 다운템포, 트립 합, 라운지뮤직 DJ 그룹 칠아웃, 다운템포, 트립 합, 라운지뮤직 DJ 그룹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1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