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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앨범] 7080 오리지날 노래여행 100곡 U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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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SB 앨범] 7080 오리지날 노래여행 100곡 USB

본 상품은 CD가 아니며,USB 입니다.

유미리, 박남정, 김트리오, 정수라, 투투 노래 외 3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미디어타운 | 2019년 05월 2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88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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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앨범] 7080 오리지날 노래여행 100곡 USB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5월 27일
시간, 무게, 크기 2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디스크

USB
  • 00 경아 - 박혜성
  • 01 기차와 소나무 - 이규석
  • 02 젊음의 노트 - 유미리
  • 03 아 바람이여 - 박남정
  • 04 연안부두 - 김트리오
  • 05 환희 - 정수라
  • 06 일과 이분의 일 - 투투
  • 07 아직도 못다한 사랑 - 솔개트리오
  • 08 슬픈 계절에 만나요 - 백영규
  • 09 진실 - 정훈희
  • 10 저녁놀 - 전영록
  • 11 장미 - 사랑과 평화
  • 12 너에게로 또 다시 - 변진섭
  • 13 골목길 - 이재민
  • 14 그얼굴에 햇살을 - 이용복
  • 15 옛 시인의 노래 - 한경애
  • 16 비와 외로움 - 바람꽃
  • 17 이별 아래 - 유열
  • 18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박건
  • 19 백지로 보낸 편지 - 김태정
  • 20 사랑의 진실 - 임창제
  • 21 달무리 - 영사운드
  • 22 모모 - 김만준
  • 23 하얀 민들레 - 진미령
  • 24 여인 - 소리새
  • 25 애심 - 전영록
  • 26 여인아 - 이태원
  • 27 돌고돌아 가는길 - 노사연
  • 28 빙비빙 - 하성관
  • 29 밤은 우리의 친구 - 하야로비
  • 30 부산 갈매기 - 문성재
  • 31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 장혜리
  • 32 눈동자 - 이승재
  • 33 바다에 누워 - 김장수
  • 34 목로주점 - 이연실
  • 35 오늘같은 밤 - 이광조
  • 36 기도 - 홍삼트리오
  • 37 무정부르스 - 강승모
  • 38 잊게 해주오 - 장계현과템페스트
  • 39 당신은 몰라 - 하식스
  • 40 너에게 나는 - 이규석
  • 41 널 그리며 - 박남정
  • 42 비에 젖은 비둘기 - 이승연
  • 43 탈춤 - 활주로
  • 44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 전영록
  • 45 사랑은 모닥불 - 이용복
  • 46 한동안 뜸했었지 - 사랑과 평화
  • 47 편지 - 임창제
  • 48 그대 생각 - 이정희
  • 49 잊지는 말아야지 - 백영규
  • 50 노래하며 춤추며 - 계은숙
  • 51 솔개 - 이태원
  • 52 잊지마 - 이현
  • 53 홀로된다는 것 - 변진섭
  • 54 카사블랑카 - 최현
  • 55 밤이면 밤마다 - 인순이
  • 56 이제는 - 서울 훼미리
  • 57 잊기 전에 - 남궁선
  • 58 다락방 - 논두렁 밭두렁
  • 59 눈물로 쓴 편지 - 김세화
  • 60 봄이 오는 길 - 박인희
  • 61 작은새 - 작은새
  • 62 목화밭 - 하사와 병장
  • 63 나의 20년 - 정계현
  • 64 외할머니 댁 - 논두렁 밭두렁
  • 65 작은 연인들 - 김세화, 권태수
  • 66 먼 훗날 - 최완규
  • 67 빈 가슴의 아픔 - 박강성
  • 68 멈추지 말아요 - 무당
  • 69 슬플땐 화장을 해요 - 신효범
  • 70 기다리게 해 놓고 - 방주현
  • 71 그녀가 처움 울던 날 - 이정선
  • 72 물보라 - 최진희
  • 73 그대가 나에게 - 이승철
  • 74 친구에게 - 김민우
  • 75 고향의 푸른 잔디 - 조영남
  • 76 가슴앓이 - 한마음
  • 77 빗물 - 채은옥
  • 78 젊은 미소 - 건아들
  • 79 태양의 데이트 - 김준
  • 80 춤을 추어요 - 장은숙
  • 81 일곱색깔 무지개 - 작은 거인
  • 82 별이 빛나는 밤에 - 윤향기
  • 83 내 마음의 노래 - 이영식
  • 84 겨울 장미 - 이은하
  • 85 타박네 - 이연실
  • 86 터질거에요 - 김씨네
  • 87 춤추는 작은 소녀 - 문성재
  • 88 오솔길 - 라나에로스포
  • 89 열애 - 윤시네
  • 90 내일을 향해 - 신성우
  • 91 나들이 - 이광조
  • 92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 비앤숙
  • 93 당신은 모르실거야 - 혜은이
  • 94 모닥불 - 박인희
  • 95 올가을엔 사랑할거야 - 방미
  • 96 목동의 노래 - 홍민
  • 97 스잔나 - 유미리
  • 98 그애와 나랑은 - 송창식
  • 99 산 사람 - 이정석

아티스트 소개 (41명)

1980년대 말, 박남정이라는 작은 키의 청년이 TV를 통해 선보인 로봇 춤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댄스였다. 그는 전국 디스코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바 있는 기교 넘치는 춤꾼이었다. 다분히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연상케 하는 유연한 몸놀림과 현란한 동작은 청소년들 사이에 단연 화제였다. 그는 1980년대의 댄스뮤직의 코드를 ‘브레이크 댄스’로 융합한 인물이기도 했다. 한 두 해 먼저 데뷔한 김완선, 소방... 1980년대 말, 박남정이라는 작은 키의 청년이 TV를 통해 선보인 로봇 춤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댄스였다. 그는 전국 디스코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바 있는 기교 넘치는 춤꾼이었다. 다분히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연상케 하는 유연한 몸놀림과 현란한 동작은 청소년들 사이에 단연 화제였다. 그는 1980년대의 댄스뮤직의 코드를 ‘브레이크 댄스’로 융합한 인물이기도 했다. 한 두 해 먼저 데뷔한 김완선, 소방차와 더불어 박남정은 댄스를 거대한 물결로 만들었다. 딱히 ‘코어’적이라 할 만한 음악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들의 음악은 대중들의 청각을 강타했다. ‘아 바람이여’가 히트한 1988년의 데뷔작은 2집의 성공을 위한 뇌관 역할이 됐다. 다음 해 출시된 두 번째 앨범 < 박남정 >의 파워는 가공할 만했다. ‘ㄱㄴ춤’의 열풍을 몰고 온 ‘널 그리며’와 ‘사랑의 불시착’이 모두 < 가요 톱 텐 >의 5주 연속 정상에 등극하며 그는 단숨에 댄스 음악의 ‘지존’으로 올라선다. 1990년 세 번째 음반인 < 박남정 제 3집 >에선 ‘스물 한 알의 포도송이’가, 이듬해 나온 < 박남정 4집 >에선 ‘여인이여’가 각각 인기를 끌며 그의 명성을 강화했다. 적어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풍이 강타하기 직전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는 대단한 것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권은 정말 넓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흡수했고, 주류의 흐름을 바 꿔 놓았으며, 기존의 댄스 가수들에겐 근본적 체질 개선을 요구했다. 불가항력적인 그들의 힘을 박남정 역시 비켜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에 그 또한 5집 앨범 < 비에 스친 날들 >을 공개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미 격렬한 랩과 ‘회오리 춤’의 광풍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결국 ‘옛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3년 동안의 준비 끝에 발표한 6집 < 멀어지는 너 >도 새로운 세대의 흥미를 끌기엔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다. 그의 쇠락은 음악 수요층에 변화가 왔음을 내포한다. 새로운 세대는 더욱 감각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희망했다. 그들은 조금은 경직되어 있던 기존 세대와 ‘존재론적 단절’을 감행했다. 이제 기존의 가치 척도로는 측정이 불가능한 이들이 문화 수용층으로 올라섰다. 언론과 기성 세대들은 그들을 가리켜 ‘신세대’라고 일컬었다.
1983년 ‘아! 대한민국’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정수라(본명 : 정은숙, 1963년)는 당시에는 모든 앨범에 건전 가요를 넣어야 했던 시대적 우울함을 인기 곡으로 만든 보기 드문 예이다. 사회정화위원회의 주도로 만들어진 건전 가요 옴니버스에 삽입되었던 ‘아! 대한민국’은 처음에는 조용필, 윤시내와 같은 톱스타들이 부르기를 강력히 강요되었지만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작사가 박건호의 지명으로 신인가수에게 그 영광이 돌... 1983년 ‘아! 대한민국’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정수라(본명 : 정은숙, 1963년)는 당시에는 모든 앨범에 건전 가요를 넣어야 했던 시대적 우울함을 인기 곡으로 만든 보기 드문 예이다. 사회정화위원회의 주도로 만들어진 건전 가요 옴니버스에 삽입되었던 ‘아! 대한민국’은 처음에는 조용필, 윤시내와 같은 톱스타들이 부르기를 강력히 강요되었지만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작사가 박건호의 지명으로 신인가수에게 그 영광이 돌아갔다. 방송사와 국가의 정책적인 담합이 만들어낸 히트곡 ‘아! 대한민국’에 이어 정수라는 정식 데뷔 곡 ‘바람이었나’로 주목을 받았으며 ‘풀잎 이슬’, ‘도시의 거리’ 등으로 서서히 인기가수의 대열에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 < 외인구단 >의 주제가 ‘난 너에게’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1986년과 1987년 거푸 KBS 가요대상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 후에도 ‘아버지의 의자’, ‘환희’, ‘진’과 같은 곡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매니저와의 불화로 고생을 했던 그녀는 1992년 ‘고개 숙인 여자’라는 타이틀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바뀌어버린 음악계의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없었고 재벌회장과의 루머 때문에 제대로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 때의 상처로 오랜 기간동안 은둔해야 했다. 1997년 라틴 댄스 ‘사랑해 줘’로 다시 가요계에 복귀한 정수라는 자신의 동년배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라이브 프로그램 < 열린 음악회 >의 단골 게스트가 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가수들과의 여러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그녀는 이선희, 김완선, 변진섭, 소방차 등과 함께 한 옴니버스 음반 < Harmonized >에 참가해 했으며 그룹 뱅크의 리더 정시로와 함께 ‘처음 사랑 그대로’를 불렀다. 운동으로 과거와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새로운 앨범을 작업 중이다.
비음의 미성을 가지고 1960년대 말에 데뷔해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후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가 대표급 여가수다. 1995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조관우의 ‘꽃밭에서’와 2007년 사랑받은 랩그룹 45RPM의 ‘살짝쿵’이 바로 그의 오리지널 곡이기도 하다. (‘살짝쿵’의 원곡은 ‘그 사람 바보야’) 정확한 음을 바탕으로 고음구사도 빼어나 활동 당시 ‘한국의 다이애나 로스’로 통했다. 40년 전... 비음의 미성을 가지고 1960년대 말에 데뷔해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후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가 대표급 여가수다. 1995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조관우의 ‘꽃밭에서’와 2007년 사랑받은 랩그룹 45RPM의 ‘살짝쿵’이 바로 그의 오리지널 곡이기도 하다. (‘살짝쿵’의 원곡은 ‘그 사람 바보야’) 정확한 음을 바탕으로 고음구사도 빼어나 활동 당시 ‘한국의 다이애나 로스’로 통했다. 40년 전인 1967년에 지금도 기성세대에게 그의 대표곡으로 인식되어 있는 ‘안개’로 데뷔했고 이후 ‘강 건너 등불’ ‘별은 멀어도’ ‘사랑이 미움 되면’ ‘꽃길’ ‘꽃봉투’ ‘그 사람 바보야’ ‘풀꽃반지’ ‘나오미의 꿈’ ‘진실’ ‘빗속의 연인들’ 등 음악 팬들을 사로잡은 숱한 히트송을 쏟아냈다. 2008년, 오랜 준비 끝에 ‘삐삐코로랄라’, 인순이와 호흡을 맞춘 ‘No love’ 등이 수록된 40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해 빼어난 가창력을 과시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 1970년대에 음악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제도권 행사인 이른바 국제가요제에 첫 입상 가수이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가수이기도 하다. 정훈희 자신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력이다. 1970년 42개국이 참여한 일본 도쿄 야마하 가요제에서 ‘안개’로 입상했으며 이듬해 그리스 국제가요제에서는 ‘너’라는 곡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2년에는 또 한 차례 도쿄 야마하에서 ‘좋아서 만났지요’로 가수상을 수상했고 1975년 칠레 가요제에서는 ‘무인도’로 3위와 최고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상기한 곡 전부를 전설의 작곡가 고 이봉조씨가 썼다) 당시 현지에서 장출혈과 신경쇠약으로 입원한 정훈희에게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이 화환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꽃밭에서’는 1979년 다시 참가한 칠레가요제의 입상 곡. 최고가수상을 받았지만 대마초파동 여파로 조용히 다녀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인 부친 정근수씨, 밴드마스터였던 삼촌 근도씨는 물론이요, 큰오빠 운택씨 등 오빠 넷이 모두 색소폰이나 기타를 연주하며 밴드에서 활동한 음악집안에서 성장했다. 운택씨 소개로 부산여상을 다니던 1967년 나중 필생의 음악파트너가 된 작곡가 이봉조씨를 만나 ‘안개’를 취입하며 데뷔했다. 이후 ‘강 건너 등불’ ‘별은 멀어도’ ‘사랑이 미움 되면’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했고 미모 덕분에 동료가수 배호와의 염문설 등 스캔들도 풍성했다. 가요제 연속 입상, TV 무대 장악 등으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 입건되면서 활동 정지를 당했다. 76년 임희숙 등과 함께 해금이 되었지만 TV에 나올 수 없었고 이후 재기무대도 성공적이지를 못했다. 1978년 ‘꽃밭에서’를 마지막으로 독집 앨범은 나오지 않았다. 1980년 록 밴드 ‘라스트찬스’의 리더인 김태화씨와 약혼했고 성격차와 정훈희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해 1983년 아들을 낳았다. 남편과 함께 음악활동을 재개, 1989년 둘째 아이 만삭상태에서 듀엣으로 녹음한 ‘우리는 하나’를 내놓았다. 2008년 40주년 기념앨범은 독집으로는 무려 30년 만의 작품이었다.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전영록(1955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KBS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노래를 불렀지만 뒤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그는 데뷔 곡 ‘나그네 길’을 히트시켰고 이어 ‘애심’이란 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 제7교실 >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한 팬이 접어준 천 마리의 종이학...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전영록(1955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KBS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노래를 불렀지만 뒤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그는 데뷔 곡 ‘나그네 길’을 히트시켰고 이어 ‘애심’이란 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 제7교실 >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한 팬이 접어준 천 마리의 종이학을 계기로 다시 음악계로 돌아왔다. 이 당시의 사연을 노래로 만든 ‘종이학’으로 인기 가수의 문을 다시 두들긴 것이다. 이 곡에 이어 그는 해 마다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그대가 미워요’, ‘불티’, ‘그대 우나봐’ 등을 히트시키며 조용필 외에 한 앨범에서 두 곡 이상을 가요 Top 10에 올리는 유일한 가수가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밤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하얀 밤에’, ‘내 사랑 울보’, ‘이제 자야하나 봐’ 등을 히트시킨 1986년과 1987년에는 조용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2년 연속 KBS 가수왕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무그 연주가 2분 이상 울려 퍼지는 전주를 가진 ‘불티’의 뮤직비디오로 당시 가장 비주얼한 측면을 신경 썼던 전영록은 직접 감독을 맡은 < 돌아이 >란 영화의 시리즈로 또한 명성을 날린다. 가장 인기 있었던 시리즈는 < 돌아이2 >로 상당히 많은 관객이 그의 액션을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라디오 프로그램 < 젊음의 음악캠프 >, < 밤을 잊은 그대에게 > 등에서 DJ를 맡은 그는 1988년 발표한 앨범에서 ‘저녁놀’, ‘추억’,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 등 3곡을 연속해서 히트시켰으며 그 이듬해에는 ‘바람에 실려간 사랑’, ‘아직도 새벽은 오질 않아’를 히트시키며 오랜 동안 인기를 끌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부른 ‘황혼’이란 곡이 들어 있는 1990년도 음반에서 ‘창가에 흐르는 세월’이 별 반응을 얻지 못하며 이후로는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양수경, 임백천, 이은하 등에게 곡을 주며 히트 작곡가로도 인기를 얻었던 그는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 Oldies But Goodies >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에서 매일 밤 노래를 부르고 있다.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서 최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랑과 평화는 처음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키한 감각을 펼쳐 보임으로써 미국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국내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의 액수를 지급 받았다. 당시 활동 정지를 당했던 이장희의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절대적 명반의 한 칸을 차지하는 데뷔 앨범을 1978년 발표한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사와 멜로디로 충격을 몰고 온 ‘한동안 뜸했었지’가 들어 있는 이 앨범은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전체를 휘감고 있는 가운데 레게풍의 ‘노래여 퍼져라’, 펑키한 재즈 감각의 농익은 연주를 선보인 ‘뭉게 구름’, 김명곤의 키보드가 춤을 추는 베토벤(Beethoven)의 ‘운명’ 등이 탄탄한 연주력과 호흡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내공이 되어 있는가를 오늘날 들어도 여실히 느끼게 해 주고 있다. 1978년을 온통 ‘한동안 뜸했었지’의 해로 만든 이들은 다음 해 또 한 장의 명반을 내놓으며 국내 그룹 중 최고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2집에 수록된 ‘장미’는 전작에 못지 않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딱 꼬집어 얘기 할 수 없어요’를 비롯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다시 한번 드림팀의 면모를 과시한다. 2집에서는 송홍섭이 이남이 대신에 들어 왔으며 1집의 ‘뭉게 구름’같이 ‘축제’, ‘솔바람’ 등의 창작곡과 ‘엘리제를 위하여’, ‘아베마리아’ 등과 같은 클래식 소품들을 연주곡으로 삽입해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이러한 시도는 펑키함 외에도 프로그레시브한 면과 재즈적인 측면을 강조한 그룹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그러나 음악적 견해차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드러머 김태홍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는 팀을 와해의 상태로 만들어 공백기를 조성한다. 이 기나긴 휴식기에는 몇몇의 새로운 멤버들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간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원영, 드러머 문영배 등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후에 국내 대중 음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자리잡는다. 한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몇몇 재즈 팀에서 활동하던 최이철은 사랑과 평화에서 했던 재즈록의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이남이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촉망받던 연주인들을 불러모아 10여 년만에 새 앨범을 내 놓는다. 이 앨범에서는 ‘울고싶어라’가 크게 히트하고 ‘겨울바다’, ‘노래는 숲에 흐르고’ 등과 같은 훌륭한 곡들로 이들이 실력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수 김세화가 리메이크 작품을 다시 내놓는 등 그 해를 강타했던 ‘울고싶어라’는 이남이의 개인적인 인기를 부풀려 놓음으로써 이남이의 솔로 독립만을 지원한 꼴이 되었다. 오뚜기 최이철은 다시 퓨전 재즈의 가능성을 이 땅에 심어준 봄여름가을겨울 출신의 빛과 소금 두 멤버를 영입해 두 팀의 공통점인 재즈적인 팀컬러를 확실히 구축한다. 이 작은 거장들이 합세한 4집 음반은 음반사의 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샴푸의 요정’이라는 히트곡을 내었으며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여 < 환태평양 록 오사카 음악제 >에 출전해 사물놀이와 양약을 섞은 ‘덩더쿵’이라는 곡으로 일본 관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는다. 이 환대로 < 경주 엑스포 >에서 펼쳐진 특별 무대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박성식과 장기호가 종교적인 이유로 팀을 떠나 빛과 소금이라는 팀을 결성하자, 최이철은 또 다른 라인업을 구상해야 했다. 과거에 팀에서 같이 잠깐 활동했던 이병일 , 이승수, 안정현 등의 뮤지션과 함께한 최이철은 ‘못 생겨도 좋아’가 실린 5집, ‘착각하지마’가 들어 있는 6집을 발표하며 댄스 음악의 한복판을 정면 돌파해 나갔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현재 이들은 그간 꾸준히 팀을 이끌어 오던 최이철이 팀을 떠나 개인 활동에 들어가고 나머지 멤버가 송기영과 이권희를 받아들여 사랑과 평화를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우리의 사랑이야기'라는 자작곡으로 은상을 받으며 공식 데뷔를 한 변진섭은 1987년 '홀로 된다는 것'을 타이틀로 한 그의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곡외에도 '새들처럼', '그대에게', '늦었잖아요'등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면서 커다란 성공을 가져오게 되었다. 데뷔 앨범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골든 디스크 신인상 등의 영예를 안았고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100만장 이상의 판매...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우리의 사랑이야기'라는 자작곡으로 은상을 받으며 공식 데뷔를 한 변진섭은 1987년 '홀로 된다는 것'을 타이틀로 한 그의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곡외에도 '새들처럼', '그대에게', '늦었잖아요'등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면서 커다란 성공을 가져오게 되었다. 데뷔 앨범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골든 디스크 신인상 등의 영예를 안았고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데뷔음반 1장으로 당시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부상하였다.

하광훈, 윤상, 지근식 등의 작곡가의 곡을 받아 1989년에 발표한 2집으로 최고의 가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노영심의 '희망 사항'과 하광훈의 '너에게로 또다시'는 동시에 가요 차트 1위 후보에 오르는 진기록을 수립했으며 1집과 마찬가지로 '숙녀에게', '저 하늘을 날아서' 등 전곡이 라디오를 오르내렸다. 이 앨범으로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으며 그 해 모든 상을 휩쓸며 그것을 입증했다. 이후 1990년 3집, 1991년 4집을 연이어 발표하며 꾸준하게 활동해온 변진섭은 1992년 5집, 1994년 6집을 내면서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특히 6집에 수록된 '니가 오는 날'은 박주연의 애절한 가사에 녹아드는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진가를 발휘하는 발라드 곡으로 조용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어서 1996년에는 '에필로그'가 수록된 7집, 1998년에는 8집, 1999년에는 9집까지 인기와는 상관없이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착실한 가수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1998년 10주년 기념앨범을 내고 2002년에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는 등 계속적인 음반 발매로 음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새내기 지망생들을 스타로 키우는 '나우 스타'라는 인터넷 방송국의 이사가 되어 이제는 후배 가수를 양성하는 등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의 호세 펠리치아노’ ‘한국의 레이 찰스’로 19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추억의 이름이다. 무엇보다 당시 이탈리아 니콜라 디발리의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을 번안한 노래 ‘1943년 3월4일생’과 ‘마음의 집시’로 올드 팬들의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다. 특히 ‘1943년 3월4일생’은 코미디언 이홍렬이 ‘어머님 왜 날 낳으셨나요?...’ 하며 불러 다시금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사실 이 곡의 번안 노랫말은... ‘한국의 호세 펠리치아노’ ‘한국의 레이 찰스’로 19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추억의 이름이다. 무엇보다 당시 이탈리아 니콜라 디발리의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을 번안한 노래 ‘1943년 3월4일생’과 ‘마음의 집시’로 올드 팬들의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다. 특히 ‘1943년 3월4일생’은 코미디언 이홍렬이 ‘어머님 왜 날 낳으셨나요?...’ 하며 불러 다시금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사실 이 곡의 번안 노랫말은 시각장애자 가수인 이용복의 처지를 반영해 당시 심금을 울렸다. 그는 3살 때 마루에서 마당으로 떨어져 왼쪽 눈을 잃었고, 이어 7살 때 썰매를 타다가 오른쪽 눈이 칼날에 찔리면서 두 눈 모두 실명하는 불우를 겪었다. 1970년 친구를 따라 그 무렵 젊음의 전당인 음악다방에 놀러 간 것은 음악인생으로 새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여기서 우연히 무대에 올랐다가 강렬한 음색에 반한 작곡가 김준규씨에 발탁되어 음반을 취입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첫 앨범에 이어 이듬해 1971년에는 ‘1943년 3월4일생’과 ‘마음은 집시’가 수록된 앨범을 발표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두곡은 번안 곡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번안 곡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같은 시각장애자 가수인 호세 펠리치아노의 ‘비(Rain)’ 등의 곡들은 이용복을 통해 일반에게 친숙해졌을 정도였다. 이후 그의 활동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워 로보(Lobo)의 ‘We’ll be one by two today’를 번안한 ‘우리 함께’를 비롯해 순수 가요인 ‘그 얼굴에 햇살이’ ‘어린 시절’ ‘줄리아’ ‘잊으라면 잊겠어요’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인기 가수 가운데 한사람으로 군림했다. 70년대 중반에는 방송사 10대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그는 고음으로 치솟는 가늘지만 강한 음색을 특징으로 팬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또한 TV에 나와 시각장애인답지 않게 유머러스한 말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다. 그는 당시 TV에서 경쟁한 트로트, 스탠더드 진영과 젊은이들의 포크 서클을 아우르며 중도 성향의 음악노선을 취했다. 하지만 70년대 말부터 인기는 눈에 띠게 하락했으며 80년대 들어서는 음악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이어 1984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7년만인 1991년에 귀국해 녹음실을 운영하다가 2001년부터는 경기 양평에 공항카페를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2003년에는 25년 만에, 그가 작곡 편곡 노래 믹싱 등 작업 전 과정을 도맡아 ‘아이야’가 수록된 새 앨범을 발표했다. 올 1월에는 서울 YWCA 마루홀에서 거의 30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넉넉한 웃음과 중후한 목소리로 발라드의 새로운 계보를 이어갔던 유열은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다. 같이 출전했던 이정석의 ‘첫 눈이 온다 구요’와 대상을 놓고 경합을 벌였던 이 노래는 이정석의 곡보다는 세련됨이나 신선함이 덜함에도 스탠더드의 탄탄한 음역대를 인상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대는 역시 발라드의 황금시대를 열... 넉넉한 웃음과 중후한 목소리로 발라드의 새로운 계보를 이어갔던 유열은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다. 같이 출전했던 이정석의 ‘첫 눈이 온다 구요’와 대상을 놓고 경합을 벌였던 이 노래는 이정석의 곡보다는 세련됨이나 신선함이 덜함에도 스탠더드의 탄탄한 음역대를 인상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대는 역시 발라드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이다. 데뷔 앨범에서 ‘이별이래’, ‘가을비’, ‘음악은 흐르는데’ 등의 히트곡을 쏟아 부으며 당시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이문세를 위협했으며 이문세, 이수만과 더불어 마삼트리오라는 애칭으로 라디오 DJ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는 2집과 3집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화려한 날은 가고’, ‘에루화’, ‘괜찮아 나는’, ‘알게 될거야’ 등의 수많은 곡을 히트시키며 연말 시상식장의 주요한 가수가 되었으며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특히 국악과 접목을 실험적으로 시도한 ‘에루화’는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얻었으며 조정현의 힘을 빌어 완성한 수준 높은 앨범의 수록곡들은 히트곡 중심이 아닌 앨범 중심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영화로운 순간을 마감한다. 4집에서 ‘어느날 문득’을 히트시킨 그는 1992년 발표한 박주연의 가사로 풀어낸 애정 어린 첫사랑의 고백 ‘처음 사랑’이 무참히 무시되며 기나긴 암흑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댄스 음악의 춘추전국 시대가 개막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5집은 지금껏 발표했던 앨범들에 비해 완성도가 낮은 편이었다. 1990년대가 댄스일변도이긴 했지만 그가 전체적인 완성도에 신경을 썼더라면 댄스 음악의 한복판에서도 틈새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 댄스와의 꾸준한 시소 게임을 했을 것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6집에서 유열은 결혼식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나만의 그대, 그대만의 나’를 발표하며 의욕적인 재기를 다지지만, 이문세의 음악을 전담하며 함께 전승을 구가하던 이영훈의 힘을 빌린 7집에서는 완전히 기를 꺾이고 만다. 풍부한 성량 덕택에 < 하늘을 나는 양탄자 >, < 빠담 빠담 빠담 >과 같은 뮤지컬에 자주 출연했던 그는 줄곧 라디오의 DJ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라디오의 아침 프로를 맡고 있는 < FM은 내 친구 >는 장기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를 배철수의 아성에 도전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 열린 음악회 >의 단골 손님을 지낸 덕택으로 KBS에서 주는 연말 가수왕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한 그는 2000년 드라마 < 불꽃 >의 삽입곡 ‘사랑의 찬가’를 서영은과 함께 부르며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다. 우연치 않게 가수가 됐다고 말하는 그는 CD를 이용한 사업으로 제2의 인생 설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간 구상해온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변화의 모색, 이것은 가수도 팬도 모두 바라는 바이다.
멤버 : 유영춘, 안치행, 장현종, 박동수, 장대헌 멤버 : 유영춘, 안치행, 장현종, 박동수, 장대헌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노사연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곡은 그녀의 이모인 가수 현미의 소개로 만난 작곡자가 만들어 준 곡으로, 한의 정서가 우리 고유의 언어로 표현된 멋있는 곡이었다. 이 대회에선 송골매의 전신인 활주로의 ‘탈춤’, 임백천과 고영선의 ‘한마음’ 등이 입상을 했으며 입상은 못했지만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으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노사연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곡은 그녀의 이모인 가수 현미의 소개로 만난 작곡자가 만들어 준 곡으로, 한의 정서가 우리 고유의 언어로 표현된 멋있는 곡이었다. 이 대회에선 송골매의 전신인 활주로의 ‘탈춤’, 임백천과 고영선의 ‘한마음’ 등이 입상을 했으며 입상은 못했지만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으로 후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이광조, 이문세, 해바라기 등과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1983년 ‘돌고 돌아가는 길’의 작곡가 김욱에게 ‘님 그림자’란 곡을 받는다. 뛰어난 서정성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 곡은 대학가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눈에 띄지 않게 꾸준한 사랑을 쌓아간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 영11 >에 나와 개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수로서보다는 개그맨으로서의 위상으로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리던 노사연은 1987년 ‘우리에겐’이라는 곡이 들어 있는 앨범을 내 놓는다. 개그맨의 이미지를 벗고 가수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히기 위해 내 놓은 이 앨범은 그러나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시키는데 그쳤을 뿐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2년 후에 내놓은 2집도 처음에는 아무런 시장성도 발휘하지 못한다. 계속 오락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오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그녀는 TV 오락 프로그램인 <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에 고정 게스트로 나가면서 시청자들의 눈에 띄게 된다.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진행자인 주병진, 이경규 등을 최고의 스타로 부각시킨 이 프로그램에서 노사연은 2집의 수록곡 ‘만남’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러 결국 1991년 최고의 인기곡으로 만들고 만다. 2년이나 늦게 히트된 ‘만남’이란 곡으로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노사연은 연말 각종 시상식을 휩쓸면서 가수왕의 자리에 오르고 계속해서 3집의 수록곡 ‘이 마음 다시 여기에’로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로서 그녀는 ''90년대에 비 트로트계열의 성인 가요로 가요계의 정상을 밟은 유일무이한 가수가 되었으며 조선일보 선정 건국이후 가수베스트50에서 일약 40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남편 이무송과 결혼하기 전에 ‘사는게 뭔지’를 TV에서 불러 노래의 인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노사연은 현재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새 앨범을 발표하기 위해 체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6년만에 가수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데뷔 : 1985년 MBC 대학가요제 '바다에 누워' 데뷔 : 1985년 MBC 대학가요제 '바다에 누워'
미대에 재학하면서 축제나 음악살롱, 라이브 홀 등에서 노래를 부르던 이광조(1952년)는, 활동하면서 김의철, 한영애 등을 만나고, 제대 후에는 콘서트를 하던 이정선을 만나 해바라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아름답고 순수한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해바라기에서 이주호의 빈자리를 메우며 2집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솔로 작업을 병행하여 ‘나들이’라는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1979년 < MBC 서울국제가요제 >에서 ... 미대에 재학하면서 축제나 음악살롱, 라이브 홀 등에서 노래를 부르던 이광조(1952년)는, 활동하면서 김의철, 한영애 등을 만나고, 제대 후에는 콘서트를 하던 이정선을 만나 해바라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아름답고 순수한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해바라기에서 이주호의 빈자리를 메우며 2집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솔로 작업을 병행하여 ‘나들이’라는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1979년 < MBC 서울국제가요제 >에서 김수철의 곡인 ‘행복’을 불러 입선한 그는, 이정선, 이엄인호와 함께 트리오 풍선을 만들어 활동하고, 다시 솔로 음반을 발표해 삼바리듬을 차용한 ‘즐거운 인생’, ‘오늘 같은 밤’ 등을 히트시키며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85년 발표한 솔로 3집은 그를 정상의 스타로 만들었다. 이 앨범에서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 민해경의 ‘사랑은 이제 그만’과 경합을 벌이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곡은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고, 계속해서 권인하의 곡인 ‘사랑을 잃어버린 나’, ‘상처’가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이주호, 유익종의 해바라기가 부른 ‘갈 수 없는 나라’를 리메이크 하여 사랑을 받았다. 여성적인 감성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문세의 음악 감독 이영훈을 섭외 해 ‘세월 가면’으로 다시 한번 정상으로 올라서고, 앨범의 수록곡 ‘뜨거운 바람 되어 네 곁에 다가서리’, ‘사랑은 한 줄기 햇살처럼’ 등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발라드 음악의 전성시대에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987년에는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김영미가 일시 귀국해 이정선, 한영애 등과 같이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도’라는 뛰어난 감성이 서린 곡을 발표해 인기를 얻었고 1988년에는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주축이 되어, 대통령의 닉네임을 연상시키는 이광조와 보통사람들이란 백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며 ‘연인이여’, ‘그대만을’ 등을 계속 발표한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 블루 스케치 >의 주제곡인 ‘그 누구인가’로 다시 한번 표면으로 올라선다. 그의 시대는 마치 인기와의 이별을 암시한 듯한 제목을 지닌 ‘우리 이제 잊기로 해요’라는 곡과 함께 마감을 한다. 중견 가수가 된 그는 댄스 음악의 종횡무진에서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하고 TV의 라이브 프로그램에 간간이 모습을 내밀며 과거의 히트곡들을 불러야 했다. 1996년 ‘외면’을 타이틀곡으로 한 < 파라다이스의 꿈 >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음악에 대한 회의와 공중파에 대한 염증을 느껴 한 동안 고국을 떠나 요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에 미친 새(광조)’는 돌아와, 전속으로 출연하는 < 이광조의 벤허 >라는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멤버 : 홍승현(리더), 홍정오, 홍우섭 멤버 : 홍승현(리더), 홍정오, 홍우섭
조선일보 선정 건국 이후 최고의 가수 부문에서 그 많은 가수를 제치고 당당 27위에 올라있는 인순이(김인순)는, 혼혈가수로서의 힘든 여정을 버티어내고 국민가수라는 월계관을 쓴 의지의 뮤지션이다. 우리 음악계에서 댄스씬이 가져다 준 여러 순기능 중의 하나는 다양한 편견을 없앴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김건모와 박진영의 검은 외모와 흑인필이 가득한 음악은 과거 사회적 냉대로 힘든 삶을 살았던 혼혈인구의 소외를... 조선일보 선정 건국 이후 최고의 가수 부문에서 그 많은 가수를 제치고 당당 27위에 올라있는 인순이(김인순)는, 혼혈가수로서의 힘든 여정을 버티어내고 국민가수라는 월계관을 쓴 의지의 뮤지션이다. 우리 음악계에서 댄스씬이 가져다 준 여러 순기능 중의 하나는 다양한 편견을 없앴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김건모와 박진영의 검은 외모와 흑인필이 가득한 음악은 과거 사회적 냉대로 힘든 삶을 살았던 혼혈인구의 소외를 어느 정도 극복해 주었다. 드디어 우리 대중 음악에 그토록 소외되었던 흑인 음악의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혼혈가수의 효시로 여겨지는 1960년대 톱 스타 유주용과 그의 누이 모니카 유. 1970년 ''검은빛 블루스''로 데뷔한 샌디 김(김복천),함중아, 함정필 형제, 윤수일, 박일준, 빅 잭슨(권혁), 로이(노이), 리처드 박(박운선), 댄스그룹 잉크의 이만복, 신기루의 멤버로 활동했던 마춘봉에서 소냐로 이어지는 혼혈가수의 계보 중에서 가장 성공한 여가수로 평가받는 인순이는, 실력 없는 가수들의 한바탕이 된 음악계에 경종을 울려준 프로그램 < 열린 음악회 >의 인기 주자로 등장해 시원한 가창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환기 시켰으며 박진영의 프로듀싱 아래 ‘또’라는 곡을 발표해 관록의 보컬을 선보였다. 밤업소의 가수로 등장해 검은 피부 때문에 화제를 뿌렸던 그녀는 신중현 사단의 보컬리스트로 픽업되어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에서 ‘봄비’란 곡을 불렀으며, 이후 그룹 희자매의 멤버로 대중에게 공식적인 인사를 했다.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실버들’이란 노래로 사랑을 받은 그녀는 솔로로 데뷔해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인 ‘밤이면 밤마다’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어 ‘욕망’, ‘아름다운 우리 나라’,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여기가 어디냐’ 등을 선보이며 계속해서 인기전선을 유지했다. 그녀는 1990년대에 댄스 음악의 붐이 일기 전에 이미 우리 나라 최초의 백댄서팀인 인순이의 리듬터치를 결성해 활동했다. 이 팀에서 우리 나라 댄스 음악을 주도한 김완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그룹 R.ef의 박철우, ING 무용단의 단장 이영환 등을 배출해 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무용에 가까운 배경막을 형성했던 백댄서 개념을 혁파하고 빠른 템포의 강한 댄싱을 선보이기 위해 자비로 만든 인순이와 리듬터치는 1983년 결성된 국내 최초의 사설 댄싱팀인 스파이크와 더불어 춤이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킨 공헌을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가수들의 한결같은 몰락에도 불구하고 현진영의 ‘두근 두근 쿵쿵’에서 백코러스를 넣어주고 박진영의 2집에서 ‘이별’이란 곡을 부르며 댄스 음악계의 대모답게 꾸준한 활동을 펼쳤던 그녀는 TV 프로그램 < 열린 음악회 >의 단골주자로 중.장년층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재기 앨범 < Queen Of Soul >을 발표하고 완벽한 파워의 정점을 보여주는 ‘또’란 곡으로 노장의 복귀를 알렸다. 밤무대를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며 밤무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그녀는 그 동안 고사해왔던 뮤지컬계에 뛰어 들어 1920년대 후반, 재즈 열풍과 냉혈 킬러들이 넘쳐나는 금주법 시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음모와 배신으로 얽힌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시카고 >에서 주인공 벨마로 분해 성공적인 공연을 벌였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획되는 뮤지컬의 캐스팅 1순위로 프로프즈를 받고 있다. 스탠더드 가수로 거듭나고 싶지만, 팬들이 원하는 빼어난 보컬의 댄스 비트를 수용하고 있는 그녀는 성인 취향의 보컬을 앞세운 새 앨범을 2001년 발표할 계획이다.
한대수에 의해 촉발된 포크는 사회성 있는 가사로 정면돌파를 하지 못하게 되자, 서정적이고 멜로딕한 기타 선율의 대중적인 음악들로 곁가지를 형성했다. 이런 기운의 하나인 1970년대 이른바 포크송이라 불리는 장르의 정점에 서있던 박인희는, 아름다운 가사와 청아한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가수이다. 그녀는 우리 나라 최초의 혼성포크듀오 뚜와에무와로 출발했다. 숙대 불문과를 다니던 그녀의 행로를 말해주듯 ‘너와 나... 한대수에 의해 촉발된 포크는 사회성 있는 가사로 정면돌파를 하지 못하게 되자, 서정적이고 멜로딕한 기타 선율의 대중적인 음악들로 곁가지를 형성했다. 이런 기운의 하나인 1970년대 이른바 포크송이라 불리는 장르의 정점에 서있던 박인희는, 아름다운 가사와 청아한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가수이다. 그녀는 우리 나라 최초의 혼성포크듀오 뚜와에무와로 출발했다. 숙대 불문과를 다니던 그녀의 행로를 말해주듯 ‘너와 나’란 제목의 불어로 된 이 팀은, 일본 그룹 타이거즈(Tigers)의 이름을 딴 동명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필원과 미도파란 음악 살롱에서 인기 DJ로 활동하던 그녀가 같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평론가 이백천과 가수 조경수 등의 후원에 힘입어 탄생되었다. 1960년대 말 나온 이들의 첫 음반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어 나온 앨범들은 197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1971년엔 중앙일보, 동양방송 등 언론사에서 주는 음악상 시상식을 휩쓸었다. 창작곡과 번안곡을 함께 수록했던 이들은 1집에서는 이필원의 창작곡인 ‘약속’이 히트했고 2집에서는 ‘그리운 사람끼리’, 3집에서는 ‘추억’ 등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당시만 해도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편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사회여서 인지, 이 둘은 갖가지 소문을 낳으며 절정의 인기와중에 해체를 했고 박인희는 < 3시의 다이얼 >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맡으며 가수에서 진행자로 방향을 선회했다. 솔로의 생각이 없었던 박인희는 작사가 박건호 작사의 ‘모닥불’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박건호를 일약 최고의 작사가로 만든 계기가 된 이 곡을 시작으로 ‘하얀 조가비’, ‘방랑자’, ‘봄이 오는 길’, ‘얼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서정성의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정규 음반 외에도 시 낭송 음반을 발표해 ‘목마와 숙녀’, ‘얼굴’같은 시도 유행시켰다. 여고시절엔 문학에 심취한 소녀였고, 대학에서는 초대 교내방송국장을 역임한 그녀는 결혼 전까지 광화문에서 뚜와에무와라는 상호의 레코드점을 운영했으며, 총 6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앵무새처럼 같은 노래를 자꾸만 부르는 게 싫어서 가수활동을 포기하고, 가끔 작곡과 작시만 하며 DJ로 오래도록 남았다. 한편 그녀는 자신의 감성을 오래도록 삭힌 시들을 <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 >, < 소망의 강가로 >와 같은 시집으로 발간했으며, 이해인 수녀와의 우정으로 화제를 모은 수필집을 냈다. 현재는 미국에서 한인방송국의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신효범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창력 있는 여자 가수로 인정받아 왔다. 특히 풍부한 음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시원한 목소리는 발군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난 널 사랑해’는 그 힘있는 보이스가 실린 그녀의 대표곡. 하지만 신효범에 대한 평가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 그녀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유사한 보컬을 소유한 가수’로 쉽게 재단되었고, 무대 위에서 종종 불렀... 신효범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창력 있는 여자 가수로 인정받아 왔다. 특히 풍부한 음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시원한 목소리는 발군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난 널 사랑해’는 그 힘있는 보이스가 실린 그녀의 대표곡. 하지만 신효범에 대한 평가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 그녀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유사한 보컬을 소유한 가수’로 쉽게 재단되었고, 무대 위에서 종종 불렀던 ‘I''ll always love you’는 그런 의구심을 얼마간 증폭시켰다. 그러나 신효범은 휘트니를 열심히 모방해서 주가를 올려 보려는 단편적인 사고를 지닌 뮤지션은 아니었다. 그녀는 실패를 거울삼아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가수였다. 데뷔 당시, ‘그대 그림자’로 잠깐 주목받았지만, 회심의 2집은 관심을 끌지 못했고 그녀는 힘겨운 인고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정상의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는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 번째 음반에 실린 ‘언제나 그 자리에’로 호평 받으며 자신감을 회복한 신효범은 1993년 4집을 통해 비상했다. 다정다감한 노랫말이 진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이 곡으로 그녀는 각 신문사의 레코드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1994년 가을 < 한국방송대상 >을 수상하며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신효범은 펄 시스터스의 ‘님아’ 리메이크가 실린 < 신효범 5 >를 통해 역시 많은 상복을 누렸다. 어느덧 이름 앞에는 스타라는 말이 따라다녔지만, 그녀는 자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작품 < Ego >를 통해 자신을 더욱 낮췄다. 타이틀 곡 ‘세상은’엔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음악의 감흥을 전하려는 수화가 곁들여져 화제를 모았다. 명성이 올라갈수록, 그녀는 팬들 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악인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베이스로, 기타로, 드럼으로 키보드로 자신을 표현하고 누구는 곡으로, 프로듀싱으로, 편곡으로 음악을 증명한다. 대중 음악에서 절대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가수라는 직함을 가진 이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기도 하지만, 이승철처럼 목소리로만 장인기질을 발휘하는 이도 있다. 천부적인 매력으로 발산하는 그의 음성은 연주가 가질 수 없는 영역...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악인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베이스로, 기타로, 드럼으로 키보드로 자신을 표현하고 누구는 곡으로, 프로듀싱으로, 편곡으로 음악을 증명한다. 대중 음악에서 절대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가수라는 직함을 가진 이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기도 하지만, 이승철처럼 목소리로만 장인기질을 발휘하는 이도 있다. 천부적인 매력으로 발산하는 그의 음성은 연주가 가질 수 없는 영역을 보여준다. 이것은 오페라에서 성악가의 위치에 비견해도 좋으리라 1985년 그룹 부활의 리드보컬로 데뷔한 이승철(1966년)은 그룹을 빠져 나와 1989년 솔로로 데뷔한다. 부활의 팬들에게 야유를 받으며 ‘안녕 이라고 말하지마’를 히트시킨 그는 이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1집의 파트 2에서 ‘마지막콘서트’, ‘소녀시대’ ‘그녀는 새침떼기’, 솔로 2집에서 ‘그대가 나에게’ 등을 잇단 히트시키며 절정의 라이브 감각을 발휘했다. 수많은 공연으로 라이브 황제의 면모를 보여주며 파트 2 앨범으로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1992년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 < 달은...해가 꾸는 꿈 >에 출연하며 스크린 속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1992년 12월 발표한 그의 3집은 ‘방황’, ‘검은 고양이’, ‘넌 또 다른 나''등의 대량 히트곡들을 쏟아 부었지만, 타이틀 곡 ‘방황’이 바비브라운(Bobby Brown)의 ‘Humpin'' around''를 표절 했다는 의혹과 마약 사건 등의 악재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승철의 고백일기라는 형식을 빌은 < 뮤즈의 초상 >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그는 1994년 ‘색깔 속의 비밀’이 들어 있는 4집을 발표하며 비평계의 높은 호응을 얻으며 재기에 성공한다. 뉴욕에서 제작한 이 앨범은 해외의 유명 뮤지션들로 세션을 이뤄 재즈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곡들로 채워졌다. 다음해 전국투어콘서트에서 4집의 ‘겨울 그림’에 참여했던 미국의 아카펠라 그룹 뉴욕보이스(N.Y Voices)와 함께 한 그는 라이브앨범을 발표한 뒤 탤런트 강문영과 결혼해 그녀가 주연한 영화 < 도둑과 시인 >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시집 < 색깔 속의 비밀 >을 출간한 그는 1996년 5집을 발표하고 나이트 클럽을 휩쓴 ‘오늘도 난’이라는 곡을 히트시킨다. 유행하는 트랜드를 흡수한 그는 미국에서 데려온 흑인백댄서와 함께 안무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1999년 발표한 6집에선 데뷔 앨범에서 많이 선보였던 팝 발라드 계열의 음악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 앨범에서는 ‘오직 너뿐인 나를’, ‘이별의 무게’ 등이 히트했지만 ‘오직 너뿐인 나를’의 원곡 ‘Finally''를 만든 원작자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안은 채 음반 작곡자란에 “외국 곡(작곡자의 행방을 찾으며)”이라는 문구만을 기재해 판매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이문세, 이상은, 이은미 등과 < 사인사색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영화 < 비천무 >에 ‘말리꽃’이라는 곡으로 참여하고 ''80년대의 가수들인 변진섭, 이선희, 김완선, 소방차 등과 결성한 대팔회에서 발표한 < Harmonized >에서 ‘The day''라는 곡을 불러준다. 2001년 4월 40억 여 원을 들인 국내 최고의 음향과 녹음 시설을 갖춘 < 퓨쳐 스튜디오 >를 완공해 업무에 들어간 그는 팝 발라드의 기조를 유지한 6.5집 < Confession >을 발표하고 ‘고백’이란 곡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신곡과 리메이크 곡,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불러 CD 2장에 담고 있다.
1944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충남 예산군, 흔히 ‘삽다리’로 알려진 삽교면으로 이주했다. 한양대 음대를 거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1968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가요로 가요계 스타로 등극하며 중퇴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명예졸업장을 받아 가까스로 졸업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란 풍자가요를 부른 다음날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중 19... 1944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충남 예산군, 흔히 ‘삽다리’로 알려진 삽교면으로 이주했다. 한양대 음대를 거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1968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가요로 가요계 스타로 등극하며 중퇴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명예졸업장을 받아 가까스로 졸업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란 풍자가요를 부른 다음날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중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험 목사의 부흥 집회에서 성가를 부른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트리니티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1982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가수로 복귀했으며, 1990년 카네기홀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었다. <조영남쇼>, <투맨쇼>, <체험 삶의 현장>, <조영남이 만난 사람> 등을 진행하는 등 방송인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지금은 MBC 라디오에서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생방송 진행을 맡고 있다.

앨범으로 <제비>, <보리밭>, <불꺼진 창>, <딜라일라>, <화개장터>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조영남 양심학』, 『놀멘놀멘』,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 『어느날 사랑이』,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천하제일 잡놈 조영남의 수다』 등이 있다. 1973년 한국화랑에서 첫 미술 전시회를 연 후 오늘날까지 서울·부산·뉴욕·LA 등 세계 각지에서 화가로서 작품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멤버 : 양하영, 강영철 멤버 : 양하영, 강영철
대형가수라는 별칭과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은하는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쇼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3년 ‘님 마중’이란 곡으로 공식적인 데뷔를 한 그녀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디스코 열풍에 힘입은 ‘밤차’와 ‘아리송해’로 절정의 인기를 이어갔다. 1980년대 중반, 김창완... 대형가수라는 별칭과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은하는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쇼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3년 ‘님 마중’이란 곡으로 공식적인 데뷔를 한 그녀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디스코 열풍에 힘입은 ‘밤차’와 ‘아리송해’로 절정의 인기를 이어갔다. 1980년대 중반, 김창완의 곡들로만 꾸민 앨범에서 ‘사랑도 한번 못 해본 사람은’으로 다시 정상을 탈환한 그녀는 고 장덕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발라드 시대의 한 축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며 1977년부터 1985년까지 각종 연말 식장의 주연급으로 등장했다. 이후 전영록의 ‘돌아보지마’로 1980년대 후반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그녀는 댄스씬이 몰아친 1992년 수작 < Escape >으로 귀환했지만, 더 이상 그녀는 TV속의 주연 자리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노래 : 신성우 (본명 : 신동륜)
영원한 테리우스의 표상인 신성우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심미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음악보다는 스캔들과 가십거리의 대상으로 항상 뉴스의 머리를 장식해 왔던 뮤지션이다. 그리고 미술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동화 속 왕자님의 모습을 지닌 이 순정 만화의 주인공은 드라마와 뮤지컬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음악에 대한 짙은 회의와 모색으로 몇 해를 지냈다. 그는 1992년 댄스 음악의 원년에 데뷔했... 영원한 테리우스의 표상인 신성우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심미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음악보다는 스캔들과 가십거리의 대상으로 항상 뉴스의 머리를 장식해 왔던 뮤지션이다. 그리고 미술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동화 속 왕자님의 모습을 지닌 이 순정 만화의 주인공은 드라마와 뮤지컬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음악에 대한 짙은 회의와 모색으로 몇 해를 지냈다. 그는 1992년 댄스 음악의 원년에 데뷔했다. 치렁치렁한 머리와 헤비메탈 의상으로 마이크를 움켜 쥔 모습은 영락없는 록커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해’로 정상으로 치닫는다. 그는 여성 팬들의 폭발적인 지원에 힘입어 댄스 음악의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90년대 중반을 돌파한다. ‘꿈이라는 건’, ‘노을에 기댄 이유’, ‘서시’, ‘친구라는 건’ 등의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으며 항상 록음악에 대한 동경으로 남성 팬들에게도 지지를 받는다. 그는 ‘내일을 향해’와 4집의 ‘슬픔이 올 때’로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3집의 ‘기쁨이 될 것을’은 랩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록음악의 변절자로 치부되며 본질을 보지 못하는 팬들에 의해 매도된다. 하지만 그의 음악성을 인정하는 팬들은 ‘천사여 울지 마세요’, ‘건달의 허세’,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모순’과 같은 곡들로 그를 높이 평가하며 하마평을 짓눌렀다. 신성우는 한때 장호일, 이동규와 지니(Geenie)라는 그룹을 만들어 펑크적 성향의 음악을 시도했다. 2장의 앨범을 냈던 이 그룹은 ‘뭐야 이건’, ‘바른생활’, ‘재회’, ‘코끼리’ 등을 히트시켰다. 이 당시의 음악은 신성우 솔로 앨범보다는 가볍고 멜로딕한 장점이 잘 살아 나는 곡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으며 무거운 주제들을 질주하는 기타 연주에 실어 한바탕 소란의 분위기로 엮어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4집에서 영국 록의 모습을 수용한 그는 스캔들을 딛고 발표한 5집 < Mauve >로 가장 큰 실패를 경험한다. 대중적인 외면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인 이 앨범은 초췌한 모습으로 뮤직비디오에 그의 모습을 드러낸 ‘사랑한 후에’가 타이틀 곡이었다. 신성우는 노래 활동뿐만 아니라 뮤지컬 < 드라큘라 >, 리아와 열연한 < 록햄릿 >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드라마 < 미스 힙합 미스터 록 > 등에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재능도 선보이며 전천후 예술가의 끼를 발휘했다. 또한 그는 일과 작업이란 미술 그룹을 결성해 1999년과 2000년에 < 일과작업(Work and works) >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열며 미술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0년 그는 2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테리우스의 이미지와 뮤지컬 < 드라큘라 >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긴 머리를 자르고 제주도와 동해 인근을 돌며 곡 작업을 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고 록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며 전체적으로 모던하고 복고적 사운드로 이뤄졌다. 하지만 팬서비스는 최신식이다. Enhanced CD로 뮤직비디오가 동영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국내 최초로 앨범 제작 과정(스튜디오녹음, 재킷촬영, 뮤직비디오 제작현장, 앨범 뒷 이야기 등)을 동영상으로 수록하였다. 이 땅의 수용자들은 그에게 발라드만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그를 자꾸 침잠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앨범의 한 쪽 구석을 그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채운다면 그것의 꾸준함은 언젠가 재평가를 일구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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