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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 21세기북스 | 2019년 05월 15일 리뷰 총점9.3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7점
편집/디자인
4.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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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417g | 135*195*17mm
ISBN13 9788950981082
ISBN10 895098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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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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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나름 화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수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중앙선데이》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나름 화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수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중앙선데이》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에디톨로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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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p.220~221

출판사 리뷰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다!”
―귀농, 귀촌, 텃밭이 우리 슈필라움의 전부일 수는 없다

아무리 드넓은 공간을 물리적으로 소유해도 그곳이 슈필라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값비싼 과시용 가구들로 그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슈필라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체적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취향과 관심으로 구체화돼야 비로소 진정한 슈필라움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라면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다. 무엇보다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

나만의 슈필라움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함부로 나에게 개입할 여지가 없다. 나를 관찰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내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 가능해져야 삶과 사회를 주체적으로 조망하고 행복의 지평을 자율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은 ‘감시’로 작동하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을 불안하게 옥죄는 치명적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내 존재는 나를 감시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초라하게 쪼그라든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고려는 “언제나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을 때 전제돼야 할 요소일 뿐이다.

자기 자동차 앞을 양보하면 인생 끝나는 것처럼 절대 비켜주지 않으려는 한국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채널을 고정하는 이유는, 타인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슈필라움에서 ‘시선의 자유’를 쟁취한 자연인들이 부럽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연인’이 될 용기도 없는 그들은 현재 유일한 슈필라움인 자동차 운전석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며 그마저 부정당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내 앞을 지키는 데 사력을 다한다. 은퇴 후 ‘귀농, 귀촌, 텃밭’을 꿈꾸면서. 그러나 그게 슈필라움의 전부일 수는 없다.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아이덴티티’이고, ‘기억’이며, ‘문화’인 공간을 언제까지나 자동차 운전석이나 텃밭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김정운의 슈필라움 ‘미역창고’ 이야기

‘미역창고(美力創考)’는 김정운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로망으로 간직해온 공간으로, 여수라는 낯선 곳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만들어가는 ‘바닷가 작업실’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내 공간’, 바로 눈앞에서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슈필라움에 대한 그의 ‘공간충동’이 구현된 결과이다. 무소유를 주장하고 실천한 법정 스님조차 ‘깨끗한 빈방’에 대한 이 공간충동을 평생 어쩌지 못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공간은 물리적으로 비어 있는 ‘수동적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에 주인으로 머무르는 인간과 상호작용하여 그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 이야기’를 창조하도록 돕는 ‘적극적 공간’을 일컫는다. 그렇게 창조된 이야기는, 타인의 무책임한 평가나 애꿎은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관찰하고 성찰한 ‘내 이야기’일 것이다. 즉 공간이 우리의 남은 이야기들을 좌우하므로 남은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운은 자신의 행복한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해 ‘비싼 것’이 아니라 ‘좋은 것’, ‘추상적 교환가치’가 아니라 ‘구체적 사용가치’를 찾아 서울에서 일본으로, 다시 여수로 인생의 자리를 옮겼다. 96퍼센트의 공연한 걱정은 제목을 붙여 노트에 적고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여 대처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싫은 것 ? 나쁜 것 ? 불편한 것’은 하나씩 제거하고, 인류의 불안 극복기로 가득한 미술관 ? 박물관이나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음악회를 찾아가고, 귀한 ‘책’에 침을 발라가며 밑줄을 긋는다. 잘 안되는 ‘어쩔 수 없는 시간’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리스펙트’를 토대로 ‘나와는 언제나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과 의사소통의 상식적인 순서를 주고받으며, 멀리 보고 자주 올려다보면서 구불구불 돌아가며 살아가려 애쓴다.

행복한 인생에 좀 더 실천 가능한 구체적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김정운이 자신만의 슈필라움에서 쓰고 그리면서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책’을 매개체로 하는 ‘자신과의 내적 대화’, 즉 ‘생각’이다. 이 책에 담긴 에세이와 그림은 그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 ‘생각’을 토대로 현대인의 삶과 사회에 대해 쓰고 그려간 ‘진짜 이야기’들이다. 이제 당신의 슈필라움에서 당신이 창조하는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올해의 책 추천평 (1개)

매년 진행되는 올해의 책 선정 행사에서 고객님들이 직접 작성해주신 추천평입니다.
2021
이 책이 주는 울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bob***** |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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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주간우수작 바닷가 작업실에서 들려주는 미역창고(美力創考) 열두 마당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사**기 | 2019-06-30

 

김정운 작가는 《남자의 물건》에서 2012년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무렵 작가는 다 때려치우고 한 일 년 쉬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학장으로 있던 이어령 선생을 찾아갔더니 대학에 추천장을 써주더란다.

작가는 2000년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여가경영학과을 신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2년은 작가 나이 딱 쉰이 되던 해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지난 50년’ 동안 떠밀려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50년’ 동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2012년 1월 나라에서 혼자 지내며 글을 썼다. 그리고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아름다운 개울이 흐르는 논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 상상이 간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그런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이 배우고 싶어졌다.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 입학한 작가는 일본화를 전공했다. 4년 뒤 돌아온 그는 일본 유학 생활에서 느끼고 쓴 생각과 글을 모아『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펴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외로워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격하게’ 외로워하라고, 사람도 좀 적게 만나고, 바쁠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으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마스크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 작가는 자신이 낸 책(벌써 6권이다)의 거의 모든 표지에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 예외가 두 권 있다.『가끔은 격하게』에 자신의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를 실었고, 이번 신간 표지는 여수 바다와 추상을 오버랩한 것이다. 신간의 표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간은 추상하면서부터 창조적이 되었다. (84)

파도칠 때는 그냥 가만히 듣는 거다. 그대가 파도칠 때, 나도 그랬다.” (120)

 

 

그래, 이번 신간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파도와 추상.

독일어에 '슈필라움(Spielraum)'이란 단어가 있다. '놀이(Spiel)''공간(Raum)'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말에 정확히 대응되는 말은 없지만, '활동의 여지''여유 공간'으로 옮길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작가에 따르면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심리적 공간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서구의 근대 부르조아 출현 이후에 생긴 가장 큰 주거상의 변화는 남자의 방의 출현이다. 공간이 곧 의식을 결정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 준비를 하는 김정운 작가


공지영 작가 역시 딸 위녕에게 보내는 글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원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공 작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쓸쓸함 속에 잠기고 싶어질 때면 피지 섬, 그 열대의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일층은 맛있는 에스프레스 커피와 빵을 파는 곳, 그리고 이층은 레스토랑과 술집을 겸한 카페, 그리고 삼층은 엄마의 집필실 겸 거처. 너희들을 모두 성장시키면 그런 곳으로 이민을 가서 삼층집을 짓고 싶었어. 아침에는 일층에 내려와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시장에 들러 싱싱한 해물을 사고 저녁에는 맛있는 해물 요리에 향 깊은 포도주를 먹고 그리고 올라가서 자는 거지. 창마다 남색의 바다가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아침에는 피아노 곡이 울리게 하고 해 질 녘에는 트럼펫을 듣고 깊은 밤에는 원주민 남자가 직접 부는 색소폰을 듣고......”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중에서

 

물론 방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을 빼곡히, 그리고 신명나게 채울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파도와 노을로 맞이할 수많은 날들을 위한 의미와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선택했다. 그리는 주제는 사물이다. 사물은 사물이되,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창으로 들여다보는 사물이니, 추상에 가까운 사물이다. 공 작가라면 소설이 아닐까.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슈필라움을 이야기하듯, 뇌과학자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발코니가 넓고 창이 커서 나무와 꽃이 잘 보이는 공간에 있으면 더 빨리 치유된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통영에 있는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기관으로 어린이와 부모를 대상으로 생태학습과 바다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는 여기서 장엄하고 멋진 노을을 보면서 언뜻 슈필라움을 맛보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통영 한산도에서 여수까지(그래서 한려) 펼쳐진 바다를 아우른다. 바로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은 확 트인 공간에 맞춰 설계돼 자연과 바다의 풍미를 온새미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몇 채의 독립된 생활관도 운영하고 있어 며칠 머무르며 지낼 수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노을이 장관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 넘실대는 바다색,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나는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바다 속에 잠긴다. 잠시 고요한가하면 이내 흔들리면서 공진하고 교감하게 된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에 갇혀 숨막혀하던 내 몸과 마음이 비로소 숨을 쉬고 내면의 파동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보는 '창틀'은 내가 결정한 거다.

잘 안 보인다고 '남 탓' 하지 말아야 한다." (88쪽)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279~280)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 조너스 솔크는 장소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는 1950년대 백신을 연구하던 도중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 잠시 기분전환을 위해 안식년을 신청하고 그는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마을로 날아갔다. 아시시는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곳으로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솔크는 강렬한 태양과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하릴없이 지내다 문득 어떤 영감을 얻었다. 얼마 후 연구소에 돌아온 그는 백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솔크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고 근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신의 이름을 딴 솔크연구소를 세웠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솔크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솔크연구소에서 바라보는 노을 풍경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 정신건강전문의이자 신경건축학을 전공한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는 우리가 아름다운 경치나 숲과 바다 같은 풍경을 볼 때 엔도르핀 분비가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평화와 고요를 가져다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치유할 힘을 얻으며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게 된다. 어떤 면에서 자신만의 평화와 치유 장소를 찾는 것은 행복을 누리는 지름길이다. 사실 자신에게 알맞은 치유 장소를 찾는 것 자체가 곧 행운이다.

작가는 여수에서 남쪽으로 배를 타고 한 시간 더 가야하는 섬에서 다 쓰러져가는 창고 하나를 비싸게 주고 구입했다. 뭍에서 일군을 구해오고 자재를 들여와 새로 뜯어고치고 리모델링해서 올해 초 자신만의 공간을 완성했다. 이름하여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미역을 채워두던 창고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 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문화 연구소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 그동안 시간time’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space’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 (203)

 

사실 여수행은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꿈꾸어오던 일이었던 모양이다. 여수 바닷가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3년 전 일이요,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다 다 쓰러져가는 창고를 발견하고 어디 홀린 듯 빠져들었다. 이렇듯 작가는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고, 새롭게 해석하며 부단히 뛰어들어 몸소 체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림 그릴 때, ‘오리가슴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지적인 오르가슴, 예술적인 오르가슴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부터 사용했다. 진짜 즐거움은 공부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근사한, 기발한 발상인가.


바닷가 작업실에서 작가는 앞으로 10년간 해야 할 일의 계획을 짠다고 했다. 가령 슈베르트의 연가 '겨울나그네'를 번역, 해설하고 각 노래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그리는 것 같은 일이다.

계획은 벌써 착수되었음이 틀림없다. 책의 구성을 보면 사계절 1224절기를 본 따 12장과 24 키워드로 이루어졌다. 24 키워드는 24곡으로 짜여진 겨울나그네를 떠올리게 한다.

여수 바다에 물때가 있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반복되면서 만조와 간조 시각이 매일 정확히 49분씩 늦어진다. 이를 소홀히 하면 어떻게 될까? 작가가 오리가슴으로 이름붙인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치자. 자칫 바닷물이 빠졌을 때 수백 미터 앞까지 밀려갈 수 있다. 배를 갯벌에서 끌고 올 수 없으니 몇 시간을 그냥 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바다에서 선주로, 어민으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배움이 필요한 법이다. 육지에서 해오던 방식대로 살라치면 숱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바다에 순응하고 자연에 귀기울이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야 비로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책은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질투열등감을 내려놓자고 우리를 다독(‘꼬이면 자빠진다!’ )이는가 하면, ‘성취경쟁의 규칙에서 벗어나 조그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갖자고도 말한다(‘열 받으면 무조건 지는 거다). 바닷가 작업실에 있으면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구나 싶다.

 

 

나는 작가의 그림 미역창고에서 고흐의 노란 방을 떠올렸다. 고흐는 아를에서 2층 집에 노란 방을 구해 정착했다. 그는 자신이 세 들어 사는 건물과 노란 방을 몇 점 그렸지 않았던가. 또한 나는 김정운 작가의 책을 통해 뇌의 공간적 전환, 즉 인식적 전환intellectual turn을 얻는다. 작가의 글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는 창을 얻고, 그 창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한다.

작가는 지적 호기심이 일 때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작가가 던져주는 지적 자극으로 충만할 수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또 다른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앞으로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 창고(創考)에서 우리에게 어떤 미역(美力)을 선사할지 기대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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