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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쳐블 가이 영화음악 (Private Parts OST) [블루 컬러 2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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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언터쳐블 가이 영화음악 (Private Parts OST) [블루 컬러 2LP]

2019년 RSD 한정반

Rob Zombie, Howard Stern, Porno For Pyros, Marilyn Manson, Ozzy Osbourne 노래 외 1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Warner Music / Warner Music | 2019년 05월 08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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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쳐블 가이 영화음악 (Private Parts OST) [블루 컬러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5월 08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컬러 디스크 LP를 구매하실 때 아래 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디스크

Disc1
  • 01 [Side A] Pig Virus
  • 02 The Great American Nightmare - Rob Zombie With Howard Stern
  • 03 Mama Look - - A Boo Boo
  • 04 I Make My Own Rules - With Flea, Dave Navarro And Chad Smith
  • 05 The Match Game
  • 06 [Side B] Hard Charger - Porno For Pyros
  • 07 Moti
  • 08 The Suck For Your Solution - Marilyn Manson
  • 09 Lance Eluction
  • 10 Pictures Of Matchstick Men - Ozzy Osbourne With Type O Negative
Disc2
  • 01 [Side C] The Contest
  • 02 Tired Of Waiting For You - Green Day
  • 03 WRNW
  • 04 Pinhead - The Ramones
  • 05 Oh Howard
  • 06 The Ben Stern Megamix
  • 07 The Howard Stern Experience
  • 08 Smoke On The Water - Deep Purple
  • 09 WCCC
  • 10 I Want You To Want Me - Cheap Trick
  • 11 [Side D] The Antichrist
  • 12 Cat Scratch Fever - Ted Nugent
  • 13 WNBC
  • 14 Janie’s Cryin’ - Van Halen
  • 15 Crackhead Bob
  • 16 You Shook Me All Night Long (Live) - AC/DC
  • 17 Howard You Stink
  • 18 Ladies & Gentlemen
  • 19 Tortured Man - Howard Stern And The Dust Brothers

아티스트 소개 (17명)

노래 : Rob Zombie (롭 좀비 (락/메탈 싱어송라이터))
포르노 포 파이러스는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리더였던 페리 패럴이 만든 그룹이다. 페리 패럴은 1990년대 얼터터티브 문화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페스티발을 기획했던 인물.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Curt Cobain)과 더불어 얼터너티브의 전설로 불린다. 1992년 제인스 어딕션을 해체한 페리 패럴은 드러머 스테펀 퍼킨스(前 제인스 어딕... 포르노 포 파이러스는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리더였던 페리 패럴이 만든 그룹이다. 페리 패럴은 1990년대 얼터터티브 문화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페스티발을 기획했던 인물.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Curt Cobain)과 더불어 얼터너티브의 전설로 불린다. 1992년 제인스 어딕션을 해체한 페리 패럴은 드러머 스테펀 퍼킨스(前 제인스 어딕션의 멤버), 기타리스트 피터 디스테파노(Peter DiStefano), 베이시스트 마틴 리노블(Martyn LeNoble)을 끌어들여 포르노 포 파이러스를 결성했다. 음악적 재료들은 제인스 어딕션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펑크(Funk), 아트 록, 재즈, 포크 등 여러 가지 장르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 現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멤버)의 기타가 중심이 되어 강력한 사운드를 토해내던 이전과 달리 프로그래밍과 샘플, 그리고 리듬 파트에 중점을 둔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일궈냈다. 차트 3위까지 오른 1993년 데뷔작 < Porno for Pyros >, 마틴 리노블이 탈퇴하여 파이어호스(fIREHOSE)의 마이크 와트(Mike Watt)가 참여한 1996년 2집 < Good God''s Urge >에 잘 나타나있다. 하지만 이후 페리 패럴은 명성만큼 그다지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의 분신인 롤라팔루자는 1996년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피터 디스테파노의 암 선고로 인해 그룹 활동도 무기한 중단해야만 했다. 결국 페리 패럴은 1997년 제인스 어딕션의 부활을 선언했고, 오늘날까지 라이브 공연을 위주로 얼터너티브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노래 : Marilyn Manson (마릴린 맨슨,Brian Hugh Warner)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커다란 하늘의 축복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갈무리했더라도 시대의 은총 없이 비상하기란 정말 버겁다. 그런 점에서 마릴린 맨슨은 행운아일 것이다. ‘세기말’이라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대는 그에게 음악계를 고공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뉴 밀레니엄. 희망이라면 희망의 시기다. 과연 새 ‘세기초’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소위 음악을 꽤...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커다란 하늘의 축복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갈무리했더라도 시대의 은총 없이 비상하기란 정말 버겁다. 그런 점에서 마릴린 맨슨은 행운아일 것이다. ‘세기말’이라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대는 그에게 음악계를 고공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뉴 밀레니엄. 희망이라면 희망의 시기다. 과연 새 ‘세기초’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소위 음악을 꽤나 듣는다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마릴린 맨슨에 대한 단상(斷想)은 음악이 아닌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섹스의 화신 마릴린 먼로와 세기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이름을 합한 그의 명칭(그룹명이기도 하다)과 함께 흉물스런 분장과 저주받은 앨범 커버는 음악을 듣기도 전에 이미 일반의 뇌리에 ‘사탄의 자식’이라는 인상을 각인했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사건과 사고로 타블로이드의 가십난에 단골로 등장하면서 그런 ‘이미지 포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보수세력과 기독교 단체에서는 그가 음악보다 쇼크기법으로 인기에 부합하려고 한다며 비난했다. 정말 맨슨의 음악과 행동은 순전히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의도된 계획이었을까. 그럼 10대들이 ‘맨슨교의 교주’라 칭하며 기꺼이 광신도를 자청하는 이유는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 음악 외적인 퍼포먼스? 한때의 엽기적 패션? 우선 ‘걸어 다니는 화약고’ 맨슨과 관련된 사건과 사고 퍼레이드를 보자. 1994년 10월 유타주 솔트 레이크시에서의 공연 도중 그는 몰몬교의 성서를 한 장씩 찢으며 관중들에게 뿌리는 용감무쌍한 돌출행동을 벌였다. 이후 그는 솔트 레이크에서 영원히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으며 자연 악마주의 논쟁에 휘말렸다. 1997년 11월에는 네바다주의 레이몬드 쿤츠라는 사람은 자신의 15살 난 아들이 맨슨의 2집 앨범 < Antichrist Superstar >를 듣고 자살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98년 1월에는 텍사스의 18살 청소년 존 슈로더(John Schroeder)가 맨슨의 노래 일부분인 ‘I am the God of Fuck’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125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분쟁의 씨앗을 제공한 마릴린 맨슨의 행위는 어찌됐건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이목제고를 위한 방법론으로 해석하기 전에 한번 이면에 숨은 메시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성경을 찢은 행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종이 한 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대해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들이 배운 모든 것들이 그들이 ‘믿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믿어야 한다고 배운 것’인지 다시 한번 숙고하기를 원한다." # 맨슨은 가해자 아닌 피해자? 결국 신앙의 근본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온갖 부패와 타락을 꼬집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1994년 데뷔작 < Portrait Of An America >부터 줄곧 담아온 중심 테제기도 하다. "미국은 죄를 전가시킬 아이콘을 즐겨 찾는다. 내가 적 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았다는 걸 인정한다. 사람들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활동과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맨슨은 그렇게 희생양이 된 자신의 처지를 말한다. 가사도 다를 게 없다. 데뷔 앨범의 수록곡 ‘Lunchbox’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한 학생이 도시락으로 저항하는 내용인데 총에 대한 노래로 저널리스트가 잘못 해석함으로써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Get your Gunn’ 역시 낙태에 관한 곡인데 미디어에 의해 잘못 오역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의 10대들은 사회의 오판과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마릴린 맨슨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받아들인다. 그의 깊은 속내는 모를지언정 어느 정도 의미파악은 한다. 진부함과 상투성에 안주한 부모세대와는 다르기에 말이다. 그것은 음악에서 더욱 광채를 발한다. 맨슨은 ‘쇼크 록의 창조자’ 앨리스 쿠퍼, ‘글램 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악마의 화신’ 오지 오스본의 이미지를 물려받아 그 위에 제도권과 종교계를 향한 비판적 메시지를 더함으로써 자신의 형체를 갖췄다. 그 비주얼 이미지들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음악으로 발현시켜 완벽한 천지창조를 이뤘다. 그의 음악은 1990년대 사운드의 결정판이다. 메탈, 테크노, 고딕, 인더스트리얼, 로큰롤 등 모든 음악적 텍스트가 집결되어있다. 그래서 딱히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에는 범위가 광대하다. 허나 포괄적이면서도 분산되지는 않는다. 하나로 결속해 광기 어린 에너지를 뿜어댄다. 이것이 바로 마릴린 맨슨의 힘이자 특수성이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평가받는 1997년 앨범 < Antichrist Superstar >가 이를 생생하게 전한다. 수록곡 ‘The beautiful people’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분노에 찬 짐 점(Zim Zum, 현재는 존 5로 교체)의 기타 리프와 포효하는 진저 피쉬(Ginger Fish)의 드럼 울림과 트위기 라미레즈(Twiggy Ramirez)의 베이스, 그 사이를 활강하는 게이시(M.W. Gacy)의 키보드는 맨슨의 극단적인 보컬과 맞물리며 ‘세기말 사운드’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혼돈과 무질서의 세기말 끝물의 정서에 편승하여 더욱 그 음악의 보편적 호소력이 상승한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상황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마를린 맨슨의 곧 나올 예정인 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번 신보 < Holy Wood(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는 여전히 그의 농축된 음악적 응집력과 함께 도발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현미경처럼 더욱 예리해지는 음(音)에 대한 감각과 멤버들의 빼어난 연주 기량은 더할 나위 없이 준수하다. 이제는 그는 음악 구세주인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트렌트 레즈너의 영향권 내에서 완전 해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도 인더스트리얼 메탈 성향의 2집과 글램 지향적이었던 1998년 3집 < Mechanical Animals >사이의 접착제라고 말할 정도로 양자의 색깔이 적절히 혼합, 배치되어있다. # 콜롬바인 총기사건 공세에 대한 반격 첫 싱글인 ‘Disposable teens’와 ‘The fight song’은 ‘The beautiful people’를 잇는 전형적인 맨슨의 음악 스타일로 그의 광신도들에게 공감의 줄을 퉁긴다. 멜로디 라인이 뚜렷이 들려오는 ‘Target audience(Narcissus narcosis)’나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같은 곡들은 그가 전체 사운드만큼 곡 하나 하나에도 세밀히 신경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앨범은 이처럼 전체와 개체 측면에서 질적 동반상승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솔직히 그의 사운드가 어느 정도 친숙해져 ‘첫 경험의 쇼크’가 부족하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메시지도 날카롭다. 이번 앨범은 1999년 4월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테마로 잡았다. 그 사건의 주범인 학생들의 집에서 자신의 음반이 발견되어 제도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 것에 대한 응분의 반격이다. ‘우리는 하찮은 사람이지만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죽었을 때 그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We are the nobodies/We wanna be somebodies/When we`re dead/They`ll know just who we are)’로 시작되는 ‘The Nobodies’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 롤링스톤 >지는 "다른 메인스트림 뮤지션은 상대도 안 되는 연극적인 열정과 통렬한 힐난으로 실제 삶을 전달하는 맨슨을 존경해야만 한다"며 극찬했다. 시대는 태어나는 자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시대를 움직이는 자는 몇 안 되는 소수이다. 얼마나 잘 이용해서 솟아나느냐가 관건이다. 마릴린 맨슨의 원래 직업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성공적 음악평론가였다. 음악 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보다 열려있고 선봉에 서있음을 시사한다. 세기말을 활동시간표로 선택한 것도 그의 선구안 덕분일 것이다. 처음 나른한 슈게이징 그룹에 몸담았다가 갑작스레 ‘극단의 이미지와 음악’으로 변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릴린 맨슨은 시대를 타고났고, 어쩌면 그것을 이용했다. 그리고 한 때를 풍미했다. 만약 신보로 ‘세기초’마저 관통한다면 그는 순간의 트렌드를 창조한 세기말 ‘원 히트 원더’를 넘어서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있을 왜곡과 부조리를 긁어주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이터널리 맨슨’임이 증명될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아버지의 혐오는 계속되겠지만.

* 디스코그래피
Portrait of An American Family (1994)
Antichrist Superstar (1996)
Mechanical Animals (1998)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2000)
The Golden Age of Grotesque (2003)
Eat Me, Drink Me (2007)
The High End of Low (2009)
Born Villain (2012)
오지 오스본만큼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내린 록 뮤지션도 드물 것이다. 그는 여러 기행으로 숱한 가십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따라다닌 지독한 알콜 중독은 차치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얘깃거리는 무수하다. 착란 상태에서 부인이자 매니저인 샤론 아든(Sharon Arden)을 살해하려한 것, 알라모 기념비에 방뇨, 공연 중 박쥐의 머리를 물어뜯음. 이런 상상하기 힘든 에피소드들로 그는 메탈이 ‘악마의 음악’이... 오지 오스본만큼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내린 록 뮤지션도 드물 것이다. 그는 여러 기행으로 숱한 가십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따라다닌 지독한 알콜 중독은 차치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얘깃거리는 무수하다. 착란 상태에서 부인이자 매니저인 샤론 아든(Sharon Arden)을 살해하려한 것, 알라모 기념비에 방뇨, 공연 중 박쥐의 머리를 물어뜯음. 이런 상상하기 힘든 에피소드들로 그는 메탈이 ‘악마의 음악’이라는 오명을 쓰게 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는 부모들이 혐오하는 록 스타의 전형이었다. 특히 한 소년의 죽음에 그의 노래 ‘Suicide solution’이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토대로 그의 부모에게 오지가 기소당한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이 모든 괴벽과 사건에도 불구하고 오지 오스본은 헤비메탈 씬에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하며 정상의 록 보컬리스로 군림해 왔다. 사실 그의 가창력은 경탄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고, 이미지도 깔끔함, 말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대중을 휘어잡는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그러한 것들을 덮어 버리고도 남았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그의 열정적인 스테이지 매너는 그 자체로 헤비메탈의 규범을 제시했다. 30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20여장에 이르는 음반을 공개하며 탄탄한 경력을 쌓아 온 오지 오스본의 유년기는 그러나 순탄하지 못했다. 1948년 영국 버밍햄에서 빈곤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도살장과 같은 허름한 일터에서 생계를 벌어야 했다. 집은 언제나 가난에 쪼들렸고, 오지는 상점을 터는 등 비행을 저지르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겁던 현실을 록 음악을 통해 날려 버렸다. 로컬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오지는 토니 아이오미(Toni Iommi)등과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결성해 공상에서나 가능할 듯했던 범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 Paranoid >, < Black Sabbath Vol.4 >등의 마스터피스를 터뜨렸다. 그렇지만 술과 마약에 빠진 오지와 멤버 사이에는 곧 반목이 발생했고, 그는 < Never Say Die >를 마지막으로 그룹 활동을 접었다. 곧 그는 솔로로서의 데뷔를 추진하는데, 오지는 오히려 그 시절 더 큰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의 솔로 활동 기간은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의 변화와 함께 몇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랜디 로즈(Randy Rhoads)와 팀웍을 맞췄던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클래식 기타강사 출신인 랜디의 영향이 작품을 깊게 지배해 장엄하면서 스케일이 큰 음악을 추구했던 시기였다. 뛰어난 기타 플레이어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랜디의 도움으로 오지는 이 시기 상업적으로 괄목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었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허나 이 콤비네이션은 랜디 로즈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오래 가지 못하게 되고, 그에게 많은 부분을 의탁하고 있었던 오지는 실의에 빠졌다. 그에게 랜디 로즈란 단순한 동료이자 연주 파트너가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교감하고 공유하는 소울 메이트였기 때문이다. 간신히 몸을 추스린 오지는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를 영입해 라이브 음반 < Speak Of The Devil >을 발표한다. 브래드는 곧 자신의 밴드 나이트 레인저(Night Ranger)로 건너가게 되고 오스본 그룹에는 일본인 피가 흐르는 기타 연주자 제이크 E 리(Jake E Lee)가 가세한다. 제이크는 랜디와는 달리 공격적인 프레이즈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쯤해서 밴드의 음악도 랜디 시절의 어두움과 음울함을 어느 정도 벗어나 메탈 특유의 드라이브(Drive)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맞춰지게 됐다. 제이크가 연주한 ‘Bark at the moon’이나 ‘Shot in the dark’를 들어보면 초창기 음악과 스타일 면에서 얼만큼의 차이가 생겼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랜디 로즈에 대한 그의 집착은 밴드에 치명상을 입혔는데, 그는 랜디의 추모음반 < Tribute >를 제이크의 동의 없이 공개함으로서 강한 반발을 샀다. 결국 오지의 돌출 행동으로 그룹은 커다란 전력 손실을 겪게 된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제이크가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오지 오스본은 다시 기타리스트를 영입하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했고, 채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잭 와일드(Zakk Wylde)가 새 멤버로 낙점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 잭 와일드는 그 이름만큼이나 힘있고 거친(Wild) 플레이를 자랑하는 천재였고, 그의 가세로 밴드의 사운드는 ‘Miracle man’, ‘Mr. Tinkertrain’ 등에서 잘 나타나듯 결성이래 가장 헤비하게 변한다. 새 피의 수혈은 활기가 부족했던 밴드에 힘을 불어넣었고, 알코올의 해악을 깨달은 오스본의 성숙한 자세와 어우러져 비평가들과 대중들로부터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획득했다. < No More Tears >의 성공을 뒤로 한 채 팬들에게 은퇴를 표명했던 오스본은 1995년 귀환을 알렸다. 헤비메탈과는 관련없는 자신의 밴드 프라이드 앤드 글로리(Pride & Glory)를 운영중인 잭 와일드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한 오지는 대신 조 홈즈(Joe Holmes)를 새 기타리스트로 대동하고 신작 < Ozzmosis >를 내놓았다. 그러나 아트 록계의 일급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만(Rick Wakeman), 오랜 친우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가 도움을 준 컴백 작품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긴 시간 동안 그의 복귀를 기다려 온 사람들은 순간 실망했지만 얼마 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오지가 신세대 록, 메탈 그룹들이 대거 출연하는 페스티벌 < 오즈페스트(Ozz-Fest) >를 창시한 것. 그의 기획력 덕택에 팬들은 더 많은 록의 축제를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지 오스본은 아직까지도 함성과 환호가 넘쳐나는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끓어오르는 동력으로 가득한 앨범들을 발표해 왔던 오지에게 육체적인 나이란 사실 부차적인 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록의 원천과도 같은 인물이다.
노래 : Type O Negative (타입 오 네거티브)
펑크는 간결함의 미학을 무기로 삼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뮤직 비즈니스의 그늘 아래서 복잡한 화성과 스튜디오 작업에만 치중하던 스타디움 록에 대한 안티 테제였으며, 펑크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미이다. 라몬즈(The Ramones)는 바로 이러한 펑크의 방법론을 일궈낸 그룹이다. 우선 이들의 노래는 러닝 타임이 3분을 초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곡들은 몇 개의 코드만을 빠른 템포로 반복하는 이른바 ‘미니멀리즘’ 태도... 펑크는 간결함의 미학을 무기로 삼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뮤직 비즈니스의 그늘 아래서 복잡한 화성과 스튜디오 작업에만 치중하던 스타디움 록에 대한 안티 테제였으며, 펑크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미이다. 라몬즈(The Ramones)는 바로 이러한 펑크의 방법론을 일궈낸 그룹이다. 우선 이들의 노래는 러닝 타임이 3분을 초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곡들은 몇 개의 코드만을 빠른 템포로 반복하는 이른바 ‘미니멀리즘’ 태도에 충실했으며, 기타 또한 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퍼즈 톤을 사용하였다. ‘Judy is a punk’ 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사 또한 단순, 파격을 미덕으로 삼았는데, “양아치들이 뒤에서 시비를 건다, 야구방망이로 때려눕히자!!(Beat On The Brat)”라는 선동 구호만을 외치고 끝내는 곡도 있다. 이것은 ‘스리-코드(Three-Chord) 펑크’의 출발이었고, 동시에 로큰롤이 본래의 순수함과 원시성을 회복한 혁명적인 시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최소한의 악기 편성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단순 명쾌함,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와 궤를 같이하는 겹겹이 쌓인 둔탁한 사운드, 그리고 이후 펑크 록 그룹들의 청사진이 될 데뷔 앨범의 커버 등에 이르기까지 라몬즈는 ‘펑크를 발명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와 클래시(The Clash)가 주도했던 70년대 말 영국의 펑크 폭발도 실은 라몬즈의 76년 영국 투어가 기폭제로 작용한 결과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많은 펑크의 대부들이 그랬듯이 라몬즈의 역사도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시작된다. 그룹은 1974년 조이 라몬(Joey Ramone, 보컬), 자니 라몬(Johnny Ramone, 기타), 디 디 라몬(Dee Dee Ramone, 베이스), 그리고 토미 라몬(Tommy Ramone, 드럼)에 의해 결성되었다. 75년, < 사이어(Sire) > 레코드사와 계약한 라몬즈는 이듬해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 Ramones >를 선보인다. 음반에는 “Hey, Ho~ Let’s Go~"를 외치며 시작하는 펑크의 기념비적인 송가 ‘Blitzkrieg bop’이 수록되어있다. 76년 영국 공연을 계기로 그들은 브리티시 펑크 씬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년 뒤인 1977년 < Leave Home >이 발표되면서 섹스 피스톨스와 함께 펑크 록 혁명의 키워드로 부각됐다. 같은 해인 77년 < Rocket To Russia >를 마지막으로 드러머 토미 라몬이 탈퇴하자, 마키 라몬(Marky Ramone)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룹은 이후에도 2번에 걸쳐 라인업의 변화를 겪는데, 83년 드러머 마키 라몬이 리치 라몬(Richie Ramone)으로, 그리고 89년에는 베이시스트 디 디 라몬이 씨.제이 라몬(C.J.Ramone)으로 교체된다. 씨.제이 라몬은 멤버 중 가장 젊은 나이였으며 라몬즈의 음악을 듣고 자란 펑크 키드였다. 79년에는 < Rock ’N’ Roll High School >이 발표되어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였으며, 80년 작품 < End Of The Century >에서는 필 스펙터와의 작업을 통해 그들이 품고 있던 50, 60년대 팝에 대한 오마쥬를 나타냈다. 특히 로네츠(The Ronettes)의 곡을 커버한 ‘Baby I love you’는 영국 차트 탑 텐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라몬즈는 어느 때 보다도 팝 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냈으나, 80년대 중,후반 부터는 상당히 하드 코어한 스타일로 변화해갔다. 이는 당시 음악계를 주무르고 있던 팝 메탈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또한 그룹은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라이브 앨범을 내놓곤 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79년 < It’s Alive > 와 91년 < Loco Live >를 들 수 있다. 95년, 라몬즈는 ‘친구여 안녕’이라는 뜻의 마지막 정규 앨범 < Adios Amigo >를 발표하고 갑자기 해체를 선언했다. 그들은 은퇴의 이유를 “돈도 많고 음악의 가치도 상실한 노인들인데도 계속 버티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같은 그룹은 되기 싫다”라고 밝혔다. 당시는 그린 데이(Green Day)와 오프 스프링(The Offspring) 등에 의해 펑크가 부활하면서 라몬즈의 업적이 재조명 받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그들은 유명세가 아닌 진정한 펑크 록커의 길을 택했다. 해체 후에도 96년 롤러팔루자(Lollapalooza)에 참여하는 등 다소간의 활동을 이어갔으나 2001년 4월 15일, 조이 라몬이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라몬즈의 역사도 막을 내리게 된다. “Hey Ho~ Let’s Go~” 라는 한마디로 록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라몬즈는 21년의 긴 세월을 어떠한 타협도 없이 펑크에 헌신하였다. DIY 와 반(反) 상업주의를 몸소 실천하여 진정한 인디 정신을 보여준 실로 위대한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펑크란 이런 것이다’ 라는 모범을 제시하였고, 이제는 뉴욕 씬의 전설이 되어 수많은 펑크 키드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2002년 그들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노래 : Ted Nugent (테드 뉴전트)
멤버 : John King, Matt Dike, Mike Simpson 멤버 : John King, Matt Dike, Mike Simpson
연주 : Chad Smith (채드 스미스,Chadwick Gaylord Smith)
록 드럼 연주자.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멤버 록 드럼 연주자.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멤버
밴드 : Flea (플레아,Flea On The Honey / Etna)
이탈리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이탈리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멤버 : Billie Joe Armstrong, Mike Dirnt, Tre' Cool 그린 데이(Green Day)는 1990년대 중반 오프스프링(Offspring)과 함께 펑크(Punk)를 논란의 장으로 다시금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이들은 밴드명만큼이나 중독성 강한(그린 데이는 마리화나의 또 다른 별명이다) 팝 펑크 사운드를 무기로 한 세대를 호령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물론 이를 두고 파티 펑크라며 비... 멤버 : Billie Joe Armstrong, Mike Dirnt, Tre' Cool

그린 데이(Green Day)는 1990년대 중반 오프스프링(Offspring)과 함께 펑크(Punk)를 논란의 장으로 다시금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이들은 밴드명만큼이나 중독성 강한(그린 데이는 마리화나의 또 다른 별명이다) 팝 펑크 사운드를 무기로 한 세대를 호령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물론 이를 두고 파티 펑크라며 비난한 이들도 있었지만 1970년대의 강령을 20년이 지난 후에도 강요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 착오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대중성이라는 잣대가 반드시 고의적인 상업적 의도와 결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빌리 조 암스트롱(Billy Joe Armstrong), 마이크 던트(Mike Dirnt), 알 소브랜트(Al Sobrante)의 라인업으로 활동의 시작점을 찍은 이들의 전신(前身)은 스위트 칠드런(Sweet Chidren)이었다. 하지만 유사한 이름을 가진 밴드가 있다는 이유로 2주만에 그린 데이로 환승하게 되었다. 새롭게 출발한 밴드는 1991년에 데뷔작인 < 1039/Smoothed Out Slappy Hours >를 발표했다. 단 하루만에 녹음된 이 앨범은 괴짜다운 이들의 특성을 잘 드러내며 인지도를 넓혀주었다. 이 후 알 소브랜트가 대학을 가기 위해 밴드를 떠났고 대신 트레 쿨(Tre Cool)이 드럼 스틱을 거머쥐었다. 1년 뒤 등장한 < Kerplunk >는 그린 데이에게 언더그라운드를 뛰쳐나올 계기를 마련해준 역작이었다. 노이즈와 캐치(catchy)한 멜로디가 절묘하게 만난 이 앨범을 듣고 많은 메이저 음반사들이 구애의 손길을 뻗친 것은 당연지사. 밴드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의 화려한 외출을 준비했다. < 워너(Warner) >와 계약한 뒤 1994년에 발매한 < Dookie >는 미국 내에서 1000만장 이상, 전 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몬스터 히트를 기록하며 뉴 펑크(New Punk)를 X-세대 음악의 위치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다. 첫 싱글 ’Longview’는 MTV에서 꾸준히 리퀘스트되었고 스매시 히트송인 ’Basket case’는 빌보드 모던 록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린 데이의 대표곡이 되었다. 그 해 여름에 밴드는 25년 만에 다시 개최된 우드스탁(Woodstock) 페스티벌에 참가, 화끈한 퍼포먼스를 연출해냈고 이에 힘입어 네 번째 싱글 ’When I come around’ 역시 차트 넘버원에 안착하며 인기 몰이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미(Grammy Awards)는 이들에게 최우수 얼터너티브 음악 연주상을 선사하며 현재의 대세가 펑크 록임을 보증하였다. 그러나 1995년에 나온 < Isomniac >은 전작의 패턴을 유지하며 4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대박이 터진 뒤의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파괴력을 지닌 싱글감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여 < Dookie >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양산해낸 것이다. 하지만 < Angus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J.A.R’로 차트 정상에 오르면서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그린 데이는 펑크 록 사운드를 핵으로 다양한 접근법을 선보인 < Nimrod >(1997), 원숙한 노련미를 맘껏 펼쳐 보인 < Warning >(2001)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펑크 록 사운드가 녹슬지 않았음을 훌륭히 증명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린 데이는 자신들의 히트곡을 총 정리한 < International Superhits >(2001)로 숨을 고르며 재충전에 들어갔다.
1960년대의 패러다임이었던 반(反)문화(counterculture), 히피(hippie) 혁명이 현실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판명 나자, 1970년대 록의 전반적인 지형도는 큰 변화의 폭을 그렸다. 일명 ’We dacade’에서 ’Me dacade’로의 이동이었다. ’1970년대 들어 반문화적인 주장들이 그 힘을 잃고 일종의 판매기법으로 전락하자 록 걸작들의 특별한 지위는 점차 공동체의 견지가 아닌 개인적 예술의 ... 1960년대의 패러다임이었던 반(反)문화(counterculture), 히피(hippie) 혁명이 현실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판명 나자, 1970년대 록의 전반적인 지형도는 큰 변화의 폭을 그렸다. 일명 ’We dacade’에서 ’Me dacade’로의 이동이었다. ’1970년대 들어 반문화적인 주장들이 그 힘을 잃고 일종의 판매기법으로 전락하자 록 걸작들의 특별한 지위는 점차 공동체의 견지가 아닌 개인적 예술의 견지에서 설명되기 시작했다.’ 라는 평론가 사이먼 프리스의 주장이 이를 잘 말해준다. 자연스레 뒤따른 것은 ’장르의 세분화’였다. 특히 록 신에서는 하드 록 혹은 헤비메탈의 급격한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1960년대 말부터 꽃을 피웠던 하드 록 사운드가 젊은 혈기의 대변자임을 자청, 록의 메인 장르로 우뚝 올라섰던 것. 바로 수많은 밴드들이 자웅을 겨뤘던 록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개막이었다. 그 중에서도 딥 퍼플은 ’소리의 볼륨’에 있어서 절대 강자였다. 1968년 영국 허트포드(Hertford)에서 결성된 이 하드 록 제왕은 한때 기네스 북 공인의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룹’임을 뽐낼 만큼 열혈 헤드뱅어들을 휘하로 집결시켰다. 비록 월드 마케팅에서는 레드 제플린에 비해 뒤졌지만 적어도 국내와 일본에서만큼은 그들이 인기 넘버원이었다. 일례로 밴드의 시그니처 송이자 딥 퍼플이 오프닝을 섰던 스위스 몬트뢰 빌딩에서의 프랭크 자파 공연 당시의 화재를 보며 작곡한 ’Smoke on the water’는 록을 알기 위한 통과의례로 변함 없이 극빈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딥 퍼플은 기수로 구분될 만큼 잦은 멤버 교체로 유명했는데 명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격이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독선이 그 주된 이유였다. 최초 그룹은 존 로드, 닉 심퍼, 리치 블랙모어, 로드 에반스, 이언 페이스의 라인업으로 출항의 닻을 올렸다. 허나 처녀작 < Shades of Deep Purple >(1968), 소포모어 음반 < Deep Purple >(1969), 3집 < The Book of Taliesyn >(1969) 등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듯 그들만의 캐릭터가 명확히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수록곡 대부분이 조 사우스(Joe South)의 ’Hush’(빌보드 4위)와 ’Hey Joe’,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Kentucky woman’(38위), 비틀즈의 ’Exposition/We can make it out’, 팝 클래식 ’River deep-Mountain high’(53위) 등, 리메이크로 채워져 있다는 데서 잘 파악된다. ’April’과 ’Anthem’ 등, 존 로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클래시컬한 넘버들 역시 별다른 피드백 효과를 얻지 못했다. 같은 해 로드 에반스와 닉 심퍼가 팀을 등지고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새로이 투입되면서 딥 퍼플의 황금 시대가 비로소 개막되었다. 권력의 축이 존 로드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로 옮겨간 것 또한 이 즈음이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진두지휘 아래 그룹은 막강한 하드 록 사운드를 내뿜기 시작했다. 존 로드 작곡의 ’Concerto Group and Orchestra’를 기초로 완성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작 < Concerto Group and Orchestra >(1969) 이후에 발표한 일련의 앨범들이 이를 잘 대변한다. ’Child in time’, ’Speed king’ 등이 사랑 받았던 1970년의 < Deep Purple in Rock >, ’Strange kind of woman’, ’Black night’(66위) 등이 히트했던 빌보드 앨범 차트 32위의 < Fireball >(1971), 불멸의 명곡 ’Smoke on the water’(4위)와 ’Highway star’를 담고있는 1972년의 마스터피스 < Machine Head >(7위) 등이 그것들이다. 실황 작품인 < Made In Japan >(6위, 1972)은 각종 라이브 명반 선정에 빠지지 않고 등재될 만큼 동종(同種) 품목 중 발군임을 뽐냈다. 허나 1973년의 < Who Do You Think We Are >를 끝으로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탈퇴하면서 2기는 막을 고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맞이하며 시작점을 찍은 3기 역시 찬란한 성과를 이어나갔다. 숨겨진 보석 ’Burn’이 수록된 동명 타이틀의 < Burn >(9위, 1974), 같은 해의 < Stormbringer >(20위)등이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던 것. 곡들 중, 후자에 실린 ’Soldier of fortune’은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여러 발라드 선곡집에 현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골든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곧바로 리치 블랙모어가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 밴드를 떠남으로써 딥 퍼플은 좌초의 위기에 몰렸지만, 천재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Tommy Bolin, 1976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이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었다. 그의 음악적 취향이 적극 반영된 재즈풍의 음반 < Come Taste The Band >가 이 시기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헤비 메탈 지향성과 삐걱 화음을 자아내면서 딥 퍼플은 1976년 영국 투어를 끝마친 후 휴지기에 들어갔다. 밴드가 끊임없는 재 결합설에 부응하며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편 때는 1984년.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언 길런, 로저 글로버, 이언 페이스의 드림 팀으로 구성된 그들은 < Perfect Stranger >(1984), < The House of Blue Light >(1987) 등을 내놓으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의 갈등으로 이언 길런 대신 조 린 터너를 보컬로 기용했던 < Slaves and Masters >(1990)를 기점으로 그룹의 인기 곡선은 완연한 하향세를 그렸다. 이언 길런을 재 수혈해 녹음했던 < The Battle Rages On >(1992)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견디지 못한 리치 블랙모어가 또 다시 굿바이를 선언, 밴드는 결국 타이타닉 호의 운명을 걷는 듯 보였다. 그러나 컨트리 록 기타의 달인 스티브 모스를 후임으로 낙점하면서 그룹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나갔다. 통산 16집인 1996년작 < Purpendicular >, 17집인 < Abandon > 등으로 호평 받았던 딥 퍼플은 국내에서 가졌던 몇 차례의 공연을 포함, 지금도 여러 곳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 1979년 소녀들의 비명 소리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시작하는 ‘I want you to want me’의 라이브 버전은 그룹 창단 여섯 돌을 맞이하는 칩 트릭(Cheap Trick)에겐 고대하던 성공의 축포였다. 1973년의 공식적인 결성 이후 6년 동안 년(年) 200회 이상의 초인적인 공연을 강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 전미차트 7위에 오르는 이 곡의 차트정복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칩 트... 지난 1979년 소녀들의 비명 소리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시작하는 ‘I want you to want me’의 라이브 버전은 그룹 창단 여섯 돌을 맞이하는 칩 트릭(Cheap Trick)에겐 고대하던 성공의 축포였다. 1973년의 공식적인 결성 이후 6년 동안 년(年) 200회 이상의 초인적인 공연을 강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 전미차트 7위에 오르는 이 곡의 차트정복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칩 트릭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73년 미국의 일리노이즈에서 결성된 4인조 팝 록 밴드 칩 트릭의 뿌리는 기타리스트 릭 닐슨(Rick Nielsen)과 베이시스트 톰 피터슨(Tom Petersson)이 1960년대 후반에 결성한 퓨즈(Fuse)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반 현재의 이름 칩 트릭으로 개명하고 번 E. 카를로스(Bun E. Carlos)와 랜디 호건(Randy Hogan)을 각각 드러머와 보컬리스트로 받아들였지만 이들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자 공동 리더인 릭과 톰은 팀의 프론트를 랜디 호건에서 미소년의 외모를 소유한 전직 포크 싱어 로빈 잰더(Robin Zander)로 전격 교체하고 비상을 준비한다. 1977년에 공개된 역사적인 데뷔 앨범 < Cheap Trick >은 비록 싱글 히트곡은 없었지만 비틀스에게서 물려받은 확실한 선율 감각과 더 후(The Who)로부터 전수 받은 듯한 파워풀한 연주가 유머러스한 가사와 앙상블을 이뤄 이들의 재능이 꿈틀대고 있음을 내비친 작품이었다. 같은 해에 나온 < In Color >에서는 2년 뒤 공연 실황 버전으로 차트를 강타하게 될 ‘I want you to want me’가 온전한 스튜디오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1978년에 발표된 < Heaven Tonight >도 가능성을 재확인하면서 이들에게 첫 번째 싱글 히트곡 ‘Surrender’(62위)’를 제공했다. 펑크적인 기타 백킹 연주와 팝적인 멜로디가 찰떡 궁합을 과시한 이 곡은 전형적인 칩 트릭 사운드를 구현한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이다. 그동안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보단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로빈 잰더의 잘생긴 외모와 귀를 슬슬 잡아당기는 자연스런 멜로디의 매력에 빠진 일본 소녀들은 칩 트릭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78년 4월, 이들은 일본의 그 유명한 공연장인 무도관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가졌고, 그 열기를 고스란히 담은 음반이 바로 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 Live At Budokan >이다. 실은 이 앨범도 일본음반자본이 지원해 탄생되었다. 이전의 어떤 음반 못지 않게 화끈한 연주와 후끈 달아오른 현장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달한 이 앨범에서 ‘I want you to want me’와 1950년대 흑인 로큰롤 스타 팻츠 도미노(Fats Domino)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in’t that a shame’은 싱글로 커트되어 각각 7위와 35위를 기록하면서 일본,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을 풍미한 버블검 사운드를 표현한 ‘I want you to want me’는 그 앙증맞은 후렴구 때문에 지금까지도 칩 트릭을 정의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이 LP는 라이브 실황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4위까지 올랐고, 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함으로써 상업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 모두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인 1979년, 싱글 ‘Voices(32위)’와 ‘Dream police(26위)’가 들어 있는 다음 앨범 < Dream Police >로 확실하게 스타급 밴드의 반열에 올랐지만 비틀스와 아메리카(America)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초빙해 제작한 1980년 < All Shook Up >은 과욕 탓인지 제1의 프로듀서와 최고 인기 밴드의 상봉은 융화되지 못한 채 어색한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앨범 후 톰 피터슨은 그룹을 떠났고, 그 후임으로 존 브랜트(Jon Brant)를 영입해 ‘If you want my love(45위)’와 ‘She’s tight(65위)’가 싱글 차트에 입적한 < One On One >을 발표하면서 팝의 시대인 1980년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무렵 톰이 없는 칩 트릭은 예전과 같은 음악을 뽑아 내지 못한 채 힘겨움을 드러냈다. 상생(相生)의 필요성을 절감한 칩 트릭과 피터슨이 재회한 것은 1988년에 공개한 < Lap Of Luxury > 때였다.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영광을 안겨 준 발라드 ‘The Flame’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원곡을 커버한 ‘Don’t be cruel(4위)’, ‘Ghost town(33위), ’Never had a lot to lose(75위) 등을 4장의 싱글을 토해낸 이 음반으로 칩 트릭은 1980년대의 부진을 걷어내고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경쾌한 분위기의 ‘Don’t be cruel’이 애청되면서 다시 일어선 칩 트릭의 인기를 주도했다. 1988년 말에는 로빈 잰더가 하트(Heart)의 보컬리스트 앤 윌슨(Ann Wilson)과 함께 멜 깁슨과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영화 < 데킬라 선라이스 >의 주제곡 ‘Surrender to me’를 불러 6위에 랭크 시키기도 했다. 곡은 우리에게 ‘Now and forever’와 ‘Right here waiting’, ‘Endless summer night’ 등으로 널리 알려진 리차드 막스(Richard Marx)가 썼다.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에 등장한 헤비메탈 밴드와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그룹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전수했다. 후배 뮤지션들은 인터뷰를 통해 “칩 트릭의 힘이 넘치는 기타 리프와 사운드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았다”며 무한한 존경과 신임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자신들의 오프닝 무대를 칩 트릭에게 부탁하기도 했으며, 1980년대 팝 시대의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포르노 포 파이러스(Porno for Pyros)의 리더인 페리 파렐(Perry Farrell)이 주창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페스티벌의 대명사 롤라팔루자에 참여한 바 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다시 한번 음악적 침체기를 맞이한 칩 트릭은 현재까지 새로운 음반 제작보다는 데뷔 초기처럼 ‘최고의 라이브 밴드’라는 명성에 걸맞은 줄기찬 공연 활동을 전개하고있다. 칩 트릭의 노래들은 이름처럼 결코 값싸지도 않으며 속임수 또한 아니다. 저항성과 함께 록의 양 날개 중 다른 날개인 ‘대중성’으로 따진다면 이들은 극점에 위치하는 그룹이다. 앞으로도 이들만큼 ‘완벽한 기타 주도의 팝 록 사운드’를 구현한 그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밴드 : Van Halen (밴 헤일런 (반 헤일런))
1978년, 전 세계의 음악팬들은 ‘Eruption’이라는 채 2분이 되지 않는 짤막한 곡을 듣고는 모두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롤러 코스터를 타듯 현 위를 자유자재로 횡단하는 그 초절기교(超絶技巧)의 속주 곡은 지미 헨드릭스 출현 이후 제 2의 기타 혁명이라 할 정도로 모든 록 키드들을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연주자의 이름은 당시 약관 21세에 불과했던 에디 밴 헤일런이었다. 그와 그의 형 알렉스... 1978년, 전 세계의 음악팬들은 ‘Eruption’이라는 채 2분이 되지 않는 짤막한 곡을 듣고는 모두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롤러 코스터를 타듯 현 위를 자유자재로 횡단하는 그 초절기교(超絶技巧)의 속주 곡은 지미 헨드릭스 출현 이후 제 2의 기타 혁명이라 할 정도로 모든 록 키드들을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연주자의 이름은 당시 약관 21세에 불과했던 에디 밴 헤일런이었다. 그와 그의 형 알렉스 밴 헤일런이 이끄는 그룹 밴 헤일런은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고 일렉트릭 기타의 역사는 그의 등장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그때부터 록 기타리스트들은 누구나 속주를 할 줄 알아야 했고, 남들보다 앞선 고 난이도의 테크닉을 연구해야만 했다. 1980년대 헤비메탈 그룹들의 공통분모였던 ‘화려한 손가락의 향연’은 그렇게 밴 헤일런과 함께 시작되었다. 데뷔작 한 장만으로 헤비메탈의 긴 흐름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밴 헤일런은 매머드(Mammoth)라는 아마추어 그룹에서 연주를 하던 밴 헤일런 형제가 역시 밴드생활을 하던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리 로스와 마이클 앤소니를 맞아들여 팀을 정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몇 년간 미국 내 여러 지역을 떠돌며 가난한 클럽 밴드로 활동하던 밴 헤일런은 1977년 마침내 행운을 잡게 된다. 그룹 키스의 리더 진 시몬스(Gene Simmons)가 그들의 연주를 보고 반해 데모 테이프의 제작을 제의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이들은 곧 워너와의 인연을 맺었고, 꿈에서만 그리던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1집 < Van Halen >이 동반한 강풍은 이들의 인지도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고 에디는 일약 유명 기타전문지 < 기타 플레이어 >가 주는 신인상을 수상하며 팬들과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 우상으로 떠올랐다. 데뷔작에서는 말 그대로 ‘분출의 미학’을 보여준 ‘Eruption’외에도 킹크스(Kinks)의 원곡을 모던하게 커버한 ’You really got me’(36위)를 비롯해, 경쾌함과 파워를 동시에 드러내는 ‘Running with the devil’(84위)가 많은 인기를 끌었다. 차트에 얼굴을 내밀지는 못했지만 ’Jamie’s cryin’’, ’Ain’t talkin’ bout love’도 마니아층 사이에서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두 번째 음반 < Van Halen Ⅱ >에서 5집 < Diver Down >에 이르기까지 밴 헤일런은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했다. (1집에서 보여준 묘기 때문에 상대적 충격이 덜하긴 했지만) 두 손으로 기타 위를 종횡무진 하는 에디의 태핑(Tapping)주법은 경지에 다다랐으며, 발표하는 앨범은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우울함과는 거리가 먼 밝고 신나는 로큰롤 사운드는 이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성공요인이었다. 1983년의 마지막 날에 발매되어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 1984 >는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수록곡 ‘Jump’는 기타 대신 춤출 수 있을 듯한 신서사이저 선율을 전면에 부각해 헤비메탈 곡으로는 이례적으로 빌보드 1위를 정복하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뒤이은 ‘Panama’(13위)도 흥겨운 보컬과 코러스를 앞세우고 차트를 강타했다. 이 음반은 폭발적인 라디오 플레이의 뒷받침 속에 10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밴드 최고 영광의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 1984 > 발표 이후 표면화된 데이비드 리 로스와 에디 밴 헤일런간의 알력은 그룹을 잠시 긴장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당시가 에디 밴 헤일런이 마이클 잭슨의 ‘Beat it’에서 기타를 연주해 각광받는 등 밴드가 욱일승천하던 때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결국 데이비드는 솔로로 독립해 비치 보이스의 ‘California girls’를 리메이크해 3위에 올려놓으며 홀로 자리를 잡았고, 밴드는 새미 헤이거를 새 프론트맨으로 맞이하고 팝적인 무드와 하이 테크닉이 절충된 듯한 음반 < 5150 >(밴드의 스튜디오 이름이기도 하다)을 공개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다행히도 대중들의 < 5150 >은 ‘Why can’t this be love’(3위), ‘Dreams’, ‘Love walks in’(이상 22위)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전작의 맥을 이어갔다. 이후 터져 나온 두 장의 음반의 기세는 더욱 놀라웠다. < OU812 >와 < For Unlawful Carnal Knowledge >는 각각 앨범 차트 1위로 직행하는 무서운 힘을 발휘했으며, 특히 후자는 드릴로 기타를 연주한다는 에디 밴 헤일런의 유니크한 발상이 독창성을 인정받아 < 그래미 어워드 >의 ‘베스트 하드 록 보컬’ 부문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로써 밴드는 상업성과 실험성을 모두 포획하는 전과를 올린다. ‘When it’s love’(5위), ‘Finish what ya started’(13위), ‘Top of the world’(27위), ‘Right now’(55위)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밴드의 전성기는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시소 위에 탄 샴 쌍둥이가 혐오스럽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국내에선 한 명이 삭제된 채로 발매된 < Balance >는 레이 찰스(Ray Charles)의 ‘Can’t stop loving you’(30위)를 히트시켰지만, 확실히 예전만 못해진 창작력은 팬들의 외면을 불러왔다. 호의적이었던 비평가들의 평가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새미 헤이거가 탈퇴하고 익스트림의 보컬리스트 게리 세론이 3번째 목소리로 가입해 밴드 3기를 상징하는 타이틀의 < Van Halen >를 내놓았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익스트림의 펑크 메탈(Funk Metal)과 완벽한 균형을 맞췄던 그의 보이스는 밴 헤일런의 사운드와는 접선이 닿질 않았다. 상업적으로도 앨범은 냉대 받아 언제나 무난히 달성하던 플래티넘의 고지도 접수하지 못했다. 결국 게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밴드를 물러나는 비운을 맞았다. 지금 밴 헤일런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인 에디 밴 헤일런은 오랜 흡연으로 발병한 암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들의 음악을 대변해 줄 리드 싱어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비어 있다. 허나 투병중임에도 에디는 엄청난 분량의 곡을 쓰는 등 왕성한 작곡 활동을 보이며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 팝 메탈의 창시자이자 일렉트릭 기타 사에 길이 빛날 명연을 남긴 밴 헤일런의 화려한 일대기가 비참하게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을 아꼈던 모든 이들의 같은 마음일 것이다.
밴드 : AC/DC (에이씨 디씨)
대중음악은 ‘트렌드’와 직결된다. 시대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며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 일렉트로닉이 음악의 주류(主流)로 자리잡은 것도 그 한 예다. 때문에 시대를 역행하거나 한 우물만을 파는 것은 스스로 화약고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다. 웬만한 음악성과 장인정신 없이는 시선몰이 자체가 힘들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출신의 헤비메탈 밴드 AC/DC는 바로 그 위험에 도전해 승... 대중음악은 ‘트렌드’와 직결된다. 시대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며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 일렉트로닉이 음악의 주류(主流)로 자리잡은 것도 그 한 예다. 때문에 시대를 역행하거나 한 우물만을 파는 것은 스스로 화약고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다. 웬만한 음악성과 장인정신 없이는 시선몰이 자체가 힘들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출신의 헤비메탈 밴드 AC/DC는 바로 그 위험에 도전해 승리한 그룹이다. 16장의 풍성한 디스코그라피와 지구촌을 상대로 거둔 8천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가 말해준다. AC/DC는 20년 넘게 ‘초지일관(初志一貫)’거친 로큰롤의 원시성과 순수성을 지켜왔다. 그들의 사전에는 변절과 타협이란 없다. 오직 ‘8비트의 미학’ 로큰롤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테크놀로지로 대변되는 현재에도 그들은 신작 앨범 < Stiff Upper Lip >을 발표하며 가공된 음악이 아닌 ‘생’(生) 음악의 열기를 한껏 발산하고 있다. 그들의 신보는 차트진입 첫 주 7위에 올랐다. 라틴 록 영웅 산타나, 록 퓨전의 거장 스틸리 댄과 함께 10대 중심시장에서 ‘노장은 살아있다’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밴드는 여타의 헤비메탈 밴드들이 화려한 기교와 다양한 코드웍을 주무기로 고속 질주하는 음악적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목표는 ‘로큰롤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큰롤의 쓰리 코드 패턴에 블루스를 수용해 간결하고 경쾌한 부기 우기적인 메탈사운드를 창조했다. 그래서 ‘로큰롤의 흥겨움’과 ‘메탈의 프라이멀 스크림’이 공존하는 사운드패턴이 만들어졌다. 그룹의 유니크한 음악양식은 ‘리프 제조기’ 앵거스 영(Angus Young)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록음악의 최소주의를 단순하면서도 블루스 필이 넘치는 기타 연주를 통해 재현했다. 그는 1976년 데뷔 앨범 < High Voltage >를 시작으로 직선적이며 약동감 있는 명 리프들을 만들어내며 지구촌에 헤비메탈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고했다. 여기에 리듬 기타를 맡고 있는 앵거스의 형 멜컴 영(Malcolm Young)과 베이시스트 클리프 윌리웜스(Cliff Willams) 그리고 드러머 필 루드(Phil Rudd)로 짜여진 리듬파트는 8비트 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AC/DC의 최대 걸작 앨범으로 꼽히는 1979년 < Highway To Hell >과 1980년 < Back In Black >에서 그들이 펼치는 8비트 로큰롤은 압권이었다. 특히 뒤의 앨범은 그해 2월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보컬리스트 본 스콧(Bon Scott)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었다. 새로이 영입된 ‘강철성대의 소유자’ 브라이언 존슨(Brian Johnson)은 본 스콧 보다 더욱 더 야수적이고 파워 넘치는 샤우트 창법을 선사해 완벽한 대안임을 입증했다. 발매와 동시에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였고, [Back in black] [You shook me all night long] 등의 수록곡은 현재까지도 메탈 팬이 반드시 들어야 할 곡 영순위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 앨범의 수록곡 ‘Rock n’ roll dance’에서 AC/DC의 곡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바로 ‘Back in black’의 메인 기타 리프를 서태지가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전에 서태지가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스주자로 몸담았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리 낯선 일은 아닐 것이다. 시종일관 거침없이 몰아치는 AC/DC의 진가는 라이브무대에서 가장 빛난다. 반바지 학생복차림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앵거스 영의 기타연주는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명기. 1978년 < If You Want Blood You’ve Got It >, 1984년 < ’74 Jailbreak >, 1992년 < Live > 같은 라이브 앨범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뜨거운 열기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얼터너티브 록에 의해 헤비메탈이 침몰 당한 1990년대에도 AC/DC를 향한 팬들의 애정전선은 튼튼했다. 1990년 앨범 < The Razor’s Edge >, 1995년 앨범 < Ballbreaker >는 각각 차트 2위와 4위에 랭크됐다. 뉴 밀레니엄에도 밴드는 로큰롤 전도를 위해 신보 < Stiff Upper Lip >을 발표했다. 앵거스와 맬컴 영의 맏형인 조지 영(George young)이 프로듀서를 맡아 돈독한 형제애를 과시했다. 조지는 아우들의 데뷔앨범을 비롯해, 1977년 < Let There Be Rock >, 1978년 < Powerrage > 등의 앨범에서 이미 프로듀서 능력이 검증된 인물이다. 앵거스 스스로 리틀 리차드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곡 ‘Can’t stand still’, 록에 대한 찬가 ‘Can’t stop rock ’n’ roll’ 등이 수록된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헤비메탈의 지글거림이 많이 수그러든 대신 블루스를 토대로 한 초기 로큰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매우 귀여운 개들이 많이 있지만 사람들은 도베르만(사냥개의 일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만을 산다." 10대 중심의 음악 판을 겨냥해 앵거스 영이 하는 말이다. 음반산업이 주도하던 아니든 빠르게 변해 가는 음악의 트렌드는 미래를 점치기 힘들 정도로 안개정국에 휩싸여있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한결같이 하나만을 고집해온 AC/DC의 독자노선은 그 유행의 천박함과 무상함을 초월한다. 이것이 지금도 파괴력을 발휘하는 진정한 ‘AC/DC의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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