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4월 전사이벤트
예스24 역대 베스트셀러 20
크레마 사운드 업
4월 SNS 팔로우 이벤트
편의점픽업 500P 적립
당신의 스무살 소원 이벤트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상품권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미리보기 공유하기
소득공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39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하금철, 홍은전, 강혜민, 김유미 공저/비마이너 기획 | 오월의봄 | 2019년 04월 0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675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 (10% 할인)
YES포인트
결제혜택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카드/간편결제 혜택 보기/감추기
카드할인 정보
 케이뱅크페이 첫결제 5천원 캐시백 (1만원 이상, PC 결제)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L포인트 L포인트 50% 캐시백 (2천P 이상 사용시 1천P 캐시백)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1.2% 적립 (건당 1만P 이내) 자세히 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1/4
광고 AD

출판사 추천

광고 AD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4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392g | 135*210*20mm
ISBN13 9791187373872
ISBN10 1187373877

관련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책소개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저자 소개 (5명)

이 사회가 쓸모없다고 여겨 내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아다니는 ‘이야기의 넝마주이’를 꿈꾸는 사람. 장애인야학 교사, 〈비마이너〉 기자를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가 있다. 이 사회가 쓸모없다고 여겨 내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아다니는 ‘이야기의 넝마주이’를 꿈꾸는 사람. 장애인야학 교사, 〈비마이너〉 기자를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가 있다.
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인권 기록 활동가. 문제 그 자체보다는 그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차별받던 인간이 저항하는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노란들판의 꿈》을 썼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숫자가 된 사람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를 함께 만들었다. 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인권 기록 활동가. 문제 그 자체보다는 그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차별받던 인간이 저항하는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노란들판의 꿈》을 썼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숫자가 된 사람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를 함께 만들었다.
인터넷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기자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종종 연극을 하며, 기억과 이야기, 고통과 함께 사는 삶에 관심이 있다. 《섬과 섬을 잇다 2》를 만드는 데 함께했다. 인터넷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기자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종종 연극을 하며, 기억과 이야기, 고통과 함께 사는 삶에 관심이 있다. 《섬과 섬을 잇다 2》를 만드는 데 함께했다.
사진을 공부하다가 장애인이동권투쟁을 접하면서 사는 게 많이 바뀌었다. ‘비마이너’에서 일했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소식지 《노들바람》을 만든다. 사진을 공부하다가 장애인이동권투쟁을 접하면서 사는 게 많이 바뀌었다. ‘비마이너’에서 일했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소식지 《노들바람》을 만든다.
진보장애언론을 표방하며 2010년 1월 15일 창간했다. 장애운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담론을 생산해왔다. 현재는 장애 이슈뿐만 아니라 빈곤, 소수자 문제를 당사자 목소리에 기초해 보도하는 언론으로 활동하고 있다. 진보장애언론을 표방하며 2010년 1월 15일 창간했다. 장애운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담론을 생산해왔다. 현재는 장애 이슈뿐만 아니라 빈곤, 소수자 문제를 당사자 목소리에 기초해 보도하는 언론으로 활동하고 있다.

만든 이 코멘트

저자, 역자, 편집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코멘트 쓰기
접수된 글은 확인을 거쳐 이 곳에 게재됩니다.
독자 분들의 리뷰는 리뷰 쓰기를, 책에 대한 문의는 1:1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

책 속으로

--- pp.249~250

출판사 리뷰

수용시설,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
강제수용시설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감학원 역시 일제의 부랑아 단속 및 수용 조치를 위한 감화정책과 함께 등장했다. 선감학원이 설립된 1942년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매진하던 시기로, 전시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강제수용된 부랑아들을 참혹한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선감학원도 그런 필요에 의해 세워졌다. 1940년 경기도지사로 부임한 일본인 스즈카와의 지휘하에 경기도가 현 안산시 소재의 선감도 전체를 매수하고, 선감도 주민 전체를 도외로 철거시킨 후 공식 개원한 곳이 바로 선감학원이다. 선감학원은 ‘총후의 꿋꿋한 황국신민’을 연성하겠다는 의지를 내걸고 수용된 원생들에게 일제에 대한 충성심을 강제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극심한 인권 유린과 노역을 견디지 못한 원생들 다수가 탈출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사망하는 일이 빈발했지만, 선감학원은 굴하지 않고 ‘전시 동원’에 매달렸다.

일제의 악법은 해방 이후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부랑인 단속을 위한 법령들의 효력이 유지되었는데, 사회적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구호정책은 진지하게 고민되지 않았고, 오로지 추방에 초점이 맞춰졌다. 1947년 서울 사직공원 안에 설치된 부랑아보호소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서울시는 시청 사회과 직원으로 하여금 경관을 대동시켜 부랑아를 ‘취체’하는 활동을 벌였다. 서울의 미화를 위한다며 부랑아와 거지 900명을 한꺼번에 시내에서 300리 떨어진 철도 없는 곳으로 추방하기까지 했다.

이 보호소는 이후 1960년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재개소해 대대적인 수용을 시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당시 아동보호소에 수용된 인원 중 약 50퍼센트에 달하는 아이들의 실제 부모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 당국은 부모를 찾아 아이들을 돌려보내기보다 지방에 분산 수용하는 데 열을 올렸다. 특히 1961년에는 목포, 광주, 대전, 충주, 인천 등으로 아동들을 대거 분산시켰다.

죄 없는 소년들을 납치해 가둔 국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도 이러한 정황들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국가가 부모 등 이렇다 할 보호자 없이 떠도는 부랑아뿐 아니라 단순히 길을 잃은 미아까지 강제로 납치해 시설에 수감했다고 입을 모은다. 꾀죄죄한 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소년들을 보면 묻고 따지지도 않은 채 마구잡이로 납치했다는 것이다. 길을 잃은 아이를 발견하면 경찰이 신원을 확인해 보호자를 찾아주는 것이 상식이건만, 그런 절차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에 있던 작은아버지 댁을 찾아가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선감학원까지 잡혀왔다는 한일영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파출소에 있는 순경 같았어요. 저한테 ‘집 어디냐’ ‘어디 가냐’ 하면서 집 주소를 대라고 했어요. 나는 주소는 몰라서 모른다고 했어요. 가평에 살고 가평국민학교에 다닌다고 했는데, 자기네가 확인을 하려고 하면 학교에 연락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혼자서 왔다고 하니까 아예 믿지를 않았던 거 같아요. 저를 파출소에 데리고 있다가 바로 응암동 아동보호소로 넘겼어요. 자기들도 할당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동보호소 가서 알고 보니까 다 그렇게 잡혀온다고 하더라고요. 웬만큼 꾀죄죄하고 그러면.”

가족들이 버젓이 살아 있던 오광석 씨 역시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는 황당한 사유로 경찰에 납치되었다. 그는 자신의 스케치북에 이렇게 썼다. “박정희 정권 때 어린 나이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일명 양아치 차라는 차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멀정이 아머니가 있고, 여동생이 있는대도 또한 어린 간난아이 동생도. 있었는대 전 길거리에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고아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런 죄 없이 경찰의 손에 끌려간 아이들은 아동보호소와 이런저런 고아원, 선감학원 등의 시설을 전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성과 이름이 바뀌고, 생일이 조작되고, 소년들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경찰 혹은 공무원이 납치해간 까닭에, 가족이 실종신고를 내더라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거리의 소년들을 납치 감금한 국가의 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어떤 기준이었길래 공권력의 이름으로 그런 잔악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선감학원과 관련된 각종 역사 기록들은 우리에게 뜻밖의 사실을 전해준다. 명확한 기준은커녕 아이들을 납치해 수용한 원인이 너무나 모호하게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생활고, 엄격한 생활, 악우 관계, 허영심, 주위 환경의 불순” 등 국가는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성들을 과도하게 부풀려 부랑아의 성질로 분류했고, 그 얼토당토않은 분류를 수용의 근거로 삼았다. 고민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기막히고 ‘손쉬운’ 분류가 누군가의 귀중한 인생 전체를 파괴한 셈이다.

기억은 기록을 의심하고, 기록은 기억을 부정하고
지금은 엄연히 ‘국가폭력 피해’로 받아들여지는 이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털어놓기까지 피해생존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선감학원 출신’이라는 낙인,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는 그 부끄러움을 당당히 드러내면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경험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이 끌려간 선감학원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피해생존자들은 하나같이 선감학원에서 보낸 지난날을 ‘자기 자신을 상실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인적사항이 완전히 조작돼 호적이 말소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수의 생존자들은 이런 사실조차 퇴소 혹은 탈출 이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선감학원 측은 모든 원생들의 생일을 선감학원 개원 기념일인 5월 29일로 기재하는 등 원아대장을 날조해왔다. 시설 내부에는 그 흔한 시계와 달력도 없어서 원생들은 시간에 대한 감각조차 가질 수 없었다. 선감학원에서 시간은 오로지 명령의 형식으로 고지되었다. 아침 점호와 취침 점호, 그것이 선감학원에 존재하는 유일한 시계였다.

대부분의 피해생존자들이 자신의 (선감학원) 입소 시기와 퇴소 시기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성곤 씨는 입소 시기와 퇴소 시기를 매번 다르게 증언하거나, 아동보호소의 기록과 전혀 다르게 증언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生에 대한 기억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이렇듯 사회에 나와서야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모든 공적 기록/서류가 부재하거나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한 피해생존자들은 또 한 번 무너졌다. ‘나’라는 존재가 거기(선감학원)에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증명해줄 수 없고,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이 종종 신빙성을 요구받는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는 분명 중대한 문제다. 선감학원의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가 당시 서류를 온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본인의 증언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자신이 입소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면 (피해 사실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폭력과 구타
소년들이 선감학원에서 당했다는 잔혹행위와 폭력의 목록을 보고 있으면, 기억을 회복하는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으로 느껴진다. 피해생존자들이 증언한 선감학원의 일상은 참혹하고 끔찍했다. 취학 나이의 소년들은 학교도 가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 이후로 배움의 길은 영영 막혀버렸다. 기록상 선감학원은 ‘직업교육’의 명목으로 소년들을 양잠(누에고치 키우기), 축산(소 키우기), 이용 활동에 투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한 ‘직업교육’으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너무나 많다. 실제로 그것이 ‘작업의 능률’을 확보하는(그럼으로써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를 키웠어요. 20마리, 30마리 키웠어요. 소들이 겨울에 먹을 게 있어야 되잖아요. 억새풀을 잘게 썰어서 큰 통에다가 재워놔요. 그걸 하는 게 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이에요. 낫도 안 줘요. 손으로 하던가, 우리가 돌로 만들어요. 돌 두 개를 갖고 다니면서 억새풀을 꺾어서 짓이겨서 하루에 40킬로씩 해야 돼요”(이○○)

“농사에 관한 건, 웬만한 건 다 했어요. 보리밭이 되게 넓은 게 있었어요. 추운데 양말도 없이 고무신 하나 신고. 바람도 엄청 차가워요. 그 넓은 데를 어린애들이 매야 하죠.”(한일영)

10세 전후의 어린아이들에게 낫조차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것은, 그것이 강제노역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 처사다. 작업의 능률을 높여 생산량을 늘리고, 거기에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면 최소한의 의복이나 낫 정도의 도구는 지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선감학원의 모든 규율이 사실상 원생들을 인간 이하로 격하하고 존엄을 파괴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는 급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생식을 시도했고, 또 다른 아이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다가 콜라병에 들어 있던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거기서는 항상 배가 고팠어요. 반찬도 맨날 새우젓하고 무 같은 걸 심어서 짠지를 만들어줬어요. 새우젓도 구데기가 끓어서 도저히 못 먹어요. 호박도 큼직하게 잘라서 익지도 않은 걸 주고. 그래서 내가 사회 나와서도 젓갈 종류랑 호박을 잘 안 먹어요. 생식도 엄청 많이 먹었어요. 논에 가면 벼가 있잖아요. 벼를 손으로 훑어다가 바닥에다 놓고 신발로 막 비비면 껍질이 까져요. 그럼 그걸 손에다 놓고 호호 불어서 입에 털어넣는다구요. 생쌀을.”(이대준)

“어떤 아이는 배가 고파서 사무실에 들어가 콜라병 같은 게 있길래 그걸 마셨대요. 근데 그게 사실은 농약이었던 거예요. 어처구니없게, 농약을 먹고 죽은 거죠.”(현정선)

더욱 참담한 것은, 폭력이 일상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원리였다는 사실이다. “빠따를 한 대라도 안 맞은 날은 오히려 불안할 정도”라고 말하는 생존자도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잔인한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특히 생활공동체인 숙소 안에서 폭력은 원생이 원생을 때리는 구조로 작동했다.

“일렬로 원생들을 엎드려뻗쳐 시킨 뒤 원생이 원생을 때리는 ‘줄빠따’라는 게 있었다. 원생 열 명이 누워 있으면 맨 앞 원생이 일어나 아홉 명의 원생을 때린 뒤 맨 뒤로 가서 엎드린다. 그다음 원생이 일어나 또 아홉 명의 원생을 때린 뒤 맨 뒤로 가서 엎드린다. 맨 첫 번째로 때린 사람의 순서가 되면 줄빠따는 끝난다. 이불 뒤집어씌운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대리는 ‘다구리’도 있었다.”(오광석)

“더 끔찍한 건, 사장 놈들이 원생끼리 권투를 시키는 거예요. 권투장갑을 만들어서. 권투 못하겠다면 또 짓밟아버리는 거지. 가혹하게. 거기서 사장 놈들은 재미를 보는 거예요”(현정선)

이런 폭력은 내 옆에 있는 동료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내 옆의 동류가 나를 때리는 가해자이거나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될 때, 오직 ‘자기가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원생들 간의 관계를 일부러 와해하려 한 선감학원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우리 집에 가서 있을래? 선감원으로 도로 돌아갈래?”
극도의 굶주림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한 원생들도 있었다. 주민들의 감시 때문에 배를 탈 수조차 없었던 소년들은 헤엄쳐 바다를 건너는 모험을 감행했다. 일주일을 헤엄쳐 대부도까지 이른, 탈출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도 있었다. 선감학원은 그 작은 시신들을 야산에 아무렇게나 암매장했고, 그마저도 살아 있는 동료 원생들을 시켰다. 아이들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 조사나 검시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도망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퉁퉁 불어가지고 소라, 낙지 이런 게 다 붙어 있어요. 거기다 빨간 소독약을 그냥 뿌리는 거예요. 냄새난다고. 한번은 장마가 크게 온 뒤에 뽕 따러 올라가다보니까 시체가 다 드러나 있는 거예요. 아이들 시신을 얼마나 아무렇게나 내버렸는지. 그런 아이들을 내가 직접 묻기도 했어요 선생이 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이대준)

경찰의 집요한 추적으로 또다시 잡혀온 소년들도 물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때리는 것이 탈출에 대한 벌이었다.

“서로 마주 보고 서로의 뺨을 한 대씩 때렸다. 내가 널 때리고, 네가 날 때리고. 이상했다. 난 이렇게 세게 안 때린 거 같은데. 점점 화가 났다. 올려붙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볼이 씨뻘게졌다. 오른손이 아플 때쯤이면 왼손을 치켜들어 때렸다. 전날만 해도 함께 도주를 계획했던 우리인데 오늘의 우리는 죽일 듯이 서로의 뺨을 휘갈기고 있었다.”(김성환)

탈출에 성공한 소년들의 사정도 결코 좋지 않았다. 선감학원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약탈과 폭력이 비집고 들어왔다. 선감학원의 소년들을 익히 알고 있던 주변 어섬의 주민들이 탈출하는 소년들을 붙잡아 머슴살이를 시키고, 강도 높은 굴양식에 부린 것이다. 간판에 복지와 교육을 내건 또 다른 시설에 붙들려간 소년들도 있었다. 형제복지원과 삼청교육대가 바로 그곳이다.

“나는 거기서 붙잡힐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붙잡혔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선 우리를 보는 사람이 임자예요, 완전 ‘심 봤다’지. 우리는 공짜로 쓸 수 있는 머슴 아니면 노예였어요. 주민 하나가 나를 앉혀놓고 자기 집에 가서 있을래? 선감원으로 도로 돌아갈래? 협박을 하는 거예요. 저는 당연히 있는다고 그러죠. 목숨 걸고 간신히 탈출해 나왔으니까.”(한일영)

“마산포 앞에 보면 어섬이라고 있어요. 작은 섬인데 거기에도 부락민들이 살아요. 그 마을 사람들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숨겨줘요. 그러고 나서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켜요. 거기서도 엄청 때리죠. 만약 말 안 들으면 다시 선감학원에 보낸다고 그러고. 마을 사람들이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아다 선감학원에 보내주면 밀가루 한 포대씩 받았어요. 그때 당시 밀가루 한 포대가 얼마나 비쌌는데.”(이대준)

“선감학원에서 4년 정도 살다가 폐쇄될 때 나왔습니다. 집사람 통해서 선감학원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는데, 1982년에 폐쇄되었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제 기억엔 1980년입니다. 제가 선감학원 폐쇄될 때 나왔거든요. 그리고 그해에 바로 형제복지원으로 잡혀갔습니다.”(김창호)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인간답게 꽃피기도 전에 저버린 삶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 같은 시설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러나 2019년 현재에도 피해생존자들은 여전히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고생 끝에 어렵사리 시설을 나왔지만, 시설 밖 사회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옥과도 같았다. 삶의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수용소에 갇혀 살아온 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학교를 다니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거나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경험들을 습득하지 못한 이들로서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껌팔이, 구두닦이, 신문팔이로 생계를 유지한 이들은 그나마 나은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범죄의 길로 빠진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든 범죄 그 자체는 용인될 수 없지만, 이들의 범죄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 또 있을까?

피해생존자 김성환 씨는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고, “누구도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그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이다. 선감학원에 끌려간 소년들은 왜 저 흔하디 흔한 질문조차 받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 왜 아무도 그들에게 꿈을 묻지 않은 것일까? 아무도 그에게 하지 않았던 그 질문을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해본다고, 그는 말했다.

“‘성환아, 넌 커서 뭐가 될 거야?’
‘운동 좋아하니깐 운동선수, 아니면 체육 교사. 혹은 형사, 혹은 고아원장.’
내게도 좋아하는 것이라는 게 있었다. 나는 정의롭게 살고 싶었고, 나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도 이 사회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만약 선감학원에 잡혀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저 많은 꿈들 중 무엇을 이루었을까? 자신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꿈을 심어주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되었을까?

답할 수 없게 된 이 질문들을 이제는 우리가 함께 곱씹어볼 때다.

추천평

나는 이 귀중한 보고서가 용케 살아남은 소수가 국가에 던지는 고발장이자, 국가와 한편이 되어 이들을 멸시?천대하고, 이들의 고통을 못 들은 체했던 우리 모두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으로 태어났으나 국민으로 대접받지 못한 이들의 아픈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나아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폭력의 피해를 당한 이들은 물론 폭력을 가한 이들 역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 이야기를 통해 지난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기성세대에게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야만의 시절을 거쳐왔는지 깊이 되돌아보는 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런 성찰에 매우 훌륭한 소재가 되리라 생각한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섬을 나와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있고, ‘선감학원 출신’이라는 낙인과 자괴로 입을 닫고 숨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 증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진상규명,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정당한 보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 절망의 핵심은 나아진 것도 나아질 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붙들려 고통당한 시절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9년 현재, 우리 모두는 자본과 국가가 만들어놓은 착취와 굴종의 세상에서 피해자 혹은 방관자 혹은 가해자로 살고 있다. ‘국가폭력’에 당한 원통함과 분노를 다시 헤집으며 비명으로 저항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문구/GIFT,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문구/GIFT,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