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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7080 강변연가 USB 60곡

본 상품은 CD가 아니며, USB 입니다.

오준영 작곡/김정수, 신형원, 한마음, 김원중 노래 외 4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서울미디어 (음반) | 2019년 03월 1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58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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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3월 11일
시간, 무게, 크기 2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USB
  • 01 내 마음 당신 곁으로 - 김정수
  • 02 유리 벽 - 신형원
  • 03 가슴앓이 - 한마음
  • 04 바위섬 - 김원중
  • 05 불씨 - 신형원
  • 06 비와 찻잔 사이 - 배따라기
  • 07 소양강 처녀 - 한서경
  • 08 내 마음의 보석 상자 - 해바라기
  • 09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이장희
  • 10 내가 말했잖아 - 로커스트
  • 11 그댈 잊었나 - 임지훈
  • 12 사랑이여 - 유심초
  • 13 나의 사람아 - 김민식
  • 14 남은 이야기 - 이경화
  • 15 그대 먼 곳에 - 이춘근
  • 16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최백호
  • 17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 - 배따라기
  • 18 사랑의 노래 - 오준영
  • 19 나비 소녀 - 김세화
  • 20 사랑의 이야기 - 김태정
  • 21 아주 옛날에는 - 꾸러기들
  • 22 그저 바라 볼 수만 있어도 - 유익종
  • 23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 해오라기
  • 24 삼포로 가는 길 - 강은철
  • 25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 - 강인원
  • 26 그날 - 김연숙
  • 27 서글픈 사랑 - 주정이
  • 28 사랑하는 사람아 - 홍종임, 조진원
  • 29 타인의 계절 - 한경애
  • 30 당신만이 - 벗님들
  • 31 입영전야 - 최백호
  • 32 한잔의 추억 - 이장희
  • 33 시인의 마을 - 정태춘
  • 34 어서 말을 해 - 해바라기
  • 35 잃어버린 우산 - 우순실
  • 36 지금은 헤어져도 - 해바라기
  • 37 편지 - 이장희
  • 38 영상 - 김재성, 안혜경
  • 39 옛 시인의 노래 - 한경애
  • 40 은지 - 배따라기
  • 41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 해바라기
  • 42 사랑하고 싶소 - 정태춘
  • 43 희미한 불빛 아래 서 있는 두 그림자 - 양현경.
  • 44 너의 미소 - 배따라기
  • 45 얼룩진 사랑 - 영과영
  • 46 당신을 처음 본 순간 - 배따라기
  • 47 진정 난 몰랐네 - 임희숙
  • 48 내일이면 간다네 -김양화 / 김영광 - 지다연
  • 49 찔레꽃 - 이연실
  • 50 행복의 나라로 - 한대수
  • 51 그대 작은 화분에 비가 내리네 - 배따라기
  • 52 날개 - 허영란
  • 53 찻잔 - 노고지리
  • 54 촛불 - 정태춘
  • 55 밤에 떠난 여인 - 하남석
  • 56 너 - 해바라기
  • 57 여고 졸업반 - 김인순
  • 58 연인들의 이야기 - 임수정
  • 59 아니 벌써 - 산울림
  • 60 왜 불러 - 송창식

아티스트 소개 (46명)

TV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줄곧 포크 계열의 음악으로 사회성 짙은 노래만을 불러 온 신형원은 1970년대 중반 통기타 음악의 전성시대를 연 < 쉘부르 >라는 라이브 전문 업소에서 이문세, 전영, 남궁옥분 등과 통기타 2세대로 음악을 시작했다.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 < 웃기는 노래 웃기지 않는 노래 >에 한돌의 곡인 ‘불씨’, ‘유리벽’ 등을 부르면서 ‘얼굴 없는 가수’라는 타이틀을 항상 달고 다니며 ... TV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줄곧 포크 계열의 음악으로 사회성 짙은 노래만을 불러 온 신형원은 1970년대 중반 통기타 음악의 전성시대를 연 < 쉘부르 >라는 라이브 전문 업소에서 이문세, 전영, 남궁옥분 등과 통기타 2세대로 음악을 시작했다.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 < 웃기는 노래 웃기지 않는 노래 >에 한돌의 곡인 ‘불씨’, ‘유리벽’ 등을 부르면서 ‘얼굴 없는 가수’라는 타이틀을 항상 달고 다니며 인기를 얻은 그녀는 이후 한돌의 곡만을 부르며 그의 페르소나로 인기의 틀을 넓혀간다. TV 브라운관에 얼굴을 노출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대학가의 1순위였으며 민중 가요가 대학 진영의 것으로 완전히 넘어가던 시절까지 사랑 중심의 주류적 언술보다는 삶의 단초적 자락을 어루만지는 노래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외 사랑’, ‘사람들’, ‘예기치 않은 바람’이 들어 있는 1집보다는 ‘개똥벌레’, ‘터’가 수록된 2집으로 가파른 인기의 상승 곡선을 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의 우화를 그려낸 ‘개똥벌레’는 차트의 높은 순위를 차지했으며 민주화의 열망에 달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터’는 서민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컬러TV의 완전 보급과 화려한 이미지를 동반한 가수들의 대거 출연은 포크 진영의 음악을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의 인기는 지금 댄스 가수들의 인기 못지 않았으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사로잡으면서 주류를 장악했다. 신형원의 이 후 앨범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으며 1980년대 음악들을 다시 한번 뒤집은 1990년대의 변혁이 오고 나서는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1990년에 강인원을 중심으로 만든 앨범 < 비오는 날 수채화 >로 잠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메인 타이틀을 같이 부르지는 않았지만 앨범에 수록된 ‘커피 향 가득한 거리’라는 곡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앨범의 판매고에 높은 기여를 했다. 그녀는 통기타 무대가 디스코 세대에 의해, 포크 진영의 음악이 TV 브라운관에 의해, 그리고 모든 음악의 교체를 이루어낸 1990년대 신경향까지 모두 지켜본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녀는 커다란 스캔들 없이 조용히 20년이 넘도록 가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히 단독으로, 혹은 연합으로 공연을 벌이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사람이나 의식적으로 참여를 요구하는 노래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녀의 6집 타이틀곡인 ‘서울에서 평양까지’는1980년대 학생 운동의 걸작을 리메이크 한 곡으로 택시기사의 입을 통해 통일의 당위성을 노래한 곡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우리 모두를 힘나게 한다. 신형원은 1997년 ‘견딜 만큼 아픔을 주시는 이’란 곡으로 CCM 음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 신형원의 가요산책 >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애청자들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포크 음악인들이 모인 자리 어디에서든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력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멤버 : 양하영, 강영철 멤버 : 양하영, 강영철
고등학교 때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 가는 길》을 작사·작곡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이동기의 《춘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등을 작곡했다. 19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다.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등을 히트시켰다. 가족뮤지컬 《아빠... 고등학교 때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 가는 길》을 작사·작곡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이동기의 《춘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등을 작곡했다. 19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다.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등을 히트시켰다. 가족뮤지컬 《아빠와 크레파스》를 제작하면서 《꼬마 요리사》, 《내 친구 똥》, 《이를 닦는 슈퍼맨》, 《꼬마와 해바라기》, 《내 이름은 풀잎이에요》, 《밥 송(감사합니다 송)》, 《맛있는 우유 송》 등의 동요를 발표했다.
1970년대에 중창단의 진영으로 빼어난 선율과 화음의 융화를 선보이며 모던 포크 계열의 선두에 섰던 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처음에 김의철을 리더로 하고 한영애, 김영미, 이광조가 한 팀이 되어 명동에 있는 업소를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의철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이정선이 대장으로 들어오고 이광조가 군에 간 사이에 이정선과 자주 콘서트를 가졌던 이주호가 들어와 4인조의 진영을 갖춘다. 명동 카톨릭 여학생... 1970년대에 중창단의 진영으로 빼어난 선율과 화음의 융화를 선보이며 모던 포크 계열의 선두에 섰던 혼성그룹 해바라기는 처음에 김의철을 리더로 하고 한영애, 김영미, 이광조가 한 팀이 되어 명동에 있는 업소를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의철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이정선이 대장으로 들어오고 이광조가 군에 간 사이에 이정선과 자주 콘서트를 가졌던 이주호가 들어와 4인조의 진영을 갖춘다. 명동 카톨릭 여학생회관 해바라기 홀에서 콘서트를 갖기 시작한 이들은 1977년 8곡의 합창곡과 4곡의 솔로 곡이 실린 첫 음반을 발표하고 ‘구름 들꽃 돌 연인’을 히트시키며 기타를 든 청년들에게 주요한 레퍼토리를 제공 해 준다. 이 음반은 이미 2장의 솔로 앨범으로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과시한 이정선이 프로듀서의 위치에서 참여했고 그를 비롯한 각 멤버가 솔로 한 곡씩을 불렀다. 이 중 이주호가 고교 시절 지었다는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은 한영애의 목소리로 담겨 있으며 후에 이주호, 유익종의 해바라기가 리메이크 한다. 1집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들은 1978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이주호 대신에 이광조가 한 자리를 차지한 이 앨범에는 ‘뭉게 구름’이 히트를 했고 같은 해 < TBC 해변가요제 >에서 징검다리의 노래로 대상을 차지한 ‘여름’, 이정선의 솔로 앨범에 수록했었던 ‘섬 소년’ 등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정선은 이광조, 엄인호와 풍선이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고 한영애는 솔로 앨범의 실패로 연극계로 발을 옮긴다. 그리고 김영미는 유학을 떠난다. 1986년 김영미의 일시적인 귀국으로 같이 모이게 된 이들은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우리네 인생’이 수록된 고별 앨범을 발표한다. 이중 타이틀곡인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는 이별과 재회의 희망을 단아하게 노래해 라디오를 중심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그 애와 나랑은’을 히트시킨 그는 ''73년 앨범에서 ‘그건 너’를 히트시키며 아이돌스타로 떠올랐다. 그룹 동방의 빛을 결성해 당시 리사이틀이란 이름으로 유행하던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절정의 인기를 과시했고, 1974년에는 영화 < 별들의 고향 > 음악을 작곡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전국적으로 히트시켰다. 하지만 김민기, 양병집,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등이 활동하며 트로트 문화에 일침을 가한, 음악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누렸던 1970년대 초반의 이 르네상스는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대중가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이루어지면서 급격히 퇴락 한다. 정부에서 허락 받은 노래만 불러야 했던 탄압은 이장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의 모든 곡들은 퇴폐적이고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독재 정권의 주도자는 “잠 못 드는 이유는 바로 너”라는 가사가 자신을 빗대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장희는 같은 해 11월, 대마초사건으로 이종용, 윤형주, 김세환, 신중현, 김추자 등과 함께 구속되고, 활동을 정지 당한다.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그의 곡들은 뛰어난 강근식의 필링이 주조된 ‘띵~’하는 사운드로 대표되는 것으로 포크적 이였지만 분명 두터운 음색과 비음에서 사이키델릭의 요소를 느낄 수 있고 ‘한 소녀가 울고 있네’와 같은 곡은 전적으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뛰어난 곡이다. 또한 그의 가사는 추상적이고 시적인 가사 위주의 풍토를 이후 구어체적이고 현대적인 가사로 탈바꿈하는데 많은 공을 세워, 당시 청년 문화의 표준적인 감성체계를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방송에서 DJ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조영남, 김세환, 정미조, 송창식 등에게 곡을 주었던 그는, 활동이 정지되자 그룹 사랑과 평화를 출범시킨다. 작곡가란에 이름을 내 걸 수 없어서 가명을 사용했지만 ‘장미’, ‘한 동안 뜸했었지’, ‘어머니의 자장가’는 모두 그의 노래였고 이런 숨은 노력은 이 그룹을 최고의 연주팀으로 만들었다. 해금 후 1982년 ‘진정 사랑해’가 든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녹음실과 의상실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김현식의 앨범을 제작하던 중 부도를 맞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변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재미교포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가끔씩 임병수 등에게 곡을 주며 국내에도 소식을 알렸다. 한 동안 국내 상황을 관망하던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후 자신의 마지막 솔로 앨범을 내놓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곡이 들어 있는 이 앨범에서는 ‘솜사탕’이 라디오를 탄다. 같은 뮤지션의 길을 걸었던 동생 이승희의 죽음으로 고국을 찾기도 했지만, 이장희는 현재 한인 사회에서 가장 큰 라디오 방송국 < 라디오 코리아 >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지내고 있다. 카리스마를 뽐내던 콧수염도 밀고.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과 만난 뒤에 음악과 인연을 맺은 임지훈(1959년)은 신세대와 트로트 세대 사이의 낀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1990년대 댄스씬이 활화산같이 일어나자 1980년대의 뮤지션들은 설 땅을 잃었고 1990년대 말이 되서야 미사리라는 자신들의 영토를 가지고 지원군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창작의 땅이라기보다는 추억의 땅이었다. 끊임없이 새 앨범을 발표하며 같이 늙어 ...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과 만난 뒤에 음악과 인연을 맺은 임지훈(1959년)은 신세대와 트로트 세대 사이의 낀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1990년대 댄스씬이 활화산같이 일어나자 1980년대의 뮤지션들은 설 땅을 잃었고 1990년대 말이 되서야 미사리라는 자신들의 영토를 가지고 지원군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창작의 땅이라기보다는 추억의 땅이었다. 끊임없이 새 앨범을 발표하며 같이 늙어 가는 외국의 뮤지션들과 달리, 과거의 음악만을 들으며 그 당시를 회상하고픈 우리의 팬들은 새로움에 대한 낯설음보다는 익숙함에 대한 친근감을 더 선호하고 있다. 이것은 창작의 산출물로 평가받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하는 아티스트에게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임지훈은 김창완의 프로젝트 그룹 꾸러기들에 참여해 ‘그댈 잊었나’, ‘회상’,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바람 같은 인생’ 등을 불렀으며 팀이 해체된 뒤에는 업소와 대학가를 돌며 목소리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김창기의 ‘사랑의 썰물’이 들어 있는 1집에서 탁성의 절규를 선보이며 단숨에 주류의 승리자로 부상했다. 여기서 그는 ‘사랑의 썰물’로 차트를 정복한 데 이어 ‘내 그리운 나라’, ‘그댈 잊었나’, ‘회상’ 등으로 상승세를 계속 이어갔다. 이러한 인기는 199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이어간다. 그는 ‘누나야’, ‘친구에게’, ‘그대도 나처럼 외로운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라이브무대의 주요 고객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이러한 지지자들과의 교감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꺼벙한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자작 시집 < 나는 바보가 좋다 >를 발표해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댄스의 융단폭격을 맞은 가요계에서 그는 살아남지 못했다. 이후의 4집이나 기획앨범 < 서정 >, 5집 < Falk & Rock > 등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것은 그에게 충격이었고 음악만을 사랑하며 노래를 불러온 한 가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미사리에서 과거의 히트곡을 부르며 동세대와 연대의식을 함양한 그는 문득, 과거의 히트곡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외국으로 날아가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새 앨범 < Beautiful Things >이다. 그는 자신이 안주했던 포크에 대한 정서를 과감히 탈피하고자 했으며 조금이라도 새로운 물결에 몸을 맡기고자 했다. 느낌은 자신의 세대를 그대로 가져갔지만 록발라드, 팝, 록,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아 세련된 음악의 기법을 담았다. 그는 새로운 조류를 외면하거나 피하는 동지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주에서 오랫동안 녹음한 이 앨범은 아직 죽지 않은 386세대의 패기와 열정이 녹아 있으며 얼마든지 성인의 음악으로도 세대의 벽을 허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성인층을 위한 음악 무대가 좁아진 건 가수들의 게으름 탓”이라고 진단하며 숨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 그의 진정성을 앨범의 ‘가지마’와 ‘우리 모두 함께’가 증명해 주고 있다.
멤버 : 유시형, 유의형 멤버 : 유시형, 유의형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자신의 포크적인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유익종은 1974년 박시춘의 막내아들 박재정과 듀엣 그린빈즈(Green Beans)를 결성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음반에서 ‘난 이 다음에’란 곡 등을 발표했지만 군 문제 때문에 휴식기를 가진다. 다시 파랑새란 이름으로 합쳐 ‘나는 왜’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박재정은 종교 음악과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고 그는 다른 사업거리를 구상한다. 1981년 해바라기 출신의 이주호와 지금은 녹음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성일 등과 유리박이란 그룹을 결성한 유익종은 이 팀의 와해와 동시에 이주호와 듀엣 해바라기를 출범시킨다. 해바라기의 1집에선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 이예요’ 등이 히트했지만 이주호와의 음악 차이를 느낀 그는 팀을 떠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사랑의 눈동자’를 히트시킨다. 하지만 그룹 활동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로 했던 해바라기 3집으로 다시 해바라기의 멤버로 오랜 활동을 한다. 이 앨범에서는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등이 크게 히트하고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도시의 밤 풍경’ 등이 라디오를 타면서 2년여간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된다. 아직도 이 시절의 인기는 그를 해바라기 시절의 멤버로 각인 시킨다. 해바라기 3집 발표 시에는 그의 솔로 2집 앨범이 일주일먼저 나오고 이주호의 앨범 등과 겹쳐 솔로 활동은 해보지도 못하고 접는다. 2집에서는 아직까지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87년 옴니버스 앨범에 유영건이 만든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를 수록해 주목을 받은 그는 1989년 미국의 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으로 교민들의 인기를 모은 하광훈의 ‘이연’이 수록된 3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여진의 ‘그해 가을’, ‘가을에 떠난 사람’, ‘하나가 되어’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1년 ‘차창에 흐르는 이별’이 수록된 4집은 그가 처음으로 제작하고 가장 많이 공을 들인 앨범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외면을 받은 앨범으로 기억된다. 후에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모아 발표한 < Worst > 앨범에서 이두헌이 만든 ‘저길 저편 저 차에 오르면’, 박강성의 ‘그대의 허상’ 왈츠 풍의 ‘그리움’ 등을 수록해 4집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반추’가 수록된 5집을 발표한 유익종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는다. 앞으로 나올 3장의 기획 앨범 중 첫 번째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 3분의 1 > 앨범에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조용필의 ‘들꽃’, 최성수의 ‘해후’ 등을 불러 오랜 소원을 풀었다. 1998년에 발표한 6집에는 ‘그리운 얼굴’이 주목받으며 매스컴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에는 따로또같이의 ‘나는 이 노래하리오’의 두 가지 버전을 수록해 자신의 스타일과 유행하는 현재의 음악 스타일을 비교하였다. 1999년 묻어만 두기엔 아까운 노래들로만 모은 < Worst > 앨범을 발표한 그는 최근 미사리에서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며 7집을 구상하고 있다.
1980년대 하반기에 강인원의 시대가 있었다. 그는 민해경을 최정상의 가수로 만들었으며 OST < 비오는 날 수채화 >로 가요계를 제패했으며 1970년대의 < 별들의 고향 >에 이어 영화음악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상을 밟았다. 권인하는 그의 페르소나가 되었으며 대학가요제에서 ‘담다디’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상은의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돕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모든 가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강인... 1980년대 하반기에 강인원의 시대가 있었다. 그는 민해경을 최정상의 가수로 만들었으며 OST < 비오는 날 수채화 >로 가요계를 제패했으며 1970년대의 < 별들의 고향 >에 이어 영화음악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상을 밟았다. 권인하는 그의 페르소나가 되었으며 대학가요제에서 ‘담다디’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상은의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돕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모든 가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강인원은 ‘어린 왕자’와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가 들어 있는 데뷔 앨범을 발표한 후 그룹 따로또같이에서 활동했다. 여기서 ‘가을편지’와 같은 곡을 부르며 인기를 얻은 그는 2장의 앨범을 끝으로 팀을 나오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 우리 노래 전시회 >의 1, 2집에서 각각 ‘매일 그대와’, ‘무용수에게’를 부른 그는 자신의 솔로 2집에서 ‘영어 선생님’을 히트시키고 1988년에 발표한 3집에서는 ‘추억이 같은 사람끼리’로 라디오의 단골 손님이 된다. 거기다 이미 CM송을 수 없이 작곡하고 뮤지컬과 극장 공연용 음악을 편곡한 경력이 있는 그는 민해경에게 준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모습은 장미’, 그녀와 같이 부른 ‘사랑은 세상의 반’ 등과 같은 곡으로 인기 작곡가의 반열에 올라선다. 1990년, 그는 김현식, 신형원, 권인하가 같이 한 < 비오는 날 수채화 >로 우리 음반 시장을 강타한다. 신인 감독 곽재용이 메가폰을 잡은 동명의 이 영화음악은 관객 17만을 모은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높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는 이경영과 옥소리라는 신인을 스타로 배출했다. 이 앨범에서는 타이틀 곡 외에도 권인하의 ‘오래 전에’, 신형원의 ‘커피향 가득한 거리’ 등의 히트곡이 탄생했으며 그의 솔로 3집에 수록된 바 있는 최고의 걸작 ‘비옷을 입은 천사’가 짧은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의 히트로 그는 4연속 < 골든디스크상 >을 제패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 비오는 날 수채화 >의 성공으로 그에게는 숱한 드라마의 음악 섭외가 끊이지 않았다. 그가 한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히트한 곡은 < 바람의 아들 >이란 프로그램에 쓰였던 김명상의 ‘거기 지금 누구인가’라는 곡이다. 이 곡은 < 비오는 날 수채화 >의 성공으로 나온 < 비오는 날 수채화 > 2집에서 타이틀곡으로 쓰였던 곡이었다. 한편 맑은 노랫말을 가졌던 그는 이 당시에 < 사랑할 땐, 너무나 사랑할 땐 >이란 시집도 발매했다. 하지만 사실상 여기까지가 그의 화려한 음악사는 일단 끝을 맺었다. < 비오는 날 수채화 >의 포맷으로 기획한 그룹 느티나무언덕은 전인권, 권인하, 김명상, 객원 가수 조은 등의 화려한 가수들로 이루어졌지만 앨범은 억지로 꿰어 맞춘 인상을 주었으며 전인권의 애드립을 들을 수 있는 타이틀 곡 ‘자기성찰’은 너무 작위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오랜만에 발표한 솔로 앨범 < New Early Morning >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새로운 아침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앨범에는 ‘니가 없는 아침이 싫어’, ‘동거’, ‘너를 보면 만지고 싶어’와 같은 성인 취향의 곡들과 김현식을 추모하는 ‘김현식’이란 곡이 들어 있었다. 발라드 계열의 음악에서 간혹 포크에 중심을 두었던 그는 이 앨범에서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시도한 듯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대중 음악계에서 상당한 중견이 되었으며 많은 직함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에 출강하며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음악 역량을 교수법에 쏟고 있는 그는 새로운 음악적 야망을 꿈꾸기에, 아직 젊기만 하다.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헌정 음반 >, 서구의 문화침탈에 대항한 <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까지 자신의 참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개혁의 기치를 빼어들었다. 그는 비록 김민기와 같이 시대적 요청의 화합물이 되거나 서태지와 같은 권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 파워맨은 아니었지만, 고군분투하여 따낸 사전검열제도폐지와 끔찍한 진실의 현장을 포착한 < 아! 대한민국 >, < 92년 장마, 종로에서 > 등으로 그 동안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소위 운동권의 저항가요들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대학이란 포장지로 감싼 운동권 가요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는 민중의 노래였으며 오랜 시간 다져진 글래디에이터의 자신에 찬 고백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들어서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이 농부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는 현악반에 다니면서 음악대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방황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도 선생님과의 이별은 그를 어두운 사춘기적 자화상 속에서 살게 했고, 재수와 함께 시작된 여러 번의 가출은 이 우울한 시인을 젊은 날의 불안한 군상들 속으로 인도했다.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결국 군대를 가야했다. 이미 학창시절에 곡을 쓸 줄 알았던 그는 이 시절에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와 같은 곡들을 만들었으며, 차근차근 모아두었던 곡들로 제대 후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에 의해 서라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78년 말에 발표한 첫 번째 음반은 엄청난 대중적인 파고를 일으키며 정태춘을 스타덤으로 인도했다. 비록 많은 가사들이 검열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그는 ‘시인의 마을’로 1979년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촛불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신인가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8년 만난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과 1980년 결혼식을 올린다. 불교적 색채를 드러낸 2집, 국악과 양악 편곡의 멋진 대비를 보여주는 3집의 실패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은 그는 부인 박은옥과 같이 하기 시작한 1984년의 앨범에서 ‘떠나가는 배’로 또 다시 스매시 히트를 터트린다.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스테디 리퀘스트곡을 남긴 이 음반은 포크적 색채를 버리고 스트링 세션 위주의 편곡으로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간 앨범이었다. 음악을 포기할 마음까지 먹었던 그는 이 음반의 성공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며 1985년 1월부터 시작된 < 정태춘.박은옥의 얘기 노래마당 >라는 공연을 벌였다. 자신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던 그는 TV를 배제한 활동을 계속했으며 ‘북한강에서’, ‘붕숭아’와 같은 곡으로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민주화 투쟁과 6.29 선언 등으로 변화한 국내의 분위기를 실감한 그는 검열을 의식해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을 모아 < 무진 새노래 >라는 타이틀로 내놓으며, 이 때부터 달라진 사회적인 시각과 국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엉켜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1988년부터는 <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라는 공연을 펼쳐 외세의 시각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 세대를 교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청계피복노조 지지공연을 시작으로 전교조 지지공연, 전노협 지지공연 등에 참석하거나 주도적으로 행사를 만들어 대중집회의 단골주자로 부상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만들어진 < 아, 대한민국 >이 1990년 발효된 새 음비법을 따른 공륜에 의해 거부당하자, 음반을 불법 복제 테이프로 만들어 발표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했으며1991년 1월 29일 <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 위원장을 맡아 반대 성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전검열제도 폐지와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해서 < 92 장마, 종로에서 >를 테이프로 제작해 배포했으며 이 앨범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는 사전 심의 조항 폐지 운동은 1995년 11월 7일 국회를 통과하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힘없던 시인의 승리는 이렇게 기나긴 길을 돌아서 찾아왔다. 그의 고생을 우리는 피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1998년 정태춘은 늘 함께 해온 부인 박은옥과 함께 20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함춘호, 조동익 등의 일급 세션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초창기 서정미의 단아해진 멜로디들을 들을 수 있으며 한 층 더 깊이가 새겨진 선동성을 읽을 수 있다. 포크 음악인들 위주의 중견 가수들과 함께 위성방송에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콘텐츠 회사 S.O.K를 설립한 그는 평생 넘어야 할 산처럼 버티고 있는 국악에 대중적인 접근을 꿈꾸며 지금도 대중 집회를 빠짐없이 순회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의 거울이다.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를 국악적 특색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음률에 실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이번 내레이션 진행은 그의 첫 영화작업으로, ‘블랙딜’ 기획안을 보고 한번에 흔쾌히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울림있는 내레이션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 진정성을 더했다.

Album
1978 《시인의 마을》
1980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1983 《떠나가는 배(이어도)》
1985 《북한강에서》
1988 《정태춘 박은옥 무진 새노래》
1993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5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
2002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2012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우리나라 최초의 보헤미안이자 아방가르드적 사고의 전환을 보여준 한대수(1948년)는 한국적 포크 음악의 창시자이자, 자신의 생각을 음악으로 가장 리얼하게 표현한 시인이요 아티스트였다. 그의 음반 활동은 부침을 거듭하며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실험을 거듭하며 이 땅의 뮤지션들과 음악애호가들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 땅의 음반 산업은 이 고독한 선구자를 시대의 부랑아로 만들었다. 과연 우리 음악의 ... 우리나라 최초의 보헤미안이자 아방가르드적 사고의 전환을 보여준 한대수(1948년)는 한국적 포크 음악의 창시자이자, 자신의 생각을 음악으로 가장 리얼하게 표현한 시인이요 아티스트였다. 그의 음반 활동은 부침을 거듭하며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실험을 거듭하며 이 땅의 뮤지션들과 음악애호가들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 땅의 음반 산업은 이 고독한 선구자를 시대의 부랑아로 만들었다. 과연 우리 음악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 그는 어린 시절 핵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조부모와 살았으나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한동안 외국 생활을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홀이라는 상담교사를 만나면서 음악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감지하게 된다.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하다 사진학교를 다니며 사진에 취미를 붙인 한대수는 1968년 귀국해 국내에서 포크가수의 삶을 시작한다. 디자인 포장센터에서 3급 공무원 디자이너로 일하며 대학가에서는 자신의 철학과 인생이 담긴 노래로 인상적인 공연을 펼친 그는, 자신이 만들고 김민기가 부른 ‘바람과 나’와 양희은이 부른 ‘행복의 나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군 제대 후 곧장 앨범 제의를 받은 그는 하루만에 녹음을 마친 역사적인 데뷔 앨범에서 ‘물 좀 주소’로 전국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외국의 곡을 번안한 곡만을 부르던 당시 포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중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앨범은 체제 전복적인 음악이라는 당국의 해석에 따라 수거령이 내려졌으며 1집도 같이 판금조치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맞지 않는 시대를 사는 한국과 작별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다시 오른다. 그는 미국에서 대체적으로 평온한 생활을 보냈다. 아버지와의 관계나 사진작가로서의 직업은 그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록밴드 징기스칸을 결성해 클럽 CBGB 등에서 활동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20년간 같이 살았던 분신과도 같았던 아내와 헤어진 뒤 그의 영혼은 다시 가는 전선 위를 건너는 것처럼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졌으며 황폐해졌다. 이러한 정신적 방황은 곧 14년만에 작업한 새 앨범으로 이어졌다. 이 앨범에는 1집에 실렸던 ‘하루 아침’을 약간 바뀐 가사로 다시 실었으며 아내와의 이별에 대한 회한이 서린 ‘나 혼자’, ‘One day'' 등이 실려 있다. 이 후 그는 연이어 재즈를 실험한 < 기억상실 >, 미니멀리즘으로 내달린 < 천사의 담화 > 등의 앨범을 연달아 내며 실험의 선구자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계속 사진 작가로 활동하며 다시 소시민적인 일상으로 돌아간다. 잊혀졌던 그를 다시 재조명한 것은 국내가 아니라 일본이었다. 일본의 록 스타 카멘 마키(Carmen Maki)를 앞세운 후쿠오카 공연은 그를 한국의 대표로 선정해 끊임없는 요청을 해 왔으며 자신을 한국의 대표가수로 선정한 그들의 태도에 반신반의하며 김도균, 이우창 등과 함께 연습한 한대수는 공연 당일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일본에서의 호응으로 국내에서도 갑작스럽게 환대를 받은 그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펼쳐진 유니텔 록 콘서트 < Koreanism >과 양희은과 < 아주 특별한 만남 > 등의 공연을 가지며 하드록 풍의 앨범 <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를 내 놓는다. 그는 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 >에 수록된 ‘하루 아침’과 ‘하룻밤’으로 계속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여러 기획사를 전전하던 끝에 나온 2001년의 앨범 < Eternal Sorrow >에서 “음악적으로 한계를 느낀다”며 이 앨범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음악을 허무는 그의 사고가 곳곳에 펼쳐 있는 이 앨범에는 충격적인 인트로와 어린 아내에게 바치는 ‘To Oxana'', 디스코 버전으로 재 수록한 ‘옥의 슬픔’, 배리 맥과이어(Barry McGuire)의 ‘Eve of destruction''을 리메이크한 ‘멸망의 밤’ 등을 싣고 있다.
멤버 : 한철수, 한철호, 홍성삼 멤버 : 한철수, 한철호, 홍성삼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황폐화된 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을 비쳐 준 것은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이 형제들은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으로 한 순간에 가요계를 전복시켰고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인 데뷔 음반과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끝없는 창작욕을 발현한 첫 번째 단추...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황폐화된 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을 비쳐 준 것은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이 형제들은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으로 한 순간에 가요계를 전복시켰고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인 데뷔 음반과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끝없는 창작욕을 발현한 첫 번째 단추가 되었으며, 신중현이 열어 놓은 록의 세계를 아마추어의 경지에서 마음껏 조리한 역사적인 음반이 되었다. 둘째 김창훈의 곡인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은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문 좀 열어 줘’란 곡으로 출전했지만, 김창완이 졸업생 이여서 자격미달로 실격한 이들은 자신들의 기념 음반을 가지고 싶었던 나머지 친척들을 졸라 앨범 제작비를 구걸했고 그간 만들어 놓았던 150곡 중 몇 곡을 추려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그리곤 가장 가까운 레코드 회사인 서라벌을 찾아가 자신들의 소원을 얘기했다. 이들의 데모 테이프를 들어 본 사장은 아무 조건 없이 음반을 만들어 주겠다며 손수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고 이들의 이름을 산울림으로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악기는 연주를 하고 나면 줄이 풀려 끝까지 마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평론가 이백천에게서 팬더사의 스트라토 기타와 암페그에서 만든 베이스를 빌려온 이들은 하루만에 녹음을 끝마쳤으며 음반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채 본격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이들의 데뷔 음반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거두며 삽시간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명반으로 꼽히는 2집을 4개월만에 내놓았으며 역시 파격과 혁신의 메아리로 소리를 내지르며 커다랗게 산울림을 자아냈다. 이것은 2집이 나온 지 6개월만에 발매된 3집의 ‘그대는 이미 나’로까지 이어진다. 동생들이 군대에 가자 산울림은 제대로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4집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에 쓰였던 주제곡들을 모아 편집한 음반으로 발매했고 5집은 동생들이 휴가 나온 사이 녹음을 끝내야 했다. 데뷔 음반의 폭발적인 반응에서 멀어진 듯한 이들의 인기는 6집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동생들이 제대하고 같이 만든 7집의 ‘청춘’, 8집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같은 스탠더드 류의 히트곡으로 계속 이어지며 초창기의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곡들보다는 대중성이 뛰어난 곡들로 꾸며지며 계속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3인 밴드 최상의 사운드를 들려주며 우리 나라 헤비메탈 사운드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9집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혼자 남은 김창완은 < 기타가 있는 수필 >이란 솔로 앨범에서 ‘어머니와 고등어’를 히트시키며 이후 계속 되는 솔로 여정의 첫 삽을 뜬다. 그는 이어 본인이 혼자 만든 산울림 10집에서 감상적 발라드 ‘너의 의미’를 히트시킨다. 그는 또한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모아 포크 그룹 꾸러기들을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으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라는 긴 제목의 곡으로 100일간의 장기 공연을 치뤄 냈다. 밴드 음악의 감독으로 산울림을 지휘한 김창완의 한편에는 동요라는 장르가 있다. 처음의 기획의도는 기존의 동요를 재해석하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외국 곡이라는 한계를 알게 된 그는 직접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곡들로 시장을 두들겼고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안녕’ 등과 같이 정규 앨범의 히트곡 못지 않은 인기곡들을 양산한다. 그의 동요 앨범들은 그의 천진무구한 창작적인 감수성이 뽑아낸 새로운 시도였다. 9집 이후 김창완 혼자서 작업했던 산울림은 과거의 뮤지션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합체식을 가졌다. 국내에서 트리뷰트를 받은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내 마음’에서 보여준 김창훈의 메탈성 보컬로 오랜만에 원초적인 삼 형제의 힘을 발휘하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음악 자체의 순수성을 엮어낸다. 그리고 폭풍 속의 댄스씬을 빠져 나온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산울림이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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