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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9년 02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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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60.25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88937439513 |
46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때 아닌 안개에 덮여 있는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까지 답답해 진다. 온 몸이 높은 습도에 눅눅해 지는 기분까지 들어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계절의 실감도 나지 않고, 날짜에 대한 감각도 무뎌져 무기력감만이 나를 휘감고 돈다. 이토록 낯선 날씨를 마주하고 있으니 몇몇 진부한 풍경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안개하면 런던이 떠오르듯이 비애하면 이제는 이스탄불이 떠오른다. 이런 날씨가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낯설지만, 이스탄불이라면 도시의 폐허를 그대로 보여줄 것 같은 느낌. 이스탄불을 이렇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다.
오르한 파묵이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그 전에 그의 작품을 만난 터라 상을 받은 작가라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이 책을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소설만 만나 왔었는데 에세이를 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그것도 자전에세이라니. 오르한 파묵의 개인적인 내면 세계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과 에세이에서 만난 작가는 분명 다르기에 소설 너머로 바라본 작가의 이면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옮길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전환해 주길 바라는 기대감. 내가 끄집어 올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드러냄. 그런 것을 바라며 대리만족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을 통해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되짚어 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자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에세이를 통해서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나의 관심의 욕망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의-가장 깊은 희열조차-의미를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는 것을 습관하 한다'라고. 그제서야 나의 욕망은 습관화로 이루어진 잔재물이며 당연하게 요구하게 되는 욕구충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묘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후에 살 수 있는 두 번째 삶은,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책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용기를 얻고 책을 펼쳤다. 나의 두 번째 삶은 내 손에 붙들려진 <이스탄불>이라며 내 머릿속에 각인 시킨 후 오르한 파묵을 통해 깊은 희열을 느끼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부제목을 보면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고 되어 있다. 처음엔 부제목을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책을 읽어 나갈 수록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추억이 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성장하며 기억하는 이스탄불이 되기도 하고, 과거의 사람들이 지나쳐온 이스탄불이 되기도 했다.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의미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아는 것을 습관화 한다고 했지만, 이스탄불은 사람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도시 그 자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화려했던 오스만 제국의 잔재가 다듬어 지지 못하고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을 도시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방치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꿈틀대며 삶을 꾸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이스탄불의 흔적을 좇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순환하지 않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낡아, 날로 우울함을 더해가는 도시. 과거의 화려함은 빛이 바래 사그라든지 오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탄불에서 성장했고, 이스탄불의 내면과 외부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이스탄불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을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성장과정부터 도시의 폐허까지 저자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가정의 불화, 줄어드는 재산, 첫사랑, 첫경험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스탄불의 존재 과정을 자신의 성장과 함께 맞물리며 고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냈듯이 이스탄불 역시 모든 것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이스탄불은 저자 뿐만이 아닌 독자에게도 절망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탄불에 잔존하는 감정은 비애였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옮긴이는 우리나라의 '한(恨)'의 정서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한(恨)을 떠올리니 이스탄불이 안고 있는 분위기, 그 안에서 성장했던 저자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비애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만끽했다. 그것이 이스탄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원동력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내가 성장한 동네를 그려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시골스러움을 숨기고 싶고, 빨리 성장해서 그 곳을 떠나고 싶었던 그런 동네를 과연 사랑할 수 있으며 저자처럼 그려낼 수 있을까. 대답은 오래지 않아 'NO' 라고 말한다. 복잡하고 불완전하고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이스탄불을 좋아한다던 저자와는 다른,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이기에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이유를 끌어다가 나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오르한 파묵) 알아가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여과지에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 것에 대해, 저자의 내면을 통해 이스탄불을 바라본 것에 대해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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