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10월 전사이벤트
10월 혜택 모음
주말엔 보너스
싱가포르관광청
모바일 리뉴얼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일본 제작 고음질 재즈 음반
CD

블루 노트 레이블 80주년 기념 모음집 (Blue Note Now)

[ 2CD ]
Norah Jones, Gregory Porter, Jose James, Kandace Springs 노래/Art Blakey 연주 외 1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Japan / Blue Note | 2019년 02월 21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92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36,500원
할인가 29,6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현재 새 상품은 구매 할 수 없습니다. 아래 상품으로 구매하거나 판매 해보세요.

일시품절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블루 노트 레이블 80주년 기념 모음집 (Blue Note Now)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2월 21일
제조국 일본

관련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Art Blakey - Moanin'
  • 02 Sonny Clark - Cool struttin
  • 03 Herbie Hancock - Cantaloupe island
  • 04 Bud Powell - Un poco loco (mono)
  • 05 Sonny Rollins - A night in tunisia (mono/live)
  • 06 Kenny Burrell - Midnight blue
  • 07 Cannonball Adderley - Love for sale
  • 08 Horace Silver - Song for my father
  • 09 John Coltrane - Moment's notice
  • 10 Lee Morgan - Candy (mono)
Disc2
  • 01 Norah Jones - Don't know why
  • 02 Gregory Porter - Liquid spirit
  • 03 Trombone Shorty - Here come the girls
  • 04 Norah Jones - Carry on
  • 05 Jose James - Come to my door
  • 06 Kandace Springs - Novocaine heart
  • 07 Chris Dave & The Drumhedz - Black hole
  • 08 Gogo Penguin - Bardo
  • 09 Derrick Hodge - Message of hope
  • 10 Brian Blade - Embers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9명)

노라 존스(Norah Jones)는 2003년 ‘올해의 앨범’을 비롯한 그래미의 본상 4개 부문 트로피를 모두 품에 안으며 21세기 재즈 보컬계의 뉴 프린세스로서 부동의 위치를 선점한 아티스트이다. 특유의 편안하면서도 관능적인 보이스와 탁월한 피아노 솜씨를 앞세워 재즈라는 마니아적 장르에 대중적 돌파구를 마련해 준 점으로 특히 평가 받는다. 또한 이미 주지하다시피그녀의 아버지가 비틀스의 시타 스승 라비 샹커(Ra... 노라 존스(Norah Jones)는 2003년 ‘올해의 앨범’을 비롯한 그래미의 본상 4개 부문 트로피를 모두 품에 안으며 21세기 재즈 보컬계의 뉴 프린세스로서 부동의 위치를 선점한 아티스트이다. 특유의 편안하면서도 관능적인 보이스와 탁월한 피아노 솜씨를 앞세워 재즈라는 마니아적 장르에 대중적 돌파구를 마련해 준 점으로 특히 평가 받는다. 또한 이미 주지하다시피그녀의 아버지가 비틀스의 시타 스승 라비 샹커(Ravi Shankar)라는 점도 지명도를 획득하는데 큰 힘이 됐다. 1979년 3월 30일 뉴욕에서 첫 울음보를 터뜨린 노라 존스는 어린 시절부터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빌 에반스(Bill Evans) 등의 음악 세계에 심취하며 내공을 쌓아나갔다. 그가 재즈에 본격적으로 빨려 들어간 시기는 댈러스(Dallas)의 부커 티. 워싱톤 고등학교(Booker T. Washington High School)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이 미래의 재즈 슈퍼 스타는 당시 고등 학생 신분으로 미국의 재즈 잡지 [다운 비트(Down Beat)]가 주관하는 시상식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리스트 상’을 1996년과 1997년에 2년 연속 제패하는 등, 천부적인 소질을 일찍부터 뽐냈다. 이후 피아노 전공으로 노스 텍사스 대학(North Texas University)에 진학, 음악의 기초 체력과 전문성을 함께 다져나갔던 그는 제시 해리스(Jesse Harris), 리 알렉산더(Lee Alexander), 댄 라이저(Dan Rieser) 등과 함께 자신의 그룹 왁스 포에틱(Wax Poetic)을 발족, 라이브 무대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이렇듯 꾸준히 메이저 입성의 길을 닦아나갔던 노라 존스에게 절호의 찬스가 온 때는 2001년이었다. 2000년 제작했던 데모 테이프로 [블루 노트 레코즈(Blue Note Records)]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던 것. 동시에 그는 찰리 헌터(Charlie Hunter)의 앨범인 [Songs From The Analog Playground]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음악적 경험치를 상승시켰다. 그리고 2002년 초, 노라 존스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 비지스(The Bee Gees) 등과 작업했던 전설적 프로듀서 아리프 마딘(Arif Mardin)의 주관 하에 완성한 처녀작 [Come Away With Me](2002)로 재즈의 글로벌리제이션을 일궈냈다. 작품은 오랜 기간 빌보드 차트에 머무르며 기어이 넘버 원을 따내는 등, 작년 한해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명성의 깃발을 휘날렸다. 현재까지 무려 400만장의 실적을 올렸고 그 여파는 그래미 제패 덕에 날이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모두 9.11 테러 이후 흉흉해진 미국인의 마음을 위무해준 따스한 톤의 목소리가 위력을 발휘한 때문이었다.
노래 : Gregory Porter (그레고리 포터)
풍부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통해 마음을 달래주는 그레고리 포터!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제이미 칼럼, 디스클로저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했으며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를 통해 기타리스트 밀로쉬와도 작업했다. 2014 Grammy Awards - Best Jazz Vocal Album (Artist) 풍부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통해 마음을 달래주는 그레고리 포터!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제이미 칼럼, 디스클로저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했으며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를 통해 기타리스트 밀로쉬와도 작업했다.

2014 Grammy Awards - Best Jazz Vocal Album (Artist)
노래 : Jose James (호세 제임스)
노래 : Kandace Springs (캔디스 스프링스 )
재즈 피아노 연주자, 보컬 재즈 피아노 연주자, 보컬
연주 : Art Blakey (아트 블래키)
일평생 하드밥(Hard Bop)만을 고집한 재즈 드럼의 전설 가열찬 두드림으로 재즈의 혼을 전한 연주인 아트 블레이키는 영원한 하드밥 메신저였다. 아트 블레이키는 재즈에서 리듬 섹션의 역할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며 ‘재즈는 곧 리듬’임을 만방에 알렸다. 다양한 실험과 변신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계에서 아트 블레이키처럼 오로지 하드밥, 한 가지 스타일을 줄기차게 고집한 뮤지션도 드물다. 1954년 그의 퀸텟이 버드 ... 일평생 하드밥(Hard Bop)만을 고집한 재즈 드럼의 전설 가열찬 두드림으로 재즈의 혼을 전한 연주인 아트 블레이키는 영원한 하드밥 메신저였다. 아트 블레이키는 재즈에서 리듬 섹션의 역할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며 ‘재즈는 곧 리듬’임을 만방에 알렸다. 다양한 실험과 변신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계에서 아트 블레이키처럼 오로지 하드밥, 한 가지 스타일을 줄기차게 고집한 뮤지션도 드물다. 1954년 그의 퀸텟이 버드 랜드 클럽에서 녹음한 라이브 실황 앨범 < A night at birdland > 를 시작으로 1990년 사망 할 때까지 무려 36년 동안 재즈 메신저스의 수장자리를 지켜왔다. 찰리 파커가 들고 나온 비밥이 한층 다양한 리듬 패턴과 악기 편성으로 풍요롭게 발전된 하드 밥은 아트 블레이키의 남다른 뚝심에 힘입어 1950-60년대 화려하게 꽃 필수 있었다. 아트 블레이키에게 스윙은 재즈의 혼이고 그 스윙 리듬을 먹고 자라난 하드밥은 자신과 같은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자존심이었다. 비슷한 시기 자웅을 겨루었던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과 함께 아트 블레이키는 자신의 밴드 재즈 메신저스를 통해 활동시기 내내 걸출한 하드밥뮤지션들을 배출해왔다. 피아노의 호레이스 실버와 키스 자렛, 트럼펫에 클리포드 브라운, 리 모건, 프레디 허바드, 색소폰에 베니 골슨, 행크 모블리, 웨인 쇼터, 그리고 현재까지도 최고의 재즈 뮤지션으로 각광받는 윈튼 마살리스, 브랜포드 마살리스, 척 맨지오니가 재즈 메신저스를 거쳐갔다. 그의 재즈 메신저스는 그야말로 재즈의 사관학교였던 셈이다. 1919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아트 블레이키는 처음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지역 클럽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 클럽 사장의 압박(?)으로 드럼으로 자신의 파트가 바뀌게 된다. 그가 연주 초년병 시절이던 1930-40년대, 스윙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만인의 주목을 받았던 밴드 리더가 피아니스트나 클라리넷 주자였던 것에 비해 드럼은 비인기 파트 중 하나였다. 1943년 플레처 헨더슨 악단, 1944년 빌리 엑스타인 밴드에서 스윙 리듬을 연주한 아트는 엘라 핏 제럴드, 사라 본,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와 같은 신세대 재즈 뮤지션들과 교류한다. 그리고 얼마 후 비밥이라는 신종 문법은 그에게 미지의 신대륙처럼 다가온다. 빌리 엑스타인 밴드가 해산되자 아트는 1946년, 17인조 리허설 밴드를 창단한다. 이듬해 밴드는 8인조의 그룹으로 재편되는데, 그의 밴드 이름인 ‘메신저스’는 바로 이때부터 사용된다. 해산과 재편을 거듭한 그의 밴드는 이렇다할 성과 없이 정체됐고 이내 이슬람교를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으려 했던 아트는 이슬람 문화를 배우기 위해 1년간 아프리카엘 가게 되고 이름도 이슬람식 이름인 ‘압둘라 이븐 부하이나’로 개명한다. 비밥 스타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 보고 있던 아트 블레이키에게 전환점이 온건 1950년대 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를 만나면서였다. 펑키 리듬과 가스펠 음악에 관심있던 호레이스 실버는 평소 아트 블레이키가 찾던 리듬에 강한 연주인이었다. 둘은 이내 의기투합하며 루 도날드슨의 알토 색소폰, 클리포드 블라운의 트럼펫, 컬리 러셀의 베이스가 참여하며 아트 블레이키 첫 정규 퀸텟으로 출범된다. 블루 노트레이블에서 발표된 앨범 < A night at birdland > (1954)는 이내 재즈계의 촉각을 건드렸다. 재즈의 명소 버드랜드에서 녹음된 앨범에선 오랫동안 다져온 아트 블레이키의 역동적인 드럼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몸을 들썩이는 펑키 리듬과 블루스의 기운이 감지되는 호레이스 실버 피아노 연주, 강렬한 울림을 선사하며 다크호스로 떠오른 트럼펫터 클리포드 브라운의 연주는 신선했고 앨범은 한층 업그레이드 된 비밥, 이름 하여 하드 밥의 효시 작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같은 해 아트 블레이키 퀸텟은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의 블루노트 첫 리더작 < Horace Silver & Jazz Messenger > 로 다시 모인다. Doodlin’ 이라는 명연을 담고 있는 지금까지도 호레이스 실버의 최고작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확고한 입지를 확보해준다. 자신감을 얻은 호레이스 실버는 색소폰주자 행크 모블리, 트럼펫터 케니 도햄을 만나 자신의 밴드를 결성을 논의했고 결국 호레이스는 아트 블레이키를 떠나 자신의 퀸텟을 결성한다. 다만 호레이스가 사용했던 재즈 메신저스란 팀 이름은 아트 블레이키에게 넘겨졌다. 다소의 혼선을 겪은 그는 ‘아트 블레이키 & 재즈 메신저스’ 로 새 출발하며 팀을 재정비한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안타까운 요절로 그를 대신할 18살의 천재 트럼펫터 리 모건과, 테너 색소폰주자 베니 골슨, 바비 티몬스의 피아노, 지미 메리트의 베이스로 구성된 그의 2기 퀸텟이 출범한다. 이전 1기 때처럼 창창한 신인 뮤지션들로 구성된 그의 메신저스는 여러 레이블은 전전하던 끝에 1958년, 자신의 첫 출사표를 내준 블루 노트에서 또 한번의 명연을 들려주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재즈사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기록되는 < Moanin’ > 이다. 피아노와 혼 섹션의 경쾌한 콜 앤 리스펀스가 인상적인 타이틀 곡 ‘Moanin’은 흑인의 원초적 가락인 블루스와 재즈 본연의 리듬인 ‘스윙’이 가장 이상적으로 배합된 명연이다. 앨범은 퀸텟 멤버인 베니 골슨의 뛰어난 작곡 실력을 선보이는 ‘Are you real’ , 아트 블레이키의 폭발하는 드러밍이 솔로를 만끽할 수 있는 ’Blues march’ 등 하드밥연주의 진수를 담아내고 있다. 아트 블레이키와 그의 밴드는 < Moanin’ > 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모달,프리 재즈의 격변에 아랑곳없이 아트 블레이키는 1960년-70년대 내내 하드밥의 지존으로 군림하며 재즈 메신저스를 통해 수많은 신인 스타들을 양산해 낸다. < A night at Tunisia > (1960)에 참여했던 테너 색소폰의 웨인 쇼터, 하드밥트럼펫 연주에 새 전기를 마련한 프레디 허바드가 참여한 < Mosaic >(1961), < Indestructibale > (1964)에서 여전히 기세등등한 연주를 들려줬다. 70-80년대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되는 푸르겔 혼의 척 맨지오니와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 역시 60년대 후반 재즈 메신저스의 멤버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사안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재즈 메신저스의 열기는 하지만 1970년대 접어들며 재즈 록의 위세에 떠밀려 차츰 식어가고 있었다. 실력 있는 젊은 뮤지션은 재즈 록과 퓨전 재즈 쪽으로 흘러갔고 아트 블레이키는 팀 운영에 난항을 겪는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그의 하드밥 열정은 이런 재즈계의 분위기에선 유지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1980년대가 왔고, 존폐위기에 몰린 그의 재즈 메신저스는 다시 한번 세계가 주목한 천재 트럼펫터를 맞이한다. 정통 재즈의 부활을 외치며 신정통주의의 기수로 떠오른 19살의 윈튼 마살리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한살 위인 그의 형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까지 들어오며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는 1981년 < Straight Ahead > 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마살리스 형제는 1983년까지 재즈 메신저스에 몸담았고, 이듬해 1984년 신예 트럼펫터 테렌스 블랜차드가 참여한 < New York Scene > 으로 이어지며 재즈 메신저스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1985년엔 블루 노트 레이블 재건기념 수퍼 콘서트 < A night with Blue Note > 에 참여했고 이후 1990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는 무대에서 줄기차게 하드밥의 열기를 이어갔다. 죽기 바로 1달 전 개최된 도쿄 돔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끝나자마자 아트는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1990년 10월 16일 하드밥 메신저의 옹골찬 연주 인생은 막을 내린다. 하드밥과 결혼한, 아니 하드밥에 인생을 건 아트 블레이키는 그가 연주했던 드럼 솔로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인물이다. 수많은 분파가 생기고 다양한 실험과 변화가 진행되는 현 재즈계에서 어느 순간 2%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필요한 건 바로 블루스와 스윙이 황금 비율로 만나 만개한 하드밥의 충격요법이다. 시류에 아랑곳없이 하드밥 외고집으로 완성된 아트 블레이키의 유산은 지금도 재즈가 연주되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은 4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정통 재즈에서부터 최첨단 일렉트로닉 악기를 내세운 재즈 퓨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악 세계를 선보여왔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영향이 느껴지는 강한 서정성의 < Maiden Voyage >(1965)에서 슬라이 & 패밀리 스톤 풍의 펑키 리듬이 압도적인 < Headhunters >(1973)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특정 스타일로 규정될 수 없다. ...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은 4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정통 재즈에서부터 최첨단 일렉트로닉 악기를 내세운 재즈 퓨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악 세계를 선보여왔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영향이 느껴지는 강한 서정성의 < Maiden Voyage >(1965)에서 슬라이 & 패밀리 스톤 풍의 펑키 리듬이 압도적인 < Headhunters >(1973)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특정 스타일로 규정될 수 없다. 정통 재즈에서부터, R&B, 일렉트로닉 뮤직, 펑키 등 다채로운 음악지형도를 펼쳐온 그는 한마디로 ‘변신’을 즐기는 재즈맨이다. 1940년 4월12일 미국 시카고의 사우스사이스에서 허버트 제프리 핸콕(Herbert Jeffery Hancock)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7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일찍 두각을 나타내 11살에 이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모차르트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기계 다루는데도 재능을 보여 나중에는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특이하게 대학서 전자공학을 전공한다. 이런 경력은 그가 1960년대 일렉트릭 피아노인 펜더 로즈(Fender Rhodes)나 클라비넷(Clavinet)과 같은 키보드 사운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학서 만난 색스폰 주자 행크 모블리, 트럼펫 주자 리 모건과 연주 활동을 하면서 도날드 버드의 권유로 1961년 뉴욕으로 진출해 그의 밴드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재즈맨의 길을 걷게 된다. 잠시 후 재즈 레이블 블루 노트(Blue Note)사가 그에게 계약을 요청, 이듬해인 1962년 데뷔작 < Takin’ off >(1962)를 내놓는다.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풍의 펑키한 피아노 주법이 인상적인 이 앨범의 수록곡 ‘Watermelon man’은 라틴 재즈 퍼커션 주자인 몽고 산타마리아(Mongo Santamaria)의 노래 버전으로 더 유명하다. 총 7장의 앨범을 블루 노트를 통해 발표하는 동안, 1993년 애시드 재즈그룹 US3가 커버해 유명해진 ‘Cantaloupe island’가 수록된 < Empyrean Isle >(1964)를 비롯하여 < Maiden Voyage >(1965), < Speak Like A Child >(1968)과 같은 명반을 통해 빌 에반스 풍의 서정성과 호레이스 실버의 펑키한 감각을 합쳐놓은 듯한 개성 어린 피아노 연주를 들려줌은 물론, 그의 탁월한 곡 쓰기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재즈 솔리스트로서 1960년대 내내 왕성한 활동을 보였지만, 재즈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의 활동은 그가 보다 진취적인 재즈뮤지션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토니 윌리암스(Tony Williams), 론 카터(Ron Carter), 웨인 쇼터(Wayne Shorter),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그리고 허비 핸콕(Herbie Hancock)으로 이루어진 제2기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 E. S. P >, < Miles In The Sky >, < Socerrer >, < Nefertiti >, < Filles De Killimanjaro >와 같은 명반을 잇달아 발표한다. 당시 “Miles In The Sky”(1968)를 작업하던 중 마일스 데이비스의 권유로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 허비 핸콕은 칙 코리아(Chick Corea)와 함께 키보드 사운드를 바탕으로 70년대 재즈-록 퓨전의 선두주자로 군림하는 초석을 다진다. 마일스와의 활동이 그가 ‘음악에 다양한 시도를 할 줄 아는 뮤지션’으로 비상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퓨전’으로의 음악성을 표방했던 1969년 허비 핸콕은 마일스를 벗어나 독립, 므완디시(Mwandish)라는 이름의 7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 Mwandish >(1970), < Crossing >(1971), < Sextant >(1973)에서 실험적인 ‘일렉트로닉-펑키’ 뮤직을 선보인 허비 핸콕은 다양한 종류의 키보드 사운드를 재료로 한 진보적인 재즈-록 퓨전을 선보이며 비평적 찬사를 얻는다. 이런 므완디시 밴드에서 보여준 허비 핸콕의 새로운 시도는 주목할 만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실험적 사운드에 천착한 음악이 대중들이 수용하기엔 어려웠던 것이다. 허비 핸콕은 자신의 밴드에 쏟은 열정만큼 대중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당시 유행하던 R&B의 문법을 자신의 음악에 대거 도입한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통해 경험한 ‘펑키 사운드’에 자신의 지향을 정했고 그 결과 나온 < Headhunters >(1973)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빌보드 앨범 차트 13위까지 오른 이 앨범은 명료한 백 비트를 바탕으로 펑키 사운드가 전면에 부각된 ‘파티용 댄스뮤직’이었다. 200만장 판매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연이어 발표한 < Thrust >(1974), < Man-Child >(1975), < Secret >(1976)를 계속 히트시키며 재즈 펑크(Jazz- Funk)의 전도사로서 1970년대 내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재즈 퓨전을 이 시기에 표방하면서도 그는 1977년 V.S.O.P.라는 팀을 결성, 19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연주를 같이 했던 멤버들과 같이 ‘정통 재즈로의 외도(?)’를 즐기기도 한다. 재즈-퓨전에 이어 1980년대 윈턴 마샬리스(Wynton Marshallis)등에 의해 꽃 피운 포스트 밥(Post-bop) 혹은 신(新)전통주의라 불리는 새로운 경향을 그는 이미 V.S.O.P.를 통해 그 도화선을 제시했던 것이다. 1980년대 들어 허비 핸콕은 또 한번의 변신을 감행한다. 1983년 발표한 < Future Shock >에 수록된 ‘Rockit’은 힙합 뮤직에 퍼져있던 스크래치(scratch) 사운드를 도입, 독특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이른바 디스코-텍(Disco-Teque) 뮤직을 선보인다. < Head Hunters >에 이어 이번에는 컴퓨터로 찍어 낸 듯한 테크노 음악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음악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 Future Shock >에 이은 1984년 작 < Sound System >으로 연속 그래미상을 거머쥔 허비 핸콕은 재즈 뮤지션의 한계를 뛰어 넘는 폭넓은 활동을 전개한다. 덱스터 고든이 주연했던 1986년 영화 < Round Midnight >에 참여, 이번엔 그래미상이 아닌 아카데미에서 오리지날 스코어 상을 수상한다. 1988년 테크노 팝 앨범 < Perfect Machine >을 끝으로 콜롬비아 레코드사를 떠난 허비 핸콕은 마일스의 추모앨범, TV 쇼 프로그램 진행자, 윈튼 마샬리스와의 협연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1994년 버브 레코드를 통해 < Dis Is Da Drum >을 발표하여 비평적 찬사를 받는 동시에 < Future Shock >에 이은 테크노 팝 열풍을 재현한다. 1995년엔 커트 코베인, 프린스, 토킹 헤즈, 비틀즈, 사이먼 & 가펑클 등의 록과 팝을 그만의 재즈 연주로 리메이크한 < The New Standard >를 발표했고 1998년엔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 Gershwin’s World >를 통해 그의 명성을 공고히 했다. 21세기를 맡아 예순을 넘기면서도 그 특유의 변신은 멈추지 않아 올 9월에 발표한 신작앨범 < Future 2 Future >를 통해서는 일렉트로닉과 다양한 장르의 혼합을 꾀하기도 했다.
비밥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은 재즈 피아노 연주의 새로운 패턴을 확립한 인물이다. 20-30년대까지 재즈 피아노 연주의 주류를 이루던 스트라이드 주법(랙타임에서 유래)은 그로 인해 왼손의 역할은 줄어들고 오른손이 연출하는 고난이의 연주 기교가 더욱 중시된다. 왼손으로 ‘움파-움파’하는 식으로 리듬을 만들어 주던 초기재즈-스윙 시대의 피아노 연주는 그의 새로운 시도로 인해 왼손은 코드의 변화만을 집어주고 대신 오른손... 비밥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은 재즈 피아노 연주의 새로운 패턴을 확립한 인물이다. 20-30년대까지 재즈 피아노 연주의 주류를 이루던 스트라이드 주법(랙타임에서 유래)은 그로 인해 왼손의 역할은 줄어들고 오른손이 연출하는 고난이의 연주 기교가 더욱 중시된다. 왼손으로 ‘움파-움파’하는 식으로 리듬을 만들어 주던 초기재즈-스윙 시대의 피아노 연주는 그의 새로운 시도로 인해 왼손은 코드의 변화만을 집어주고 대신 오른손으로 현란한 즉흥성을 강화시킨다. 비밥의 혁명을 주도했던 젊은 흑인 뮤지션들은 연주 전체를 누가 리드하느냐의 상관없이 밴드내 연주자 개개인이 동등하게 주목받길 원했고, 이를 위해선 악기 각자가 보다 강화된 솔로 연주를 필요로 했다. 버드 파웰은 스윙시대까지 색스폰과 트럼펫이 주 선율을 담당하고 리듬과 선율을 동시에 책임지던 피아노의 위상을 좀 더 ‘선율’에 비중을 두면서 피아노 연주는 색스폰과 트럼펫처럼 우렁차게 부각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재즈 피아노 연주 주법을 한껏 풍성하게 해준 인물이다. 또한 그는 피아노 트리오의 전형을 제시했다. 막스 로치(또는 로이 헤인즈)의 드럼, 토미 포터(토는 컬리 러셀)의 베이스로 구성된 그의 초기 트리오는 이후 등장할 재즈 트리오 연주 대중화의 시조 격이었다. 다시 말해 그가 없었다면 빌 에반스, 오스카 피터슨의 트리오 연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던 80-90년대 칙 코리아와 키스 자렛의 트리오 연주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전성기는 그러나 비밥의 출현이 있던 1945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로 다소 짧았다. 비밥 시대의 재즈 피아노 연주의 혁신자이자 동료였던 셀로니어스 몽크보다 초기엔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상습적인 마약 복용과 정신병까지 겹쳐 이후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 보이지 못하고 40대 초에 세상을 등지고 만다. 1924년 뉴욕 태생인 파웰은 이미 10살 때 팻츠 월러와 아트 테이텀의 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 신동이었다. 열 여덟 살이 되던 해 선배였던 몽크의 주선으로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찰리 파커, 찰리 크리스찬과 함께 연주 하게된다. 또한 당시 몽크가 몸담고 있었던 쿠티 윌리엄스 오케스트라에서도 참여하고,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콤비와 함께 1945-1947년까지 한솥밥을 먹는다. 당시 그의 독창적인 피아노 주법은 수많은 비밥 아티스트들이 ‘같이 연주하고 싶은 피아니스트 1순위’로 그를 격상시켰고, 일약 그는 비밥 피아노 연주의 대가로 자리를 굳힌다. 그러나 파웰은 당시 마약 중독자였고, 술과 마약으로 인해 온갖 트러블을 일으킨 탓에 경찰서를 자기 집 드나들듯이 했다. 여기에 정신병까지 도져 그는 이후에도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은 마약-정신병원으로 허비한다. 정신병원 퇴원 후인 1949년 그의 실질적인 첫 솔로 앨범 < The Amazing Bud Powell Vol.1.2 >와 이듬해 < The Genious Bud powell >을 각각 블루 노트사와 버브사에서 발표한다. 이 두 앨범은 그의 초기 연주 스타일을 잘 집약한 대표작들로서, 몽크와 ’Misty’의 주인공 에롤 가너(Eroll Garner)를 제외한 수많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비껴갈 수 없는 ‘재즈 피아노 연주의 고전’으로 자리 매김 한다. ‘Bouncing with bud’, ’Hallucination’, 몽크의 역작이기도 한 ’52nd street theme’, ‘Un poco loco’와 같은 곡만 들어봐도 그가 왜 비밥 피아노 연주의 대표격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전성기는 1953년에 정점에 다다르다가, 이후 잦은 마약 복용과 정신병원 신세로 급속하게 건강이 악화되면서 하향세로 급락했다. 1966년 세상을 뜰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동을 펼쳤지만 비밥 초기의 예리함은 점점 무뎌만 져갔고, 사람들 뇌리 속에서도 잊혀져만 갔다. 프리 재즈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Cecil Taylor)가 등장하기 전까지 파웰의 연주는 독보적이었다. 오른손의 자유자재로운 연주를 통해 그는 재즈 피아노 선율의 흥취를 배가시키며 재즈 피아노 연주의 위상을 한층 높여 놓는다. 버드 파웰의 피아노 연주는 비밥 피아노 연주자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도 같은 존재였다.
연주 : Sonny Rollins (소니 롤린스,Walter Theodore Sonny Rollins)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연주 : Cannonball Adderley (캐넌볼 애덜리 ,Julian 'Cannonball' Adderley)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연주 : Horace Silver (호레이스 실버)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노 연주자
100년이 조금 넘는 재즈 역사 속엔 ‘연주의 감동’을 창조한 대가들이 존재한다. 재즈 즉흥 연주를 창조한 루이 암스트롱, 스윙을 통해 재즈를 일약 미국 주류 대중음악 반열에 올려놓은 듀크 엘링턴, 비밥으로 재즈를 예술적인 경지로 부상시킨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쿨에서 출발해 모드를 거쳐 퓨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 스타일을 확립시킨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들이다. 앞에 언급된 대가들에 이어 다시 한번 재즈사... 100년이 조금 넘는 재즈 역사 속엔 ‘연주의 감동’을 창조한 대가들이 존재한다. 재즈 즉흥 연주를 창조한 루이 암스트롱, 스윙을 통해 재즈를 일약 미국 주류 대중음악 반열에 올려놓은 듀크 엘링턴, 비밥으로 재즈를 예술적인 경지로 부상시킨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쿨에서 출발해 모드를 거쳐 퓨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 스타일을 확립시킨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들이다. 앞에 언급된 대가들에 이어 다시 한번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연주자가 있다. 바로 색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다. 1955년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멤버로 활동하며 주류 재즈계에 등장한 그는 1967년 세상을 떠날기까지 10여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연주의 경지를 제시했다. 대표작 < Giant Step >(1959)을 통해 존은 ‘쉬트 오브 사운드’ 즉, ‘음의 덩어리’란 연주 방법을 창안해 재즈계를 경악케 했다. 순간적으로 4옥타브를 넘나드는 엄청난 기복의 연주와 16분음, 32분음과 같은 미분음을 연속해서 내는 ‘쉬트 오브 사운드’는 기존 비밥 즉흥 연주의 한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 기타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록 오케스트라를 창조한 지미 헨드릭스처럼 존 콜트레인은 색소폰을 통해 재즈가 펼칠 수 있는 연주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혀 놓은 셈이다. 하지만 ‘파괴의 정서’로 대변되는 이런 그의 연주가 이토록 지금까지 추앙받는 데엔 혁신적인 연주 그 이상의 무엇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 시대의 산물이란 말이 있듯, 존의 연주는 그가 한창 활동했던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의 혼란했던 미국 사회, 그리고 흑인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음악이 흑인 민권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사람들을 날려보내는 듯한 가슴 후련한 연주는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들의 아우성을 연상시켰다. 1963년 9월 15일 미국 알라바마 버밍험에 소재한 교회 내에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흑인 소녀 4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들의 장례식엔 음울한 장송곡 대신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와 샘 쿡의 ‘A change is gonna come’,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Alabama’가 그의 색소폰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 예술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증거이다. ‘Alabama’는 존 콜트레인이 당시 흑인들을 울분을 대변하는 의식 있는 아티스트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신께 헌정하는 앨범 < Love Supureme >(1964)으로 존은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며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인 대통령 후보자로까지 거론된다. 존 콜트레인은 음악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하진 않았지만 재즈를 연주하는 모든 흑인,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무의식 속엔 ‘재즈는 곧 흑인의 자부심’이란 가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드밥에서 시작해 프리 재즈로 뿌리내린 짧고 굵었던 음악 인생동안 그는 흑인만이 할 수 있는 연주의 영역을 부단히 개척했고 그 중심엔 가스펠, 다시 말해 흑인의 영혼인 블루스(Blues)가 멤돌고 있었다. 60년대 흑인들이 소울과 더불어 존 콜트레인의 연주에 애착을 갖는 건 블랙,즉 검은것의 자존심을 드높였다는 데에 있다. 1926년 9월 23일 노스캐롤라이나 햄릿에서 태어난 존 콜트레인은 음악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청소년시절 밴드부 클라리넷 연주를 배우며 당시 인기 상종가를 누리던 빅 밴드 리더 아티 쇼의 연주를 카피하며 재즈에 눈을 뜬다. 프로 뮤지션이 되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존은 1943년 지역 스윙 밴드 단원으로 일하며 프로 세계에 진출한다. 오른스타인 음악학교에 입학해 정규 음악교육을 받게 된 존은 1945년 해군에 징집돼 군복무중 해병대 군악대 ‘멜로디 마스터’에 배치되었고 군을 재대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존은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그라노프 스튜디오에서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의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된다. 1947년 군 재대 후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비밥 열풍에 동참하고 싶었던 존은 이때부터 테너 색소폰을 손에 쥐게 된다. 훗날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1949년 9월, 존은 비밥의 명인 디지 길레스피 빅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주류 무대에 도약할 기회를 얻은 그는 다른 명연주자의 스타일을 습득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특히 찰리 파커의 색소폰 연주는 그야말로 산 교과서였다. 존은 버드의 연주에 완전히 흡수돼 그처럼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였던 셈이다. 50년대 들어 경기는 호황이었지만 비밥 연주를 하는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생활은 어려웠다. 대중들은 캡 칼로우 웨이나 빅 조 터너의 알 앤 비 사운드나 프랭크 시나트라와 딘 마틴의 스탠다드 팝에 경도돼 흑인 비밥 뮤지션들이 설 자리를 빼앗아 갔다. 비밥을 연주할 공간을 찾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재즈의 명인들이 헤로인으로 하나 둘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찰리 파커는 이미 마약 중독이 위험수위에 올랐고 ‘쿨의 탄생’으로 비밥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던 마일스 데이비스도 기대 이하의 씁쓸한 반응을 삼키며 헤로인에 빠져 들고 있었다. 당시 인기를 누리던 알 앤 비 밴드였던 조니 호지스 밴드 투어에 합류해 비교적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존 콜트레인도 결국 얼마 못가 헤로인에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색소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게 된 존 콜트레인은 결국 1952년 조니 호지스 밴드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다시 3여년의 긴 내공 끝에 존 콜트레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 준건 다름 아닌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8년 전의 인연으로 존은 마일스가 조직한 퀸텟의 테너 색소폰 주자로 발탁돼 1955년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첫 앨범 < ’Round Midnight > 녹음에 참여한다. 마일스는 차분하고 부유하는 듯한 자신의 트럼펫 소리와 충돌해 긴장감을 조성해 줄 색소폰 연주를 찾았고 마침 활화산 같이 폭발적인 솔로를 구사하는 존 콜트레인 색소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56년 한 해 동안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멤버 자격으로 존 콜트레인은 < Workin’ >, < Steamin’ >, < Cookin’ >, < Relaxin’ > 과 같은 하드 밥 명반들을 프레스티지(Prestige)를 통해 연이어 발표한다. 마일스와 만나기 전까진 재즈계에서 무명이었던 존 콜트레인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멤버로 활동하며 명실상부 주류 음악 무대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이런 성공에 반해 헤로인 중독은 여전히 먹구름처럼 그를 괴롭혔다. 거기다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과 툭하면 연주 시간에 늦는 그의 불규칙한 생활로 퀸텟의 팀웍에 금이 가기 일쑤였다. 결국 리더인 마일스와의 심한 다툼 끝에 1956년 말, 존은 퀸텟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존은 그러나 평소 그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해오던 기인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선처에 힘입어 그의 밴드 멤버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존은 몽크와의 협연으로 리버사이드 레이블을 통해 총 4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 Thelonious Monk with John Coltrane >, < Thelonious himself >, < Monks Mood >, < Live at the five spot >이 그것들이다. 절제되고 명료한 톤의 연주를 선호했던 마일스와 달리 현란하고 다소 정돈되지 않은 듯한 스타일의 연주를 즐긴 몽크는 그야말로 존 콜트레인과 찰떡궁합이었다. 마일스와 존의 연주는 상극의 연주라면 몽크와 존의 연주는 상생하는 연주였던 셈이다. 몽크의 권유로 한번에 2-3개 음을 동시에 내는 연주기법도 이 때 등장한다. 둘의 협연은 6개월로 그쳤지만 몽크 덕분에 마일스는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재기의 의욕을 다진 존은 헤로인을 끊고 밴드를 결성해 독집 앨범을 준비해간다. 솔로 데뷔작인 < Coltrane >(1957)과 < Soul Trane >(1957)을 거쳐 초기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 Blue Train >(1957)을 발표하며 존은 ‘하드밥의 새로운 거목’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강한 느낌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성공적인 솔로 데뷔에 있은 지 얼마 후 존은 다시 마일스로부터 밴드에 와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존이 마일스에게 돌아왔을 땐 퀸텟이 아닌 섹스텟이 되어있었는데 알토 색소폰 주자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y)가 함께 연주한다. 존이 섹스텟 멤버로 발표한 < Milestone >(1958)은 모달 재즈(Modal)의 원형을 제시하며 코드 중심의 연주가 아닌 스케일 중심의 연주, 다시 말해 화음이 중심이 아닌 선율이 중심이 되는 패턴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의 작품이었다. 전 재즈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1959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이었다. 지금까지도 모던 재즈의 대표작으로 칭송되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 Kind of Blue >와 존 콜트레인의 < Giant Step >이 탄생됐기 때문이다. < Kind of Blue >의 녹음의 참여한 존은 ‘So What’과 ’All Blues’에서 역사상 가장 빛나는 테너 색소폰 연주를 남긴다. < Kind of Blue >의 녹음이 끝난 직후 존은 어틀랜틱 레코드사에서 < Giant Step >을 녹음한다. 폴 체임버스, 토미 플라나간, 윈튼 켈리, 지미 콥, 아트 테일러가 참여한 앨범은 ‘소리의 신기원’을 제시했다. 테너 색소폰만 하나만으로 존은 한번에 여러 개의 음계를 넘나드는 초절기교를 선보인다. 당시 재즈 평론가 이안 기틀러는 이런 콜트레인의 사운드를 일컬어 ‘음의 덩어리’(Sheet of Sound)라 명명했다. 몽크와의 협연을 계기로 오랜 실험 끝에 빛을 본 존의 이 혁신적인 연주스타일은 재즈의 표현 영역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와 함께 이후 등장할 많은 색소폰 연주자들이 넘어서야만 하는 절망(?)스런 과제를 남기게 된다. 이듬해 발표된 < My Favorite Thing >(1960)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스코어를 담당하게 될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왈츠곡 ‘My favorite thing’을 비롯해 조지 거쉰의 ’summertime’등 좀더 대중적인 배려가 돋보인 앨범이다. 또한 존은 이때부터 묵직한 테너 색소폰 대신 부드러운 선율을 만드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사용한다. 존은 자신의 연주가 좀더 덜 서구적인 것으로 비쳐지길 원했고 아랍이나 동양권의 관악기(가령 우리나라의 태평소)와 흡사한 소리를 내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적극 연주에 포함시킨다. 1961년 마일스 데이비스 섹스텟을 나온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정규 쿼텟을 조직한다. 이름하여 ‘존 콜트레인 클래식 쿼텟’으로 활동하게 되는 맥코이 타이너(피아노), 엘빈 존슨(드럼), 스티브 데이비스(베이스)는 이후 4년간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며 신생레이블이었던 임펄스!(Impulse!)를 통해 명연들을 남긴다. 콜트레인 쿼텟은 재즈에만 음악적 관심을 한정시키지 않고, 아프리카, 중동 등 3세계권 음악을 자신의 영향권에 뒀다. < Africa/brass >(1961)같은 앨범이 대표적인 예인데, 존은 당시 부상하고 있던 플릇/색소폰 연주자 에릭 돌피를 비롯해 11개의 브라스가 참여해 아프리카 토속리듬과 인도의 라가를 적극 도입했다. 이런 실험성 짙은 대작에 부담스러워 한 음반사는 존에게 좀 더 대중적인 재즈 연주 앨범을 만들어보길 권했고, 그 결과 나온 작품이 < Ballad >(1962)와 < Duke Ellington and John Coltrane >(1962)이다. < Ballad >에선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로 유명한 ‘Nancy’가 < Duke Ellington with John Coltrane >에선 ‘In a sentimental mood’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혀를 내 두르게 하는 격정적인 색소폰 연주는 아니었지만 < Ballad >와 < Duke Ellington with John Coltrane >은 존 콜트레인의 다른 어떤 음반보다 인기를 얻었다. 당시 흑인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민권운동은 1963년 극에 달했다. ‘버밍험의 전투’라고까지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그해 8월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가 나온 워싱턴 행진으로 이어졌다. 억압 속에 자유를 호소하는 노래였던 가스펠은 민권운동을 통해 감정 표현을 넘어서 흑인들의 유일한 무기가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아침 이슬과 6월 항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소울은 흑인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 수단 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흑인 가수들이 목소리 높여 소울을 들고 나왔다. 존은 신께 경배하는 연주로 흑인 민중의 민심을 반영했다. < Love Supreme >(1964)은 존 콜트레인이 주류 재즈 뮤지션으론 처음 신께 헌정하는 연주였다. 총 4부의 구성으로 진행되는 연주는 흡사 흑인교회 대중 집회를 연상시키는 고양감으로 넘실거린다. 그의 정규 쿼텟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 Love Supreme >은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들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며 소리 소문 없이 발매 1년 만에 50만장이란 판매고를 기록한다.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존의 자유의지는 결국 프리 재즈로 향한다. 오넷 콜먼이란 젊은 색소폰 주자가 들고 나온 이 무형식의 전위 재즈는 재즈계 내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존 콜트레인도 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미 존 콜트레인은 오넷 콜먼과 함께 연주했던 트럼펫주자 돈 체리와 함께 앨범 < The Avant Garde >를 1959년에 녹음했지만 당시 존의 소속사였던 어틀랜틱 레코드사가 1966년이 돼서 발표하는 바람에 1년 앞선 < Ascension >(1965) 그의 첫 프리 신고식이 됐다. 무한자유로의 질주는 결국 프리 재즈의 광기로 이어졌다.소음과 흡사한 음을 한번도 쉬지 않고 40분 이상 해내는 연주자는 당시까진 존이 유일했다. < Giant Step >과 < Love Supreme >의 연주를 원했던 팬들은 이미 괴물이 돼 버린 존의 음악성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난해한 연주기교와 멜로디의 부재는 대중성을 외면한 결과가 된 셈이다. 이 당시 수시로 복통을 호소했던 존은 급기야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더욱 창작에 열을 올렸고 1966년 녹음된 < Interstellar space >를 끝으로 존은 말기 간암판정을 받게 되고 급기야 1967년 7월 17일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은 재즈계에 예기치 않은 공백을 가져온다. 모든 에너지를 연주에 쏟아 넣었던 탓에 그를 능가할 재즈 뮤지션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더 이상 도전적인 연주가 없다 생각한 재즈계는 심지어 존 콜트레인 사후 ‘재즈는 죽었다’ 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의 공백은 재즈계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이렇게 갈피를 못 잡던 재즈계는 한창 부상하던 록 음악 열풍에 밀려 자꾸만 청중을 잃어갔다. 이런 상황에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와 록의 이종교배로 탄생된‘재즈 록 퓨전(Jazz Rock Fusion)’ 을 들고 나와 잃었던 대중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재즈계는 존 콜트레인을 종점으로 하는 ‘메인스트림’과 마일스 데이비스를 선두로 하는 ‘퓨젼’으로 나뉜다.
재즈 트럼펫 연주자 재즈 트럼펫 연주자
연주 : Trombone Shorty (트롬본 쇼티,Troy Andrews)
재즈 트롬본 연주자, 보컬 재즈 트롬본 연주자, 보컬
연주 : Chris Dave (크리스 데이브 )
재즈 드럼 연주자 재즈 드럼 연주자
멤버 : Chris Illingworth (Piano) Nick Blacka (Double Bass) Rob Turner (Drums) 멤버 :
Chris Illingworth (Piano)
Nick Blacka (Double Bass)
Rob Turner (Drums)
베이시스트 베이시스트
밴드 : Chris Dave and the Drumhedz (크리스 앤 더 드럼헤즈)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