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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영화 속 로큰롤 뮤직 (Rock 'N' Roll At The 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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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950년대 영화 속 로큰롤 뮤직 (Rock 'N' Roll At The Movies)

리틀 리차드,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버디 홀리, 제리 리 루이스 외

[ 3CD ]
Little Richard, Frankie Lymon & The Teenagers, Carl Perkins, Bobby Darin, Bill Haley 노래 외 3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Not Now | 2019년 02월 2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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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영화 속 로큰롤 뮤직 (Rock 'N' Roll At The Movie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2월 27일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The Girl Can't Help It - Little Richard
  • 02 Why Do Fools Fall In Love - Frankie Lymon
  • 03 Honey Don't - Carl Perkins
  • 04 Splish Splash - Bobby Darin
  • 05 Rip It Up - Bill Haley
  • 06 (You're So Square) Baby I Don't Care - Elvis Presley
  • 07 Cool It Baby - Eddie Fontaine
  • 08 Giddy Up A Ding Dong - Freddie Bell & The Bell Boys
  • 09 Ain't That A Shame - Fats Domino
  • 10 Johnny B. Goode - Chuck Berry
  • 11 Lonesome Train - Johnny Burnette
  • 12 Blast Off - The Tyrones
  • 13 La Bamba - Ritchie Valens
  • 14 Twenty Flight Rock - Eddie Cochran
  • 15 Party Doll - Buddy Knox
  • 16 Jailhouse Rock - Elvis Presley
  • 17 Great Balls Of Fire - Jerry Lee Lewis
  • 18 Book Of Love - The Monotones
  • 19 Rebel Rouser - Duane Eddy
  • 20 Made You - Adam Faith
Disc2
  • 01 Rave On - Buddy Holly
  • 02 Whole Lot Of Shakin' Going On - Jerry Lee Lewis
  • 03 Bony Moronie - Larry Williams
  • 04 Get A Job - The Silhouettes
  • 05 Dance To The Bop - Gene Vincent
  • 06 Chantilly Lace - The Big Bopper
  • 07 I'm Not A Juvenile Delinquent - Frankie Lymon & The Teenagers
  • 08 Memphis, Tennessee - Chuck Berry
  • 09 Charlie Brown - The Coasters
  • 10 Can't Hardly Stand It - Charlie Feathers
  • 11 A Teenager In Love - Dion & The Belmonts
  • 12 Tutti Frutti - Little Richard
  • 13 At The Hop - Danny & The Juniors
  • 14 Lipstick, Powder & Paint - Big Joe Turner
  • 15 Whole Lotta Loving - Fats Domino
  • 16 Sea Cruise - Frankie Ford
  • 17 Somethin' Else - Eddie Cochran
  • 18 Hound Dog - Elvis Presley
  • 19 The Big Beat - Fats Domino
  • 20 Jack The Ripper - Link Wray & His Ray Men
Disc3
  • 01 Rock Around The Clock - Bill Haley
  • 02 Bye Bye Love - The Everly Brothers
  • 03 You Better Know It - Jackie Wilson
  • 04 Glad All Over - Carl Perkins
  • 05 Don't Knock The Rock - Bill Haley & His Comets
  • 06 Summertime Blues - Eddie Cochran
  • 07 High School Confidential - Jerry Lee Lewis
  • 08 Maybellene - Chuck Berry
  • 09 Waitin' In School - Ricky Nelson
  • 10 Willie And The Hand Jive - Johnny Otis Show
  • 11 Oh, Boy! - Buddy Holly & The Crickets
  • 12 The Wanderer - Dion
  • 13 Your Daddy Wants To Do Right - Tommy Sands
  • 14 The Beat Girl Song - Adam Faith
  • 15 She's Got It - Little Richard
  • 16 Be Bop A Lula - Gene Vincent
  • 17 Mr. Lee - The Bobbettes
  • 18 Roll Over Beethoven - Chuck Berry
  • 19 Hard Headed Woman - Elvis Presley
  • 20 Rock & Roll Is Here To Stay - Danny & The Juniors

아티스트 소개 (38명)

노래 : Frankie Lymon & The Teenagers (프랭키 라이먼 앤드 더 틴에이저스)
노래 : Carl Perkins (칼 퍼킨스,Carl Lee Perkins)
컨트리, 로큰롤 기타 연주자, 보컬 컨트리, 로큰롤 기타 연주자, 보컬
노래 : Elvis Presley (엘비스 프레슬리)
얼마 전 폴 매카트니가 50년대 초기 로큰롤 역사에 헌정한 앨범 < Run Devil Run > 속지에는 이런 글이 들어있다. ‘로큰롤이 첫 반세기로 차츰 다가가고 있다. 멤피스의 선(Sun) 스튜디오로 한 트럭 운전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혁명의 끈을 풀어놓은 지 거의 50년이다. 스타에 정신이 팔린 수만의 10대들처럼 그가 처음 엘비스를 들었을 때 기회는 리버풀시 알레톤의 제임스 폴 매카트니에게도 던져졌다.’... 얼마 전 폴 매카트니가 50년대 초기 로큰롤 역사에 헌정한 앨범 < Run Devil Run > 속지에는 이런 글이 들어있다. ‘로큰롤이 첫 반세기로 차츰 다가가고 있다. 멤피스의 선(Sun) 스튜디오로 한 트럭 운전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혁명의 끈을 풀어놓은 지 거의 50년이다. 스타에 정신이 팔린 수만의 10대들처럼 그가 처음 엘비스를 들었을 때 기회는 리버풀시 알레톤의 제임스 폴 매카트니에게도 던져졌다.’ 오늘날 폴과 비틀스를 있게 한, 단 한사람의 영향을 꼽는다면 위 해설처럼 단연 트럭운전사출신 엘비스 프레슬리다. 존 레논은 이를 결정적 한마디로 축약한다. “엘비스가 나타날 때까지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무 것도 없다(Nothing affects me until Elvis)." 존과 폴이 만나서 처음 마음먹은 것은 사실 엘비스의 음악을 더 강하게 표출해내는 것일 뿐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로큰롤의 진정한 역사는 ‘시대의 풍운아’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개막되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된다. 물론 역사가에 따라 로큰롤의 효시를 행크 발라드(Hank Ballard)나 빌 헤일리(Bill Haley) 또는 척 베리(Chuck Berry)로 꼽기도 한다. ‘Work with me, Annie’ ‘Crazy man crazy’ ‘Maybellene’ 등과 같은 이들의 대표곡들이 시기적으로 먼저 구동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 다수 대중들은 여전히 로큰롤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엘비스가 나와서야 비로소 그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빌보드지의 결론. ‘1953년 록음악이 시작되었다고 하나 정작 차트나 방송에서 그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싱글 ‘Heartbreak hotel’이 연속 8주 넘버원에 머물면서부터였다.’ 초기 로큰롤은 척 베리나 버디 할리와 같은 탁월한 ‘작가’를 소유했다. 리틀 리처드나 제리 리 루이스라는 출중한 ‘배우’ 그리고 조 터너, 보 디들리와 같은 ‘음악감독’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로큰롤은 강풍을 휘몰아칠 역동적 ‘스타’가 필요했다. 그가 엘비스였다. 그 시대는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를 소화해줄 백인가수를 요구했고 엘비스는 백인대중들로부터 ‘저 친구는 백인이면서 왜 검둥이노래를 부르는 거야?’라는 의아함을 일으킬 만큼 탁월한 흑인감성의 보유자였다. 이러한 시의성은 그러나 일반의 인식처럼 56년 RCA 소속의 엘비스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고 이미 54년 선 레코드사의 엘비스로서 확립된 것이었다. 샘 필립스 사장의 전설적인 선 시절에 엘비스는 ‘That`s all right’, ‘Blue moon of Kentucky’ 와 ‘Mystery train’ 등을 부르면서 컨트리와 R&B를 크로스오버화한 신종의 로커빌리를 선보이면서 벌써 ‘웨스턴 밥의 왕’으로 불렸다. 이 때 이미 순회공연에서 팝 음악사상 초유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뉴스위크』는 ‘금세기 백년간의 스타’ 특집기사를 다루며 그의 등장을 ‘20세기의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당시 엘비스 백업 밴드에서 드럼을 쳤던 D.J. 폰타나는 54년 상황을 다음처럼 술회한다. “엘비스 무대가 끝나고 나면 노래를 따라해 줄 관객들은 다 빠져버려 아무도 없었지요. 애들은 백 스테이지에서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내 생각에 그 애들은 아마 우리 연주는 듣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오로지 ‘처음으로 흔드는 가수’ 엘비스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죠.” 로컬 무대에서 전국 네트워크 TV로 진출하면서 마침내 ‘엘비스마니아’는 폭발했다. 미국의 3대 전국 공중파 방송 ABC CBS NBC의 체제가 정립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그는 텔레비전시대의 영웅으로서 ‘라디오스타를 죽이는’ 새로운 미디어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타미와 지미) 도시 브라더스의 CBS < 스테이지 쇼 >, NBC의 < 밀턴 벌 쇼 >와 < 스티브 알렌 쇼 > 그리고 저 유명한 CBS의 < 에드 셜리번 쇼 >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벌써 음악의 영상시대를 주도했다. 음악이 음반으로만 소구하던 시대는 ‘섹시 가이’ 엘비스의 출현으로 끝났다. ‘보는 음악’ 시대를 주도한 최초의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비스였다. 스탠다드 팝의 파수꾼 프랭크 시내트라도 자기 TV 쇼의 떨어지는 시청률을 참다못해 ‘음악의 공적(公敵)’이라고 성토해마지 않았던 엘비스를 출연시켜야 했다. TV 뿐만 아니라 영화 최초의 로큰롤 스타도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 러브 미 텐더 > < 러빙 유 > < G.I. 블루스 > < 블루 하와이 > 등 31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관객들에게 로큰롤의 열정과 록 가수가 부르는 발라드의 호소력을 제공했다. 음반 텔레비전 그리고 영화라는 ‘삼국통일’에 성공하며 천하를 제패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아래로 보일 정도의 막강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77년 사망하면서 그의 캐리어가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그는 무려 2억5천만장의 앨범을 팔았다. 이 기록에 가장 접근한 인물은 비틀스가 아닌 2억장의 빙 크로스비(캐롤 ‘White Christmas’가 결정적이다)며 프랭크 시내트라는 겨우 4천만장에 불과했다. ‘1인 기업’ 엘비스는 막대한 돈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핑크를 포함한 갖가지 칼라의 자동차 캐딜락을 구입했고 멤피스에 4만 달러 짜리 목장 그리고 10만 달러로 저택 그레이스랜드를 샀다. 전용 비행기는 물론 텔레비전 세트 그리고 첨단기계들도 마련했다. 물론 지금이야 흔해 빠진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특히 엘비스와 같은 하층계급 청년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부의 상징들이었다. 동시대 그리고 후배가수들이 일개가수에서 기업으로 융기한 엘비스를 통해 신분상승과 스타덤 획득 욕구를 품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엘비스처럼 슈퍼스타이면서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어했다. 버디 할리는 엘비스를 빅 스타로서 존경했고 밥 딜런의 음악동기는 엘비스보다 큰(bigger than Elvis)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톰 존스는 아예 영국의 제록스판 엘비스였다. 엘비스처럼 구레나룻을 길렀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직접 그를 만나기 위해 그레이스랜드 담을 넘다가 제지당했고 그룹 퀸은 엘비스를 안중에 두고 50년대 로큰롤풍의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를 만들었다(로저 테일러의 증언 “처음으로 텔레캐스터와 부기 앰프를 쓴 다소 빈약한 사운드였다. 분명 엘비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었다.”). 마크 알몬드(Mark Almond)의 명쾌한 한마디를 들어보자. “그는 왕이다. 그밖에 다른 코멘트는 일체 필요없다!” 하지만 60년 전역 이후 엘비스는 달라졌다. 매니저였던 톰 파커 퇴역대령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음악방향이 빗나간 것이었다. 예의 로큰롤 넘버와는 거리가 먼 It`s now or never나 Surrender와 같은 감상적인 이탈리아 민요를 영역해 불렀다. 변화(아니면 변신?)의 징조는 프랭크 시내트라 쇼에 출연했을 때 뚜렷이 나타났다. 이 쇼에서 엘비스는 스탠다드 가수의 상징인 턱시도 정장을 했으며 호스트 프랭크 시내트라와 서로의 대표적 히트곡인 ‘Witchcraft’와 ‘Love me tender’를 바꿔 불렀다. 이 시점을 계기로 엘비스가 로큰롤을 버리고 스탠더드 팝 가수로 돌아서 청춘진영을 배신했다는 주장이 고개를 비집는다. 명백한 훼절이라고 단정해도 선뜻 반대논리를 펴기 어렵다. 그러나 친(親)엘비스 측은 그로써 그가 로큰롤 가수에서 ‘국민가수’로 승격하는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기게 됐다고 반박한다. 로큰롤만의 논리로 음악을 풀고 엘비스를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느냐는 것은 관련자의 이데올로기나 각 시대의 성격에 따를 수밖에 없다. 변절이든 성숙이든 이 점만은 분명하다. 엘비스의 보컬이 초기의 로큰롤가수로 한정되었을 때 과연 후대에의 보컬 영향력을 소지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가창력은 음역, 에너지, 통제력, 피치 등 모든 면에서 압권으로 평가되어왔다.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지만 ‘멀티칼라’인 그의 보이스에는 자니 레이의 급격한 변색, 두왑 그룹인 잉크스파츠(Inkspots) 빌 케니의 테너, 딘 마틴의 솜사탕 그리고 마리오 란자의 풍미가 동거했다. 그러면서도 로이 오비슨과 같은 유니크한 개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스탠더드 발라드를 소화함으로 해서 우리들은 ‘Are you lonesome tonight’, ‘Suspicion’, ‘In the ghetto’, ‘The wonder of you’, ‘Fool’, ‘My boy’ 등의 팝 고전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명백한 역사의 유산이다. 그가 없었다면 성악가나 스탠더드 가수가 부르는 발라드만을 접했을 것이고 로큰롤 싱어가 선사하는 발라드의 진미(珍味)를 영원히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로큰롤과 스탠더드의 공존공영 가능성을 그처럼 실감나게 시범한 가수도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이미 흑인감성의 전달로 로큰롤이 ‘흑백의 퓨전’임을 목소리 하나로 입증한 그는 이어서 역시 매직 보컬로 로큰롤과 스탠더드의 제휴를 일궈내는 업적을 남겼다. 어쩌면 우리가 70년대 록과 메탈 분야에서 형식을 확립한 이른바 ‘록발라드’라는 것도 그 원조는 엘비스일지도 모른다. 엘비스는 목소리를 통해 대중의 공감대를 전달한 몇 안 되는 가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건조한 보이스와는 거리가 먼, ‘이끼가 잔뜩 낀’ 풍부한 목소리였다. 아마 신나는 로큰롤 ‘Burning love’ 한 곡으로도 충분히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후대 음악팬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더러 ‘느끼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후반기의 노래 가운데는 그런 요소를 풍기는 곡이 있었다. 하지만 엘비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거기서 느끼함이 아닌 되레 ‘풍성한 감성’을 수혈 받곤 한다. 미트 로프(Meat Loaf)는 말한다. “엘비스는 노래하는 것 무엇이든지 감정적으로 가사로 스피릿을 감상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희구했던 명성과 부를 얻고 난 뒤 아쉽게도 그것들의 노예가 되는 비극적인 위인이기도 했다. 아무 데도 나갈 수가 없었고 편안히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했다. 60년대나 70년대 로커였다면 이런 사실상의 ‘수감생활’을 극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래적 반항아’가 아니었다. 스타덤의 고독과 소외에 차츰 무너져간 그의 말년을 잘 나타내주는 일화는 무수히 많다. 70년대 들어서 조울증이 불거진 그는 때로 격렬해져 텔레비전 세트나 당구대, 주크박스, 자동차 등 가장집기를 부수는 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 D.J. 폰타나와 그의 아내 앞에서 엘비스는 자신의 감정상태를 이렇게 토로했다. “당신들은 운이 좋은 겁니다. 난 엘비스인게 너무 지겨워요! 뭘 해야될 지를 모르겠어요. 뭔가 딴 일을 했으면 제발 한이 없겠어요.” 고고음악의 대명사인 자니 리버스의 해석. “엘비스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지요. 그래야만 했을 겁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그 밖의 다른 일이란 없었지요.” 엘비스만큼 화려한 명성과 처절한 고독이라는 양극단을 겪은(아니면 겪기로 강제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영욕의 교차요, 희비의 쌍곡선이다. 그래서 그를 통해 우리는 슈퍼스타덤의 빛 외에 냉혹함과 잔인성이라는 그림자를 동시 확인한다. 그의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심장마비로 발표되었지만 사후 마약중독 비만증 그리고 자살 등 정황에 근거한 갖가지 설들이 난무했다. 이는 그의 후반기 삶이 얼마나 철저히 비공개로 갇혀 있었는지를 반증한다. 스스로 창조한 혁명에 쓰러진 순종파 가수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비평에 의해 그의 역사적 위상이 훼손되는 일은 없다. 여전히 그는 만인이 공감하는 ‘킹 오브 로큰롤’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금세기 최고 가수’다. 비틀스가 그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한마디로 모든 엘비스의 가치는 입증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류로 더러 지적되지만 비평가 고(故) 레스터 뱅스(Lester Bangs)의 엘비스 예찬은 되새길 가치가 있다. “우리는 엘비스에게 해준 것과 같은 동의를 앞으로 어떤 누구에게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
192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태어난 척 베리(Chuck Berry)는 록앤롤(Rock & Roll)의 태동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컨추리풍의 곡들을 멋지게 써내며 흑인음악이었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음악이었던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을 ’록앤롤’이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켰다. 당시 이름... 192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태어난 척 베리(Chuck Berry)는 록앤롤(Rock & Roll)의 태동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다. 그는 흑인이면서도 컨추리풍의 곡들을 멋지게 써내며 흑인음악이었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음악이었던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을 ’록앤롤’이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켰다. 당시 이름만 존재할 뿐 실제적인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록앤롤이라는 장르가 척베리에 의해 정립되면서 이후 1950-1960년대 수많은 록앤롤 밴드들이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살 때부터 기타를 치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그였지만 그의 20대는 미국의 1940-1950년대를 살았던 다른 흑인들처럼 흑인 노동자의 삶에 머물러 있었다.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룹을 결성한 척 베리는 클럽에서 보컬 및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951년부터 1955년까지 클럽에서 알앤비와 록앤롤이 혼합된 사운드에 스탠다드풍의 보컬을 섞어 들려주며 인기를 높여가던 그는 1955년 정식으로 데뷔한다. 체스터 레코드사의 레너드 체스 사장은 그의 노래 ’Ida May’를 듣고 그 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곡명을 ’Maybellene’으로 바꾼 후 레코드로 정식 발매했다. 이 곡은 미국 알앤비 차트 정상에 오르고 전미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1960년까지 척 베리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Roll over Beethoven’(후에 비틀즈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졌다.), ’School days’, ’Johnny b. goode’(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파티 장면에 주인공이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삽입되어지기도 했던 이 곡은 4박의 개념을 깨는 폴리 리듬을 도입하여 록 기타주법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Little Queenie’, ’Sweet little sixteen’, ’Surfin’ U.S.A.’(비치보이스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1961년 최고의 인기와 음악적 명성을 누리던 그는 ’미성년자 추행’ 혐의로 20개월 간 복역하는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된다. 개인적인 실수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인기는 떨어지게 되고 복역 이후 좋은 곡들을 많이 작곡하며 차트에도 여러 곡들을 올려놓지만 1960년대 쏟아져 나온 수많은 록앤롤 밴드들에게 록의 주도권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이후 1972년 < The London Chuck Berry Sessions >에서 ’My ding-a-ling’을 히트시키는 데 그쳤지만 록 음악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과 업적은 인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 ’척 베리가 있었기에 비틀즈가 존재했다’는 후대의 평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록음악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위상과 업적은 수 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을 것이다.
노래 : Eddie Cochran (에디 코크란,Ray Edward Cochran)
미네소타주(州) 앨버트 리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레이 에드워드 코크런(Ray Edward Cockran)이다. 1950년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주로 옮겼으며 1954년에는 행크 코크런(Hank Cochran)과 함께 코크런 브라더스(the Cochran Brothers)를 결성하여 컨트리뮤직을 주로 불렀다. 1956년에 처음으로 로큰롤곡인 《스키니 짐 Skinny Jim》을 녹음하였으며 이후 《더 걸 캔트 헬프... 미네소타주(州) 앨버트 리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레이 에드워드 코크런(Ray Edward Cockran)이다. 1950년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주로 옮겼으며 1954년에는 행크 코크런(Hank Cochran)과 함께 코크런 브라더스(the Cochran Brothers)를 결성하여 컨트리뮤직을 주로 불렀다. 1956년에 처음으로 로큰롤곡인 《스키니 짐 Skinny Jim》을 녹음하였으며 이후 《더 걸 캔트 헬프 잇 The Girl Can't Help It》(1956), 《언테임드 유스 Untamed Youth》(1957), 《고 자니 고 Go Johnny Go》(1959) 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다.

첫 히트곡인 《시틴 인 더 발코니 Sittin' in the Balcony》(1957)에 이어 힘찬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담은 《서머타임 블루스 Summertime Blues》(1958)와 《크몬 에버리바디 C'mon Everybody》(1958)는 초기 록의 완벽한 본보기로 꼽힌다.

인기가 절정이던 1960년 영국 순회공연 도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유일한 앨범인 《싱인 투 마이 베이비 Singin' to My Baby》는 그가 죽기 몇달 전에 녹음한 것으로 그 속에 수록된 《스리 스텝스 투 헤븐 Three Steps to Heaven》은 그가 죽은 뒤 영국에서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노래 : Jerry Lee Lewis (제리 리 루이스)
노래 : Duane Eddy (듀에인 에디 )
트왱(Twang) 사운드를 개발하여 조지 해리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포함한 후배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준 락 기타리스트 트왱(Twang) 사운드를 개발하여 조지 해리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포함한 후배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준 락 기타리스트
노래 : Adam Faith (아담 페이스)
Listen To Me : Buddy Holly 1959년 2월 3일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와 빅 바퍼 리차드슨 주니어 (The Big Bopper Richardson Jr)와 함께 스물 두 살의 천재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영원한 별이 된 그날을 일컬어 돈 맥클린(Don McLean)은 "음악이 숨을 거둔 날(The Day Music Has Died)"라고 말했다. 수많은 로큰롤의 별들이... Listen To Me : Buddy Holly
1959년 2월 3일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와 빅 바퍼 리차드슨 주니어 (The Big Bopper Richardson Jr)와 함께 스물 두 살의 천재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영원한 별이 된 그날을 일컬어 돈 맥클린(Don McLean)은 "음악이 숨을 거둔 날(The Day Music Has Died)"라고 말했다. 수많은 로큰롤의 별들이 명멸해 갔지만 버디 홀리가 숨을 거둔 그날 음악도 죽었다라고 일컬을 만큼 버디 홀리가 남겨준 유산은 그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2011년 9월 7일 그의 75회 생일을 맞아 발매된 이 앨범은 일주일 간격으로 Rave On(Fantasy/Concord)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또 한 장의 트리뷰트 앨범과 함께 그가 뿌려준 음악적 세례에 대한 수혜자들의 즐거운 음악적 고백들이다. 특히 이 앨범을 제작한 피터 애셔(Peter Asher)는 그의 영국판 카피캣이었던 피터 & 고든 (Peter & Gordon)의 바로 그 인물이란 점에서 그가 평생 동안 가져왔던 그의 음악적인 멘토였던 버디 홀리에 대한 뒤늦은 감사의 표시이다.

1957년 데뷔해서 1959년 2월 사망하기까지 불과 18개월 동안 세 장의 앨범과 남겨 놓은 명곡들은 그의 음악적 인생을 반추해 보기엔 너무나 작은 숫자이지만, 그가 남겨준 음악적 영향력은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너무도 명백해 보인다. 음악적으로 두 대의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라는 록밴드의 전형을 제시한 그는 외향적으로도 결코 록큰롤이 반항의 음악만이 아니었음을 그의 스타일로 입증했다. 엘튼 존에서 존 레논에 이르기까지 그의 외모가 결코 록스타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보여주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심지어 비틀즈의 이름 역시 그의 밴드 크리켓츠(귀뚜라미들)에서 따왔으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첫 레코딩 역시 버디 홀리의 That'll Be The Day 였으며, 롤링 스톤즈의 최초의 히트곡도 Not Fade Away 였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적 영향력이 비트와 모드세대 전반을 걸쳐 록큰롤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비틀즈(Words of Love)에서 롤링 스톤즈(Not Fade Away)에 이르는 브리티쉬 인베이젼에서부터, 제임스 테일러(Everyday)에서 돈 맥클린(Mayby Baby) 등의 싱어송라이터뿐 아니라. 험블 파이 (Heartbeat), 이레이져 (True Love Ways). 그레이트풀 데드 (Not Fade Away), 블론디 (I'm Gonna Love You Too), 블라인드 페이스 (Well All Right), 모터헤드(Love's Made a Fool of You) 등 다양한 장르의 록밴드들의 음악적 자양분의 근간에 그의 음악이 있었던 점은 지난 오십년 간의 역사를 넘어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평가 받을 것이다.

이 앨범에 참여한 폭넓은 스펙트럼의 아티스트들 링고 스타와 브라이언 윌슨과 같은 동시대의 뮤지션에서부터, 록의 다양성을 펼쳐낸 스티비 닉스(Fleetwood Mac), 잭슨 브라운, 제프 린(E.L.O), 린다 론스태트를 거쳐 크리스 아이작, 나탈리 머천트(10000 Maniacs), 팻 모나한(Train), 더 프레이, 패트릭 스텀프(Fall Out Boy), 주이 데샤넬, 이멜다 메이에 이르기 까지 그의 음악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며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한 장의 음반에서 감동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이 앨범이 참여한 거의 모든 아티스트에 그래이엄 내쉬, 폴 앵카, 키쓰 리차드와 보즈 스캑스 등의 슈퍼스타가 모두 모여 그의 75주년 생일이었던 2011년 9월 7일 헐리우드의 뮤직 박스 씨어터에서 성대한 축하공연이 열려 더욱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속에 녹아든 그의 음악의 다양한 일면들은 그의 음악이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한 생명력으로 이 시대의 팝음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 시켜준다.

그리고 잭슨 브라운은 돈 맥클린의 말에 대해 이렇게 화답했다.
"그날은 음악이 죽은 날이 아니다. 바로 음악이 불멸의 날이 된 날이다."
노래 : Larry Williams (래리 윌리엄스)
멤버 : Richard "Rick" Lewis, tenor / Bill Horton, lead / Earl T. Beal, baritone / Raymond Edwards, bass / John "Bootsie" Wilson, lead 멤버 : Richard "Rick" Lewis, tenor / Bill Horton, lead / Earl T. Beal, baritone / Raymond Edwards, bass / John "Bootsie" Wilson, lead
멤버 : 칼 가드너(Carl Gardner), 빌리 가이(Billy Guy), 윌 덥 존스(Will Dub Jones), 코넬리우스 건터(Cornelius Gunter) 멤버 : 칼 가드너(Carl Gardner), 빌리 가이(Billy Guy), 윌 덥 존스(Will Dub Jones), 코넬리우스 건터(Cornelius Gunter)
노래 : Charlie Feathers (찰리 피더스,Charles Arthur Feathers)
노래 : Dion & The Belmonts (디온 앤 더 벨몬츠)
노래 : Big Joe Turner (빅 조 터너,Joseph Vernon Turner Jr.)
블루스 피아니스트, 가수 블루스 피아니스트, 가수
노래 : Everly Brothers (에벌리 브라더스)
컨트리 음악 성향의 로커빌리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황금 형제듀엣. 형 돈 에벌리(Don Everly)는 1937년 켄터키주 브라우니 출생이고, 동생 필 에벌리(Phil Everly)는 1939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가수였던 부모와 함께 어릴 적부터 노래했고 컨트리의 본고장 내시빌에서 기타의 대가 쳇 애트킨스(Chet Atkins)에 초청되어 1955년에 첫 레코딩을 했다. 2년 뒤 소규모 음반사 케이던스와 계... 컨트리 음악 성향의 로커빌리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황금 형제듀엣. 형 돈 에벌리(Don Everly)는 1937년 켄터키주 브라우니 출생이고, 동생 필 에벌리(Phil Everly)는 1939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가수였던 부모와 함께 어릴 적부터 노래했고 컨트리의 본고장 내시빌에서 기타의 대가 쳇 애트킨스(Chet Atkins)에 초청되어 1955년에 첫 레코딩을 했다. 2년 뒤 소규모 음반사 케이던스와 계약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Bye bye love’, ‘All I have to do is dream’, ‘Bird dog’, ‘Cathy’s clown’ 등 빅 히트송이 줄을 이었다. 낭만적인 멜로디를 전하는 두 형제의 하모니가 압권. 1960년대의 사이먼 & 가펑클(Simon & Garfunkel) 등 많은 듀엣 팀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둘 사이가 나빠서 1973년에 해산했고 10년이 흐른 1983년에 재결합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Let it be me’, ‘Crying in the rain’ 등이 널리 애청되었다.
노래 : Jackie Wilson (재키 윌슨,Jack Leroy Wilson Jr.)
노래 : Bill Haley & His Comets (빌 헤일리 앤 히즈 커밋츠)
로큰롤 밴드 로큰롤 밴드
노래 : Ricky Nelson (리키 넬슨,Rick Nelson)
노래 : Buddy Holly & The Crickets (버디 홀리 & 더 크리켓츠)
Buddy Holly (기타), Jerry Allison (드럼), Niki Sullivan (기타), Joe Mauldin (베이스) 로 구성된 미국 로커빌리 밴드 Buddy Holly (기타), Jerry Allison (드럼), Niki Sullivan (기타), Joe Mauldin (베이스) 로 구성된 미국 로커빌리 밴드
노래 : Dion (디온,Dion DiM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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