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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7080 대학가요제 & 애창곡베스트 70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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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SB] 7080 대학가요제 & 애창곡베스트 70곡

본 상품은 CD가 아니며, USB 앨범 입니다.

정원찬, 이영복, 조진원, 홍서범, 김정선 노래 외 4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서울미디어 (음반) | 2019년 01월 17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6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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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7080 대학가요제 & 애창곡베스트 70곡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9년 01월 17일
시간, 무게, 크기 7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USB
  • 01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 정원찬
  • 02 그대로 그렇게 - 정원찬
  • 03 젊은 미소 - 이영복
  • 04 연 - 조진원
  • 05 불놀이야 - 홍서범
  • 06 모두 다 사랑하리 - 김정선
  • 07 나 어떡해 - 김창훈
  • 08 구름과 나 - 고상록
  • 09 탈 춤 - 이응수
  • 10 꿈의 대화 - 이범용, 한명훈
  • 11 바다에 누워 - 박해수
  • 12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이응수
  • 13 홀로된 사랑 - 안현진
  • 14 젊음의 노트 - 장경수
  • 15 밤에 피는 장미 - 김판수
  • 16 해변으로 가요 - 이철
  • 17 생일 - 민재홍
  • 18 사랑했지만 - 한동준
  • 19 사랑이 지나가면 - 이영훈
  • 20 그것만이 내 세상 - 최성원
  • 21 너에게로 또다시 - 박주연
  • 22 난 바람 넌 눈물 - 신현대
  • 23 옛사랑 - 이영훈
  • 24 사랑하고 있어요 - 전현철
  • 25 거리에서 - 김창기
  • 26 걱정 말아요 그대 - 전인권
  • 27 묻어버린 아픔 - 김진룡
  • 28 Bravo my life - 김종진
  • 29 비처럼 음악처럼 - 박성식
  • 30 세월이 가면 - 최명섭
  • 31 청춘 - 김창완
  • 32 이별 아닌 이별 - 오태호
  • 33 그 때 그 사람 - 심수봉
  • 34 유리창엔 비 - 이정한
  • 35 이 어둠의 이 슬픔 - 김영수
  • 36 새벽 기차 - 이두헌
  • 37 젊은 그대 - 안양자
  • 38 참새와 허수아비 - 박철
  • 39 젊은 연인들 - 방희준
  • 40 J에게 - 이세건
  • 41 갯 바위 - 강영철
  • 42 눈물 한 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 - 정의용
  • 43 첫 눈이 온다 구요 - 김정신
  • 44 님에게 - 이주호
  • 45 내게도 사랑이 - 함정필
  • 46 내가 - 김학래
  • 47 그대에게 - 신해철
  • 48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 박광현
  • 49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 이영훈
  • 50 민들레 홀씨 되어 - 김정신
  • 51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김창기
  • 52 그대 그리고 나 - 정현우
  • 53 제주도의 푸른 밤 - 최성원
  • 54 혜화동 - 김창기
  • 55 먼지가 되어 - 송문상
  • 56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 이두헌
  • 57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 이지영
  • 58 사랑은 유리 같은 것 - 최명섭
  • 59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 전영록
  • 60 매일 그대와 - 최성원
  • 61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 함경문
  • 62 한동안 뜸했었지 - 이장희
  • 63 돌고 돌아가는 길 - 김욱
  • 64 그대 먼 곳에 - 박형국
  • 65 봄 여름 가을 겨울 - 김현식
  • 66 장미 - 이장희
  • 67 얼룩진 사랑 - 김범용
  • 68 사랑이여 - 최용식
  • 69 촛불 - 정태춘
  • 70 옛 시인의 노래 - 이경미

아티스트 소개 (47명)

우리 대중 음악계에서 조용하게 꾸준한 인기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동준(1967년)은 광운대가 주최했던 월계가요제에서 만난 사람들인, 가수 겸 건축가로 유명한 양진석, 변진섭의 데뷔 앨범으로 이름을 알린 지근식, 김한년 등과 1986년 노래그림이라는 어쿠스틱 밴드를 조직하여 라이브 위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솔로 데뷔는 1991년 김광진의 솔로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 대중 음악계에서 조용하게 꾸준한 인기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동준(1967년)은 광운대가 주최했던 월계가요제에서 만난 사람들인, 가수 겸 건축가로 유명한 양진석, 변진섭의 데뷔 앨범으로 이름을 알린 지근식, 김한년 등과 1986년 노래그림이라는 어쿠스틱 밴드를 조직하여 라이브 위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솔로 데뷔는 1991년 김광진의 솔로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라는 곡으로였다. 그의 특징은 댄스가수들이 이룩하곤 하는 냄비성 인기와는 달리 큰 주목을 끌지는 못하지만 라디오와 소문으로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한다는 것인데, 이 것의 시작은 바로 데뷔앨범 때부터였다. 그의 데뷔 앨범에는 노래 그림 멤버들인 지근식과 김한년이 각각 한 곡씩 만들어주었으며 주로 조동익, 박용준이 편곡을 담당했다. 1993년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앨범은 그의 앨범 중에는 최고의 완성도를 인정받는 작품이다. ‘처음 받은 느낌으로’, ‘파블로’와 같은 곡을 만든 김광진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김광석에게 ‘사랑했지만’이라는 곡도 만들어 주었던 한동준 자신이 만든 ‘너를 사랑해’가 드디어 터졌으며 박인영이라는 하나음악의 진주를 ‘내 안에 있는 그대’라는 곡으로 세상에 알린 앨범이다. 그는 많은 판매고를 올리며 그의 이름을 당당히 가요 차트에 올렸지만 같은 해 10월 학전소극장에서 공연을 가진 후 성대에 이상이 생겨 활동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후유증으로 ‘너를 사랑해’와 더불어 5대 결혼 축가의 하나인 ‘사랑의 서약’이 수록된 3집을 1995년 5월에 발표했으나, 성대에 이상이 있는데도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해 성대결절로 악화되었고 새 앨범에 대한 홍보활동도 제대로 못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동안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던 그는 1998년 조동진. 장필순 등과 1990년대 초반에 만들었던 독립레이블 하나음악을 결성하고 호암아트홀에서 합동콘서트를 가졌다. 그들이 초창기에 만들었던 < 하나옴니버스 >와 같은 컴필레이션 음반인 < 겨울노래 > 등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같은 해 ‘날 울게 한 그대’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한 바 있는 권혁진과 엉클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한다. 포크와 모던록을 결합해 서정적이면서 따뜻한 음악을 지향한 이 앨범은 한동준의 부드러운 음색과 리차드 막스(Richard Marks)같은 권혁진의 허스키한 폭넓은 음색이 어우러져 두텁고 탄탄한 노래들을 들려준다. 약간은 산만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둘의 음악을 서로 합치려는 노력과 복고적인 편곡 때문인데, 프로젝트듀오라고 뭉쳐놓고 음반에서는 따로따로 각자의 스타일을 표방하는 옴니버스식 앨범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둘은 유재하 추모 앨범에서 ‘비애’라는 곡을 같이 부르기도 했다. 한편 그는 CCM계에서 동료 가수들과 < 빛으로 모두 함께 >, < 지구촌 굶주린 이웃을 위한 밀알 프로젝트 앨범 > 등과 같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조동익이 음악을 맡은 < 내 마음의 풍금 >이라는 영화에서는 장필순과 같이 타이틀곡을 불렀다. 또한 김현식 추모 앨범에서 ‘우리 처음 만난 날’이라는 곡을, 김광석의 앤솔로지 앨범에서는 ‘나의 노래’를 불러 동료 가수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과시했다. 그는 하나음악이 주관하는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의 심사 위원을 맡는 등 최근에는 하나음악의 재건에 힘쓰고 있으며 불교 방송, CBS, SBS, MBC 등에서 라디오 DJ를 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고 1997년에는 < 음악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책도 펴냈다.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아버지 최영섭에게서 탁월한 작곡 능력을 부여받은 최성원은 한 때 기타리스트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했으며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CM송을 작곡하거나 음반 제작에 관여하며 신촌의 < 모노 >라는 카페에서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던 전인권, 허성욱 등을 만나 들국화를 결성하게 된다. 이미 < 우리 노래 전시회 >을 기획하며 뛰어난 곡들을 발표한 그는 그룹 들국화에서 음악 감독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아버지 최영섭에게서 탁월한 작곡 능력을 부여받은 최성원은 한 때 기타리스트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했으며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CM송을 작곡하거나 음반 제작에 관여하며 신촌의 < 모노 >라는 카페에서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던 전인권, 허성욱 등을 만나 들국화를 결성하게 된다. 이미 < 우리 노래 전시회 >을 기획하며 뛰어난 곡들을 발표한 그는 그룹 들국화에서 음악 감독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해체 후에도 동아 기획에서 나오는 여러 가수들의 음반에 갖가지 형태로 참여하며 음악 기획자의 면모를 다진다. 전인권이 먼저 솔로 앨범을 발표 한데 이어 들국화의 멤버로서는 2번째로 음반을 내놓은 그는 보컬 면에서는 전인권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야성의 목소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성과 가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응수한 그의 멜로디들은 낭만적인 소재의 노스탤지어 안에서 완벽한 훅들로 채워져 있으며, 또한 확고한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전인권은 모든 곡을 목소리만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지녔다면, 최성원은 아름다운 곡들과 거기에 어우러진 편곡, 아기자기한 가사들로 새로운 지휘자의 지평을 열었다. 이것은 들국화 시절부터 계속 화제 거리가 된 두 뮤지션의 비교 우위적 관점이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존 레논(John Lennon)의 경우처럼 자주 회자되는 두 개인의 능력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최성원의 첫 번째 앨범은 전곡이 사랑을 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별이란 없는 거야’를 필두로 ‘제주도의 푸른 밤’이 심야의 라디오를 강타했으며 ‘이제는’, ‘난 이제’ 등이 최성원의 여린 음성으로 전해졌다. 이 앨범은 한 번 들으면 계속 찾게되면 마약과 같은 멜로디들로 가득 차 있으며 최성원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결정체들로 곳곳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다. 여러 가수들의 음반을 기획하며 제작하던 최성원은 1990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1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프로듀싱하고 전곡을 만든 그는 과거에 강인원에게 주었던 ‘어린 왕자’를 리메이크해서 우주인으로 생각되는 인물의 나레이션을 집어넣었고 타이틀곡인 ‘솔직할 수 있도록’은 TV에 얼굴 한번 나가지 안았지만, 다운타운이나 라디오의 차트에서는 높은 순위에 랭크되며 그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 앨범에서는 팬들에게 ‘니 앞에서만’이 사랑을 받았고 주찬권의 곡을 리메이크한 ‘가자 바다로’ 등이 주목을 받았다. 단 두 장밖에는 솔로 음반이 나오지 않았지만, 최성원의 곡들은 후에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으며 < 들국화 트리뷰트 > 앨범에서도 동물원, 언니네 이발관 등이 불러 들국화 못지 않은 영향력을 떨쳤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후 패닉, 테라, 박주연 등의 음반을 제작하며 제작자로 더 명성을 날린 최성원은 전인권, 주찬권과 다시 손을 잡고 들국화의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Biography 1987년 ‘임지훈 1집’에 '사랑의 썰물‘을 작곡하였고, 김창기는 1988년 동물원으로 데뷔했다. 1997년 동물원 7집까지 활동한 김창기는 이후, 1997년에는 이범용과 함께 ‘창고’를, 200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1집앨범 ‘하강의 미학’을 발표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어, 격동이 없는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그가, 13년만에 음악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을 ... Biography
1987년 ‘임지훈 1집’에 '사랑의 썰물‘을 작곡하였고, 김창기는 1988년 동물원으로 데뷔했다. 1997년 동물원 7집까지 활동한 김창기는 이후, 1997년에는 이범용과 함께 ‘창고’를, 200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1집앨범 ‘하강의 미학’을 발표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어, 격동이 없는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그가, 13년만에 음악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는 머리 속을 삶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들로 들쑤셔놓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헤집고, 흔들리고 괴로워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김창기의 2집 ‘내 머리속의 가시’이다. 김창기가 말한다. 2집 앨범 ‘내 머리속의 가시’... 또 실패할까봐, 즉,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들이 될까봐 두려웠다. 노래를 만들지 않아도 나의 삶은 순조롭게 살아졌기에 내 욕망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새로운 노래들을 만들어 혼자 가지고 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거리에서’, ‘널 사랑하겠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딸 아이가 의문을 제기했다. 왜 이제는 노래를 만들지 않느냐고.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가 치료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찾아나서라고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사실은 두려워서 회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억지 춘향이식으로 용기를 냈다. 사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을 해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던 것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억지로 하루에 한곡씩을 만들었고, 결국 하루에 노래 하나씩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물들이 이번 음반에 실린 곡들이다. 내 머리 속에서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풀어내려 했다. 나는 가르치거나 설득하는 노래는 만들지 않으려 한다. 대중가요는 대중가요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현실들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풀어내려 노력했고,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노래의 틀을 빌리는 것이었다. 만들어 놓은 노래들을 대상의 상실에서 그로부터 회복해 나오는 과정으로 배치하였다. 상실, 부정, 분노, 거래, 우울, 수긍의 순으로.

지금은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뮤지션으로서도 다시 곡을 만들고 무대에 서고 있다. [김창기 정신과 의원] 원장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외래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외래교수이다.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 1987년 미국 공연을 끝으로 들국화의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최구희는 괴짜들을 재결성 하여 앨범을 발표했고 주찬권은 믿음소망사랑을 결성했다. 최성원과 손진태는 세션으로 바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전인권(1954년)은 허성욱과 듀엣 앨범인 < 추억 들국화 >를 내 놓는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가 대단한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의 이름은 ‘들국화를 오래 기억해달라’라는 뜻을 가진 것이었으며 허성욱의 미성을 느낄 수 있는 ‘머리에 꽃을’, 최구희의 필에 젖은 기타가 일품인 ‘어떤...(가을)’ 그리고 연극 < 칠수와 만수 >에 삽입되었던 작자 미상의 ‘사노라면’ 등이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종 전인권과 최성원의 주도권 다툼으로 해석되고 있는 들국화의 해체는 전인권의 대마초 사건으로 가속화되었고 그렇게 그룹 들국화는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전인권은 삼청동의 자기 집에서 1여 년을 쉬며 파랑새 기획을 만들고 히식스 출신의 김광석, 변성군, 민재현, 배수현 등과 그룹 가야를 구상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이 그룹은 끝내 탄생하지 못했고 전인권은 1988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제작한다. 역시 들국화를 산출한 동아기획과 자신의 기획사인 파랑새에서 나온 이 앨범에는 ‘돌고 돌고 돌고’가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가운데 ‘돛배를 찾아서’, 따로또같이 시절에 부른 ‘헛사랑’ 등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좀더 완성도 높은 <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를 발매한다. 이 앨범에는 큰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지만 ‘Last song’’,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등과 같은 수작이 진열되어 있으며 최성원의 코러스를 들을 수 있는 ‘제발’이 다른 버전으로 녹음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최성원에 못지 않은 작곡 실력을 뽐내면서 존 레논(John Lennon)의 ‘Oh my love’’와 ‘Love’’를 인구에 회자시켰다. 이러한 형태의 자기 표현은 전인권을 존 레논으로 최성원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전인권은 민재현, 이건태, 정태국, 유태구 등과 함께 들국화의 재건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멤버들의 전설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들국화의 이름으로 내놓은 3집은 아쉬움 속에서 외면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들국화의 이름보다는 전인권의 새 그룹을 원했다. 그리고 그는 한상원과 조인트 앨범을 내놓으며 그의 소울풀한 가창력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음악 활동 속에서 줄곧 대마초에 손을 대며 동면 속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공연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정확한 음정보다는 필링이 주가 되는 양상을 띤다. 한번 떨어진 집중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최근 그는 대마초 흡연은 죄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역시 그의 벽은 들국화였을까? 그는 다시 최성원, 주찬권과 들국화로 돌아온다. 그리고 장기 공연을 펼치며 왕년의 지지자들을 다시 끌어 모은다.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도 나왔으며 팬 사이트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모두들 전인권은 혼자 일 때보다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때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잠사학과 졸업. 그룹 '산울림'의 리드보컬. 1977년 록 밴드 ‘산울림’ 1집 〈아니 벌써〉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가수와 배우,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주요 음반으로 산울림 1집~13집을 비롯해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운동회」 등 동요집들이 있다. 2008년, 젊은 뮤지션들과 ‘김창완 밴드’를 결성하여 EP 앨범 「The Happiest」와 1집 「BUS」(2009)를 발표했다. 현재 S... 서울대학교 잠사학과 졸업. 그룹 '산울림'의 리드보컬. 1977년 록 밴드 ‘산울림’ 1집 〈아니 벌써〉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가수와 배우,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주요 음반으로 산울림 1집~13집을 비롯해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운동회」 등 동요집들이 있다. 2008년, 젊은 뮤지션들과 ‘김창완 밴드’를 결성하여 EP 앨범 「The Happiest」와 1집 「BUS」(2009)를 발표했다. 현재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와 MBC TV 「음악여행 라라라」의 진행을 맡고 있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밝힌 그는, ‘인간 김창완’이 드러나지 않는 글, 상상력을 극대화한 이야기를 한 편씩 써나갔다. 영감이 떠오를 때면 바닥에 엎드려 종이에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 전지적 입장에서 쓰는, 가르치려는 글은 싫다”고 말하는 작가 김창완. 그가 이제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통해 “문학으로 자신의 존재를 없애는” 작업을 열어 보인다.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 솔로 2집을 발표해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세태를 짚어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록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 밴드 활동을 재개했다. 1992년에 발표한 넥스트 1집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곡들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1994년 발표한 넥스트 2집, 그리고 1995년 발표한 3집은 음악성은 물론 가사에 담긴 깊은 사유를 통해 대중음악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기에 동료 뮤지션의 음반 프로듀싱, 객원 보컬, OST 작업, 프로젝트 밴드 ‘노땐스’ 활동 등을 병행했으며 1995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라디오 의 초대 DJ로 활동하며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1997년 발표한 넥스트 4집을 끝으로 넥스트는 해체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며 그곳에서 쌓은 테크노 장르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다. 이듬해에는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 동명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 실험성이 강한 음반을 발표했다.
2001년에는 그가 진행한 대표적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시작했다. 2003년 4월까지 선보인 이 방송은 거침없는 언변과 진심어린 진행으로 마니아 청취자층 ‘고스족’을 양산했고, 그의 별칭 ‘마왕’도 이때 얻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을 벌였으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간통죄 폐지체벌 금지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 화제를 낳기도 했다. 2003년 10월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새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 정규 5집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렌’을 설립했으며 이듬해 넥스트 리메이크 음반 5.5집을 발표했다. 2008년 넥스트 6집을 발표하는 한편, 이해 3월부터 10월까지 SBS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다시 진행했다. 2011년 5월에는 MBC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재개했으며 2012년 10월 방송을 끝냈는데, 이로써 11년간 이어온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완전히 종료했다.

2014년에는 새 솔로 음반 준비를 본격화해, 싱글 〈A.DD.a〉를 공개했으며 이어 EP 《Reboot Myself》를 발매했다. 2014년 10월 27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의 정확한 사인은 의료사고 의혹 속에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박광현이란 이름을 말하면 별밤지기로 잘 나가는 탤런트의 얼굴을 떠올리겠지만, 그가 연예계에 출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광현이란 이름은 한 뛰어난 뮤지션의 모습은 물론 그의 음악적 아우라를 모두 총칭하는 말이었다. 서울대학교 국악 작곡과를 다니던 박광현은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추억을 잊으면’이란 곡으로 입상한 뒤, 이승철의 ‘안녕 이라고 말하지마’, ‘그대가 나에게’의 작곡자로 알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박광현이란 이름을 말하면 별밤지기로 잘 나가는 탤런트의 얼굴을 떠올리겠지만, 그가 연예계에 출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광현이란 이름은 한 뛰어난 뮤지션의 모습은 물론 그의 음악적 아우라를 모두 총칭하는 말이었다. 서울대학교 국악 작곡과를 다니던 박광현은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추억을 잊으면’이란 곡으로 입상한 뒤, 이승철의 ‘안녕 이라고 말하지마’, ‘그대가 나에게’의 작곡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9년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그는 ‘한 송이 저 들국화처럼’, ‘풍경화 속의 거리’, ‘이 빗속에’ 등을 한 앨범에서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오른다. 이 음반은 아직까지도 그의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음반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70만장의 판매고를 넘기고 있다. 이때부터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사랑 받는 스타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재즈 적인 화성을 구사하는 곡들과 블루지한 목소리로 공기 같은 부드러움을 발산하며 많은 고정 팬을 몰고 다니고 있으며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승철에게 ‘그녀는 새침떼기’,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신승훈에게 ‘우연히’, 김건모에게 ‘이별 뒤에 그린 그림’ 등을 주며 인기 있는 작곡가로 떠오른 그는, 2집에서 ‘비의 이별’, 3집에서 ‘재회’ 등의 곡으로 두터운 팬 층을 놓치지 안았으며 김건모와 함께 부른 ‘함께’로 대중적으로 더 넓게 발을 넓혔다. 재즈에 많은 동질감을 느꼈던 그는 촉망받는 뮤지션들인 피아니스트 이영경, 베이시스트 정중화 드러머 임민수 등과 함께 그룹 데이지(Daisy)를 결성하고 다양한 장르를 크로스오버한 음악들을 발표해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보사노바풍의 ‘나의 작은 새’와 같은 곡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박광현의 대마초 사건으로 그만 팀을 해체하게 된다. 자신의 전공인 국악과 대중 음악을 접목하는 시도를 꾸준히 해온 그는 1998년 자신의 솔로 다섯 번째 음반을 발표했으며 1999년에는 100회 연속 장기 콘서트를 진행하며 수준급의 기타와 피아노 솜씨를 선보였다. 신인가수 이아미, 노아, 임종윤 등의 음반에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여전히 음악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업소인 < 봉주르 >에서 밤마다 공연을 펼치며 6집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전영록(1955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KBS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노래를 불렀지만 뒤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그는 데뷔 곡 ‘나그네 길’을 히트시켰고 이어 ‘애심’이란 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 제7교실 >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한 팬이 접어준 천 마리의 종이학...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전영록(1955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KBS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노래를 불렀지만 뒤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그는 데뷔 곡 ‘나그네 길’을 히트시켰고 이어 ‘애심’이란 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 제7교실 >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한 팬이 접어준 천 마리의 종이학을 계기로 다시 음악계로 돌아왔다. 이 당시의 사연을 노래로 만든 ‘종이학’으로 인기 가수의 문을 다시 두들긴 것이다. 이 곡에 이어 그는 해 마다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그대가 미워요’, ‘불티’, ‘그대 우나봐’ 등을 히트시키며 조용필 외에 한 앨범에서 두 곡 이상을 가요 Top 10에 올리는 유일한 가수가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밤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하얀 밤에’, ‘내 사랑 울보’, ‘이제 자야하나 봐’ 등을 히트시킨 1986년과 1987년에는 조용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2년 연속 KBS 가수왕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무그 연주가 2분 이상 울려 퍼지는 전주를 가진 ‘불티’의 뮤직비디오로 당시 가장 비주얼한 측면을 신경 썼던 전영록은 직접 감독을 맡은 < 돌아이 >란 영화의 시리즈로 또한 명성을 날린다. 가장 인기 있었던 시리즈는 < 돌아이2 >로 상당히 많은 관객이 그의 액션을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라디오 프로그램 < 젊음의 음악캠프 >, < 밤을 잊은 그대에게 > 등에서 DJ를 맡은 그는 1988년 발표한 앨범에서 ‘저녁놀’, ‘추억’,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 등 3곡을 연속해서 히트시켰으며 그 이듬해에는 ‘바람에 실려간 사랑’, ‘아직도 새벽은 오질 않아’를 히트시키며 오랜 동안 인기를 끌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부른 ‘황혼’이란 곡이 들어 있는 1990년도 음반에서 ‘창가에 흐르는 세월’이 별 반응을 얻지 못하며 이후로는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양수경, 임백천, 이은하 등에게 곡을 주며 히트 작곡가로도 인기를 얻었던 그는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 Oldies But Goodies >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에서 매일 밤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 이장희는 자신의 삼촌과 가수 조영남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반해, 음악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뒤, 룸펜 기질이 있던 그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당시 유명했던 음악 살롱 < 세시봉 >에서 시를 외우고 팝송을 부르며 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72년, 빨간 재킷에 특유의 콧수염과 담뱃대를 입에 문 얼굴을 드러낸 데뷔 앨범 < Young Festival Vol.1 >에서 ‘그 애와 나랑은’을 히트시킨 그는 ''73년 앨범에서 ‘그건 너’를 히트시키며 아이돌스타로 떠올랐다. 그룹 동방의 빛을 결성해 당시 리사이틀이란 이름으로 유행하던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절정의 인기를 과시했고, 1974년에는 영화 < 별들의 고향 > 음악을 작곡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전국적으로 히트시켰다. 하지만 김민기, 양병집,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등이 활동하며 트로트 문화에 일침을 가한, 음악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누렸던 1970년대 초반의 이 르네상스는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대중가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이루어지면서 급격히 퇴락 한다. 정부에서 허락 받은 노래만 불러야 했던 탄압은 이장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의 모든 곡들은 퇴폐적이고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독재 정권의 주도자는 “잠 못 드는 이유는 바로 너”라는 가사가 자신을 빗대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장희는 같은 해 11월, 대마초사건으로 이종용, 윤형주, 김세환, 신중현, 김추자 등과 함께 구속되고, 활동을 정지 당한다.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그의 곡들은 뛰어난 강근식의 필링이 주조된 ‘띵~’하는 사운드로 대표되는 것으로 포크적 이였지만 분명 두터운 음색과 비음에서 사이키델릭의 요소를 느낄 수 있고 ‘한 소녀가 울고 있네’와 같은 곡은 전적으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뛰어난 곡이다. 또한 그의 가사는 추상적이고 시적인 가사 위주의 풍토를 이후 구어체적이고 현대적인 가사로 탈바꿈하는데 많은 공을 세워, 당시 청년 문화의 표준적인 감성체계를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방송에서 DJ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조영남, 김세환, 정미조, 송창식 등에게 곡을 주었던 그는, 활동이 정지되자 그룹 사랑과 평화를 출범시킨다. 작곡가란에 이름을 내 걸 수 없어서 가명을 사용했지만 ‘장미’, ‘한 동안 뜸했었지’, ‘어머니의 자장가’는 모두 그의 노래였고 이런 숨은 노력은 이 그룹을 최고의 연주팀으로 만들었다. 해금 후 1982년 ‘진정 사랑해’가 든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녹음실과 의상실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김현식의 앨범을 제작하던 중 부도를 맞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변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재미교포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가끔씩 임병수 등에게 곡을 주며 국내에도 소식을 알렸다. 한 동안 국내 상황을 관망하던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후 자신의 마지막 솔로 앨범을 내놓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곡이 들어 있는 이 앨범에서는 ‘솜사탕’이 라디오를 탄다. 같은 뮤지션의 길을 걸었던 동생 이승희의 죽음으로 고국을 찾기도 했지만, 이장희는 현재 한인 사회에서 가장 큰 라디오 방송국 < 라디오 코리아 >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지내고 있다. 카리스마를 뽐내던 콧수염도 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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