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에 쓴 소설
이 소설집은 장르적으로 손바닥(掌篇)소설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불현듯 ‘시가 내게로 왔다’고 했던가. 원재훈은 손바닥소설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소설이 쓰였다. 그것은 그의 천성에 기인하기도 하고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지 싶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바닥에 무언가 글자를 끄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작가가 된 다음 그것은 원고지로, 모니터로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작품은 손바닥에 쓴 단순한 것에서 시작한다’고 그는 믿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고독하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투해야 하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정신적 공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소설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다.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리와 길’이 필요하다. 이제 원재훈은 자신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자 한다. 그것이 이 소설집이다. 그래서 그는 이 소설집을 ‘손바닥에 쓴 소설’이라고 일컫는다.
‘고양이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책 속의 작품들은 이내 길이의 한계를 떨쳐버리고 인생에 대한 통찰과 긴 여운을 선물한다. 표제작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람과 반려동물의 위치를 바꾸어 세상을 들여다보는 풍자성이 돋보인다. 작가는 점심을 먹고 마당 가에 가만히 꽂아둔 이쑤시개를 아름드리 거목처럼 상상하는가 하면, 늙어 주름진 얼굴에서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단풍을 연상한다. 2부를 비롯한 여러 작품 속에는 마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법사의 집은 ‘소원을 들어주는 집’이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단풍잎이 방바닥에 툭 떨어졌고, 잠시 단풍잎을 보고 있던 케이는 다시 집어 책갈피에 넣었다. 윤동주가 별을 헤아리고 있는 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의 여백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별을 보면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밤. 차라리 별이 가까이 있구나.”
케이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참 간절했구나 싶었다. 아픈 이모는 도대체 누굴 만나서 어떤 사연을 남기고 간 것일까? -90쪽(「시와 소녀」)
“꽃이 된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 꽃이 된 사람이라고 하시니까 연인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예. 한때는 그런 사이였는데, 긴 세월 헤어져 있다가 최근에 다시 만났습니다.”
“아, 꽃이 되었다는 말씀은?”
내가 재차 물어보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 사람…, 승려가 되어 있더군요.”
두어 달 후, 내 앞으로 한 송이의 꽃이 배달되었다. 그녀가 보내준 활짝 핀 상사화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할 그 스님이 부러웠다. -102쪽(「상사화」)
뭐든 사랑하게 되면 그런 거다. 너무 가까이하다 보면 상처가 생기는 거다.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입으면서도 더 가까이 있고 싶어하고, 더 가까이 있다가 가벼운 상처를 입는다. 그건 상처라기보다는 사랑의 흔적이다. 삶의 흔적은 그렇게 생기는 것이다. … 아주 젊었던 시절 잘 알고 지냈다고나 할까, 하여간 종로나 인사동의 술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가 먼 이국에서 말기 암에 걸렸다는 소식. 그녀의 책을 방송국에서 우연히 보고 잠시 가슴이 턱 막히면서 답답했다. 이건 일종의 고양이 상처구나 싶었다. -215쪽(「고양이 상처」)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작가 원재훈
시인, 소설가. 일찍이 시인으로 등단해 『낙타의 사랑』『그리운 102』『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등단 20년이 넘어 홀연 소설가로 재등단하며 『만남』『모닝커피』『바다와 커피』『미트라』『망치』『연애감정』『드라큘라맨』등 문단의 주목을 끄는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그의 소설은 잘 벼려진 문장과 서사적 구조에 시인다운 시적 함축성이 돋보인다. 망치』가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 『연애 감정』이 1980년대 청춘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였다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처 받은 영혼을 위무하는 작품이다. 손바닥소설을 장르적으로 궤도에 올린 사람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그의 시대가 또한 그 같은 작품을 요구했으리라. 이 겨울 원재훈의 따뜻한 손바닥소설이 손난로처럼 독자를 어루만져주기를 기대한다.
저자 후기
가끔, 나는 손바닥에 글자들을 쓴다. 왼쪽 손바닥에 오른쪽 검지로 뭔가를 쓰고 그것을 꼭 쥔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원한다. 방금 쓴 글자가 현실이 되기를. 예를 들면 위안이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쓰고, 용기라고 쓴다. 그러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고 믿는다. 비록 시간은 조금 걸릴지라도. 어려서부터 습관이 된 이 버릇은 점점 성장하면서 원고지로, 모니터로 옮겨간다. 내가 손바닥에 뭘 쓰고 있으면 도대체 뭘 그렇게 쓰냐고 딸이 묻곤 한다. 대답 대신에 그냥 웃는다. 글의 근원은 손바닥에 쓸 수 있는 간단한 한글과 한자로 쓴 단어들이었다. 道, 禪, 꿈, 별, 넋, 섬, 음악 등등, 이토록 간단한 단어들이 거대한 작품의 원형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작품은 손바닥에 쓴 단순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책 제목이 되기도 하고.
이 책은 그동안 긴 소설을 쓸 여유가 없었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짧고 소박한 소설로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소설은 제법 긴 분량의 작품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손바닥 소설로도 일단은 만족한다. 이제 내 손바닥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 폭력적인 손바닥엔 친절과 겸손을, 추행의 손바닥엔 경건과 순결을, 핵폭탄의 손바닥엔 사랑과 평화를, 뭐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벽과 담’보다는 ‘다리와 길’을 원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절망적이고 비참한 사회현상들인 폭식, 폭소, 폭력의 시대를 버티고 견디는 내 삶의 방식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때가 되면 비로소 조금 쓸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이야기라고, 지금까지 준비를 했고, 이제 그 시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제법 많은 책을 냈다. 비록 쓸모없는 책들이지만, 그것들은 쓸모 있는 한 페이지를 위한 거름이자 밑천이리라. 또한 모닥불을 지피기 위한 마른 장작이다. 올 겨울, 이 책을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