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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성인가요 왕중왕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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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USB] 성인가요 왕중왕 KING

본 상품은 CD가 아니며, USB 앨범 입니다.

알고보니혼수상태야 작곡/사마천, 진성, 지명길, 이건우 노래 외 19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서울미디어 (음반) | 2018년 12월 18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상품 가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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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성인가요 왕중왕 KING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12월 18일
시간, 무게, 크기 700g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USB
  • 01 고맙소 - 알고보니혼수상태야, 사마천
  • 02 항구의 남자 - 진운, 박진복
  • 03 밤열차 - 홍진우
  • 04 보릿고개 - 진성
  • 05 오늘이 젊은 날 - 한시윤, 용기, 류원광, 손연성
  • 06 반 - 지명길
  • 07 세월아 - 사마천
  • 08 아모르파티 - 이건우
  • 09 엄지척 - 최비룡
  • 10 사랑찾아 인생찾아 - 진형욱, 엄기엽
  • 11 일소일소 일노일노 - 이경미
  • 12 그리워라 - 사마천
  • 13 여여 - 공정식
  • 14 사랑님 - 공정식
  • 15 10분내로 - 이병오
  • 16 사랑꽃 - 엄지영
  • 17 소풍같은 인생 - 추가열
  • 18 그 남자 - 이수진
  • 19 고삐 - 이건우
  • 20 꽃이 필거야 - 김지현
  • 21 살만합니다 - 사마천
  • 22 나무꾼 - 한솔, 임휘
  • 23 브라보 - 알고보니혼수상태야, 사마천
  • 24 꽃물 - 한겨레
  • 25 심지 곧은 사람 - 추가열
  • 26 안동역에서 - 김병걸
  • 27 울지마라 세월아 - 김준범, 이창희
  • 28 밀어밀어 - 한솔
  • 29 산다는 건 - 강은경
  • 30 천년지기 - 정동진
  • 31 마이웨이 - 홍진영
  • 32 시계바늘 - 신웅
  • 33 누가누가 - 알고보니혼수상태야, 미우
  • 34 사랑이 좋아 - 개미, 지훈
  • 35 연모 - 김병걸
  • 36 그놈에 사랑 - 전성홍, 김준범, 이창희
  • 37 한방에 훅 - 조은형
  • 38 좋지 아니한가 - 사마천, 최병창
  • 39 초롱새 - 김준범, 이창희
  • 40 나이야가라 - 한시윤, 용기, 류원광, 손연성
  • 41 부초같은 인생 - 상준, 소산
  • 42 노래방 - 한솔
  • 43 달래강 - 김동찬
  • 44 사랑은 만병통치약 - 고운
  • 45 건배건배컴백 - 이신범, 이창희
  • 46 영원한 40대 - 정기수
  • 47 힘내라 친구야 - 사마천
  • 48 즐거운 인생 - 심양구, 오승근
  • 49 사랑의 와이파이 - 강은경
  • 50 구멍난 가슴 - 조승구
  • 51 천년화 - 이예린, 최영해
  • 52 내 나이가 어때서 - 박무부
  • 53 사랑아 - 김명서, 김다빈
  • 54 어쩔사 - 김경수, 나영수
  • 55 무슨 사랑 - 한겨레
  • 56 백세인생 - 김종완
  • 57 삼각관계 - 김병걸
  • 58 청풍명월 - 최상식
  • 59 비익조 - 우정
  • 60 미운 사랑 - 진미령, 송광호
  • 61 잠깐만요 - 신일수
  • 62 살랑살랑 - 강은경
  • 63 OK OK - 연지후
  • 64 웃어넘겨 - 사마천
  • 65 사랑하러 가자 - 신일수
  • 66 눈물이 뚝뚝 - 송준호
  • 67 사랑인가 봅니다 - 다시봐도촌놈, 알고보니혼수상태
  • 68 내가 그댈 사랑하는 이유 - 알고보니혼수상태야
  • 69 상처 - 장경수
  • 70 조폭마누라 아냐 - 심양구, 엄두섭
  • 71 불타는 금요일 - 심양구, 김흥국
  • 72 빠빠 - 추가열
  • 73 당신 만나길 잘했어 - 정현숙
  • 74 쟁이쟁이 - 김영락
  • 75 잠시만요 - 엄두섭
  • 76 사뿐사뿐 - 송준호
  • 77 님의 등불 - 허용운
  • 78 사랑도 모르면서 - 김병걸
  • 79 청춘아 - 정현숙
  • 80 인생노래방 - 정민우
  • 81 매화 - 장경수
  • 82 내장산 - 고순옥
  • 83 이 남자 어떡해 - 심양구, 엄두섭
  • 84 그림자 사랑 - 그림자 사랑
  • 85 언니 말이 다 맞아 - 김순곤
  • 86 꼭 한번만 - 꼭 한번만
  • 87 검정고무신 - 김병걸, 이충재
  • 88 다시한번만 - 다시한번만
  • 89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아 - 나훈아
  • 90 걸렸어 - 걸렸어
  • 91 소원 - 소원
  • 92 뺨때리는 여자 - ROZ
  • 93 비가 온다 - 사마천
  • 94 초롱새 (발라드) - 김준범, 이창희
  • 95 안동역에서 (발라드) - 김병걸

아티스트 소개 (24명)

노래 : 배호 (본명 : 배신웅)
병든 몸 ‘마지막 잎새’열창과 함께 굿바이 서른 한 살의 한창 나이로 아깝게 요절한 가수 배호. 사망한지 16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노래들은 팬들의 변함 없는 사랑을 받는다. 매우 소탈한 면을 보였던 그의 데뷔시절부터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대한 그의 집념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진정한 프로가수 배호의 마지막 순간을 ‘까치회’ 자문위원 최성일씨로부터 듣는다. 1960년대 말 서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 병든 몸 ‘마지막 잎새’열창과 함께 굿바이 서른 한 살의 한창 나이로 아깝게 요절한 가수 배호. 사망한지 16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노래들은 팬들의 변함 없는 사랑을 받는다. 매우 소탈한 면을 보였던 그의 데뷔시절부터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대한 그의 집념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진정한 프로가수 배호의 마지막 순간을 ‘까치회’ 자문위원 최성일씨로부터 듣는다. 1960년대 말 서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종로 화신백화점(지금은 없어졌다) 뒤편에 ‘궁전’이라는 카바레를 기억할 것이다. 거기서 드럼을 치는 멋쟁이 가수가 있다길래 1967년 9월 전인성씨라는 선배와 함께 술도 한잔할 겸해서 그 업소를 찾아갔었다. 궁전카바레에 들어서는 즉시 내 눈에는 화려한 의상(서반아 의상의 일종인 ‘캉캉’ 차림)을 걸치고 드럼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가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그 순간은 신선한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드럼을 치면서 밴드를 주도하는 마스터이기도 했지만 그의 노래는 손님을 사로잡는 고혹적인 무드가 짙게 배어있었고 입고있는 의상도 격조를 자랑했다. 노래나 옷차림이나 일반 기성가수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매우 독특하고 세련된 스타일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일행이었던 전인성씨는 그를 테이블로 초청했다. 그래서 나하고도 자연스럽게 인사와 통성명을 나누게 됐는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배호(裵湖)라고 소개했다. 그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에게는 최성일선배가 구면입니다. ‘시민회관’ 무대에서 진행하는 걸 여러차례 보았습니다.”하며 내게 말을 건넸는데 퍽 공손하고 깍듯한 말씨였다(그는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였다). 나와 동행했던 전인성씨는 배상태가 본명으로, 배호의 사촌형 되는 사이로 배호를 밤무대에서 픽업,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시킨 주인공이었다. 그는 또 배호의 1967년 데뷔 곡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곡을 쓴 작곡자이기도 했다. 가요계 진출과 동시에 발표한 이 두 곡은 순식간에 천정부지의 인기를 누렸고 배호도 가수의 최고영예였던 ‘10대 가수’대열에 단숨에 들어섰다. 해마다 한두 명 정도 바뀌었던 60년대 말 당시 10대 가수는 최숙자 이미자 현미 문주란 이금희 조미미 김상국 최희준 위키리 박형준 그리고 배호 등이 단골이었다. 방송에 의한 가요가 막 꽃피던 이 시절 당연히 쇼 무대에서도 ‘10대 가수 쇼’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공연하는 장소나 기후를 불문하고 10대 가수 쇼의 출연자 전원은 항상 양복 양장의 정장차림을 하는 게 관례였다. 싱글차림에 인상적인 금테안경 당연히 자연히 옷걸이(?)가 비교되곤 했는데 그 중 폼 나기로는 누가 뭐래도 단연 배호였다. 단정한 밤색 또는 회색 싱글 양복에 긴 넥타이는 그의 상징인 ‘금테안경’과 더불어 전형적인 신사의 지성미를 풍겼다(금테안경도 우리 가수들 중에서 배호가 제일 먼저 썼다). 당시 여성 팬들 가운데는 앨범에 나온 그의 사진 때문에 앨범을 샀다는 사람도 많았다. 얼핏 말붙이기가 어려운 인상이었지만 실제의 배호는 의외로 서민적이었고 소탈했다. 남들의 농담에 맞장구(주로 야유조)도 잘 쳤고 장난기도 없지는 않았다. 69년 여름 서울 시민회관 10대 가수 쇼에서였다. 이 무대에서 ‘저음 여가수’ 문주란(文珠蘭)이 굵직한 목소리로 배호의 흉내를 내자 그는 내가 한 수위라는 듯 문주란의 툭 튀어나온 윗입술을 흉내내며 성대모사를 잘도 해냈다. 그것도 손가락으로 자기 윗입술을 앞으로 잡아당기고는 문주란의 노래를 불렀던 거였다. ‘안경 낀 사람은 매사 깐깐하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있던 시절이었지만 배호는 전혀 달랐다. 공연을 마치고 동료들과 식사할 때에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잘먹는 ‘잡식성’이었다. 그런데 식사를 끝내고 나면 꼭 호주머니에서 ‘소화제’를 꺼내 마치 디저트인양 어김없이 먹곤 했다. ‘하루 세끼에 세 차례 소화제 복용’은 단 하루도 예외가 없었다. 그토록 약을 자주 복용했는데 그때서야 난 그가 건강한 몸이 아님을 알았다. 70년 6월 시민회관 공연에서는 눈에 확 띌 정도로 얼굴이 퉁퉁 부어서 나타났다. 내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배호는 “며칠 전 먹은 음식이 체해서 그래요”라고만 했다. 이 때는 아내가 보온병에 달인 한약을 담아와 노래 전후로 그에게 먹여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딴 가수와 그토록 잘 어울렸던 사람이 이 무렵에는 하루가 다르게 말수가 줄어들었고 대기실에서도 드러누워 있는 적도 많았다. 그러다 70년 광주(光州) 태평시네마 공연에서는 급기야 무대에 서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10대 가수 모두가 무대에 등장했지만 배호는 분장실에서 누운 채 신음소리로 “노래를 못하겠어요”는 것이었다. 사회자였던 나와 이대성은 무대로 나와서 “배호씨가 아픕니다. 출연이 곤란합니다.”라며 객석의 양해를 구했다. 배호의 인기가 절정인 상태였고 출연펑크가 빈번했던 시절인지라 관객들도 양보를 하지 않았고 “우린 배호 보러왔다! 안 나오면 돈 물어내라!”며 막무가내였다. 객석의 상황을 들은 배호는 “그럼 무대에 나가야지요” 하더니 내게 “좀 부축해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그래서 배호는 내 등에 업힌 채, 이대성이 들고있는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해야만 했다. 순간 나는 코끝이 찡했고 배호는 눈물을 흘리며 열창,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71년 2월에 있었던 경기 문산(汶山)의 ‘배호쇼’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 지역 소재의 3개 극장인 ‘문산극장’ ‘법원리극장’ ‘용주골극장’을 도는 순회공연으로 낮에 한번, 밤에 한번 1일 2회였다. 여기서 잠깐 당시 배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소개할까 한다. 어디에서나 그랬지만 극장 손님 중에는 술집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스타가 무대에 등장했다하면 상습적으로 ‘땅콩’을 무대 위로 던지곤 했었다. 때론 어떤 가수는 눈에 정통으로 맞아서 곤욕을 치루기도 했는데 슈퍼스타 배호가 등장하면 마치 소나기가 퍼붓듯 땅콩이 무대 위로 뿌려졌다. 공연 뒤 빗자루로 쓸어보면 땅콩이 대두 1말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었으니까. 3일째 공연이었다. 낮 공연을 끝낸 배호는 “잠깐 서울에 다녀오겠다”며 떠났는데 야간무대 시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연락을 해보았더니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서 주사를 맞고있다는 것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손님들은 아우성을 쳤고 달리 펑크를 메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남은 한가지 방법은 관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과하는 길뿐이었다. 나는 하늘에 운을 맡기고 무대 위로 올라가 눈물을 흘리며 관객들에게 호소하며 용서를 구했다. “여러분! 배호는 몸이 아파 죽어갑니다. 지금 서울의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며 죽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배호는 낮에는 출연했습니다. 지금 나오지 못하는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관객에게 큰 절). 노래는 대신 제가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야유하던 손님들도 사정얘기를 듣고 나자 배호를 아끼는 마음에서 내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내가 지금도 배호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것은 순전히 이 공연과의 인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의 ‘마지막 잎새’ 그 후 배호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3개월 간 입원했으나 퇴원하자마자 무리하게 또 용산 ‘성남극장’ 무대에 섰다. 이 때 배호는 거의 사경을 헤맸고 대기실에서는 누운 채 콜록콜록 기침만을 해대 마지막 순간임을 암시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 순간까지 배호는 불굴의 집념으로 무대에 서서 마이크를 잡으면 기침 한번 없이, 실수 한번 없이 노래를 불렀다. 배호에게는 마지막 공연이기도 했던 이 무대에서 피날레 순서의 곡은 마치 운명의 장난이듯 ‘마지막 잎새’였다. 며칠 후 배호는 병원에서 서울 삼양동 자택으로 옮기는 도중 차 속에서 기어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날이 71년 11월7일. 한창 청춘인 31살 나이의 요절이었고 사망원인은 겹친 과로로 인한 신장염이었다. 당시 최고가수였던 최희준도 내심 크게 두려워했던 환상적 가창력의 배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표현은 바로 배호를 두고 써야하지 않을까. 짧게 살다 갔어도 그의 노래는 사망 16년이 흐른 지금도 애청, 애송되고 있다. 앞으로도 ‘천재의 예술’ 배호의 노래는 영원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호의 히트곡 연표(年表)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이인선작사 배상태작곡) ‘안개 낀 장충단 공원’(최치수작사 배상태작곡) ‘두메산골’(반야월작사 김광빈작곡) 1968년 ‘누가 울어’(전우작사 나규호작곡) ‘물방아고향’(최치수작사 이철혁작곡)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전우작사 나규호작곡) ‘안녕’(전우작사 나규호작곡) ‘파도’(이인선작사 김영종작곡) 1969년 ‘만나면 괴로워’(전우작사 박춘석작곡) ‘당신’(전우작사 나규호작곡) ‘능금 빛 순정’(조흥렬작사 배상태작곡) 1970년 ‘비 내리는 명동거리’(백영호작사 백영호작곡) ‘막차로 떠난 여자’(정진건작사 백영호작곡) 1971년 ‘마지막 잎새’
콧수염, 축구, 해병대, 불교, 10대 가수 등의 트레이드마크로 유명한 김흥국은 10여 년간의 무명시절을 겪다가, 상식을 깨는 춤과 특유의 허스키한 웃음이 들어간 노래로 10대 가수의 반열에 오른 가수이다. 지금은 반짝 가수의 멍에를 쓰고 평범한 연예인의 한 명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방송국 주변을 돌며 DJ와 MC, 오락 프로그램의 게스트, 축구시즌이 되면 응원부대의 한 사람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무명에서 건... 콧수염, 축구, 해병대, 불교, 10대 가수 등의 트레이드마크로 유명한 김흥국은 10여 년간의 무명시절을 겪다가, 상식을 깨는 춤과 특유의 허스키한 웃음이 들어간 노래로 10대 가수의 반열에 오른 가수이다. 지금은 반짝 가수의 멍에를 쓰고 평범한 연예인의 한 명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방송국 주변을 돌며 DJ와 MC, 오락 프로그램의 게스트, 축구시즌이 되면 응원부대의 한 사람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무명에서 건져 준 음악 쪽보다는 종합 엔터테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의 일원으로 드럼을 쳤던 그는 졸업 후 음악학원에 들어가 동창생들과 그룹 빅 버드(Big Bird)를 결성해 밤업소를 돌며 연주를 했다. 하드록을 하고 싶었던 그는 팀원들과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만 군입대로 음악에 대한 꿈은 기약 없는 내일로 점점 밀렸다. 군부대에서 7인조 스윙밴드를 만들어 베이스를 치던 그는 제대 후 군 시절의 친구와 그룹 오대장성을 만들어 밤업소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노만 프로덕션에서 ‘당신을 사랑해요’란 곡으로 기념음반을 낸 김흥국은 1986년 이승수 작곡의 ‘창백한 꽃잎’으로 정식 데뷔한다. 이 곡은 라디오에서 약간의 인기를 얻었지만 무리하게 강행한 < 창백한 꽃잎 콘서트 >는 대부분의 무료 관객들로 가득 차 그에게 빚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 곡을 듣고 그를 찾아온 그룹 배따라기의 리더 이혜민을 만남으로써 그의 음악은 한 단계 더 전진한다. 그는 그룹 1999에서 활동하던 멤버 이재인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이혜민이 곡으로 만든 ‘정아’로 상당한 음악성을 인정받고 곧이어 ‘호랑나비’로 고공비행을 한다. ‘호랑나비’의 노래와 춤은 최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세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는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지만 어느새 개그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후 줄곧 개그맨의 위치로 규정지어졌다. 1989년 각종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호랑나비’로 그는 연말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TV 프로그램 <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에 나와 결혼 상대 소개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번칠이로 짓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공개해 더욱 인기를 높였다. 이 당시 그의 히트작은 ‘호랑나비’뿐만 아니라 유행어 ‘아 ~응애에요’였다. 하지만 그는 이후 음악으로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소울풀한 음색을 자랑했던 목소리는 모두들에게 코믹한 목소리로만 들렸고 ‘호랑나비’의 인기를 잇고자 비슷한 형식으로 노래한 ‘흔들흔들’, 김건모의 ‘핑계’로 시작된 레게 열풍에 편승했던 ‘레게파티’나 드라마 < 오박사네 사람들 >에서 자주 흥얼거렸던 ‘내게 사랑이 오면’, 자신의 태어난 해를 기념해 만든 ‘59년 왕십리’, 그리고 2000년에 발표한 ‘Love potion no.9'' 등은 모두 예외 없이 별다른 사랑을 받지 못했다. 축구꿈나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 김흥국 장학재단 >을 비롯해 축구에 관한 것만으로 여러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그는 가수보다는 축구에 대한 사랑과 효자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어려운 이웃의 일에 집안일보다 더 발벗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잘 드러나는 방송인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남진과 숙명의 라이벌로서 1970년대 초반 우리 가요계를 뜨겁게 불태웠던 슈퍼스타 나훈아. 우직하고 때론 거만하게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는 인정 많고 화끈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천부적인 소질의 무대가수로서 나훈아가 공연시절 남겼던 일화를 무대 MC 최성일씨가 소개한다. 연예계에서는 “하룻밤 자고 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오버나이트 석세스’ 즉 갑작스런 성공사례의 주인공이 출현해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만... 남진과 숙명의 라이벌로서 1970년대 초반 우리 가요계를 뜨겁게 불태웠던 슈퍼스타 나훈아. 우직하고 때론 거만하게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는 인정 많고 화끈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천부적인 소질의 무대가수로서 나훈아가 공연시절 남겼던 일화를 무대 MC 최성일씨가 소개한다. 연예계에서는 “하룻밤 자고 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오버나이트 석세스’ 즉 갑작스런 성공사례의 주인공이 출현해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만약 지난 1960년대와 1970년대 우리 가요계에서 오버나이트 석세스를 잡은 가수를 딱 한 명만 꼽아보라면 나는 서슴없이 나훈아(羅勳兒)를 댈 것이다. 내가 나훈아의 성공을 실로 눈 깜짝할 찰나에 이루어졌다고 호언하는 것은 내 나름대로의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7년 12월 MBC행사로 나는 대전에 공연 차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이 때 가수출신으로 당시는 매니저로 활약 중이었던 김태환씨가 동행했었다. 그는 내게 낯선 신인가수 한 명을 데려오더니 이름이 나훈아라면서 “앞날이 촉망되는 유망주 가수니까 무대에서 소개 좀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시켰다. 그 날 공연을 마치고 우리는 대전 ‘중앙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공연단원의 숫자가 워낙 많았던 터라 방 하나에 세 사람씩 투숙하게 되었다. 한방에 나와 함께 머문 사람은 콤비 이대성과 바로 나훈아였다. 더블 침대에서 셋이 함께 잘 수는 없었으므로 당연히 연예계 선배인 나와 이대성은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히 까마득한 후배인 나훈아는 침대 옆의 소파에서 쪼그리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신인들의 무대 뒤 실제 모습이란 대체로 그렇게 ‘측은한’ 법이다). 그리고 나서 3개월쯤 지났을까. 어느날 갑자기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가지 마오’ 등 나훈아가 부른 곡들이 순풍에 돛단 듯 히트행진을 거듭했고 그는 순식간에 톱 가수 지위에 뛰어 올랐다. 약 90일전 만해도 애처롭게 소파에서 자야 했던 처량한 신세의 풋내기가 대선배인 나도 범접 못할 슈퍼스타로 떠오른 것이었다. 난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 나훈아는 당시 최고인기였던 남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숙명의 라이벌로서 70년대 가요계를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었다. 노래 실력으로 논하자면 두말할 것도 없고 그는 청중을 휘어잡는 진행솜씨도 매우 탁월했다. 즉 무대에 관한 한 천부적인 소질의 가수였다. 나훈아가 공군현역이었던 70년대 중반쯤의 일이다. 위문공연이 있다는 전갈이 있길래 서울 오류동의 모 무대에 가봤더니 출연가수들은 한 명도 없고 김희구(金熙九)악단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나는 공연주최측에 어떻게 된 거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주최측의 한 사람은 “나훈아 혼자서 하는 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부대의 조그만 식당 겸 강당에 장병을 모아놓고 내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위문공연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나훈아는 노래 도중 간간이 특유의 부산사투리를 콩트와 모노드라마를 섞어가면서 눈부신 열창으로 장병들을 열광의 도가니를 몰아넣었다. 사회자인 나도 거의 쓸모가 없었다. 이렇게 나훈아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장장 2시간 10분을 성황리에 이끌어가는 희대의 ‘가수 원맨쇼’를 연출해냈다(TV 특집이든 디너쇼든 지금의 나훈아쇼에서 능히 검증된 사실이다). 그와 영화배우 김지미(金芝美)씨의 열애는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그것은 공연 중에도 그 실체를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1974년 2월 박종구씨가 단장이었던 ‘라이온스’ 쇼단 주최로 서울 시민회관에서 나훈아 리사이틀이 열렸을 때다. 1회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돌아와 쉬고있는데 박종구단장이 음료수 한 상자와 사과 배 한 짝씩 들여오더니 수고했으니 나눠 먹으라고 했다. 사실 짜기로 이름났던 그의 난데없는 후한 배려에 우리는 영문을 몰라서 의심쩍은 표정을 짓자 박단장은 “사실 내가 산 게 아니라 나훈아가 산 거야!”하고는 많이들 먹으라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그럼 그렇지!”하며 옆에 함께 있던 나훈아에게 감사표시를 하고 한참 게걸스레 먹고있는 도중 ‘정말 난데없이’ 김지미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수고들 하셨어요”하고 인사를 하자 나훈아는 “뭘 이렇게 많이 보내주셨어요?”하고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우리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눈치를 살피니까 둘이 쳐다보는 눈빛이 여느 관계의 사람과는 크게 달랐다. 사실 바쁘고 위세 높은 대스타가 하릴없이 남의 쇼에 먹을 것까지 사들면서 뭐 하러 나타났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나훈아와 김지미의 열애’는 잠시 후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둘은 결혼했다. 나는 공연과 관련된 이런 관계를 보면서 다시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고 연기 나는 곳에 반드시 불이 있다”는 속담의 진리를 깨우쳤다. 나훈아의 생긴 모습을 가리켜 연예가에서는 흔히 ‘소도둑’이라는 별명을 들먹이곤 한다. 겉모양을 두고 하는 이 말이 시사하듯 조금은 강한 인상에 나훈아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거만하다는 첫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사귀어보면 재미있고 스스럼없는 사람이 나훈아였고 때론 인정도 많았다. 1980년대 들어서 그가 가수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충남 대전에서 사업가로 활약했을 때 공연이 그 부근에서 열리게 되면 전 단원에게 식사대접을 해주고 선물도 주곤 했었다. 나도 그가 경영하는 식당에 우연히 들러서 실컷 음식을 얻어먹고 게다가 용돈까지 받아 상경한 적도 있었다. 또 그는 화통하고 뒤 끝없는 사나이다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례로 지난 1983년 11월 서울 천호동에서 ‘은성카바레’를 경영했을 때 그는 70년대를 통해서는 같이 자리하기조차 꺼려했던 라이벌 남진을 출연가수로 섭외하여 함께 무대에서 정답게 노래하기도 했다(방송의 가요제를 빼놓고 남진과 나훈아가 무대다운 무대에서 같이 노래부르기는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쓴짝에서 단짝으로 둘의 관계를 전환시키는 기회를 나훈아가 마련했고 또 남진이 선뜻 응했다는 것은 듣기부터가 참 좋았다. 지금도 나훈아는 지난 날 정을 나누었던 옛 친구들에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온정을 베풀고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공연사회자에게도 그는 아낌없이 잘해주었다. 뒤 끝없이 우리에게 인정을 쏟아준 그에게 이번 지면을 통해서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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