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를 뒤바꾼 십자군전쟁의 진짜 배후는 누구인가?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중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던 유럽에서, 중세는 물론 서양사 전체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제1차 십자군전쟁이다. 제1차 십자군전쟁은 가장 잘 알려지고 또 가장 많은 관련 서적이 나온 역사적 사건들 중 하나다. 많은 연구자와 문학가들이 ‘교황 우르바누스 2세’, ‘클레르몽에서 행한 선동적인 연설’, ‘보에몬드로 대표되는 십자군 지도자들의 영웅적인 면모’ 등에 관심을 집중하여 이를 주제로 십자군전쟁사를 주도해왔다. 십자군전쟁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에서 한 연설에서 시작하여,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도로 출발한 수천 명의 서구 기사들이 1099년 7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해방시킴으로써 정점에 도달한 역사적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동방의 부름』의 저자 피터 프랭코판은 십자군전쟁의 진짜 배후는 동방 비잔티움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라고 말한다. 십자군전쟁은 사실 알렉시오스의 커다란 그림 아래서 구상되고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서유럽 주류 학계는 의도적으로 알렉시오스를 십자군전쟁사에서 배제하고 왜곡하였는데, 그 결과 십자군전쟁사에서, 특히 이 전쟁의 근원과 관련해서 그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는 십자군전쟁사의 주변부에 머무르며 우르바누스 2세와 십자군 지도자들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단역으로 이용되었고, 이러한 역사관은 자연스레 제1차 십자군전쟁을 해석하는 데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말한다. 피터 프랭코판은 십자군전쟁의 진정한 근원과 맥락을 알기 위해선 알렉시오스 1세와 비잔티움제국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천 년 가까이 이어져온 십자군전쟁사에 도전장을 던지며, 알렉시오스 1세와 비잔티움제국을 십자군전쟁사의 중심부에 등장시킨다.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가 그린 십자군전쟁이라는 큰 그림
그렇다면 알렉시오스는 왜, 어떻게 십자군전쟁이라는 큰 그림을 기획했을까? 저자는 ‘십자군전쟁 전야’의 비잔티움제국의 상황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11세기에 들어와 제국은 이전의 영광을 상실했다. 투르크 침략자들이 여러 중요한 도시들을 약탈하고 파괴했으며, 제국의 영토 일부는 노르만인들에게 빼앗겼다. 이때 비잔티움제국의 구원자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다. 1081년, 25세의 나이에 제위를 찬탈한 그는, 집권 초기에 비잔티움을 노리는 외부의 위협을 막아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에 대한 통제권도 확립해야 했다. 그러나 1090년대 중반에 이르자 그는 정치적 권위를 잃기 시작했고 더불어 제국은 온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침략을 받아 그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그리하여 1095년에 알렉시오스는 긴급한 메시지와 함께 사절을 우르바누스에게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저자는 11세기 비잔티움제국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며, 제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1095년까지 이르렀는지 살펴본다.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를 비롯한 여러 중요한 전투들의 결과, 알렉시오스가 투르크인 용병들에게 주요 도시들을 맡긴 전략과 비잔티움 귀족들을 상대로 한 태도가 제국을 어떻게 붕괴로 몰아넣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제국의 붕괴 상태에서 알렉시오스가 십자군전쟁이라는 선택지를 어떻게 생각해내고 활용하려 했는지와 같은 전쟁 전야의 주요 맥락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그런데 왜 우르바누스 2세는 알렉시오스의 구원 요청에 기꺼이 화답했을까? 황제의 절망적인 호소와 교황의 즉각적인 반응의 타이밍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 서유럽에서 두 명의 교황이 옹립한 상황에서 알렉시오스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입장이었지만 동방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더 익숙한 상대였던 우르바누스에게 사절단을 보낸다. 더 편리한 협상 상대라는 계산에서 나온 접근이었다. 우르바누스 역시 동방에서 온 사절단의 메시지를 듣고,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 내포된 의미를 즉각 파악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유럽에서 자신의 힘과 위상을 높일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우르바누스는 알렉시오스와 밀접하게 관계하며 동방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이 당시 우르바누스가 유럽을 돌며 한 연설의 내용은 알렉시오스의 철저한 통제와 관리에서 나왔다. 알렉시오스는 동방 기독교인들이 받는 고통, 죄의 사면이라는 정신적 보상, 성물과 성지 예루살렘이 주는 매혹을 적극 활용하며 서방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움직였다. 이는 곧 서방 기독교인들의 폭발적인 호응으로 이어졌고, 십자군전쟁은 시작되었다.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십자군전쟁의 진정한 전장이 펼쳐진다
십자군전쟁이 일어난 후에도 알렉시오스는 전천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십자군을 제국에 불러들이고, 십자군전쟁을 치르면서 황제는 여러 부침을 겪기도 했다.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민중 십자군은 황제가 수립한 행동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며 혼란을 만들었고,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접근해오는 와중에 온갖 악행을 저질러 제국 내에 불안감을 조성했다. 도저히 군대라고 부를 수 없는 그들은 전혀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또한 수많은 병력을 이끌고 온 십자군 지도자들이 언제 마음을 바꿔 수도를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데 대비해야 했고, 동시에 제국 내에서 점증하는 황제에 대한 반란 모의도 신경 써야 했다. 그리고 십자군 지도자들의 이권 다툼과 수복한 도시들에 대한 야심과 권력욕을 통제해야 하기도 했다. 알렉시오스에게 십자군전쟁은 손쉽게 통제할 수 없는 너무나 위험한 게임이었고, 감수해야 할 위험과 부작용도 아주 많았던 것이다.
십자군전쟁을 다룬 가장 대표적 서방 측 자료인 『예루살렘에 도착한 프랑크인의 행적』은 보에몬드 같은 십자군 지도자들의 용맹성을 일방적으로 기록하는 한편, 알렉시오스 황제는 교활함과 기만술로 십자군을 이용할 생각만 한 존재라고 비난한다. 직접 원정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십자군을 제대로 지원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알렉시오스는 실제로 전쟁에 직접 참여해야 할 의무가 없었고, 제국 내부 사정상 그럴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식량 지원을 비롯한 군사 지원도 때에 맞춰 적절히 이루어졌음을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입증한다. 서방 측 자료들이 십자군전쟁에서 황제의 희생과 노력,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왜곡하는 것은 교황과 십자군 지도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십자군전쟁사에서 알렉시오스의 역할이 부각되는 게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십자군전쟁에서 알렉시오스가 보인 모습을 아주 공정하게 보여준다.
알렉시오스는 서방의 힘을 빌려 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아주 효율적이고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십자군 지도자들의 원정 경로를 정하는 일, 식량 배급을 비롯한 군사적 지원 여부를 선택하는 일, 십자군 지도자들과의 충성 맹세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고 향후 십자군이 차지한 지역은 모두 황제에게 넘겨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낸 일 등 십자군전쟁 곳곳에 알렉시오스의 기민한 구상과 전략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니케아, 안티오크, 성지 예루살렘을 수복하는 과정을 엄밀하게 기술하며,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 황제의 진면목을, 그리고 제1차 십자군전쟁의 진면목을 생생히 보여준다.
『실크로드 세계사』의 저자 피터 프랭코판이 쓴 정통 십자군전쟁사
이 책을 읽다 보면 독특한 독서의 맛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철저하게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십자군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맥락과 판도를 시원하게 풀어낸다. 이는 마치 엄밀한 학술서를 어떤 역사 소설보다 흥미진진하게 읽는 느낌을 준다. 바로 여기에서 피터 프랭코판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피터 프랭코판은 2015년 출간한 『실크로드 세계사』에서 고대 종교의 탄생부터 현대 중국의 일대일로까지, 세계의 척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2천 년 세계사를 풀어내며, 서유럽 중심주의 역사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지정학적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이번 책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균형 있고 객관적인 관점,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필력과 구성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옥스퍼드대학 비잔티움연구센터 소장이자 동대학 우스터칼리지 선임 특별연구원, 비잔티움 역사 전공자인 그는 직접 번역한 12세기의 중요한 역사서 『알렉시아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남부에서 나온 그리스어와 라틴어 사료, 스텝 유목민들의 세계, 콘스탄티노플의 고고학과 유물 문화, 발칸반도·소아시아의 역사, 중세 교황청, 성지에 수립된 라틴 식민지에 대한 사료 등 풍부한 동서방 사료와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십자군전쟁이 어떻게 일어났고 전개되었는지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속내와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풀어낸다. 지금껏 국내에 십자군전쟁 관련 서적이 여러 권 나왔지만 이 책처럼 십자군전쟁을 전문적으로 다룬 정통역사서는 없었다. 단언컨대 이 책은 가장 균형 잡히고 공정한 십자군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더해 이 책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외세를 끌어들여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굴욕스러운 일인지, 그리고 한 나라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 의해 어떻게 지워지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 한반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고구려, 백제와 대립하고 있던 신라는 당나라라는 강력한 동맹국을 등에 업고 그들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다. 신라는 삼국 통일을 이루어내긴 했지만, 당나라의 외교적 간섭 등으로 인해 여러 부침을 겪었다. 근현대사는 물론 주변 세력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큰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