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발을 딛고 이중과제론을 펼치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극복을 위한 담론
한반도 문제가 전세계적 이슈가 된 때 진행된 공부모임에서 참가자들은 현실의 절박한 문제와 동떨어진 공허한 거대담론에 빠지는 것을 시종일관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고, 1회 공부모임에서부터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근대의 적응과 극복’이라는 주요 개념에 대한 논쟁이 그 시작이었다. ‘근대’와 ‘근대성’에 대한 개념 규정에서 시작하여, ‘근대’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며 근대에 적응하며 극복하는 이중과제적 문제의식이 없으면 방향성 없는 근대추종주의나 맹목적인 근대탈출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아나갔다. 적응과 극복을 좀더 넓게 해석한다면 이중과제론은 일상생활의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다. 돈벌이에 적용하면 직장생활의 고달픔에 적응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일-가사 양립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대학과 학문의 현실 등 적용하지 못할 곳이 없다.
이중과제론이 추상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이기 때문이다. 근대는 시기도 길 뿐더러 근대에 대한 논의 또한 매우 다양하며, 심지어 개개인마다 근대에 대한 상이 달라 개념화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중과제론에서 다루는 근대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말한다. 역사상 로마제국도 있고 중국제국도 있지만 그 범위가 모두 국지적이었고, 자본주의 세계체제만이 거의 유일하게 전지구를 망라하게 된 체제이며, 19세기에 동아시아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면서 전세계가 체제 안에 다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단위를 정립하고 난 후 참가자들은 이중과제론의 현실 적용 방법에 대해 각자 영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나갔다. 페미니즘, 문학, 학문과 대학, 동아시아 담론 등과 어떻게 만나고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가 이어졌으며, 해당 분야 전공자가 발제자로 나서 깊이 있는 토론으로 이어지게 했다. 일례로 사회적 이슈인 페미니즘과 이중과제론에 대해서는 매회 격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페미니즘이 근대화에 더 열심히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근대에 함몰될 수도 있는 문제를 처음부터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과제론과 매우 친화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의가 첫회부터 마지막 공부모임까지 열띠게 이어졌다.
현실이 절박할수록 큰 틀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의 큰 그림
한반도 비핵화의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남북한에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며,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도 치열한 이해관계가 중첩되어 있는 문제이다. 백낙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남북연합의 건설이야말로 이중과제론적 인식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근대세계체제에 독립된 국민국가로 참가해본 적이 없는 한반도가 ‘근대적응’을 수행하는 획기적인 계기인 동시에, 현존 ‘국가간체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합국가를 건설하는 ‘근대극복’의 과정과 맞물려” 있으며 촛불혁명이 내세우는 나라다운 나라, “정의롭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사회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본문 338면). 반공·반북을 위해서라면 헌법이나 법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인 ‘이면헌법’이 지배하는 왜곡된 분단체제의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 즉 한국사회 개혁의 과정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혁을 위한 이중과제론의 인식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이중과제론은 선(先)비핵화 후(後)평화체제냐, 선평화체제 후비핵화냐 하는 식의 한반도 문제 해결법에 대해서도 달리 접근할 것은 요구한다. 즉 남북연합의 과정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비핵화라는 현실정치의 숙제 또한 풀리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는 설명이다.
이중과제론과 함께 문명전환론이 거론되는 것은 당연하다.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극복을 지향하기에 이중과제의 수행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를 모색하는 과정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중과제론에서 다루는 근대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이듯 문명전환론에서 다루고 있는 ‘문명’ 역시 막연한 문명이 아니라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문명사적 현상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모색은 서구의 지식체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백낙청의 생각이다. 동양에서의 정신은 “정신이냐 물질이냐의 이분법을 벗어나 있고 정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어떤 경지이자 능력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서양에서 물질이 아닌 정신을 강조한 이런저런 흐름이라든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과연 그런 경지에 대한 사유를 했는가, 개인적으로 그런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야 많았겠지만 그런 경지에 대한 생각을 핵심적인 공부과제로 제시했는가 하면 별로 그렇지 않”(본문 269면)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동아시아의 진리 개념인 ‘도(道)’를 비롯하여 원불교 등 종교적·실천적 운동의 핵심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발굴하고 재정립하며 문명전환의 사상적 자원으로 삼자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모든 차별을 없애되 지자(智者)와 우자(愚者)의 차별은 남겨둔다는 뜻인 ‘지자본위(智者本位)’는 현대인들의 평등주의 이념과는 거리가 있지만 균등사회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원리라라고 제시한다. 동양의 전통사상인 음양조화론도 음과 양을 동격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상 평등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시 살필 것을 주문한다.
세계체제 변혁의 국면에서 한반도의 역할
우리는 여전히 촛불혁명의 과업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미관계가 나아질 듯 나아질 듯하다가도 갈등이 다시 불거져나오고, 촛불혁명으로 이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면서, 촛불혁명 이후 정치는 물론 한국사회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보수야당이 국민을 속이면서 집권하거나 정권을 연장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모두 촛불시민들의 힘이다. 북미협상 과정에서도 양자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이 타개책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 활약이 물론 중요했지만, 그가 촛불정부의 수반이라는 특별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난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에서 언급했듯 “남북화해로 마련된 변화의 동력을 국내개혁으로 되돌리는 작업에서 시민사회가 수행할 몫이 있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 주민들 모두가 고르고 사람답게 살도록 만드는 여전히 힘겨운 작업이 남는다.”(『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277면)
그리고 이제 이중과제론과 문명전환론의 시각에서 한반도를 다시 들여다볼 때다. 그것은 “남북이 화해함으로써 대안적인 체제가 곧바로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까지도 말기국면에서 흔들리고 있는 세계체제가 오히려 더 흔들리게 되고, 어쩌면 난민도 더 많이 발생하고 이상한 질병도 더 많이 돌고 그런 쪽으로 갈 수 있”지만 “그럴 때 한반도는 시민들의 의미있는 참여를 통해서 남북이 화해하고 느슨한 국가연합이라도 건설하면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좋게 만드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세계적인 거점이 될”(본문 314면) 수 있으리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적응과 극복’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순응으로 끝날 위험은 우리 모두가 안고 있고, 어찌 보면 그것은 근대인의 실존적인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회적인 노력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해가는 가운데 그 길이 열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변화된 한반도의 미래에 우리 모두의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노력, 문명전환에 대한 치열한 탐색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