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9월 상품권
9월 혜택모음
북클러버
주말엔 보너스
인스타툰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CD

팝 & 재즈 고음질 음악 모음집 (Grand Master : Audiophile Voice)

[ Silver Alloy 제작 / High Definition Mastering / 1000장 한정반 ]
Era, Carly Simon, Alison Krauss, Slava, Lovisa 노래 외 1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ABC Record / ABC Record | 2018년 11월 2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35,300원
할인가 28,6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카드혜택
결제혜택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페이코 페이코 포인트결제 2% 적립 (신규고객 4,500원 할인)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현재 새 상품은 구매 할 수 없습니다. 아래 상품으로 구매하거나 판매 해보세요.

품절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팝 & 재즈 고음질 음악 모음집 (Grand Master : Audiophile Voice)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11월 20일
제조국 홍콩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ERA: The Champions
  • 02 Carly Simon: Oh! Susanna
  • 03 Alison Krauss: Jacob's Dream
  • 04 Slava: Ave Maria
  • 05 Lovisa: When I Fall In Love
  • 06 Daryle Singletary: Promises
  • 07 Rosemary Clooney: Danny Boy
  • 08 Annekei: Diamond Shell
  • 09 Willie Nelson: Mona Lisa
  • 10 Gladys Knight: The Man I Love
  • 11 Lizz Wright: A Taste Of Honey
  • 12 Eva Cassidy: Autumn Leaves
  • 13 Bobbie Gentry: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 14 Alice Smith: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 15 Ella Fitzgerald: What Will I Tell My Heart
  • 16 King'singers: Let It Be
  • 17 Linda Ronstadt: What's New
  • 18 Claire Martin: Nirvana
  • 19 Tony Bennett: Smile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19명)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은 다분히 1970년대 감성을 소유한 성인 취향의 소프트 팝 싱어 송라이터다. 그녀의 개인적이면서 진솔한 노랫말과 매력적인 선율은 석유 가격 인상으로 야기된 경제 불황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스타일을 구긴 1970년대 초반 미국인들의 마음고생을 어루만져 주었고 진실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 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1970년대의 빗장 풀린 상황을 치유하는 순기능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입...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은 다분히 1970년대 감성을 소유한 성인 취향의 소프트 팝 싱어 송라이터다. 그녀의 개인적이면서 진솔한 노랫말과 매력적인 선율은 석유 가격 인상으로 야기된 경제 불황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스타일을 구긴 1970년대 초반 미국인들의 마음고생을 어루만져 주었고 진실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 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1970년대의 빗장 풀린 상황을 치유하는 순기능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945년 6월 25일,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칼리 사이먼은 1971년에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인 1964년에 동생 루시 사이먼(Lucy Simon)과 함께 사이먼 시스터스(Simon Sisters)란 듀엣으로 ’Winkin’ Blinkin’ and Nod’를 빌보드 싱글 차트 73위에 올리면서 신고식을 치렀지만 대중들은 그녀의 이름을 가슴과 머리에 입력시키지 못했다. 늘씬한 몸매의 그녀가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1971년에 공개된 셀프 타이틀의 처녀작 < Carly Simon >부터이다. 신인으로서 대담하게도 결혼 제도에 반대하는 ’That’s the way I’ve always heard it should be(10위)’를 데뷔 싱글로 선택해 당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던 독신주의와 여권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두 번째 작품 < Anticipation >에서 터진 앨범 타이틀 ’Anticipation(13위)’과 ’Legend in your own time(50위)’의 뒷심으로 칼리 사이먼은 그래미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1972년의 3집 < No Secrets >에는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에게 혐의(?)를 둔 가사로 유명해진 ’You’re so vain’이 3주 동안 싱글 차트 정상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고, 두 번째 싱글 ’The right thing to do’도 17위를 마크하면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혼인에 회의적인 시각을 표현한 ’That’s the way I’ve always heard it should be’를 만들었으면서도 1972년에 같은 계열의 남성 싱어 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화촉을 밝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칼리 사이먼은 1974년에 ’Mockingbird(5위)’를 함께 불러 잉꼬부부의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그들은 1983년에 이혼했다). 그러나 불안정하고 혼란스런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 그녀의 사랑 타령에 팝 팬들이 식상하면서 칼리 사이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침체의 늪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화려하게 회생(回生)시킨 노래는 1977년에 개봉된 영화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2위)’였다. 이 여세를 몰아 1978년에 발표한 < Boys In The Trees >를 통해 배출된 히트 싱글 ’You belong to me(6위)’와 남편 제임스 테일러와 다시 함께 부른 ’Devoted to you(36위)’는 ’부활의 노래’였다. 1980년 음반 < Come Upstairs >의 4번째 트랙 ’Jesse’가 비록 11위에 등록되어 인기 차트와의 친밀감을 과시하긴 했지만 1980년대 팝계의 판도는 전자 음악의 등장이라는 커다란 지각 변동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뉴요커가 아날로그 방법으로 창조하는 노래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찍어내는 당시의 혁신적인 음악 스타일에 자리를 내주면서 다시 한번 사정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녀의 1980년대 부진도 영화 음악으로 극복되었다. 칼리 사이먼은 명배우 메릴 스트립과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 하트번 >의 사랑의 테마 ’Coming around again(1986년 18위)’와 멜라니 그리피스와 해리슨 포드가 타이틀 롤을 맡은 < 워킹 걸 >의 주제가 ’Let the river run(1989년 49위)’으로 예전의 명성을 회복했다. 특히 최고의 가창력을 과시한 ’Let the river run’으로 그래미와 아카데미를 석권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탈환한 영광의 자리는 1980년대 후반에 번성한 팝메탈과 그것에 반(反)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함성에 급속히 빛이 바랬다. 칼리 사이먼은 현재까지도 샘솟는 창작열을 모아 새로운 음반에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디스코그라피는 현재 진행형이다.
노래 : Alison Krauss (앨리슨 크라우스)
블루그래스 컨추리 보컬 블루그래스 컨추리 보컬
노래 : Rosemary Clooney (로즈마리 클루니 )
노래 : Willie Nelson (윌리 넬슨,Willie Hugh Nelson)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컨트리, 락 기타 연주자, 싱어송 라이터
노래 : Gladys Knight (글래디스 나이트)
미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미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노래 : Alice Smith (앨리스 스미스)
노래 : Ella Fitzgerald (엘라 피츠제랄드)
엘라 핏제랄드는 재즈 보컬의 역사를 다시 쓴 디바이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이 재잘거리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가장 능숙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악기 못지 않은 즉흥성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스윙과 비밥 시대에 걸쳐 더욱 빛난 달콤한 목소리와 넘실대는 스윙감을 통해 엘라 핏 랄드는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재즈역사에 각인되었다.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와 함... 엘라 핏제랄드는 재즈 보컬의 역사를 다시 쓴 디바이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이 재잘거리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가장 능숙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악기 못지 않은 즉흥성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스윙과 비밥 시대에 걸쳐 더욱 빛난 달콤한 목소리와 넘실대는 스윙감을 통해 엘라 핏 랄드는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재즈역사에 각인되었다.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와 함께 재즈 음악사에 길이 남는 ‘여인천하’를 이뤄낸 엘라 핏제랄드는 1917년 4월 25일 버지니아주 뉴포트에서 태어났다. 비운의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처럼 엘라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성장기의 대부분을 홈리스(homeless)로 보낼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엘라는 1934년 뉴욕 할렘가에 소재한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청중의 자격으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던 밴드 리더이자 드러머인 칙 웹(Chick Web)은 이 체구 작은(?) 소녀에게서 가능성을 발견, 자신의 빅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게 한다. 칙 웹의 도움으로 엘라는 그의 밴드의 리드 싱어 자격으로 대중 앞에 섰고 얼마 후 그녀가 데카(Decca) 레이블에서 처음 녹음한 ‘A-tiskete, A- Taskete’(1938), ’Undecided’(1939)가 공전의 히트를 거두며 가수로서의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그러나 1939년, 칙 웹의 갑작스런 요절로 인해 엘라는 그 후 2년 간 그가 떠난 밴드의 빈 공간을 메워 나가야 했다. 1942년 솔로로 독립한 그녀는 예전 소녀의 상큼함과 순수함이 느껴지던 데뷔시절과 달리 좀 더 완숙한 목소리로의 변신을 필요로 했다. 잉크 스팟(Ink Spot), 루이스 조던(Louis Jordan)과 같은 R&B 싱어들과 잠시 활동을 같이 하던 엘라였지만 자신이 가야할 길은 역시 ‘재즈’임을 깨 닳고, 1946년 노먼 그란즈(Norman Granz-훗날 버브 레코드의 사장이 됨)를 새 매니저로 맞이하며 비밥의 거성인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밴드의 리드 싱어로 일하게된다. 디지와의 연주 경험은 엘라가 비밥의 문법을 자기의 목소리로 소화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변화무쌍한 리듬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파트별 연주에 맞춰 터져 나오는 유창한 스캣 창법은 비밥의 연주와 그녀의 보컬이 어울림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 트리오의 백업 연주로 녹음된 ‘How high the moon’(1947)같은 곡에서 그녀의 스캣 창법은 악기에 버금가는 애드립이 목격된다. 1955년 버브(Verve)와 전속 계약을 맺은 엘라는 이 때부터 음악 인생의 최고의 황금기를 맞는다. < Songs from Pete Kelly’s blues >(1955)가 앨범 차트 7위를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기가도를 질주한다. 이듬해, 구수한 목소리의 트럼펫 주자 루이 암스트롱과의 듀엣 < Ella & Louis >(1956)가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쿼텟의 백업 연주로 발표 되 대중적, 비평적 찬사를 얻었으며 두 사람간의 음악적 교분은 < Ella & Louis again >(1957)과 < Porgy & Bess >(1958)로 이어진다. 이 앨범들은 재즈 팬들의 필수 컬렉션 대상들이기도 하다. 같은 해 <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이 재즈 판을 휩쓸며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성공을 거둔다. 이를 시작으로 엘라는 조지 거쉰(George Gerswin), 제롬 컨(Jerome Kern), 해롤드 알렌(Harold Arlen), 어빙 벌린(Irving Berlin)등 1세대 틴 팬 앨리 작곡가들의 명곡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방대한 작업을 수행한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틴 팬 엘리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하트 로렌즈(Hart Lorenz)의 곡으로 꾸며진 실황 앨범 < Ella Fitzgerald Sings The Rodgers And Hart Song >(1957)의 성공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군림하게 된다. 틴 팬 앨리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1958-59년 사이에 녹음해 발표한 조지 & 이라 거쉰(George & Ira Gershwin)의 곡을 집대성한 < The George & Ira Gershwin Song Book >(1959)을 통해 정점에 다다른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엘라는 < Mack The Knife-Ella In Berlin >(1960)을 폴 스미스(Paul Smith) 쿼텟의 연주로 녹음된 라이브 앨범을 공개, ‘How high the moon’, ’Mack the knife’를 히트시킨다. 이후 1963년엔 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퀸시 존슨(Quincy Jones)이 편곡으로 연주된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의 협연작 < Ella & Basie! >과 1965년엔 오랫동안 음악적 교분을 쌓아온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다시 의기투합해 < Ella At Duke Place >를 각각 발표하는 등 스윙의 거장과의 잇단 명작을 공개한다. 캐피톨(Capitol)로 이적해 다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간 엘라는 1969년 그만 백내장으로 인해 잠시 활동을 중단한다. 1973년 연로한 나이에 불구하고 < Ella Fitzgerald At The Carnegie Hall >을 발표했고, 1977년 몬트럭스 재즈 페스티벌에도 참가해 실황 앨범 < Ella Fitzgerlad With The Tommy Flanagan Trio-Montreux’77 >을 공개하며 예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손색없는 보컬 기량을 선보였다. 1980년대 이르러 지병인 심장병으로 인해 예전만큼의 노련함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엘라는 근근히 연주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그러나 나빠진 건강과 시력을 인해 그녀는 1994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2년 후인 1996년 6월 15일 비버리 힐즈에 있는 자신에 집에서 세상을 떠난다.
노래 : Linda Ronstadt (린다 론스태드)
팝계는 흥분과 격동의 60년대를 마감하고 70년대를 맞이하면서 린다 론스태드라는 뛰어난 여가수의 출현을 알린다. 70년대 초반 팝 음악은 불과 몇 해 전의 파워풀한 분위기와는 크게 다른 ‘차분한’ 기조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린다 론스태드는 이러한 소프트록과 ‘70년대식’포크의 상징이었다. 그의 인기는 70년대 중반부터 폭발해 이후부터 여가수 가운데 최고, 남자가수를 합쳐도 톱클래스라는 명성을 쌓아올렸다. 그... 팝계는 흥분과 격동의 60년대를 마감하고 70년대를 맞이하면서 린다 론스태드라는 뛰어난 여가수의 출현을 알린다. 70년대 초반 팝 음악은 불과 몇 해 전의 파워풀한 분위기와는 크게 다른 ‘차분한’ 기조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린다 론스태드는 이러한 소프트록과 ‘70년대식’포크의 상징이었다. 그의 인기는 70년대 중반부터 폭발해 이후부터 여가수 가운데 최고, 남자가수를 합쳐도 톱클래스라는 명성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슈퍼스타의 지위는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린다의 이름은 70, 80년대를 걸쳐 인지도가 가히 최고급으로 불멸의 애청곡 ‘아주 오랫동안(Long, Long Time)’ 하나만으로 기억하기 충분하고 ‘사랑에 빠지긴 너무 쉬워(It’s So Easy)’. ‘당신은 나빠요(You’re No Good)’등도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다. 이십대 팝 팬들은 90년대를 강타한 수작 ‘많이는 몰라요(Don’t Know Much)’로 린다의 존재를 숙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린다에게서 우선 발견되는 유별난 특성은 가히 놀라울 정도의 생명력이다. 1967년에 팝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활동 경력이 어느덧 사반세기를 넘겼다. 이처럼 롱런하는 동안 눈에 띄는 슬럼프를 경험함이 없이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인기만 유지한 것이 아니라 여가수 중 드물게 가창력은 물론 앨범으로서 음악성을 인정받아 ‘실력을 갖춘 여가수’라는 희소가치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말이 사반세기이지 그 기간 동안 팝 음악의 유행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으랴. 너무나도 쉽게 변해버리는 팝음악의 조류를 쫓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린다는 이것을 거뜬히 해냈으며 바로 이 점이 그를 무수한 팝가수 가운데 우뚝 서게 해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영원한 인기를 보장해준 밑거름은 출생부터 딸려나온, 거의 천재적인 ‘유행의 포착능력’이었다. 그는 유행을 미리 내다볼 줄 알았다. 록 음악의 시대에는 남자 못지않게 록을 소화했고 유행이 컨츄리 음악 쪽이겠다 싶으면 지체없이 컨츄리를 노래했으며, 펑크가 거세질 때는 펑크를 음반에 담았다. 옛날 고리짝 시절의 스탠다드 팝을 선보여 8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맞추어 나갔고 멕시코 가요 음반을 내놓기도 했고 블루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국의 팝 음악이 역사에 걸쳐 생성시킨 그 무수한 장르 가운데 린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장르는 없다! 90년대 그는 AP통신의 앤 피터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난 노래 스타일이 어찌됐든 단지 노래를 계속 해야 한다”며 “현재의 캐리어에 그냥 머물러 앉는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르에 구애됨이 없이 능력이 닿는다면, 시대가 그 스타일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것을 시도하겠다는 얘기다. 장하다고 칭찬해 줄 만한 바로 이 점이 정반대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가 데뷔이래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을 쭉 분석하면 그것은 영락없는 ‘카멜레온’의 음악행각이다. 하나의 고정 장르를 오랜 기간 고집스럽게 밀고나간 족적이 없다. 변덕스럽기 작이 없다. 스타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프로의식을 다른 시점에서 보면 그 만큼 대중의 감각에 철저히 ‘영합’했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유행의 흐름을 파도라 한다면 그는 실로 ‘파도타기의 명수’였다. 60년대말 록의 ‘저항’물결이 쇠락하면서 70년대가 소프트 록의 시대가 될 것을 간파한 그는 즉각 ‘보수적 신념’을 내비쳤다. 에벌리 브라더즈 또는 버디 할리의 컨츄리풍 록넘버를 리메이크해 ‘복고’의 기치를 드높였고, 60년대 록 스타들이 미국정부에 대해 도전한 것과 같은 공격성에 넌더리를 치며 “이 나라에 실질적인 애국심의 부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70년대 초 린다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위한 선거 캠페인을 끝낸 뒤 이렇게 말했다. “난 사실 그때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누구든 알겠는가. 만약 누군가 그것을 결정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면 기업 ‘스탠다드 오일’은 대통령이 안될 게 뭐 있는가. 기업이 사실 득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스탠다드 오일에 만약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다국적 대기업이 국가를 통치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당신들은 말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그 기업을 필요로 하고 그 기업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기업으로부터 직장을 얻고 있다. 그 기업이 이 나라와 나머지 전세계 국가의 경제상황에 무엇이 유리한가를 결정하는, 더 바람직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미국의 체제에 회의를 품지 말고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미국체제의 근간인 경제적 과두제, 대기업에 의한 경제운용, 그리고 기업이익 추구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 시점부터 린다는 ‘미국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 비판을 하나의 기조로 하는 록 뮤직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스타들과는 달리 의미있는 노랫말과는 결별했다. < 뉴스위크 >지는 77년 2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린다는 상승추세의 록 무대 활동기간 중 록성좌들의 ‘붉은 거성’과 ‘블랙 홀’을 피했다”며 그를 운좋고 조심할 줄 아는 인물로 묘사했다. 저항적 색채 또는 정치색에 물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보수성은 간혹 이중적 자세를 엿보이게 했다. 린다는 70년대말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사회저항적인 펑크 록의 움직임이 확산될 무렵 보수적 색깔을 드러내 “펑크는 변비가 심해 ‘치질’의 록이라 불러야 한다”며 욕설조로 펑크의 가치를 부정했다. 그런데 펑크의 기세가 거대한 물결을 야기시키며 팝과 록의 여러 장르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듯 펑크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78년 펑크의 거목 엘비스 코스텔로의 노래 ‘앨리슨(Alison)’을 부른 것을 필두로 80년도 음반 < 광기의 사랑(Mad Love) >에는 펑크적 분위기를 적극 살려 스파이크 헤어스타일을 한 린다가 자켓에 등장했으며 코스텔로의 노래를 ‘파티여자(Party Girl)’, ‘여자들의 말(Girl’s Talk)’ 등 두 곡이나 수록했다. 물론 이 시절에도 처크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스모키 로빈슨 등 옛곡을 재해석하는 ‘복고적 성향’을 잊지는 않았다. 외적으로는 최신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구식’을 고수하는 이 자세야말로 린다의 전형적인 대중접근 수법이자 그의 진정한 색깔이기도 하다(70년대 린다의 히트곡 대다수가 옛노래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점은 특기할 사항이다). 80년대 들어서도 린다는 시대적 특성을 정확히 읽었다. 때는 바야흐로 레이건의 보수 시대였다. 그는 지금껏 줄기차게 구사해왔던 록 뮤직을 걷어치워버리고 83년 스탠다드 넘버로 채색한 음반 < 무엇이 새로운가(What’s New) >를 발표했다. 스탠다드 넘버란 40년대 이전까지 유행한 상류계층의 노래로 향수어린 이지 리스닝을 연상하면 되는데, 린다의 음반 가운데에선 가장 보수적인 색채라 할 만한 것이었다. 넬슨 리들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제작한 이 앨범은 < 타임 >지 선정 그 해 팝음반 베스트 10의 하나였다. 이 작품이 예상외로 호평을 받자 린다는 84년 다시 한번 넬슨 리들과 손잡고 < 돌진하는 삶(Rush Life) >을 내놓았고, 이후 87년에는 멕시코 전통가요로 꾸민 < 아버지의 노래(Canciones de Mi Padre) >를, 88년에는 컨츄리 스타인 돌리 파튼, 에밀루 해리스와 노래한 < 트리오(Trio) >를 각각 출반했다. 이런 유형의 작품들은 대중으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린다의 시도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성질의 것이었다. 여하튼 그는 레이건 통치 8년간 단 한 번도 록 뮤직 또는 파워풀한 음악과 재회함 없이 부드러운 노래로 일관했다. 린다의 보수성은 가정환경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1964년 미국 애리조나주 턱슨에서 태어난 그의 가정은 매우 부유한 편이었다. 린다에게는 어렸을 적에 벌써 조랑말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과학 방면에서 뛰어난 지식을 소유한 인텔리였고, 아버지는 턱슨에서 대규모 하드웨어사업을 경영했다. ‘자본과 기술’이 제휴된 부르조아 부모 덕분에 린다는 전혀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풍족하게 살았다. 대다수 록스타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사실과 큰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그러나 린다의 소녀시절과 사춘기는 여느 록스타들처럼 도발적 끼가 넘쳐흘렀다. 여고시절에 그가 펼친 상상 가운데 하나는 ‘목사를 유혹하는 것’이었고, 아리조나 주립대학에서 한 학기를 수료한 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결혼하거나 수녀가 되는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하겠다는 제 3의 길을 택할 만큼 대담했다. 그는 스스로 그 시절의 자기를 ‘사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남성 지배의 록 세계로 뛰어든 것 자체가 용기였고 공연을 다니면서 남자의 세계에 깊이 동화될 정도로 순종적 자세를 거부했다(“난 공연을 다니면서 남성적 태도를 배웠다. 록큰롤의 실질적 자세를 말이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 말버릇은 마치 트럭 운전사와 같았다”). 그는 나이 50세가 되어가는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그간 제이 디 사우더, 돈 헨리, 믹 재거, 그리고 캘리포니아 시장 제리 브라운과 열애하거나 동거하기도 했지만 관계를 오래 끌지 않았다. 77년에는 ‘난 결혼하지 않으리(I Never Will Marry)’라는 곡을 내놓아 독신을 공식선언한 바도 있다. 부잣집 딸이, 게다가 용모까지 아름다운 여자가 사서 고생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린다가 반항적 기질의 소유자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성년기의 린다는 상층사회의 흐름에 거역치 않는 타협적, 보수적 자세로 일관해오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음악에 임하는 태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무질서로부터 질서의 확립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예술을 창조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린다가 노래하는 것은 다름아닌 질서와 안정이다. 그는 무질서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그에게 현실과 사회에 대한 도전적 자세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클레어 마틴은 지난 25년간 영국 재즈계의 원동력으로, 2010년 영국 재즈 어워드 선정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2011년 영국 여왕의 생일에 수여되는 명예로운 'O.B.E'를 수상하였다. 클레어 마틴은 지난 25년간 영국 재즈계의 원동력으로, 2010년 영국 재즈 어워드 선정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2011년 영국 여왕의 생일에 수여되는 명예로운 'O.B.E'를 수상하였다.
노래 : Tony Bennett (토니 베넷,Anthony Dominick Benedetto)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킹즈칼리지 출신으로 구성된 6인조 남성 아카펠라 중창단. 멤버 David Hurley (countertenor) Timothy Wayne-Wright (countertenor) Julian Gregory (tenor) Christopher Bruerton (baritone) Christopher Gabbitas (baritone) Jonathan Howard (bass) 킹즈칼리지 출신으로 구성된 6인조 남성 아카펠라 중창단.

멤버
David Hurley (countertenor)
Timothy Wayne-Wright (countertenor)
Julian Gregory (tenor)
Christopher Bruerton (baritone)
Christopher Gabbitas (baritone)
Jonathan Howard (bass)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