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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재즈 색소폰 명곡 베스트 2집 (Everlasting Jazz Sax Best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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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불후의 재즈 색소폰 명곡 베스트 2집 (Everlasting Jazz Sax Best vol.2)

[ 2CD ]
Stan Getz, Ben Webster, Charlie Parker, Bud Shank, Joe Pass 연주 외 19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Warner Music | 2018년 11월 12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96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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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재즈 색소폰 명곡 베스트 2집 (Everlasting Jazz Sax Best vol.2)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11월 12일
시간, 무게, 크기 500g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Stan Getz: `Round Midnight
  • 02 Ben Webster: Chelsea Bridge
  • 03 Charlie Parker: My Old Flame
  • 04 Bud Shank with Claire Fischer & Joe Pass: Autumn Leaves
  • 05 Stanley Turrentine: Let It Be
  • 06 Lester Young: All Of Me
  • 07 Lester Young & Teddy Wilson: Love Me or Leave Me
  • 08 Benny Carter: Ain't She Sweet
  • 09 Sonny Rollins: Time on My Hands
  • 10 Cannonball Adderley: Falling in Love with Love
  • 11 Dexter Gordon: I Should Care
  • 12 Lester Young & Oscar Peterson: These Foolish Things
  • 13 Sonny Stitt: Can't We Be Friends Sonny Stitt
  • 14 Coleman Hawkins: There's No You
  • 15 Art Pepper: Blues At Twilight
  • 16 John Coltrane: Like Sonny
  • 17 Lee Konitz: Foolin' Myself Lee Konitz
  • 18 Gerry Mulligan: Standstill
  • 19 Sidney Bechet: Sweet Georgia Brown
  • 20 Illinois Jacquet: Cottontail Illinois Jacquet
Disc2
  • 01 Lester Young & The Oscar Peterson Trio: Stardust
  • 02 Stan Getz with Charlie Byrd: Desafinado
  • 03 Charlie Parker:All the Things You Are
  • 04 Cannonball Adderley: Spring Is Here
  • 05 Don Byas: Time on My Hands
  • 06 Benny Carter: Someone To Watch Over Me
  • 07 Ben Webster: I’ll Wind
  • 08 Lee Konitz: Stairway To The Stars
  • 09 Bud Shank, Claire Fischer, Joe Pass: Serenidade Bud Shank, Claire Fischer, Joe Pass
  • 10 Gerry Mulligan: Almost Like Being In Love
  • 11 Stanley Turrentine: My Cherie Amour
  • 12 Sidney Bechet: Black And Blue
  • 13 John Coltrane: The Theme
  • 14 Sonny Rollins: Scoops
  • 15 Coleman Hawkins: Blues For Rene
  • 16 Dexter Gordon: I Hear Music
  • 17 Ornette Coleman: Mind and Time
  • 18 Illinois Jacquet: Jacquet Jumps
  • 19 Sonny Stitt: Stitt’s It
  • 20 Before The Rainfall: Virgin Winds (Ronnie Laws)

아티스트 소개 (24명)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1955년 3월12일, 뉴욕의 어느 조그만 아파트에서 한 흑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 관계자들은 시신을 살펴본 뒤 조사내용을 서류에 기입했다. 사인은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마비, 인종은 흑인, 나이는 약 65세. 당시 현장의 경찰 관계자들은 그것이 누구의 시신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밥의 혁명가’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이하 버드)의 죽음은 이토록 비참했다. 1920년... 1955년 3월12일, 뉴욕의 어느 조그만 아파트에서 한 흑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 관계자들은 시신을 살펴본 뒤 조사내용을 서류에 기입했다. 사인은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마비, 인종은 흑인, 나이는 약 65세. 당시 현장의 경찰 관계자들은 그것이 누구의 시신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밥의 혁명가’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이하 버드)의 죽음은 이토록 비참했다. 1920년 생이니까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5살, 하지만 술과 마약에 찌든 그의 몸은 망가져 있었고,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65살 노인으로 착각했을 정도이니 그의 건강이 얼마나 절체 절명의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배우이자 제작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가 감독한 영화 < Bird >(1988)는 이 비운의 버드의 생애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1945년,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Minton’s Play House)에서 동료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함께 한 성공적인 데뷔를 시작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재즈계의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창안한 비밥이란 문법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없다’는 이유로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뇌리 속엔 ‘자신은 흑인’이라는 운명이 자리잡고있었다. 공연 때마다 그를 보러오는 백인 여성들은 그를 유혹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는 이들과 성의 향연(?)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흑인이었기에, 그의 천재성은 백인이 패권을 지고 있던 미국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타협이라곤 모르는 그의 성격은 그를 차츰 고립의 늪으로 치닫게 했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20년 넘게 해온 마약과 술은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디지가 작곡해 준 ‘Groovin’ high’를 그의 색스폰으로 우렁차게 울린 그 날, 재즈의 역사는 다시 쓰여졌다. 비밥(Bebop)이라는 재즈의 신종 문법은 1940년대 주류 대중음악인 스윙의 대세를 벗어나 20대 초의 젊은 흑인 재즈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음악적 실험‘을 끝에 비밥은 빛을 본다. 바야흐로 모던 재즈 시대를 활짝 열어놓은 이들 젊은 뮤지션들은 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인물은 바로 버드였다. 그의 천재성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 캔사스 씨티 출신인 그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 같은 스윙 스타를 배출한 캔사스 씨티 음악 씬의 중심부에서 소년기를 보낸다. 바리톤 색스폰을 독학으로 익힌 그는 14세가 되던 1934년, 학교를 그만두고 그 지역 밴드들을 따라다니며 색스폰 연주를 익혀나간다.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잼(Jam) 세션을 벌인 그는 얼마 후 그는 그 지역의 스타 카운트 베이시 악단과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카운트 베이시 악단과 함께 했던 기억은 버드에게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만다. 그의 어설픈(?) 솔로가 진행되던 도중, 당시 드럼을 연주하던 조 존스는 갑자기 연주하던 심발을 풀어 그를 향해 내던졌다. 순간 그가 대중들의 웃음거리로 전략하고 만 이 일화는 물론 16세라는 나이를 감안할 때 아직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의 열악한 연주실력을 반증해주는 사례였지만, 스윙시대를 주름잡은 그의 선배들이 그의 독창적인 솔로 전개를 매우 거북스러워했음을 또한 증명해 준다. 스윙이 대세였던 당시까지만 해도 그가 새로운 재즈의 물결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스폰 주자 레스터 영(Lester Yong)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그는 다시 몇 년의 치열한 내공을 쌓은 후인 1940년, 뉴욕 52번가에 자리한 클럽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의 매니저 테디 힐(Teddy Hill)의 주선으로 뉴욕에 입성하며 ‘무서운 신인’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케니 클라트, 델로니우스 몽크, 닉 팬톤, 하워드 맥기, 조 가이, 그리고 그의 비밥 혁명을 가능케 해준 동반자 디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비밥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재즈의 흐름을 모색해 간다. 당시 재즈 평론가 제임스 콜리어가 옮겨 전하고 있는 케니 클라크의 말은 버드와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우리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이미 내가 드럼으로 연주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들려주었죠. 래스터 영보다 두 배는 빠르게 연주했고, 영이 다루지 못한 음들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943년, 최초의 비밥 보컬리스트 사라 본(Sarah Vaughan)의 백업 밴드를 맡고 있던 드러머 빌리 엑스타인 밴드에 합류해 그의 첫 레코딩을 하게 되고, 1944년 말 디지와 듀오를 결성, 버드 파웰(피아노), 막스 로치(드럼), 찰스 밍거스(베이스)으로 구성된 퀸텟을 결성한다. 이듬해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룬 그는, 자신의 애칭인 ‘새’(Bird)를 자신의 공식적인 이름으로 대신한다. 1945-1947년 디지와 함께 하며 미국 L.A. 지역 클럽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투어를 펼치던 이 시기에 ‘Groovin’ high’, ’Salt peanuts’, ’Shaw’ nuff’, ’Hot house’, ’Donna lee’, ’Ko ko’등 그의 음악성을 대표하는 명곡들을 발표한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1947-1949년 동안 자신의 새로운 퀸텟을 이끌며 듀크 조던, 토미 포터, 막스 로취, 그리고 줄리어드 음대를 다니다 그의 문하생이 된 신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영입한다. 1950년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보인 그의 퀸텟은 사보이(Savoy)레이블에서 활발한 레코딩 작업과 유럽 투어를 펼치며 연주경력의 절정을 맞이한다. 같은 해 버브(Verve)레이블과 계약, 디지와 다시 함께 한 앨범 < Bird & Diz >(1950)을 발표한다. 그러나 당시까지 그의 음악은 대중들로부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생계를 유지해 준 뉴욕의 클럽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R&B와 로큰롤이 서서히 고개를 들며 대중들은 점점 재즈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사생활 문제까지 겹친 그는 헤로인과 술로 시름을 달래려 했고, 이로 인해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기에 이른다. 1953년 그의 생애 마지막 녹음이 된 명반 < Jazz at Massey Hall >을 데뷔 시절 한솥밥을 먹은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 찰스 밍거스, 막스 로치와 함께 녹음한다. 악화된 건강은 결국 심장마비를 불러왔고 35세란 젊은 나이에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집에서 객사한다. 50년대 말 그의 영향을 고스란히 계승한 존 콜트레인의 등장으로 인해 그의 업적이 재즈계 내에서 차츰 부각되기 시작, 후대 재즈 학자들은 그를 기점으로 ‘아티스트의 주도’하에 이뤄진 찬란한 모던 재즈(Mordern Jazz) 시대가 개화했다고 칭송해마지 않는다.
재즈 색소폰, 플루트 연주자 재즈 색소폰, 플루트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연주 : Stanley Turrentine (스탠리 터렌타인)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피아니스트 재즈 피아니스트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연주 : Sonny Rollins (소니 롤린스,Walter Theodore Sonny Rollins)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연주 : Cannonball Adderley (캐넌볼 애덜리 ,Julian 'Cannonball' Adderley)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연주 : Oscar Peterson (오스카 피터슨)
재즈 연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악기는 무엇일까?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달콤한 멜로디의 주인공 색스폰, 다른 악기의 보조를 맞추며 특유의 화성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베이스 , 박진감 넘치며 복잡한 리듬감을 구사하는 드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하나로 종합할 수 있는 악기는 다름아닌 피아노이다. 리듬, 화성 ,멜로디를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이 악기는 그래서 모든 음악 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 재즈 연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악기는 무엇일까?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달콤한 멜로디의 주인공 색스폰, 다른 악기의 보조를 맞추며 특유의 화성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베이스 , 박진감 넘치며 복잡한 리듬감을 구사하는 드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하나로 종합할 수 있는 악기는 다름아닌 피아노이다. 리듬, 화성 ,멜로디를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이 악기는 그래서 모든 음악 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연주해봐야 하는 연주의 전공필수와 같은 위상을 지녔다. 재즈에서 피아노 연주자의 위상 또한 남달랐다. 스윙의 선구자로 추앙 받던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 모두 클래식으로 숙련된 피아니스트였고, 밴드에서 편곡과 리더를 맡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다른 악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연주의 세계를 피아노는 창조할 수 있었고, 이런 강점을 발판으로 재즈사를 통해 거론되는 피아니스트들은 또한 재즈의 진보를 일궜다. 영화 ‘스팅’의 주제가에서 목격 했던 스콧 조플린의 흥겨운 랙 타임, 랙 타임 리듬에 멜로디의 고난이 즉흥성이 가미된 할렘 스트라이드 주법의 팻츠 월러, 최초의 비밥 피아니스트로 평가 받는 아트 테이텀, 대중성을 바탕으로 범접할 수 없는 연주 세계를 창조한 피아노 예술가 에롤 가너… 한 때 리듬 악기로만 국한 되었던 피아노는 이들의 창조력으로 어느덧 풍부한 화성과 운치 있는 멜로디라는 두 날개를 달며 재즈 연주에선 없어선 안 될 악기로 부상했다. 오스카 피터슨은 위에 언급한 재즈 피아니스트 중 시기적으로 가장 나중에 위치한 사람이다. 1925년생이니까 동년배의 다른 아티스트들이라면 일반적으로 비밥, 하드 밥의 대가쯤으로 알려져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줄기차게 ‘스윙 ’연주만을 고집한 피아니스트다. ‘재즈’는 곧 ‘스윙’이라 할 정도로 그는 이 매력적인 장르를 지금껏 생명력 있게 이어줄 수 있게 한 동인이다. 팝 가수 빌리 조엘(Billy Joel)은 자신의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의 바로 ‘재즈’이며 (가령 ‘New york state of mind’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런 재즈 연주자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을 오스카 피터슨으로 꼽았을 정도로 팝 가수, 특히 피아노 연주를 하는 싱어 송 라이터들에게 그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만큼 그의 연주는 동시대 ‘비밥’ 연주처럼 난해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리듬감과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49년 당시 신생 레이블 버브(verve) 사의 사장 노먼 그란쯔의 주선으로 본격적으로 재즈의 중심에서 활동하게 된 그는 이후 1965년까지 버브 레이블을 통해 ‘피아노 트리오’ 편성(베이스에 레이 브라운, 기타에 허브 엘리스 또는 바니 케슬)으로 기억될 수많은 재즈 연주를 남겼다. 우리에겐 가수로 더 잘 알려진 냇 킹 콜(Nat King Cole)이 1940년대 초 보여준 피아노 트리오 양식을 계승해 그는 ‘드럼’이 없이 베이스와 기타로 구성된 트리오를 계승해 보다 리드미컬하고 다양한 화성과 노트를 사용해 스윙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세련된 트리오 연주 스타일을 창조했다. 피아노 트리오를 고안한 건 냇 킹 콜이었지만 그가 가수로 나선 뒤 생긴 공백을 오스카 피터슨이 매우며 보다 다채롭게 발전시킨 셈이다. 1925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오스카 피터슨은 6살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통해 음악에 입문한다. 청년시절, 냇 킹 콜의 트리오 연주를 통해 스윙에 마력에 푹 빠지고 만 그는 피아노 역주에 보다 역동성을 가미시키며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하려 고군분투한다. 이런 노력 끝에 1949년 버브사의 사장 노먼 그란쯔에 의해 눈에 띄어, 같은 해 ‘Jazz at Philharmonic’ 공연에 초청되었고, 이내 미국에서 유명한 재즈 뮤지션 반열에 오른다. 이후 그에게 기회를 가져다 준 < Jazz at Philharmonic > 공연에 그는 1966년까지 단골 연주자로 참석한다. 사실 미국에서의 그의 첫 밴드는 트리오가 아닌 듀오였다. 데뷔 시절부터 그의 음악적 동반자가 되어 준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은 이후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핵심이었는데 오스카와 듀엣으로 활동하며 데뷔작 < Tenderly >(1950)을 발표하며 상업적, 비평적인 성공을 거둔다. 50년대 초엔 기타를 추가하며 명실상부 피아노 트리오의 위용을 갖춘다. 오스카 피터슨-레이 브라운-허브 엘리스(바니 케슬)로 구성된 3인조는 < Keyboard >(1950), < An Evening with Oscar Peterson >(1950), < Nostalgic Memories >(1951)등 발표되는 앨범마다 연이어 히트를 기록하며 향후 10년간 연주 경력에 상승곡선을 그린다. 스윙을 바탕으로 빈틈없고 깔끔한 트리오 연주는 이내 입 소문으로 퍼져 빌리 홀리데이, 엘라 핏 제랄드, 루이 암스트롱과 같은 재즈 보컬의 세션을 맡기도 했고, 카운트 베이시 빅 밴드, 레스터 영, 베니 카터, 로이 엘드리지, 벤 웹스터 등 스윙시대 최고의 솔리스트들의 백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스윙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고전의 재해석’에서도 남달랐는데, 콜 포터, 어빙 벌린, 조지 거쉰, 제롬 컨, 리처드 로저스으로 구성된 1세대 틴 팬 엘리 작품을 집대성한 송 북(Songbook)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그의 트리오도 기타리스트 허브 엘리스의 탈퇴로 잠시 동안 그 견고함이 흔들리게 된다. 이에 기존 피아노-베이스-기타에서 기타를 빼고 드럼을 에드 씨그펜(드럼)을 가입시키며 ‘제 2기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를 출범시킨다. 1965년까지 이어진 트리오 라인업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앨범 < The Trio >(1961)을 시작으로 West Side Story >(1962), < Night Train >(1962), < Canadian Suite >(1964), < We get Request >(1964), 트럼펫 주자 클락 테리가 참가한 중반기 걸작 < The Oscar peterson Trio+ one >(1964)와 같은 명연을 남기며 제 2의 전성시대를 구가한다. 1965년을 정점으로 그의 트리오는 차츰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의 동반자 레이 브라운 마저 탈퇴한 상황에서 잦은 멤버 교체로 그가 쌓아 온 명색도 차츰 퇴색되기 시작했다. 재즈 퓨전이 창궐한 197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그는 20여년 넘게 그의 동반자가 되준 버브 레이블을 떠나 파블로 레이블을 통해 활동을 지속했고 ‘기타 비르투조 조 파스와 함께 한 후반기 명반 < The trio >(1973)을 비롯, 엘라 핏 제랄드, 카운트 베이시, 디지 길레스피, 사라 본, 로이 엘드리지, 주트 심스 등 백전노장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알리기에 노력했다. 80년대엔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1990년대 들어 그는 왕년의 트리오 멤버 레이 브라운과 허브 엘리스를 다시 불러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를 한시적으로 다시 구성해 앨범 < Oscar Peterson trio Live at Blue Note >(1990)를 발표한다. 단 이틀간의 재결합이었지만 그 해 재즈 뉴스 중 단연 화제였던 이들의 재결성 이벤트는 그의 올드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현재 여든을 앞둔 고령인 그는 지난 1993년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팬들을 긴장하게 했지만 2년여의 치료 끝에 1995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왼쪽 손이 약해져 현재로는 왕년의 다이내믹한 피아노 연주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중요한 건 나의 건강상태가 아니다, 다만 팬들 앞에서 완벽한 연주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게 아쉽다”라는 그의 말에서 무대를 향한 열정을 짐작케 한다. 영원한 ‘피아노 맨’으로 기억될 오스카 피터슨은 지금까지 재즈 연주 중 가장 매력적인 연주 스타일인 트리오 연주의 명맥을 지금껏 존재케 해준 선구자로 평가된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연주 : Coleman Hawkins (콜맨 호킨스,Coleman Randolph Hawkins)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부로 통하는 아트 페퍼(Art Pepper)는 편안하고 따스한 감성의 음악으로 재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백인 색소폰 연주자이자 클라리넷 주자이다. 위대한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시름하며 힘겹게 살아야 했던 그는 30여 년의 지독한 약물과의 투쟁에서도 음악을 향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25년 9월 1일 캘리포니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트 페퍼(본명: Arthur ...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부로 통하는 아트 페퍼(Art Pepper)는 편안하고 따스한 감성의 음악으로 재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백인 색소폰 연주자이자 클라리넷 주자이다. 위대한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시름하며 힘겹게 살아야 했던 그는 30여 년의 지독한 약물과의 투쟁에서도 음악을 향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25년 9월 1일 캘리포니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트 페퍼(본명: Arthur Edward Pepper Jr.)는 9살의 나이에 클라리넷을 접했다. 클라리넷 수업을 통해 재즈에 취한 그는 13세에 알토 색소폰을 들고 풀타임 뮤지션의 길을 택했다. 웨스트 코스트 재즈 밴드인 거스 앤하임(Gus Anheim)의 멤버로 프로 뮤지션 생활을 시작한 이 젊은 연주자는 LA에서 흑인들과 함께 연주 폭을 넓혔으며 베니 카터(Benny Carter), 스탄 켄톤(Stan Kenton)의 빅밴드에서 색소폰 주자로 활약하면서 주류 뮤지션으로 올라섰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중반 군 복무 이후, 스탄 켄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아트 페퍼는 순회공연을 통해 출중한 실력을 마음껏 펼치며 정상의 색소폰 연주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쾌속항진 이면에서는 아트 페퍼 삶의 고통이 시작되고 있기도 했다. 스탄 켄톤 밴드와 함께하며 마약을 상용하던 페퍼는(이름이 마약을 연상시키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데뷔 앨범의 성공을 뒤로 한 채 마약 덕분에 1950년대 초반 두 차례 감옥 신세를 져야 했으며, 전성기를 구가해야 할 시기에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은 삐걱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아트 페퍼의 삶은 재활과 재기의 연속이었다. 50년대 후반 재기에 성공하여 쳇 베이커(Chet Baker)와 함께한 < The Route >, < The Playboys >, 그의 대표작들로 기록되어진 < The Artistry of Pepper >, < Meets the Rhythm Section > 등으로 역량을 뽐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마약으로 다시 철창 신세를 지게 되었고, 1960년 다시 공백을 메우며 < Gettin’ Together >와 같은 히트 앨범을 만들어 내었다. 1960년대 하워드 럼지(Howard Rumsey)의 악단에서 활약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던 아트 페퍼는 1960년대 중반 존 콜트레인(John Coltrain)의 영향을 받아 테너 색소폰을 들고 프리재즈에 다가서는 등 음악적 깊이를 더해 나갔지만 깊어지는 마약 중독 때문에 다시 한 번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1960년대 후반 버디 리치(Buddy Rich) 악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점점 심각해지는 헤로인 중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1969년에서 1971년까지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음악 활동은 정지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트 페퍼는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부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재활에 성공하여 1975년 공연을 통해 컴백을 했다.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음악으로 다시 수준 높은 앨범들을 만들어 냈다. 자신의 특유한 부드러움과 아늑함을 보존하면서 비밥 이후의 퓨전 스타일을 시도한 < Among Friends > 같은 주목할만한 앨범들이 이때 나왔다. 1970년대 말, 제2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를 괴롭히던 마약 중독은 1982년 6월 1일 그의 생을 앗아가고 말았다. 굴곡 많았던 재즈 대가 아트 페퍼의 삶은 자서전을 통해 접할 수 있다.
100년이 조금 넘는 재즈 역사 속엔 ‘연주의 감동’을 창조한 대가들이 존재한다. 재즈 즉흥 연주를 창조한 루이 암스트롱, 스윙을 통해 재즈를 일약 미국 주류 대중음악 반열에 올려놓은 듀크 엘링턴, 비밥으로 재즈를 예술적인 경지로 부상시킨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쿨에서 출발해 모드를 거쳐 퓨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 스타일을 확립시킨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들이다. 앞에 언급된 대가들에 이어 다시 한번 재즈사... 100년이 조금 넘는 재즈 역사 속엔 ‘연주의 감동’을 창조한 대가들이 존재한다. 재즈 즉흥 연주를 창조한 루이 암스트롱, 스윙을 통해 재즈를 일약 미국 주류 대중음악 반열에 올려놓은 듀크 엘링턴, 비밥으로 재즈를 예술적인 경지로 부상시킨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쿨에서 출발해 모드를 거쳐 퓨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 스타일을 확립시킨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들이다. 앞에 언급된 대가들에 이어 다시 한번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연주자가 있다. 바로 색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다. 1955년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멤버로 활동하며 주류 재즈계에 등장한 그는 1967년 세상을 떠날기까지 10여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연주의 경지를 제시했다. 대표작 < Giant Step >(1959)을 통해 존은 ‘쉬트 오브 사운드’ 즉, ‘음의 덩어리’란 연주 방법을 창안해 재즈계를 경악케 했다. 순간적으로 4옥타브를 넘나드는 엄청난 기복의 연주와 16분음, 32분음과 같은 미분음을 연속해서 내는 ‘쉬트 오브 사운드’는 기존 비밥 즉흥 연주의 한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 기타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록 오케스트라를 창조한 지미 헨드릭스처럼 존 콜트레인은 색소폰을 통해 재즈가 펼칠 수 있는 연주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혀 놓은 셈이다. 하지만 ‘파괴의 정서’로 대변되는 이런 그의 연주가 이토록 지금까지 추앙받는 데엔 혁신적인 연주 그 이상의 무엇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 시대의 산물이란 말이 있듯, 존의 연주는 그가 한창 활동했던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의 혼란했던 미국 사회, 그리고 흑인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음악이 흑인 민권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사람들을 날려보내는 듯한 가슴 후련한 연주는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들의 아우성을 연상시켰다. 1963년 9월 15일 미국 알라바마 버밍험에 소재한 교회 내에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흑인 소녀 4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들의 장례식엔 음울한 장송곡 대신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와 샘 쿡의 ‘A change is gonna come’,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Alabama’가 그의 색소폰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 예술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증거이다. ‘Alabama’는 존 콜트레인이 당시 흑인들을 울분을 대변하는 의식 있는 아티스트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신께 헌정하는 앨범 < Love Supureme >(1964)으로 존은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며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인 대통령 후보자로까지 거론된다. 존 콜트레인은 음악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하진 않았지만 재즈를 연주하는 모든 흑인,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무의식 속엔 ‘재즈는 곧 흑인의 자부심’이란 가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드밥에서 시작해 프리 재즈로 뿌리내린 짧고 굵었던 음악 인생동안 그는 흑인만이 할 수 있는 연주의 영역을 부단히 개척했고 그 중심엔 가스펠, 다시 말해 흑인의 영혼인 블루스(Blues)가 멤돌고 있었다. 60년대 흑인들이 소울과 더불어 존 콜트레인의 연주에 애착을 갖는 건 블랙,즉 검은것의 자존심을 드높였다는 데에 있다. 1926년 9월 23일 노스캐롤라이나 햄릿에서 태어난 존 콜트레인은 음악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청소년시절 밴드부 클라리넷 연주를 배우며 당시 인기 상종가를 누리던 빅 밴드 리더 아티 쇼의 연주를 카피하며 재즈에 눈을 뜬다. 프로 뮤지션이 되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존은 1943년 지역 스윙 밴드 단원으로 일하며 프로 세계에 진출한다. 오른스타인 음악학교에 입학해 정규 음악교육을 받게 된 존은 1945년 해군에 징집돼 군복무중 해병대 군악대 ‘멜로디 마스터’에 배치되었고 군을 재대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존은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그라노프 스튜디오에서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의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된다. 1947년 군 재대 후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비밥 열풍에 동참하고 싶었던 존은 이때부터 테너 색소폰을 손에 쥐게 된다. 훗날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1949년 9월, 존은 비밥의 명인 디지 길레스피 빅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주류 무대에 도약할 기회를 얻은 그는 다른 명연주자의 스타일을 습득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특히 찰리 파커의 색소폰 연주는 그야말로 산 교과서였다. 존은 버드의 연주에 완전히 흡수돼 그처럼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였던 셈이다. 50년대 들어 경기는 호황이었지만 비밥 연주를 하는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생활은 어려웠다. 대중들은 캡 칼로우 웨이나 빅 조 터너의 알 앤 비 사운드나 프랭크 시나트라와 딘 마틴의 스탠다드 팝에 경도돼 흑인 비밥 뮤지션들이 설 자리를 빼앗아 갔다. 비밥을 연주할 공간을 찾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재즈의 명인들이 헤로인으로 하나 둘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찰리 파커는 이미 마약 중독이 위험수위에 올랐고 ‘쿨의 탄생’으로 비밥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던 마일스 데이비스도 기대 이하의 씁쓸한 반응을 삼키며 헤로인에 빠져 들고 있었다. 당시 인기를 누리던 알 앤 비 밴드였던 조니 호지스 밴드 투어에 합류해 비교적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존 콜트레인도 결국 얼마 못가 헤로인에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색소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게 된 존 콜트레인은 결국 1952년 조니 호지스 밴드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다시 3여년의 긴 내공 끝에 존 콜트레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 준건 다름 아닌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8년 전의 인연으로 존은 마일스가 조직한 퀸텟의 테너 색소폰 주자로 발탁돼 1955년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첫 앨범 < ’Round Midnight > 녹음에 참여한다. 마일스는 차분하고 부유하는 듯한 자신의 트럼펫 소리와 충돌해 긴장감을 조성해 줄 색소폰 연주를 찾았고 마침 활화산 같이 폭발적인 솔로를 구사하는 존 콜트레인 색소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56년 한 해 동안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멤버 자격으로 존 콜트레인은 < Workin’ >, < Steamin’ >, < Cookin’ >, < Relaxin’ > 과 같은 하드 밥 명반들을 프레스티지(Prestige)를 통해 연이어 발표한다. 마일스와 만나기 전까진 재즈계에서 무명이었던 존 콜트레인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멤버로 활동하며 명실상부 주류 음악 무대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이런 성공에 반해 헤로인 중독은 여전히 먹구름처럼 그를 괴롭혔다. 거기다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과 툭하면 연주 시간에 늦는 그의 불규칙한 생활로 퀸텟의 팀웍에 금이 가기 일쑤였다. 결국 리더인 마일스와의 심한 다툼 끝에 1956년 말, 존은 퀸텟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존은 그러나 평소 그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해오던 기인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선처에 힘입어 그의 밴드 멤버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존은 몽크와의 협연으로 리버사이드 레이블을 통해 총 4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 Thelonious Monk with John Coltrane >, < Thelonious himself >, < Monks Mood >, < Live at the five spot >이 그것들이다. 절제되고 명료한 톤의 연주를 선호했던 마일스와 달리 현란하고 다소 정돈되지 않은 듯한 스타일의 연주를 즐긴 몽크는 그야말로 존 콜트레인과 찰떡궁합이었다. 마일스와 존의 연주는 상극의 연주라면 몽크와 존의 연주는 상생하는 연주였던 셈이다. 몽크의 권유로 한번에 2-3개 음을 동시에 내는 연주기법도 이 때 등장한다. 둘의 협연은 6개월로 그쳤지만 몽크 덕분에 마일스는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재기의 의욕을 다진 존은 헤로인을 끊고 밴드를 결성해 독집 앨범을 준비해간다. 솔로 데뷔작인 < Coltrane >(1957)과 < Soul Trane >(1957)을 거쳐 초기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 Blue Train >(1957)을 발표하며 존은 ‘하드밥의 새로운 거목’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강한 느낌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성공적인 솔로 데뷔에 있은 지 얼마 후 존은 다시 마일스로부터 밴드에 와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존이 마일스에게 돌아왔을 땐 퀸텟이 아닌 섹스텟이 되어있었는데 알토 색소폰 주자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y)가 함께 연주한다. 존이 섹스텟 멤버로 발표한 < Milestone >(1958)은 모달 재즈(Modal)의 원형을 제시하며 코드 중심의 연주가 아닌 스케일 중심의 연주, 다시 말해 화음이 중심이 아닌 선율이 중심이 되는 패턴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의 작품이었다. 전 재즈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1959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이었다. 지금까지도 모던 재즈의 대표작으로 칭송되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 Kind of Blue >와 존 콜트레인의 < Giant Step >이 탄생됐기 때문이다. < Kind of Blue >의 녹음의 참여한 존은 ‘So What’과 ’All Blues’에서 역사상 가장 빛나는 테너 색소폰 연주를 남긴다. < Kind of Blue >의 녹음이 끝난 직후 존은 어틀랜틱 레코드사에서 < Giant Step >을 녹음한다. 폴 체임버스, 토미 플라나간, 윈튼 켈리, 지미 콥, 아트 테일러가 참여한 앨범은 ‘소리의 신기원’을 제시했다. 테너 색소폰만 하나만으로 존은 한번에 여러 개의 음계를 넘나드는 초절기교를 선보인다. 당시 재즈 평론가 이안 기틀러는 이런 콜트레인의 사운드를 일컬어 ‘음의 덩어리’(Sheet of Sound)라 명명했다. 몽크와의 협연을 계기로 오랜 실험 끝에 빛을 본 존의 이 혁신적인 연주스타일은 재즈의 표현 영역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와 함께 이후 등장할 많은 색소폰 연주자들이 넘어서야만 하는 절망(?)스런 과제를 남기게 된다. 이듬해 발표된 < My Favorite Thing >(1960)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스코어를 담당하게 될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왈츠곡 ‘My favorite thing’을 비롯해 조지 거쉰의 ’summertime’등 좀더 대중적인 배려가 돋보인 앨범이다. 또한 존은 이때부터 묵직한 테너 색소폰 대신 부드러운 선율을 만드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사용한다. 존은 자신의 연주가 좀더 덜 서구적인 것으로 비쳐지길 원했고 아랍이나 동양권의 관악기(가령 우리나라의 태평소)와 흡사한 소리를 내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적극 연주에 포함시킨다. 1961년 마일스 데이비스 섹스텟을 나온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정규 쿼텟을 조직한다. 이름하여 ‘존 콜트레인 클래식 쿼텟’으로 활동하게 되는 맥코이 타이너(피아노), 엘빈 존슨(드럼), 스티브 데이비스(베이스)는 이후 4년간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며 신생레이블이었던 임펄스!(Impulse!)를 통해 명연들을 남긴다. 콜트레인 쿼텟은 재즈에만 음악적 관심을 한정시키지 않고, 아프리카, 중동 등 3세계권 음악을 자신의 영향권에 뒀다. < Africa/brass >(1961)같은 앨범이 대표적인 예인데, 존은 당시 부상하고 있던 플릇/색소폰 연주자 에릭 돌피를 비롯해 11개의 브라스가 참여해 아프리카 토속리듬과 인도의 라가를 적극 도입했다. 이런 실험성 짙은 대작에 부담스러워 한 음반사는 존에게 좀 더 대중적인 재즈 연주 앨범을 만들어보길 권했고, 그 결과 나온 작품이 < Ballad >(1962)와 < Duke Ellington and John Coltrane >(1962)이다. < Ballad >에선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로 유명한 ‘Nancy’가 < Duke Ellington with John Coltrane >에선 ‘In a sentimental mood’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혀를 내 두르게 하는 격정적인 색소폰 연주는 아니었지만 < Ballad >와 < Duke Ellington with John Coltrane >은 존 콜트레인의 다른 어떤 음반보다 인기를 얻었다. 당시 흑인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민권운동은 1963년 극에 달했다. ‘버밍험의 전투’라고까지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그해 8월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가 나온 워싱턴 행진으로 이어졌다. 억압 속에 자유를 호소하는 노래였던 가스펠은 민권운동을 통해 감정 표현을 넘어서 흑인들의 유일한 무기가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아침 이슬과 6월 항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소울은 흑인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 수단 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흑인 가수들이 목소리 높여 소울을 들고 나왔다. 존은 신께 경배하는 연주로 흑인 민중의 민심을 반영했다. < Love Supreme >(1964)은 존 콜트레인이 주류 재즈 뮤지션으론 처음 신께 헌정하는 연주였다. 총 4부의 구성으로 진행되는 연주는 흡사 흑인교회 대중 집회를 연상시키는 고양감으로 넘실거린다. 그의 정규 쿼텟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 Love Supreme >은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들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며 소리 소문 없이 발매 1년 만에 50만장이란 판매고를 기록한다.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존의 자유의지는 결국 프리 재즈로 향한다. 오넷 콜먼이란 젊은 색소폰 주자가 들고 나온 이 무형식의 전위 재즈는 재즈계 내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존 콜트레인도 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미 존 콜트레인은 오넷 콜먼과 함께 연주했던 트럼펫주자 돈 체리와 함께 앨범 < The Avant Garde >를 1959년에 녹음했지만 당시 존의 소속사였던 어틀랜틱 레코드사가 1966년이 돼서 발표하는 바람에 1년 앞선 < Ascension >(1965) 그의 첫 프리 신고식이 됐다. 무한자유로의 질주는 결국 프리 재즈의 광기로 이어졌다.소음과 흡사한 음을 한번도 쉬지 않고 40분 이상 해내는 연주자는 당시까진 존이 유일했다. < Giant Step >과 < Love Supreme >의 연주를 원했던 팬들은 이미 괴물이 돼 버린 존의 음악성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난해한 연주기교와 멜로디의 부재는 대중성을 외면한 결과가 된 셈이다. 이 당시 수시로 복통을 호소했던 존은 급기야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더욱 창작에 열을 올렸고 1966년 녹음된 < Interstellar space >를 끝으로 존은 말기 간암판정을 받게 되고 급기야 1967년 7월 17일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은 재즈계에 예기치 않은 공백을 가져온다. 모든 에너지를 연주에 쏟아 넣었던 탓에 그를 능가할 재즈 뮤지션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더 이상 도전적인 연주가 없다 생각한 재즈계는 심지어 존 콜트레인 사후 ‘재즈는 죽었다’ 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의 공백은 재즈계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이렇게 갈피를 못 잡던 재즈계는 한창 부상하던 록 음악 열풍에 밀려 자꾸만 청중을 잃어갔다. 이런 상황에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와 록의 이종교배로 탄생된‘재즈 록 퓨전(Jazz Rock Fusion)’ 을 들고 나와 잃었던 대중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재즈계는 존 콜트레인을 종점으로 하는 ‘메인스트림’과 마일스 데이비스를 선두로 하는 ‘퓨젼’으로 나뉜다.
재즈 알토 색소폰 재즈 알토 색소폰
재즈 색소폰, 클라리넷 연주자 재즈 색소폰, 클라리넷 연주자
소프라노 클라리넷, 색소폰 연주자 소프라노 클라리넷, 색소폰 연주자
연주 : Illinois Jacquet (일리노이 자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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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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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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