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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음악 (Queen - Bohemian Rhapsody OST)

Freddie Mercury 노래/Queen 밴드 | Universal / Virgin EMI | 2018년 10월 31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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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4개)

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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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18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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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2명)

1968년 영국 임페리얼 대학의 학생이었던 브라이언 메이(Brian May)와 팀 스타펠(Tim Staffell)은 밴드를 만들기로 결의했고, 학교 게시판 광고를 보고 찾아온 젊은 의학도 로저 테일러(Roger Talyor)와 함께 스마일(Smile)이라는 트리오를 결성했다. 그러나 레코드사의 지원 부족으로 1970년에 스마일은 해체되고 말았다. 이전부터 스마일의 멤버들과 친했던 프레디 벌서라(Freddie Bu... 1968년 영국 임페리얼 대학의 학생이었던 브라이언 메이(Brian May)와 팀 스타펠(Tim Staffell)은 밴드를 만들기로 결의했고, 학교 게시판 광고를 보고 찾아온 젊은 의학도 로저 테일러(Roger Talyor)와 함께 스마일(Smile)이라는 트리오를 결성했다. 그러나 레코드사의 지원 부족으로 1970년에 스마일은 해체되고 말았다. 이전부터 스마일의 멤버들과 친했던 프레디 벌서라(Freddie Bulsara)는 로저, 브라이언과 함께 새 밴드를 만들기로 하고 그의 이름을 머큐리(Mercury)로, 밴드의 이름을 퀸(Queen)으로 바꾸었다. 세 명의 베이스주자가 퀸을 거쳐 갔고, 1971년 2월, 존 디콘(John Deacon)은 퀸의 네 번째 멤버가 되었다. 1972년에는 트라이던트(Trident)와 계약을 맺었고, 낮은 수당만을 받으며 스튜디오가 비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녹음한 첫 앨범을 1973년 7월 발매하였다. 퀸의 첫 메이저 투어는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의 서포트 밴드 자격으로 1973년 11월 영국 리즈(Leeds)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74년 3월, 재킷의 인쇄 문제를 수정하라는 밴드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예정보다 늦게 2집 < Queen II >가 발매되었다. 1974년 3월, 밴드는 자신들이 주인공인 첫 번째 영국 투어에 착수했고, 4월에는 ‘모트 더 후플’의 서포트 밴드로서 첫 미국 투어에 들어갔다. 5월에 간염으로 쓰러졌던 브라이언이 휴식과 녹음을 병행하며 참여해 만들어낸 세번째 앨범 < Sheer Heart Attack >이 발매된 것은 그 해 11월이었다. 앨범은 유럽과 북미 양쪽에서 엄청나게 히트했고, 사람들은 퀸이 빼놓을 수 없는 거물이 되어버렸음을 알아차렸다. 싱글로 발표된 ‘Killer Queen’은 영국차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듬해에는 미국 팝 차트에도 진출, 12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1975년 1월, 퀸은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미국 투어에 나서, 1일2회 공연해도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4월에는 최초로 일본 방문길에 올랐으며, 공항에는 3천명의 팬이 몰려 나와 열광적으로 그들을 환영해 밴드를 놀라게 했다. 6월에는 새 앨범 < A Night At The Opera >의 작업에 착수, 불공정한 트라이던트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존 레이드(John Reid)와 새로운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사람들은 신곡 ‘Bohemian rhapsody’는 너무 길어 히트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으나, 곡에 매료된 디제이 케니 에버릿(Kenny Everett)이 프레디에게 개인적으로 받은 홍보용 싱글을 이틀 동안 열네 번 방송에 내보냈다. 곡은 어마어마한 히트를 했고, 퀸을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곡의 홍보를 위한 뮤직비디오는, 이후 뮤직비디오 대유행의 효시로 간주되었다. 싱글은 9주 동안이나 영국차트 1위에 머물렀다. < A Night At The Opera >의 제작비는 당시 최고 수준이었고, 1975년 11월에 발매가 되자 큰 히트를 기록하여 퀸에게 최초의 플래티넘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표지에는 프레디가 첫 앨범을 위해 만들었던 퀸 로고를 재 작업하여 사용하였다. 이 앨범에선 미국 차트 9위에 오른 ‘Bohemian Rhapsody’에 이어 존 디콘이 쓴 ‘You’re my best friend’(영국 7위, 미국 16위)가 히트했고 국내에서는 두 곡 외에도 프레디 머큐리가 쓴 아름다운 발라드 ‘Love of my life’가 폭발적으로 애청되었으며 브라이언 메이 작품인 ‘39’도 줄기차게 전파를 탔다. ‘Love of my life’가 퀸의 한국 최고 레퍼토리가 된 데는 ‘Bohemian rhapsody’가 공륜으로부터 허무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처분을 받아 라이선스 앨범에 수록되지 못한 덕(?)도 작용했다. 1976년 1월, 프레디는 ‘Bohemian Rhapsody’로 아이버 노벨로(Ivor Novello)상을 ‘Killer Queen’에 이어 다시 한번 수상했다. 또한 밴드는 세 번째 미국 투어를 시작하여 3월에 끝내고 향일(向日), 다시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당시 넉 장의 퀸 앨범 모두가 영국차트 20위권에 머물러 있었고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대규모 일본 투어를 끝내고 호주로 가서 < Down Under(호주) >라는 제목의 순회공연을 벌였다. 다음 앨범인 < A Day At The Races >의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녹음을 중단하고 짧은 영국 투어에 착수했다. 1976년 9월18일, 퀸은 팬들을 향한 감사의 뜻으로 런던의 유명한 하이드파크에서 대규모 무료공연을 열었다. 청중은 15만-20만 명 사이로 추산되어 현재까지도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공연의 최다 관객동원기록으로 남아 있다. 밴드는 9월부터 새 앨범작업에 열성적으로 임해, < A Day At The Races >는 12월에 발매되었다. 앨범의 홍보를 위해서 특별 경마가 열리기도 하였다. 발매되기 닷새 전에 < A Day At The Races >의 예약주문은 50만장을 넘어섰고, 그것은 당시 EMI 음반사 초유의 쾌거였다. 이 앨범의 싱글은 ‘Somebody to love’(영국 2위, 미국 13위), ‘Tie your mother down’(영국 31위, 미국 49위) 그리고 첫 EP의 리드트랙이었던 ‘An old-fashioned lover boy’(영국 17위) 등이었지만 국내에서는 ‘Bo rap’을 연상시키는 ‘Millionaire waltz’를 비롯해 ‘You take my breath away’, ‘You and I’도 애청되었다. 1977년 초반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투어를 했다. 그 즈음에 로저는 자비로 솔로 싱글을 녹음하기로 결심하고 ‘I wanna testify’를 8월에 발매하였다. 그해 5월에는 대규모 유럽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날아갔다. 런던 얼스 코트(Earls Court)에서의 콘서트에는 초대형 왕관모양의 조명이 등장했다. 폭 54피트, 높이 26피트, 무게 5천 파운드로 제작비는 무려 5만 파운드였다. 그해 10월, 팬클럽 멤버들은 처음으로 퀸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We are the champions’의 촬영이 끝난 후, 출연해준 팬들을 위해 즉흥 공연을 벌였다. 같은 달인 10월, ’Bohemian Rhapsody’로 52년부터 77년까지 발표된 영국 싱글 가운데 최우수 싱글에 주어지는 브리태니어 상(Britannia Award)을 ‘A whiter shade of pale’의 프로콜 하럼(Procol Harum)과 공동 수상했다. 그달 28일 ‘We are the champions’가 수록된 신보 < News Of The World >가 나왔다. 로저는 한 과학소설 삽화가의 작품을 앨범 표지로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았고, 작가는 흔쾌히 승낙하고 수정까지 해주었다. 재정상태가 좋아져 자가용 비행기를 구입해서 그해의 두 번째 투어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12주 동안 프랑스 차트 1위를 점령한 ‘We are the champions’에 이어 ‘We will rock you’가 1위 행진을 시작했다. ‘We are the champions’는 영국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에서는 ‘We will rock you’와 함께 더블 A면 싱글로 발표되어 밴드 최초의 플래티넘(100만장판매) 영광을 안으며 4위에 올랐다. 이 무렵 한국에서 퀸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해 앨범 < News Of The World >에서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 외에 ‘Spread your wings’ ‘All dead all dead’ ‘Who needs you’ ‘My melancholy blues’ 등 다수 트랙이 음악다방을 완전히 잠식할 정도였다. 1978년 2월, 퀸은 그들 스스로의 매니지먼트 체계를 갖추기로 결정하고 존 레이드와의 계약을 종료했다. 퀸의 기준에서 보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유럽 투어가 1978년 4월에, 이번에도 스톡홀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7월에는 새 앨범 작업에 착수했는데, 처음으로 영국이 아닌 스위스 몬트뢰(Montreux)와 프랑스에서 작업하였다. 신곡 ‘Bicycle race’의 홍보를 위해 밴드는 윔블던 스타디움(Wimbledon Stadium)을 빌렸고, 50명의 나체 여성이 자전거 경주를 벌였다. 싱글의 오리지널 커버에는 경주에 나온 한 여성의 뒷모습이 나와 있었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사람들의 항의로 말미암아 팬티를 그려 넣어야 했다. 그해 11월 신보 < Jazz >를 발매했다(영국 2위). 재킷에는 나체 자전거경주 포스터가 들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반대에 부딪혀서, 신청서를 대신 넣어 우편으로 포스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밴드는 앨범 발매 축하파티에 EMI와 일렉트라(Electra) 두 음반회사의 중역들을 동시에 초대했는데, 양측은 서로 세를 과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파티는 진흙탕 레슬러, 난장이, 반라의 웨이트레스가 등장하는 기괴한 스타일이었다. 이 앨범에선 더블 A 싱글 ‘Bicycle race/ Fat bottomed girls’(영국 11위, 미국 24위)와 지금도 라디오전파를 수놓는 ‘Don’t stop me’(영국 9위, 미국 86위)가 크게 히트했다. 12월 북미 투어가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간 퀸은 이듬해 첫 달부터 유럽 투어에 들어갔고 이를 끝마치자마자 라이브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부틀렉이 유통되는 등 대중적인 수요 때문에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1979년 6월 마침내 첫 라이브 앨범 < Live Killers >가 발매되었다. 일본 투어와 영국 투어를 끝낸 그들은 그 해 크리스마스 다음날 밤 캄보디아를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하였다. 1980년 6월 퀸 최초로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 The Game >이 발매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로커빌리 싱글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가 최초로 빌보드 정상을 점령했다. 이어 펑키한 리듬이 특징적인 두 번째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도 빌보드 차트의 팝을 위시해 소울, 디스코, 록 차트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일대 기염을 토하며 앨범의 세계적 폭풍을 이끌었다. 12월에는 영화 사운드트랙인 < Flash Gordon >이 발매되었고, 그 해까지 퀸이 전세계에 판매한 앨범 수는 4천 5백만 장으로 기록되었다. 1981년에는 남미 투어를 감행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8일 동안 다섯 차례나 거대한 스타디움 공연을 매진시켰고, 이어 브라질에서는 하룻밤에 13만 명, 이틀 동안 25만 명이 넘는 유료관객을 동원했다. 이것은 단독밴드로서는 당시 최고 기록이었다. 투어 내내 아르헨티나 차트에는 퀸의 모든 앨범이 10위권에 들어 있었다. 퀸이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남미에서의 스타디움 투어를 처음으로 해내자, 이후 딴 밴드들의 남미 순회공연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한편, 로저는 첫 솔로 앨범 < Fun In Space >를 발매하였다. 세계 최초의 프로모션 비디오 모음집인 < Greatest Flix >와 사진집 < Greatest Pix >, 히트곡 모음 앨범 < Greatest Hits >가 동시에 발매되었는데, < Greatest Hits >는 발매 이래 영국 차트 밖으로 밀려난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스테디셀러를 기록했다. 1982년에는 유럽 투어 도중에 12번째 앨범 < Hot Space >를 발매했고, 이 무렵 일본에서는 스마일의 < Gettin’ Smile >이라는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다. 12월에는 가장 급료가 높은 경영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 1983년 1월, 프레디와 로저는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솔로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브라이언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비롯한 친구들과 모여 잼 세션을 했는데, 그것을 정리해서 < Star Fleet Project >라는 미니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8월부터는 다음 앨범 녹음작업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하였는데, 미국에서 녹음한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1984년 2월, 13번째 앨범인 < The Works >를 발매하였고 첫 싱글 ‘Radio ga ga’는 19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영국 2위, 미국 16위). 뮤직 비디오에 팬클럽 회원들이 출연하였고 여기서 보여준 박수치는 동작은 각국의 퀸 공연에서 재연되었다. 두 번째 싱글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 비디오는 영국의 유명한 드라마를 패러디했는데, 멤버 모두가 우스꽝스런 여장을 하고 등장했다. 곡은 영국 3위, 미국 45위를 기록했다. 한편, 3월에 로저와 존은 관광차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에 퀸 팬클럽이 결성되어 수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6월에는 로저의 두 번째 솔로앨범 < Strange Frontier >가 발매되었고, 길드 기타(Guild Guitars)가 브라이언의 기타인 레드 스페셜을 카피한 기타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8월에는 벨기에에서부터 투어를 시작하는데, 10월 보츠와나 공화국의 남아공 백인정부가 건설한 선 시티(Sun City) 공연에 출연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밴드는 자신들은 비정치적 밴드이며 단지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러 간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으나, 남아공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에 대한 세계적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선 시티에 갔다는 맹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9월에는 1981년 몬트리올 공연을 촬영한 비디오 < We Will Rock You >가 발매되었고, 영국 차트 탑 200에 아홉 개의 앨범을 올려두어 여전한 퀸의 인기를 증명했다. 1985년에는 록 인 리오(Rock In Rio)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출연한 모든 밴드의 공연이 방송을 위해 녹화되었으나, 퀸만이 실황 비디오를 발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프레디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인 < Mr. Bad Guy >가 호주 투어 중에 발매되었고, 이어진 일본 투어 중 한 공연이 촬영되어 일본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7월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는 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퀸은 주어진 20분간 완벽한 쇼를 선보였고, 언론과 관객은 전체 공연을 ‘훔친’(stole) 밴드로 퀸을 꼽았다. 밴드는 새로운 활력을 얻었고, 이 때 얻은 영감으로 영화 < 아이언 이글 >(Iron Eagle)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곡 ‘One vision’(영국 7위)을 녹음하여 출시하였다. 1986년 3월, 존 디콘은 이모털즈(The Immortals)를 결성하여 영화 < 비글즈 >(Biggles)를 위한 곡 ‘No turning back’을 녹음, 발매한다. 6월에는 불사의 종족에 대한 판타지영화 < 하이랜더 >(Highlander)의 음악을 맡아, 몇 곡을 추가하고 재편곡을 거쳐 < A Kind Of Magic >이라는 제목으로 열네 번째 앨범을 발매하여 영국차트 정상을 밟았다. 6월부터는 유럽투어에 돌입하여 런던의 웸블리(Wembley) 스타디움에서 이틀간 매진을 기록하며 절정의 열기를 과시했다. 촬영된 둘째 날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은 훗날 영국 전역에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동시에 방송되었다. 7월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은 동구권 최초의 메이저 록 밴드 공연이었고, 역시 전석 매진되었다. 헝가리 전역의 35mm 카메라를 징발해 촬영된 공연은, 12월에 부다페스트에서 영화로 상영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유럽 전역에서 백만 명, 영국에서만 40만 명이 관람한 유럽 투어는 12만 명이 운집한 네브워스 파크(Knebworth Park)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11월에는, 퀸의 전 앨범이 동시에 시디로 발매되었는데, 이 역시 초유의 일이었다. 12월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 < Live Magic >은 영국 차트 3위에 올랐다. 1986년 그해 1년간 퀸이 영국에서 판매한 앨범은 총 1,774,991장이었다. 1987년 2월, 프레디 머큐리는 플래터스(Platters)의 명곡 ‘The great pretender’를 리메이크해 영국차트 4위에 올려놓았다. 3월에 그는 평소 흠모했던 오페라 디바 몽세라 까바예(Montserrat Caballe)를 바르셀로나에서 만나 앨범을 녹음하기로 한다. 9월에 발매된 싱글 ’Barcelona’는 스페인에서 3시간 만에 10000장이 팔려나갔다. 로저는 8월, 퀸의 휴식기에 함께 활동하기 위한 새 밴드 크로스(The Cross)의 멤버를 구하기 위한 광고를 냈다. 12월에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 The Magic Years >가 발매되어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1월이 되자 퀸은 새 앨범 작업에 착수하였고, 한편으로 크로스는 데뷔 앨범 < Shove It >을 발매하였다. 10월 8일 프레디와 몽세라 까바예는, 스페인의 왕과 왕비가 참석한 올림픽 행사에서 이틀 후에 나올 앨범에서 고른 세 곡을 협연하였다. 12월 4일, 크로스는 팬클럽 파티에서 브라이언, 존과 함께 공연을 했다. 1989년 5월 22일에는 < The Miracle >이 발매되어 영국차트 정상에 올랐다. 앨범에 앞선 싱글 ‘I want it all’은 영국차트 3위(미국 50위)에 올랐고 연이어 ‘Breakthru’(영국 7위) ‘The invisible man’(영국 12위) ‘Scandal’(영국 25위)이 차트를 장식했다. 수년간 하지 않았던 합동 인터뷰를 위해 라디오에 출연하는가 하면, ‘인디펜던트 텔레비전’의 시청자 투표에 의해 ‘80년대 최고 밴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11월에는 < The Miracle >의 대성공에 고무된 멤버들이 다음 앨범 작업을 위해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1990년 2월18일에는 영국 음향 산업(British Phonographic Industry, BPI)으로부터 ‘영국 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BPI상을 받았다. 크로스는 3월26일 2집 < Mad: Bad: And Dangerous To Know >를 발매하고 독일에서 공연을 가졌다. 브라이언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고 제작했으며 11월에는 할리우드 레코드사와 계약하여 북미에서 전 앨범을 리마스터해서 재발매하기로 했다. 12월7일에 크로스는 퀸 팬클럽 파티에서 연주하였는데 앙코르무대에서 브라이언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1991년 1월 14일에는 ‘Innuendo’를 싱글로 발매하여 데뷔와 동시에 영국차트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명의 앨범이 2월 4일 발매되어 역시 영국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미국에서는 30위). ‘I’m going slightly mad’ ‘Headlong’ ‘The show must go on’ 등 이어진 싱글들도 영국에서 각각 22위, 14위, 16위에 오르며 분전했다. 3월에는 크로스가 세 번째 앨범작업에 들어갔고 브라이언은 솔로 앨범 제작을 위해 7월에 몬트뢰로 날아갔다. 같은 달에 크로스의 앨범 < Blue Rock >도 완성되어 9월 초에 독일에서만 발매되었다. 퀸은 4월에 런던으로 돌아가 다시 다음 앨범 작업에 돌입했다. 5월30일에는 프레디는 마지막 출연작이 된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였다. 10월에 브라이언은 세빌 기타 레전드(Seville Guitar Legends) 페스티벌에서 누노 베텐코트,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등과 공연(共演)했다. 같은 달에 < Greatest Hits II >가 발매되었다. 이번에도 비디오 모음집과 사진집을 함께 발매하였다. 앨범과 비디오 모음집은 여지없이 1위에 올랐다. 1991년 11월23일 프레디는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갑작스럽게 세상에 알렸고, 그 다음날 친구들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세계는 충격에 빠지고 각국의 팬들이 애도의 꽃과 카드를 보냈으며 프레디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인 부모의 뜻에 따라, 프레디의 장례식은 세상을 떠난 지 3일 후에 조용히 화장으로 치러졌다. 4월에는 브라이언이 포드 자동차를 위한 광고음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Driven by you’를 써서 11월25일에 싱글로 발매, 영국차트 6위를 기록했다. 프레디의 마지막 바람이었던 에이즈와의 투쟁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싱글 ‘Bohemian rhapsody/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가 발매되어 5주간 영국차트 1위에 올라 100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12월에는 퀸의 앨범 10장이 영국 차트 100위권에 랭크되었다. 1992년 2월,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는 ‘영국 음악에 크게 공헌’한 바를 인정하는 특별상을 수여하였고,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를 ‘1991년 베스트 싱글’로 선정하였다. 수상식에서 로저와 브라이언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프레디의 삶을 기리기 위한 콘서트를 할 것임을 알렸다. 공연에 누가 나오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다음날 표가 판매되기 시작하였고, 72,000장의 표는 단 6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4월20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모여 프레디를 추모했다. 스타디움은 꽉 찼고, 수십억의 사람들이 시청했다. 여름에는 이 공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The Mercury Phoenix Trust)가 설립되었다.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의 비디오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발매되었다. 4월에는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로 아이버 노벨로(Ivor Novello)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92년 9월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브라이언의 솔로 앨범 < Back To The Light >이 발매되어 영국차트 6위에 오르고 판매량에서 더블 골드를 기록했다. 브라이언은 11월의 남미 투어를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 일본 등 월드투어를 이듬해까지 지속했다. 1993년에는 영국차트 1위를 차지한 프레디의 ’Living on my own’이 아이버 노벨로 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는 브라이언 메이 밴드가 브릭스톤 아카데미(Brixton Academy)에서의 실황을 라이브 앨범으로 내놓았다. 같은 해 9월에는 로저가 세 번째 솔로 앨범인 < Happiness? >를 선보였다. 1995년에는 브라이언, 로저, 존이 퀸의 마지막 정규앨범 < Made In Heaven >을 완성하여 전 세계적으로 발매하였다. 1996년 3월, 국내 PC통신 나우누리에 퀸 팬클럽 ‘퀸사모’가 개설되었다. 한국에 개설된 최초의 온라인 퀸 팬클럽이었고, 80년대의 퀸 팬클럽이 1987년 초에 마지막 공식 컨벤션을 개최한 이래 9년만의 일이었다. 1997년에 퀸은 ‘Too much love will kill you’로 아이버 노벨로 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프레디에 대한 세 멤버의 추모곡 ’No one but you’가 수록된 편집 앨범 < Queen Rocks >가 발매되었다. 11월에는 한국 최초의 퀸 전문 커버밴드 ‘영부인’(0vueen)이 서울 신촌에서 첫 공연을 하였다. 1998년에는 브라이언과 로저가 각각 솔로 앨범 < Another World >, < Electric Fire >를 발매했고 1999년에는 < Greatest Hits III >가 발매되었다. 2000년에는 10장의 CD와 2장의 DVD로 제작된 프레디 머큐리 박스세트가 발매되었다. 2002년에는 퀸 뮤지컬 < We Will Rock You >가 선보였고, 높은 인기로 유럽 각국에서 2004년 현재까지도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 개막을 축하하는 깜짝 공연이 브라이언과 로저에 의해 네덜란드에서 열려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브라이언과 로저는 뮤지컬 출연진과 함께 영국여왕 즉위 5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하여 ‘God save the Queen’을 비롯한 여러 곡들을 연주하여 열띤 호응을 받았다. 한편, 퀸의 곡들을 테마로 작곡된 교향곡이 톨가 카쉬프(Tolga Kashif)의 지휘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기도 했다. 또한 ’Bohemian Rhapsody’가 기네스북이 주관하여 영국인 310,000명이 참여한 ‘시대를 초월하는 최고 싱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4년 현재 존 디콘은 은퇴하여 언론매체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고, 브라이언과 로저는 함께 공연하거나, 퀸 관련 디브이디를 제작하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본 내용은 영국의 공식 퀸 팬클럽에서 만든 공식 전기 < As It Began > 축약본을 다시 축약해 내용을 일부 추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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