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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재즈 연주 명곡 모음집 (Jazz for special Moments) [LP]

쳇 베이커, 리 모건, 허비 행콕, 소니 롤린스, 아마드 자말 외

Carmen McRae 노래/Woody Herman, Sonny Stitt, Herbie Hancock, Dizzy Gillespie 연주 외 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Bellevue | 2018년 11월 22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3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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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연주 명곡 모음집 (Jazz for special Moments) [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11월 22일

관련분류

디스크

Disc
  • A1 Early Autumn - Woody Herman
  • A2 Blue Prelude - Sonny Stitt
  • A3 Watermelon Man - Herbie Hancock
  • A4 Old Devil Moon - Carmen McRae
  • A5 In a Mellow Tone - Dizzy Gillespie
  • A6 Blue Monk - Thelonious Monk
  • B1 Who Cares? - Ahmad Jamal
  • B2 Mangoes - Sonny Rollins
  • B3 I'm a Fool To Want You - Lee Morgan
  • B4 If I Had You - Earl 'fatha' Hines
  • B5 My Old Flame - Chet Baker

아티스트 소개 (11명)

노래 : Carmen McRae (카르멘 맥레이 )
재즈 보컬, 피아노 연주자 재즈 보컬, 피아노 연주자
재즈 클라리넷, 색소폰 연주자, 빅 밴드 리더. 재즈 클라리넷, 색소폰 연주자, 빅 밴드 리더.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은 4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정통 재즈에서부터 최첨단 일렉트로닉 악기를 내세운 재즈 퓨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악 세계를 선보여왔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영향이 느껴지는 강한 서정성의 < Maiden Voyage >(1965)에서 슬라이 & 패밀리 스톤 풍의 펑키 리듬이 압도적인 < Headhunters >(1973)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특정 스타일로 규정될 수 없다. ...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은 4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정통 재즈에서부터 최첨단 일렉트로닉 악기를 내세운 재즈 퓨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악 세계를 선보여왔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영향이 느껴지는 강한 서정성의 < Maiden Voyage >(1965)에서 슬라이 & 패밀리 스톤 풍의 펑키 리듬이 압도적인 < Headhunters >(1973)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특정 스타일로 규정될 수 없다. 정통 재즈에서부터, R&B, 일렉트로닉 뮤직, 펑키 등 다채로운 음악지형도를 펼쳐온 그는 한마디로 ‘변신’을 즐기는 재즈맨이다. 1940년 4월12일 미국 시카고의 사우스사이스에서 허버트 제프리 핸콕(Herbert Jeffery Hancock)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7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일찍 두각을 나타내 11살에 이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모차르트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기계 다루는데도 재능을 보여 나중에는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특이하게 대학서 전자공학을 전공한다. 이런 경력은 그가 1960년대 일렉트릭 피아노인 펜더 로즈(Fender Rhodes)나 클라비넷(Clavinet)과 같은 키보드 사운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학서 만난 색스폰 주자 행크 모블리, 트럼펫 주자 리 모건과 연주 활동을 하면서 도날드 버드의 권유로 1961년 뉴욕으로 진출해 그의 밴드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재즈맨의 길을 걷게 된다. 잠시 후 재즈 레이블 블루 노트(Blue Note)사가 그에게 계약을 요청, 이듬해인 1962년 데뷔작 < Takin’ off >(1962)를 내놓는다.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풍의 펑키한 피아노 주법이 인상적인 이 앨범의 수록곡 ‘Watermelon man’은 라틴 재즈 퍼커션 주자인 몽고 산타마리아(Mongo Santamaria)의 노래 버전으로 더 유명하다. 총 7장의 앨범을 블루 노트를 통해 발표하는 동안, 1993년 애시드 재즈그룹 US3가 커버해 유명해진 ‘Cantaloupe island’가 수록된 < Empyrean Isle >(1964)를 비롯하여 < Maiden Voyage >(1965), < Speak Like A Child >(1968)과 같은 명반을 통해 빌 에반스 풍의 서정성과 호레이스 실버의 펑키한 감각을 합쳐놓은 듯한 개성 어린 피아노 연주를 들려줌은 물론, 그의 탁월한 곡 쓰기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재즈 솔리스트로서 1960년대 내내 왕성한 활동을 보였지만, 재즈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의 활동은 그가 보다 진취적인 재즈뮤지션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토니 윌리암스(Tony Williams), 론 카터(Ron Carter), 웨인 쇼터(Wayne Shorter),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그리고 허비 핸콕(Herbie Hancock)으로 이루어진 제2기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 E. S. P >, < Miles In The Sky >, < Socerrer >, < Nefertiti >, < Filles De Killimanjaro >와 같은 명반을 잇달아 발표한다. 당시 “Miles In The Sky”(1968)를 작업하던 중 마일스 데이비스의 권유로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 허비 핸콕은 칙 코리아(Chick Corea)와 함께 키보드 사운드를 바탕으로 70년대 재즈-록 퓨전의 선두주자로 군림하는 초석을 다진다. 마일스와의 활동이 그가 ‘음악에 다양한 시도를 할 줄 아는 뮤지션’으로 비상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퓨전’으로의 음악성을 표방했던 1969년 허비 핸콕은 마일스를 벗어나 독립, 므완디시(Mwandish)라는 이름의 7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 Mwandish >(1970), < Crossing >(1971), < Sextant >(1973)에서 실험적인 ‘일렉트로닉-펑키’ 뮤직을 선보인 허비 핸콕은 다양한 종류의 키보드 사운드를 재료로 한 진보적인 재즈-록 퓨전을 선보이며 비평적 찬사를 얻는다. 이런 므완디시 밴드에서 보여준 허비 핸콕의 새로운 시도는 주목할 만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실험적 사운드에 천착한 음악이 대중들이 수용하기엔 어려웠던 것이다. 허비 핸콕은 자신의 밴드에 쏟은 열정만큼 대중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당시 유행하던 R&B의 문법을 자신의 음악에 대거 도입한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통해 경험한 ‘펑키 사운드’에 자신의 지향을 정했고 그 결과 나온 < Headhunters >(1973)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빌보드 앨범 차트 13위까지 오른 이 앨범은 명료한 백 비트를 바탕으로 펑키 사운드가 전면에 부각된 ‘파티용 댄스뮤직’이었다. 200만장 판매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연이어 발표한 < Thrust >(1974), < Man-Child >(1975), < Secret >(1976)를 계속 히트시키며 재즈 펑크(Jazz- Funk)의 전도사로서 1970년대 내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재즈 퓨전을 이 시기에 표방하면서도 그는 1977년 V.S.O.P.라는 팀을 결성, 19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연주를 같이 했던 멤버들과 같이 ‘정통 재즈로의 외도(?)’를 즐기기도 한다. 재즈-퓨전에 이어 1980년대 윈턴 마샬리스(Wynton Marshallis)등에 의해 꽃 피운 포스트 밥(Post-bop) 혹은 신(新)전통주의라 불리는 새로운 경향을 그는 이미 V.S.O.P.를 통해 그 도화선을 제시했던 것이다. 1980년대 들어 허비 핸콕은 또 한번의 변신을 감행한다. 1983년 발표한 < Future Shock >에 수록된 ‘Rockit’은 힙합 뮤직에 퍼져있던 스크래치(scratch) 사운드를 도입, 독특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이른바 디스코-텍(Disco-Teque) 뮤직을 선보인다. < Head Hunters >에 이어 이번에는 컴퓨터로 찍어 낸 듯한 테크노 음악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음악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 Future Shock >에 이은 1984년 작 < Sound System >으로 연속 그래미상을 거머쥔 허비 핸콕은 재즈 뮤지션의 한계를 뛰어 넘는 폭넓은 활동을 전개한다. 덱스터 고든이 주연했던 1986년 영화 < Round Midnight >에 참여, 이번엔 그래미상이 아닌 아카데미에서 오리지날 스코어 상을 수상한다. 1988년 테크노 팝 앨범 < Perfect Machine >을 끝으로 콜롬비아 레코드사를 떠난 허비 핸콕은 마일스의 추모앨범, TV 쇼 프로그램 진행자, 윈튼 마샬리스와의 협연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1994년 버브 레코드를 통해 < Dis Is Da Drum >을 발표하여 비평적 찬사를 받는 동시에 < Future Shock >에 이은 테크노 팝 열풍을 재현한다. 1995년엔 커트 코베인, 프린스, 토킹 헤즈, 비틀즈, 사이먼 & 가펑클 등의 록과 팝을 그만의 재즈 연주로 리메이크한 < The New Standard >를 발표했고 1998년엔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 Gershwin’s World >를 통해 그의 명성을 공고히 했다. 21세기를 맡아 예순을 넘기면서도 그 특유의 변신은 멈추지 않아 올 9월에 발표한 신작앨범 < Future 2 Future >를 통해서는 일렉트로닉과 다양한 장르의 혼합을 꾀하기도 했다.
비밥의 선구자 찰리 파커(이하 버드)와 디지 길레스피(이하 디지)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존재였다. 엄청난 스피드의 솔로와 한번에 2개 이상의 음을 동시에 내는 찰리 파커의 연주 재능은 비밥의 혁명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찰리 파커의 이런 재능을 먼저 알아본 것은 바로 그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였다. 디지는 항상 버드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연유에서 ... 비밥의 선구자 찰리 파커(이하 버드)와 디지 길레스피(이하 디지)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존재였다. 엄청난 스피드의 솔로와 한번에 2개 이상의 음을 동시에 내는 찰리 파커의 연주 재능은 비밥의 혁명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찰리 파커의 이런 재능을 먼저 알아본 것은 바로 그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였다. 디지는 항상 버드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연유에서 그는 항상 ‘버드 다음’이라는 식으로 ‘2인자’ 취급을 받곤 했다. 하지만 버드의 음악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사람은 디지였고, 그것을 가능케 해준 사람도 바로 디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새로운 재즈 음악 ‘비밥’의 명칭 역시 디지가 고안했다.) 실제로 디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찰리 파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할 정도로 버드에게 선사한 디지의 공헌은 막대했다. 눈칫밥을 먹어가며 독학으로 재즈를 익힌 버드와는 달리 디지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클래식을 전공했다.(물론 중간에 뛰쳐나온다.) 음악적인 지식이 전무했던 찰리 파커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떠돌이 음악인 신세였고, 디지는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아 1937년부터 테디 힐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주자였다. 하지만 1941년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의 이들 둘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디지는 버드가 지닌 천재성에 매료 되 그와 의기투합한다. 버드가 연주해서 유명해진 ‘Groovin’ high’, ’Salt peanuts’, ’Hot house’, ’Shaw ’nuff’등은 모두 디지가 작곡했다. 1945년부터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를 무대로 활동한 이들 콤비는 버드가 곡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디지가 그것을 흡수해 곡을 쓰는 방식이었다. 독보적인 음악성을 지닌 찰리 파커의 악상은 이렇듯 디지의 체계적인 음악지식에 의해 악보로 재현되었기에 우리가 지금 버드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디지가 재즈사에 남긴 공헌은 버드와의 콤비 플레이 이상이다. 1947년 버드와 함께 한 퀸텟 활동을 접고 초유의 비밥 빅밴드(Bebop Big Band)를 결성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그가 고안한 ‘쿠밥’(Cubop)이라는 장르인데, 쿠바 출신의 타악기 연주 대가 차노 포조(Chano Pozo)를 초청해 비밥과 아프로 큐반 리듬의 온전한 결합을 시도하며 재즈 내에서 본격적인 ’퓨전‘을 실험한 최초의 인물로 디지는 기억되다. 재즈의 명 스탠다드로 자리 매김 한 대표 곡 ’A night in tunisia’, Cubana bop’과 같은 곡은 아프로 큐반 재즈의 원형을 제시했다. 또한 그의 빅 밴드에서 활동하던 밀트 잭슨, 제임스 무디, 유셉 라티프, J.J 존스과 같은 50-60년대 ‘모던 재즈 쿼텟’(Modern Jazz Quartet)이란 이름으로 모인 걸출한 뮤지션들을 배출했고, 그의 트럼펫 연주는 이후 팻츠 나바로, 클리포드 브라운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에 영향을 끼치며 비밥이 한층 그 흑인성을 더하며 하드 밥 (Hard Bop)으로 진화 해 가는데 기여한다. 1917년 노스 캘롤라이나 주 출신인 디지는 12세때부터 트럼펫을 손에 잡고 이후 대학에서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만, 뮤지션이 되기 위해 자퇴한다. 30년대 스윙시대를 빛냈던 트럼펫 주자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의 영향을 받은 그는 1937년 테디 힐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프로로 데뷔한다. 이후 1939-1941년까지 캡 캘로웨이(Cab Calloway) 빅 밴드에서 활동하지만 리더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이윽고 해고된다. 이윽고 그의 첫 음악동지 테디 힐이 세운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 입성, 버드를 비롯한 비밥의 명인들과 음악적 교분을 나누며 1941-1943년까지 엘라 핏 제럴드, 베니 카터, 콜맨 홉킨스의 레코딩 세션에 참여하며 비밥의 혁명을 준비한다. 1942년 얼 하인즈 빅밴드에 합류하며 디지는 버드와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되었고 이때 밴드의 보컬주자 빌 엑스타인의 보컬로 그의 대표작 ‘A night in tunisia’(1943)을 발표한다. 1945-1947년까지 버드와 함께 퀸텟을 조직, 비밥을 세상에 알렸고, 1947년부터 자신의 비밥 빅밴드를 이끌면서 아프로 큐반 음악을 재즈에 소개한다. 1950년엔 버드와 다시 만나며 < Bird & Diz >를 버브 레이블에서 공개했고, 이후 1950년대 내내 버브사를 통해 자신의 연주에 큰 영향을 준 로이 엘드리지와 함께 한< Dizzy Gillespie & Roy Eldridge >(1954), 10년 동안의 빅 밴드 활동을 중간 결산하는 라이브 명반 < At Newport >(1957)을 발표한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버드와는 달리 디지는 이후 60년대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보이는데, 자신의 빅 밴드를 해체시키고 소규모 밴드 중심으로 활동한 그는 레오 라이트(Leo Wright), 라로 쉬프린(Lalo Schifrin), 제임스 무디(James Moody), 케니 바론(Kenny Barron)과 같은 60년대 스타급 재즈 뮤지션들과 교류했고, 70년대 초엔 재즈 자이언츠(Jazz Giants)라는 프로잭트 밴드를 결성, 델로니우스 몽크 ,소니 스티츠, 아트 블래이키와 같은 40-50년대 비밥 명인들과 재결합을 시도한다. 이후 재즈 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차츰 줄어 들어갔지만, 후배 재즈 뮤지션들은 그의 업적을 칭송하며 80년대까지 그와 함께 연주를 같이 한다. 그는 최근 개봉했던 영화 ‘리빙 하바나’를 통해 소개된 아르투로 산도발(트럼펫)과 파키토 리베라(색스폰)와 같은 쿠바 출신의 뮤지션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의 정력적인 활동은 죽기 1년 전인 1992년까지 지속되었다. 디지는 비슷한 시기 자웅을 겨뤘던 버드와 같은 천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운명’에 자신을 파괴했던 버드와는 달리 그는 자신을 아낄 줄 알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대중적인 인기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버드와 함께 ‘비밥의 산파자’라는 영예와 더불어 많은 후배 뮤지션들을 키워내며 재즈 사에서 버드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기억된다.
연주 : Thelonious Monk (델로니어스 몽크)
재즈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듣고 연주해봐야 하는 스탠다드 ‘Round midnight’(1944)를 작곡자인 셀로니어스 몽크(이하 몽크)의 연주는 독특하다. 세련됨하고는 거리가 먼 그의 전위적인 건반 터치는 감상용 음악과 차원을 달리하며 피아노 연주 새로운 전형을 확립했다. 몽크의 연주는 투박하고 거칠다.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하고 기분 좋은 선율과는 거리가 먼 그의 피아노 주법은 청중들을 당혹스럽게까지... 재즈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듣고 연주해봐야 하는 스탠다드 ‘Round midnight’(1944)를 작곡자인 셀로니어스 몽크(이하 몽크)의 연주는 독특하다. 세련됨하고는 거리가 먼 그의 전위적인 건반 터치는 감상용 음악과 차원을 달리하며 피아노 연주 새로운 전형을 확립했다. 몽크의 연주는 투박하고 거칠다.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하고 기분 좋은 선율과는 거리가 먼 그의 피아노 주법은 청중들을 당혹스럽게까지 한다. 버드와 디지가 40년대 소개한 그 전위적이고 난해하다고 소문난 비밥이지만, 몽크가 제시한 그 난해함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만큼 몽크의 음악 세계는 비밥에서도 변방에 위치했다. 몽크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의 연주엔 자지러질 만한 고난이의 테크닉으로 점철된 연주가 아닌, 자기 나름의 공식에 기반해 한가지 연주 주제를 다양한 리듬 패턴과 화성으로 조합해내는 펼쳐내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런 독특한 음악성 때문에 대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몰라주던 당시 연주인들에게까지 그는 냉대를 당한다. 버드나 디지가 선보였던 화려한 기교와 초스피드로 무장한 비밥 연주에 흥분했던 청중들은 몽크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난수표처럼 얽힌 그의 연주는 얼른 들어서 감이 오지 않지만,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는 그의 음악성은 비밥의 또 다른 모델이다. 1947년 30세 나이에 발표한 < Genius Of Modern Music Vol.1,2 >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제시한 몽크는 향후 25년 동안 데뷔 때 보여준 스타일을 견지하며 재즈 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연주 패턴’을 지닌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절모가 잘 어울리는 몽크는 1917년 태어나 5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뉴욕에서 보낸 유년시절동안, 20년대 할렘 스트라이드(Harlem Stride) 주법의 일인자 제임스 P. 존슨(James P. Johnson)의 음악을 늘 끼고 살며(제임스 P. Johnson은 그의 이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주법을 확립해간다. 1940-1943년 비밥의 고향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 입성, 연주의 내공을 다짐과 동시에 1942년 쿠티 윌리엄스 오케스트라에 합류하며 피아니스트로 활동한다. 평소 작곡에 재능 있던 그는 “Epistropy"(1942), 그리고 ” ‘Round midnight"(1944)를 밴드 멤버 자격으로 처음 녹음한다. 1945-54년까지 몽크에겐 ‘시련의 시간’이었다.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알게 된 동료 버드와 디지와 함께 연주활동을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특이한 그의 피아노 주법에 다들 그를 ‘엉터리 피아니스트’로 여겼다. 비밥의 주역들에게까지 소위 ‘왕따’를 당한 그였지만 ‘끝내 이기리라’는 신념으로 블루노트와 프레스티지 레코드사를 통해 수많은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화려한 프레이징 구사로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던 동료 버드 파웰(Bud Powell)과는 달리 그의 처음 10년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군분투 그 자체였다.(아이러니컬하게도 버드와 그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1955년 리버사이드 레코드와 계약한 몽크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듀크 엘링턴의 스탠다드를 연주한 < Plays Duke Ellington >을 시작으로 인지도를 모았고, 그 여세를 몰아 몽킅는 중기 걸작 < Brillant Corners >(1956)를 테너섹소폰에 소니 롤린스,드럼에 막스 로치가 참여해 발표한다. 이듬해 1957년 몽크는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방출된 테너 섹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몽크에게 ‘제2의 음악인생’을 열게 해준 둘의 만남은 비록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찰떡궁합으로 비견되는 둘의 독창적인 음악성은 그제서야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이었다. 1957년 한 해 동안 몽크는 존과 함께 < John Coltrane& Thelonious Monk >, < Monk’s Mood >, < Thelonious Himself >와 같은 모던 재즈의 걸작들을 녹음한다. < Monk’s Mddd >의 수록곡 ’Monk’s mood’는 몽크를 음지에서의 재즈계의 주요 인사로 부상시켜줬고 존 콜트레인 역시 몽크와의 만남을 계기로 마약을 끊고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개발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1962년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메이저로 진출, 1962-1968년 동안 자신의 쿼텟을 이끌며 재즈계의 유명인사로 군림하며 화려한 커리어를 일군다. 70년대 초엔 디지 길레스피가 조직한 프로젝트 재즈 자이언츠(Jazz Giants)의 멤버로도 활동하지만 1973년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1982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철저히 은둔생활을 한다. ‘Round midnight’, ‘52nd street theme’, ‘Ruby my dear’ 등 그가 작곡한 수많은 재즈 스탠다드들은 지금까지도 젊은 재즈뮤지션들의 단골 연주 레퍼토리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이렇다할 슬럼프 없었던 올곧은 그의 음악여정은 후대에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데뷔 초기에는 비록 버드나 디지, 파웰이 누린 주목을 얻진 못했지만, ‘혁신과 실험’으로 대변되는 ‘비밥의 정신’에 그 만큼 부합되는 인물은 없을지도 모른다.
연주 : Ahmad Jamal (아마드 자말 )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노 연주자
연주 : Sonny Rollins (소니 롤린스,Walter Theodore Sonny Rollins)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재즈 트럼펫 연주자 재즈 트럼펫 연주자
연주 : Earl Hines (얼 하인즈,Earl "Fatha" Hines)
재즈 피아노 연주자 재즈 피아노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들고 나온 쿨(Cool)이라는 재즈의 새로운 경향은 50년대가 들면서 미국 웨스트 코스트(L.A./켈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뻗어갔다. ‘쿨’의 씨앗은 마일즈가 뿌렸지만, 애석하게 그는 마약으로 인해 긴 슬럼프를 겪어야 했고, 이 틈을 타 마일즈의 데뷔작< Birth of Cool >(1949)에 참여했던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리 코니츠(Le...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들고 나온 쿨(Cool)이라는 재즈의 새로운 경향은 50년대가 들면서 미국 웨스트 코스트(L.A./켈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뻗어갔다. ‘쿨’의 씨앗은 마일즈가 뿌렸지만, 애석하게 그는 마약으로 인해 긴 슬럼프를 겪어야 했고, 이 틈을 타 마일즈의 데뷔작< Birth of Cool >(1949)에 참여했던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리 코니츠(Lee Konitz)등과 같은 백인 뮤지션들이 그 독점적 수혜자가 된다. 하지만 ‘쿨’이 동부의 하드 밥 보다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된 데에는 50년대 들어 소위 ‘스타’의 등장에 힘입은 바 크다. 스탄 게츠, 데이브 브루벡, 제리 멀리건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에서의 격렬한 하드 밥과는 다른 관조하듯 차분하고 지적인, 때로는 우울한 멜로디가 우러나는 ‘쿨’의 정체성을 정립시켰고, ‘쿨=백인 재즈’식의 공식을 성립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노래로 따라 부르기 힘든 비밥의 난해성을 쿨은 보컬이 첨가되며 어느 정도 상쇄시켜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여기서 다시 한번 재즈 역시 흑인은 팔리고 백인을 판다는 속설이 입증된다.) 쳇 베이커의 등장은 그래서 주목받을 만했다. ‘My funny valentine’(1953)을 차트에 진입시키며 연주자보다는 재즈 보컬로 알려졌지만, 애처로운 듯 폐부를 찌르는 그의 트럼펫 소리는 또한 당시로선 새로웠다. 잘 훈련된 크루닝(crooning)을 구사한 그는 하지만 이런 대중 영합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평론가들에겐 처음엔 마일즈 데이비스의 아류정도로 취급되는 수모를 겪는다. 창백하리만큼 뽀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래서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용모를 지닌 그는 수많은 도시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모성심리를 자극했지만, 실제 그의 삶은 마약으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1929년 오클라호마주 태생인 그는 기타리스트인 아버지 덕에 일찍 음악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어린시절 교회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생일선물인 트럼본으로 처음 재즈를 접하게 된다.(얼마 후 이 악기는 트럼펫으로 바뀐다.) 예술 고등학교를 진학해 음악수업을 받았지만, 일찍 프로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에 16살 되던 1945년 학교를 자퇴한다. 육군에 입대해 군악대에서 연주를 연마한 그는, 제대 후인 1948년 잠시 음악 대학에서 작곡과 음악 이론을 배웠고, 다시 대학을 2년 만에 자퇴, 군악대에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1950년 두 번째 제대를 하고 본격적으로 클럽 가에 진출해 프로로 나선다. 23살이 되던 1952년, 그는 테너 색스폰 연주인 스탄 게츠(Stan Getz)와 만나며 그해 3월 스탄 게츠와 함께 비도 무소(Viddo Musso) 쿼텟 일원으로 첫 레코딩을 한다. 그리고 그해 3월 29일,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메카 티파니 하우스(Tiffany House)에서 공식적인 데뷔 공연을 연다. 얼마 후 제리 멀리건으로부터 자신의 밴드에 가입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리 멀리건 쿼텟’의 일원으로 헤이그(Haig) 나이트 클럽에 전속 출연하며 서부지역에서 그는 줏가를 올리기 시작한다. 파시픽(Pacific)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하며 그는 제리 멀리건 쿼텟의 멤버 자격으로 모두 10장의 음반을 녹음하다.(그 유명한 “My funny valentine”은 이 때의 작품이다) ‘My funny valentine’으로 소위 ’스타덤‘을 맛본 그는 얼마 후 상습적인 마약 복용협의로 구속되었고, 제리 멀리건과의 창조적인 연주는 채 1년이 못 되 끝나고 만다.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1953년 솔로로 나서며 러스 프리먼(피아노), 레드 미첼(베이스), 바비 화이트(드럼)과 자신의 쿼텟을 결성한다. 1953년 7월, 파시픽에서 그의 첫 리더 작을 발표하고, 평론가와 팬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다.(그해 그는 재즈 팬들이 선정한 인기투표에서도 1위로 뽑힌다.) 재즈 연주인으로서 수절하기를 거부하고 대중적으로 영합했다는 비난을 받은 루이 암스트롱처럼 그도 차츰 대중스타로서의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이듬해 1954년 < Chet Baker Sings >을 발표하며 그의 인기는 치솟았고 연주자보다는 가수로서 대중들은 그를 인식하게 된다. 어느덧 특유의 창백한 트럼펫 톤보다 감미로운 발라드 노래를 원하게 된 팬들은 이 미남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고, 수많은 여성팬을 거느린 몇 안되는(?) 재즈 뮤지션으로 등극한다. 얼마 후 헐리우드의 러브 콜을 받으며 영화 < Hell’s Horizon >(1956)에서 주역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적인 면에서 그는 평론가들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이미 대중 스타가 되버린 그의 음악성은 날로 퇴보하고 있다는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된다. 이에 심기일전 해 한층 연주에 무게를 실은 밥(Bop)스타일의 퀸텟 연주로 꾸민 < Chet Baker & Crew >(1956)로 본연의 재즈 연주자로서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50년대 말까지 퀸텟 연주활동으로 전세계 투어로 바쁜 나날을 보낸 뒤 쿨의 전성이 끝나가려던 무렵인 1959년, 자신의 창조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그는 미국을 떠나 이태리로 향한다. 자신의 음악성을 평소 높이 사던 유럽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그는 죽을 때까지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며, 그야말로 방랑인과 같은 삶을 이어간다. 60년대 내내 파리에 거주하면서 프레스티지 레코드사를 통해 음악활동을 하지만 여전히 그를 괴롭히는 헤로인 중독은 향후 몇 년간 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갔다. 1960년 마약 소지 혐의로 이태리에서 체포되 근 1년을 감옥에서 생활한 그는 이후에도 마약으로 감옥을 집 드나들듯이 해야 했다. < Lonely Star >(1965)를 제외하고 이렇다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 시기동안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화된 건강으로 말미암아 70년대 초엔 완전히 연주생활에서 멀어졌다. 마약으로 끝장날 것 같던 그의 음악 인생은, 하지만 옛 동료인 제리 멀리건이 그와 다시 만나며 1973년 카네기 홀 콘서트를 통해 극적인 재기에 성공한다. 크리드 테일러가 이끄는 CTI 레이블에서 간간이 세션을 하던 그는 하지만 다시 미국을 떠나 유럽 각지를 돌며 떠돌이 연주생활을 이어나간다. 클럽에서 세션이나 하며 마약 살 돈을 벌던 중 그는 198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 방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외롭게 객사한다. 말년의 그의 모습은 과거 수줍은 소년을 연상시키는 뽀얀 얼굴의 쳇 베이커가 아닌 인생의 풍파에 찌든 쭈글쭈글한 노인이었다. 쓸쓸히 죽어간 그는 하지만 차츰 후대의 재평가를 받는다. 그 발원지는 다름 아닌 록음악 씬이었는데, 펑크의 작가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는 그에게 헌정하는 곡 ‘Almost blue’(1982)를 앨범 < Imperial Bedromm >에 수록하며 ’처절하리 외롭고 슬픈‘ 정감이 서린 그의 음악성에 경의를 표했고, 이듬해 그의 앨범 < Punch the Clock >(1983)에서 그를 초청해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곡 ’Shipbuilding’에서 트럼펫 세션을 부탁하기도 한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 브루스 웨버는 그가 죽기 1년 전인 1987년에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돌입한다. < Let’s get lost >라는 쳇 베이커의 기록 영화는 이듬해인 1988년 아카데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죽기 전까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그의 음악 세계는 그의 사후 루이 암스트롱의 뒤를 잇는 ‘최고의 즉흥 연주자’라는 훈장을 얻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수많은 미발표 음원들에 대한 재평가는 계속되고 있다. (추천 앨범: 쳇 베이커를 처음 접하시려는 분들은 작년에 EMI를 통해 나온 < Deep in a Dream: The Ultimate Chet Baker >(2002)를 먼저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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